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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처벌의 잔인함에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네 죄를 고하여라'
"법과 처벌의 잔인함에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네 죄를 고하여라'"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도덕 시간에 법과 도덕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를 꽤 강조해서 배웠다.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강제력 유무인데, 도덕이야 어기면 비난받고 끝이지만 법을 어기면 공권력의 힘으로 제재를 가하게 된다는 것. 그 밖에도 '법은 도덕의 최소한' 이라고 옐리네크가 한 말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법이 갖추어 진다는 것은 한 나라의 통치체계가 완성됐다는 것을 의
"법과 처벌의 잔인함에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네 죄를 고하여라'"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도덕 시간에 법과 도덕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를 꽤 강조해서 배웠다.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강제력 유무인데, 도덕이야 어기면 비난받고 끝이지만 법을 어기면 공권력의 힘으로 제재를 가하게 된다는 것. 그 밖에도 '법은 도덕의 최소한' 이라고 옐리네크가 한 말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법이 갖추어 진다는 것은 한 나라의 통치체계가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법의 등장으로 사적처벌이 금지되고, 공동체의 성원으로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닌 안정과 치안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지배자는 법을 바탕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백성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 죄를 고하여라'는 법률과 형벌을 통해 조선시대, 조선사회를 살펴보고 있는데, 첫 장부터 속이 불편해졌다. 당시 죄인들에게 가해진 형벌을 그린 그림이나 그 처벌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잔인했던지, 한번에 다 읽지를 못하고 몇 번은 숨을 고르면서 눈을 돌려야 했다. 심지어 능지처사 같은 부분은 읽지도 않고 건너 뛰어 버렸다. 자꾸 죄인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처벌당하는 장면이 상상이 돼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당나라를 이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기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형법체계 또한  특히 심문 과정에서나 처형은 극히 비인간적이었고,야만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욱이 법에 규정된 범위를 넘어서 과도하게 집행하고 처벌하는 경우까지 있어서, 법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마저 있었다.

 

아무리 죄수라고 해도 이렇게 신체적으로 극한 고통을 가하고, 연좌를 한 것은 법을 빙자해서 국가가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야만적으로 법을 집행했던 것은 조선만이 아니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법을 통해 피해와 동일한 복수를 가하게 고대 함무라비 법전을 보더라도 고대, 중세 등 문명화가 덜된 사회, 동서양을 막론한 특징이었던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을 읽은 것 자체가 괴롭기 그지 없었다. 처벌에 관련해서 여과없이 표현된 그림이나 사진도 많고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심문과정이나 형벌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설명이 돼 있었다. 그 내용을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잔상이 남아서 속이 거북하고 고통스러워서 그런지 조선시대 형법 내용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읽는것만 해도 이렇게 힘겨운데 대체 이런 형벌을 고안해낸 인간이나 그걸 법으로 만들어낸 인간은 얼마나 잔인무도한 사람인건지, 그리고 실제로 저런 형벌을 직접 행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역시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닐테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그들 역시 결코 마음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말로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망나니의 일부는 사형수 중 지원자를 뽑아서 감형해주고  죄인을 처형하게 했던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별로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으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망나니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됐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눈에 들어왔던 법이 있었다. 조정이 아닌 향약에 근거한 사족 양반들이 행사한 처벌이라거나  삼족을 멸한다는 연좌. 사족 양반들의 이른바 마을법은 '향약'에 대해서는 알 수없는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다. 향약은 향촌 공동체 성원들이 상부상조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덕목을 지켜왔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실상은 오히려 백성들에게는 사족들에게 조아리게 만들고, 복종하게 만드는 '주먹'에 더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연좌는 '경국대전'이나 '속대전'에 별도의 규정까지 두고 엄격하게 적용해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규정보다 과도하게 집행됐다. 또한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폐지되지 않고 최근까지 비공식적으로 적용돼 왔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나 전근대성을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좌절하고 제약받는다는 것은 20세기 문명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5공화국 헌법에 연좌를 금지하는 조항을 분명하게 명시함으로써, 그제서야 연좌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사회의 법과 그 집행과정을 보면,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제대로 절차를 거쳐 집행되지 않으면

