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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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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시간, 공간들은 작품과 무관할 수 없을것이다.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빈이라는 도시, 여름 휴가때마다 들렀다는 아터 호수의 분위기는 클림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간 속에서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면서 한 예술가의 생애를 짚어보고, 작품 세계를 알아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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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시간, 공간들은 작품과 무관할 수 없을것이다.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빈이라는 도시, 여름 휴가때마다 들렀다는 아터 호수의 분위기는 클림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간 속에서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면서 한 예술가의 생애를 짚어보고, 작품 세계를 알아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자는 "어떤 화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클림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수긍하지 않을까? 그녀를 믿고 클림트를 찾아가는 여행을 따라 나서보았다. 클림트에 관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들어왔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빈의 클림트 빌라에서 시작해 부르크 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분리파 회관인 제체시온을 거쳐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빈 벨베데레 미술관과 빈 시립박물관, 아터 호수의 클림트 센터와 클림트 트레일을 거쳐 빈 응용미술관과 레오폴트 미술관으로 마무리된다. -p 16~17

 

 특이하게도 클림트가 마지막을 보냈던 장소로부터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죽음에 대해서 항상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클림트는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던 56세에 뇌출혈로 쓰러졌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때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여겼던 그림 <죽음과 삶>을 만날 수 있었다. 행복한 여인의 모습과 더불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은 곁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그러기에 또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기에 항상 두려움도 같이 하는 것이고.

 

 

 

 클림트 하면 난 <키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클림트하면 황금빛의 그림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그런 장식적인 그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857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을 대비해 쌓았던 성벽을 허물고 원형 도로( 링슈트라세)를 건 설하는 대대적인 도시 정비 사업을 시작했다. 국회의사당과 교회,빈 대학, 미술사와 자연사 박물관,부르크 극장등이 들어섰다.1879년 에른스트, 프란츠 마치와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했는데,도시 정비사업과 맞물려 많은 일감을 얻게 되었다. 예술가 컴퍼니가 알려지면서 부르크 극장 계단 천장화를 맞게 되었는데, 부르크 극장 천장에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구 부르크 극장 객석>의 그림을 보면 클림트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클림트가 역사화로 예술계에 뛰어든 이유로 빈 시민들이 정치적 무관심과 예술의 향유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보수적이고 복고적인 성향때문이었다고 하는데, 한 사회의 분위기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의 강력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밖으로의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파리의 인상파와 아르누보, 표현주의, 상징주의 같은 시대적 흐름을 보면서 아카데미풍에서 벗어나고, '과거의 예술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한다'고 선언하며 '빈분리파'를 결성한다. 분리파의 성전으로 제체시온이 건립되었다. 제체시온 건물도 기존의 장식을 배제한 독특한 모습이었다. 분리파 첫 전시회 포스터나 <팔라스 아테나>를 기존의 역사화를 부정하는, 본격적인 클림트 스타일의 시작으로 보고 있었다.

 

 클림트가 '천장화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빈 대학 본부 건물에 법학, 철학,의학을 주제로 천장화를 의뢰받았는데 스케치들이 모호하고 환상적이고,뜻을 알 수 없어서 강력한 비판에 부딪힌다. 그 과정에서 '세금으로 세워지고 운영하는 국립대학교의 건물에서 화가 개인의 예술적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라는 토론이 펼쳐졌다고 하는데 뜬금없이 어떤 내용들이 오갔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의학의 도움으로도 운명을 이길 수 없고, 법과 정의 앞에 부조리함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클림트의 메세지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졌다. 예전에 이 그림들을 봤을 때는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의학과 법학,철학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그가 못마땅했었는데, 이런 형태의 역설적인 방법으로도 학문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더 강력한 전달방법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림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천장화 청탁을 거부하고 이후로 공공건물을 위한 청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막을 내렸다.  

 

 클림트는 이탈리아 라벤나 여행에서 6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모자이크를 만나게 되었고, 평면성과 장식성이 강조된 아름다움을 발견, 그 이후 그림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클림트의 화려한 모자이크 느낌이 나는 그림들을 떠올려본다면, 라벤나라는 도시는 클림트에게 특별한 도시로 남을 수 밖에 없을듯하다. 저 아터 호수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1900~1916년까지 여름휴가를 지냈던 아터 호수에서 그렸던 풍경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금빛 그림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들이니까. 하지만, 저자의 말을 빌자면 초창기의 생동감과 번뜩이는 영감이 실종되면서 정교한 장식으로 변해갔다고 했다. 수록된 그림들을 보면 확실하게 느껴진다. 클림트가 풍경화를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의 풍경화와 풍경화의 변화 과정을 따라 클림트를 이해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여자를 논하지 않고 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인 클림트. 수많은 모델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단 한 사람 에밀리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또 순수한 사랑을 했던 남자이기도 했다. 그의 애정관을 떠나서 초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여자의 관능이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해석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표작 <키스>에 대한 해석들도 여럿 등장을 하는데, 클림트의 코멘트가 남아있지가 않다고하니 전적으로 평론가와 감상자들의 몫이지 않을까싶다. 내 감상을 덧붙인다면 초상화 속 여인들의 표정은 몽환적이거나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여자의 관능이 하나의 강력한 무기'라는 말이 조금은 수긍이 되기도 한다.  

