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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토요일 오전.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작은 미술관으로간다. 이른 시간에는 관람객이 적어 한적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짧은 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일명 '서촌'이라 부르는 동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작고 정겨우면서도 운치 있던 서촌도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 작은 동네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길래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어서일까? 내가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책을 펼쳤다.
내 기준에서 이 책은 역사서다. 늘 가는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서촌을 중심으로 광화문과 통인동 일대, 세종로로 이어지는 그 곳에 담긴 역사를 이야기한다. 아기자기한 서촌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 묵직한 이야기가 한 가득 들어있다. 정동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어느새 6개월이 훌쩍 넘었다. 강남보다는 광화문을 좋아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무척 만족한다. 매일 다니며 보는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 가끔씩 산책하는 청계천 길,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빌딩 용비어천가 등.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가 담겨 있었다. 하루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이 곳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무척 즐거웠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 들어있다. 흡사 보물창고 같기도 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면 이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서촌으로 걸어가보려 한다. 눈으로 보기만 했던, 책으로 읽기만 했던 그 곳을 읽고 보며 다시 한번 느껴 보려 한다. 서울의 작은 동네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 이런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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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 산책] 서촌을 걷는다 책을 통해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서울 서촌의 역사 속을 느릿하게 걷는다. 그곳에서 만나는 역사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생생한 이야기를 건네면서 살아난다. 출판사: 창해 지은이: 유영호 발행: 2018년 6월 19일 #책을 여는 마음#
역사, 지리, 문인들, 사진과 그림,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 정말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다. 걷기와 역사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완전 추천한다. 서울의 문화, 역사, 문인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완전 추천한다. 아주 술술 읽힌다. 책의 질감도 좋다. 종이의 두께감도 좋다. 전체적인 느낌이 고급지다. 저자는 말한다. “결국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그래서 “최근 중심부인 서울의 역사와 기행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을 쏟고”있다고. 이 글을 읽는 순간 부끄러웠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고장과 지금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역사와 환경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이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적어도 내 고장에 대한 굵직한 역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 속으로# 서촌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 역사와 문화의 보물 창고. 서촌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우리가 몰랐던 곳. 이렇게 작은 제목으로도 일목요연하게 수식이 가능한 서촌. 그곳을 걷는다. 경복궁 서쪽의 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서촌. 자고로 한 마을의 역사는 물을 따라 형성되는 법. 그래서 저자는 이번 답사지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청계천 상류, 즉 ‘백운동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에 남겨진 지난날의 흔적을 찾고 그 시대로 들어간다. 백운동천은 청계광장의 소라탑에서 북쪽으로 창의문 옆 북안산 기슭의 청계천 발원지까지의 물길을 말한다. 백운동천은 옥류동천, 사직동천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하는데, 그곳 역시 발길을 멈추고 살펴볼 만큼 볼거리가 많다. 이 책은 기행문으로, 직접 걸으며 눈에 보이는 위치에 따라 서술한다. 교과서 속에서 만나는 관념적인 역사가 아니라 생활에서 접하는 현실적인 역사를 이야기꾼처럼 실감나게 서술한다. 그래서 어르신한테 동네 역사, 전설, 이야기를 듣듯이 귀가 솔깃해진다. 현재의 모습과 예전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지도, 사진, 역사 자료들.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역사가, 학자들, 그리고 문인들. 아주 반가운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이상과 절친 구본웅에 얽힌 일화들 속에서 시인 이상이 왜 ‘이상’이라고 필명을 붙였는지 그 이유도 나온다. 윤동주가 잠깐 머물며 하숙했던 곳이 지금은 마치 윤동주가 오래오래 살았던 것처럼 인식될 만큼 소문이 무성하고. 다만, 서촌과 연관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의 흔적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이 구석구석 녹아 있다. 화가 이중섭의 생애와 그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전쟁과 분단 속에서 가난과 싸우다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그의 삶을 드려다 보면, 계속 마음이 아파온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긴 턱’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중섭의 별명)는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 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155쪽) 디프테리아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춘화로 낙인찍혀 철거당한 것이다. 그나마 판매된 그림조차 돈을 떼이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기회로 여겼던 개인전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156쪽)
