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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과학을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다. 또한 과학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우리 행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런 과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과학에 기반한 현실은 계속 진화해 가고 있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그런 과학을 뒤쫓아가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렇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근본주의, 특히 미국 내 지독한 우파 근본주의는 지적설계 라는 미명으로 교실은 물론, 정교분리주의라는 자신들의 헌법마저도 걷어차고 과학을 위기에 몰아 넣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여론조사를 보면 종교를 떠나 과학적 사실로써 진화론을 믿는 사람보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지적설계론자들과 언론의 요란법석 덕에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에 대해 유럽인들은 21세기에 다른 곳도 아닌, 대부분의 과학분야에서 선두에 있는,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과학을 위기에 몰아넣는 것은 지적설계론의 선전공세 말고도 또 있다. 그것은 일반인들의 진화론에 대한 암울한 이해수준이라고 한다. 이에 과학계는 지적설계론에 대한 단편적인 비판이나 무시가 아니라, 진지한 반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에이전트이자 편집자인 존 브록만은 일반대중에게 올바른 지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지적설계 운동이 제기한 쟁점들과 자연선택에 대한 진화론의 내용들을 저명한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에게서 받은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모아 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하여 대니얼 데닛, 스콧 애트런, 스티븐 핑커등 생물학, 물리학, 철학, 심리학, 우주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떤 것이 과학인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과학이론이란 검증 가능한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과학적인 현상을 과학이라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현대의 과학이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종교는 원칙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 왔다. 처음 종교가 생겨날 때부터 그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 하려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런 문제를 초자연적인 세계를 받아들임으로써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스콧 애트런 미시건대 심리학 교수는 말한다. 그렇기에 과학은 결코 종교를 대체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류가 자연의 물질적 비밀을 풀기를 원하는 한, 종교 또한 과학을 대신할 수가 없다. 지적설계와 같이 종교가 어설프게 과학이 되려 할 때, 그것은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줄이는 결과가 될 것이고, 이는 종교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물리학자인 래너드 서스킨스 스탠퍼드대 교수도 과학과 종교는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진화가 신앙과 상충하든, 아니든 가를 떠나 과학과 종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계관을 대표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생각을 둘러싼 지적인 싸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작금의 진화론에 대한 갈등을 추동 하는 메커니즘에는 우려를 하지 않을수 없다. 반과학 열풍에 어쩌면 또 다른 숨겨진 의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 그는, 과학의 완전무결성과 객관성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만이 혼란을 악화시키지 않고 대처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근본적 창조주의자들과 논쟁을 할 생각을 말고, 상충하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쩔쩔매며 어찌할 줄 모르는 대다수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지적설계는 애매모호함을 의도하고 있다. 그것은 일반대중에게는 자신들의 이론을 순수과학인 것처럼 제시하고, 또한 사회와 과학에서는 유물론을 몰아내고 그것을 신학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제리 코인은 설사 그것을 과학이라 가정할지라도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기만 할 뿐, 과학적 검증은 생각지도 못 할일 이라고 말한다. 2005년 미국에서 꽃피운 지적설계는 과학사에 길이 남을 천재적인 날조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대니얼 데닛은 그들이 왜 진화론에 저항하는지를 설명한다. 양자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한, 그 개념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을 뿐이다. 다행히 물리학에는 비방자들이 생길 동기가 없었지만, 진화론은 사정이 달랐다. 신의 영역을 빼앗고, 믿음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저항할 동기가 충분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들은 과학자들과 얘기하는 대신 일반대중들에게 접촉하며 지적설계를 주장하고, 반박에 막히면 모호한 안개 속으로 숨어버린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그저 과학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논쟁화하려고만 할 뿐이란다. 