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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어떤 간절함을 담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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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작가를 만난다는 것. 요즘의 내게 신나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것들이 뿌듯하기도 하다. 작품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기도 하는 시간. 그리고 내 마음속에 그 말들이 고스란히 들어오기도 하는 시간. 그 시간들이 즐겁다.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윤. 치밀하고 정교한 사유와 문체 미학으로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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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작가를 만난다는 것.

요즘의 내게 신나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것들이 뿌듯하기도 하다. 작품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기도 하는 시간. 그리고 내 마음속에 그 말들이 고스란히 들어오기도 하는 시간. 그 시간들이 즐겁다.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윤. 치밀하고 정교한 사유와 문체 미학으로 한국문학에 하나의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최윤. 작가의 작품을 읽는 다는 것에 두근거리는 설렘이 일었다. 작가가 8년 만에 신작을 냈다. 제목의 뜻을 제대로 알수 없는 『오릭맨스티』라는 책을. 

 

책에서는 이름이 없는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어떤 것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을때 그 것은 우리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오게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았나.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 그 시처럼 우리는 이름을 붙여 주기를 좋아한다. 내 것에 속하길 원하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그런데 작가는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나올 뿐이다. 가진것도 별로 없고  특별히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저그런 직장에 다니는 적당히 속물적인 인물들이다.

 

'남자'는 중견기업의 영업직사원으로 자신이 좇는 쾌락을 숨길줄도 아는 남자로 키가 크고 옷 잘 입는다. 여자가 특별하게 마음에 든건 아니지만 사회적인 것과 50대 후반의 젊은 홀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혼을 하게된다. '여자' 또한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내세울만한 직장이 아닌 평범한 경리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여자다. 아빠와 엄마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치다시피해서 결혼을 한 전력을 알고 있어서일까. '여자'는 부모 몰래 결혼을 진행시키고 돌이킬수 없는 상태에서야 부모에게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먹구름. 아슬아슬한 절벽에서의 여름 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 책을 읽어갈수록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줄을 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조마조마함.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그들을 보며 불안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말해주던 작가는 이제 1인칭 시점으로 '나' 박유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말해주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그래, 이들에게도 이름이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나, 박유진. 혹은 외젠 뒤발.

그 옛날의 충격때문일까.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뾰족한 것이 심장을 찌르고 누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기이한 수면상태에 빠지는 증상을 겪는 유진. 자신이 속했고,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유진이 정신이 돌아올 때쯤 내뱉는 말 '오릭맨스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유진도 엄마도 알 수 없지만 그 말은 간절한 염원을 담은 말이다.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나도 한 번 되뇌어 본다. 무언가의 간절함을 담아.

 

작가 최윤의 글은 무언가 심상하면서도 마음의 울림을 주는 글들이다.

짧은 내용을 담았지만 그 여백만큼이나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1.15. 신고 공감 9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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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여름이 만나 겨울이 된 남자와 여자의 얘기”
"“가을과 여름이 만나 겨울이 된 남자와 여자의 얘기”" 내용보기
"가을과 여름이 만나 겨울이 된 남자와 여자의 얘기" 조락과 열정이 결합해 생명이 되고 죽음이 되는 순환의 얘기이다. 혹은 ‘소멸성의 무수한 쾌락’으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착각의 이야기이도 할 것이다. 삶의 안락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 인생의‘보조 모터’를 필요로 한 여자와, 차이 없는 여자들과의 만남이 심드렁하지만 어느덧 습관이 된 여자와의 만남, 그리고 며
"“가을과 여름이 만나 겨울이 된 남자와 여자의 얘기”" 내용보기

"가을과 여름이 만나 겨울이 된 남자와 여자의 얘기"

조락과 열정이 결합해 생명이 되고 죽음이 되는 순환의 얘기이다. 혹은 ‘소멸성의 무수한 쾌락’으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착각의 이야기이도 할 것이다.

삶의 안락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 인생의‘보조 모터’를 필요로 한 여자와, 차이 없는 여자들과의 만남이 심드렁하지만 어느덧 습관이 된 여자와의 만남, 그리고 며느리를 들이고 싶어 하는 편모의 관습 같은 허영이 꾸며낸 결혼, 그 과정의 시시콜콜한 단면들이 묘사된다.