이렇게 서촌의 어느 지점에서 만난(수성동 계곡에서는 이중섭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을 찾아 가서는) 역사의 흔적에서 인물을 찾아내고, 인물의 생애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생생한 역사의 장소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책을 닫는 마음* 읽다 보면. 서울의 서촌에, 그렇게 어느 한 마을에, 이렇게 많은 역사와 문화와 인물의 흔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어디 여기뿐일까. 우리가 내 주변을, 내 마을을, 내 고향을, 저자처럼 살펴 본다면. 곳곳이 보물창고이며 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깊은 애정을 쏟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아주 많이 반성한다. 끝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이 나와서 옮겨 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있는 구절이다. 조선시대에 어명에 의하지 않고 창의문(한양도성 북소문에 해당하는)을 출입한 경우가 딱 한 번 존재하는데. 인조반정(1623)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최대 치욕인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때도 한양도성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국왕이 이미 빠져나가 왜병과 청군이 무혈입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선종의 무책임과 인조의 무능을 비판한다. 그리고 시 한 수를 떠올린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 야설(野雪)이다. 조선의 시인 이양연이 쓰고 백범 김구의 애송시로 널리 알려진 시.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 이 장소가, 곧 역사가 되고 후손에게는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니. 잘 살자. 함부로 살지 마라. 내가 있는 이곳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자. 후손에게 좋은 유산이 될 것들을 남기며 살자. 내 살아가는 이 길이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역사의 흔적이 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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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서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기도 한 서촌이 어디를 말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저자는 서울토박이인 제가 몰랐던 것이 아니라 사실 서촌이라는 명칭이 명확히 정립되고 공유되지 않은 것이라 말합니다. 남촌 북촌은 청계천을 가운데로 남쪽 북쪽을 의미하는데 비해서 말이죠. 저자는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촌은 경복궁 서쪽의 옥인동 일대로 엄밀히 말해 북촌의 일부라고 합니다. 2000년 대 들어 종로구 가회동 일대가 요즘 유명한 북촌한옥마을로 명명되면서 그보다 서쪽인 옥인동 일대를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어색해져서 경북궁의 서쪽이라는 의미로 서촌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44개의 소챕터로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1장의 광화문일대로부터 5장의 효자동 일대까지 배치되어 있는 각 장의 제일 앞에는 역사적인 지역을 중심으로 표시된 지도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지도를 따라서 그 일대를 걷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한 마을의 역사는 물을 따라 형성되는 법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답사 기준으로 비록 모두 복개되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발길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기준으로 답사코스를 잡았습니다. 저자는 우선 물길의 시작인 청계천 상류, 즉 ‘백운동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에 남겨진 지난날의 흔적을 찾고 역사적인 기원을 설명해 나갑니다. 백운동천은 청계광장의 소라탑에서 북쪽으로 창의문 옆 북악산 기슭의 청계천 발원지까지의 물길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옥류동천, 사직동천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하는데 특히 옥류동천 인근은 서촌 관광의 핵심으로 개발되어 볼거리가 많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광화문 일대의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옥이 위치한 땅이 원래 1952년 3월 발표된 도시계획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는 서울의 21개 계획광장 중의 하나였고 반지름 150미터의 원형 계획광장 부지로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계획이 축소되며 조선일보 사옥은 제외되었고 동아일보는 정부의 도시계획을 완전히 무시해서 국회 앞 1급지를 주고 사옥을 이전하기로 했는데 땅만 받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1971년 지하철 1호선 설계 당시 동아일보사 건물의 일부를 철거해야 전동차가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에 정상적으로 운행될 수 있었지만 동아일보의 반대로 철로가 90도 가까운 직각 형태로 꺾이게 되어 운행속도가 급감하고 많은 양의 윤활유가 사용되는 비용을 치루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사옥도 도로를 차지하며 돌출되어 있어서 그로인한 교통혼잡비용이 엄청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두환 박정희 