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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고 셀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났다. 기록되지 않은 전쟁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화염은 멈추지 않고 있음을 다양한 매체로 전달받으면서도, 심지어 전쟁의 위험이 낮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펼치면서도 고약한 시간을 막연하게 지나쳤을 뿐이다. 알바니아 소설은 처음이다. 이스마일 카다레도 처음이다. 게다가 소리 없는 전쟁이 남기는 강렬함도 처음이다. 고국에 묻히지 못한 자국 군인의 유해를 되찾으려고 한 나라의 장군이 알바니아를 찾으면서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20여 년 전에 끝난 전쟁의 상흔이 발견된 유해로 다시 드러나면서, 아니 장군이 한때 적국이었던 나라로 출발하기 전에 수많은 유가족이 찾아오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군인들이 이국의 땅에서 쓰러지는 순간에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혼령이 고국에 되돌아와 잠들게 해야 하는 숭고한 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투성이가 된다. 과연 기억에 의지한 기록으로 찾아낸 유골이 자국의 군인이 맞는지, 과연 그들은 조국의 땅에 묻히길 원하는지, 과연 그들의 희생은 가치가 있는지…… 장군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고요한 전쟁은 알바니아 곳곳으로 확산된다. 백골이 된 군인들의 기억이 벌떡 일어서서 전쟁의 불합리성을, 죽었을 때 자국의 군인임을 확인케 하는 인식표처럼 새겨진 소설이다. 피가 튀기지 않고도 이렇게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그릴 수 있음이 놀랍다. 다 드러내면 아무리 무시무시한 공포영화도 시들해지는 법. 적당히 감추며 묘사한 또 다른 전쟁에서 승전보를 올릴 확률은 제로라는 것을, 이 책을 든 독자는 짐작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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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전쟁미망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분들의 나이는 80대부터 90대 초반이었는데 꽃띠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정말 애절했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달을 함께 산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애틋함을 넘어 세월의 절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중에는 유해를 찾지 못해 현충원에 이름 석 자만 새겨진 미망인의 사연도 소개되었는데 『죽은 군대의 장군』 이 떠올랐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이 한 전쟁미망인의 사연을 보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20년 뒤 자국 군인의 유해를 찾는 일. 자신의 임무이긴 했으나 그 일 자체가 모순이었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다. 군인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그들의 신장이며 자잘한 특징, 인식표를 중심으로 땅을 파헤치며 유해를 찾는 일이었는데 과연 그 유해들이 정확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장군과 함께 동행한 신부(神父)는 한 가족의 부탁을 받고 Z대령의 유해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외국인 장교의 신분으로 알바니아 일꾼들을 써가며 유해를 발굴하는 일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칼슘의 왕국에 발을 들여놓는 이 기분'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들은 과거, 그것도 전쟁이 치러진 땅을 찾아 죽음의 흔적을 다시 일으키는 힘겨운 임무를 맡고 있었다.
타국에 묻힌 병사들의 의중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유해를 찾아 나서는 일보다 더한 위선은 없어. 나라면 그런 호의는 사양하겠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병사 하나하나의 의중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힘겹게 그들을 유해를 원한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런 유해를 찾는 장군도 장군이지만 그런 그가 알바니아로 떠나기 전에 유해를 찾아달라고 찾아오는 가족들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불확실한 정보와 간절함만 가득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군은 그러겠다고 무마시켰다. 과거를 찾아 가는 일. 그것도 전쟁의 잔상을 뒤져 죽음을 꺼내야 하는 일을 하는 장군의 삶은 미래로 한발짝도 못 디디며 뒤로만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게 될 거란 나의 예상의 뛰어넘은 것은 외국인 장교의 시선 덕분이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유해를 찾는 것도 달갑지 않고,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전쟁의 참상을 보게 될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제3자의 시선으로 흔적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좇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았다. 온통 잿빛으로, 생명력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소설의 전반전인 분위기 속에서도 조금씩 빛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축구장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한 여인을 바라보는 것과 유해를 파헤쳐야 하는 상황은 굉장히 대조적이었는데 과거의 죽음이 아닌 현재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와중에 Z 대령의 행적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모든 진실을 마주한 뒤 힘들게 찾은 유해가 든 자루를 뻥 차버린 장군의 행동에서 그들이 당면하고 있었던 모순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전쟁 통에 어느 누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 Z대령도 장군의 행동도 비난 할 수 없었다. 장군과 독자인 우리가 목도한 것은 '추악하고 부조리한 전쟁의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요즘 들어 몇번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온전히 믿지 않게 되었다. 나또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일지라도 그간 살아왔던 사고방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자신을 꾹꾹 눌러 다스리지 않으면 그 결과의 여부에 절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는 현재의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죽은 뒤에도 그 평가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301쪽)
내 주변의 배경을 무엇으로 만드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적어도 추악하고 부조리한 진실을 만들어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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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은 민족만이 전쟁의 비극적인 슬픔과 처절함을 안다. 특히 우리나라는 말이다. 우린 그 느낌을 교과서에서만 봐서 그런지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다.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나. 낯선 땅에서 깊히 잘들어 있는 군대의 시체를 위해 장군은 그렇게 날아갔나 보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그렇게 전쟁을 허무하면서도 황당한 느낌을 글로 표현했다. 낯선 이국땅에 묻혀져 있는 병사들을 찾아 떠나 열심히 땅을 판다. 혹시나 그 곳이 아니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면서 말이다. 사실 찾는다고 죽은 이가 살아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방인이로 사는게 얼마나 비참할까?