 

몇 차례 의미를 찾기 위한 만남이 이어지다, 서로의 몸을 탐색하고 그렇게 익숙해지면서 안락한 친밀감에 젖어들고 그 방심에 다른 인간들이 으레 하는 형식에 자신들의 삶을 맡기는 것. 가정을 꾸미고, 물건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욕망의 환상적 내용들이 충족될 것만 같은 기대로 부푼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이 많은 것을 욕망하는 것을 배웠을까?” 라는 여자의 자조적인 독백이 나올 때가 되면 더 이상 물건들의 세상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목돈을 던져주지 않는 세상의 인색함! “늘 껄떡거리게 만드는 세상”에 슬슬 짜증이 몰려오고, 방 두 칸짜리 반 지하 전세는 두 젊은 남녀에게 자기 집의 소유를 향한 집념을 자극한다.

 

언뜻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등장하는 제롬과 실비의 커플에서 발견되는 세상에 맞서는 개성을 결핍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욕망들과 그 실현 가능성 사이에 벌어진 내면의 불안이란 동일한 소비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는 내 집 마련 5개년 계획에 돌입하고, 욕망의 절제를 실천 하지만 사실은 이 자체가 또 다른 욕망이기도 하다. 여자의 이러한 집념에 반기를 들지는 않지만 “물질적이고 즉자적이며 육체적 자극에” 이미 민감해진 남자는 작은 부정의 유혹에 노출된다. 삶은 이렇게 서서히 진부해지지만 인생의 사건들이 잠시 제동을 걸어준다.

 

재산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 젊은 맞벌이 부부의 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상의 동물인 ‘아기’가 자궁에 들어서고, 준비가 덜 된 여자는 남자와 낙태를 합의하는데 마트에서 세제(洗劑)의 용량 대비 가격비교의 순간보다 짧은 수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 일반의 현실은 이처럼 피투성이 욕망 세계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끊임없이 욕망을 창조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속성이 우리를 절망시키고 안달 나게 하고 불안케 하여 그 대열에 들어서는 것만이 진리인 듯이 몰아대고 있음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삶의 이해가 더해지면 남자는 참을 수 없는 수치와 굴욕의 기억이 될 것이고, 여자는 생명의 고통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게 될 것이다.

 

아이는 또 들어서고 내 집을 마련한 여자는 사내아이를 낳는다. 남자의 편모는 손자를 위해 아들 내외와 동거하게 되고 여자는 직장에 전념하여 남자보다 먼저 승진한다. 삶은 살짝 지치게 하고 가벼운 일탈의 환상을 실재의 세계로 내려오게 하고 싶어진다. 본디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되먹은 것이리라. 소설은 이처럼 꾸역꾸역 오늘의 우리들 대개가 살아가는 표정을 옮겨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욕망의 실재들이 무엇인지 관찰하게 한다. 무엇이 생명의 질서를 역행하게 하는지.

 

갈등이 있지만 소설의 멋진 표현처럼 “갈등을 통과한 연대의식”으로 부부는 위기를 넘어서고, 또 그렇게 또 다른 소멸의 쾌락을 향해 돌진한다. 아마 이 쾌락의 멸실을 극대화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소설은 극적인 전환을 하는데, 폭우 속에 계곡으로 추락하는 차내에서 야영지에 홀로 방치된 아이의 구원을 부르짖는 간절한 여자의 외침은 죽음의 순간과 새로운 삶의 신비로운 영속을 보게 한다.

 

