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세계문학전집을 보고 구매욕이 불타올랐다. 전집의 모든 책을 다 읽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00권을 내 책장에 꽂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을 하며 얼른 다섯 권을 구매했다. 그중 하나가 No.089 《클레브 공작부인》이다. 처음 책 소개에서 사랑이야기에 끌려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사랑으로 인해 벌어지는 한 여인의 성장소설이였다는 걸 알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앙리 2세가 집권하던 시절, 프랑스 궁정에는 이토록 절세미녀와 영웅들이 다 모인 적이 없을 정도로 인재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그중에서 단연 빛이 나는 인물은 느무르 공과 클레브 공작부인이었다. 느무르 공은 궁정의 모든 여인이 사모하는 매력적인 사내였고, 클레브 공작부인은 누구라도 한번 보면,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런 관심에 무심해 보였다.
"야망과 연애, 이것이 궁정의 정신이었고, 사내들이건 여자들이건 하나같이 그 일에 전념했다. 숱한 이해관계와 각기 다른 파벌이 있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깊이 관여했다. 사랑은 항상 사업과 뒤섞였고, 사업은 항상 사랑과 뒤섞였다." p.23
여기서 짐작하듯 프랑스 궁정 여인들은 정숙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에게 정절은 꼭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자유로운 연애관에 놀랐다. 그들의 연애는 솔직하고 과감했다. 달콤한 사랑에 늘 목말라하면서도 서로 견재했고, 사랑이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들과는 달리 정숙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들 속에서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인 클레브 공은 클레브 공작부인을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존경할 뿐 사랑의 대상으로 느끼진 않는다. 그래도 아내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그녀는 느무르 공을 만나 난생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한 감정을 모르고 살았던 클레브 공작부인은 달라져 버린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를 보면 괜히 가슴이 뛰고, 그와 마주칠 때는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어진다.
"큰 상실감과 격렬한 열정은 사람의 영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지요." -느무르 공 p.80
느무르 공 역시 클레브 공작부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수많은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예전의 느무르 공이라면 자신의 매력을 한껏 어필하며 적극 작업을 걸었겠지만, 클레브 공작부인에게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 방법은 너무나 은밀하고 은근해서 당사자 말곤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척, 그가 말한 여자가 자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척해야 할 것 같았다. 말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또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클레브 공작부인 p.81
《클레브 공작부인》 은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를 한다. 숨기고 싶은 내밀한 감정까지 치열하게 서술한다. 꼭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의 방향은 서로 향해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조롭게 맺어질까? 이야기는 쉽게 흐르지 않는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느무르 공에 대한 마음이 점차 커져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잘 숨겨왔던 감정이 남편과 느무르 공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클레브 공의 아내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느무르 공을 향한 사랑 사이에 괴로워한다. 궁을 떠나 느무르 공을 보지 않는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남편에게 고백한다.
"당신에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제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진실을 숨기는 일보다 진실을 고백하는 일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해요." -클레브 공작부인 p.140
그녀의 고백이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지만, 나는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건 남편에게 고백한 것도 있지만,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고백함으로써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단단한 족쇄를 채운 것이다. 둘러댈 수도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시골로 내려간다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실 앞에서 자신을 기만하지 않았다.
《클레브 공작부인》의 남자 주인공은 느무르공이었지만 난 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그의 신중치 못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가 좀 더 신중했더라면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클레브 공의 진심이 통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의 묵직한 사랑을 지지했다.
