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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 7대 죄악, 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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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기독교의 7죄종 중 하나로 선정된 탐식에 관한 이야기. 그보다는 식욕의 문화사, 혹은 식욕에 대한 태도의 문화사라고나 해야할까.   좀 산만하고, 전공자라도 재미있다고는 못할 듯. 미시사책 치고는 참 눈에 띄는 얘기가 없다.   현대에 이르러 탐식은 비만과 짝이 되어서 새로운 죄악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뭐든지 탐(貪)자가 붙을 정도면 다 죄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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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기독교의 7죄종 중 하나로 선정된 탐식에 관한 이야기. 그보다는 식욕의 문화사, 혹은 식욕에 대한 태도의 문화사라고나 해야할까.

 

좀 산만하고, 전공자라도 재미있다고는 못할 듯. 미시사책 치고는 참 눈에 띄는 얘기가 없다.

 

현대에 이르러 탐식은 비만과 짝이 되어서 새로운 죄악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뭐든지 탐(貪)자가 붙을 정도면 다 죄악 아닐까?

e****h 2014.05.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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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탐식을 본다
"역사속의 탐식을 본다" 내용보기
탐식에 대한 도서이다. 죄악이라고 말하는 제목만큼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탐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함께 실려있어서 더 이해하는데 도움주는 도서였다. 그림을 그저 바라보기보다는 그림설명글이 함께 실려있다보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탐식이 무언지 어떠한 의미들로 해석되어 왔는지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에 따라 어떠한 음식문화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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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에 대한 도서이다. 죄악이라고 말하는 제목만큼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탐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함께 실려있어서 더 이해하는데 도움주는 도서였다.

그림을 그저 바라보기보다는 그림설명글이 함께 실려있다보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탐식이 무언지 어떠한 의미들로 해석되어 왔는지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에 따라 어떠한 음식문화가 있었는지 새롭게 배우는 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인 관점도 함께 이해할 수 있었다. 막연한 bible 이해는 어려울 수 있는데 이 도서 덕분에 조금이나마 성경구절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 성경구절이 그렇게 표현되어 있었는지 탐식과 관련되어 역사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인 책이였다.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도서이다. 탐식이라는 것을 시대적인 흐름에 맞추어서 예술작품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 책이다.

 

검소하다는 것은 참 좋은 의미인 것 같다.

탐식이라는 단어는 음식에서도 과한 욕심으로 표현되는 것인만큼 삶에서 조금만 더 절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스스로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인간이기에 필요하지 않는가. 인상적인 그림작품들이 다수 실려있는 책이다.

탐식이 주는 죄.그 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림들.

 

좋은 글귀들도 만날 수 있는 책이랍니다.

시대적인 흐름에 맞추어서 탐식을 바라보는 책이라 인상적인 책이였다.

분명 우리 삶에 도움되는 책...

십계명에도 신은 탐식하지 말라는 것은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탐식이 죄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이 책에서는 보여준답니다. 그로 인해 죄를 짓게 되는 것이 많아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답니다. 역사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탐식에 대해 바라보는 책이랍니다.

g*****0 2012.09.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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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이라는 이름의 (멈추지 않는) 전차....
"'탐식'이라는 이름의 (멈추지 않는) 전차...." 내용보기
독자로서 책을 읽다 보면 게으른 습관이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레 각각의 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어느정도의 결론을 저자가 내려주거나혹은 그렇게까지 친절하진 않더라도 저자가 글 말미에 화학작용이 일어날수 있는심지들을 심어두어 이를 발견하는 지적포만감을 느껴보고 싶어진다.그런 (게으른 독자의) 자세에서 보면 이 책은 그닥 친절한 편이 아니다. 무심하다 싶을 정도
"'탐식'이라는 이름의 (멈추지 않는) 전차...." 내용보기

