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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셜록 홈즈 영화가 연이어 개봉되었다. 영화관에서 보지는 않았지만 어렸을적 추리소설하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맨 먼저 권해준 추리소설도 셜록 홈즈 시리즈였을 정도이다.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가 함께 활약하는 코난 도일의 첫 작품 『주홍색 연구』와 같은 제목의 책으로 그에 대한 오마주 라고 표현한 책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 처럼 이 책에서도 추리소설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그의 친구 법학과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몇 년전에 중,단편으로 된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도 히무라와 같이 활약하는 작품이어서 낯선 작가는 아니었다. 핏빛처럼 붉은 주홍색, 마치 불타는 것처럼 붉은 노을, 주홍빛 노을 속에서 일어난 화재와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미스테리 소설로 1997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강렬한 오렌지색, 온 거리가, 그 모든 것이 활활 타오르도록 붉게 물들이고 있는 노을, 마치 세상의 종말 같은 그런 붉은 노을빛을 바라보는 사람들. 누군가는 사진에 담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주홍빛 노을에 대한 기억때문에 노을을 무서워 한다. 법학과 조교수실 앞, 한 여학생이 서 있는 걸 보고 히무라는 논문때문에 온줄 알고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기지마 아케미라는 여학생은 10년 전에 일어난 방화 사건과 불을 끄려고 나온 이모부가 화재로 인해 불타오르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후 피아노 선생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직까지 살인범이 잡히지 않았다는 말을 건넨다.
경찰의 사건에 협조를 했던 히무라는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된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잠든 두 사람. 새벽 아리스의 집으로 히무라를 찾는 전화가 오며 건너편 '유령맨션'이라고 불리우는 곳, 호수까지 알려주며 꼭 가보라는 전화를 받는다. 두 사람은 유령맨션으로 향하고 맨션 앞에서 두리번 거리며 가는 젊은 남자를 스쳐 그가 말한 곳에 가 시체를 발견한다. 그 시체는 아케미의 외삼촌이었고 사건은 10년전의 이모부와 피아노 교사였던 외삼촌의 여자친구등 세 사람의 살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간다.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야기는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건 당일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탐문하고 그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는 아리스와 히무라의 이야기. 소설은 그 옛날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처럼 깔끔하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도 군더더기 하나없이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히무라와 그의 조수 역할을 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도 알 수 있었고 다른 작품에서는 밝히지 않았던 히무라의 과거의 모습까지 알 수 있었다. 심리분석가가 나오는 소설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탐정이 나오는 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수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떤 이는 그의 작품 중 이 작품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 이 작품이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요즘 심리를 다루는 추리소설 못지않게 몰입도도 좋았고 밝혀지는 반전도 의외였다. 내가 생각한 살인범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사람이 살인범으로 밝혀지는 점도 역시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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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언제나 마음가득 뿌듯하다. 가끔 실망해도 (실망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 이래서 좋다.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시리즈 8번째 1997년도 작품, 1998년 본격미스테리 베스트10의 9위 (본격미스테리베스트 + 본격미스테리대상 (일본)).
이제까지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뭐랄까 작가의 본질,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후기의, 편집자에 대한 상냥한 말도 좋았다). 노을, 죽음, 극락정토 등에 이어 죄에 대해 댓그를 치룬 이들에 대한 언급은 비록 다른 등장인물이 '다정하단'말을 다시 집어삼켰지만, 차별적이지않은 모습이라 마음에 들었다 (더더욱 [Les Miserables]를 읽은 후라. 그런 차별적이지않은 모습은, 괜한 연민과 동정보다 낫다).
...저는 지옥이고 극락이고 전혀 믿지않을 뿐입니다...어떤 공동체에도 형벌이 존재하는 겁니다. 만일 사후에 신의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면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행위는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범죄나 다름없이 교만합니다. 이세상에는 인간밖에 없고 저 세상은 존재하지않으니, 범죄자는 인간의 손으로 처벌해야 합니다....p.278
여하간, 이거 잡고 혼자 웃었는데 요즘 빠진 orange crush에 완전 물 끼얹는 이미지의 연속인지라...
...주홍생으로 물든 바다, 파도, 하늘. 주홍색으로 물든 해변, 시체, 수사관. 주홍색을 담아내려는 나카무라 미쓰루. 주홍색을 두려워하며 떠는 기지마 아케미. 끔찍할 정도로, 질척하고 진한 주홍색...p.162
수평선에 닿는 순간 김이 피어오르는 소리가 날 듯한 석양. 그날과 똑같은...오싹한....p.245
죄, 범죄와 맞닿아있는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 그리고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보다도 훨씬 더 주황색의 이미지가 내용을 압도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오렌지색이 싫어지지않아 다행). 뒤 책커버안쪽의 아스카베 가쓰노리의 말처럼 색깔이 내용을 만들어내는 듯 강렬하지만, 그 색채보다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왜 왓슨역이었는지을 알 수 있는 (그는 말을 잘 들어주고, 히무라와의 필드워크를 자신의 작품에 쓰지않는다), 히무라 히데오 조교수의 범죄심리학 강의외 추리가 취미가 아닌, 죄에 대한 고민이 담긴 묵직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석양은 몰락의 상징이기도 하고, 분명 어둠의 전조이기도 하지만....다시 태어나기 위해 저무는 거니까...
에이토대학 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중인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에게 한 여학생이 찾아온다. 기지마 아케미, 그녀는 노을을 비롯한 주홍색에 대해 극단적으로 기피하며,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 2년전 살인사건을 의뢰한다.
아, 우선 맨처음 그렇게 된 그녀의 사연이란....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13살의 나이로 이모부 무나마타가에서 살던 그녀는, 가족들이 비운 6년전 어느날 그것도 해질녘 집에 일어난 방화사고로 눈 앞에서 이모부 무나마나 쇼타로가 타죽는 것을 목격하고, 노을, 주황색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갖게된다.
그리고 2년전 이모 무나마타 마치, 사촌언니 아키, 사촌오빠 마사아키, 사촌오빠의 친구 무토베 시로, 나카무라 미쓰루, 피아노선생 오노 유우코, 외삼촌 야마우치 요헤이, 외삼촌 친구 마스다 다카노부와 함께 한 별장지에서, 오노 유우코가 머리에 둔기를 2차례 맞고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노을녘 발견된 사체로 인해 그녀는 더더욱.
