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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개인주의자 선언 -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내용보기
제목 하나만으로 나를 이렇게 매혹시킨 책도 없다. 그동안 나 역시 은근히 개인주의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족, 회식 자리, 공식 행사, 심지어 내 결혼식조차 참여하고 싶지 않아 별의별 핑계를 찾아내려고 고민하며 살아왔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자가 종종 이기주의자로 혼용돼 사용되는 현실에 때때로 분개하기도 했기에 작년말에 독서모임에 이 책을 추천했고 이번에 함께 읽고
"개인주의자 선언 -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내용보기

제목 하나만으로 나를 이렇게 매혹시킨 책도 없다. 그동안 나 역시 은근히 개인주의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족, 회식 자리, 공식 행사, 심지어 내 결혼식조차 참여하고 싶지 않아 별의별 핑계를 찾아내려고 고민하며 살아왔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자가 종종 이기주의자로 혼용돼 사용되는 현실에 때때로 분개하기도 했기에 작년말에 독서모임에 이 책을 추천했고 이번에 함께 읽고 토론했다.

 

 "개인주의자로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로 산다는 건 가족을 비롯한 모든 관계로부터 내 자유를 지키는 일임과 동시에 인간적, 사회적 존재로서 타협해야 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이 적절히 보완해가며 살면 좋으련만 우리는 왜 이렇게 불편해야 하나. 저자는 양극화와 빈부격차, 불평등과 취업난 등으로 살기 힘든데다 우리 사회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 체질이 증세를 점점 악화시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진단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22쪽)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가 우리의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실종되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용하고 오해하며 개인들에게 '불편함'과 '억압'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왜 개인주의인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우리가 서구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개인들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다. 우리 사회 존립의 근거인 가장 근본적인 사회계약, 즉 우리 헌법 질서의 근간이 그렇다. (25쪽)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 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합리성이다. (27쪽)

 

 

 저자의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의 폐해와 더불어 합리적 개인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다 보니 왜 끝도 없는 자기계발과 비법을 찾아 각자도생의 길로 빠져 서로를 더욱 살기 힘든 지옥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향해 목소리를 모아 폭넓게 연대하지 못하고 부패해가는 집단주의의 그늘 속에서 아직도 숨죽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개인주의자이자 책벌레인 저자의 경험과 깨달음에 공감하며 이 책을 읽었다. 단 두 군데서 아쉬움을 느꼈는데, 하나는 남성 저자의 책을 읽을 때 종종 느끼는 것으로 여성혐오가 아니면 여성독자가 실종된, 남성들만의 내용을 만나고 씁쓸함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또 하나는 영화 <국제 시장>에 대한 논란을 비판적 근거 없이 단순히 진영 논리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 인용한 22쪽의 글 다음에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에서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릴 위험이 없이 강남역, 홍대 앞에서 새벽까지 젊은이들이 술 먹고 심지어 길바닥에서 쓰러져 자기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이 출간(2015)된 다음 해인 2016년 새벽에 강남역 부근에서 여성살인 사건이 일어났듯이 여성 독자로서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거다. 이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새벽까지 술 먹고 길에 쓰러져 자는 그런 경험은 한국 여성들에게는 진작부터 이해불가능할 정도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다. 여성 독자를 배려한다면 최소한 '남성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라도 붙여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상영된 영화 <국제 시장>에 대한 비판은 저자가 말하듯 단순히 진영 논리에서 비롯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 박노자는 이 영화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국제 시장>은 그(덕수)의 '인간승리'에 바쳐진 찬가"로서 "그는 계속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축소판이자 상징으로 등장된다"고 한다. 문제는 "한 개인을 국가의 분신으로 만들고 국가의 한 '분자'만으로 만든다는 것은 바로 전체주의 미학의 기본 아닌가?"라고 질문하며 저자는 "국가와 개인이 일체화되면 늘 벌어지게 되는 가장 무서운 일이 개인이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자율적, 독립적, 비판적 평가도 못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이와 같은 무비판성은, 베트남 파병과 관련된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덕수는 베트남에 기술자로 간다는 것을 오로지 '위험한 돈벌이' 정도로, 광부와 간호사들의 파독의 연장쯤으로 인식하지만, 그 돈벌이 이면에 대해서는 그도, 그를 영웅화시키는 영화의 제작자도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베트콩이 미군 기지에 폭파 '테러'를 저지르는 장면은 나와도, 미군이 베트남 마을들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은 없다. 한국 군인들이 베트콩을 두려워하는 베트남 농민들을 살려주는 구세주로 설정돼 있는 지점에서, 이는 어떤 이념적 입장인가를 넘어 특히 베트남에서 지금도 생존해 있는 한국군 잔혹행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2차 가해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한국 파월군의 미화는 한국에 대한 일종의 '제국화'의 경지에 근접한다."고 하는데 객관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박노자의 분석에 저자도 공감한다면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진영 논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개인주의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영화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a*******5 2019.02.09. 신고 공감 1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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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가벼움에 비해 내용이 알차다『미스 함무라비』
"제목의 가벼움에 비해 내용이 알차다『미스 함무라비』" 내용보기
글쓰는 판사, 문유석 판사가 드디어 소설까지 썼다!! 그가 쓴 『판사유감』『개인주의자 선언』은 읽지 못했지만 이 두 책 때문에 문유석 판사의 이름로 알게 됐고 대략적인 책 내용도 알수 있었다. 요즘 책 구매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책 관련 팟캐스트이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문유석 판사가 나왔다. 『미스 함무라비』출간 때문이었는데 이 팟캐스트를 듣자마자 바로
"제목의 가벼움에 비해 내용이 알차다『미스 함무라비』" 내용보기

