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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과 소설을 통해 만나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
감정과의 은밀한 만남을 위한 가장 적절한 안내자는 자화상과 소설이다. 자화상은 감정을 표현하는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화가가 직접 겪은 삶의 내력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친밀한 만남을 주선한다.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고뇌와 갈등이 펼쳐져 넓고 깊은 감정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재정적 문제, 새로운 기법의 시도 등이 그것이다. 또한 화가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론 자기 기만인냥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 뒤에 숨기도 한다. 그들이 품어낸 삶의 자취 속에서 당대의 역사, 사회, 문화, 예술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화가의 자화상을 통해, 화가의 숨은 감정을 엿보기도 하며, 그가 읊어낸 역사의 소용돌이 속 한 장면을 마주하기도 한다. 화가이전,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영역, 인간 본연의 내면적 자취를 따라가보기도 한다.
자화상이 화가의 감정, 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소설은 보다 다양한 인간의 삶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허구라는 세계 속에서 현실보다 더 치열한 현실의 모습을 간직한 인간 본연의 모습과 대면한다. 보다 섬세하고, 보다 극적인 감정의 결과 함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화가의 삶을 그려낸 자화상 속에서 감정의 분열, 연민, 절망, 욕구, 허무와 울분, 상실과 고독을 만나기도 하며, 그러한 감정을 한층 더 섬세하게 우려낸 소설을 통해 우리 삶에 스며든 감정의 민낯을 마주하기도 한다.
화가이기 전 한 인간으로서, 민중으로서, 나약한 지식인으로서, 혁명가로서, 차별받는 여성으로서, 역사와 사회의 굴레속에서 견뎌낸 그들의 감정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들이 작품속에 담고자했던 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대 변혁기 속에서 민중으로서, 혁명가로써 억압된 사회의 굴레에 부딪혀 좌절된 쿠르베의 절망에 빠진 눈빛을 보고, 잔인한 상처에 난도질 당한 아르테미시아의 분노에 찬 눈빛을 통해 그녀의 울분을 느끼기도 한다. 역사적, 사회적, 개인적 상흔을 이해하고 나서야, 자화상 속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과, 무기력한 어깨, 공허한 시선, 체념한 듯 꽉 다문 입술 곳곳에 살아 숨쉬는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소설가 또한 소설이라는 또하나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갈등과 고뇌 속에 섬세한 감정의 모습을 뜨겁게 우려낸다. 에곤실레의 <이중자화상>속에 그려진 분열된 감정의 양상은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나타나는 성적 욕망과 정신적 절제 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분열된 정체성으로 나타낸다. 사회적 아픔과 좌절된 상황을 <레 미제라블>을 통해, 인간의 지독한 비극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대변하기도 한다. 더 치열하게 그려지는 현실 속 인간의 갈등과 고뇌 속에 감정은 보다 극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의 민낯을 통해 내면의 '나'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도 한다.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자화상을 통해 우리는 화가 내면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견뎌낸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눈빛, 손짓, 몸짓 속에 퍼져있는 감정의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이 소설이라는 상황속에서 더욱 극대화되기도 하고, 보다 섬세한 표현력을 통해 그려지기도 한다. 자화상과 소설의 연결 속에서 감정의 민낯을 만나 볼 수 있다. 감정과 이성의 교차점 속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주하고, 그속에 점철되는 인간 본연의 모습, 내면의 '나'를 대변하는 순간이었다.
![]() <태우아나 차림의 자화상>_프리다칼로, 1943
사랑의 상처로 생긴 자기 연민의 내향적 특징 때문이다. 같은 자기 연민이라 하더라도 외적 사건으로 인해 생긴 연민과 마음 안에서 비롯되는 연민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사랑의 상처로 인한 자기 연민의 내향성을 안나카레니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듯하고, 프리다 칼로 역시 이 때문에 자화상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상징과 은유 안에 가려놓은 것 아닌가 싶다.혼자 느끼는 초라함은 견딜 수 있지만, 상대의 눈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초라함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p.70)
![]() <절망하는 남자로서의 자화상>_쿠르베,1845
계속되는 좌절과 고통의 무한성, 집단적으로 확산된 절망감, 눈앞에 펼쳐진 제2제정의 위선과 억압에서 오는 좌절의 그림자가 섞여이다.시대의 어둠에서 느끼는 통증이 희망의 싹을 틔우는 계기라는 점이다. 진짜 문제는 어둠이 깊어가는데도 정작 당사자가 어둠을 느끼지 못하는데서 온다. 희망은 절망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자신의 끝자락을 보여준다.(p.93)
![]() <통찰력, 자화상>_마그리트, 1936 / 알을 보고 새를 그리다.