지배층들이 사적인 치부나 권력을 남용하는 전횡의 근거가 된다. 법이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그 구성원의 안전을 보호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공포정치나 독재 정치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이는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주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몇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고숙종'이라는 여인의 이름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경찰의 고문을 고발하고 재판을 통해 배상을 받았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당시까지만 해도 쉬쉬하면서 감수하고 있던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발함으로써, 폭력을 통한 법집행이라는 우리사회의 비민주성과 야만성을 통렬하게 폭로했던 용감한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사회의 법과 지금의 법, 그리고 집행과정을 보면, 법은 인간의 지성과 문명의 성숙도를 반영하면서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법의 민주성과 집행과정에서의 투명함과 공정성, 죄인에 대한 인권보호야 말로 그 사회의 문명성과 인권의식, 민주적인 성숙도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e****0 2013.05.17. 신고 공감 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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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과 형벌, 조선사회를 암시하는 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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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펼친 페이지가 자극적이었다. 능지처참에 관한 대목이었다. 양팔과 양다리를 각각 하나씩 소나 말에게 묶은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하여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능치처참이었으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실상은 훨씬 더 잔혹했다.   능지처참은 법전에는 '능지처사'로 규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칼로 천천히 한 점 한 점 몸을 베어내는 형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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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펼친 페이지가 자극적이었다. 능지처참에 관한 대목이었다. 양팔과 양다리를 각각 하나씩 소나 말에게 묶은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하여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능치처참이었으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실상은 훨씬 더 잔혹했다.

 

능지처참은 법전에는 '능지처사'로 규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칼로 천천히 한 점 한 점 몸을 베어내는 형벌이라고 한다. 산이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를 뜻하는 '능지'라는 말처럼 아주 천천히 완만하게 고통을 준 것이다. 명나라에선 무려 3,600회의 절개를 명하기도 했고, 청나라에선 8회~120회로 칼질 횟수를 규정하였는데 대략 눈꺼풀을 얇게 저미는 것부터 시작해 양다리로 끝났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는 능지처사에 대한 규정은 두었으나, 실제 집행은 '거열'로 대체하였다. '거열'이 바로 소와 말에 묶어 사지를 찢는 것이다.

 

이런 자극적인 내용에 흥미가 동해서 완독을 하게 되었는데, 몇 가지 사소하다면 사소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선의 원님은 죄인을 불러 곤장을 칠 권한이 없었다. 조선의 일반 형벌체계엔 곤장이 없었고, 군사재판에만 쓰였다고 한다. 사극에서 원님이 곤장을 치라 명하는 건 불법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죄수라 하더라도 여자에겐 목에 칼을 씌우지 않았다고 한다.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칼을 씌워 옥에 가뒀다면 그것도 변학도 개인의 과잉처벌이었던 셈이다. 또한 유배가는 선비들 중엔 유배지까지 가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새로웠다. 하지만 이같은 사례들은 이 책의 곁가지다. 이 책은 무엇보다 형벌과 그것을 규정한 법률을 통해 조선 사회의 시스템을 가늠케 한다.

 

고대에 있어서든, 현대에서든 형벌은 체제 유지를 위한 공권력 행사이다. 정해진 선을 넘는 자들에게 가해질 시련을 미리 규정하고, 실제 형벌을 집행 및 전시함으로써 물리적 공포를 각인시킨다. 때문에 형벌은 더욱 잔혹해지려는 경향을 갖기 쉽다. 도심에서 행해지는 능지처사나, 역모자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걸어두는 '효시'가 좋은 예다.

 

한편 형벌이 사회시스템의 유지를 위한 것이다 보니 체계화하려는 경향도 있다. 동일한 행위에 그때 그때 임의적으로 형벌을 내릴수록 불복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즉, 형벌은 그 사회의 민심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공포스러우면서, 공평하게 보이길 원한다. 

 

때문에 조선은 잔혹한 범죄를 보유한 한편 <경국대전>, <흠휼전칙>, <무원록> 등을 통해 형벌의 종류, 고문의 방법, 형구의 적용 기준, 검시의 방법 등을 법과 규칙으로 정해두었다. 1차검시와 2차검시는 각각 다른 수령이 진행하여 객관성을 확보하려 하였고, 죄의 정도에 따라 얼마나 먼 유배지로 가야하는지도 모두 정해 놓았다. 또한 수령->관찰사->형조로 이어지는 체계로 법집행의 권한을 체계화하였다. 사사로운 형벌의 존재 여부, 즉 국가기구만이 법을 집행하느냐 여부가 사회체제의 안정성을 뜻한다는 측면에서, 조선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선언에 불과하기도 했다. 실제의 조선은 당연하게도 오늘날에 비해 사사로운 법집행이 더 많았고, 시스템도 엉성했을 것이다. 지역의 유지인 양반들은 동네의 양민들을 사사로이 처벌하곤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향약은 일종의 마을법으로서, 죄인을 고을 수령에게 데려가지 않고 향약에 따라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멍석말이도 그 일환이며, 나라법보다 마을법이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마을 자체의 판결이 많았던 듯 하다. 범죄가 많이 신고되면, 그 고을 자체가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다.

 

조선의 법률은 복수도 인정하였다. 부모나 자식을 죽인 경우, 여성의 경우 부당하게 정조를 의심당한 경우 복수를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열녀비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문란한 아녀자로 음해한 이를 살해한 여인들이다.