글쓰는 판사, 문유석 판사가 드디어 소설까지 썼다!! 그가 쓴 『판사유감』『개인주의자 선언』은 읽지 못했지만 이 두 책 때문에 문유석 판사의 이름로 알게 됐고 대략적인 책 내용도 알수 있었다. 요즘 책 구매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책 관련 팟캐스트이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문유석 판사가 나왔다. 『미스 함무라비』출간 때문이었는데 이 팟캐스트를 듣자마자 바로 구매해버렸다. 판사가 소설을 쓰다니!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몇 번이나 하면서.

 

 

 

『미스 함무라비』라는 제목도 의외였다. 성차별적 용어인 '미스'를 메인으로 내걸다니, 그것도 판사가... 하는 생각이 왈칵, 드는 거다. '작가가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았을리 없어,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했더니 소설 중반부쯤(162쪽) 작가가 충분히 '미스'의 성차별적 용어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나와 안심했다. 예측컨대 출판사측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제목과 표지의 가벼움이 '법정 소설'이라는 용어에서 오는 무거움을 상쇄시키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박차오름 판사의 별명이 '미스 함무라비'였으니 제목으로 달아도 뭐, 하며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한다.(안넘어가면 우짤낀데?)

 

경력 20년의 현직 부장판사 등의 이력에서 이미 문유석 판사가 맡았던 재판이 많았겠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가 맡았던, 또는 주변에서 보아온 무수한 재판 사례 중 현대 사회에서 논쟁적이고 나름의 반전도 있을만한, 소설화하기 딱 좋은 사례들로 구성하였을 것이다. 또 무수한 재판 사례만큼이나 판결문도 많이 써 봤을터이니 글 솜씨 수준도 소설가 못지 않게 반짝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재판 사례를 재미있게 구성한 작가님 덕에 소설적 재미가 상당히 컸다. 뿐만아니라 재판부 구성이나 판사들의 업무 처리, 법원 생활에서 쓰이는 은어들까지 생생히 접한 재미도 컸다. 신성시하던 영역이 별안간 일반의 영역으로 편입된 기분이랄까.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얼마든지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많게는 몇 만 페이지가 되는 자료를 밤새 보며 연구하고, 토론하여 가장 최선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판사들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한세상 부장판사와 임바른 우배석판사, 박차오름 좌배석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사건별로 재판 과정을 보여준다. 드라마 [수사반장]이 떠올랐다. 주인공끼리의 등장과 이야기도 있고 에피소드별로 사건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재판이라는 것은 피고와 원고의 입장에서는 목숨 걸고 싸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도 전문적이고 심각하다. 이를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은 박차오름과 임바른 판사의 개인적 연결고리였다. 임바른 판사가 새내기 판사 박차오름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건 보이지만 문유석 작가는 이 둘을 확실히 사랑의 작대기를 찌르게 놔두질 않는다. 작가 본인도 미안한지 두 판사에게 미안하다고 한 부분은 한참동안 나를 미소짓게 했다.

 

밀린 책이 많음에도 이 책을 사자마자 바로 읽은 이유는, 수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법이나 정치 수업, 또는 공통 사회 수업에서 가치 갈등이나 논쟁거리가 될만한 토론을 유도하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서다. 읽어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더구나 현직 판사가 쓴 소설이다보니 전문가답게 내용 전달이 논리적이고 깔끔하다. 텍스트 자료로 만들기 참 좋을 것 같다.

 

소설의 재미와 재판의 전문성, 사회적 가치 갈등, 사법부의 변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즐거움을 느낄 소설이다.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소설 같은,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7.02.05. 신고 공감 10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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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간의 모습: 개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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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지속해야만 한다 우리가 처한 집단주의(학별,지연,부족,씨족, 단체,대가족 등)는 개인을 질식시키고도 남음이 있고 집단주의의 역사 쌓기와 개인의 왜소화 현상들에서 서서히 탈피를 해야 진정한 자아(정체성)와 진실에 대한 존중은 나라와 단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우리나라에서 널피 퍼져있는 현상들입니다    익숙한 현상들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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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지속해야만 한다

우리가 처한 집단주의(학별,지연,부족,씨족, 단체,대가족 등)는 개인을 질식시키고도 남음이 있고

집단주의의 역사 쌓기와 개인의 왜소화 현상들에서 서서히 탈피를 해야 진정한 자아(정체성)와

진실에 대한 존중은 나라와 단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우리나라에서 널피 퍼져있는 현상들입니다

   익숙한 현상들이 우리를 헤코지하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서 더 좋고 희망찬 세상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읍니다.