여기서 장면은 벨기에로 입양된 한 청년의 ‘순간적인 죽음’이란 증세의 기억으로 전환되고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에 그려진 고통의 실재를 투영한다. 수소문 끝에 찾은 자신의 구출자인 산악구조대원과자신이 구조된 현장, 주홍색 석양이 평화롭게 물드는 계곡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자기 부모들과 자신의 생명의 의미를 확인하는 말미는 어떤 이미지가 잡힐 듯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아마 청년 유진이 무의식 속에 중얼거리던‘오릭맨스티’라는 형체 없는 말에 의미가 부여되는, 선명하게 이해되는 장면인 탓이길 때문일 것이다. 오염되고 왜곡된 우리들의 삶과 역행적인 비본질의 것들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화(淨化)와 회복의 감각을 되살려 주는 기운, 절망을 일깨운 지혜! 그것일 것이다. 내레이터가 흑백의 영상 기록물을 읽어주는 듯한 문장들, 그리고 강물 같은 이야기의 흐름이 인생의 거대한 질서의 엄연함을 더욱 진지하게 경청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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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현재는 찬란한 빛의 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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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했다, 처음엔.『오릭맨스티』는 오랜만에 읽는 최윤의 소설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으로 인해 소설의 세계가 모호할 거라는, 그래서 읽기 싶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얇은 책은 책장을 펼칠 용기를 주었다. 페이지의 3분의 2이상을 넘길 때까지 여러 번 책장을 덮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가 최윤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반복해서 이름과 이력을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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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했다, 처음엔.『오릭맨스티』는 오랜만에 읽는 최윤의 소설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으로 인해 소설의 세계가 모호할 거라는, 그래서 읽기 싶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얇은 책은 책장을 펼칠 용기를 주었다. 페이지의 3분의 2이상을 넘길 때까지 여러 번 책장을 덮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가 최윤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반복해서 이름과 이력을 확인해야 했다.

 

만남의 지속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하지만 만남이 모두 같은 시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약속을 잡으며, 의심과 무심 사이에서 결정이 유보되며 한 번, 두 번 만남이 누적되는 사이(p.12)’가 되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결혼에 “다 가짜야.(p.40)”라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을 감행하기도 한다.

 

드라마나 연애소설의 커플들은 몇 번의 우연한 만남 후 열렬한 연애에 빠지고, 부모의 격렬한 반대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 후 결혼에 이른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연애소설을 읽는 건 그들의 사랑이 현실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릭맨스티』는 ‘모조 보터 같은 것이 필요했(p.8)’던 ‘여자’와 ‘삶의 변화를 주기 위해 소개팅을 하(p.14)’는 ‘남자’의 만남과 결혼 생활,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짐작 가능한 데로 흐르는 이야기는 시시한 법!『오릭맨스티』가 그러했다. ‘빛나지 않는 과거’, ‘반복적인 현재’, ‘불확실한 미래’는 ‘남자’와 ‘여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내가 짧지 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아주 많이 닮았다. 아니, 여러 남자와 여러 여자를 닮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름조차 부여할 필요 없는, 차별성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의 아이는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벨기에에 입양돼 살았다. 그 아이가 부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입양서류를 봤을 때 비로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 부모의 이름이 밝혀진다. 존재의 유무는 생사가 아니라 찾으려는 자에 의해 결정된다.

 

‘여자’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데가 있는(156쪽)’ 석양의 빛을 보며 “그래!,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157쪽)라고 말했다. 모처럼 쾌락을 느낀 그들은 영원히 휴가를 다니자 약속했는데 그들은 죽음으로 영원한 휴가가 누리게 되었다. 행복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죽음이 찾아오는 건 삶의 공정성일까, 아이러니일까.

 

유괴와 실종으로 타락과 자살과 타살 같은 어두운 구덩이에 아기가 빠지지 않고 정상적인 성인이 되도록 키울 사람들로 남자와 여자가 선택되었다.(118쪽)

 

폭우와 강풍으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여자’는 텐트에 두고 온 아이를 살려 달라며 울부짖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엔 ‘그것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167쪽)라고 쓰여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하나의 생명을 지웠던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음에 직면해서야 부모가 되었다.

 

‘세상에는 뜻으로 번역되지 않는 언어의 신비로운 지대가 있다. 오릭맨스티는 그런 언어의 한 조각이다.’(199쪽)

 

