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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북스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미래의 문학' 시리즈는 현대의 대표적인 SF들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첫 작품인 콜린 윌슨의 <정신기생체>를 시작으로 스티븐 백스터의 <타임십>까지 5권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필립 K.딕이나 아이작 아시모프,로버트 하인리히 같은 소수의 작가들에만 관심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 작품 시리즈가 무엇보다도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출간이 많이 되지 않은 장르였던 SF에도 새로운 브랜드가 생기는 것 같아서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뻤다. 그러나 솔직하게 첫 권인 <정신기생체>를 읽고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초보자들이 읽기에는 조금 난해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네번째 작품인 <컴퓨터 커넥션>을 읽었는데,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런 SF가 있을까 싶었다. 보통의 SF 작품들이 기발한 상상력과 현재의 우리도 상상할 수 없는 과학적 설정을 비교적 작품 안에서 정교하게 만들어 놓는다든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미지의 세상과 존재에 대한 기대감 혹은 불안감 등이 작품에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이 작품에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기승전결의 느낌도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왠지 모르게 그래픽 노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해서 서로 대결을 펼치는 구도로 가고 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 때문에 읽기가 애매했다. 중간에 잠깐 쉬었다 읽게 되면 흐름을 놓칠 정도로 각 챕터별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구성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연한 사고로 자신의 몸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사신이 된 에드워드 커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이후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와중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불사신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죽이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도중 다음 목표로 체로키 과학자 게스 박사를 타겟으로 삼고 그와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짧게 스토리를 말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야말로 한 작품에 여러 편의 이야기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미 작가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고 하니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놓지 말고 읽거나 읽는다면 자신이 이야기 전개를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는 지 판단해본 후 읽어보기를 권한다. 마치 필립 K.딕의 무의식과 종교적 소재를 다룬 난해한 작품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다른 SF소설에서 여러 편으로 나뉘어 사용할만한 소재를 한꺼번에 한 작품 안에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앨프레드 베스터의 다른 작품인 <타이거! 타이거!>,<파괴된 사나이>를 먼저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더 실망감이 클 것이고 이 작품을 먼저 읽어봤다면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해봤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호불호가 갈릴 작품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기존의 작품과 다른 작품을 보고싶어했던 독자라면 이 작품같이 여러가지 이야기가 뒤섞여 나오는 특이한 방식의 구성을 가진 작품에 환호할 것이고 기존에 읽었던 개인과 거대한 조직 간의 비밀이나 불안한 주인공의 자아라든가 추격전 같은 미래의 어두운 부분을 다룬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에게는 한 길로 쭉 나아가지 못하고 여러 곳으로 뻗어있는 전개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 불만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 작품은 후자였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까지 포함하여 계속 난해한 작품만 읽고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물이 개인과 거대 국가나 세력 간의 대결 구도와 함께 한 개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배경에서 남녀주인공들간의 불안한 사랑을 주로 그리고 있고 추리가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나 트릭으로 밝혀내는 것이나 스릴러가 어두운 분위기를 계속 끌고가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분위기를 가졌다면 SF는 과학적 지식을 배경소재로 삼아 근미래에 펼쳐질 수 있을 내용들로 풀어가는 것이 정석인데 이 작품은 그런 정석에서 약간 벗어나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여기에 책 표지에 나와있는 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부분이 거의 나오지 않고 대화로 풀어가는 구성도 밋밋했다. 어떻게 본다면 약간은 판타지 구성 방식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일반 인간이 아닌 초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다. 차라리 인간과 초능력을 가진 인간의 대결 구도로 더 세게 나갔더라면 그 속에서 인간이 발전된 과학도구를 활용하거나 또는 대결 속에서 고뇌하는 부분이 좀 더 현실감있게 묘사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현실에 대한 모멸감이라든가 관심 없이 오로지 초능력을 가진 인간과 또다른 초능력을 가진 인간에만 집중한 듯이 설명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곁가지라도 그런 부분을 다뤘다면 이렇게까지 난해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2013/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