현실에서 새장과 새를 볼 때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알의 상태로 있던 때를 머리 한구석에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정신이나 감정은 외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재현하거나 기억 속에 저장하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스스로 확장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이를 매개하는 중심에는 언제나 상상의 힘이 자리 잡는다.(p.129) ![]() <시인 구상의 가족>_ 이중섭, 1955
구상의 가족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중섭은 거의 무표정에 가깝다. 그의 상실감은 시대의 영향을 받은 개인사로 머물지 않는다. 분단으로 초래된 이념 갈등 속에서 예술 표현에서도 갈증을 겪는다.(p.252)
![]() <자화상>_르누아르, 1876
사건이 우연적이듯이 인간이라는 존재도 우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르누아르나 부스케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 예치지 않은 위험이나 위기가 찾아온다. 이를 존재나 정신의 단절이나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실존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때 도덕적, 창의적 삶이 시작된다(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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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모델을 구할 수 없어 자신을 그리는 경우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동생 테오에게 의지했지만 돈이 없어 주로 창녀들을 그렸고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에는 화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슬픔이 깃든 표정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한 모습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보여지길 원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화가는 신의 모습처럼 그리기도 한다. 화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가가 그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가에게 그림이란 자신의 마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소설가 또한 그렇지 않는가. 소설 속 문장에 자기 안의 생각들을 담을 수밖에 없다. 또하나의 이유는 화법을 바꾸기 전 자화상으로 연습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든 그렇지 않든 자기를 그리며 변화를 시킨다.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경우는 많았다. 주변 인물들을 그릴 때 슬쩍 자신의 모습을 그려 모델을 최소화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감추었다. 박홍순 작가는 화가들의 자화상과 그 모습에 투영된 한 편의 소설을 대입해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해 냈다.
그동안 많은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련된 글을 읽었으나 이상하게 에곤 실레의 <이중의 자화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봐놓고도 내가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 에곤 실레의 <이중의 자화상>과 <삼중의 자화상>이 실려 있는데, 한 장의 그림의 이중의 혹은 삼중의 다른 자신의 모습을 담는 식이다. 심리적 변화가 굉장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듯, 분열된 자아를 보듯 또다른 자아를 나타낸 것 같다. 절제와 불안감이 한 장의 그림에 동시에 표현한 식이다. 에곤 실레의 그림과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소설을 연결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이중성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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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삶은 그림에서 잘 나타난다. 강렬한 색채가 빛을 발하고 표정은 굳어있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자신의 목을 에워싼 곳에 피가 배어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엘로에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이라는 그림 외에 <나와 디에고 리베라>라는 그림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디에고의 모습은 거대하고, 그 옆에 선 자신은 아주 작게 그렸다. 이것 또한 화가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디에고를 사랑했지만 여성편력이 심한 디에고에게 상처받은 내면의 표현이었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연민으로 보았던 것이다.
저자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과 함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엮었다. 아이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우연히 젊은 남자 브론스키를 만나 집을 나와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이미 사랑이 식은 브론스키를 바라보아야 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마음을 프리다 칼로를 연민의 마음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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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는 좀처럼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래 그림 <햄릿으로서의 자화상>도 비교적 초기작에 가까운데, 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인물을 차용한 것은 자신의 성장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성장 경험을 햄릿의 우수와 번민처럼 여겼다는 뜻이다. 들라크루와의 자화상과 연결될 소설에는 당연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마치 자신의 감정인양 햄릿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게 여겼으리라. 아버지를 죽인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 그로 인한 햄릿의 번민과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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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섭의 삶과 그림에 대한 열망을 책으로 읽어서인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과 글을 쓴 편지들. 함께 수록된 <시인 구상의 가족>이란 그림에 드러나는 이중섭의 모습은 애달프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렸던 궁핍한 삶. 언젠가는 남덕이라 부르는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함께 살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던 이중섭의 삶이 그 시대의 아픔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이중섭의 상실감을 최인훈의 <광장> 속 인물 이명준과 함께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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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자화상과 소설 속 인물들은 이처럼 교묘하게 닮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자화상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소설. 화가들의 자화상 속 표정은 다양하다. 그들 삶의 다양성처럼 다양한 표정뒤에 숨어 있다. 화가의 그림을 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의 삶의 궤적일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경제적으로 궁핍했는지, 가진 재산이 많이 여유가 있었는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책 한 권 속에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화가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겪지 못했던 감정의 파도를 느끼기도 한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세밀화로 그린 <연필로 그린 자화상>에서 피로하고 남루한 화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가 못다했던 삶이 그가 살고자 했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과 너무 다른 실제 그의 모습인것처럼.