 

2.진정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 뗴(무리,집단)에서 벗어나 고유한 나를 찾아야 합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대들보는 "개인"이 아닙니까?

  입에 풀칠 좀 한다고 민주주의가 성큼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3.이제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진정으로 들여다 보고

   먹는것(물질)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그 진정한 가치는 개인을 바탕으로 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진정한 경쟁의 장이 되어야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4.개인과 사회와 나라에 좀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탈피해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가 normal하게 되면 더욱 더 "가치"가 더 중요해 질 것입니다

   ○집단이 개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5.개인의 행복의 원천은 인간관계 즉 사회생활에서 입니다

   즉 수직적인 사회보다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행복"은 배가 되고 더 생성이 됩니다

 

 ○ 우리나라가 지금 보다는 더 행복해지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개인의 말살"이고 지속적으로 조직(단체,큰정부)등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6.신라,고려, 조선왕조에 대한 망함에 대해서는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읍니다

  그저 외세의 침입으로 망한다고 가르칩니다

  ○왕조가 망한 것은 '엘리트"들의 철저와 부패와 연관이 있읍니다

 


 

7.새로운 영웅 즉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의 창조자 영웅이 되어야 겠읍니다, 누가 "우리 모두가"...


 

8.우리의 사회에서 가장 선도적이고 경쟁의 장인 기업체에선  '경영자'의 능력이

  돋보이고 있읍니다. 이런 현상들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이 되어야 겠읍니다.

  ○여하튼 구성원들이 꿈을 말살하지는 말아야 겠읍니다


 

9.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관점이 중요하고 우리의 사회가 아직 건전하고 건강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도처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희망도 있고 앞으로 기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로 조선시대와 같은 형태로 회귀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끝-

k*******n 2021.04.11.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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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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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하는 걸 좋아하고 즐겨했던 우리 친정집이나 시댁 식구 입장에서 나란 사람은 굉장히 독특한 사람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의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니까. 사돈의 팔촌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시어머님이하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까지 병풍처럼 움직이는 걸 좋아하시는 것, 비단 이건 시댁 식구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친정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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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하는 걸 좋아하고 즐겨했던 우리 친정집이나 시댁 식구 입장에서 나란 사람은 굉장히 독특한 사람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의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니까. 사돈의 팔촌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시어머님이하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까지 병풍처럼 움직이는 걸 좋아하시는 것, 비단 이건 시댁 식구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친정집도 아들, 며느리, 딸과 사위까지 대동하기를 좋아하는 걸 보면. 몇 번은 어른들이 좋아하시니까 같이 다니기도 했지만 이젠 외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가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집안 행사에는 가지 않겠다고. 이런 내가 울 엄마도, 남편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서 내 이익을 위해 욕심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상대에게 관심이 별로 없고 내 일만 하는 사람이고 남들로부터 터치 받는 걸 싫어하는 성향이 강할 뿐. 혈연과 지연, 그리고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나 같은 사람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싫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이런 내 성격을 감추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일부러 감추려 하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공통으로 묶이는 것보다 나 하나 일때 편하다는 걸 이젠 알 수 있으니까. ‘미스 함부라비’란 책을 통해 알게 된 판사 문유석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이 미스 함부라비보다 먼저 나왔지만 늦게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나와 상당 부분 많은 게 겹친다고 생각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겁고 고맙다고나 할까?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37)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다수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사실 더 중요하다. 또한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 (93)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일본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격차사회, 계급사회가 되면 역설적으로 행복지수 자체는 올라 갈 수 도 있다. (117)

세상은 그렇게 명쾌하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중략) 한국 사회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절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먼 나라에는 지상 낙원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믿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모든 사회는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고 나름의 특수성이 있다. 그대로 가져다가 베끼면 되는 정답 같은 건 없다. (202)

 

나는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자 며느리 그리고 누군가의 논술 선생님이고 누군가의 제자이지만 늘 생각하고 고민한다. 나보다는 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의 아이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하지만 작금의 세상을 보면 더 살기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보다 해로운 것이 더 많고, 정신의 성숙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혹 하니까. 작가가 말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많아지면 세상은 더 배려하는 세상이 될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8.07.17. 신고 공감 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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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문유석] 침묵이면서 침묵이 아닌 오묘한 빛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침묵이면서 침묵이 아닌 오묘한 빛" 내용보기
함무라비 :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 제 1왕조의 제 6대 왕, 주변국을 정복하고 통치하기 시작한 바빌론 제국의 첫 번째 황제로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 중 하나인 함무라비 법을 제정한 통치자로 잘 알려져 있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일말의 노력. 그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극적인 힘이 아니던가. 사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침묵이면서 침묵이 아닌 오묘한 빛" 내용보기