그 비참함을 풀어주려 장군님께서 친해 방문하신거다. 조국을 대표해 죽은 시체를 찾는 장군이라...설정 자체가 아니러니 하니 전쟁이란 게 얼마나 웃긴 것인가.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은 저자인 카다레가 당시의 전쟁, 알바니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을 주인공을 내세운 점이다.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같지만 반대편의 입장으로 조국을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획기적인일인가? 문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작품이 100년 안에 또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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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이스마일 카다레
장군은 알바니아로 간다. 20년 전, 당시 적지였던 알바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죽은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해서 본국으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알바니아에 도착하자, 장군은 전사자 신상 목록에 의지해, 과묵한 신부를 유일한 동반자로 삼고 인부들과 함께 묏자리를 찾으며 유해를 발굴해 나간다. 장군이 알바니라 국토를 전전하면서 죽은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찾는 작업은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패자의 복수심과 과거를 다시 쓰고자 하는 비장한 바람을 품은채, 장군은 가파른 사간지대와 황량한 평야에서 비와 안개와 추위는 물론 거치고 무뚝뚝한 알바니아인들의 원한 어린 눈길과 맞서며 과업을 완수해 간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추악하고 부조리한 전개의 진실이다. 전쟁 중에 탈영하여 알바니아인의 머슴으로 일했던 자국 군인의 일기장을 입수하고, 카페 주인으로부터 도시에 들어섰던 갈봇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며, 최종적으로 어느 결혼식에서 만난 한 노파를 통해 자국 국민 모두의 존경을 Z대령이 전쟁 당시 비열한 악행을 저지른 장본인이었음이 밝혀지자, 장군은 자신의 임무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긍지에 찬 열정이 사그라지고 임무의 의미가 상실되는 순간 오만했던 장군의 정신세계는 와해되고 만다.
p149 장군이 이렇게 설명하자 신부가 받아쳤다. “알바니아인들은 그들에게 닥친 위험을 늘 과장하곤 합니다.” “한데 한 가지 납득이 안가는 게 있어요. 일단 우리가 항복하고 나자 우리한테 악착스럽게 굴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반대 였죠. 전시의 동맹국들이 우리 쪽 사람들을 보는 족족 사살할 때 불쌍한 우리 군인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신부님도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알바니아에 머물었던 우리군대의 처량한 결말입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무기와 계급장과 메달을 소지한 그들이 하인이 되고, 막노동꾼이 되고, 농가의 머슴이 되다니······· 그들이 했다는 그 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 오릅니다. 생각나십니까? 어떤 대령은 알바니아 가정에 들어가 속옷을 빨고 양말을 뜨기도 했다지 않습니까!”
역사를 통해서 보면, 다른 민족을 없애기 위해기 전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꼭 한마디를 한다. 지금 무력을 쓰는 행위는 단순히 피부림 부리는 것이 아니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스마일 카다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을 침략하는 행위인 폭력 및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숭고한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전쟁은 부질없는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장군은 알바니아로 가기 전에는 알바니아에게 전쟁 패배를 해서 그에 대한 적계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바니아로 가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하면서 그 당시 자국의 군인들이 한 행위들을 들으면서, 장군이 여기 오기 전부터 간직한 죽은 군인들의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도 일본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과거 일본 식민지를 겪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이들은 시위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특히,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우리들이 강제적으로 정신대, 위안부로 이끈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 중 일부가 이러한 말을 발언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지금까지 일본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는데, 이미 역사에도 그들의 행동들을 기록했는데, 정녕 이들은 모른다는 말인가?
최소한 소설 속의 장군처럼 다른 국가들로 가서 자국 군인들이 했던 치부들 보아야 하지 않는가. 과거에 어떻게 했던 모습들의 똑똑히 보아야 하고, 최소한 지금까지 생존하신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하지 않는가? 한일 협정문에서 이미 보상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뻔뻔함에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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