다만 한 가지, 자화상 하면 빠지지 않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수록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고흐의 이야기가 너무도 유명해서 일까.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화가 누스바움과 콜비츠, 아르테미시아, 키르히너, 프로이트의 그림은 다시 살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인문학으로 안내했다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미술관과 인문학> 시리즈는 <감정의 자화상> 그림과 연결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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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은 어찌보면 가장 숨기기 힘든 인간의 약점이다.' 라고 생각 된다. 감정이 앞서면 항상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내면을 감정화해 표출해내는 것의 장단점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다양한 결과의 촉매제 역할을 해 준다. 감정은 특성상 충동적이어서 통제를 벗어나 출렁거리기 일쑤다.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이념적인 고민 등이 담겨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성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한국의 예술가들은 어떨까? 과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미를 외적인 통제 없이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을까? 아무런 사회적 제약없이 자기 검열의 강박관념을 느끼지 않고 창의적인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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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사치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보호받지 못했다. 감정이라는 단어 뒤에는 부정적이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감정에 휘둘리다. 감정에 호소하다. 감정에 지지 말아야 한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병이 된다. 등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에 대해 적잖게 회의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특히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꾀하면서 개인의 감정은 뒤로 밀쳐 놓고 이성만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으리라. 나 또한 떠오르는 감정을 자제하면서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자기암시를 수없이 했었다. 그동안 삶에 시달리느라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진실한 대화가 없었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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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과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감정들. 강렬한 눈빛, 눈 주위에 흐르는 세월의 흔적들, 굳건하게, 기개있는, 혹은 아련한 눈빛의 사내나 여인의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이 살았을 삶이 궁금하고, 그들이 집중하고 또 집중하며 그려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깊게 퍼져나간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거침없이 붓을 휘갈기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다. 때때로 자신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모델을 살 돈이 없어 거울을 보며 자신을 그린 화가도 있지만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많은 작품 중에서도 구도, 색깔, 인물이나 풍경을 표현한 것들이 제각기 다르지만 화가들이 그려낸 화풍은 같은 것이 없다. 한 화가의 작품을 오래도록 보다보면 보지 못한 작품을 마주쳤을 때 단번에 그 화가가 떠오르게 된다. 화가의 얼굴을 통해 내밀하게 드러내는 다채로운 감정들이 그들의 붓 속에서 표현되어 있고,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표정과 모습들이 마음 속 깊이 박혀 버린다. 오래전 철학자 <강신주의 감정수업>(2013, 민음사)을 통해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감정에 대해 세계문학과 함께 감정의 결을 느꼈다면 저자 박홍순이 쓴 <감정의 자화상>은 화가의 자화상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에 이르기까지 자화상 속에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히 드러난다. 실레, 램브란트, 프리다, 쿠르베, 프로이트, 마그리트, 이쾌대, 들라크루아, 키르히너, 콜비츠, 뒤러, 아르테미시아, 이중섭, 고야, 누스마움, 드가, 고갱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미 그들의 화풍 속에서 드러낸 감정의 결이 화가의 얼굴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익히 그들의 화풍 속에서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감정의 선들을 저자는 헤세, 발자크, 톨스토이, 위고, 마르케스, 로브그리예, 강경애, 셰인스피어, 헤밍웨이, 린저, 괴테, 하디, 최인훈, 그라스, 케르테스, 부스케, 조이스, 볼테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감정과 결부시킨다. 읽어본 작품도 있지만 미처 접하지 못했던 소설들과 읽었지만 동화되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더해 감정의 색을 찾아낸다. 책이 보드랍게 잘 읽히기 보다는 거칠거칠한 면들이 많았지만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화가들의 자화상처럼 그들의 고뇌를,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더하니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서양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화가와 작품을 비롯해 아시아권 화가들과 작품들을 더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꽤 오래전 지인의 추천으로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사놓고 책이 바래도록 책을 펴지 못했다. 초반에 몇 장을 읽다가 다시 책을 덮곤 했는데 고야의 자화상을 보며, 다시 고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그라스의 책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실레의 작품은 생활 곳곳에, 책의 표지에 자주 등장했던 터라 익숙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감정의 자화상>을 읽으면서 더 깊이 알게된 화가가 실레다. 짧은 생애지만 그의 분열적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들이 그림 속에 묻어나 있고, 그림 속 깊은 인물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화가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실레는 결혼 전 모델이었던 발리와 깊은 연인관계였지만 결혼은 이웃에 살던 다른 여인과 한다. 그의 그림에 있어 다소 외설적인 모습들이 발리와 함께 있었을 때 두드러졌지만 그는 결혼 후에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매력적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욕망들이 날큼하게 보여주는 강렬한 모습들이 화가 자신에게 모두 들어있는 것처럼 실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중 자화상>을 통해 표현해 했다. 