진화론에 대한 증거는 너무 흔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귀찮을 정도라고 진화생물학자인 제리 코인은 말한다. 그것은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할 때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은 자연에 대한 모든 정보 조각이 진화론과 일치하고 있으며, 그것과 모순되는 증거는 아직까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지적설계론자들은 비효율성 혹은 흔적구조에 기반하는 진화의 증거들은 비과학적이라 주장하지만, 이런 불완전성과 비효율성은 진화가 일어났다고 가정하거나, 아니면 창조주가 생물이 진화했다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속이기 위해 기만적으로 설계했다고 믿어야 이해 가능한 것들이라고 한다. 창조론과 지적설계를 누구보다도 추종했던 다윈은 그가 모으고 보았던 증거들을 창조론과 지적설계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눈앞의 생물학적, 고생물학적 증거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종교는 도덕이 아니라고 말한다. 도덕은 종교와 상관없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도덕이 자신들만의 영역인양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대한 이해가 도덕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야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지적설계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적설계론을 접할 때마다 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지적설계론을 진화론과 같은 비중으로 교과과정에 삽입하고, 또 일반대중에게 강요하는 데는 스콧 애트런의 지적과 같이 그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종교는 종교의 길을 가고, 과학은 과학의 길을 가면 될 뿐인데.. 책을 읽으면서 캘리포니아대학 고생물학 교수인 팀 화이트가 쓴 인류의 진화증거에 관한 글이 인상에 남는다. 수많은 화석을 통하여 인류의 진화 증거를 발견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진화의 최종 산물도, 생명의 나무의 정점도 아니다. 한 종으로써 만일 기술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결코 오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증거에 따르면, 우리 종은 문화적 적응으로 지구 생태계를 철저히 교란하고 있는 특이한 종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사는 우리 종이 새겨 들어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화석기록을 보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 어떤 현대 유인원보다 우리와 비슷했던 두발 보행 영장류들이 지난 600만년 동안 반복적으로 멸종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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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특이한 구성으로 진화론을 주장하는 책입니다. 책 구성이 특이하다고 한것은 진화론에 대한 일반적이 개론서 혹은 대중서가 아닙니다. 2005년에 "펜실베이니아에서 학교 교과목에 "지적설계론"을 같이 가르쳐야하느냐에 대한 "연방지방법원 판결"이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 기념?하여 쟁쟁한 진화론쪽 학자 16명이 진화론에 대한 주장 혹은 지적설계론의 오류를 주장하는 짧은 에세이들을 썼고 그 에세이들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각 저자간의 주장에서 중복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모든 대립되는 주장이 그렇듯이. 이 진화론문제도 영원한 평행선이 될듯합니다. 진화론 입장에서는 화석이, 유전학이, 지질학이 진화를 보여주는데 왜 믿지를 않느냐하며 답답해 할것이고,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론 입장에서는 성경과 맞지 않는다, 혹은 다른 이유로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끝없는 싸움의 이유는 이 책 302쪽에서 가르쳐 줍니다. [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 같이 생명이나 종의 기원에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들이 과학이 아닌 이유는 이 주장들이 과학의 방법론들에 의해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주장들은 관찰된 데이터를 권위자, 계시, 종교적 믿음에 기반한 진술들 아래 배치한다. 이 주장들을 지지하는 문서는 그 옹호자들이 펴낸 특수한 출판물일뿐이다. 이 출판물들이 제공하는 그설들은 새로운 데이터나 새로운 해석이 나오거나 오류가 증명되어도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과학과 대조되는 점인데, 과학의 모든 가설과 이론은 새로운 지식이 나왔을때 부정되거나 변경될 사능성을 항상 열어 놓고 있다 ] 즉 창조론,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서 과학적 주장을 보는 모습이 다릅니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할 이유가 없는 것인데 싸움이 오래가네요..... 어렸을때 창조과학*** 이런 연구소에서 하는 설명회에 따라간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받은 감정은 "와! 창조론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구나? 단순히 성경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네"였습니다. 뭐 그렇다고 창조론을 따라간것은 아니지만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핵심 주장을 한번 볼까요? 진화론의 핵심 주장은 책 18쪽에서 [ 현대 진화론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는 일어난다. 즉 현생 종은 과거에 살았던 다른 종의 후손이다. 둘째, 진화적 변화는 수천년, 혹으 수백만 년에 걸친 개체군들의 점진적인 유전적 변화를 통해서 일어난다. 셋째, 생명의 새로운 형태는 하나의 계통이 두 개로 갈라짐으로써 생긴다. 넷째, 진화는 대부분 자연선택을 통해 일어난다. ] 지적설계론은 책 33쪽에서 부터 [ 1. 생물의 주요 집단들은 조상없이 갑자기 생겨났다. 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일어나지만, 오직 '같은 종류'내에서만 일어난다.'