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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이 잠시 연극판을 기웃거렸던 옛날 기억을 채어낸 낚시라도 되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면서 관람한 연극에 대한 감상들을 정리하여 소개한 책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 유럽 무대예술을 제대로 소개하는 첫 번째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극연출가이자 비평가인 박철호님은 MBA를 공부하러 간 뉴욕에서 언어를 익히려 신청한 연극수업이 계기가 되어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극수업을 통하여 뒤늦게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날아가 파리, 베를린, 그리고 마드리드 등에서 연극과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술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우기 위하여 다른 이들의 작품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다른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히 저자와 비교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만 연극에 관한 저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제가 대학 연극동아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예과2학년이 끝난 겨울방학이었습니다. 그 즈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동아리가 신입생환영공연으로 준비하던 조해일작 <건강진단>의 연습실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워크숍 등을 거쳐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이해하고서는 장 아누이가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쓴 <안티고네>를 올리는 가을 대공연 준비에 참여하였습니다. 연극에 빠져있던 친구는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출이론을 입에 달고 지냈지만, 연기력은 논할 처지가 안되고 시작도 늦은 저는 스태프로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이니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연극공연이 많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도 극단에서 올리는 상업극에서 대학극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관람하고 무엇이든 배워 우리 무대에서 활용하려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의과대학과 신학대학만으로 된 대학이고, 엄청난 분량의 수업에 치이는 학창생활이었지만, 다양한 동아리활동이 펼쳐지던 때입니다.
우리 대학의 연극동아리는 당시 종합대학교까지 포함해서 대학연극 3대 동아리에 든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 몰리에르와 같은 극작가의 정통 희극작품들을 주로 올려 작품마다 장안의 대학생들 간에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기하는 단원의 경우 시쳇말로 아이돌처럼 많은 팬들이 있어 공연 때마다 몰려들곤 했습니다. 드라마센터에서 올린 작품의 경우는 몰려든 관객들로 인하여 유리창이 깨지는 불상사가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저도 제작에 참여했던 <안티고네>의 경우도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능을 타고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여 나름대로의 표현방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유럽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10년 동안 1,000편이 넘는 작품을 관람하고 그 느낌을 빠짐없이 기록했다는데, 그 가운데 엄선한 16편의 연극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독일작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소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으로도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연습을 하면서 작품을 구성하여 작가가 따로 없는 아리안 무누슈킨연출의 <레 제페메르(하루살이 같은 삶들)>도 있습니다.
연극은 같은 대본을 가지고도 연출자의 해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는 종합예술입니다. 그리고 같은 팀의 공연이라도 매회마다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배우가 같은 등장인물을 맡아 연기를 하는 요즈음 시스템에서라면 당연히 배우에 따라 등장인물의 표현이 차이가 나고, 심지어는 같은 배우가 연기하더라도 매회 마다 배우가 표현하는 감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 번째 작품 곰브로비치의 <이본, 부르군트의 세자빈>을 읽은 느낌을 소개합니다. ‘이토록 흉측한 신데렐라’라는 표제를 달아 놓은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입니다. 흉측하고 못생긴 이본이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왕자의 손에 이끌려 왕궁으로 들어가지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론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미움을 받고 결국은 왕자마저 등을 돌리고 말아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자가 이 작품을 맨 처음 소개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연극을 보게 되었다.(19쪽)”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베를린에서 처음 본 연극이라는 이유로 맨 처음 등장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16편의 연극이 모두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으니 소개하는 순서가 작품의 우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첫 번째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든 첫 작품을 읽은 소감은 불쌍한 이본의 삶을 연출가가 어떻게 표현하더라는 것보다는 <베를린, 천개의 연극>이라는 책을 쓴 작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요? 