찬양기사를 실는 등 군사정권 등에 빌붙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언론권력들이 정작 시민들의 불편이나 세금낭비에 일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나고 자랐던 서울의 그리고 '북촌의 서쪽'인 서촌에 대한 책이라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이번 책처럼 서울 특정지역만 철저히 분석하고 답사하는 책은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오랫동안 살았고 정들었던 곳인데 막상 이곳의 역사를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제 고향인 이 지역들을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직접 답사도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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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본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본래 남촌과 북촌이라는 말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일제강점기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촌에는 조선인이 모여살았고, 남촌에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면서 경제적, 민족적 경계가 명확해졌고,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경복궁의 서쪽마을, 서촌은 엄밀히 '북촌'의 일부이다. 저자 유영호씨는 서촌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청계천의 상류, '백운동천'을 따라 걸으며 그 시대로 우리를 데려간다. ![]() <1장 광화문 일대> 백운동천은 창의문 위의 계곡에서 시작하여 경복궁역을 지나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흘러 청계광장의 소라탑에 다다른다. 그리고 여기서 청계천 지류 중 하나인 '중학천'과 만난다. 복개되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로인해 세종대로 사거리 일대는 집중호우라도 내리면 병목현상으로 물에 잠긴다고 한다. 1952년 발표된 광화문 계획광장부지에 포함되어 있던, 지금의 조선일보 사옥과 동아일보 사옥, 경제논리로 인해 행정구역이 수평분할된 광화문 빌딩, 소유권이 수평분할된 프레스센터, 견지동 조계사와 수송동 백송, 성북동 교보단지의 비밀, 평양 만수대극장과 비교당하며 지어진 세종문화회관, 주시경 집터에 지어진 용비어천가 빌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 경복궁에서 왕이 행차하여 사직으로 들어가는 길이 지금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 있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서울지방경찰청 터의 슬픈 역사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체부동의 '금천교'는 도로확장공사로 사라졌고, 추사 김정희가 자란 월성위궁 터에 있던 600년 된 백송은 1990년 태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 터들은 외세에 의해 '동양척식회사'가 설립되는 등 변질되기도 한다. 삼청장을 통해 친일의 역사도 살펴보고, 콘크리트 대문인 영추문의 식민지 침탈의 역사도 알 수 있다. 생명파 동인지 「시인부락」을 탄생시킨 보안여관, 남과 북, 중국으로 흩어진 독립운동가 김가진 가문, 천재시인 이상, 이상의 절친 구본웅과 주변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친일파 시인 노천명, 엄귀비의 지원속에 탄생한 '진명여고', '숙명여고', '양정고교', 수묵화의 거장 이상범, 참여연대 건물, 김광규 시인, 일본인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통인시장'에 대해 알 수 있다.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서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웠던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윤동주의 흔적, 윤동주의 동창생 문익환과 정일권,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서양화가 이중섭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수많은 궁궐의 여인들이 거쳐간 자수궁,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여성, 이여성의 동생 화가 이쾌대의 '군상Ⅳ', 앨리스 현, 매국 3관왕 이완용의 집, 낙랑구락부 멤버 김수임, 옥인동 대공분실,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의 집의 역사를 둘러본다.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이광수의 집, 신익희 가옥,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 '육상궁', 사도세자 어머니의 사당 '선희궁', 이회영,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 1·21사태, 인조반정의 역사 '창의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 지도를 보며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경복궁 옆이라는 위치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역사가 있었고, 정말 많은 역사적 인물이 거쳐간 장소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광화문 계획광장과 언론권력의 한판 승부" 부분이었다. 1952년 3월 발표된 도시계획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는 계획광장 가운데 하나였으며, 반지름 150미터의 원형 계획광장 부지로 예정되었다. 서울시는 신규 건축허가를 전혀 내주지 않고 가건물만 허용하고 있었으나 서울 한복판의 토지소유자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대폭 축소 결정되었지만, 여전히 동아일보 사옥은 계획광장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시는 대통령의 결제를 받아 여의도 땅을 동아일보사에 3,689평을 2억원도 안되는 가격에 매각하고 사옥을 이전하기로 약속을 받았으나, 동아일보는 이를 어겼다. 동아일보는 1999년 광화문에 신사옥을 완공하고, 여의도에는 별관을 건설하여 2003년 포스코에 1,370억 원을 받고 매각해 버린다. 결국 동아일보사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일반시민들만 권익 침해를 받았다. 