 

 저자가 클림트를 표현하는 말 중에서 두 가지에 아주 공감이 되었다. '모순'과 '독창성'이었다. 현대적으로 보이고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듯하지만  이집트 무덤 벽화, 비잔티움의 모자이크, 일본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 하지만,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모습으로 구축된듯한 작품 세계는 충분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클림트 예술의 키워드로 세기말 빈, 황금, 장식, 관능, 빈 분리파, 초상화, 풍경화, 에밀리, 죽음, 아터 호수. 총 10가지를 제시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면 이 10개의 키워드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만큼 클림트란 인물에 가까이 다가갔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림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여정을 통해서 새로이 알게된 것들이 많았고 생각이 바뀐 부분들이 생겼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나 강해서 보이지 않았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특별했다.  그가 세기말 빈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품의 변화를 가져왔고, 명성을 쌓아갔는지를 지켜보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클림트의 모습을 본다면 그의 그림들이 던지는 메세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명작의 명성보다 ' 한 사람' 에 주목합니다. 위대한 작품 너머 한 인간이 삶을 걸었던 문제를 먼저 생각하고자 합니다. 명작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은 한 창작자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각,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클림트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하나로 모여지는 경험을 했다. 출간의도에서 밝혔던 것처럼 '클림트'라는 한 사람을 통해 좁게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로부터 넓게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인간의 삶까지 폭 넒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j*****3 2018.07.11. 신고 공감 12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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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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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1901년 제목에도 황금빛 '키스의 화가'가 붙을 만큼 <키스>라는 작품이 유명하지만 나는 <유디트>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농염하고 관능미가 넘쳐나는 여인의 손에 들린 목. 그 목 보다 여인의 관능미에 시선이 가는 그런 <유디트>는 어느 <유디트>보다도 사실적이지 않았고 환상적이었다. 예술이 모두 사실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런 농염함으로 유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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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1901년

제목에도 황금빛 '키스의 화가'가 붙을 만큼 <키스>라는 작품이 유명하지만 나는 <유디트>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농염하고 관능미가 넘쳐나는 여인의 손에 들린 목. 그 목 보다 여인의 관능미에 시선이 가는 그런 <유디트>는 어느 <유디트>보다도 사실적이지 않았고 환상적이었다. 예술이 모두 사실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런 농염함으로 유혹해 가차없이 목을 잘라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저런 무서운 여인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여겨지게 만드는 클림트의 <유디트>가 키스보다 강렬했다. 그런데 그림을 다시 보니 일그러진 눈과 벌어진 입이 조금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다.


<물뱀 I> 1904~1907년

표지의 <물뱀 I>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금빛 머리결에 사로잡힌다. 녹생 삼각형의 잎사귀와 동그랗게 표현된 꽃 장식이 앙증맞다. 야하고 노골적인 에로틱한 그림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생각만이 든다.

저자는 왜 클림트이냐는 질문에 '놀라운 독창성'이라고 답한다. "그의 캔버스를 채운 오묘한 황금빛 여자들은 과거 그 누가 그린 여인과도 비슷하지 않다. 후대도 마찬가지다. 클림트 이후로 정교한 황금의 장식을 온몸에 휘감은 여인을 그린 화가는 아무도 없다. 이 때문에 클림트의 그림은 특별하게 두드러지고 때로는 극도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을 갑갑할 정도로 가득 메운 장식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어느 경계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놀라운 독창성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이것이 내가 클림트를 이 책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였다."(13쪽)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타계할 때까지 빈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클림트는 분명 천재였고 두드러지게 혁신적인 예술가였지만, 그 이전에 빈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모두 빈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시대 착오적인 공간이 아니고서는 잉태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16쪽)고 말하며 빈에 대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묘하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 있던 도시' 그런 빈의 모순을 클림트의 그림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구스타프 말러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빈으로 갈 것이다. 빈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빈은 19세기 말에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과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던 시대 착오적인 도시였다. "그 혁신 속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모순과 불균형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빈 사람이었던 클림트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한계가 클림트의 작품을 19세기도,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게 하였다고,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18쪽)고 저자는 프롤로그를 끝맺는다.

저자가 가장 처음 찾은 곳은 클림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 빈 외곽 히칭지역에 위치한 클림트 빌라이다. 1912년부터 타계하던 1918년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빈을 떠날 수 없는 클림트의 한계점이라 말한다. 


<죽음과 삶> 

56세, 28세에 죽음을 맞은 아버지와 동생으로 자신도 60세전에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렸던 클림트는 1910~1915년에 걸쳐 완성한 <죽음과 삶>에 열정을 기울였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겼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세공업자인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다. 장식 공예학교를 입한한 클림트는 17세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었다. 1879년 동생 에른스트,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한 클림트에게 일이 넘쳐났다. 거기에 1884년 회화의 왕자로 불렸던 한스 마카르트의 죽음은 예술가 컴퍼니에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바로크 스타일 건축들은 화려한 천장화를 필요로 했고 예술가 컴퍼니는 찬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다.