사건을 의뢰받은, 임상심리학자 히데오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찾아오고 술을 마시며 밤을 보내던차 새벽에 이상한 전화를 받게된다. 버블경제의 몰락으로, 미분양세대가 속출한 바로 가까운 고급맨션의 806호로 가보라는. 가서 발견하게 된건 교살당한 시체, 그리고 그 시체는 아케미의 외삼촌 야마우치이며, 806호에 사건발견현장 몇십분전까지 무토베가 협박당해 있었다는 묘한 상황.
이것은 이제 세번째의 살인사건인가!
하나씩 사건이 점검되면서 밝혀지며 깔끔하게 정리되는 가운데...두번째 사건은 완전히 수긍하기는 좀..굳이 새벽에 00를 보고서 영감을 받을 것까지는...그게 없더라도 그늘은 만들어졌으며...그리고 또, 범인의 동기는 좀 납득하기엔 작품내에서 충분한 그의 캐릭터가 보여지지않은 것 같은. 세번째 사건을 감안하면 무지하게 논리적이고 냉혈한이기도 하단 말이지..물론, '둔감하면서 잔걱정이 많다는' 묘사처럼 모순적으로 보일 것 같은 성향이 공존하기도 하지만 (근데, 이런 둔감하면서 잔걱정이 많다는 성격, 나다..ㅎㅎ).
여하간, 등장인물, 사건, 전개, 사건의 해결외에 전달되는 메세지 등에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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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LUDE -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서? 어디로? 어느곳에? 어떻게? 아직 살려고 하는 것인가, 그건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 아, 나의 친구여, 나에게 노을이 그리 묻고 있구나. 나의 슬픔을 용서하라! 노을이 되었다. 노을이 된 것을 용서하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1989년 데뷔해서 여전히 순수 미스터리만을 고집하고 있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이번에 나온 '주홍색 연구'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 여덟번째 소설이다. 아마도 당신이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이 제목이 참으로 낯익을 것이다. 바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데뷔했던 그 역사적 소설의 제목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그것에 대한 패러디이거나 혹은 오마쥬라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정내려서는 안된다. 소설을 읽고나면 분명히 느끼게 된다. 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하필 명탐정의 대명사인 홈즈의 데뷔작 제목을 가져왔는지. 그 이유는 작품을 넘어서있다. 그러니까 그건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아리스가와 아리스 자체에까지 연결되는 문제라는 말이다. 그가 왜 미스터리를 썼고 꾸준하게 순수 미스터리 소설만을 집착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초심으로 돌아가 말하기. 그게 바로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을 붙인 진짜 이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고 그 지향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자기반영적 작품이다.
-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작가 아리스 시리즈 -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두 개의 시리즈를 번갈아가며 집필한다는 것은 이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겐 에가미가 명탐정으로 나오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히무라가 탐정의 역할을 맡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있다. 그 모든 시리즈에서 작가의 분신인 아리스는 탐정의 조력자이자 수사의 관찰자 와트슨의 역할을 맡으며 학생 아리스가 히무라 시리즈를 집필하며 작가 아리스가 에가미 시리즈를 집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두 시리즈는 '뫼비우스의 띠' 처럼 연결되어 있다.
'월광게임'으로 시작되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지금까지 네 작품이 나와있고 '46번째 밀실'로 부터 시작된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현재까지 18편이 나와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저렇게 적게 나온 것은 애초부터 총 5부작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생 아리스는 이제 겨우 한 편만이 남은 셈이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같은 작가가 썼는데도 스타일이 참 다르다. 일단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첫 작품 부터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등장인물 역시 에가미 아리스 콤비 뿐만 아니라 재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하나 하나가 단막극 처럼 그 자체로 완결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화산 분출로 인해 고립된 캠프라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이었던 '월광게임' 때 부터 사람들이 참 많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그렇게 많이 죽지 않는다. 기껏해야 한 두명 정도다. 그러니까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주로 연쇄살인을 다룬다면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사건' 자체만 다룬다. 내 생각에 두 시리즈 간의 보다 본질적인 차이는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연쇄살인을 묘사하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그 때문에 트릭 풀이에 더하여 서스펜스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놓여진 사건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지금 사건을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는 트릭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 때문에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분위기 주조에도 힘이 쏠리면서 논리 추구적인 면이 약해지는 반면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트릭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논리 추구가 아주 정밀하다. 아마도 이 때문에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학생 아리스가 학생 아리스 시리즈를 작가 아리스가 쓰는 것으로 설정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서스펜스를 계속 작동시키는 분위기 연출에 있어서는 문학적 공력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이건 현재 국내에 발간된 작품만 읽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일본 원작에 의해 얼마든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아무튼 사족같은 이야기이지만 학생 아리스 시리즈와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이런 차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차이를 허무는 작품이 바로 지금 만난 '주홍색 연구'였다. 순수하게 논리로써 사건 해결에만 집착하던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주홍색 연구'에 와서 문득 '문학적 정조(혹은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서도 잘 보지 못했던 그런 문학적 분위기를 말이다. 바로 이 것이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로 하여금 '어, 지금까지의 아리스 작품과는 느낌이 다른 걸.' 하고 느끼게 만들었다. 낯설음은 언제나 그 정체를 보다 더 집요하게 밝히려는 동기가 되게 마련이다. 늘 익숙했던 설정이라도 혹시 가려진 무언가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도 한다. 그렇게 읽었다. 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아리스 자신의 어떤 결의 같은 작품인지도 모른다고. 그가 내내 추구해온 미스터리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 같은 것을 반영한 작품인지도 모른다고. 왜 이 소설엔 하필 중3 때 고아가 되어 오로지 책을 통해 그 외로움을 이겨나갔던 아케미라는 여학생이 나오는 것일까? 중 3이라는 시기는 아리스 자신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 때 그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미스터리의 장편을 처음으로 탈고하지 않았던가?
아케미의 등장을 나는 중 3 시절 아리스 자신의 반영이라 여겼다. 생애 최초의 장편을 쓰던 그 시절의 반영이라고.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주홍색 연구'인 이유도 바로 그 시절의 자신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더 나아가 오로지 미스터리만 추구하여 이제는 아야츠지 유키토와 더불어 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작가까지 된 그가 첫 장편을 쓰던 중 3 그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미스터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겠느냐고.