함무라비 :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 제 1왕조의 제 6대 왕, 주변국을 정복하고 통치하기 시작한 바빌론 제국의 첫 번째 황제로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 중 하나인 함무라비 법을 제정한 통치자로 잘 알려져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일말의 노력. 그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극적인 힘이 아니던가. 사람은 왠만해선 바뀌지 않지만, 세상은 사람보다는 쉽게 바뀔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노력으로. 그래서, 『미스 함무라비』같은 소설이 나오는 것 아닌가. 『미스 함무라비』를 정의를 실현했다, 정의를 구현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클 것이다. 그보다는 세상이 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 관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답이나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 길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한 편의 소설을 본다는 것은 감동을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니까.

 

2.

"알바 시절에 느낀 건데, 그렇게 공부 많이 한 분들이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선느 놀랄 만큼 무지하더라고요. 수컷의 짝짓기 본능이라면, 최소한 상대를 유혹할 가능성이 있는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상대에게 오히려 혐오감만 일으키는 방법으로 그 본능을 표출하니 놀라울 뿐이죠. 친절함, 자상한 배려, 위트, 공감 능력이 아니라 인맥 자랑, 돈 자랑, 음담패설, 러브샷 강요라니. 오늘도 대기업 간부가 자기 가슴털 사진을 보내며 이십대 여성을 유혹하려던 케이스를 봤잖아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대인관계 면에서는, 특히 이성에 대해서는 미성숙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결국 이성을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면서 관계를 형성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 같아요. 유혹이란 대등한 존재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행위예요. 상하관계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멋진 유혹자가 될 수 있을 리가요. 뭐, 중년뿐이겠어요? 클럽에서 여자 꼬시는 비법, 원나잇 비법을 가르치는 소위 '픽업 아티스트'에게 비싼 수강료를 내는 청춘들이 과연 어떤 중년으로 늙어갈지......"

- pp.98~99 박판사의 말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 못하겠습니다. 철이 없었겠죠. 지금은 세상이란 옳고 그른 게 분명하지도 않고, 결코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는 걸 알 정도는 철이 든 것 같네요. 난 고 3때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을 했던 03학번이에요. 그떄로부터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겪은 십여 년은 세상이 축구 경기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말이죠."

- p.133. 임바른 판사의 말

 

박차오름 판사는 당당한 여성 신입 판사다. 그리고 임바른 판사는 조금 경력이 되어, 조금은 요령을 피우는 경력 남성 판사다. 당당하게 얘기하는 박판사의 말도, 그리고 조금은 소심하게 나름대로 변명을 하는 임판사의 말도 납득이 간다. 

 

제목에서 뭔가 화끈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판사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속았다고 하실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20년 정도 판사로 일하면서 든 생각은 법정이든 세상이든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 p.385

 

그렇지. 정답이 없는데 정답을 찾으려 한다는 그 자체가 정답인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이유도 읽는 이유도 그게 무엇이든간에 무엇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시국은 어째 어수선하고 지금의 법관들도 온통 의심의 먼지더미 위에 앉아있는 마당에 『미스 함무라비』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들이 법정에서 펼치는 이야기들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많지만, 때로는 실망스런 결말을 내려주기도 한다. 가치관이 달라졌을 때 하는 실망은, 결코 객관화시킬 수 없는 나의 주관적 해석이다.

 

3.

뭔가 느낌은 왔는데, 이것이 감동인지 슬픔인지 실망인지 모를 때가 있다. 『미스 함무라비』가 그렇다. 당당한 박차오름 판사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공감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임바른 판사를 보면서 저 사람을 욕해야 하는 건지, 칭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무런 판단도 내리면 안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판사든 임판사든 또 한명의 주인공 부장판사든,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저마다 펼쳐갈 뜻이 있고, 또 그 뜻을 마음대로 펼치질 못할 것을 알았기에 판사란 임무에 그렇게 힘겨워하면서도 그 임무를 해 나간 것이 아닐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내가 가는 길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주 온전한 길이 되지 않을까.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내 맘은 천천히 달래어졌고, 내 맘에 서서히 "고요"라는 물이 흘러들어온다. 그 고요는 침묵이면서 침묵이 아닌 아주 오묘한 빛이라고 할 수 있겠다.

