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정체성 정치를 넘어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펜실베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아이오와는 선거인단이 52명인 4개주이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이곳은 러스트 벨트로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점차 사양화 되는 과정에서 불황을 겪는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이곳이 어떻게 공화당의 트럼프 손을 들어 주었는지가 아주 중요한 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러스트 벨트의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다. 여기서의 극적인 반전으로 인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세계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방법은 러스트 벨트에서 높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강력하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학생들이 오답을 정리하듯 선거가 끝나고 나면 패배에 대한 분석을 담은 이론서들이 발표된다. 민주당이 공화당 부시에게 패한 이후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않는다>와 토머스 프랭크의 책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가 대표적이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분석한 마크 릴라의 이 책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는 미국 정치가 만들어 낸 역작이다.
마크 릴라의 진단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패배의 원인은 정체성 정치에 있다고 한다. 아울러 진보세력의 위기에도 정체성 정치가 원인이라고 진단 한다. 보수의 레이건 주의는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위해 정치를 했다. 정치 혐오를 확대시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참여에 거리를 두게 하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를 퇴보시켰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레이건 주의를 '반정치'라고 정의한다. 그에 반에 진보의 정체성 정치는 '사이비정치'라고 비판한다. '정체성 정치'는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해 그들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를 말하는데, 주로는 흑인, 여성, 성소주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뜻한다. 152쪽
정체성 정치는 진보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연대와 공동체 그리고 공적 의무를 무력화 시킨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와 진보의 위기 원인이 이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전통적인 진보에서 노동자들이 자치했던 자리를 신좌파에서는 흑인, 여성 , 학생이 대체하고 이어서 동성애자에게 넘겨주었다. 이렇게 바뀌게 되면서 개인만을 강조하고 개인만을 강조하다 보니 나와 다른 사람에게는 배타적인 면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목표를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을 찾기 어려워지고 정치는 조각조각 나눠지게 된다.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점차 민주정치를 외면하게 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듣기 보다는 높은 교단에서 다른 의견의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민교육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운동 정치보다 제도 정치가 우선되어야 하며 자기표현보다는 민주적 설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정치'라고 표현한다. 서로 동일시하고 개별적인 정체성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그 무엇이 시민의 지위이고 시민의 지위가 연대를 제공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청하며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노동자들의 표를 획득하는 것이 진보가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임을 언급한다. 이런 것들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진보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일침이다. 운동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당과 제도정치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운동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을 버리고 정당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 정치의 핵심인 여성과 인종 그리고 성소주자의 문제를 개별적인 정체성에 머물지 않고 우리와 시민의 지위로 함께 연대하는 것이 더 나은 진보를 이끄는 중요한 일이다.
미국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 했지만 우리나라 현재의 정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기에 이 책은 가치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 상황 역시 미국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상황이 어찌 보면 우리보다 좀 더 진전이 있어 보인다. 그렇기에 이렇게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자고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제 한발 대딛는 단계이긴 하지만 보수 종교계의 반발로 차별금지법 조차 제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 나은 진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은 자명하다. 공동체 의식과 정치의 파편화를 막아 민주주의 사회가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내게 충격에 가까웠다. 오바마 집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사이 미국 정치가 저렇게 후퇴했나 의심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역시 미국의 진보 정치에 실망한 저자가 미국 진보정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문제의 중심에 정체성 정치가 있다고 진단한 이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정체성 정치가 진보 정치를 가로막는가.
미국 제도권에서 진보정치를 이끌어온 민주당은 어쩌다 위기를 맞게 되었을까. 지난 2016년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보다 총 득표율에서 2.1% 앞섰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당선된 건 선거인단 확보에서 304명을 얻어 227명을 얻은 클린턴을 앞섰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러스트 벨트로 알려진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 유권자들이 박빙의 차이로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었던 만큼 이 지역에서의 민주당 표의 상실은 차기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암시한다.
저자는 지난 대선 패배와 미국 진보 정치세력의 위기를 불러온 요인으로 수십 년간 진행된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지목한다. 정체성 정치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해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다. 주로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를 대변한다. 정체성 정치는 1960년대 후반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표방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제한 없이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제도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가 민주당에 흡수되며 공동체의식이 퇴조하고 진보정치가 소수파 정치로 전락하며 파편화된 것이 가장 큰 패배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대한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저자는 정체성 정치로 잃어버린 '시민의 지위'를 되찾을 것을 주장한다. 정체성 정치의 중심인 여성과 인종, 성소수자 문제가 '우리'와 '시민의 지위'를 공유할 때 개별적인 정체성을 뛰어넘어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시민으로 하나되는 '시민 교육'의 필요성과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 법적 권리 획득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주적 설득' 활동을 할 것을 제시한다.