-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써의 노을 -
'주홍색 연구'에서 주홍색이란 '노을'을 말한다. 그러니까 '노을'이 메인 테마인 셈이다. 하지만 사건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노을은 이 소설에서 추구하는 주제의 상징이며 그 분위기를 집약하는 단어이다. 한 마디로 문학적 은유이며 이 때문에 앞서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문학적 정조를 담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이 소설은 그러한 노을의 의미 혹은 역할을 분명히 한다. 프롤로그와도 같은 부분에서 작가 아리스의 목소리를 빌어 이런 대사를 날리는 것이다.
"오늘 오사카의 노을, 마치 세상의 종말 같아요." (P. 10)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뒤이어 아케미와 정체불명의 범인을 등장시켜 그들 각자에게 노을이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주기까지 한다. 화재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이 있는 아케미에게 노을은 '공포' 자체다.(소설엔 그녀에게, 정말 특이하지만, '노을 공포증'이 있다고까지 말한다.) 반면 범인에게는 그동안 망설였던 범행을 결의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소설의 가장 주요한 등장인물들(한쪽은 관찰자, 다른 한쪽은 모든 것의 원인, 그리고 또 다른 한쪽은 범죄자)이 '노을'의 삼각형을 이룬다(파멸을 보는 자, 파멸에의 예감 그리고 파멸을 가져오는 자). 한 마디로 이 프롤로그는 이 소설이 간직한 우주의 중심이 바로 '노을'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왜 '노을의 시간'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노을의 시간'이 그야말로 '미스터리적 시간'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노을의 시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일 것이다. 해질녘 어슴푸레한 미명 아래에서는 사물의 분간이 어렵다. 모든 선명한 것들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익명과 비밀의 존재가 되어간다. 그렇게 멀리서 내게로 다가오는 존재가 나를 따르는 개인지 아니면 나를 물어뜯을 늑대인지 분간하기 지극히 어려운 시간. 그래서 모든 것을 그저 불안과 의혹의 시선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시간. 그것이 바로 '노을의 시간'인 것이다. 또한 이 시간의 본질인 불안과 의혹은 그대로 미스터리의 본질이기도 하므로 '노을의 시간'은 미스터리적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이 '노을의 시간'을 작품의 주된 테마로 삼은 것은 무엇보다 적절하다 하겠으며 그가 유독 이 시간을 고집하는 것은 앞서 말했던 대로 초심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자신이 천착해온 '미스터리' 자체를 되짚으려 한다는 것 역시 여기에서 드러난다고 하겠다.
왜 이렇게 생각하냐고? 그것은 중요한 등장인물이기도 한 아케미 때문이다.
- 아케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분신 -
아케미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그녀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2년전 해변에서 일어난 오노 유우코 사건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고 또 탐정의 역할을 하는 히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히무라 - 아리스 콤비와 가장 많은 말을 나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어쩐지 아케미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덜어주려는 일종의 상담과도 같다. 그래서 어쩐지 '주홍색 연구' 자체가 노을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아케미에게 그 공포증을 지워주는 과정으로도 느껴진다. 스포일러상 말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감안해 본다면 아케미는 노을과 함께 단연 이 '주홍색 연구'라는 우주의 중심이다. 그런데, 그 아케미가 내게는 그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분신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아케미가 들려주는 그 자신 삶의 모습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실제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3' 시절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열정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에 빠져들었으며 그 결과로 지금과 같은 작가로 있게 된 그 첫 발자국이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까지 썼었다. 그건 이 소설의 아케미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노을 공포증'이란 트라우마를 안기게 했던 화재 사건이 중3 때 일어난다. 그녀는 거기서 이모부가 화재에 의해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했고 그로 인해 노을 공포증을 가지고 말았다. 한 마디로 삶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 결정적 시간의 도래가 작가 아리스와 아케미 모두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친숙했던 '개'의 세계가 이제는 전혀 낯설고 날 위협하는 '늑대'의 시간으로 변하는 '노을의 시간'이 둘 모두에게 도래한 것이다. 이 도래의 비슷한 시점이 아케미를 작가 아리스의 분신으로 여기게 된 첫번째 이유였다.
뱀다리 (2). 아케미를 아리스의 여성화된 분신으로 보는 것은 그리 무리는 아니다. 이미 그 스스로 작품에서 이미 이름 때문에 종종 여자로 오해된다고 쓰기도 했고 또한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도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여성화시켜 묘사한 바가 있다.