1892년 아버지 에른스트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예술적 동지였던 동생 에른스트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했다. 이 때부터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 후 예술가 컴퍼니는 와해되고 몇 년 동안 클림트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1898년 <헬레네 클림트의 초상>은 일곱살 된 조카를 그린 작품으로 죽은 에른스트의 딸로 클림트가 후견인이었다. 동생의 아내의 여동생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의 영원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뮌헨의 젊은 화가들이 아카데미풍만을 추종하는 기존 화가에게서 스스로를 '분리'한다는 뮌헨 분리파를 결성하자 바로 빈에도 영향을 미쳐 1897년 5월 '오스트리아 예술가 분리파 동맹"이 결성됐다. 클림트는 실질적인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회원은 50명이 넘었다. 모라비아 출신 삽화가로 파리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알폰스 무하도 창립 회원이었다. '이들은 모두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의 융통성 없는 태도, 지나친 역사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프리드리히 거리의 제체시온은 빈 분리파의 성전으로 간결하고 네모반듯한 형태에 황금빛 돔을 얹고 있다. 1898년 첫 전시에 534점이 출품돼 218점이 팔렸고 5만 7천여 명이 방문을 했고 보수의 상징이던 프란츠 요제프 황제도 껴 있었다.


<팔라스 아테나>

1898년 두 번째 빈 분리파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빈의 상류층이 선호하던 아름답고 우아한 역사화와 여인들의 초상에서 너무 많이 전진해왔다."(90쪽)


<금붕어> 1902년 - 내 평론가들에게

1894년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는 클림트와 마치에게 빈 대학 본부 건물의 천장화를 의뢰했었다. 클림트의 스케치는 혹평을 받았고 논란을 일으켰다. 1904년 초 3만 크로네의 계약금을 돌려주고 천장화 3부작의 청탁을 정식으로 거절했다.

4자에서 저자는 클림트의 독창적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여행을 다루고 있다. 1899년 5월 3일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을 방문했다. 그리고 <베토벤 프리즈>를 제작한 이듬해인 1903년 라벤나를 방문했다.

"라벤나 여행은 클림트에게 그의 운명을 일깨워주었다. ...... 초기 기독교 시대에 제작된 1500년 전의 라벤나 모자이크를 통해 원형의 순수와 위대함, 크리고 금이라는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눈을 떴던 것이다."(127쪽)

클림트는 양감과 사실성을 포기하고 장식과 선, 평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라벤나의 금빛 모자이크는 '평면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보이는 그대로 묘사한다고 해서 그림이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스> 1908년

저자는 '클림트의 삶과 예술의 결정체'라는 소제목을 붙였고,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이 압축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그림 속 남녀의 합인은 우주의 창조인 동시에 소멸이다. 그것은 더 이상 위험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다만 찰나의 순간인 동시에 영원한 꿈, 완전한 이상과 연결될 뿐이다."(162쪽)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클림트 하면 떠올리는 작품이다. 물론 나도 이 작품을 좋아한다. 무릎을 꿇고 있는 땅이 절벽 끝이라고 하는데 상상해보면 절벽끝까지 도망가는 여인을 쫓아가 끌어앉고 키스를 나누려는 남자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름다운 작품이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1907년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년

저자는 6장의 제목에 '에밀리, 클림트의 영원한 뮤즈'라고 붙였다. '클림트의 여자를 넘어선 유일한 존재'라는 소제목에는 찬성하지만 뮤즈라는 데는 나는 찬성하지 못하겠다. 뮤즈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대상이 아니던가. <키스>의 여인도 에밀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아델레로 보인다. 인생의 동반자가 꼭 뮤즈가 되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클림트의 뮤즈는 아델레로 보인다.


<닭이 있는 마당 풍경> 1916년

7장에서 '풍경화, 클림트 이면의 그림들'이란 제목으로 아터 호수에서 여름을 보내던 클림트의 이야기와 클림트가 아터 호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 관능과 억눌린 정열로 들끓는 여인들의 초상화에 집중하던 시기에 극도로 고요하고 관조적인 풍경화를 동시에 그려냈다."(15쪽)고 말한다. 하지만 후기에는 풍경화에서도 장식성이 강조되고 있다.


<처녀> 1913년

아터 호수의 풍경화 이야기에 이어서 클림트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로서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신예의 등장에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예술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56세에 생을 마감했다.

 

클림트가 죽고 나자 사생아가 10명이 넘게 나타났다고 할만큼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한다. 클림트 아틀리에에는 모델인 반라의 여인들이 돌아다니고 살기도 했다고 한다. 뇌출혈로 쓰러지는 순간 에밀리를 찾을만큼 에밀리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평생의 동반자였고 그만큼 의지했을 것이라 한다. 에밀리는 클림트 죽음 후에 주고 받았던 편지들 일부를 없애버렸다고도 한다. 난 에밀리를 사랑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뮤즈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여인은 아델라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클림트 작품 속의 여인을 아름답게 여기며 기억한다. 그 여인은 에밀리가 아니라 아델라다. 