종류들'사이의 진화적 이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3. 우리는 지구가 젊은지 늙었는지 모른다. 4.자연 선택은 복잡한 생물을 만들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 이렇게 나뉘네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진화론책들을 많이 읽어서 이젠 어느정도 나는 알만큼 알아 했지만 역시 제가 아는 지식은 바닷가 한줌의 모래밖에 않되는 군요. 언제까지 책을 읽어야 됬다 할만할까요? 특히한 구성의 책만큼이나 이 책의 백미는 부록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중부 미국연방 지방법원 판결문입니다. 얼마나 고심들여 판결을 내렸겠습니까? ㅎㅎ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이 듣고 제 생각에는 판사 평생 공부할 생물 공부를 대부분 이 판결 내리느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16명의 학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판결문이 이 책의 베스트오브 베스트입니다. ㅋㅋ 책 320쪽에서 [우리는 지적설계가 과학이 아니며, 지적설계는 전신인 창조론과 한 몸이란 결론을 내렸다. ~ 진화론이 훌륭한 과학에 해당하고, 과학계로부터 압도적인 인정을 받고 있으며, 신성한 창조자의 존재와 상충하지도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 분명히 다윈의 진화론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한 과학이론이 모든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구실삼아서, 종교에 뿌리를 둔 검증 불가능한 대안적 가설을 과학수업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하거나, 잘 입증된 과학적 명제들을 엉뚱하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 아름 다운 판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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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 발전의 첨단에 서있는 미국에서 과학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인의 과반수는 창조론을 믿으며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지구의 역사가 1만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순히 진화론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오늘날 진화론은 다른 학문들, 고생물학, 물리학, 화학, 지질학 등 다양한 과학의 분과와 연계되어있기에 진화론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은 과학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 할 만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지적설계론을 과학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과학의 정의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과학의 범위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포함시켜 학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배우도록 하고자 한다. 이는 책에 실려 있는 마크 D. 하우저의 글 ‘학교에서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에서 보듯이 학생들은 교육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적설계론이 과학이 아님은 자명하다. 이는 제리 A. 코인의 ‘지적 설계는 왜 과학이 아닌가?’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학의 위기는 오직 과학자가 아닌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게서만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반 시민들과 과학계간의 괴리를 줄이고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16명의 과학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지적설계론의 문제에 관하여 각각 다른 주제로 글을 썼다. 제리 A. 코인의 ‘지적 설계는 왜 과학이 아닌가?’는 지적 설계가 과학이 아님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제너드 서스킨드의 ‘반과학에 대처하는 과학자들의 자세’는 창조론자들을 흥분시키지 않고 과학을 이해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편 데니얼 C. 데닛은 ‘지적 설계론자들은 어떻게 대중을 속이는가?’에서 창조론자들의 기만을 시원하게 고발하는 등 16명의 과학자들은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과학계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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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켄자스 교육위원회는 초자연적인 것도 관련 증거에 들어가도록 '과학'의 정의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이라는 가면을 쓴 창조론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과학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Intelligent Thought)]는 그런 '지적 설계'가 과학이 되려하는 데에 있어 반박을 가하는, 조금은 날선 어투의 과학자를 비롯한 현 시대에 저명한 과학자들의 고농도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중에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글을 몇가지 남겨본다.
* '의식은 다윈주의의 아킬레스건인가? (Consciosness : The Achilles Heel of Darwinism? Thank god, not quite) 중에서 이것은 아이러니다. 특별한 창조에 대한 믿음은 신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적응도가 더 높은 삶을 살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식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 이러한 '자연 창조론은 어떤가?