명탐정 코난 6기 '절규의 수술실' 편에 깜짝 등장한 '아리스가와 아리스'
이렇게 제작진은 작품 속에서 그의 이름이 늘 여자 이름으로 오인되곤 하는 것에 빗대어 아예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미녀로 만들어버리는 재치를 발휘했다.(전공 역시도 영문과^ ^) 아닌게 아니라 '아리스'란 이름 자체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그 '엘리스'를 따온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 작가 아리스는 왜 그토록 미스터리 소설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바로 이것이 아케미를 분신으로 여기게 하는 두번째 이유가 된다. 그리고 아케미가 가지는 노을의 공포증이 정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깨닫게 한다. 소설에서 아케미는 그 '노을의 시간' 중3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확고의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 말하기 어렵지만, 에리피 프롬의 책에 끌린 게 동기였어요.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악에 대하여'라는 책을 집어삼킬 듯이 읽었지요. 고압적으로만 느껴졌던 사회에 저도 이런 식으로 반격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P.206) (...) 고독과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도 책만은 저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몰라요(P. 207)
여기서 우리가 밑줄 그어야 하는 부분은 '사회에 대한 반격' 부분이다. 상상해 본다. 작가 아리스의 중3 시절을. 한창 사춘기 때의 그를. 그 시기는 누구나 그렇듯이 사회에서 행해지는 정형화된 삶의 길들임에 멀미를 느끼고 저항으로 충만해 있을 시기다. 흔히들 따라붙는 '질풍과 노도의 시기' 그대로 부모라는 울타리 아래서 그 때까지의 안락한 삶이 이제 세상을 스스로 책임져나가야 하는 그 시기에 이르러 전혀 낯설고 불안한 것으로 변해버린 가운데 오는 스스로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작가 아리스도 그 시기 그렇게 몸부림을 쳤을 것이며 아마 그 몸부림 속에서 사회에 대해 반격하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을까? 바로 그대로 아케미의 저 고백은 그 당시 아리스 자신의 고백이지 않을까? 아케미가 읽었던 저 인문서적들은 그 시기 한창 빠졌던 작가 아리스의 미스터리 소설들을 그냥 살짝 바꿔놓은 것에 불과하고 그는 그렇게 보란듯이 작가로 성공하여 사회에 반격할 것을 꿈꾸며 늘 귀감으로 삼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이 혹은 딕슨 카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첫 장편소설을 써내려 간 것은 아닐까? 바로 이러한 유사점으로 인해 나는 아케미가 그야말로 아리스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며 그 아케미가 하필이면 가장 처음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는 '중3' 시절인 것을 감안해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 미스터리 자체를 다시금 음미하려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 그래서 아리스, 미스터리라는 게 도대체 뭐야? -
아케미를 아리스의 '중3' 시절의 어린 아리스의 분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아케미가 '히무라 - 아리스 콤비'와 그토록 많은 말들을 나눈다는 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그 상담과도 같은 대화에서 작가 아리스가 그 자신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본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더욱 진중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추리소설이 뭐냐는 아케미의 물음(그것은 또한 과거의 이제 첫발을 딛는 그 자신이 현재의 작가에게 묻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에 작가 아리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꽤 길지만 음미할만한 대목이 많으므로 모두 다 인용해 본다.
추리소설이야말로 최대의 중죄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에 둠으로써 진상을 해명하고 싶다는 독자의 절실한 욕구를 환기할 수 있다고 소박하게 설명한 작가가 있지만 독자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살인의 진상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제 생각에... 살인사건이 테마라면 시체가 등장하잖아요. 시체란 '당신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어도 그 질문에 대답할 능력을 잃은 존재입니다.(...) 시체, 죽은 자는 우리가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절대로 대답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 불가능성이 열쇠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추리소설의 불가능성이란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자에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거라 확신하는 상대에게, 대답해주지 않을 줄 확신하면서도 거듭 묻는다는 건 안타까운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 이 보다 더 인간적인 행위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신을 상대로 인간은 대답해주지 않을 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질문을 계속합니다. (...) 잃어버린 시간을 향해 묻습니다. (...) 죽은자에게도 묻습니다. 나를 정말 사랑했나요? 나를 용서해주겠어요. 울며불며 매달려도 대답은 없습니다. 상대는 결코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묻고 말아요. 추리소설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P.210 ~ 211)
그는 말한다. '추리소설이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존재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듣지 못할 해답을 그렇게 계속 추구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이다. 이 말은 또한 다음과 같은 말로도 표현된다.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기도를 바치는 것일까? 기도, 그것은 탐정이 진상을 갈구하는 정열과 비슷하지 않은가? (P.245)
이렇게 수십년간 미스터리 하나만을 천착해온 작가는 '노을의 시간'이 도래함과 더불어 거기에 대한 저항과 그 스스로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려는 심정에서 미스터리에 빠져들고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까지 되는 과거의 자신에게,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추리소설은 이런 것 같구나.'하고 넌지시 충고를 보내는 것이다.(이것은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 미스터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충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도래한 '노을의 시간'. 모든 것이 의혹과 불안으로 가득찬 미지의 것으로 변해버린 그 시간 속에서 과거의 아리스 자신이 그토록 추리소설(미스터리)을 사랑했던 것은 혹시나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 줄 하나의 즉각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그처럼 '정오의 시간'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추리소설이 그러한 '정오의 시간'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인정하는 담담한 고백인 것이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늘 '노을의 시간'이고 작가 역시 여전히 그 시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존재이기에 그렇다. 이것은 아리스가 왜 각각의 시리즈 모두에서 '콤비'를 등장시키는가와도 관련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탐정과 관찰자의 역할 관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 아리스 자신의 일종의 자아 분리이다. 감성과 지성의 분리.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교와 홀로 내면에 침잠하여 사유하는 추리의 분리. 그렇게 아리스는 불완전한 그들을 하나로 묶어 활동하게 함으로써 작가 자신 역시 진실을 온전하게 체득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또한 삶 자체가 '노을의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은 이번 소설에서의 살인 무대가 서로 반대되도록 설정되었다는데서 암시된다. 여기에는 두 개의 살인 무대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요헤이가 살해당한 11월의 동터오는 새벽의 유령맨션이고 다른 하나는 오노 유우코가 살해당한 2년전 6월의 5시, 노을이 지기 직전의 해변인 것이다. 그렇게 이 무대가 밤과 낮, 폐쇄된 곳과 열려진 곳, 남자와 여자 모든 면에서 반대를 이루도록 설정되어 있다. 세계 자체가 서로가 다른 역할을 맡는 '아리스 - 히무라' 콤비 처럼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과 콤비를 통해 아리스가 드려내려 하는 것은 역시나 단 하나다. 추리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하는 심정으로 애타게 진실을 찾아 했던 질문을 되묻고 하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
비록 정오의 시간이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지라도 드러나지 않는 태양의 길을 찾는 무토베 처럼 진실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것. 바로 그 과정만이 추리소설의 의미이며 이로써 수십년 넘게 오로지 추리소설가로 지내온 작가 아리스 자신 역시 결의하는 것이다. 이 진실에 대한 기도를 영원히 멈추지 않겠다고...
왜? 바로 거기에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노을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록 정오의 시간을 가져다 줄 환한 햇살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저 작은 촛불이라도 되어서 그 미명 속에서 떨고 있는 작은 영혼에게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수만 있다면 추리소설을 통한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그것은 사명과 같다고...
때문에 아리스는 이 작품에서 이례적이라 할 만큼 아케미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본질이 단순히 해결이라는 빛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당한 사람의 곁에 서서 한 개의 촛불을 드는, 그 아픔을 생각하고 위로하는 기도이기에... 작가 아리스는 이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믿는 추리소설의 사명을 끝까지 다하려고 한다. 아케미와 같은 그들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서...