소설의 마지막,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이름이 등장한 사람은 ‘유진’이다. 유진은 유년 시절에 일시적 호흡 정지 현상을 겪었고 사춘기엔 일명 ‘블랙홀 여행’이라는 기이한 여행을 해서 양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혼절한 유진은 ‘오릭맨스티’라는 다섯 음절의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여자’가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여자’와 결혼했을지도 모를, ‘여자’의 모친이 찍은 신랑감 후보 1순위였던 구급대원은, 훗날 L씨로 명명된 그는 유진이 혼자만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부모들의 ‘절박한 간구’일 거라고 말했다. 사랑(Love)과 빛(Light)은 모두 L로 시작된다. 유진은 빛(사랑)이 없었던 ‘남자’와 ‘여자’가 만든 새로운 빛(사랑)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생(生)은 시시했지만 가짜가 아닌 진짜 생이었다. 불안했던 유진은 절벽의 석양을 보며 부모와 재회했다(재회를 기다렸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은 유진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엔 그의 부모보다 더 시시한 생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양부모의 사랑이 유진의 생명을 유지시킨 힘이라면, 시시해 보였던 ‘남자’와 ‘여자’의 현재는 유진이란 한 생명을 존재하게 한 시원이었다. 소설은 시시하지 않았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2.0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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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은 짧고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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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를 언제 읽었던가.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하게 각인된 건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최윤의 소설을 읽고자 했던 건 제목인『오릭맨스티』란 낯선 단어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한 갈망은 그러했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타인으로 존재했던 이들이 서로를 탐구하며 관찰한다.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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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의하나코는 없다>를 언제 읽었던가.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하게 각인된 건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최윤의 소설을 읽고자 했던 건 제목인『오릭맨스티』란 낯선 단어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한 갈망은 그러했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타인으로 존재했던 이들이 서로를 탐구하며 관찰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을지, 아니면 여기서 이별을 고해야 할지 대부분의 첫 만남에 그렇듯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 이어 많은(결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믿는다) 것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합의를 보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일은 그저 일상적인 삶처럼 보인다.

 

 ‘여자는 정말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자는 유령 같다. 여자는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나이와 직장 전화번호와 남자가 사는 원룸의 위치와 그가 근무하는 회사의 위치. 모든 게 가변적이다. 여자는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 즉 남자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남자가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남자는 여자의 신상과 여자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40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여자와 남자. 익명은 때로 다수를 의미한다. 여자는 여자들, 남자는 남자들이 되기도 한다.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 배신한 아들 대신 딸에게 어떤 기대를 품는 부모는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사랑하기에 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정말 진짜일까. 진정 모든 건 가변적이지 않을까.

 

 ‘결혼이, 부부 관계가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었던 자잘하지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악행들을 뿌리 뽑지 못한다. 게다가 왜 그래야만 하지? 남자는 속으로 반문한다. 남자의 생각이 맞다.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두 배로 늘어가거나 깊어지고 그에 대해 뻔뻔해진다.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남자에게서 잠시 가려져 있던 단점들이 봄에 잡초 싹이 돋듯 파르스름하게 돋아나는 것을 보고 여자는 고개를 흔들고 두 팔을 늘어뜨린다. 어차피 남자도 여자도 성인이 아니다. 인생은 짧고 할 수 있는 것은 적다.’ p. 103~104

 

 그렇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 결혼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이런 낯익은 풍경을 시작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평이하고 솔직한 심경으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작가의 속내는 조금 천천히 나타난다. 해서 어느 순간 불행을 감지한다. 취미 그 이상을 넘어선 외제 자동차에 대한 남자의 집착, 화려한 일탈을 꿈꾸는 여자의 마음이 같은 지점에서 연소하고 만다. 단 한 번의 멋진 휴가지에서 폭우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하고 두 살 배기 아들만 살아 남는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렇게 여자와 남자의 생은 끝난다. 무수한 소문을 남기고, 늙은 부모에게 상실과 절망을 안기고 떠난 것이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화자인 ‘나’가 등장한다. 부모를 잃고 벨기에로 입양된 나는 그 죽음의 순간을 온 몸에 새긴 채 살고 있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 환영으로 마주할 뿐이다. 청년이 되어 여자와 남자이자, 자신의 부모와 함께 마지막을 보낸 장소를 찾는다. 화자는 기억 속 저편에서 보았을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석양이 영원하지 않듯 삶은 유한하다.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탐하고 꿈꾸는지도 모른다.

 

 한 때, ‘평범’이라는 단어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다는 게, 남들처럼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균열이 없는 삶을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욕망을 참아내야 하는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잘사는 것처럼 사는 것, 비슷한 부류와 어울리면서도 그들을 좀 더 앞지르기를 바라며,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건 모두의 숨겨진 욕망일 것이다.