"부인. 언젠가는 진정하고도 합법적인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했던 한 남자가 아쉬울 거요. 합법적인 사람이 이런 사랑 문제로 어떤 슬픔을 겪었는지 알게 될 거요. 그런 사람한테 받은 것과 당신에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을 유혹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한테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게 될 거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되겠지." -클레브 공 p.196
사랑은 늘 예상 밖의 일을 벌인다. 의지와 상관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한다. 아예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도 해준다. 느무르 공이 그녀를 사랑했기에 감정에 앞선 행동을 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를 사랑했기에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 두려웠다. 클레브 공은 사랑했기에 배신감에 고통스러웠지만, 그녀를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에 벌어진다. 나는 그녀의 선택이 안타까웠고, 그것 또한 그녀답다며 공감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 그녀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애정소설이지만 성장소설의 느낌이 강했던 《클레브 공작부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
|
비록 길지 않은 내용의 소설이었으나 프랑스 여류 문학가를 처음으로 접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문학의 3대 소설중의 하나에 속하는 소설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프랑스, 영국, 에스파냐의 왕위 계승과 왕족간의 결혼을 비롯한 유럽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가 그토록 싫어하고 비난했던 소설이었다고 하고 이로인해 최근에 더 많은 판매부수를 올렸다는 역자의 해설 부분을 보고 더욱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는 공작부인을 비롯한 자작, 대공등의 부인들도 정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러가지 사교 행사 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사에 참여하고 왕비를 비롯한 왕세자비와의 관계를 통해 사교의 폭을 넓힐 수 있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이러한 사교생활을 통해 많은 상류층사회에서는 불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용인된것으로 이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던것 같다. 또한 이러한 부분을 이용하여 지위 상승을 위한 발판을 만드는 계기도 되었던것 같다. 이야기는 미모 뿐만 아니라 예의 와 법도를 어릴때부터 익혀온 클레브 공작부인이 사교모임등을 거쳐 많은 남자들로부터 관심을 모았고 마침내 클레브공작과 결혼하는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르무르공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끝내 본인으로 인해 가슴아픈 질투로 인해 사망하고 마는 클레브 공작을 뒤로하고 느무르공과의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수도원에서 일생을 보내는 어찌보면 가슴아픈 사랑이고 한편으로는 지조를 지킨 여인으로 마음속에 새겨진 짦은 사랑이야기로 요약해도 될것같은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못하는 여인과 남자의 사랑에 대한 갈등을 잘 묘사하였던 소설이다. 프랑스 문학이 어렵다는 편견을 말끔히 지워준 소설로 여류작가이기에 여자의 마음을 더욱 잘 묘사한 소설이었다. |
|
벌써 32살이라니.. 이제 한달도 남지 않았다.. ㅠㅠ 나는 3형제에다가, 남중, 남고, 그리고 공대를 다녔다. 대학 시절 여자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위엔 항상 남자같은 여자아이들만 있었던 건지, 여전히 나에게 여자란 낯설고 어렵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존재이다. 속절없이 나이는 들어 가고, 이젠 '결혼'이라는 단어가 문득!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데, 난 어떡하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만나고,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생각난 것이, 여자가 쓴 소설을 한번 읽어 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고전으로. 왜냐하면 고전을 남긴 여작가라면 미묘하고 복잡한 여자의 심리를 잘 이야기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심리 중에서도 아주 난이도 높은 사례를 접해 보면, 그리고 그걸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여자라는 존재에 조금이나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어느 미학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 날씨가 더웠고, 그녀는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채 목과 가슴골이 드러난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에서나 가능한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몽환적인 시선으로 .. " 이 구절이, 이 책에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상상하게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프랑스의 여작가 라파예트 부인이 1678년에 발표한 연애심리소설로서,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다지? 낭만주의 하면 모름지기 프랑스라고 해야겠지? 나는 그렇게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이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아니 도대체 뭔가. 이 클레브 공작부인이라는 여자는.. 도대체 이렇게 짜증나고 답답한, 이렇게 남자 속터지게 하는 여자가 어디있냐 말이다. 만약에 이 여자가 내 여자친구였다면, 아니 내가 느무르 공이었다면, 진짜 더럽고 아니꼽고 답답하고 짜증나서 언젠가 한번 대폭발을 했을 것이고,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을 것이다. "야 이 **야. 아 진짜 너 사람 감정 가지고 노냐? 지금 뭐하자는 건데? 내 애간장 태우면서 즐기냐? 재밌냐? 아 진짜 이 답답한 **아 때려치우자 그냥. 다신 너 안 찾을 거고 안 볼거니까 나중에 우연히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마라. 이 하트브레이커야!! 넌 진짜 하트브레이커야!! 나 진짜 마음이 아파. 근데 이젠 진짜 너 안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에게 남겨진 것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히려 의아함이다. 