있지요, 아케미 양. 화성으로 가는 로켓을 탈 수 있게 되면 다 함께 떠나지 않겠어요? 그곳에서는 노을이 파랗다고 해요.(P.374)
이래서 나는 작가 아리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상식은 추리소설(미스터리)이 순수하게 쾌감 위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것을 비웃는다.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의심나면 '주홍색 연구'를 읽어보라. 추리소설도 문학의 어엿한 하나의 갈래이며 추리소설이든 문학이든 그 모든 것의 바탕에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든 타인이든 그것을 향한 '위로'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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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표작가라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드디어” <주홍색 연구(원제 朱色の硏究/비채/2011년 12월)>로 만났다.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작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직 작품으로 만나보지 못했었고, 그의 작품인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비채/2010년 3월)>은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그대로 주홍색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나에게는 “검증”받지 못한 처음 만나는 작가라는 부담감을 함께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독살스러우리만치 붉은색, 그것이 눈 밑에 펼쳐진 거리에 벌이라도 내리듯 활활 타오르며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던, 마치 세상의 종말 같은 일몰(日沒)의 강렬한 오렌지색이 인상적이었던 어느날 대학 법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범죄사회학”을 강의하고 때때로 경찰 수사에 가담해 눈부신 탐정의 재능을 발휘하는 “필드워크”를 해온 “히무라 히데오”에게 자신의 강의 수강생인 여학생 “기지마 아케미”가 찾아온다. 아케미는 히무라에게 열 다섯 살인 중학교 3학년 때 화재 사건을 목격한 후 오렌지색에 공포를 느끼는 색깔 공포증(Chromophobia)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2년 전 여름에 자신이 겪었던 살인사건의 수사를 의뢰한다. 히무라는 아케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사건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로 와서 마침 관계자가 살고 있는 맨션인 “유령맨션" 근처에 살고 있는 친우이자 필드 워크의 “조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다음날 새벽, 6시도 못되는 시각에 아리스가와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리스가와는 한소리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드는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나이는 물론이고 성별조차 분명치 않은 부자연스럽게 억누른 목소리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에게 유령맨션의 806호로 가보라고 통보하고는 이내 전화를 끊어버린다. 둘의 이름을 지목한 통화 내용이라 무시할 수 없었던 둘은 새벽길에 전화에서 일러준 맨션의 806호로 가보는데, 그 곳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졸지에 살인 사건 최초 발견자가 되어 버린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경찰에 신고하게 되고, 다행히 필드 워크 중에 안면이 있던 경찰들을 만나게 되어 용의자의 누명을 금세 벗고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수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 별개의 건이 아니다. 시체의 신원은 아케미의 외삼촌으로 밝혀졌고, 아케미가 의뢰해온 2년 전 살인사건이 바로 기지마 외삼촌의 여자친구가 살해당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심지어 기지마를 색깔 공포증에 빠뜨리게 한 오래전 화재사건까지 관련이 있음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이하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스와 그의 조력자 왓슨 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었던 <주홍색 연구>의 오마주이라는 이 작품에는 홈스와 왓슨 역할을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 작가 자신이 책 속 인물로 등장하는 설정은 “엘러리 퀸” 작품에서 따온 듯 한데 그래서 작가도 “일본의 엘러리 퀸”으로 불린다고 한다 - 콤비가 맡는데, 이 책이 두 콤비가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여덟 번째라고 하니 급조된 콤비가 아니라 꽤나 연륜(?)이 있는 콤비인 셈이다. 이 책에서의 추리는 신본격 장르에 걸맞게 정교하고 치밀한 트릭과 플롯, 그 허점을 예리하게 꿰뚫는 탐정의 추리로 범인의 수법과 정체를 밝혀낸다는 전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특히 유령맨션의 살인사건의 트릭인 “장소 오인 트릭” - 실제 살인은 906호에서 벌어졌는데 목격자는 806호로 착각하게 만드는 트릭 - 은 밀실 트릭과 함께 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트릭이라 할 수 있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데도 작가는 독자가 전혀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방식의 트릭으로 재창조해내 선보인다. 그리고 이 장소오인트릭에는 또 하나의 트릭이 감춰져 있는데 워낙 강력한 스포일러니 여기서 소개는 생략해야겠다. 또한 2년 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살인 시간 오인 트릭”이나 범인 숫자를 헷갈리게 하는 트릭 - 범인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 우연으로 발생한 것이다 - 들도 역시나 독자들이 트릭의 허점을 예측하기 힘든 정교한 트릭들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닌 추리소설의 세계인 이상 아무리 해결 불가능할 것 같은 최고 난이도의 트릭이라도 탐정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법, 히무라는 명탐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실낱같기만 한 트릭의 허점을 멋지게 파고들어 범인의 정체와 그 수법을 밝혀내고야 만다. 역시 트릭과 그 파해법(破解法)이라는 고전 추리소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신본격 추리소설”에서 트릭의 중요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치이자 재미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 평론가인 “쓰이데 이쿠테루”는 평론집 <탐정소설론>에서 “트릭은 탐정 소설 속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 재미의 중심축이란 수수께끼의 기발함과 논리 및 행동의 의외성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트릭은 기발함과 의외성을 모두 갖춘 “수준급” 트릭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평범한 사람이 이런 정교한 트릭을 구사한다는 점이나 또한 장소를 오인케 할만한 “쉬운” 트릭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한 트릭을 구사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들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히무라의 추리도 사건의 정황은 분명하게 밝혀냈지만 범인에게 물적 증거까지는 제시하지 못해서 범인의 부인(否認)한다면 증거 불충분으로 법정 구속은 불가능한 그런 상황인데, 사랑했던 연인 앞에서 범인이 스스로 범죄 사실을 밝히는 상황으로 몰리자 결국 자수(自首)하고 마는 억지스러운 결론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홍색”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해설한 “아스카베 가쓰노리”는 색채 미스터리의 가능성, 즉 '내용이 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색이 내용을' 양성하는, 다시 말해 유전자가 다른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색채 미스터리라고 정의할 만한 점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추리소설하면 자연스레 선홍색 핏빛이나 범죄라는 단어에서 검은색이 주로 떠오르는데, 책 도입부 세상의 종말과 같은 강렬한 오렌지 색 노을에 대한 멋드러진 묘사 덕분에 다 읽고 나서 “주홍색” 이미지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시각적 효과만큼은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뒷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강력한 인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절묘한 트릭과 복선이라는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맛볼 수 있어서 처음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또한 처음 만나는 작가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없애준 멋진 작품이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역시 그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다. 