한국의 상황이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정체성 정치를 뛰어넘자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민주당이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등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일관되게 옹호하는 입장인 반면 우리는 이제 논의 단계에 있다는 점 등 차이가 있다. 또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민주주의>에 자세히 나와 있듯 문재인 정부가 보수 종교계의 압박으로 차별금지법을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은 점과 현재 진행형인 미투 운동도 한국적 상황이 여성의 민주주의에 더욱 열악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의 진보정치가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미국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더 나은 진보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 - 마크 릴라,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치는 2008년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산조각 났다. 신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이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그들은 기업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쳤다. ‘낙수 효과’라는 말에 드러나는바, 그들은 기업이 돈을 써야 서민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논리로 신자유주의 사회를 정당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무능의 극단으로 치달은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고, 촛불집회에 모인 민심으로 극우보수 정권은 권력에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정상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극우보수주의자들을 감싸고 있던 냉전 논리에 타격을 가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논리와 냉전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뒤섞인 극우세력의 무능함이 상대적으로 진보를 지향하는 세력에 힘을 준 셈이다.
마크 릴라가 지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필로소픽, 2018)는 미국 진보 세력의 역사를 찬찬히 살피고 있다. 1930년대에 일어난 세계 공황을 정부의 강력한 힘으로 극복한 루스벨트 정부 이래로 미국은 계급에 기초를 두되 어떤 집단도 배제하지 않는 정책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웠다.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로 정리되는 이 비전으로 진보주의자들은 국가에 대한 경의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큰 정부에 대한 비난이 일기 시작한다. “수십 곳의 기관들이 상호 조율 없이 부과한 선의의 규제들은 소규모 기업들을 삼키고 경제 성장을 옥죄기 시작하고 있었다.”(42쪽) 지은이는 이런 상황에서 진보주의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조의 편을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정책은 백인 하위중산층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1980년대에 급부상한 레이건 체제는 미국사회에서 번지기 시작한 정부 불신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정치적 통제 체제는 교리문답을 동반한다. 레이건의 교리문답은 어렵지 않게 암기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신조가 그 내용이었다. · 좋은 삶은 독립적인 개인의 삶이다. 개인은 가정, 교회, 소규모 공동체에는 분리할 수 없게 속해있을지 몰라도 공통의 목표와 서로에 대한 의무를 가진 공화국 시민은 아니다. · 부의 분배가 아니라 축적을 우선해야 한다. 부의 축적은 개인들과 가정들이 독립을 유지하며 번창할 수 있게 해준다. · 시장이 자유로워질수록, 시장은 더 많이 성장하고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 · (레이건 본인의 말을 인용하면) 정부가 “문제다.” 독재적 정부나 비효율적 정부 혹은 부당한 정부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가 문제다. (35~36쪽) 레이건 정부는 연대에 기초하는 시민을 부정했다. 루스벨트 정부 이래로 민주당이 지향해 온 사상을 뿌리부터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연대를 부정한 자리에 레이건은 독립적인 개인의 삶을 놓았다. 자연스레 자유 시장이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나오고, 큰 정부는 무조건 문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레이건 통치 기간에는 심지어 병역마저도 시장화되었다. 1980년에 채택된 신병 모집 표어는 “당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시오Be all you can be!”였다. 국가에 봉사(연대라고 말해도 좋다)하는 의미는 사라지고, 병역을 통해 개인이 이룰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지은이는 레이건 통치 체제 기간에 정부라는 단어를 듣는 이들은 “외계인의 우주선이 미합중국 교외지역들의 행복한 중산층 주택가로 하강하여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아동들을 타락시키고 사람들을 노예화하는 장면을 떠올렸다.”(45쪽)고 이야기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연대에 기초한 시민들을 탈정치화하는 상황으로 뻗어간다.
개인에 방점을 찍는 정치 전략은 진보주의 진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은이는 1960년대 신좌파의 전략에서 ‘운동 정치’의 모티브를 찾아내고 있다. ‘정체성 정치’로 통칭되는 운동 정치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이라는 구호에 잘 드러나 있다. 신좌파는 이 구호를 권력투쟁에서 벗어난 영역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 구호는 달리 이해될 수도 있었다. “즉, 우리가 정치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은 그저 나를, 내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표현하는 개인적인 활동일 따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79쪽) 신좌파는 여성, 환경, 인권 문제와 같은 사안 중심의 운동을 지향했다. 그것을 하나로 묶는 거대담론을 그들은 또 다른 억압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치중하는 정책을 벌인 것이다. 레이건 체제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움직인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사안 중심의 정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 정치로 나아갔다. 정체성 정치는 ‘우리’라는 의식을 애초부터 억압으로 규정한다. ‘우리’라는 의식 없이 어떻게 시민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은이는 ‘페이스북 정체성 모형’을 예시로 들어 정체성 정치에 근거한 자아를 설명한다. 이 자아는 물론 타인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자기 재량대로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관계이니만큼 사안에 대한 연대의식은 그만큼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체성 정치에 매달릴수록 연대를 위한 토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가 아무 결론 없이 토론은 끝난다. “정체성 수사법은 계급 분석을, 즉 계급이 어떻게 우리의 새로운 경제를 변화시켜왔는지에 대한 분석을 밀어냈다.”(98쪽)라고 지은이는 쓰고 있다. 계급이 사라진 자리를 개인이 채움으로써 미국 사회는 이전 사회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감을 상실하게 된다. 레이건 체제가 지향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진보세력이 도움을 준 셈이다.