 

 쓸쓸하면서도 어떤 묵직한 아련함이 남는 소설이다. 인생은 짧고 할 수 있는 것은 적다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 안에 잠재된 욕망과 탐욕은 무엇일까. 잊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울울한 감정은 무엇일까. 명확한 뜻을 알지 못한 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오릭맨스티’를 중얼거리며 언젠가 마주할 인생의 석양에 대해 생각한다.

r*********s 2012.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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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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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사람만이 언어를 사용한다. 동물과 사람을 분류할 때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불과 함께 언어 사용을 꼽는다. 물론 목소리를 신호체계로 사용하는 동물들도 많이 있지만 사람만큼 정교하게 언어를 발달시켜 활용하는 존재는 없다.   이런 사람만의 전유물인 언어도 태어나고 죽는 과정을 그친다. 언어의 생명은 자신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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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어



 사람만이 언어를 사용한다. 동물과 사람을 분류할 때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불과 함께 언어 사용을 꼽는다. 물론 목소리를 신호체계로 사용하는 동물들도 많이 있지만 사람만큼 정교하게 언어를 발달시켜 활용하는 존재는 없다.


  이런 사람만의 전유물인 언어도 태어나고 죽는 과정을 그친다. 언어의 생명은 자신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수명이 좌우된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시대의 언어를 우리가 낯설어하는 것만 봐도 언어의 수명은 생각보다 빠른 박진감으로 생사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수많은 신조어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졌다. 물론 많은 신조어들은 뿌리 내려 현재까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으며 어엿하게 사전에 등록되기도 한다. 수많은 신조어 생산에 머리가 빙빙 돌 정도다.


  오릭맨스티 라는 신조어를 작가 최윤이 생산해냈다. 나는 책을 덮으며 그가 왜 이렇게 긴 신조어를 탄생시켰는지 궁금했다. 오릭맨스티. 그다지 입에 쫙 달라붙는 낱말은 아니다. 입에 달라붙기는커녕 어느 외계의 언어처럼 낯설어서 일부러 그 낱말을 소리 내어 연습해 봐야 만이 간신히 기억될 만큼 낯설다.


  이 낯설고도 긴 언어를 신조어로 생산하면서 작가가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책의 말미, ‘작가의 말’에 그 답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언어가 있다. 언어의 확장된 기능을 통해 때로 정화도 일어나고 회복도 가능하다. 언어가 질서이며 생명을 가진 호흡이기 때문이다. 『오릭맨스티』는 그런 언어를 경험하면서 또한 갈망하면서 씌어졌다.-



평범한 이야기



  서사는 간략하게 정리가 된다. 어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보통사람들처럼 집을 얻기 위해 무리한 재태크를 하고 그 와중에 남자는 회사 자금에 손을 대고 여자는 사기를 당한다. 심기일전을 위해 남자와 여자는 두 살 된 아기를 데리고 폼 나는 휴가를 떠난다.


  이런 줄거리는 재미있게 잘 읽힌다. 익숙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는다. 서사 속의 주인공은 절대로 독자인 내가 아닌 것처럼 멀리 있다. 나는 읽는 내내 관찰자의 입장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게 이상해서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를 살펴보았다. 내가 작가와 같은 경험으로 언어를 통해 정화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어떤 카다르시스에 도달한 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냉정하게 여자와 남자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다름 아닌 우리들에게 언제든 올수 있는 시간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여자와 남자의 죽음까지가 전반부라면 죽음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아기의 운명이 그 나머지다. 아기는 벨기에로 입양되는데 자라는 내내 알 수 없는 발작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이 외계어 같은 오릭맨스티다. 그러니까 하나의 언어가 주문처럼 사용되어 육체적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이 소설을 탄생시킨 배경인 셈이다.


  아기는 자라지만 자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공포와 불안을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 쌓아놓고 있다. 뿌리 없이 자라고 있는 불안감은 모든 입양아들에게 주어진 고통스런 운명일 것이다.


  벨기에에서 유진이라는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아이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유진의 양부모는 우리가 기대하고 있던 양부모의 롤모델이다. 양부모와 그 가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진에게 좋은 가족이다. 유진은 자신이 세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불운하지 않은 셈이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까지 유진의 부모에 대해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보통 명사를 통해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독특한 존재가 아님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려한다. 