김철리단장께서 ‘단기 베를리너이자 이방인으로서의 저자의 일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 베를린 사람들의 삶과 사회가 베를린의 현대 연극 무대가 선명하게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고 추천의 글을 쓰신 이유가 실감됩니다. 먼저 연극을 감상하던 날의 작가의 일상으로부터 공연장으로 들어가 연극을 감상하기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작가와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의 극단들이 제공했다는 좋은 질의 공연사진들을 곁들여, 작품과 등장인물을 소화한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같이 엮어서 베를리너 앙상블의 객석에 앉아 작가와 같이 한편의 연극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덧붙이는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이야기 역시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글재주가 뛰어나지 못한지라 하루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편하게 풀어보았다.(11쪽)”고 지나치게 겸양을 떤 저자의 글솜씨에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작품을 다 읽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저자의 글솜씨는 ‘바로 짧게 끊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짧게 끊어 쓴 글은 읽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연극을 공부하러 간 곳이 “왜 베를린이었는가?”도 궁금한 점이었습니다. 베를린에는 약 50개의 극장이 있는데, 베를린연극의 특징은 레퍼토리극장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베를리너앙상블, 도이체스테아터, 폴크스뷔네, 샤우뷔네 같은 유명한 레퍼토리극장이 베를린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도이체스테아터의 200편, 베를리너앙상블의 80편을 포함에서 4개의 레퍼토리극장에서 올리는 연극은 2년 동안 매일 다른 연극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베를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섹시하다”라고 한 것처럼 베를린을 세계 공연예술의 메카라고 부를 만 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책에 빠져든 또 다른 이유는 저자가 소개하는 16편의 연극들 가운데 <고도를 기다리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파우스트> 그리고 <한여름밤의 꿈> 등, 4편은 비록 국내에서지만 이미 관람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두어도 한판의 바둑’이라는 바둑해설자가 흔히 하는 말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연극이란 대본을 바탕으로 하여 연출가가 해석하는 작품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니 한판의 바둑과의 비유가 참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해석은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어지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이디푸스의 테베왕국은 오이디푸스가 성을 떠난 뒤, 두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골육상잔을 벌이고 결국 동생 에테오클레스가 차지하게 됩니다. 자신이 차지할 왕위를 빼앗긴 폴리네이케스는 외부의 세력을 빌어 테베를 공격하다가 형제가 모두 죽음을 맞고 오이디푸스의 동생 클레온이 테베의 왕이 됩니다. 클레온은 테베를 배신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벌판에 버려두고 누구든지 이를 매장하는 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립니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오빠의 시신이 벌판에서 썩어가는 것에 분노하고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여 클레온과 정면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클레온은 아들 하이몬의 약혼자이기도 한 안티고네를 처형해야 하는 운명이 괴롭지만 국가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결국은 안티고네를 처형하게 되고, 하이몬 역시 안타고네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하이몬의 어머니 에루리디케 역시 자살을 하고 마는 비극으로 극이 마무리됩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쓴 브레히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일 제3제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의로운 일을 감행한 뒤 마침내 죽음을 택한 안티고네와,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고도 자신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전후 독일의 나치 군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고 싶었을 것(108쪽)”이라고 작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학을 보면 신의 뜻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신화에서 만나는 그리스의 신들이 항상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들이 신의 뜻을 빌어 스스로의 입장을 세우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외세를 빌어 고국을 공격한 오빠를 묻어주어야 한다는 인륜을 내세운 안티고네의 무모함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은 아닐까요? 세월이 가면 클레온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새롭게 해석한 안티고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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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재질이 얼마나 좋은지 매끈한 감촉이 부드럽다.
나는 이런 재질을 좋아하지만 아마도 비쌀꺼 같다.
그래서 슬쩍 살펴보니 금액도 역시 18000원
오페라가 좋아서 무작정 오페라 투어에 들어간 의사출신 박종호씨의 불멸의 오페라도 읽어 봤지만.
그 열정과 박학한 배경지식이 부러워서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나만의 공연즐기기를 즐기고 있지만
그런데 또 인생의 다른 장소에서 연극을 만나고 연극에 빠져서 연출과 비평을 하는 사람의 책이라니..
