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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가의 작품이라 하면 커다랗고 낯선 인상의 공공 건축이 먼저 떠오른다. 공공의 기능을 하지만 외양 자체로는 공공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어떤 건축물들 말이다. 이해는 무지한 타인의 몫으로 돌린 채, 도도하게 선을 긋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한 현대의 건축물들은 건축의 영역을 감히 넘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현대 건축들이 난해한 얼굴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 탓을 예술가이기도 한 건축가들에게 돌릴 것도 아니고, 교양과 심미안이 부족한 나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고 싶은 말은 그저, 현대 건축은 다른 현대 예술들처럼 다소 추상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는 것과 내가 알던 것들은 공공 건축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라는 앞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집을 순례하다'라는 책의 속편이다. 이 책이 개정판일 정도로 아주 살짝은 묵은 책인데, 건축의 생명이 워낙 길기에 큰 상관은 없는 것 같다.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주택 전문 건축가다. 그의 자기소개에 따르면 그는 '건축 오타쿠'. 7년 간 좋아하는 건축가들이 지은 주택을 방문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했다. 그 역시 애정으로 좋아서 시작한 일에 잡지 연재를 하며 지속적으로 해 나간 일이라, 인터뷰를 하긴 하는데 그리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이진 않다. 심지어 녹음하지도 않고 그저 대화를 나누고 감상하고 올 뿐이다. 그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건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직접 그리는 약식 설계도면에서만 드러난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정말로 귀여운 건축 오타쿠만 남는다. 이 책에 소개된 20세기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 중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워낙 대중적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제주에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듯한 안도 타다오가 그중 첫 번째이고, 찰스 무어의 시 랜치는 건축물만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외엔 개정판을 내며 내용이 더 추가되었다는, 글라스 하우스를 지은 필립 존슨이다. 들어본 적 있는 이들이어도, 이 건축가들이 주택을 지었다는 점과 그 건축물이 살기 위해 지어진 집이라는 점은 이 책을 통해서야 알았다. 현대의 유명 건축은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만 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택 역시 자신이 살기 위한 집이나 호텔 정도나 가능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한 것이다. 새삼 놀랍다. 이런 인기 있는 건축가들이 주택을 짓는다니, 처음엔 자선사업을 하는 CEO처럼 어딘가 의도된 소박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축 역시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주거를 위한 집을 짓기 보단 더 큰 규모의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기본에서부터 생각하면, 건물을 짓는 가장 기본은 사람이 살기 위함.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집을 건축가가 짓는다는 게 어색할 이유는 전혀 없다. 사실 그 집들도 건축가 브랜드와 태생이 예술일 수밖에 없는 점에서 세상에 지어진 이상 높은 가격과 그보다 더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이 주택을 짓는 일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연한 일을 다시 깨닫고 현대 건축을 떠올리니,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해 만든 요리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을 들여 설계하고 정성을 들여 지은 집은 주의 깊게 씹고 여유롭게 음미하며 살펴보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84쪽) 제가 이해한 것이라고는, 감동이라는 것은 눈물과 소름 같은 생리적인 현상을 동반한다는 사실뿐입니다. (147쪽) 하나의 집을 설계하는 데 3년이라는 세월을 들인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은 당장의 필요성에 쫓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 다음은 누군가로부터 재촉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끝까지 붙들고 있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글라스 하우스는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었습니다. (24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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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작품인 집을 순례하다를 재미있게 읽고 이번에는 후속편격인 다시 집을 순례하다를 읽었다. 역시나 전작에 못지않은 진한 감동과 좀 더 넓어진 사고의 폭을 건네준 그런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이번 책에서는 여덞명의 건축가가 지은 여덟채(정확하게는 그보다 많다. 마지막 챕터인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는 거대한 부지에 세워진 프로젝트성 건축물로 글라스 하우스외에도 브릭하우스나 갤러리, 고스트 하우스등이 포함된 거대 프로젝트이다)의 건물들을 순례하고 감상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안도 다다오 같은 거장의 스미요시 연립주택으로 시작해서 백만장자 건축가였던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로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책에 실린 다른 건축가들은 전작에 비해 인지도가 좀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루이스 바라간이야 그렇다 쳐도 가구 디자이너로 더 유명한 임스부부, 찰스 무어와 동료들, 피에르 샤로, 만자로티와 모라스티, 홀름 부부같은 이름들은 역시 생소하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집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근원적인 향수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이것을 집에 대한 노스탤지어라고 밖에는 불러줄 마땅한 명칭이 없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거나 이런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낸것 같은 심상이 떠오르는 그런 장면들이 책장 사이사이 빼곡하다. 찰스 무어의 시랜치에서 바라본 파도라던가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에서 눈내리는 밤에 느낄 수 있다는 고양감 같은 것도 그러하다. 우리 안에 오랜 시간 자리 잡은 것 같은 이런 느낌을 느낄 수 있게 써내려간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런 일체감이 느껴지게 집을 만들어낸 대가들의 감각이 역시 경이롭다. 내집을 짓는다는 일은 표준화된 주거 공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궁극적인 꿈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으며 나 또한 언젠가 내 인생이 담겨있는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고 그 꿈의 끝에는 내가 돌아가고픈 이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책은 집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원시에 자리잡고 있는 그리운 고향에 대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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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축에 관심이 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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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2편도 읽고, 줄긋고, 상상하고, 나의 미래 또는 지금의 우리 집에 적용시켜보려고 했다.
이 책의 서정적인 평면 스케치는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첫번째 이유인줄도 모른다. 건축가인 작가는 집에 관해 매우 서정적이고 디테일하게 접근한다. 첫 느낌으로 너무 따뜻하다. 그러나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작가의 감상에 대해 동감할 수 있어야 하고, 디테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될 거 같으나 그러기엔 나의 감정과 건축적 이해가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나는 도심에 위치한 집을 소개받고 싶었는데 2편에 소개된 8채의 주택 중 도심에 위치한 집은 1채밖에 없었다.
다다오의 오사카 도심에 위치한 연립주택(우리나라의 법적 용어인 연립주택과는 다름) 루이스 바라간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자가 주택 필립 존슨(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의 건축놀이인 글라스하우스는 도심에 위치한 입지적 특성과 건축가의 강한 개성에 재밌게 읽었으나
나머지 주택은 작가만 말하는 '주택 오타쿠'만이 많은 공감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적인 특성의(부동산적 특성이 아닌) 집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필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