 

구 원



  이 남자와 여자에게 닥쳐온 참혹한 불행조차 특별하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물성과 신성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 참혹한 현실 앞에서도 일상은 돌고 돈다.


  죽음을 앞에 둔 엄마는 아기의 삶만은 자신들처럼 참혹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일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언어이전에 모성일까.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외계어처럼 낯선 언어가 아니라  모성의 끈끈한 점성을 통해 우리 역사가 유구히 이어오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다섯 글자 오릭맨스티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자식을 염려하는 모성이고, 자신이 낳지 않아도 가슴으로 키워주는 가족들이고 아직도 이타적인 마음이 가득 차있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산악구조대원L씨 같은-이다.


  그래서 안심이다. 평범한 일상을 무자비하게 할퀴는 운명 앞에 나약하기만 한 사람들이지만, 구원을 얻는 것 역시 위대하고 벅찬 신에게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 이것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그렇게 오랫동안 냉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t******e 2012.01.1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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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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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우리네 생의 아이러니를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역작이다.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이보다 더 치열할 수 없을만큼 기구한 법.   붉게 지는 석양, 오릭맨스티... 제목처럼 짧지만 강렬하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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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우리네 생의 아이러니를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역작이다.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이보다 더 치열할 수 없을만큼 기구한 법.  

붉게 지는 석양, 오릭맨스티... 제목처럼 짧지만 강렬하며 흥미롭다.  

m****1 2012.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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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가 뭘까? 읽어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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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가 뭘까? 읽어도 모르겠고, 국어 사전에 찾아봐도 안 나오고. 엄청나게 건조한 문장이다. 관찰자가 아주 멀리서 보면서 전혀 내용에 개입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다소 지루하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남과여가 살아가는 내용이로 보였다. 1988년 즈음에 연애를 하고, 몇번의 만남후에 결혼을 결정하는 그런 모습. 대충 소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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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릭맨스티가 뭘까? 읽어도 모르겠고, 국어 사전에 찾아봐도 안 나오고.


 엄청나게 건조한 문장이다. 관찰자가 아주 멀리서 보면서 전혀 내용에 개입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다소 지루하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남과여가 살아가는 내용이로 보였다. 1988년 즈음에 연애를 하고, 몇번의 만남후에 결혼을 결정하는 그런 모습. 대충 소설의 끝 부분인 2010년 경에 오면 50 정도 되어있고, 자식도 20대에 막 걸치는 그런 모습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탈선을 하게 되는데, 이 탈선이 어떻게 이들 주인공 부부에게 벌을 내릴까, 아니면 평범하게 지나갈까 그런 것을 기대하며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의 부부는 비슷하면서 약간 다르다. 다행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 크게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욕심에 의해, 약간의 유혹에 빠진다. 남자의 경우 습관적인 외도와 횡령일 것이다. 여자의 경우에도 낙태와 외도에 있다. 그래서 자 부부 어떻게 갈등에 빠지고 해결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뒤 부분에 당황했다. 내가 원한 것은 부부사이에 갈등과 해결 방법이였다. 그런데 그냥 사고사로 죽여버리다니! 아 당황스럽다.