그를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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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의 책 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주홍색 연구>...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과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제목은 셜록홈즈의 <주홍색 연구>를 연상케 하고 또한 많이 들어왔던 <46번째 밀실>을 쓴 작가였음을...! 왜 제목을 셜록홈즈의 <주홍색 연구>와 동명으로 지었을까라는 의문은 책 앞부분만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셜록홈즈에서 홈즈와 왓슨의 관계에서 따온 듯한 구조로 작가 자신인 아리스가와와 그의 친구 히무라가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에 작가 자신이 나와서 꽤 놀랐음을 고백한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프롤로그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열한다. 아리스가와의 집, 범죄학자 히무라를 찾아온 제자의 이야기, 그리고 어떤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다른 공간을 통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한 복선을 이야기해주고자 하는 것 같다. 아리스가와의 집에 그의 친구 히무라가 찾아온 날 새벽녁에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지금 당장 유령맨션이라고 불리우는 806호로 가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의 히무라를 찾는 전화..그리고 확인차 가본 맨션에 목에 졸려 교살당한 시체 한 구...!! 어떤 사람이 전화를 했던 것일까? 그럼 아리스가와의 집으로 전화한 사람이 범인일까?....왜..왜..왜라는 많은 의문을 던져둔 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히무라 선생님이 나섰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확 사로잡던 스토리의 긴장감이 참 좋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게 하는 프롤로그에서 <노을>이 어떤 의미일지 고심하게까지 한다. 하지만 사건이 중반으로 흘러 가면서 조금은 지루한 듯한 사건 진행들이 쉬이 읽히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작가는 독자들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서 착각의 늪 속에 헤매게 한다. <노을>이라는 테마가 그렇다. 어쩌면 그것도 작가의 노련함인가?
이 책은 활동적인 몸싸움이나 강한 임펙트가 있는 스토리는 아니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히무라의 추리를 보면서 작가의 저력을 확인했다. 사건을 풀어가는 전개력의 촘촘함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등장한다는 면에서 새로웠고 작가의 "작가 아리스"시리즈도 읽어 볼 만할 것 같다. 작가의 새로운 매력을 느껴간다는 건 참 실로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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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비채
시립도서관 휴관일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대체근무를 해야하는데, 3월에 대체근무일로 14일을 선택해서 디지털자료실이 아닌, 2층의 일반 자료실과 디지털 자료실을 왔다갔다하며 소위 '땜빵' 근무를 하게 되었다. 지난 달에 기증자료 입력을 도왔다가 엑셀과 검색이 빠른 것이 도서관 내에 소문이 나서(?) 오늘은 또 새로운 업무를 도왔다. ㅎㅎ 딸들은 잘난척 쩐다고 놀려댄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 불리는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셜록 홈스에 보내는 오마주이자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열 번째 장편소설이다. 범인 찾기에 충실한 '본격 미스터리'적 재미와 욕망과 공포, 그리고 짙은 살의를 붉은 색으로 두루 표현해낸 '색채 미스터리'로서의 재미까지 두루 갖춘 작품이다. 1998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위의 세 사건에 모두 관계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찾는 것이 범인을 찾는 지름길이다. '세 번의 살인사건, 세 개의 열린 밀실, 사라진 용의자! 늘 그랬든 범인은 바로 그 곳에 있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범인은 카메라맨 무나카타 마사아키인가? 했는데, 역시, 오류! ① 무나카타가 화재사건으로 ② 2년 전의 와카야마 살인사건으로 오노 유우코 ③ 유령 별장 살인사건으로 야마우치 요헤이 이 세 건의 살인의 범인을 찾아야 한다. 용의자는 살해된 2명을 제외하고, ① 무나카타 마치, ② 마사아키, ③아키, ④ 기지마 아케미, 마사이키의 친구인 ⑤ 무토베 시로와 ⑥ 나카무라 미쓰루, 헌옷 체인점을 하는 ⑦ 마스다 나카노부 정도로 좁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15.3.14.(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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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 : 2000 가타기리 미쓰오 : 아리스 담당 편집자 아리스가와 아리스 : 작가 히무라 히데오 : 에이토대학 사회학부 조교수 기지마 아케미 : 히데오 제자 무나카타 마사아키 : 아케미 이종사촌오빠. 카메라맨 지구사 :덴노지 경찰서 경감 후나비키 : 부경 본부 수사1과 경감 사메야마 : 부경 본부 수사1과 경위 모리시타 : 부경 본부 수사1과 형사 야마우치 요헤이 : 마사아키 외삼촌 오노 유우코 : 요헤이 전처 마스다 다카노부 : 요헤이 헌옷체인점 동업자 나카무라 :마사아키 동업자. 카메라맨 무나카타 마치 : 마사아키 어머니 무나카타 쇼타로 : 마사아키 아버지 무나카타 아키 : 마사아키 여동생 나카무라 미쓰루 :마사아키 친구 무토베 시로 : 마사아키 고교후배 가쓰마타 : ‘오랑제 유희가오카’ 706호 도시코 : 마치 이웃집 요시모토 : 퇴직 경찰 다케치 : 스사미 간부 파출소 경사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을 리뷰할때마다 쓰지만 ‘작가 아리스가와’와 ‘학생 아리스가와’ 시리즈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각 3작품씩 발매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작가 아리스가와’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번엔 히무라 히데오가 조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히데오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하나인 기지마 아케미의 사건 의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 지인들과 놀러간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된다. 사건에 뛰어든 히데오와 아리스 콤비가 이 사건에 손대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피해자는 아케미가 의뢰한 사건의 관계자 중 한명이고 발견장소 또한 관계자 중 한명이 살고 있는 빌라이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말을 듣는 작가의 작품답게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논리적 사고과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주황색’라는 색채의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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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추리는 서글프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스러운 비애이다._아스카베 가쓰노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이름이라면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것이 바로 '신본격 미스터리'다. 아야츠지 유키토와 함께 신본격 미스터리의 기수로 평가받고있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니만큼, 역시 꼼꼼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트릭을 기반으로 하는 수수께끼 풀이가 떠오른다.