물리적인 영감은 황금빛 모자이크였겠지만, 그의 후기, 황금 시대가 지나간 후의 작품을 봐도 클림트는 클림트이며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모든 작품의 원천이 여성이라는 것에 (그의 여성 편력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겠다.

 

 

o********o 2021.03.15.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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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끝없는 혁신의 예술가,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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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이하 ‘클림트’)의 창작 활동은 혁신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것은 늘 성공과 타인의 칭송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스티븐 잡스(Steve Jobs, 1955~2011)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 클림트가 어떤 창작 활동을 했기에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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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이하 클림트’)의 창작 활동은 혁신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것은 늘 성공과 타인의 칭송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스티븐 잡스(Steve Jobs, 1955~2011)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 클림트가 어떤 창작 활동을 했기에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1879년 그는 두 살 아래 동생인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 1864~1892), 친구 프란츠 마치(Franz Martsch, 1861~1942)예술가 컴퍼니(Kunstler-Companie)’를 결성했다.

 

부르크 극장 천장화의 일부로미오와 줄리엣

 

출처: <클림트>(arte), pp. 54~55

 

이 무렵 회화의 왕자로 불리던 한스 마카르트(Hans Markart, 1840~1884)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때 스승의 배려로 한스 마카트르가 그리던 엘리자베트 황후의 침실화를 마무리할 기회를 얻었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차츰 명성을 떨쳤고, ‘링슈트라세의 화가들이라는 이명(異名)도 얻게 되었다. 여기에 부르크 극장 천장화를 그린 공로로 1893년 황제 메달을 수상하면서 성공은 삽시간에 다가왔다. 그가 꿈꿨던 한스 마카르트의 후계자 자리도 눈 앞에 있었다.

그러나 1892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그리고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몇 년간의 공백기를 가진다.

 

다시 컴백하면서 클림트는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19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사실적인 화풍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조직을 결성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가 속해있던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은 이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클림트는 동료들과 함께 기존 조직에서 벗어나 오스트리아 예술가 분리파 동맹’, 속칭 ‘() 분리파를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슈베르트

출처: <클림트>(arte), p. 89

 

빈 대학 본부 천장화의 일부철학

출처: <클림트>(arte), p. 93

 

이런 분리파 조직이 빈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클림트는 분리파하면 모두 빈 분리파를 떠올릴 만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1902년 제14회 빈 분리파 전시회에 그는 황금시대 개막을 알리는베토벤 프리즈를 출품했다. 이듬해 이탈리아 라벤나를 방문한 그는 산비탈레 성당과 아플리네르 누우보 성당에서 마주한 6세기 비잔티움 모자이크의 경건한 단순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1905년에 공식적으로 빈 분리파를 떠난다. 이 무렵 그의 작품세계는 생명의 나무키스처럼 클림트하면 떠오르는 풍부한 황금빛으로 관능과 극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황금시대’로 알려져 있다.

 

키스

출처: <클림트>(arte), p. 158

 

1912년에 접어들면 그도 자포니즘’, 보다 정확하게는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의 복잡한 장식에 매료되었다. 그 결과 황금시대를 벗어나 동양풍의 장식과 화려한 색상이 가득한 작품세계를 시도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출처: <클림트>(arte), p. 180

 

이처럼 클림트의 예술 활동에서 놀라운 것은 그의 혁신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할 시기에 그 자리를 떠나 다시 한 번 새로운 예술의 돌파구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세기 말의 화가

 

저자는 클림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빈’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꼽았다. 그래서일까? 클림트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도 1980년대 새로운 세기말을 앞둔 시점이었다.

어찌 보면 퇴폐적이고 지나친 탐미주의를 추구하는 듯한 그의 작품은 아마도 세기말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아니 19세기 말의 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p. 14]라는 말처럼 이라는 공간 자체가 다른 유럽 국가들이 모두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홀로 제국의 영광에 사로잡혀 과거에 머물렀던 곳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w******f 2019.04.13. 신고 공감 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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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 276.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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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예술가의 흔적을 밟는 여행기라 생각하며 대리만족할랬더니, 포기는커녕 더더욱 여행 욕구가 뿜뿜! 와~ 많은 이들이 예술가를 찾아, 그 고전풍의 도시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 떠나는 빈! 그곳을 가봐야 진정 예술을 관람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빈! 가보고 싶다. 그 빈을 가봐야 진정 내가 사랑하는 그림을 제대로 보고 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한 느낌! 이라며 괜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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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예술가의 흔적을 밟는 여행기라 생각하며 대리만족할랬더니, 포기는커녕 더더욱 여행 욕구가 뿜뿜! ~ 많은 이들이 예술가를 찾아, 그 고전풍의 도시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 떠나는 빈! 그곳을 가봐야 진정 예술을 관람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빈! 가보고 싶다. 그 빈을 가봐야 진정 내가 사랑하는 그림을 제대로 보고 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한 느낌! 이라며 괜히 여행 욕구만 솟구친다.