z******g 2017.10.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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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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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가 뭐지. 책을 읽은 후인 지금도 모르겠다. 정신의 단절. 혼돈으로 가득한 삶. 현실에 눌린 채 거짓 욕망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아이 또한 두 사람의 유전자의 교합이 아니었다. 어디서 부터 잘 못된 것일까. 여자는 환상의 덩어리에 자극 받는다. 카페의 인테리어, 푹신한 의자, 안락한 친밀감 같은 것들. 여자는 소개팅에 나서고 있다. 빨리 짝을 찾고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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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가 뭐지. 책을 읽은 후인 지금도 모르겠다. 정신의 단절. 혼돈으로 가득한 삶. 현실에 눌린 채 거짓 욕망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아이 또한 두 사람의 유전자의 교합이 아니었다. 어디서 부터 잘 못된 것일까. 여자는 환상의 덩어리에 자극 받는다. 카페의 인테리어, 푹신한 의자, 안락한 친밀감 같은 것들. 여자는 소개팅에 나서고 있다. 빨리 짝을 찾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일까. 여자의 어머니는 분식집을 하고 있는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관심이 많다. 설마, 자신의 사위감 될만한 사람이 있는지 요리조리 따져 본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인물 좋고, 성실한 타입의 남자를 알게 된다. 남자는 평범하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으며 자신을 꾸미는 일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이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남자. 남의 삶에 개입하는 걸 싷어한다. 남도 자기 삶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는 쾌락을 중요시한다. 지극히 물질적이고 즉자적이며 육체적인 자극에 남자는 민감하다고 한다. 정열적인 사랑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함께 하기로 한 두 사람. 부모들은 벌써부터 결혼하기를 원했다. 빨리 손주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 후 남자는 더 열심히 살았다. 회사에 성실했으나 공금을 슬쩍 빼돌렸다. 자동차 마니아가 되어갔다. 자동차 정보 수집에 열정적이었다. 고급 차를 사서 모는 게 새로운 꿈이 된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 대해 잘 몰랐다. 여러 번 만났으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게 가짜 같다. 그럼에도 결혼하라 성화하는 어머니. 그녀는 결혼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갔다. 여자는 처음에 임신했으나 수술로 지웠다. 아직 아기를 가질 때가 아닌 듯 했기에. 나중에 투자 상품에 대해 알아보러 다니다가 한 중년 남성과 가까워 진다.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들킬까 조마조마 하면서 무사히 지나간다.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러 올라 오셔서 두 사람은 열심히 직장생활만 하면 되었다. 두 사람은 삶의 역동성을 위해 좀 더 외향적으로 변하기로 하였다. 등산회에 다니고, 친구, 지인들이 늘었다. 남자는 출장 갈 때마다 직업여성을 사서 즐겼다. 열심히 살던 부부는 함께 휴가를 떠났다. 아기까지 셋이서 간 여행이었다. 계곡에 갔다. 숲으로 우거진 으슥한 곳에 차를 주차했다. 기분좋게 마신 술 때문인지 두 사람은 달아오른 상태였고, 차안에서 정사를 벌였다. 때마침 폭우가 내리고 번개가 쳤다. 비에 의해 차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갑자기 혼절하는 병을 앓고 있다. 수면과 비슷한 혼절. 깨고 나면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양부모는 그를 걱정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그는 오릭맨티스를 발음하면서 깨어났다. 그 이후 혼절하는 증상이 사라졌다. 더 이상 블랙홀 여행에 빠지지 않았다. 성장한 아이는 자신의 생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입양 서류의 이름 박유진. 그는 자신의 부모가 조난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구조대원이었던 L을 만나러 한국으로 들어온다. 부모는 전라로 발견되었었다. 방송에 그 장면이 나가서 당시 충격적인 뉴스였다. 그는 사고현장에 가봤다. 그제야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실감 난다고 한다. 잘못된 가족이었기에 죽음이라는 구멍으로 빠진 것일까. 아이는 거짓의 증거물 같았는데, 그럼에도 시간은 그의 어두운 태생을 정화하여 새로운 삶을 주었다. 죽음의 단절을 넘어서는 회복. 오릭맨스티 단어의 호흡이 주는 새로운 질서.    

d******m 2016.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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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오릭맨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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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오릭맨스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최윤’의 소설을 읽으면서 웃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의 소설은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본다’ 혹은 ‘들려진다’의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속 ‘대화체’는 뭇 소설에서의 ‘대화’와 같이 이야기 전개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꼭 필요한 순간만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상황에 대한 묘사, 심리에 대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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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오릭맨스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최윤’의 소설을 읽으면서 웃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의 소설은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본다’ 혹은 ‘들려진다’의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속 ‘대화체’는 뭇 소설에서의 ‘대화’와 같이 이야기 전개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꼭 필요한 순간만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상황에 대한 묘사, 심리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우리가 여자와 남자를 알게 만들고 있다.