그러나 언제나 '본격 미스터리'로 분류되어있는 미스터리 작품에 아쉬움으로 따라나오는 것이 '동기'라는 측면이다. 실제로도 그 동기의 취약성에 반하여 사회파 미스터리가 출현하기도 했고. 언제나 소설의 흐름상 '누가봐도 피해자에게 가장 깊은 원한을 품은 사람'이 그대로 범인이 되어버린다면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반전의 측면에서 임팩트가 확 사라져버리기에, 조금 미적지근하더라도 의외의 인물이 사실은 범인이었다는 형태로 진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듯 내 나름대로는 '동기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반전'을 위해 조금은 뒤편으로 밀어두고, 그 부족함은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찾아보자고 위안을 삼곤 한다. 물론 모든 측면에서 훌륭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말이다.
<주홍색 연구>의 해설을 맡아준 아스카베 가쓰노리는 그래서 신본격 미스터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수수께끼의 향연과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그 '미적지근함'을 서글프나 영광스러운 비애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히무라와 아리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경찰들이 공을 들여 꼼꼼하게 수사하고 있음에도 부족한 증거와 관련 인물들의 빈약한 알리바이, 그리고 살인에까지 이어질 정도로 강력한 동기를 찾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버린 2년 전의 사건이 찾아온다. 이는 부모님의 죽음, 살고 있던 집에서 벌어진 방화사건,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2년 전의 사건으로부터 오렌지색 공포증을 얻게 된 기지마 아케미라는 히무라의 제자의 부탁에서 기인한 것이다.
2년 전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그리고 마침 그 주변에 동료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살고 있었기에 히무라는 아리스의 집으로 향하고,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또 다른 살인 현장을 맞닥뜨리게 된다. 대담하다고 할 수 있는 범인의 도전장은 과연 히무라가 조사하고자 했던 과거의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범행 현장으로 향하던 중 지나쳤던 남자가 피해자와 면식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유력한 용의자를 확보하면서 그들이 새로 맞닥뜨린 살인사건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그는 범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치밀하게 또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고, 자신의 목을 죄어올 수 밖에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히무라는 우선 오랑제 유히가오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범인의 함정에 빠져버린 남자의 알리바이를 깨부수고, 그리고 다시 2년 전의 기묘한 살인 현장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히무라-아리스 콤비가 맞닥뜨린 사건은 누가 범인이 되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고, 살의를 불러일으킬 만큼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사건은 벌어졌고 범인은 주홍빛 노을 뒤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동기', 아마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작가 아리스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히무라는 시체와 범행 현장에 남겨둔 범인의 속삭임에 귀기울인다. 그리고 아리스는 속삭이는 범인의 목소리 속 흔들림을 읽어낸다. 그렇게 노을빛 아래에서 콤비가 펼쳐놓은 사건의 진상 속에서, 나는 살인범의 붉디 붉은 주홍빛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에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나만의 해석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랬다.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을 통해 위대한 탐정 셜록 홈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의 제목을 차용함으로써 빈약한 동기에 대한 도전장을, 혹은 오마주를 보내고 있다. 굳이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주홍색 연구>를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 포함시킨 것 역시 탐정 히무라 히데오와 그의 조수이자 기록자인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관계가 홈스와 왓슨의 관계를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의 화자 아리스의 입을 빌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미스터리를 쓰고 있는 자기 자신 그리고 소설 속에서도 여전히 미스터리를 쓰고 있는 아리스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미스터리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아리스 아리스 하니 엄청 헷갈리누나..ㅋㅋ;;).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상대 앞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미스터리의 서글픔을.
게다가 일관적으로 소설을 감싸고 있는 배경은 제목 그대로 짙은 주홍색이다. 이토록 일관적이고도 강렬하게 색채에 뒤덮여 있는 소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실로 하늘을 불태우는 듯한 노을은 그저 산란되지 않은 빛이 인간의 눈에 들어오고 있을 뿐인 것이다.
사건을 둘러싼 기이한 현상을 무미건조한 과학으로 해체시켜버리는 본격 미스터리 트릭은 노을을 닮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노을의 미적지근함에 대하여, 그리고 그 미적지근함 속의 뜨거운 근원을 그려내고 있다. 서글플 수 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에 색채의 강렬함과 함께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상대에게, 대답해주지 않을 줄 확신하면서도 거듭 묻는다는 건 안타까운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죽은 자에게도 묻습니다. 나를 정말 사랑했나요? 나를 용서해주겠어요? 울며불며 매달려도 대답은 없습니다. 상대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묻고 말아요. 추리소설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_p.211~212
……이걸로 됐다,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도 바다도, 눈에 비치는 모든 광경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어요. 아아, 태양이 나를 집어삼켰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키기는 커녕 네게 상처를 주었구나. 부디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잊어줘._p.368
"어째서 다들 석양이 아름답다고 하는 걸까요? 어두운 밤이 다가오는 전조인데." "석양은 몰락의 상징이기도 하고, 분명 어둠이 저조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저무는 거니까."_p.373
+. 그렇다고 동기에 엄청난 필연이 부여되었느냐, 그건 아니다. '나름' 뜨겁다는 것이다. ++. 사실 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는 처음 읽었다.-_-;; 아는 척 해서 미안해요 아리스가와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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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온통 야릇한 붉은색 노을로 칠해지는, 마치 어떤 숙명적 아득함을 암시하는 듯한 색을 띨 때면, 나는 열광적 매혹이라기보다는 심연의 음울함이 느껴져 시선을 거두는 측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까닭은 아마 형언하기 힘든 짙은 선홍색의 강렬한 빛깔이 아닐까? 일몰(日沒) 전 검푸른 하늘을 물들이는 주홍색의 아찔함, ‘석양(夕陽)’, 그 붉은 노을 뒤의 아스라함, 이를테면 저묾의 예술이라 할 것인가? 혹자는 새로움의 기약이니 스러져감의 아름다움이지 않느냐고 하지만 글쎄....