 

 

 

 

 

h******o 2018.08.06. 신고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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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내용보기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이 책의 프롤로그 '인간 혐오' 부분을 거의 탐독을 하듯이 읽었다. 마치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지향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어느 지점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는, 현직 부장판사의 불편한 진실 알리기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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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이 책의 프롤로그 '인간 혐오' 부분을 거의 탐독을 하듯이 읽었다. 마치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지향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어느 지점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는, 현직 부장판사의 불편한 진실 알리기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는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좋게 냉소주의였고, 정확하게 말하면 비겁했다. 불의를 질끈 잘 참는다.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된다는 걸 일찍 영악하게 깨우친 거다. (8쪽)

 

나도 저자처럼 꽤 연기를 잘해내는 쪽이었다. 그래서 나름 사회성이 좋다는 말도 듣고 산다. 그러나 너무나 피곤하다. 이중적인 모습을 스스로 들여다볼 때 가장 피곤하다. 이중이보다는 다중이가 세상 살기 편하다는 말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도 이중이 밖에는 되질 못하고. 지금은 나름 짬밥이 많아서. 할 말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할 말을 하고 난 다음의 불편함은 고스란히 말한 자의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9쪽)

 

그래서 저자는 칼럼에서 판사로서의, 직장인으로서의,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유감을 칼럼이라는 자리에서, 또는 이렇게 책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또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면서 그에 대한 공감을 피력하고 있고 말이다.

 

 

 

저자인 문유석 판사는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말하기 위해, 일상에서 겪은 직간접 경험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증인에 대하 예의", "딸 잃은 아비를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문학의 힘",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 등의 글에 깊게 몰입했다.

 

특히. "문학의 힘" 부분은 두 번 이상 읽은 듯하다.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 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154쪽)

 

평소에 문학 작품 읽기를 강조하는 나의 생각이 위의 글에 전적으로 녹아있는 것 같아서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다. 문학은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전형적이지 않는 인간의 민낯을 통해. 오히려 독자는 세상의 충동적이고 모순 덩어리인 어떤 단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판사는 단순하게 정리되는 육하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조금 더 깊숙한,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포착해야 할 지도 모르는 직업이다. 사건 기록을 읽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수많은 다양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알고 있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판사인 저자는 '문학의 힘'을 강조한다.

 

협소한 상식에만 갇혀 있는 인간은 비상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해도 여전히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156쪽)

 

이런 가치관을 지닌 판사의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사족]

직장 생활 삼 개월 만에 현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쓴맛을 느끼고 있는 우리 딸내미.

딸에게 이 책과 더불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 가나출판사)"을 선물하려 한다.

 

n******6 2018.06.04. 신고 공감 7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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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버티며 살아내는 것의 가치와 무게
"매일을 버티며 살아내는 것의 가치와 무게" 내용보기
“눈치를 많이 봐요.” 4학년 담임이 사람이 학부모 상담기간에 어머니께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스럽지 않은 평범하고 관심 없는 선생들의 일상적인 말이라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어머니께 전해들은 말이 저 정도니 실제로 어떤 말이 오갔을 지는 뻔하다. 어머니는 당시 가게를 하고 있어서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못하셨다. 이상하게 그 선생은 여학생들을 편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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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많이 봐요.”


 4학년 담임이 사람이 학부모 상담기간에 어머니께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스럽지 않은 평범하고 관심 없는 선생들의 일상적인 말이라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어머니께 전해들은 말이 저 정도니 실제로 어떤 말이 오갔을 지는 뻔하다. 어머니는 당시 가게를 하고 있어서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못하셨다. 이상하게 그 선생은 여학생들을 편애했고, 학교에 자주 찾아오는 부모의 아이를 더 예뻐했다. 눈치를 많이 본다는 말은 내가 중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상처로 남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 생활하는 학생이었는데, 눈치를 보는 학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래 보지 않던 눈치까지 더 보게 되는 몇 년 간의 학교생활이었다. 이 선생도 내게 눈치를 본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것인지, 우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무력한지.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고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p.12)


 상처가 되는 기억은 오래 남는다. 이제는 아물어 더 튼튼한 살이 차올랐으려니 싶지만, 막상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문명과 사회, 국가와 가정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나’ 즉, 개인이다. 아무리 강한 사회와 국가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는 개인들의 삶이 상처투성이로 곪아있다면 건강한 사회와 국가라 할 수 없다. 그것에 더해 곪아 있는 상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위기다. 곧 붕괴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빈부격차, 불평등, 취업난, 저성장. 그런데 지구 전체가 겪고 있는 이런 보편적 질환만으로도 힘든데 우리 사회 특유의 체질이 증세를 점점 악화시켜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p.23)


 한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사그라지지 않고 암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한다. 언론의 편향과 집회 참가의 비순수성·비자발성, 본질을 가린 껍데기 싸움, 검찰 개혁을 둘러싼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기싸움 등 말이 넘친다. 오해와 음모, 고소와 고발이 판친다. 고통스럽다. 뉴스를 검색하는 것조차 지친다. 어쩌면 이렇게 지치게 만들고 혐오를 조장하는 쪽이 최종적으로는 이기게 될 듯하다. 하지만 그 사이 고통 받는 쪽은 우리들이다. 이 사회와 국가, 문명을 지탱하는 ‘개인들’말이다.