* '종교적 믿음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Unintelligent Design)' 중에서 종교가 번성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깊은 정서적 갈증과 사회의 근본적인 도덕적 필요를 다루기 때문이다. ...... 때때로 한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일은 한 인간의 뇌에 이기적이지 않은 동기 - 진심에서 우러나온 무조건적이고 깊이 뿌리박힌 이타심 - 를 심는 것이다. ...... 사랑, 동정, 공감은 서로 다른 몸속에 있는 유전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위의 두 글은 모두 인간의 의식, 그리고 도덕적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진화론을 통해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영역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몇몇 과학자들은 의식이나 도덕적 마음 역시 인간 진화의 산물 중 일부가 아닐까 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 보다 인간의 생명 유지에 더 유리하여 그런 믿음이 진화되었다는 추측은 종교 역시 진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이라는 흥미있지만 솔깃하는 이야기 이다. 한편으로 사랑, 봉사 등의 이타심이 가장 이기적인 일을 하는 유전자로 인해 드러나는 종 번식을 위한 진화론적인 관점은 받아들이기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 적합하는 글이 역시나 마지막에 실려 있다.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진화론(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의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서로 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적설계'가 과학으로 들어오려 하기에 과학자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Parental guidance required)' 중에서 진화생물학은 믿음 체계가 아니고, 과학과 종교는 정확히 이 지점에서 갈린다. 종교는 믿음 체계라서,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도 전혀 문제가 없고, 논의에 붙이거나 뒷받침하는 증거를 불러오지 않고도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 "당신은 정말로 진화를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당신은 정말로 진화생물학의 증거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이다.
정확한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종교는 믿음에 비롯되며, 과학은 믿음 체계가 아닌 증거와 검증으로 드러난 실제 현상들을 체계화 한 이론이다. 진화를 믿느냐는 질문이 잘 못된 질문임을 지적한 과학자의 예리한 시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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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는 성서에 쓰인 창조론을 신봉하는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들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엮은이 존 브록만은 각 분야의 진화론관련 최고 과학자 16인이 쓴 지적 설계 운동의 주장을 반박하는 열여섯 편의 에세이를 모았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지구가 1000억 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생명이 살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은 무모하고 자만심에 찬 것이라는 경각심이 들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종교(믿음)와 과학(이성) 사이의 논쟁 핵심은 창조론-진화론을 둘러싼 것이다. 믿음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또한 왜 그러한 지 그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온-오프의 문제지 않을까?
스티븐 J. 굴드 역시 창조론이 창조과학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에서 창조론에 맞선 60년 동안의 논쟁이 1987년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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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를 오가고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에서 더 먼 우주를 향해 우주선을 보내고(물론 이러한 일련의 혁명도 이제 다소 진부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분명하게 획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원격교육, 원격진료가 가능해지면서 사실 휴대폰 하나로 삶의 컨트롤이 가능한 유비커터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단시간에 가장 혁명적인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씩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들이 왕왕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과학적 진보에 대한 종교의 간섭(내지는 월권행위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은 여러가지로 충돌과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진화론에 대한 종교계의 물타기 수법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것입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고등교육을 받아 왔던 사람들 역시 진화론과 창조론 혹은 창조론의 아류인 지적설계론에 대한 명확한 구분 내지는 정확한 실상에 대해선 구체적 못한 모호한 경계선상에 자리잡고 있고 이 빈틈을 과학이라는 묘한 장치로 둔갑한 지적설계론이 비집고 들어오는데 그 다지 거부반응이 없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수차례 확인 되어 왔고 종교는 서서히 중세의 화려한 영예를 되찾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적설계론(창조론)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지금 세상에서 왜 이런 사이비 이론들이 종교적 가면을 쓰고 등장하게 되고 왜 알면서도 이런한 이론에 마음이 혹하게 된는 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그 