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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 (기록된 역사의 재해석)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 (기록된 역사의 재해석)" 내용보기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권, 두권 찾아보게 된 역사 관련 서적들. 왜 학창시절에는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재미를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좋은 책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재미있는 책들의 출판연도를 보면 거의 대부분 요즘에야 출간된 책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모르긴 해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분명 좋은 책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특히나 이 책은 책 표지에 적힌 글처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 (기록된 역사의 재해석)" 내용보기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권, 두권 찾아보게 된 역사 관련 서적들. 왜 학창시절에는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재미를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좋은 책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재미있는 책들의 출판연도를 보면 거의 대부분 요즘에야 출간된 책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모르긴 해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분명 좋은 책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특히나 이 책은 책 표지에 적힌 글처럼 역사는 고리타분한 암기가 아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책이 재미있고 없고는 역사를 어떻게 해석 하냐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끔 역사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가 있다, 그런 책을 가만히 따져보면 그런 책들은 대부분 역사를 해석 했다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놓은 책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을 보면 역사적 사실을 기본 바탕으로 역사에 살을 붙여 생생하게 재해석한 책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요즘은 정보를 찾는 것은 큰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정보를 찾을 때도 단순히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찾은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정보들을 조합해 재창조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은 역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서 역사를 기록이 아닌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그것은 어느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치 무심코 본 영화 끝에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문구를 보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역사는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서 살았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었다. 때론 고달프기도 했고, 치열하기도 했고, 신명나기도 했던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훈구파의 전횡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서울에 있다.

세조의 제갈공명이었던 훈구파의 거두 한명회가 경치가 좋은 한강변에 정자를 세우고 이름을 압구정이라 했다.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이니, 정자 이름으로는 적격이다.

정자가 얼마나 운치 있고 경관이 좋았던지 중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하여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압구정에 올라 술 한 잔하며 시를 짓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한명회는 이 정자를 정거장으로 삼아 자신의 권력을 다져 나갔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늘렸다.

한명회의 독단과 횡포가 하고 심하여 선비들은 압구정의 압자를 친할 압자가 아닌 누를 압자로 바꿔 불렀으며, 정자와 연관된 풍자시도 수십 편이나 탄생했다. 또한 시중에는 압구정이 생긴 이후로 갈매기 한 마리도 그 근처에서 날아다니지 않았다.”라는 풍문이 떠돌 정도였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p162 중에서  

조선과 일본에 명나라까지 서로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였던 전쟁이 임진왜란이었다.

아니, 명나라는 왜 

임진왜란 당시 명은 조선의 요청으로 4만의 군대를 보내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 땅에 주둔시키면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을 했다.

명이 아무 이익도 없이 일본군과 싸웠느냐고 

그건 아니다.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었으니 군대를 파견해 조선을 도와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우방이라고 굳게 믿는 미국도 자국의 이익이 없으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다.

굳이 여기서 미국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임진왜란 때 명군이 했던 일과 한국 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하고 있는 일들이 판박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p208 중에서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있으면서 왜군을 상대로 4차례 출동하여 33일 동안 적선 359척을 격침시키면서도 아군 함선을 1척도 잃지 않는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웠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p219 중에서  

역사 또한 그렇다.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인 사관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한다고는 하지만, 사관이 승자의 편일 경우 당연히 역사 기록도 승자의 편에서 서술된다.

광해군이 폭군으로 기록된 사연 또한 그러하다. 쿠데타를 성공시킨 서인은 자신들이 주도한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광해군을 패륜아로 몰아붙였고, 그의 외교 정책 또한 배신 행위로 매도했다. 실리를 중시하는 중립 외교는 성리학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당시에는 명분에 어긋나는 배신 행위였을 뿐이다. 따라서 인조 때의 역사가들이 봤을 때 그는 폭군이자 패륜아이며 어리석은 혼군이었다.

그러나 현재적 관점에서 광해군을 재해석하면, 그는 전후 복구 사업을 무리 없이 추진했고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자주 외교를 펼쳤던 명군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p162 중에서  

전쟁과 같은 국가의 시련은 가진 자보다 못 가진 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IMF 사태 때 직접 체험했고, 지금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남한산성 속에서 두더지처럼 살아야 했던 인조와 정부 관리들도 힘들었겠지만, 여진 말발굽 속에 신음해야 했던 백성들의 삶은 파탄 직전이었다.

명분과 실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명분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또 어느 시기에는 실리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2> p251 중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가끔씩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지난 역사 속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이 정말 거울처럼 보여 졌다. 바깥세상과 연결 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단결과 고립된 세상을 만든 흥선대원군의 모습에서 북한의 모습이, 그리고 주병 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 없이 지내다 보니 군사조직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맞이한 선조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조금씩 비쳐졌다. 언젠가 우리가 지금 돌아보고 있는 역사처럼 우리의 현재도 역사의 한 조각이 되어 기록되어질 텐데, 역사는 과연 우리를 어떻게 담아낼지 참 궁금해진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나라도 사람처럼 수명이 있어 개국과 폐망을 겪으며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고 하는 듯했다. 그렇게 봤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지 약 100여 년 밖에 안 된 우리나라는 아직 과도기를 걷고 있는 청소년기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 연필과 지우개 -  


s*******r 2016.0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