‘개인들’간에도 갈등과 반목은 팽배하다. 무한한 경쟁은 무한한 진흙탕 싸움의 장을 만들어 냈다. 나보다 조금 더 나으면 시기하고 깎아내리고 나보다 조금 더 못하면 깔아뭉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배우고 몸으로 습득해 왔다.


 지난 주 회사에 신입사원이 한명 들어왔다. 내가 사수역할을 맡게 되어 일주일간 함께 일했다. 나보다 14살이 어린 20대 친구다. 예의바르고 겸손하다. 일머리가 있어 가르쳐 준 것을 곧잘 알아듣는다. 말이 많지 않은 친구였는데, 딱 한 번 흥분하며 말을 이어간 주제가 있었다. 스펙과 취업이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 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p.114)


 IMF직후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취업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던 내게도 그 신입사원이 쏟아내는 말과 경험은 놀라웠다. 책에서 언급한 ‘개인의 노력’과 ‘구분 짓기’가 일상화·내면화 되어 20대는 물론이고 10대 때부터 오로지 스펙과 취업만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일반 4년제 대학에 입학해 군대 전역 후 생각이 바뀌어 폴리텍대학에 재입학했다. 2년 동안 자격증 8개를 취득하고 졸업학점이 4.5만점에 4.2를 받았다. 지역의 중견 기업에 취업해 2년 동안 일하면서 평균연봉 5천만 원을 받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하고 좀 쉬다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다. 신입사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대답했다.


“이야 진짜 대단하네요. 엄청 열심히 살았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 저는 스펙이 제일 딸려요.”

그러더니 또 친구들 사례를 한참동안 이어갔다. 나는 중간에 끼어 들 수도 일일이 반응해 줄 수도 없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절대로 쉽게 평가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사회에 던져지기 전부터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처절하고 외롭고 고독한 자기만의 전쟁을.

박근혜를 탄핵시킨 시초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이었다. 지금 조국 장관을 아직도 물고 늘어지는 건 딸의 스펙 관련 이야깃거리다. 다른 그 어떤 주제보다 지금의 청년층과 그 청년층의 부모 세대를 분노케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소재다.

나는 이 책과 신입사원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지난 5∼6년간의 현대사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왜 선비인 척하느냐’는 한마디다. ‘선비’가 모멸적 용어인 세상이다. 위선 떨지 말라는 것이다. 속 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 받는다.” (p.133)


 나보다 위 세대가 우리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우리 세대는 이제 우리 밑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 간극은 더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386,486세대에게 가졌던 일말의 부채의식은 이제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다. ‘청와대가 좌파운동권 판이다’라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 아예 무시해버리는 세대가 있는 반면, 유튜브를 검색해 그들 진영만의 콘텐츠를 찾아보는 세대가 탄생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라진 균형. 각자의 진영, 각자의 편의 이야기만 들으려 하고 보려 한다. 계속해서 재생산하고 공유하며 퍼져 나간다. 결국 그것이 거짓이고 루머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퍼져나가 공유된 여론과 분위기는 그들을 더 결속하는 접착제가 된다. 그들에게 ‘균형’, ‘상호이해’, ‘조화’ 따위의 개념은 ‘선비질’이 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다. ‘개인’과 ‘개인들’이 바로 알고 바로 서야 한다. 너비가 고작 10cm에 불과한 평균대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불안하고 무섭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어찌 흘러 흘러 가다보니 나 또한 뒤늦게 나이 먹어서 법관 해외연수 덕에 팔자에 없는 하버드 로스쿨을 일 년짜리로나마 다녀오게 되었고, 체계적인 법리 실력은 없이 구체적 분쟁 해결에만 관심 많은 야전형 판사로 일하고 있다이런 쓸데없는 글이나 쓰며 말이다. 뭐, 나는 이런 내가 좋다.” (p.80)


 ‘어찌 흘러가다보니…….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라는 저자의 쿨함과 시크함이 필요하다. 개인의 내적 상처는 모두에게 동일한 경험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 또한 그렇다. 나와 정치적 생각이 다르고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 개인의 내적상태와 삶의 궤적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닌 다른 ‘개인’과 ‘개인들’의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내가 그렇듯이 그 사람과 저 사람들도 ‘어찌 흘러가다보니……. 지금이 된 것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내가 내 자신에게 그렇게 너그럽듯이 최소한 그 절반정도는 남에게도 그래야 한다. 아니면 답이 없다. 나뉘고 쪼개진 채로 아등바등 버티는 것에 불과한 사회와 국가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한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9)