이미 여자의 심리라는 초점은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흩어져 버렸고, 그런 것 보다는 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온갖 제약들과 부자연스러움에 마음이 답답해져 갔다. 그래야만 했을까? 좋으면 좋은 거고,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잖아. 그러면 아무리 주변 상황이 어렵고 눈치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한번은 꼭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 했던 거 아닌가? 마음 속의 진실은 비록 아무리 감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건 진실인 거니까,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니까, 그래서 꼭 제대로 표현되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고 보면, 애초에 클레브 공작 부인의 결혼부터가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후에야 운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을 깨닫고 괴로워 한다. 아니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프랑스 궁정 세계) 자체가 뭔가 모순투성이의 세상이다. 왕은 왕비가 있지만, 발랑티누아 공작 부인을 사랑한다. 외로운 왕비는 샤르트르 대공을 은밀히 총애하고자 했지만, 샤르트르 대공은 이 여자 저 여자를 닥치는 대로 사랑하고, 왕세자비는 느무르 공에게 마음이 있고, 투르농 부인은 사별한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키는 척하며 아무도 모르게 양다리를 걸친다. 온통 뒤죽박죽이다. 결혼과 연애라는 감정이 서로 분리된 채 따로 따로 움직이고 있다. 결혼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여야 하고, 또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둘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의 배경에서 결혼은 충분한 의미를 결여한 채 형식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은 길을 잃고 헤메인다. 나는 이 상황을 난장판으로 규정하고 등장인물들을 비판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문득, 그렇게 이야기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아직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시대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문과 조건으로 결혼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에 그 규칙에 따라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등장인물들은, 그로 인해 억눌려진 감정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그런 시대의 슬픔을 간직한 피해자들인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이 작품이 씌어진 1600년대 후반의 우리나라의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조선시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당시엔 거의 질식 수준이지 않았을까? 결혼은 사랑은 고사하고 본인의 의사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게 속박된 감정은 낭만을 꿈꿀 수 없고, 오직 지아비에 대한 섬김만이 절대적인 것인양 강요된다. 그런데 웃기게도 양반 남편은 첩을 둘 수 있다. 뭔가 이게. 차라리 이것보다는 클레브 공작부인에 묘사된 상황이 더 나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결혼이 가문, 지위, 명예, 출세, 부에 의해 좌우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한 시대, 그리고 그것을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허용되었던 시대, 그런 단계를 거친 후에야 마침내 오늘날처럼 사랑의 감정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클레브 공작 부인은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클레브 공작 부인은 마음 속에 싹튼 사랑이라는 감정을 억지로 죽여 버리기로 한다. 내 생각에 이건 살인죄 만큼이나 잘못된 행위이다. 사랑하지도 않았던 남자와 결혼한 것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 진실을 배신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사랑하지도 않았던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키며 혼자 지내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그것은 자기 마음 속의 진실로부터 도망쳐 사회적 평판과 체면 뒤에 숨어 버리는 비겁한 짓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클레브 공작 부인을 긍정할 수가 없다. 내가 느무르 공이었다면 클레브 공작 부인을 평생 증오하고 원망했을 것이다. 이것이 작가 라파예트 부인의 진심이었을까? 라파예트 부인은 클레브 공작 부인을 마치 조선 시대 열녀처럼 형상화했다. 이것은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자기 검열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만약에 이것이 라파예트 부인의 진심이었다면, 그녀는 소설가의 임무 중 하나인, 미래의 인물상 제시에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클레브 공작 부인과 라파예트 부인은 생명이 없는 억지 도덕 공식으로 생명 가득한 사랑을 살해해 버린 것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거짓 체면과 공식적인 도덕보다는 마음 속의 진실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비록 이 책을 통해 여자의 심리를 밝혀 내진 못했을지라도, 그래도 나에겐 중요한 교훈이 남았다. |
|
(스포일러 주의)
<클레브 공작부인>이라는 작품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교양강의에서였습니다. 프랑스 문학에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시대별로 배우는 교양 강의였는데, 17C의 대표 연애소설로 <클레브 공작부인>이 소개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흔한 통속 연애소설같기도 한데, 클레브 공작부인이 느무르 공을 거절한다는 전형적인 결말을 클레브 공작부인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해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당시 이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었던 것 같지 않아서, 머릿속 한 구석에 담아두고만 있었는데...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이 작품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번역 출간된 것을 보고 인터넷으로 바로 주문했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번역 수준을 불신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읽어본 결과, 프랑스어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괜찮게 번역된 것 같네요.