세종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일보사로 인해 계획대로 도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갑자기 2개 차선이 사라지게 되어 교통혼잡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역사속 박정희정권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으나 이들 언론사에는 휘둘리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고, 이 언론사들의 권력이 그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또한 "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언론사가 들어서서인지, 마치 옛 포도청의 권력을 언론사가 대신 행사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22쪽)고 표현한다. ![]()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친일파에 대한 것들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밝히고 있지만 그 중 숨겨진 친일파들의 행적과 그 후손들이 누리는 이익은 울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특히 삼청장과 관련한 역사를 읽을 때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숨기려고 하였으나 아직도 일부 진실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저자는 그 사실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민영휘의 아버지 민두호는 명성황후의 친척오빠인데, '민 쇠갈고리'로 불릴만큼 소문난 탐관오리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민영휘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수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삼청장은 그 가운데 소소한 일부일 뿐이다." 77쪽 ![]() 민영휘는 삼청장을 막내아들 민규식에게 물려주고,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 명의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고 한다. 2009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했고, 결국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기에 이른다. "2011년 정부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소유의 삼청장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통의동 및 청운동 땅과 맞교환했다 삼청장의 경우 2009년 공매 당시 감정가 약 78억 6천만원이던 것을 홍 회장이 40억 1천만 원에 낙찰받은 것이고, 대체부지로 넘겨준 통의동과 청운동 땅의 감정가는 97억 원이었다. 시세는 그보다 차이가 더 컸다. 특히 통의동 땅은 경복궁역 바로 옆이라 훨씬 높게 거래되었다. 결과적으로 홍석현 회장은 2년 만에 53억여 원의 시세 차익을 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이면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76쪽 홍석현의 부친 홍진기는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낸 친일파이고, 죽산 조봉암의 사형명령에 서명했고, 4.19시위자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09년 발간된 '친일파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삼청장 하나에도 이렇게 질긴 친일의 역사를 옅볼 수 있는 우리 역사가 안타깝다. ![]() 손기정 선수의 귀국 일화는 더욱 슬프게 만들었는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였던 손기정 선수의 귀국 모습을 살펴보자. 마치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듯 하지 않는가." (120쪽)라고 표현한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는 없고 범죄자만 보였다. 그렇게 손기정 선수는 환영받지도 못했고, 총독부는 그를 몰래 귀국시켜 그 날로부터 늘 감시해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독도 폭격사건과 독도 영유권"은 충격으로 몰아 넣었는데, 그럴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던 것과 이렇게 공식적으로 책을 통해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미 국무부의 대일강화조약 작성시 1~5차까지의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려 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영국이 반대하자,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독도를 아예 빼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독도는 일본령이라며 미국이 일본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독도에 대해 한국령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 177쪽 이러한 글들을 통해 처음에는 가볍게 서울의 풍경을 즐기며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독서는 전혀 생각도 못한 곳으로 흘러갔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서촌의 곳곳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서울의 궁궐만 보러 갈 것이 아니라 서촌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촌을 걷는다>라는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서촌 나들이를 간다면 건물하나에도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 것이고, 사라진 하천과 다리, 건물들을 아이들과 상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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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요 ~ 그래서 결혼을 하면서 서울나들이를 많이 시작하게 되었어요 ~ 서울하면 정말 가볼만한곳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광화문일대이죠 ~ 작년에 서울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광화문일대를 시작으로 서울의 서촌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는데요 ~ 서촌에 대해 더 많이 알고싶어 서촌역사기행 서촌을걷는다 읽어보았답니다 출판사는 창해 지은이는 유영호 님이에요 !