해결방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너드 서스킨드나 스콧 D 샘슨의 에세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과학과 과학자들이 반과학에 대처하는 자세부터 새로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 진화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부족은 전적으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분획화(세분화)에 의한 이해부족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를 다루지 못하여 이해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들 담고 있고 이에 대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계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가 해야할 일이 따로 있고 과학은 과학이 해야할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굳이 과학이 원래 하기로 되어 있는 질문들을 할 권리 인정하지 않는가하는 것이 작금의 분쟁의 발단의 단초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활을 제대로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학 역시 그동안 자신들만의 성역을 쌓고 유지 하는 것보다 일반대중의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방안을 심각하게 모색하고 보다 쉽고 이해하기 편한 형태로 다가가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경계를 이번 처럼 법원의 판결 결과라는 수치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인간의 의식에서 부터 우주의 탄생과 확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일 수 밖에는 없는 진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자체가 비록 에세이 형태로 작은 책자에 불과하지만 의미있는 저서로 남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여기에 미래지향적인 과학의 나아갈 바를 과학자 스스로의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부분 역시 향후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영역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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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미국에서 어떤 논쟁이 불거졌다. 이 논쟁은 크게 보면 과학과 종교와의 싸움이었고, 작게 보면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싸움이었다. '진화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이다. 우리 현생 인류는 아주 먼 과거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는 거다. 우리의 진화의 가지에는 침팬치 같은 유인원도 존재하며, 현생 인류는 자연선택을 받으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적 설계론'은 '창조론'에서 나왔다. 이들의 주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류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하게 생겼다. 이런 인류가 과연 진화의 산물일까? 어떤 지적 존재가 설계한 것은 아닐까? 이 문제는 '지적 설계론자'들이 '지적 설계론'을 학생들의 교과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과학자들은 똘똘 뭉쳐 이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결국, 법원까지 간 이 문제는 펜실베니아 존스 판사가 '지적 설계 논증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지적 설계가 세 가지 수준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적 설계 논증은 1. 초자연적인 인과관계를 끌어들여 과학의 수백 년 된 기본 법칙들을 위반한다. 2. 지적 설계 핵심인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논증은 억지 이원론을 이용한다. 3. 진화론에 대한 지적 설계의 부정적인 공격은 과학계에 의해 반박되었다.' 고 결론 내리며 막을 내렸다. 이 책은 '종교'에 대한 비난의 책은 아니다. 다만, 종교가 '과학'이 되려하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진화론'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된 16명의 과학자들은 각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특히 무신론자로 신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많이 쓴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얼 데닛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지적 설계'에 맞서 '진화론'의 논지를 펼치는 과학자들의 열띤 공격을 한 번 보고 싶다면 읽기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리 A. 코인과 스피븐 핑커, 팀 화이트 글이 재밋었다.
지적 설계는 왜 과학 이론이 아닌가? -제리 A. 코인- 신다윈주의라 불리는 현대 진화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진화는 일어난다. 즉 현생 종은 과거에 살았던 다른 종의 후손이다. 둘째,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셋째, 새로운 형태는 하나의 계통이 두 개로 갈라짐으로써 생긴다(분화). 넷째, 진화는 대부분 자연선택을 통해 일어난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 가장 확실한 화석기록부터 살펴보자. 화석은 지층에서 순차적으로 발견된다. 맨 밑 가장 오래된 지층에서는 해양 무척추동물 화석이 나온다. 가장 윗층엔 양성류, 포유류가 등장한다. 신이 생물을 창조했다면 왜 하필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가는 길을 따르겠는가? 그것은 진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현생 종들에서도 진화의 풍부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새나 개미핥기의 배아 단계에서 발달하는 치아조직은 이빨이 있던 조상들의 잔재다. 날지 못하는 키위에겐 날개의 흔적이 존재한다. 어떤 창조자가 동물들에게 그러한 쓸모없는 치아조직, 날개를 줄 것인가? 우리의 DNA도 한편 살펴보자. 왜 대다수 포유류와 달리 인간은 식사할 때 비타민 C를 섭취해야 할까? 