 출발은 ‘내가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다. 서로가 어깨를 걸고 발을 맞추지는 못해도 방향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고 국가고 문명이고 소용없다. 모래처럼 흩뿌려진 ‘개인’들만 가득할 뿐이다. 단순히 아이를 지켜주는 것을 넘어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20대 초반부터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무한한 경쟁과 사투를 벌이는 청년들에게도 위로와 칭찬이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 청년들을 비롯한 우리 세대도 각자가 각자의 ‘개인’의 일을 하고 책의 제목처럼 ‘개인주의 선언’을 하고 살아도 별스럽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와 문명을 유지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일상은 필수다. 그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힘들고 하루를 겨우 버티는 것의 연속일 테지만,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을 지탱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니까.

l****h 2019.11.12. 신고 공감 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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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의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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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이다. 예전에 김영란 전 대법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조국 현 민정수석의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법조인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그 제목으로 인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손석희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기대하게 되었는데, 첫 장부터 압도되었다. 그의 필력에.   내가 알기로 법학은 상당히 논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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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이다. 예전에 김영란 전 대법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조국 현 민정수석의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법조인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그 제목으로 인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손석희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기대하게 되었는데, 첫 장부터 압도되었다. 그의 필력에.

 

내가 알기로 법학은 상당히 논리적인 학문이다. 대학시절 행정학을 전공했기에, 법과목은 커리큘럼상 전공필수, 선택, 그리고 청강의 형태로 접했다. 90년대 학번인지라 그 당시에 법학 서적은 은,,,가 등 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자로 씌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법학을 전공한 학자나 법조인은 글을 쓸 때,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글을 쓰기는 해도, 맛깔나는 문장들처럼 표현의 미학을 살리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문유석 판사는 그러한 나의 선입견을 초장부터 깨뜨렸고, 이 책은 결국 퇴근후 찾아간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끝장을 보게 되었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무릎을 탁 치던 생각이 난다. 그 탁월한 묘사와 표현에 말이다. 그런데 [개인주의자 선언]도 책에서 다루는 그 주제의 묵직함에 비해서는 가끔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게 되는, 저자의 글솜씨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현직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이고, 공부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공신(?)급의 인물이다. 3때 전국모의고사에서 3번이나 수석을 했고, 서울법대에 전국수석의 성적으로 입학했다고 하니, 학업에는 넘사벽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학창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상과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재판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주관적으로 밝히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저자가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집단주의 수직적 문화속에서 우리들은 거의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는 서열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넓은 집, 빠른 차, 학벌, 외모, 사는 동네, 재산 정도 등 자신의 현재에 감사하기 보다는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의 이웃을 쳐다보느라 왜소해지고, 의기소침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다. 결국 모든 부분에서 일등을 차지할 수 없기에 승자는 없고, 강자보다는 약자를 찾아 갑질과 같은 우월성을 증명하게 되는 피로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적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돌 정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이 문장은 저자의 속내이자 솔직한 표현이다. 그 표현과 핵심적인 사회상의 열거에 탄복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주의가 결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결국은 개인주의, 즉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연대가 필요할 때는 서로 힘을 모으는 건전한 시민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1,2,3부로 구성되어 각 부에는 해당 주제에 연관되는 소제목이 달린 글들로 엮어져 있다. 일종의 칼럼집이고 실제 저자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보완, 수정해서 책에 실은 글도 있다. 목차만 보아도 유독 눈에 띄는 소제목이 있어, 통독이 아닌 발췌독도 가능하게 구성되었다. 현직 판사의 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주로 사회문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학계의 정설과 해당 분야 전문가의 연구 성과도 소개하여 전체적으로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고, 알고는 있는데 어찌 표현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해부하듯이 글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적시하면서도 개선점을 친절하게 대안으로 제시한 점이 좋았다. 개인으로서 나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자세,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 참 유익했고시야를 보다 넓혀 이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평적 관점을 가지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이 주는 힘이랄까? 학력고사 전국수석에 서울대법대와 하버드법대를 거친 부장판사라도 일반인들은 그 이름조차 모르는데, 이 책 한 권이 [문유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된다는 것. 저자는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며 글쓰기를 취미로 삼는다고 하는데, 인세보다는 자신의 이름이 좋은 의미로 널리 알려진다는 보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도서구입에 소득공제혜택이 주어진다는데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런 양서를 접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n 2018.07.12.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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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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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현직 판사이자 미스 함무라비, 판사유감, 얼마전 발간된 쾌락독서까지 적지 않은 수의 저서를 집필한 문유석 작가님(현직이니 판사님이라 불러야 하나?)의 책을 처음 접했다..저자의 다른 저서을 읽어 본 적도 없고 따로 들은 적도 없기에 제목만 보고 골랐다. 태생적으로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색을 띤 군대식 한국 문화를 소름끼치게 싫어하기 때문에(싫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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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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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이자 미스 함무라비, 판사유감, 얼마전 발간된 쾌락독서까지 적지 않은 수의 저서를 집필한 문유석 작가님(현직이니 판사님이라 불러야 하나?)의 책을 처음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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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저서을 읽어 본 적도 없고 따로 들은 적도 없기에 제목만 보고 골랐다.
태생적으로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색을 띤 군대식 한국 문화를 소름끼치게 싫어하기 때문에(싫어함에도 내가 상위 층/계급에 위치했을 땐 이런 문화를 이용/묵인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별 고민도 없이 구매하게 됐다.
.
반복된 말이지만 문유석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단 한권의 책을 읽고 말하기엔 섣부르게 보일 순 있겠지만 앞으로 이 분의 책은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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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저자 자체가 유머가 있다. 말 그대로 글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쓰신다.
그리고 섭렵해 온 문화의 스펙트럼이 넓다. 이러한 책을 쓰셨으니 전문적인 지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은 당연한 것이고, 영화는 물론 만화책도 많이 보신 것 같다. 중간중간 영화나 만화로 예시를 드는 부분들이 꽤나 많았는데 나로서는 너무 반갑고 이해도 쉬웠다.
마지막으로는 나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건방져 보일 순 있겠지만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저자의 기본적인 생각들과 성향/경향,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 떠올리는 생각과 대처하는 행동들이 너무 많이 겹쳐져서 마지막 즈음엔 동지애 비슷한 느낌까지 들었다. 심지어 유머코드도.(그냥 생각이 비슷하다는거다, 넓이와 깊이는 청계천과 태평양만큼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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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좀 이야기 하자면, 제목은 개인주의자 선언이지만 실제로 개인주의에 대해 설파하는 것은 전체 3장 중 1장 정도 뿐이다. 물론 중간중간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인주의에 국한 된 것이 아닌, 저자가 생각하는 사회 정의와 우리나라가 가야할 이상적인 목표, 방향에 대해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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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중심은 '다름을 인정하자' 이다.
그 것이 개인이든, 좌우, 성별, 지역, 출신, 국가, 인종을 포함한 모든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세상엔 모두가 다 만족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니 최대한 서로 맞춰갈 수 있는 합리적인 차악을 선택하자. 이게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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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본인을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 라는 단어의 온도는 차갑게 보인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선 말이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저자는 본인의 본인에 대한 설명과는 다르게 상당히 따뜻한 사람처럼 보였다.(솔직히 인도주의적이다 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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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 대한 존중의 중요함은 본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주의는 유아적 이기주의와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나와 나의 생각과 생활이 불가침 영역이듯이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선 배척과 무관심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개인주의자는 절대 차가운 사람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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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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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認定, recognition)이 모두가 당연히 가져야 할 인정(人情,Humanity)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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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속독학원 이야기랑 평균수명 연장(디스패치/대장금)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땐 실제로 소리 내어 웃었다. 텍스트로만 구성된 책을 읽으면서 현웃터진 적이 얼마만인지 가늠도 안된다 ㅎ
n****s 2019.01.1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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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개인주의자선언 -문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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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 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소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개인주의자 였다.판사가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하다니 뻔뻔스럽다고 여길 이들도 있을 것이다.사회에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으며,더 나아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위해 다른 입장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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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문유석 