항상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하여 읽는 부분이 바로 지은이 인데요 ! 서촌을걷는다 지은이 유영호님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일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신 분이랍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경험을 시작으로 민족분단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내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통일의 첫걸음이라는 믿음아래 현재 대한민국 중심부인 서울의 역사와 기행에 대한 글쓰기의 첫번째 역사기행이 바로 이책 ~ 서촌역사기행 서촌을걷는다 랍니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 이 책을 읽기전에는 서촌이란 그저 광화문 경복궁 서쪽마을?? 이정도 였는데요 ~ 이 책을 통해 하나하나 서촌의 역사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알게되면서 오랜 옛날부터 우리 나라의 중심부이자 한반도의 심장부임을 깊이 알게되었답니다
머리말을 살펴보면 1장 ) 느리게걸어보자 서촌 - 광화문일대로 청계전물길과 세종문화회관 용비어천가와 종교교회 등 ~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가득하더라구요 ~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 사직동, 체부동, 통의동 일대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 누하동, 통인동 일대 4장) 도심의 살아있는 박물관 - 옥인동 일대 5장) 우리가몰랐던서촌 - 효자동, 궁정동, 신교동, 청운동 일대 이렇게 서촌의 각 분야와 역사에 맞게 동이 나눠지면서 그 지역에 따른 역사와 의미를 자세하고 재미나게 알려주고 있답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잡은 땅속을 숨은 청계천 물길 이야기 ~ 이렇게 자세한 지도와 함께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서 서울에 대해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 여행을 계획 하시는분들 역사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자 하시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겠더라구요 ^^
지금은 청계천 일대가 이쁘게 조성되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관광지로서 많은 사랑을 누리지만 땅속으로 숨었다가 다시 복원되기까지의 굴곡진 변천사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답니다
서촌역사기행 서촌을걷는다 유영호 창해 책 속에서는 광화문 일대에 거대하게 서 있는 유명한 기업과 건물들의 이야기도 들려줌으로써 왜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는제 알게되어 참 재미있더라구요 ~ 절대 손해는 보지 않으려는 기업과 그로인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현재까지의 역사들을 알게되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왠지 더욱 서촌을 가 보고 싶더라구요 ~ 이제는 왜 이건물이 여기 이렇게 서있는지 나도 안다고 !! 하면서 말이죠 ㅋㅋㅋ 특히, 우리 아이들 이제 사회를 배우면서 다양한 지명과 지형에대해 물어보기에 더더욱 이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지도는 물론 이렇게 사진도 수록되어 있어서 내가 직접 하나 하나 걸어가면서 설명을 듣는듯 재미나게 유쾌하게 쉽게 만들어진 서촌역사기행이라 서울여행코스 , 서울역사산책, 서울역사탐방으로도 더 없이 좋은 책인듯 해요 ~
세종문화회관이 평양 만수대극장과 경쟁했다고? 그저 우리나라의 오래된 문화공간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비하인드 이야기가 있다니 ㅎㅎㅎ 그래서 더 크게 멋지게 지어졌다는 사실, 다만 지금은 가는세월에 어쩔수 없이 함께 역사속으로 흘러가는 사실이 아쉬웠네요 ~ 이외에도 각 장마다 각 동마나 한장 한장 넘기면서 직접 서촌여행을 하는듯 넘 재미나게 읽은 서촌역사기행이랍니다 ~ 우리나라의 수도 내가 함께하는 서울에 대해 조곤조곤 차분히 그리고 친절하게 알려주기에 유영호님의 두번째 역사기행도 넘 기대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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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西村)’을 걷는다‘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일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북한 전문가가 쓴 이례적인 책, 역사적 배경에 충실한 책이다. 책은 전체 5장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1장 느리게 걸어보자 서촌,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등이다. 저자에 의하면 서촌이란 엄밀히 말해 북촌의 일부이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곳이 서촌이라 불리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종로구 가회동 일대가 북촌 한옥마을로 알려지면서 옥인동 일대를 북촌이라 이름하기 어색한 까닭이었다. 현재 책이 말하는 곳은 경복궁 서쪽 마을이란 의미로 서촌이라 불리고 있다. 일제때 청계천이 복개(覆蓋)된 것은 조선을 대륙 침탈의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총독부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재정문제로 일부만 진행되었을 뿐이다. 세종문화회관편에서 우리는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연에서 독립한 것으로 보이지만 도시설계자들은 대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바 일반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한편 저자가 주시경의 집터여서 용비어천가 빌딩으로 불리는 곳을 논한 자리에서 우리는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시행한 문헌이 한 외국인이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책은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쓴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이다. 저자는 조선이 전조후시(前朝後市)를 완전히 따르지 않고 시장을 궁궐 뒤가 아닌 종로와 남대문로에 세웠다는 점, 성곽을 네모나 원으로 짓지 않고 산을 기준으로 분지에 성을 지었다는 이유를 들어 조선이 같은 유교문화권이었지만 자기 환경과 조건에 맞는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성곽 축조의 관념을 보유했다고 말한다.(62 페이지)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영추문(迎秋門)이 경복궁의 대문들 중 유일하게 콘크리트(로 복원된) 문이라는 사실도 접하게 된다.(82 페이지) 이 역시 일본의 조선 궁궐 훼손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런 슬픈 역사는 영추문 앞 보안여관에도 깃들어 있다. 서정주 시인이 투숙한 뒤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과 함께 ’시인부락‘을 창간한 보안여관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건너온 부락(部落) 즉 부라쿠(ぶらく)란 말은 신분적‧사회적으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아 온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동네의 고유 명칭을 부락으로 명명한 것 역시 영추문 사건처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것이다.