좋아서 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이 이길수 없다더니..
정말그러한가 보다.
이 책은 총 16개의 연극을 소개하면서
앞에는 공부할 당시의 상황을 일기처럼 적어둔다.
가끔 이런 기록을 보면 글을 쓰려고 작정한것이 아닌담에야 어떻게 이렇게 아구가 맞는지...궁금할 뿐이다.
ㅎㅎㅎ
편집의 묘미인가?
16개의 공연중
4. 불행보다 우수운 것은 없다.[고도를 기다리며]
9. 사라지는것은 체리 나무뿐 [벚꽃동산] 11. 이론이란 그저 회색빛일세 [파우스트]
12. 어째서 로망스가 아닌 키치인가 [한여름밤의 꿈]
위의 4개이군요 ^^;
그래도 꽤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썩 성적표가 좋지 않습니다.
나에겐 저자가 말해주는 심오한 내용은 지금 읽어보니 아 그런것이다 싶고
연극의 말미에 덧붙여 주는 덧붙이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왔습니다.
물론 소개된 연극이 내 기역과 다르고 다른게 받아들였다는것이 단순히 원어와 번역으로 봐서 일지라도
저자가 말하는 언어가 주는 장벽은 없다라는 말을 믿어봅니다.
내가 놓쳤던 것들 그리고 깊이알지 못했던 지식들을 읽으면서
다음에 접할때는 조금더 넓어진 관점으로 공연을 바라볼수 있게 되리라는 기쁨이 생기였고
사실 한장한장 빠르게 넘어가 지진 않는다.
생소한 단어와 주석때문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보지 않은 본적도 없는 공연을 상상한다는것은 의외로 힘들기때문에....
그래도 아름다운 아리아가 누구에게나 좋은것처럼
(그노래에 대한 사연은 모르지만 말이다.) 베를린도 요소요소에 지나간 삶을 보여주며 추억하게 해준다.
저자가 그리워하라고 그러케 무대에서 말해주는것 같아
쉽지 않은 넘김에도 불구하고 상상하게 해준다.
(어떤의미에서는 많이 접하는 공연이 아니여서 어려울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이부분에선 일반적이지 않타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아는만큼 더 잘 보이기때문에 일상에 충실한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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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예술의 도시 베를린의 한 유학생이 된 것 같은 즐거운 상상 속에 잠길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근처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샐러드로 식사를 하고,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연극을 감상하는… 작가 박철호 씨는 실제로 베를린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접한 수많은 연극 작품들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책머리에 보면 그는 유학생활 동안 현지의 친구들에게까지 "연극에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연극 작품들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 책에서 다뤄지는 연극작품 하나하나의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열정이 느껴지고, 그러한 작품들은 독자들의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사실 나는 연극이나 소극장 공연을 자주관람하는 사람은 아니다. 극 보다는 연주회를 즐기는 타입이고, 극 장르 중에서도 연극보다는 뮤지컬을,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도 분명 연극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갖게 된 우연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이 책의 첫장을 펼치기 전에 나는 이 책이 혹시나 어려운 내용으로 다가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연극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치 작가에게 이야기 한 편 한 편씩을 듣는 것 같은? 그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어서, 책의 중반부부터는 다른 일을 하다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쯤 한 챕터씩 아껴 읽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들려주는 연극작품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어딘가 아쉬운 듯한 가려움이 남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실제로 보면 대체 어떨까? 내겐 어떤 느낌일까?' 하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내게 또 하나의 어떤 계기를 준 것 같다. 