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소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 였다.


판사가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하다니 뻔뻔스럽다고 여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회에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위해 다른 입장을 가진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 꾼다.


지은 책 [미스 함무라비] [ 판사유감]




이 책의 프롤로그 인간혐오를 시작으로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2부 타인의 발견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그리고 에필로그 우리가 잃은 것들 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쉽고 재밌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재밌게 말하는 능력을 가진 동네 오빠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생각지 못한 사회 곳곳의 문제들을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며 읽었다.


잘 모르는 용어들은 인터넷으로 찾아가며 정말 즐기듯이 읽었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사회의 문제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문제고 뭐고 생각없이 살아왔던 내가


우리 사회를 위해 일말의 마음의 빚이라도 덜어 낼 수 있는


그 시작을 한 기분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다방면의 책들을 많이 소개하기 때문에


관심 가는 분야의 책들을 쉽게 선택해서 읽어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이 책에 나와 있는 다른 책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판사 문유석은 재미없는 책은 과감히 덮어버린다 하였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믿고 읽어보아야겠다. 








p 267 작은 책임부터 부담 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다. 잘하든 못하든 뭔가를 책임지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고 못한 부분은 감싸주고 격려하는 문화가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을 만들어낸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거창하진 않지만 작은 것 무엇이라도 시작해보자.


일단 함께 살아내야 하니 더 잘 사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그리고 가슴 찡한 에필로그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누구보다 이 사회를 생각하고


서로를 지켜주기를 원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


나 또한 그런이가 되길 원한다.


따뜻한 개인주의자.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m****b 2020.01.30.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