(85 페이지) ’오감도‘의 시인 김해경이 이상(李箱)이란 필명을 쓰게 된 사연이 역사적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서촌을 걷는다‘의 특징이기도 하다. 화가 구본웅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들어간 김해경에게 사생상(寫生箱: 화구畵具를 담는 상자)을 선물했다. 가난했던 김해경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필명에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을 넣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앞 글자는 흔한 성씨이되 사생상이 나무이니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성씨를 사용하기로 했다. 연애로 이름을 알린 이상은 후에 구본웅의 이모 변동림을 세 번째 여자로 맞는다. 변동림은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꾼 뒤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와 결혼했다. 그녀는 김환기 사후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세웠다. 변동림의 이복 언니가 변동숙이고 변동숙의 호적상 증손녀가 발레리나 강수진이다.(101 페이지) 구본웅은 우리 나라 최초의 야수파 화가였다. 이상의 집과 2 – 3분 거리에 시인 노천명의 집이 있다. 노천명의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수묵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의 집이 있고 바로 옆에 그의 화실이 있다. 이상범의 집 처마 아래로 누하동천(樓下洞天)이란 친필 편액이 보인다. 동천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또는 신선이 사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115 페이지) 서촌의 또 다른 명소인 대오서점 이야기도 흥미롭다. 대오서점은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다. 자식들을 교육시킨 서점인 대오서점을 지금은 다섯 째 딸이 북카페로 리모델링 해 계승하고 있다. 서촌의 맛집 골목인 통인시장은 일본인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만든 시장이다. 통인시장의 일부가 옥류동천 상류의 물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본래 통인시장은 일본이 1941년 6월 효자동 일대에 살고 있던 자국인들을 위해 개설한 제2공설시장이다. 서촌에서 가장 많이 방문객이 몰리는 곳은 옥인동이다. 옥류동과 인왕동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옥인동 면적의 반 이상을 소유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 아버지 윤덕영이다. 그의 저택인 벽수산장은 1만 6천평의 대지를 차지했었다. 박노수 미술관은 윤덕영이 시집간 딸을 위해 지어준 집이기도 하다. 벽수산장 본채와 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박노수 미술관이 있다.(132 페이지) 자수궁(慈壽宮)은 문종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문종이 선왕 세종의 후궁들을 거처할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후에 성종의 비(妃)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윤씨가 빈(嬪)으로 강등된 후 거처했고 중종 비 단경왕후도 궁에서 쫓겨난 뒤 생활했다. 재혼할 수 없었던 왕의 후궁들은 비구니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자수궁은 5천여명의 여승을 수용한 국내 최대 승방이었다.(164 페이지) 자수궁 터인 군인아파트 정문을 마주보며 서 있는 세종아파트는 사회주의자 이명건의 집이 있던 곳이다. 이명건은 친구 김원봉, 김두전과 함께 1948년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이명건은 여성(如星), 김원봉은 약산(若山), 김두전은 약수(若水)란 호를 가졌다. 김원봉의 고모부가 지어주었다. 별과 같이, 산과 같이, 물과 같이란 의미이다. 민족해방 운동을 위해 중국에 가는 그들에게 이국땅에서도 조국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지어준 것이다.(167 페이지) 이명건의 동생이 화가 이쾌대이다.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곳은 옥인동 보안수사대이다. 조선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과 윤덕영의 가옥 바로 옆이다.(195, 196 페이지) 마지막 5장은 우리가 몰랐던 서촌이다. 전체 다섯 장(章), 44편의 글 가운데 40번째 글이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 육상궁(毓祥宮)이다. 육(毓)은 기를 육인데 같은 자로 육(育)이 있다. 김포 장릉(章陵; 인조의 부모를 모신 능)에 가면 인종의 어머니가 묻혔던 육경원(毓慶園)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육경원과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흥경원(興慶園)이 합쳐져 장릉이 된 것이다. 마지막 44번째 글은 ’혈흔처럼 남은 인조반정의 역사 창의문(彰義門)’이다. 청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깊고 수석이 밝게 빛나는 모습이 개성의 자하동을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기도 하는 창의문은 태종 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 일대는 경복궁의 두 팔에 해당하므로 길을 열지 말고 지맥(地脈)을 온전하게 하소서라는 상소를 함에 따라 늘 폐쇄되어 있었는데 어명에 의하지 않고 창의문을 출입한 경우가 단 한 번 있었으니 바로 인조반정을 말하는 것이다.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동조해 이루어진 인조반정으로 명청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과 대북파가 제거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세력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역사의 계승과 세월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게 된다. 이렇듯 서촌 순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것은 역사를 배우는 현재적 의미이리라. 역작(力作)임을 실감하며 책을 덮는다.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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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길은 참 익숙한 동네지만 오밀조밀한 속내가 가득 담긴 동네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비롯해 근현대 역사의 많은 사연들이 켜켜이 담겨있는 동네이다. 