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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내 영혼의 편지...내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묵상하자 현직 목사인 전담양 시인이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내 영혼의 편지’를 최근 출판하였다. 종교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영적 평안과 치유 효과가 있음을 작가는 밝히고 있다. 전작인 ‘쉴만한 물가’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해설이 첨가되어 읽는 동안에 마음이 평안해지는 걸 체험한다. 여느 시인처럼 기교나 시적 재능을 드러내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으나 오히려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내 마음은 항상 성난 파도인데도 당신의 사랑은 그 파도를 평안으로 걸어 나를 위로하시고’(P.14)처럼 어디 마음 둘 곳 없는 현실 속에 격동적인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기 어려운 형국에서 주님이 그 파도를 잔잔하게 해주시고 마음의 위로를 아끼지 않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또한 맘껏 누리고 있다. 소위 ‘은혜’를 입는 모습이 역력하다. ‘광야 위에 만나를 뿌렸던 순종의 천사가 당신의 마음, 굳어진 대지 위로 날아옵니다’(P.17).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어려움에 직면하자 원망과 불평, 불만을 토로하며 마음이 편벽해져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위로를 주고자 다가온다. ‘당신이 기쁠 때 축하의 꽃가루가 되고, 당신이 아플 때 감싸는 반창고가 되고, 당신이 슬플 때 위로의 손수건이 되어 줄께요’(P.23). 바로 주님만이 할 수 있는 확실한 동반자로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주께 두 손 들고 간절히 기도하오니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과 육의 대지에 자라난 질병의 뿌리가 메마르게 하옵소서’(P.33). 모든 이들의 희망사항이 아닐는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믿음 없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 회개가 필요한 대목이다. ‘세상 메아리가 외치는 행복은 줄 수 없어도 겨울을 쓰다듬은 봄날처럼 당신의 평생에 내 사랑과 평강으로 쓰다듬어 줄께요’(P.69). 세상이 원하는 기준의 행복이 아닌 주님 안에서 거하는 평강과 사랑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시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간단한 개요가 나온다. 시인의 경험이나 자전적 수필 형식을 통한 고백과 함께 해설을 서술한 후에 시를 만나게 된다. 눈에 띄는 용어 중에 ‘못자국 난 손’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고통을 승화시키고 눈물을 닦아주며, 두려움을 이기는 힘을 준다. 아울러 평강과 사랑을 함축한다.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헌신적인 희생은 비로소 ‘다 이루었다’는 자기 고백을 들을 수 있다. 비록 못 박히는 죽음을 경험하지만 부활의 주님은 세상 표현으로 옮기면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더욱더 그 사랑이 위대하게 다가온다. 흉터 난 손이지만 부활의 완전함으로 상처난 심령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도 나의 끝사랑이 되어주세요’(P.103). 흔히 첫사랑은 기억하거나 많이 언급하지만 끝사랑이란 표현은 잘 들어보지 못한 까닭에 생경하게 다가오는 시어다. 오직 예수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확신의 표출이자 믿고 의지하는 완벽한 대상이다. ‘예수를 아는 자에게 절망은 없다’(P.110). 경구처럼 다가온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오늘 흘리는 나의 눈물은 마음의 그릇을 스며드는 잉크 한 방울’(P.113). 시적 표현이지만 마음을 꿰뚫는다. 눈물을 흘리는 만큼 영적 평안은 커지기 마련이기에. 그리고 어느새 스며들어 주변을 환하게 물들인다. 예수의 향기로. ‘내 친구여, 인생의 밤을 괴로워말고 곁에 계신 그 손 붙잡아 소곤소곤 마음을 나눠보세요. 매일 나를 괴롭히던 절망의 꿈들은 등 뒤로 밀어내고 당신 마음 깊은 곳, 소망의 빛 조각으로 쓴 인생을 함께 속삭여 보세요’(P.139). 괴로워 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조용히 기도하며 주님과 영적 교감을 가져보자. 어느새 평강이 나를 감싸는 걸 체험할 테니까. ‘기도는 쉬지말고 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의 손짓을 주님께 올려드리기 전에 먼저 주님이 우리 삶에 어떤 뜻과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주님의 손가락을 바라봐야 함’(P.176).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외에 더 중요한 게 무얼까. 주님은 언제든지 ‘콜’할 마음이 있는 데 정작 우린 딴전을 피우기 바쁘니. 이래서야 복을 받을 수 있으랴.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정성이 필요하다. ‘당신의 빈 마음을 내게 주세요. 나는 당신을 위한 한 송이의 꽃. 태초부터 영원토록 생명으로 가득한 즐거움의 근원. 당신 곁에서 언제나 있어 설레이는 두근거림으로 피어 있을래요’(P.218). 허다한 마음, 복잡한 마음이 아닌 빈 마음으로 다가올 때 주님은 채워준다. 설레이는 꽃송이가 되어 즐거움의 근원으로 다가온다. 기대하라.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받은 골짜기에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찾아오십니다’(P.241).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의 근원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자.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름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인생이라는 이름표에 “나는 고아입니다”라는 슬픈 정체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P.244). 콕 집어쓴 표현으로 고스란히 아픔으로 여며진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복잡한 심경 속으로 들어가 ‘내 영혼의 구원’을 하고자 하는 예수를 만나자. 그 길은 오직 기도와 믿음뿐이다. 세상에 널린 ‘고아’ 같은 삶에서 이젠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거듭나자. 괴로움도 슬픔도 뒤로한 채 오직 주 예수를 통해 온전한 기쁨을 누리자. 심금을 울리는 인위적 시어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잔잔한 가운데 시나브로 올곧게 스며드는 촉촉한 은혜를 입는다면 제대로 감상이 된 거다. 고스란히 은혜로, 축복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 세상의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경 전반에 걸친 굵직한 사건 및 내용이 언급되다보니 초심자나 문외한은 다소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묵상하다보면 하나하나 내 껏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따라서 내적치유효과가 있다고 말한 대목을 실제 체득하게 된다.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오고 평안한 내적 안녕과 평안이 찾아온다면 오롯이 독자의 몫이자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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