 

클래식 클라우드 발간 계획을 듣자마자 아, 이건 정말 소장각 시리즈구나 했다. 실제 책을 보니 더 예쁜..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니 더 멋진.. 여러권 꽂혀 있을 때 더 빛이 나는 이 책. 게다가 내놓는 사람들마다 매력이 한가득.. 클림트, 니체, 셰익스피어, 모차르트, 뭉크 등 우리가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이들이 무척 많다. 표지부터 엄청 예쁘다.

그 예술가의 발길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그 사람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여행기라고 생각했는데 ? 클림트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여행기라기 보다는 정말 그냥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것들을 보며 최소한 이 장소에 가서 이 작품은 꼭 보고 와야지 하는 계획은 쉽게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여행 욕구가 뿜뿜!

 

 

클림트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구나 싶을 정도. 책을 읽으면서 아, 클림트가 빈 사람이었지 했다. 화려한 금 장식의 그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 클림트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는 클림트와 관련된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가 만든 창작물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흐름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클림트의 단편적인 지식들로 인해 몹시 화려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다른 의미로 화려한 사람인 듯 하긴 하다 ? 성실하고, 순수한 면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클림트의 배경 지식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몰랐던 것 같다.

-       클림트의 걸작들은 과거인 19세기도, 미래였던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 (18)

그러면서 빈이라는 곳이 엄청난 곳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각종 천재들이 탄생했던 이 곳. 저자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 설명으로 그런 빈이었기 때문에 많은 천재들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억눌린 상황에서 해소구가 문화 예술로 향할 수 밖에 없었으니, 약간의 재능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크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을 듯 하다. 각종 천재들이 활개치기 좋은, 그런 시대 배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는 그림이었는데, 새삼 클림트 그림이라니 놀라움..)

저자는 끊임없이 클림트가 먼 과거와 변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격변하는 시대 상황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모순되는 공간인 빈에서 클림트 또한 자신만의 성을 세웠다. , 모자이크, 장식이라는 먼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 시켰다. 저자는 이를 황금시대라고 불렀다. 많은 화가들이 그렇겠지만, 황금시대 이전의 클림트 작품이 오히려 더 새롭다. 르네상스를 잇는 듯한 분위기의 고전풍 그림들. (, 이런 그림들도 그렸구나..) 이미 그때부터 클림트는 주목 받았다. 게다가 그 당시 거장인 한스 마카르트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서, 큰 기회가 클림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시대가 그를 밀어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에 대한 기록을 스스로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게 의외였다. 오롯이 작품 활동만 하고 있었다니. 사생활이 노출되어 다른 이야깃거리로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게 싫었던 걸까? 아니면 작품으로만 이야기 되고 싶었던 걸까 

-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바쳐서 해야만 하는 일을 가진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클림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다. (240)

저자는 클림트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클림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크게 제약 없이 마음껏 하며, 적당히 누리면서 살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그것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의 그림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들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으니.

 

  몇 안 되는 그가 직접 이야기한 것 중 한 내용이다.

-        젊은 예술가들은 늘 기존 예술가들의 작품을 밝고 일어서길 원하지요. 그래야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269)

예술의 영역에서만 이런 건 아니리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뛰어나기 위해서는 그 전의 거장을 물리쳐야 한 순간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 클림트 역시 그 당시의 거장(?)을 물리친 건 아니라도, 그런 사람이 없어졌기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작품을 볼 때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 작품 자체가 무척 독특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야 더 잘 볼 수 있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진짜 눈, 혜안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에밀리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에서 찝찝한 점이 있다. 저자와 그 당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클림트와 에밀리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그림에 그 슬픔(?)이 반영되었고.)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사랑의 완성일까? 그리고 클림트가 정말 원했을까? 클림트는 원했고 에밀리만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렇게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생아를 14명이나 태어나게 만든 그가?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사랑을 완성했던 것이다. 어쩐지 에밀리가 직업 여성으로서의 지위와 명예 때문에 클림트를 거부한 듯한 말들은 불편했다. 물론 에밀리가 그런 사랑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가 가정을 갖길 원했을까? 난 클림트 또한 원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들만의 사랑 방식이리라. 왜 그를 놓고 완성되었니 안 되었니 평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있었다면 그렇게 일생을 유지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열정적인 클림트, 내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은 외모였던 클림트.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멋있는 그림을 그린 클림트, 내 생각보다 더욱 멋진 예술가였던 클림트. 그를 찾아 빈으로 여행해볼 수 있길 바란다.