알면 알수록 더 호기심이 증폭되는 동네,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지 않는 역사의 뒤안길이라고 할 정도로 고요한듯 보이지만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내재된 서촌길이 늘 궁금했다. 서촌길은 하루종일 걸어도 늘 제자리걸음 같은 동네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눈길을 끄는곳, 호기심가득했던 곳들이 밀집해 있다보니 하루가 부족한 코스이기도 하다. 막연히 알고 있던 서촌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던차에 만나게 된 서촌이야기. 이 책은 서촌, 북촌, 남촌의 명칭의 유래부터 서촌일대를 눈에 보이는 위치에 따라 소개하고 있어서 직접 걸으며 참고하기에 좋은 구성이다. 무엇보다 근대의 정치적, 역사적인 사실들을 꽤 심도깊게 다루고 있어서 읽는동안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역사적,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여러 사안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씁쓸해지기도 하고, 안타까워지는 순간도 있다.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역사적인 장소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조금 더 명확 히 알고 싶었던 내용들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해소가 되었다. 조용한 서촌의 과거속으로 그시대 그들이 살았던 그 장소, 시간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서촌탐방 을 했다. 그간 익숙하게 발길이 닿았던 곳의 이야기는 조금 더 쉽게 다가왔고, 이 책을 읽고 난후에는 한번 더 가보고 싶어졌다. 언젠가부터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 동네의 고즈넉한 아련함보다는 시끌벅적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수성동 계곡이 복원되는 과정과 그 이면의 현실들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역서적인 고증과 더불어 조금 더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진 발굴과 보존또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양한 검증과 고증 자료들을 함께 수록해 놓아서 따로 검색하거나 찾아보지 않아도 주제에 대한 이해가 수월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 등을 연달아 겪었던 우리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근간에 개인적으로 한국근대시기의 작품과 관련된 전시들을 연달아 해설하게 되어 근대사에 관한 자료들을 더 관심있게 공부하고 있다. 꼭 예술가 이야기가 아니라도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특히나 우리 근대사의 언저리에 있는 여러 사건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이 춘화로 낙인이 찍히고,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포로로 취급되어 월북작가가 되어 가족과 영원한 단절을 맛보게 된 이쾌대를 비롯해 많은 사람 들이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아픈 상처를 남기게 되기도 했고, 그 틈을 타서 개인적인 영욕을 취하기도 하였 다. 그 모든 것이 역사이고 또 현실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외의 것들에 눈을 뜨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현재도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된다. 늘 눈뜨고, 귀를 열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멀리 보고도 싶다는 생각도 든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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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러 곳 중에서 서촌을 좋아한다.
늘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풀리지 않는 가슴 속 응어리가 있을때는 그곳을 찾는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도 그곳의 풍경이 그리워 가기도 한다. 최근
서촌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서촌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통인시장도, 골목길 상권도 모두 일주일이 멀다 하고 조금씩 변화가 생겨가고
있다. 멋지고 깔끔해지곤 있지만 왠지 예전의 그 정취와 맛은 점점 덜해지는 듯 하다.
서촌은 강북의 한 지역으로 조선왕조 500여 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다. 경복궁, 청와대, 정부종합청사가 다 이곳에 몰려 있고 고층빌딩과 한옥이 공존하는 희한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그래서 매력적이라고 할까? 서촌의 사직동과 체부동, 통의동 일대를 보면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것들이 많다. 사직단, 금천교, 백송, 영추문, 보안여관, 이상의 집, 통인시장, 박노수 미술관, 수성동 계곡, 치마바위, 벽수산장, 자수궁 등 그 어느 지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서촌의 구석구석 이야기를 역사와 연결된 이야기로 접근하니 느릿하게 읽어가며 글로 여행을 떠나는 맛이 쏠쏠하다. 책을 읽고나서 서촌을 가면 아마 그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많은 것들이 보이고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책 속 내용을 들여다본다. 아, 이곳이 그런 곳이었구나. 이 사람이 이런 일을 했구나..등 깨닫는 내용이 많다.
통인시장에서 수성동 계곡까지 이어진 길이 서촌 기행의 핵심이다. 나도 늘 이 길을 다녀오곤 하는데 이 길에는 여러 사람의 집터와 집들이 보존되어 있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정원과 집이 모두 아름다와 계절마다 오고 싶은 공간이다. 전반적으로 프랑스식 느낌이 드는 이 집은 지어진 지 80년이 지났다. 이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예전의 그 모습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윤동주의 대표작들이 이집에서 창작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수성동 계곡은 추사 김정의 시와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중섭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이 위치해 있다.