독자로서 책을 읽다 보면 게으른 습관이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레 각각의 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어느정도의 결론을 저자가 내려주거나
혹은 그렇게까지 친절하진 않더라도 저자가 글 말미에 화학작용이 일어날수 있는
심지들을 심어두어 이를 발견하는 지적포만감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런 (게으른 독자의) 자세에서 보면 이 책은 그닥 친절한 편이 아니다.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저자의 주관적인 의견이나 과학적 소견을 배제하고 있고 (철저하게 방관적인 입장에서)
각각의 시대의 흐름을 타고 흘러내려온 유구한 '탐식'문화에 대해 보고서 역할 이상을
텍스트로서 발휘하고 있지 않기에 한편으로는 무게중심 없이 공중에 붕 뜬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미식이라는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된 편인 서구유럽, 그 중에서도 '미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인 '프랑스'에서 건너온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팔짱끼고 깔보고만 싶던
손도 슬그머니 아래로 향하게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식문화'가 발달한
환경 속에서 탄생하는 텍스트들이야 이루말할 수 없이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게 될테니 이 책 한권으로
식문화 전반에 대한 식견을 얻어보겠다는 욕심만 좀 버리면 머리속 상식이 '줄기'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잔가지' 수준으로 조금은 자란 듯한 소소한 기쁨을 느껴볼 수 있다.
이 책을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탐식' 문화의 기원이 '미술'의 발전과
기원의 궤를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다양한 명화 도판들이 책속에 같이 삽입될 수 있었고 동시에
이 책에 대한 구상도 이러한 그림들이 다양하게 존재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미술사 초창기의 걸작들을 살펴보면 대번에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이겠지만 사실 서양화의 기원은
'종교'에서 발현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종교가 없었거나 혹은 화가들이 신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없었다면 이런 천재적인 미적 유산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싶을만큼 종교에서 그 다앙한
기원을 찾는 것이 가능한데 책을 관통하고 있는 '탐식'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의 시각과 문화들 또한
이처럼 '종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영화 '세븐'을 연상케 하는 책 제목도 역시나 종교의 가치관에서 빌려온!)
다만 먹는 다는 행위자체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이기에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특권을 이용해 고위 종교인들이 핍박받는 서민들보다 자신의 굶주린 배를
먼저 채운 후에 서민들에게는 '금식'을 강조했다는 사실자체가 큰 아이러니 처럼 느껴지면서
종교의 이중적인 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비판적인 시각을 다시한번 곱씹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류가 어떤 발전의 양상을 보이던 간에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한가지는 우리는 언제까지 살아있는한
'먹고 싸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건 머리속으로 인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이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필수활동 중에 하나이기에 인간의 문화에서 이것을
떼어내 본다거나 혹은 한순간이라도 부정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가 먹는 다는 행위를 절제하지 못하고 과하게 했을 때 생기는 '탐식'문화는
언제나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될 것이고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듯 어느정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패션의 유행이 돌고 돌듯
순환의 패턴을 반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대놓고 그려내는
영화 '데몰리션맨'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법적으로 금지된
스킨쉽(?!)의 황홀함에 (사회적인 감시가 심한 상황에서도)
눈을 뜨게 되듯 비만이 대부분 사라지는 미래 유토피아의
한 구석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당'과 '나트륨'이 잔뜩 든 스낵과 쪼꼬렛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은 왠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절제는 어렵지만 욕구의 황홀함에 눈뜨는 것은 찰나의 힘만으로도 가능할테니까)

h*****9 2012.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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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죄악, 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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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뉴스를 읽다가 경악했다. 뉴스의 주된 내용인즉, 살이 일단 찐 후에는 어떻게든 살을 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찌기 전에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세상에나... 전세계 다이어터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많은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삼순이 말처럼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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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뉴스를 읽다가 경악했다. 뉴스의 주된 내용인즉, 살이 일단 찐 후에는 어떻게든 살을 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찌기 전에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세상에나... 전세계 다이어터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많은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삼순이 말처럼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너무 많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것이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쉽다. 많이 먹지 말고 맛있는 것을 조금만 먹으라고. 어떤 여자 연예인은 '딱 세 입만 맛있다'고 말하며 그 뒤로는 맛이 없으므로 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해 그 프로를 함께 시청하던 나와 친구 모양을 코웃음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맛있는 음식일수록 더 많이 먹게 되지 않던가. 입에 쓴게 몸에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입에 달면 손이 더가는 것 역시 상식이다. 미식은 대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



 

이 미식과 대식, 나아가 먹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욕망인 탐식은 그래서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 속에서 아주 긴밀한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나보다. '식'이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탐식'의 역사 또한 전혀 이상하거나 생소할 게 없다. 프랑스 역사학자 플로랑 켈리에는 이 탐식의 역사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냥 많이 열렬히 먹어치운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다. 탐식을 죄라고 규정한 유럽의 종교 사회에서 유럽인들은 외면할래야 할 수 없는 '배부름과 맛'의 세계에 어떻게 탐닉해 왔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 역시 종교적인 엄격함과 그 속에 은밀히 자리해온 욕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7대 죄악, 탐식] 이다.