작가 박철호 씨가 사랑한 연극과 그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연극작품의 감동을 실제 공연장에서 느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베를린에서 전달하는 '천 개의 연극'은, 마침내 독자들에게 또다른 '천 개의 연극'을 가져다 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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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유럽 연극 무대에서 이루어진 연출 경험이 주 내용일 거라고 짐작하고,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약간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예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자세히 기록한 연극 관람기였다. ‘안티고네’나 ‘일리어스’ 같은 고전뿐 아니라, 알지 못하던 ‘클라우스 파이만……’이나 ‘은퇴 전야’ 같은 작품들까지 있어, 말 그대로 푸욱 빠져 읽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나이든 배우들의 열정, 그리고 눈에 선 무대 장치들 묘사였다. 무대가 10도쯤 기울어져 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책을 약간 기울여 보기도 했다. ‘정말 포장마차가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거 아닐까?’ 궁금해 하며. 각 장의 끝에 붙은 ‘덧붙이는 이야기’는 없어도 되지만 그냥 얹어주는 덤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알짜배기 정보들이다. 박학다식을 배경으로 종횡무진 물결치는 독일 연극 문화의 깊은 바다……. 책 초반에 달팽이가 왜 언급되었는지 알 듯하다. 저자는 치열한 삶을 잠시 미루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생활하며, 수백 편의 연극을 관람하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구나. 그런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이런 게 바로 ‘낙수 효과’라고 하면 과장일까. 그냥 두었으면 개인의 호사스러운 추억 정도로 묻혔을지도 기록이, 나처럼 베를린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한 독자를 만나 도이체스테아터나 베를리너앙상블 단원들의 숨소리가 귓가에서 바로 들리는 듯한 사치를 누리게 했으니. 저자의 다음 책은 연출 경험, 또는 유럽 각국의 연극 특성 비교가 아닐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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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에세이스트를 발견했다. 연극 연출가들은 글도 잘 쓰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좋다. 이런 게 에세이의 매력일 텐데, 요즘엔 이렇게 괜찮은 에세이가 정말 드문드문 나온다. 재밌고 쉽게 읽히는 에세이는 많지만, 부드럽게 읽히면서도 깊이 있는 에세이는 드문 것 같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듯 써내려갔는데도 글은 경박한 말을 닮지 않았다. 그보다는 두어 번 퇴고를 거쳐 잘 다듬어진 어떤 문장을 닮았다. 연극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는 걸까? 연극 작품이 여럿 언급되지만, 연극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것을 저 위대한 고전 희곡과 머나먼 동유럽 연극을 보면서 느끼게 해준다. 연극 작품을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 되겠다. 고전을 다 읽기란 벅차니 이런 솜씨 좋은 스토리텔러를 곁에 두어야겠다. 표지가 겨울도 아닌데 표지를 보면서 겨울에 읽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보니 정말 그렇다. 이불 속에 파묻혀서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땃한 기운을 받으며 웅크리고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그러니까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 사색적인 시간이 필요할 때 읽기에 좋은 책이다. 뭐 그렇다고 봄, 여름에 읽기에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베를린. 왜 메르켈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섹시한 도시라고 했는지,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베를린의 연극은 일단 스케일부터 다르다. 레퍼토리 극장만 50여 개에 일 년에 많게는 200편까지 무대에 올린단다. 그리고 배우들은 매일같이 무대에, 그것도 다른 작품으로 오르고. 새삼 연극의 매력이란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봤다. 언젠가 한번은 베를린으로 여행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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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웹서핑을 하다 <베를린, 천개의 연극>이란 연극에 관한 책이 출간 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기사를 보면서 책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진해 집니다. 조만간 서점에서 이 책을 한번 훑어보아야 겠다며, 스마트폰 메모 기능에 꾹꾹 눌러 기억을 해 놓았지요, 그리고 며칠 뒤 광화문의 대형 서점을 찾아, 쉬엄쉬엄 , 책 내음을 맡으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이번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후루룩 넘김의 갈증은 곧 이번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제게 , 이 책을 품게 되었지요.