서촌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역사와 문화의 보고가 서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예술가들의 둥지가 되었던 곳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 영감이 좋은 곳이 아닐까? 이제 직접 그 길을 걸으며 교과서 속 관념적 역사가 아닌 우리 삶 속에 관여하는 옆 동네라는 이미지로 더 친근하게 접근해보면 좋겠다. 역사로의 여행이 가능한 그 곳, 서촌이 오늘따라 더욱 가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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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카페에 가서 '서촌을걷는다' 읽었어요. 서촌의 맛 집으로 많이들 찾는 통인 시장 골목 이곳은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의 집으로 현재는 아름다운 재단이 리모델링해서 사용 중이라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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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어 주말마다 걸었다. 훌륭한 해설이 곁들여진다기에 휴식을 반납하고 그리했던 것인데, 책을 읽으며 당시 보고 들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 잊은 줄로만 알았거늘 아니었다. 책이 다룬 동네는 ‘서촌’. 북촌 한옥마을로 몰렸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서촌으로도 향한다고 했지만 내겐 여전히 멀기만 한 그곳이었다. 현재는 별 의미 없지 싶은 등록기준지(본적)에 적힌 ‘종로구 누하동’가 어딘지 와 닿지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과거 같았으면 서울 아닌 경기도 양주군으로 시작하는 주소를 지녔을 곳에 사는 나로서는 서촌을 찾을 까닭이 없었다.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위해 방문하는 장소 즈음으로만 여겨왔는데, 서촌에 깃든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껏 외면하며 살아온 게 살짝 후회가 됐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했다 하여 그와 같이 불리게 됐다. 어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강북의 여느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서울 도심지, 그것도 한 나라의 수도로서 500여 년의 시간이 축적된 장소임을 감안한다면 이제껏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있던 것을 무너뜨리고 무조건 새로운 걸 건립하는 게 개발이자 진보로 알던 시절, 서촌 일대 또한 그 여파로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청계천은 필요에 따라 콘크리트로 뒤덮였다가 다시 물길을 되찾았다. 같은 건물 안에서 종로구와 중구로 행정구역이 갈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와는 다른 이념/체제를 택한 국가와의 과도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자랑 중이나 강남에 자리잡은 예술의전당 등과 비교하면 왠지 열악하단 인상을 풍긴다. 지금도 적잖은 힘을 발휘하고 있는 언론사의 과거는 더욱 위풍당당이었던 듯. 정부와의 투쟁(?)에서 기꺼이 승리를 거두고야 말았다는 모모 언론사의 위대함에 혀를 내두르고야 말았다. 서촌 일대가 낳은 인물들도 참 많았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구사했던 시인 이상, 실상 기거를 오래한 건 아님에도 서촌을 언급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윤동주, 왠지 병약한 이미지를 지녔을 거 같으나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설명할 길 없는 친일에 앞장섰던 노천명 등이 서촌과 관계를 맺었다. 그들만으로도 아우라를 느낄 법한데, 저자는 이쾌대, 이여성, 앨리스 현 등 잊혀진 많은 인물들을 소환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부쩍 무르익은 평화 무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분단국가였다. 반쪽짜리 영토, 반쪽짜리 역사. 책을 읽으면서 왠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반쪽짜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빛이 강렬하면 그림자가 짙다 했다. 수많은 권력자를 낳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함을 유지중인 서촌이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 저자가 마무리를 위해 택한 건 ‘창의문’이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건 승자의 몫이다. 성공하면 혁명이나 실패하면 반란에 그친다. 인조반정은 성공한 역사였다. 그러나 인조가 과연 성공적인 임금이었던가를 물으면 고개를 가로 젓게 된다. 그의 머리 위에는 노론이 있었다. 광해군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오른 이유에 얽매인 인조는 시대를 제대로 읽을 겨를이 없었다. 바람 한 번에 꺼지고도 남을 명나라를 숭상하는 일에 혼신을 다했던 그의 시대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인조를 세운 반정군은 평소 닫힌 창의문을 열고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금기에 반한 행동은 용기의 발로였을 수도 있으나, 이후 빚어진 결과 중 정의라 부를 법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신책정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이괄의 난’을 낳았다. 외세 아닌 반란군에 의해 점거 당한 한양은 그 때가 처음이었으며, 그 이후로도 없을 터였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서촌의 앞날이 어떠할지를 상상해 보게 됐다. 과연 앞으로도 끊임없이 찬사의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인가. 서울의 여느 지역보다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간직한 서촌이다. 이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 시끄러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지역마다 관광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서촌 또한 현재를 성공이라 여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촌은 과거이면서도 동시에 현재이자 미래이다. 지금 이 순간 서촌에 뿌리 내린 사람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이 하루하루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계속 서촌을 걷고 싶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