우리는 스스로 비타민 C를 합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타민 C를 합성하는 모든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이 유전자는 4000만년 전에 돌연변이에 의해 불활성화되었다. 아마 과일을 먹는 영장류에게 그것이 불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정말 '지적' 설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우리의 도덕 감각 역시 진화한다 -스티븐 핑커- 진화를 가르키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미와 도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진화론이 윤리의 토대를 좀먹는다고 믿는데, 이들에게 윤리란 신의 목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믿음들이 쾌락만을 쫓는 허무주의적 인생을 살지 않게 막아준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과학은 사실의 문제를 다루고 종교는 의미와 도덕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에세이의 요지는 이런 식의 사고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도덕 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도 마찬가지다. 도덕과 종교가 별개의 문제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다르게 얘기해보자. 명백히 악행인 행위를 수행하라고 신이 계명을 내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서에 인가된 가나안에서의 대학살부터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의 자살폭탄 테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신이 인간에게 분명한 악행을 하라고 명한 예를 숱하게 볼 수 있다. 또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선이 보상받고 악이 처벌받게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세상에 신의 정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종교 권위자들의 말에 의존해야 한다. 한편, 인간 조건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는 우리가 왜 도덕 감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자연 선택은 친척같은 핏줄에게는 도덕적 배려를 하게 만들었고, 수천 년에 걸친 도덕적 진보는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자신을 투영하여 공감의 범위를 넓히도록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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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하는가 저 자 : 러처드 도킨스외
과학교과서의 시조새 관련 내용 삭제 청원으로 불거진 진화론 논란은 지난해 말 한 기독교 단체의 청원에서 비롯됐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는 지난해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교과서 개정 청원서를 제출했고, 고등학교 융합 과학교과서 7종 중 5종에서 시조새 관련 부분을 수정 또는 삭제한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교진추는 또 지난 3월 ‘말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2차 청원서를 제출해 3개 출판사의 교과서에서 말 관련 부분 삭제를 이끌어냈다.
2009년 기독교계 단체인 창조과학회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를 통합해 출범한 교진추는 현재 사단법인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진화론의 실체를 학술적 견지에서 밝혀 궁극적으로 진화론 교과서를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진추 측은 “‘인류의 진화’, ‘핀치새가 섭식 습성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지는 것’ 등 현재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진화론 관련 설명을 모두 삭제하도록 청원할 계획”이라면서 “다윈의 진화론이 정설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교진추는 전·현직 대학교수와 초·중등 과학교사들로 이뤄졌다. (기사출처 : 서울신물 2012년 6월 21일)
와우!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지적 설계는 세상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지적인 존재이 신께서 천지만물을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창조론을 웃기는 이야기로 말하는 과학자들이 ‘지적설계의 허구성’을 말하는 책이다. 그들에 의하면 “지적설계는 사회와 과학에서 유물론을 몰아내고 그것을 신학으로 대체하기 위한 교활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한다. 과학계와 종교계는 창조론에 대한 논쟁을 즐기는 것같다. 물리학에서는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빅뱅이론’일 것이다. 그런데 생물학에서 그 논쟁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현대진화론에 대한 요약 1) 진화는 일어난다. 즉 현생 종은 과거에 살았던 다른 종의 후손이다. 2) 진화적 변화는 수천년 혹은 수백만년에 걸친 개체군의 점진적인 유전적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 3) 생명의 새로운 형태는 하나의 계통이 두 개로 갈라짐으로써 생긴다. 4) 진화는 대부분 자연선택을 통해 일어난다.
이에 대응하는 지적 설계의 약한 형태는 1) 생물의 어떤 특징들은 설계된 것처럼 보일 뿐만아니라 실제로 지적인 행위자에 의해 설계되었다 2) 이런 특징들은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다’. 즉 각 단계에 적응적 이점을 부여하면서 단계적으로 진화할 수없었고, 따라서 자연선택의 결과일 수없다. 3) 다른 특성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그래서 생물은 지적 설계에 의해 생산된 형질들의 혼합물이다. 4) 설계의 본성 또는 설계자의 목표나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고 알수도 없다.
재미있어! 사실 둘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 그들의 논쟁과정은 재미가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바가 너무나 적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점점 객관적인 구경군이 아니라, 한편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