 

이 소설은 여자와 남자의 이름조차 처음부터 제시하지 않는다. 다 읽고 나서 안 것이지만 이름이 주는 고유한 삶,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의 삶의 이야기인 까닭일 것이다. 남자는.. 여자는.. 하고 삶을 이야기 하지만 그들은 우리사회의 그 즈음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대표하는 그런 이야기 인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묘사를 한다. 지겹지 않다. 왜.. 한 번 즈음 자신의 삶을 하루하루 그려보는 것 같이 아주 자연스럽게 써내려 가고 있어서.. 내 삶을 돌아보기 지루하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평범과 보통이 주는 사람들 역시 삶의 구석구석은 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언제나 우리는 선택과 결정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지만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들.. 그래.. 작가는 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삶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이름은 결국 그들이 죽고 나서야 등장을 한다. 별도 구분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 살아난 아이가 성장한 후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제 2부의 소설로 이어진다. 읽은 독자들은 상황에 따라 앞의 이야기들은 이후의 이야기를 위해서 잠시 잊어야 할 것처럼도 보여진다. 죽은 남자와 여자의 아이의 이야기는 결코 또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죽음을 뚫고 살아난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심연의 저 끝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황혼녁 해가 지기 시작하는 그 시점.. 아름다운 한 순간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맞이하면서 그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냥 특별한 삶을 꾸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데 반 평생도 살아보지 못하고 어느 날 죽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간.. 이루어놓은 것을 아직 이루어놓지 못한 것도 다 삼키고 가버린 죽음.. 아.. 이 분의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얼굴이 표정이 사라지게 된다. 이건 좋다 싫다의 표현이 아니라 최윤의 소설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 즈음 되는듯하다.

 

d***e 2012.02.28. 신고 공감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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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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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은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니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는데 나에게는 이번 작품이 처음으로 읽는 작가의 책이다. 오릭맨스티 제목을 한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오릭맨스티 낯선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이후에는 이책이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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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은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니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는데 나에게는 이번 작품이

처음으로 읽는 작가의 책이다. 오릭맨스티 제목을 한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오릭맨스티 낯선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이후에는 이책이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해져

다시한번 책소개글을 살펴보고 작가의 말을 읽어본다.

세속의 욕망을  쫓아나선 두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어찌할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글을 보면서도 이책의 내용들이  쉽게 이해되지않고

모호하기만 하다. 책의 줄거리는 오히려 따라 읽기 쉬운 편이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앞두고 벌어지는 과정들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들어서서 겪게 되는 문제들, 시댁과 처가와의 관계

계획에 없는 아이가 들어섰을때의 무력함, 그리고 쳇바퀴도는듯한 생활의 권태

사람사는것이 301호나 302호나 안을 들여다보면 다 똑같다는 누군가의 말만큼이나

보통의 소시민들의 생활모습을 다루고 있다. 내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수없는것은

오릭맨스티가 무엇인지 끝까지 알수없다는것이다. 무엇을 내가 놓치면서 읽었나,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책이다.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여자의 부모는 아들이 그랬던것처럼 어느날 불시에 여자가 떠날까 두려워 여자의 뜻을

꺾지못하고 남자의 엄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내세워 아들의 결혼을 종용한다. 연애라고 하기에도 뜨뜨미지근한 시간을 보낸

그들은 결혼이라는 정착된 제도안으로 들어오자 현재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오늘을

참아내기로 한다.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싸구려 쇼핑으로 달래고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값비싼 수입차대신 모형차를 수집하며 언젠가 혹시나 있을 그날을 꿈꾼다.

더 나은 앞날을 위해서 여자는 또하나의 직장을 갖고 재테크에 이해가 밝은 누군가를

소개받으며 미래를 설계하지만 욕망은 여자의 뜻대로 따라주지않은채 기대를 배반한다.

남자는 남자대로 직원들모르게 공금횡령을 하지만 이미 윗선에 노출이 된 상태로

그들이 파놓은 더 깊은 수렁속으로 들어가게된다. 그래서 그들이 욕망을 저당잡힌채로

살아온 시간들은 결국 그들의 뜻하지않은 죽음앞에서 공중분해되고 만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금을 참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욕망을 채우는것보다는 잠시 기다렸다 더 큰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

여자가 가진 욕망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욕망이다.

지하방에서 조금 더 넓은곳으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

남자의 욕망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공금횡령이라는 안좋은 결과만

놓고 볼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든 죽음.

죽음이라는 불행이 사람을 가려서 오는것은 아닐테고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것일테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면서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읽기는 쉽지만 내용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않았던 소설로 기억될것 같다

 

j******3 2012.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