 

 

 

g********o 2019.07.13.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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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기행] 클림트_클래식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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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고는 되어 있습니다만, 진짜 빈으로 날아가고 싶게 만들 줄을은 몰랐습니다. 책 읽는 내내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가 클림트 빌라와 벨베데레 미술관, 아터 호수, 클림트의 흔적이 있는 이곳저곳과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클림트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한 때, 1000피스 퍼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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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고는 되어 있습니다만, 진짜 빈으로 날아가고 싶게 만들 줄을은 몰랐습니다. 책 읽는 내내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가 클림트 빌라와 벨베데레 미술관, 아터 호수, 클림트의 흔적이 있는 이곳저곳과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클림트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때, 1000피스 퍼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그림이 「키스」였습니다. 퍼즐 맞추는 내내 그림을 아주 꼼꼼하게 볼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물뱀」 도 구입하여 퍼즐을 맞췄죠. 그 강렬함에 매혹되었던 것 같습니다. 클림트가 어떤 영향으로 이런 그림들을 그려내었는지 부드러운 설명을 읽으며 보니, 그림도 다시 보이더군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고전적인 그림을 그리던 클림트가 벽화를 그렸다는 것과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 '여인들'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클림트이지만, 단 한명의 평생의 연인 에밀리가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의상디자인너이면서 사업가인 에밀리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 지더군요. 세기말의 빈이 어떠했는지와 그런 까닭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작품들, 장식과 관능, 초상화 같지 않은 초상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작품들과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그리고 풍경화와 그 배경이 된 아터 호수, 에곤 실레를 다룬 영화에서 클림트를 만났던 기억이 이 책에서 에곤 실레를 만나면서 더 선명해 지더군요. 

 

책 상태는 좋아요!

시리즈로 되어있는 이 책을 차곡차곡 책장에 꽂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표지에서 물뱀과 인사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책 말미에 클림트 예술의 키워드는 요약정리인가 싶었으나 책을 다 읽고 한번 되새김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고, 무엇보다 연표를 '클림트 생애의 결정적 장면'으로 표시해 둔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이렇게 멋진 연표라니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책이 나온다면 이 시리즈를 꾸준히 구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k******m 2018.07.3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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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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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라는 예술가와 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를기가 막히게 잘 구성하고 설명하고 있다.이런책을 원했는데, 이제서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미술 상식과 여행지에 대한 정보 그리고 작가에 대한 스토리 텔링까지!오스트리아라는 나라를 여행했지만,클림트의 자취를 좇진 못했다.그냥 궁전에 걸린 그림의 작가일뿐.그림뒤에 있는 그의 생애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는 오스트리아를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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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라는 예술가와 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를
기가 막히게 잘 구성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책을 원했는데, 이제서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미술 상식과 여행지에 대한 정보
그리고 작가에 대한 스토리 텔링까지!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를 여행했지만,
클림트의 자취를 좇진 못했다.
그냥 궁전에 걸린 그림의 작가일뿐.

그림뒤에 있는 그의 생애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는 오스트리아를 추억하며
이 책을 읽는동안은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YES마니아 : 골드 s****y 2019.08.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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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화가, 그가 좋았던 이유 ::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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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클림트》를 읽었다. 《클림트》와 《모네》를 두고 고민했다. '모네' 그림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그림보다 작가 한 개인을 더 들여다본다면 클림트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클림트》를 읽었다. 말하자면 그는 먼 과거와 먼 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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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클림트》를 읽었다. 《클림트》와 《모네》를 두고 고민했다. '모네' 그림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그림보다 작가 한 개인을 더 들여다본다면 클림트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클림트》를 읽었다.

 

말하자면 그는 먼 과거와 먼 나라들에서 영감의 물줄기를 얻기 위한 우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얻어낸 물줄기는 클림트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완연히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클림트의 놀라운 천재성은 바로 이 부분에 있었다. _ 148쪽

 

<키스> <유디트> <아델레 블로흐 - 바우어의 초상> <다나에> 등 그가 그린 황금빛을 머금은 작품이 좋았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이유를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클림트의 작품이니까요. 그것이면 이유가 충분한 듯싶었다. 사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가지고 싶었고, 이 책 덕분에 그 이유를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비잔틴 왕국의 황금 벽화나 그리스정교회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그림과 비슷한 불균형 그리고 화려한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만드는 아우라가 좋았다. 그건 산비탈레 성당 방문과 글래스고를 대표하는 매킨토시, 일본 그림이 클림트 안에서 융합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기존 작품과 다른 작품을 시도하기까지 과정이 《클림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구 브루크 극장 객석>이나 부르크 극장 천장에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빈 미술사 박물관 벽화에 그린 베아트리체 그림에서 점점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빈 분리파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그의 삶은 새로움, 다름을 찾고 또 찾는 과정이었다. 작품도 연인도.