소설은 그야말로 바로 이 기묘한 빛깔, ‘주홍색’이 인간 심연에 새긴 시원적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것은 열정, 찬미, 욕망이기도 하고, 어둠의 예고, 죽음, 소멸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생명을 예고한 순환으로서의 소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런 미묘한 갈망의 본성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이 작품의 오마주인‘코넌 도일’의 『주홍색 연구』에서 '주홍(scarlet)'은 ‘죄악을 상징하는 색의 비유’로 사용된 단어이고, “삶이라는 무채색 실타래 속에 섞여있는 살인이라는 주홍빛 실을 골라내는”작업이라는‘셜록 홈즈’의 명언이 있다. ‘아리스가와’는 인간의 마음 속 주홍색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하여 색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악함을 떠올리게 하는 방화(放火)의 다홍색 불길, 주홍색으로 물든 석양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 피살자의 선홍색 핏빛..., 저녁노을 빛을 두려워하는 여 제자의 미해결 살인사건의 의뢰로 범죄사회학 교수인‘히무라’는 사건 관련자의 조사에 나서고, 내키지 않는 또 하나의 살인현장에 직면하게 된다. 물리적 증거는 분명하게 용의자를 지목하지만 그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정황과 증거가 오히려 용의자를 살인자로 확신케 하지 못한다. 그리곤 현장 중시의 관찰과 같은 고전적 추리의 형식에 의존한 조사가 더디게 진행된다. 이것이 속도감이나 긴장감을 훼손하지만 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한 인간에 대한 밀착된 집요한 탐색의 과정들이 소설을 더욱 진지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내고 있어 순수문학적 향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소설에는 세 건의 살인사건이 놓여 있고, 살인이란 행위를 낳게 한‘동기(動機)’, 그 존재를 찾는다. 사건을 의뢰한 여학생의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화염에 휩싸여 죽었던 이모부, 그리고 의뢰사건인 친지들과 함께했던 해안가 별장지에서의 여인의 피살, 이의 조사를 방해라도 하듯이 빈 집에서 발견된 관련자의 죽음, 이 행위를 촉발시킨 주홍색을 골라내는 작업을 진척시켜나간다. 작가의 재주는 바로 이 뻔한 소재들에 어떻게 살을 입히는 것인가 할 수 있다. 그래서 연상녀의 유혹과 청년의 사랑, 어린 소녀에 대한 추악한 탐욕 등 감각적 이야기들이 더해지고, 추리라는 형식적 외관에‘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내용적 실체로 차용되어, 사랑의 결벽성, 아니 순수의 극단성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셜록 홈즈’와 ‘왓슨’역할을 하고 있는 ‘히무라’와 ‘아리스가와’의 성격을 비교해보는 것에도 있다. 홈즈를 과연 뛰어넘는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는가? 아리스가와는 왓슨만큼이나 매력적인 조력자일수 있는가? 와 같은 관점 말이다. 원작에서의 첫 번째 살인역시 빈집에서 발생하는데, 작가는 공동주택을 이용하여 약간의 트릭을 더하고 있다거나, 원작의 수사관들은 홈즈에 비교적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히무라는 우호적 협조를 받고 있다든가 하는 미세한 차이가 어떤 결과상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도 독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타래에 연결된 것처럼 세 개의 사건에 도사린 살인자의 삶을 찾아내는데, 그 주홍빛의 실체, 인간 심리의 본체를 선과 악으로 분리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오염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정신은 가히 정의 할 수 없는 심오한 것일 터이다. 주홍색이란 이 의심쩍은 빛깔의 추적은 단연 성공이다. 살의(殺意) 그득한 음침함을 숨긴 그 유혹의 열정적 색의 본성을 맛깔스럽게 버무려낸 정통 추리물의 수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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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언급이 있습니다. 11월20일, 교토와 오사카가 불타는 듯한 주홍빛으로 물들었던 날.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담당자와 함께 취재여행에 대한 통화를 하던 불타는 듯한 석양을 제외하면 어느 때와 같았던 날. 히무라 히데오에게 한명의 여학생이 찾아왔다. 주홍빛을 내며 불타는 듯한 석양의 시간에 불행한 일을 겪었던 소녀는 히무라에게 2년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간. 앞으로 범죄를 행하게 될 인물은 주홍빛 하늘 아래에서 석점의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시작부터 범인이 존재감을 들어내는게 인상 깊었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범인이 살인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경우는 처음부터 살의를 가진 범인이 살의를 결심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이 작품 말고는 못 봤거든요. 제목과 걸맞는 프롤로그가 인상 깊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일상 그대로운 아리스와 제자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히무라, 그리고, 살인을 결의하는 범인이라는 세명의 각각 다른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소설의 내용을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제목과 더욱 어울리는 시작이었다는 기분도 들었구요. 무엇보다 시작과 끝이 모두 석양이라는게 또 인상 깊었네요. (홈즈의 주홍색 연구는 실제로는 핏빛 습작이라고 합니다만...)
이번 사건은 큰 트릭은 없었는데, 큰 트릭이 없는 만큼 사람의 심리를 더욱 중요시한 이야기 같은 기분은 듭니다. 생각해보면, 학생 아리스 시리즈 쪽이 좀 더 트릭에 힘을 주는 듯한 기분도 들긴 합니다. 기분탓일 수도 있지만요. 학생 시리즈를 연달아 읽고, 이 책을 읽으니까, 느낌이 상당히 다르더라구요. 46번재 밀실을 읽고 학생 시리즈를 봤을 때는 크게 못 느꼈는데, 쌍두의 악마가 제 기준으로 상당히 명작이긴 했난봅니다. 쌍두의 악마를 읽고, 이 책을 읽으니까, 같은 작가가 썼고, 문체도 비슷한데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이...
아무튼, 이 책에서는 세건의 사건이 나옵니다. 책 속의 시점 기준으로 현재의 사건과 2년 전의 사건과 6년 전의 사건.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3가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과거의 사건은 어째서 발생한 것일까,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 였습니다. 음, 범인은 맞추긴 맞췄는데, 아주 후반부까지 가니까, 작가가 독자에게 범인은 이 사람이다! 하고 떠먹여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누굴까? 누구지? 이 사람 아니면 이 사람 같은데... 하고 최근에 읽은 이야기 들이 헷갈렸던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어쩌면 학생 시리즈랑 느낌이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