쉼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저의 숨 트임은, 어쩌면 남들과 다르지 않은 ,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그 무엇이였습니다. 소설, 연극, 뮤지컬등의 공연과, 잠시나마 지그시 하나의 작품을 바라볼수 있는 여유를 느끼고 싶을땐 아주 드물게 전시를 관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 그리고 쉽게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단연코, 소설과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사실, 연극과 뮤지컬 또한 쉼없이 보고 싶고, 아주 가까이 자주 접하고 싶지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 저는 소극장의 공연들을 즐겨 봅니다.작은 무대에서 배우들의 호흡을 그대로 느낄수 있는 그 소극장 공연이 정말 좋거든요.
하지만, <베를린, 천 개의 연극>에서는 저와는 전혀 다른, 아니 감히 근접하다고 생각할수 없는 괴리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저자 박철호님은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접하면서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 2년동안 베를린과 유럽도시에서 500여편에 이른 연극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연극 연출가이기도 비평가 이기도 합니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베를린과 유럽의 서양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디테일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연극을 즐긴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좌절을 맛보고 마네요. 오롯이 연극이란, 그 어떠한 것보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오롯이 즐거움,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저 또한 그런 모습들만 찾아 보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책 속의 수많은 작품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면, 꽤나 충격적이기도, 또는 놀랍기도 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극과는 달리, 서양의 연극들은 그 한정된 공간에서 하나의 소품을 다용도로 사용하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과도한 노출이나 선정적인 모습조차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장면들은 오롯이 그것이 연기이고 연극의 일부분이라 생각 합니다. 책 속 어느 한 부분, 체호프의 「벚꽃 동산」에서 체호프는 이 작품을 코미디로 생각하고 썼는데, 이 작품은 초연 당시부터 비극으로 다루어져 이 공연을 본 체호프가 기절초풍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문득 때로는 공연을 관람시 관객들의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해석 또한 각기 달라질수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제 나는 시간의 신, 즉 시간의 의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친구는 무대로 들어올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해 우리는 이해하지도 , 보지도 못한다. 그저 흘러가고 또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여기 우리들 무릎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 무대의 한순간에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란 놈은 우리의 양심이 되거나, 아폴론 신전의 사제가 되거나, 또는 예언자가 될수도 있고, 어쩌면 잠깐 동안 맥베스의 손을 잡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 아리안 므누슈킨의 [연습노트] 중에서
이번 <베를린, 천개의 연극>은 어찌보면 왠지 조금은 낯설고, 잘 알지못하는 서양 연극에 대한 거부감이나 또는 문외한으로 조금은 난해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 하며 읽기 전부터 부담감으로 다가 올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처럼 , 베를린, 또는 유럽 연극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정보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쏠쏠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16편이라는 작품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스토리, 또한 저자의 소소한 베를린에서의 생활들을 조근조근 들려주어, 부담스럽지 않으며, 연극의 포인트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냄으로써, 각 작품에서의 무대 장치, 그리고, 배우들의 이야기 까지, 덧붙이는 이야기 식으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웃음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웃음만 위안을 주는가? 슬픔도 위안을 준다. 연극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은 아픔과 함께 위안을 준다. 그것이 연극이다. 비록 우리가 3개월이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연극이 있다면 삶이라는 괴물을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아리안 므누슈킨의 질문에 대한 태양극단 단원들의 대답이다. (310쪽)
하지만 이번 <베를린, 천 개의 연극>은 어쩌면 호 불호가 강한 책이 되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한 권의 책이 될 것이고, 그와 반대로 연극을 사랑하고, 좀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달콤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저는 연극에 대한 무한 사랑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연극을 관람함에 있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내공 쌓기에 조금이나마 보템이 되고 양식이 되었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약간의 보는 시각이 트이는 듯도 하지만, 저자처럼 박학다식한 지식에는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조금이나마, 잠시나마 책 속의 삽입된 공연 사진들과, 디테일한 저자의 글 솜씨로 연극을 상상속으로 오버랩하며 대리만족을 느낄수 있었던 짧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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