 

클림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인간은 예술, 그리고 사랑의 힘을 통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마저도 이길 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벽화를 제작하던 당시의 클림트는 꼭 40세였다. 더는 젊지 않은, 그리고 자신의 나이에 대해 무게감을 느낄 시기다. 그는 서서히 다가오는 몰락과 소멸에 대한 공포를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합쳐져서 예술의 영원한 승리를 찬양하는 <베토벤 프리즈>를 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_ 111쪽

 

18,800원이란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그런데도 계속해서 모으고 싶고, 읽고 싶은 시리즈가 클래식 클라우드다. 헤르만 헤세, 빈센트 반 고흐가 얼른 출간되었으면 좋겠고. 칼 세이건과 다윈도 나왔으면 좋겠다. 계획이 있을지 모르지만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오스틴까지. 내가 읽고 싶은 시리즈가 추가되길 바라며. 《카뮈》를 '언젠가 읽을 책장'에서 '조만간 읽을 책장'으로 옮겨 두었다.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바쳐서 해야만 하는 일을 가진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클림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다. _ 240쪽

 

나를 바쳐서 읽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읽고 싶은 책과 나왔으면 하는 책을 기대하는 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g*****9 2020.05.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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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속에 담긴 무의식과 여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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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x전원경클림트의 관능적인 그림들을 매번 떨림속에 마주한다클림트 작품의 핵심인 황금과 장식그리고 관능속에 담긴 무의식과 여성성에완전히 매료되었다 책을 다 읽고 베토벤을 들으며20년전 캐나다에서 구입한 클림트painter of women 속 그림을하나 하나 긴 호흡으로 꼼꼼히 읽어갔다내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장식공예학교 학생신분이던 클림트는동생 에른스트, 친구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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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x전원경

클림트의 관능적인 그림들을 매번 떨림속에 마주한다
클림트 작품의 핵심인 황금과 장식
그리고 관능속에 담긴 무의식과 여성성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책을 다 읽고 베토벤을 들으며
20년전 캐나다에서 구입한 클림트
painter of women 속 그림을
하나 하나 긴 호흡으로 꼼꼼히 읽어갔다
내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장식공예학교 학생신분이던 클림트는
동생 에른스트, 친구 마치와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
구 부르크 극장의 마지막 객석 풍경과
새로운 부르크 극장, 빈 미술사 박물관의 벽화를 맡게된다
이 벽화 작업에서 클림트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 죽음이후
클림트 예술은 결정적 전환의 길에 들어선다
기존 역사주의, 순수예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빈 분리파를 결성한 것이다

분리파 초기의 클림트의 그림
<우의와 상징 삽화중 비극>, <팔라스 아테나 등> 등은
고대 그리스 신화속에 의지하는 특징을 지니며
중간단계의 <피아노앞에 앉은 슈베르트>를 거쳐
<누다 베리타스> 벌거벗은 진실의 선언에서
완연히 달라진 클림트 스타일을 펼치기 시작한다
클림트는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본능
성의 위력과 공격성을 자신의 그림에서
본격적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클림트 황금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베토벤 프리즈>
이 기념비적 작품은 실러의 시, 베토벤의 음악
클림트의 그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며
모든 인류의 화해와 희망, 기쁨의 노래이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는 결연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클림트 황금시대의 절정 <키스>
이 작품속에는 클림트가 그토록 갈구한 사랑
육체적 관계를 성스러운 무엇으로 격상시켰으며
아터호수를 연상케 하는 물결
비잔티움에서 영향받은 황금빛 장식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에밀리와의 관계 등
인간으로서, 화가로서 클림트 인생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또다른 대표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유디트의 모델이기도한 아델레 초상은
압도적인 금빛장식에 휩싸인 성모 마리아인 동시에
관능적이고, 현대적이다

빈 공방의 슈토클레 하우스 이후
클림트의 그림은 다시 한번 변화를 겪게 되는데
죽음과 삶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집착해 들어갔다
1913년 완성작 <처녀>는 마치 꿈꾸는듯한 여자의
얼굴을 통해 삶이 결국은 하나의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클림트는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여자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모델들과도 애정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영원한 연인은 에밀리 플뢰게뿐
그녀는 단순히 애인이 아닌 평생을 함께한
영혼의 동반자였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지며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도 에밀리

클림트는 빈의 화가이다
동유럽과 서구,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중간에 있는
빈의 위치는 화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그의 그림은 그 어떤 화가와도 다른
독창적 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캠퍼스를 채운 여자들은
특별하고 극도로 이국적이다

빈의 랑슈트라세 거릴 거닐며
베토벤을 듣고,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싶다
그것도 몹시



m*****6 2020.03.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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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어제의 세계에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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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에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다   매주 팟캐스트로 듣기만 하던 클래식 클라우드 중 처음 구입한 책이자 클래식 클라우드의 세번째 시리즈가 바로 클림트이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거장을 선정하고 그 거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그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고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이다. 여행 경비만 해도 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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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에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다

 

매주 팟캐스트로 듣기만 하던 클래식 클라우드 중 처음 구입한 책이자 클래식 클라우드의 세번째 시리즈가 바로 클림트이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거장을 선정하고 그 거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그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고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이다. 여행 경비만 해도 한 작가당 족히 500만원 정도는 들었을 텐데 50명의 거장을 책으로 낸다고 하니 엄청난 프로젝트이다. 출판계가 매년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고 하는대 과감히 미래를 향해 투자한 것이다. 팝 평론가로 유명한 김태훈 작가가의 진행으로 매주 팟캐스트를 방송하고 있는데 나의 주말을 채워주는 중요한 시간 중 하나이다. 방송을 들을 때마다 빚 지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사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2018년 초 클림트 책을 처음 구매 하였고 이제야 후기를 쓰고 있다.

