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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을 꼽자면 토냐 하딩의 청부폭력사건이 될 것이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을 앞두고 연습을 마치고 나오던 낸시 캐리건. 캐리건은 어디선가 나타난 괴한에 의해 테러당한다. 경찰의 조사 결과, 동료선수 토냐 하딩의 남자친구(하딩과 결혼하고 또 이혼하는 제프 길로리)가 사주한 것으로 밝혀진다. 길로리는 토냐 하딩이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주장하였으나 하딩의 변호사에 의해 반박당했다. 토냐의 변명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고 또 바뀌는데 결국 악녀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 그전부터 토냐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교양도 없고 불성실했으며 (영화에도 등장하듯) 미국의 얼굴로 내세우기엔 꺼려지는 면들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 사고가 정상적이라 볼 수 있겠나? 라이벌 선수의 코치나 의상 디자이너, 안무가를 빼앗거나 연습을 훼방놓거나 하는 일들은 지금도 하는 일이지만 토냐 하딩 케이스는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유일무이하다.
철저하게 토냐 하딩의 입장에서 각색된 이 영화는 피해자 낸시 캐리건의 목소리와 모습을 지우고 있으며, 낸시가 짧게 등장하는 장면에서조차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른 채로 영화를 본다면 누구나 토냐 하딩에 공감하고 안타깝게 여길 정도다. 특히 출연배우들은 영화 개봉 전후로 토냐 하딩을 옹호하는 모습들을 보였는데 그 덕분인지 열연들이 대단하시다. 토냐 하딩의 개인사는 기구하고 안타깝지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 영화를 여성주의 영화로 소개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2차, 3차 폭력의 재생산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엘리슨 제니의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 등) 토냐 하딩이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시상식 레드 카펫에 서는 것부터 시작하여 시청률 높은 토크쇼에도 초대받고 (사건의 피해자였던) 낸시 캐리건이 출연했던 〈댄싱 위드 더 스타〉에까지 섭외된다.
악녀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요즘에 있어 이 또한 새로운 변화라 여기고 넘어가기엔 토냐 하딩 케이스는 논외일 정도로 끔찍하다. 배우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참여했는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해지는 셀럽 문화와 미디어가 부추기는 스타의 부상과 몰락과 같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학대받은 아이가 학대자로 자랄 순 있지만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학대받고 자랐기 때문에, 학대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는데 몰두했기 때문에 재능마저 저버리게 된 기구한 천재가 토냐 하딩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영화는 지나치게 토냐를 옹호하고 있다. 나름대로 토냐 의견에 반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천식을 앓는데 골초인 운동선수라니? 토냐는 부진에 대해 남탓을 일삼지만 결국 방탕하게 산 것은 그 자신이다. 사건을 키운 것 역시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의 압력이었고, 저 상황에서 하딩은 올림픽에도 출전하였고 스케이트화 끈이 풀려 점프를 못했다며 심판에 호소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냐 하딩의 폭력사건으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은 부흥기를 맞는다. 앞다퉈 보도하는 뉴스들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올라간 것이다. 동유럽이 꽉 쥐고 있던 올림픽 메달을 가져올 이는 미셸 콴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사라 휴즈가 가져가고 콴과 메달은 연이 없어진다. 콴의 뒤를 이을 이가 없어 미국 여자 싱글스케이터는 주춤하고 있지만... 교육도 받지 못한 토냐 하딩에게서 스케이팅을 빼앗아 버린 법원의 결정은 안타깝지만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생각을 가진 이를 무대에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