위의 사진 속에 아련한 눈빛의 남자인 르누아르의 모습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내라는 감정에 투영되는 화가였다. 그가 나타내는 빛감, 색채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그려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프리다 칼로처럼 건강하고 싶었으나 건강하지 못해 억누르는 아픔을 부여안고 그림을 그렸던 처럼 르누아르 역시 1888년 이후 만성 류머티즘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아련한 눈빛의 신사가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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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단어는 몇개나 될까?? 금방 답해보라고 하면 서너개 이상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보통 '좋다''싫다' 이거나 긍정표현 앞에 '안'을 붙여서 부정표현을 하는등 단순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 박홍순은 <감정의 인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기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감정과 은밀한 만남을 위한 적절한 안내자로 '자화상'과 '소설'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감정은 모두 18개다. 이것을 6개씩 묶어 3부로 나누어 놓았다. 1부 숨겨진 감정을 만나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2부 새로운 감정을 찾다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3부 뒤엉킨 감정을 보듬다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 이렇게 18개의 감정이니 자화상, 소설도 각각 18개씩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화가 18명과 소설가 18명을 소개받는 셈이다. 그림과 소설이 아니라 굳이 화가와 소설가라고 한 이유는,? 자화상을 소개할 때 작가의 생애나 작품세계, 또 다른 자화상이나 그림들을 풀어내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한 화가에 대해 알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주제 감정과 어울리는 소설을 소개하는데 분량은 그림쪽이 더 길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왠지 교양이 내면에 쌓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다 알만한 대중적 화가들로 소개한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처음 듣는 화가도 있었고 소설가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 책 쫌 읽었네~~' 했는데 모르는 작가 이름들을 보고 꼬리 바로 내렸다. 하지만!! 소개할 두 가지 감정은 아는 작가로 골랐다~~ 감정보다는 아는 사람 이름이 더 눈에 들어왔고 반가웠다는거!! 그런 말이 있지 않나.?사람은 아는 노래만 계속 듣는다고~ 잘 모르는 클래식 음악 들으면 졸게 되듯, 나도 아는 화가의 글을 읽다보니 더 재미있더라는... 그러면!! "책 열었더니 죄 모르는 사람투성인데요?" 이렇다하더라도 걱정마시라~~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읽다보면 교양이 쑤~~욱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울분 : 아르테미시아, 복수를 승화시키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7세기에 드물게 직업화가였다. 그런데 그림을 시작하기전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억울한 재판이 벌어지고 결혼을 해서도 고통스런 삶이 이어진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약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항거하고자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 그녀의 눈빛은 강렬하고 몸짓도 단호하다. 울분의 또다른 주인공은 '테스'다. 어여쁘고 착한 테스는 집안을 돕기 위해 부잣집에 일하러갔다가 그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비난한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울분이 솟구칠밖에... 두번째 울분은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 때문! 테스가 과거를 고백하자 자신은 방탕하게 생활했으면서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떠난다. 두 여성은 여성이라서 당해야했던 불합리한 처사에 울분을 토했고 같은 여자로써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 열망 : 이쾌대, 미래를 품다. 3년전 이쾌대를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다녀와서 알게된 매력적인 화가를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으로서 서양미술을 하는 이쾌대에게서 열망을 보았다. 그의 작품 곳곳에 암담한 민족의 상황을 고민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해방에 대한 열망이 묻어난다. 작품 "상황"에도 고통받는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이 있다. 소설 <인간문제>의 작가 강경애도 친일파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농민의 삶을 주목한다. 항일의식을 가지고 있던 청년 첫째와 신철의 삶을 비교한다. 노동쟁의? 주도혐의로 체포된 후, 신철은 전향하고 지주집안 딸과 결혼하면서 저항을 멈춘다. 하지만 첫째는 식민지의 현실과 약자의 고통을 해결하기위한 고민에 빠진다. 자신같은 육체노동을 하는 민중들이 해결주체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이쾌대와 첫째의 유사성을 찾아낸다. "이쾌대의 열망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단순한 반발을 넘어선다. 식민지라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1차적 반발을 넘어 아직 맹위를 떨치는 전근대적?봉건적 잔재에 대한 저항, 나아가서는 현실에서 민중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출발하는 계급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흡수한 열망을 회화에 담아내려 한다. " 이 책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펴보고? 같은 감정을 화가랑 소설가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확인하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어쩜 진짜로 자신의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지도~~ '난 더 똑똑해져야겠다~'싶은 마음이 든다면, 책 속의 화가나 소설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보면 된다. 그야말로 확장독서로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면 자화상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자화상을 직접 그리게 될 지 누가 알겠나. '아아~~ 공부느낌 싫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도 된다. 어디가서 미술에 대해 아는 척 좀 해야할 때, 속성으로 교양 장착하기에 필수템이다. 어떤식으로 써먹든 문화예술역사영역 지식넓히기에 유용한 책이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하게 즐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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