 

클림트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작품들 중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일생 황금시대로 불리는 약 10년 동안 만들어 졌다. 고흐 같은 화가의 생에는 대강이나마 알려졌지만 클림트의 생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클림트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당시 빈의 상황이다.

 

클림트가 살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 오스트리아, 아니 합스부르크 제국은 쇠락을 거쳐 종말로 향하고 있었다.

(중략)

클림트를 비롯해 당시 빈에 살았던 시민들, 심지어 지식인들조차도 제국의 운명이 다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황제와 관료들의 전재정이 너무도 탄탄하고 융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이를 뒤엎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시민 계층은 정치를 외면하고 그 대신 미적 분야에 유난히 몰두하게 되었다.

(중략)

그 내면에는 유럽의 정치적 번혁에서 늘 제외될 수밖에 없는 체념과 무기력이 숨어있었다.

p40~p41

신성 로마제국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이 되었다가 1876년 후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다. 미래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명망을 기다리며 과거를 고집하고 있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만약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빈으로 갈 것이다. 빈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경력은 고전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빈을 두르고 있던 거대한 성벽을 허문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요제프1세는 도시를 두르는 원형 도로 링슈트라세를 건설하고 도로를 따라 고전 양식의 건축물들을 짓는다. 클림트는 링슈트라세에 들어선 건축물의 천장화를 그리는 것으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유럽의 새로운 예술 경향을 소개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빈 분리파 시기를 거쳐 클림트가 돌파구를 찾은 곳은 바로 고대 로마의 벽화였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클림트는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에서 고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그린 벽화를 만나게 된다. 이 모자이크가 그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로마제국에서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났지만 당시 라벤나는 롬바르디 족이 점령하고 있어 이 벽화는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클림트는 이 이국의 성당에서 '평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정교하게 화려한 모자이크들에는 공간감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클림트가 발견한 것은 평면이 함축하고 있는 놀라운 상징성이었다. 오히려 평면이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장식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시간과 상관없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었다.

(중략)

이 고귀한 단순함을 발견하는 순간, 클림트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움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장 먼 과거를 향해, 예술과 종교의 '원형'을 향해 돌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중략)

그가 속한 세계인 빈과 오스트리아는 파리나 런던, 프랑스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제국의 과거를, 그리고 이국의 문화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p139

클림트가 1894년 그린 <마리 브로이니크의 초상>은 매우 고전적인 초상화이다. 클림트는 <키스>를 그리기 까지 미술사적으로 한 세기가 걸렸을 법한 변화를 15년 동안에 완성한 샘이라고 하니 천재이긴 한 모양이다.

 

클림트가 1918년 사망하고 (올해는 클림트 서거 100주년이다.) 유럽은 1939년 또다시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인다. 독일의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그가 그렸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나치에 압수당한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남편인 페르디난드 블로흐-바우어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시민이 된다. 페르디난드 블로흐-바우어는 죽기 전 그림의 소유권을 마리아 알트만에게 상속하였는데 마리아 알트만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다. 이 과정을 그린 영화가 <우먼 인 골드>이다. 처음에는 포스터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잘 몰라서 보지 않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나름 볼만한 영화다.

 

 

클림트라고 하면 금박으로 덮인 그의 대표작들만 떠올렸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유럽인 이야기>를 읽으며 관심 가지게 된 합스부르그 왕가의 마지막과 클림트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유럽과 동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k****y 2018.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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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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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트프 클림트, 막연히 그의 화려한 그의 그림때문에 좋아했던 화가이다. 키스, 아델리 부인의 초상을 보면 황금빛 그림과 관능 표현에 시선이 아찔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네나 고흐처럼 그의 삶에 대해 알고 있지는 못했다.  책은 클림트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빈을 빼먹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평생 빈에서만 살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클림트다. 그는 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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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트프 클림트, 막연히 그의 화려한 그의 그림때문에 좋아했던 화가이다. 키스, 아델리 부인의 초상을 보면 황금빛 그림과 관능 표현에 시선이 아찔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네나 고흐처럼 그의 삶에 대해 알고 있지는 못했다.

 

책은 클림트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빈을 빼먹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평생 빈에서만 살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클림트다. 그는 파리와 런던에 어쩌다 한 번 가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고 빈뽕에 심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묻혀 사는 도시 빈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구습을 타파하고 기존의 예술에 반기를 들어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빈을 벗어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볼 수 없는 클림트만의 그림은 혁신을 상징한다. 동시대 인상파, 입체파, 나비파 등 어떤 사조와도 동떨어져 있다. 그의 그림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금빛 그림의 장식은 과거보다 더 과거인 1500년 전 비잔티움 제국의 금빛 모자이크와 닮아있다. 이집트 여인의 눈이 장식으로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그는 혁신과 동시에 남들보다 더 먼 옛날에서 영감을 얻은 화가였다. 그의 곁에는 항상 여인들로 가득했지만 평생의 연인 에밀리와는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도시 빈의 모순과도 닮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빈이 낳은 거장이다. 빈 자체였던 사람이다.  

o*******0 2018.12.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