 

책은 중세의 신학자들이 규정한 '탐식은 죄'라는 명제에 대한 해설로부터 출발한다. 성경 어디에도 탐식이 죄라는 부분은 없었다. 먹어선 안될 음식을 구분한 하나님의 법은 신학자들의 필요에 의해 어느새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이 곧 죄라는 해석으로 귀결되고 이러한 신학자들의 규율은 이후 유럽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에도 프로테스탄트 문화인 북유럽과 가톨릭 문화인 남유럽에서 식사와 미각적 쾌락의 관계는 여전히 다르다. 덴마크에서 돼지고기는 맛보다 유연성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사회학자 클로드피슐러가 진행한 최근의 조사(2008)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잘 먹는다는 개념을 쾌락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식품의 산지와 연결시키는 반면 영국에서는 영양분과 비타민, 약으로서의 식품에 연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본문 p85~86

 

 

가톨릭이 지배하는 유럽에서는 먹는 것을 신분에 따라 나뉘었다. 평민들은 언제나 배를 곯았던 탓에 '코케뉴'라는 환상의 나라에 대한 민담이 널리 퍼졌다. 반면 귀족들은 무한정 먹고 살을 찌우는 것으로 미덕을 삼았다. 특이한 것은 신부와 같은 성직자들 역시 귀족처럼 엄청난 식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탐식을 죄로 정의하는 규율에 많은 해석의 차이를 용납해, 식문화가 비교적 자유로왔던 가톨릭 시대는 15세기를 지나면서 금욕적이고 원칙적인 개신교와 부딪힌다. 탐식에 관대했던 가톨릭을 비난하는 개신교의 등장으로 유럽의 탐식 문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이후 점차로 '대식'은 경멸 당하고 '미식'이 사회 주류들에게 각광을 받으며 오늘날에 이른다.

 

 

저자는 2000년에 걸친 유럽 탐식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 문학, 미술 등의 자료들을 꼼꼼히 열거하고 인용한다. 특히 책에 실린 선명한 미술작품들은 음식에 탐닉해온 유럽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재미있는 점은 그간 중세 미술작품들 대부분이 아름다움이나 위용, 감동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에 실린 탐식의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감동보다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게 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음식에 심취해 정신없이 먹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울 턱이 있나. 그들 스스로 죄라고 못박은 탐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고발당하고 있다.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방탕한 대식과 16세기 이후 발달한 미식 문화가 이미 지나간 역사라고만 할수는 없다. 탐식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거리에 가득찬 온갖 음식점과 티비 광고에서 연이어 흘러나오는 식품 광고들. 신문과 잡지 심지어 블로그마다 맛있는 음식점과 먹음직스런 식품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마시고 씹고 먹고 즐기길 열렬하게 권하는 한편에선 건강을 위해 살을 뺄 것을 걱정하는 이 사회가 두툼한 살집을 자랑해야 아름답다고 여겼던 유럽 중세와 크게 다를 것이 무언가.

 

식욕과 미각적 쾌락이라는 섭리는 본능적인 신체적 욕구와 번식하고 번성하여라는 신성한 명령에 부응하는 셈이라고 했다. 예수회 신부 뱅상 우드리가 서술한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자연은 우리가 필수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게끔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이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식물의 섭취는 미각의 쾌락과 연관되어 있는데, 미각의 쾌락이 없었다면 약을 먹을 때 느끼는 혐오감을 음식을 먹을 때에도 느꼈을 것이다."

본문 p99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먹는 즐거움이 인간으로서의 다른 존엄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죄가 아닐까. 먹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든 삶이 먹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칠면조 두 마리를 먹어치우고 저녁 식사를 하러가는 왕이나 좋은 식재료와 요리법, 훌륭한 쉐프들을 줄줄이 꿰면서 그와 같은 해박한 식견 없이 음식을 먹는 것은 저급하다고 폄훼하는 미식가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제7대 죄악, 탐식]은 '먹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본능적이고 절대적인가를 알려주는 동시에 어디까지 사람을 추하고 방탕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 맛(식)을 사랑은 해도 맛에 미치지는 말자.

o********e 2012.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