 

신분에 따라 차등적용하는 경우는 당연히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약은 조선의 법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의 형벌에 규정된 사형은 목을 매는 교형, 목을 자르는 참형 그리고 능지처사형의 세 종류였다. 하지만 양반의 체통과 부모에게 받은 신체를 소중히 하는 유교 관념으로 인해 거주지에서 사약을 받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사약을 받았으나 16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아 결국 목을 졸라 죽인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조선의 법 집행은 '공권력'의 외부에서도 꽤 넓게 이뤄졌고, 공평하지 못한 부분도 넓었다. 또한 역모의 겨우 삼족을 멸하거나, 연좌를 통해 가족 모두를 처벌하는 하여 반체제세력을 완전히 뿌리뽑는 등 지배권력의 도구로 강력하게 활용되었다.

 

오늘날 가장 보수적인 곳은 사법부라는 말이 있다. 변화의 초기에 반응하지 않고, 변화가 사회 전반에 일반화되어서야 법에 반영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법은 느리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실제 사회와 어긋나는 법은 효과를 잃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에서의 선거운동을 금지했던 선거법이 대표적이다. 현실과 법이 부딪히면 언제나 법을 고치게 된다.

 

법이라는 것이 강력한 힘을 지니는 만큼 그 법을 자신의 영향 아래에 두려는 사람은 고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았다. 신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역시 오늘날까지 한결같다. 하지만 민권이 신장되면서 보다 사사로운 법 집행을 엄단하고, 규정에 따라 더 일관되고 공평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조선이 어느 정도까지 국가의 통제가 가능했고, 차별이 존재했던 사회였는지는 조선의 법률과 형벌규정, 판례 등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법은 느리더라도 사회를 반영하여 판결을 내리므로. 그러므로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의 장도속에서 조선이 어느 정도 위치에 놓여있는 사회인지 암시하는 하나의  증좌가 될 것이다.

 

c*****9 2012.01.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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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게 법을 집행한 조선 시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엄격하게 차단했다!
"공평하게 법을 집행한 조선 시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엄격하게 차단했다!" 내용보기
부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조선시대 죄인을 다루는 법률과 형벌을 삽화와 함께 자세히 다룬 책이다. 일반적으로 동양보다 서양이 법 체계가 합리적으로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프랑스대혁명과 같이 민주주의 운동이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는 인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양보다 동양이 죄인을 다루는 법 체계라든지 형벌
"공평하게 법을 집행한 조선 시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엄격하게 차단했다!" 내용보기

 

 

부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조선시대 죄인을 다루는 법률과 형벌을 삽화와 함께 자세히 다룬 책이다.


일반적으로 동양보다 서양이 법 체계가 합리적으로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프랑스대혁명과 같이 민주주의 운동이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는 인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양보다 동양이 죄인을 다루는 법 체계라든지 형벌 기준이 더 구체적이고 인권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 시기에 개신교로 전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카톨릭에서 마녕사냥으로 사람들을 몰아 화형시켰던 것을 보면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형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법률 체계나 형벌의 기준들을 정했다. 기준에 근거하여 죄인을 다뤘다. 당률, 대명률과 같이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형법 기준을 들여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고 사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 들여온 형벌 기준을 고스란히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여 사용했다는 점이다. 죄인에 대한 인권을 중요하게 여긴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죄인의 목숨을 쉽게 다루지 않기 위해서 지방 고을에서는 일정한 양의 형벌을 금지시킨 점이다.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지휘관에게 주어지는 형벌이나 대역죄, 역모, 부모와 관련된 죄 외에는 반드시 상급 기관에 보고하여 처분대로 행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일반적으로 사용한 형벌의 도구였던 '곤장' 같은 경우도 피고인이 느끼는 고통이 엄청났기때문에 횟수를 제한하거나 가하는 부위를 엄격하게 조절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성군이라 불리는 정조 임금과 같은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형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문신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조선 시대에도 연인들 사이에 문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기생 어우동같은 경우에는 팔뚝에다가 사모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문신은 '자자형'이라고 하는 형벌이었다고 한다. 절도, 도둑질, 살인등과 같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얼굴이나 가슴, 등, 팔뚝에다가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자자형을 받은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회피 대상이었고 그 자식들은 사회 부적응아로 낙인찍혔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경칠 놈의 자식'이 조선 시대 형벌 중 '자자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내내 형벌의 기준이 공정하게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다. 성군이라고 불리우는 조선 초 세종 때 황희 정승의 아들 황보신이 뇌물수수로 '자자형'을 받았어야 했는데 아버지 황희가 자신의 권력의 힘으로 아들을 구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후기 세도정치 가운데 지방 수령들이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형벌을 과하게 집행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목민관이 갖춰야 할 자질 중에 하나가 공정한 법 집행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이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법은 엄격하게 공정하게 누구라도 납득될 정도로 집행되어야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고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사형을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극단적인 사형 집행보다는 죄가 이 사회에 만연하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국가에서 경제적 고통을 함께 나누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더 급선무일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다시한번 허술한 법 제도의 구멍이 없는지 살펴보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상대방에게는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 가짐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c*******9 2016.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