<클레브 공작부인>은 전형적인 궁정 연애소설입니다. 궁정 생활과 귀족 사교계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귀족 남녀들이 등장해 얽히고 설킵니다. 하지만 17C에 창작된 작품이며, 소설 속 배경은 그보다도 한 세기 전인 16C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의 17C 고전소설을 떠올려가며 읽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초기 소설과 우리나라의 초기 소설은 내용 면에서나 양식 면에서나 상당히 차이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인지 17C에 프랑스에서는 벌써 이만한 작품이 나왔었구나...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듭니다.
이 소설은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주인공인 클레브 공작부인과 느무르 공작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연애 소설입니다. 배경 자체에 주목해 읽는다면 일종의 역사소설이 됩니다. 이것저것 다 떼어놓고 스토리만 본다면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들을 뺨치고도 남는 세태소설이 됩니다. 귀족들은 정략 결혼을 하기 때문에 부부간에 애정이 없고, 그래서 남편/아내와 애인을 동시에 두는 게 아주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사교계하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질투해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정치적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이 고작 연애 편지 조작하기이고, 남편이 의처증으로 아내에게 부하를 붙여 뒷조사하는 등, 온갖 막장 요소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주인공 클레브 공작부인의 심리는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의무로 섬기는 남편 클레브 공작과, 첫눈에 반해버린 느무르 공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 정도야 현대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죠. 하지만 클레브 공작부인은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고자 자기 마음을 고백하고, 느무르 공작의 열렬한 사랑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그의 구애를 거절합니다. 느무르 공작과 '밀당'을 주고받는 여러 장면들을 보면 분명 연애의 고수 같은데, 정작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에는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 온갖 의무와 도리를 겹겹이 둘러쓰는 답답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극단적인 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소설 결말부,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에 눈 멀진 않았다. 사랑이 나를 인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그녀의 발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작가인 라파예트 부인은 평생 사랑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사랑은 낭만적이고 관능적인 것 이상으로, 상대의 반응에 대한 냉철한 계산과 반응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게임처럼 다루어집니다. 사랑은 전쟁입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승리하기 위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온갖 계책을 짜 냅니다. 오늘날에도 남녀가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혹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로 눈치를 봐 가며 패를 내는 밀당 게임을 합니다. 사랑의 이러한 모습은 과연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묻게 만듭니다. 과연 이게 진짜 사랑일까요? 아니, 그 전에 대체 진짜 사랑이라는 건 뭘까요?
흔히 사랑을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으로 나누곤 하죠.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상적인 사랑의 우화로서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래 불타는 욕정같은 육체적 사랑을 상징하는 에로스가, 순결한 정신적 사랑을 상징하는 프쉬케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육체와 정신의 사랑이 혼연일치된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클레브 공작부인>에서 보여지는 남녀의 연애 양상은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요? 육체적인 사랑 없이 정신적인 사랑만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요?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 점을 염려하여, 자신이 잊혀지지 않으려고 끝내 느무르 공작을 거절합니다. 상대에게 사랑의 좌절을 안김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사랑의 승자가 되려는 전략입니다. 그녀는 분명 느무르 공작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래서 자기 행동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었지만, 그런데도 느무르 공작의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이 영원하리라 믿지 않으며, 자신을 손에 넣으면 곧 사그라들 일시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다 칩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 단 몇 줄로 서술된 결말이야말로 저를 진짜 충격과 혼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클레브 공작부인의 고집 때문에, 결국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느무르 공작은 그녀를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를 보지 못한 채로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기어이 사랑의 고통과 타는 듯한 열정이 식습니다. 클레브 공작부인의 판단대로, 느무르 공작의 사랑은 몇 년만에 식어버린 것입니다. 소설 내내 그토록 애타게 자기 사랑을 고백하고, 독자에게도 '이번에는 다르구나, 진짜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던 그 사랑이, 몇 년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립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상대에게 사랑의 좌절을 안기는 극단적인 패까지 사용했건만, 끝내 패자가 됩니다. 상대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자 - 이렇게 되었으니, 사랑에 있어 진정한 승자는 누구이고, 비참한 패자는 누구일까요? 클레브 공작부인? 느무르 공작? 아니면 사랑을 위해 권력을 포기한 샤르트르 공작? 그도 아니면 평생 아내의 사랑을 못 받았지만, 죽고 나서 비로소 아내에게 자기 사랑을 아로새긴 클레브 공작?
영원할 듯 보였던, 영원하리라 믿었던, 영원해야만 했던(선남선녀 주인공을 내세운 17C 로망스-누보 로망 작품이니까!) 사랑이 환상의 꺼풀을 벗고 현실적인 속살을 드러내는 결말... 사람을 눈 멀게 하던 사랑이 천천히 사라져버리는 결말. 사랑에 빠졌으되 사랑을 믿지 않는 여인과, 사랑을 믿었으되 그 사랑이 변해버린 남자. 비교적 길지 않은 분량에 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해서만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내용 때문에라도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듯합니다. |
|
사랑, 그 후에 오는 것들 - <클레브 공작부인>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을 떠올려보자.
클레브 공작부인은 당대의 많은 귀족 부인들처럼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공작과 정략결혼했다. 한번도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일이 없기에 쉽게 연애에 빠지는 다른 부인들처럼 가벼이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인지 그녀에게 사랑은 그제서야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이 아닌 수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있는 느무르 공이 바로 그 상대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꽉 닫힌 공동체 속의 가쉽을 전하는 사람들은 꼭 끼는 드레스를 입고 가면을 쓴 듯 가식적이고 비밀스럽다. 거짓으로 위장하는 감정들 속에서 문득 진짜 감정을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임에도 그것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인간들 사이의 흔한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주는 책. |
|
16세기 유럽의 정치,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세 남녀의 극적인 사랑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프랑스의 고전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결혼은 자신의 힘을 지키거나 키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 그 당시 결혼의 조건에서 사랑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클레브 공작부인과 느무르 공, 클레브 공작은 오직 자신들의 엇갈린 사랑과 배신, 오해와 질투로 인하여 끊임없이 번민한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을 숨기는 일보다 진실을 고백하는 일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해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일지 모른다. 하지만 순수하지만 대책 없는 클레브 공작부인의 고백으로 인하여 이들의 애정 전선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결혼한 여성이 다른 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부정의 이야기는 다분히 막장스럽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의 기가 막힌 연애사와의 대비, 한 번의 온전한 만남조차 어려운 이들의 모습은 일말의 동정심이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인물은 클레브 공작부인의 남편인 클레브 공작이었다. 도덕적으로 온당치 못한 사랑을 하는 주인공과는 달리, 열렬히 사랑하는 부인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남자가 사랑, 배신, 오해, 질투의 감정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달콤하진 않으나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궁정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분히 정치적이며, 또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이기에 '클레브 공작부인'이 더 매력적인 고전으로 남아있는 것 아닐까. (이 고전을 읽기 전에 유럽의 역사, 프랑스 앙리 2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훑어보면 더 재미있을것.) ![]() |
|
단체 톡방에서 마파예트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을 읽기 시작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은 간질거리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겨우 토론 직전에야 완독을 했다. 다 읽고 나서 화가 났다. 진짜 절반 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끝까지 아무일이 안 일어나고 끝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책을 왜 읽었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날 것이라 기다리면서 읽었던 제가 다 허무해 져서 해설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원래 클레브 공작부인은 정숙하고 아름다운 분이다. 적당한 곳에 시집을 갔고 남편과 문제없는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멋쟁이 바람둥이인 누무르공을 본 이후 마음이 흔들린다. 그때 발신인과 수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 한 통을 읽고 마음대로 상대를 추측하고 오해가 생긴다. 이를 계기로 클레브 공작부인은 남편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정작 아무일도 없이 그저 마음만 설렜을 뿐인데 공작은 마음대로 부인의 간통을 마음대로 추측하고 병이나 버린다. 그렇게 황당하게 남편을 잃은 후 공작부인은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다.
이 이야기를 읽는데 한숨도 쉬지 않고 재밌게 읽었다. 다만 결론이 원하는대로 나지 않고 큰 사건이 없어 허무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긴장감을 통해 독자의 눈을 계속 사로잡은 라파예트 부인의 필력만큼은 인정해 줘야겠다. 그 간질거지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 공작부인의 그 모든걸 글을 통해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