처음 제시할 세 개의 교훈은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다. 운동 정치보다 제도 정치가 먼저고, 목표 없는 자기표현보다 민주적 설득이 먼저고, 집단 정체성이나 개인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가 먼저다. 넷째 교훈은 개인주의와 원자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시민 교육이 긴요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와 미국 대중 사이에, 또 우리와 미래 사이에 쌓아놓은 온갖 장벽들을 주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출발점은 그 장벽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막아온 금기들을 의문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국은 무엇이고 진보 정치 활동을 통해 무엇으로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무적이고 낙관적인 비전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공통 목표여야 한다. (108쪽) 지은이는 우선 운동 정치보다 제도 정치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환경, 여성, 동성애 문제 등을 내세우는 운동 정치는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과 불화를 조장할 수 있다. 운동 정치에 집중하다 보면 제도 정치(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므로 제도 정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실제 한국사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성 인식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청와대 행정관 문제에서 드러나듯, 진보주의자들은 소수파 진보로 다수파 진보를 비판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판단한다(이 책에 대한 해설을 쓴 유창오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도 정치에서 이겨야 운동 정치도 가능하다는 논리라고 보면 어떨까?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하는 정치논리가 반영된 이 논리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다수파 진보라는 명분으로 소수파 진보가 주장하는 사안을 뒤로 미루는 사고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책에 선후관계를 따지면 뒤로 밀리는 정책이 실현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설득과 시민의 지위는 같은 맥락에 놓을 수 있다.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정체성 정치를 넘으려면 민주적 설득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시민의 지위가 회복되어야만 가능하다. 시민의 지위는 연대의식을 가리킨다. 지은이는 시민으로서 연대의식을 기르려면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돌려 말하면 연대의식은 정체성 정치로 하여 사라진 ‘우리’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은이는 ‘우리’를 “우리 모두가 미국인으로서 공유한 무언가에 호소하는 것이다.”(125쪽)라고 정리한다. 미국 우파는 시민의 지위라는 개념을 배제의 도구로 사용하지만, 전통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을 관대한 포용의 도구로 여겨왔다. 시민은 이유 없이 그 무언가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적 설득을 통해 포용할 것은 포용한다. “정체성에 대한 애착을 초월한 연대”(127쪽)라는 말로 지은이는 진보주의자가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진보주의자들은 이중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는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논리가 왜 일반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했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운동 정치를 지향한 진보주의는 결국 제도 정치에서는 패배했다. 트럼프는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로 많은 표를 획득했다. 예전에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라는 이상에 근거하여 대중의 현실을 무시한다면 대중들 또한 진보주의를 떠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내보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당선이 진보주의 정치를 살리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트럼프 당선’이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거라고 예측한다. 정치 불신의 한 현상이 트럼프 당선으로 나타났다면, 이후 정치는 시민의 지위를 회복하는 진보정치가 그 대안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은이는 정체성 정치를 뛰어넘는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대는 ‘나’를 넘어 ‘우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 대한 의식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해집단들이 치열한 토론을 거쳐 그 의미와 범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정치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는 한국 정치를 들여다볼 때, ‘우리’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는 건 절실해 보이기도 한다. 정치 없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연대의식을 정치의 핵심요소로 꼽아야 하는 이유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2016년 11월 스마트폰 뉴스 알림으로 온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서 ‘뭐야…트럼프네? 트럼프야..’라고 탄식할 때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서로의 손목을 건 도박판에서 아귀(김윤석)가 들고 있던 사쿠라 화투장만큼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 참여해 후보자로 결정될 때까지도 그가 대통령까지 되리라는 예상을 거의 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을 즈음 강준만 교수의 <도널드 트럼프: 정치의 죽음>이란 책을 통해 트럼프가 지지를 받게 된 당시 미국의 정치 상황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충격이 더욱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한당 보수 더민주 진보? 아니올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가 쓴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정체성 정치를 넘어>를 보면 스스로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한 저자 역시 트럼프의 승리에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책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최고의 정치적 스캔들’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눠진 미국의 정치 환경에서 진보진영이 왜 실패를 거듭했는지 진단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집단들의 싸움에도 신물이 나는데 무슨 미국 정치얘기까지 알아야 하나 할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6월 한국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으니 진보가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에선 진보가 승리했다라는 단순한 도식에 빠지기 쉬운 시기에 마크 릴라의 책은 한국의 진보정치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공화당-보수, 민주당-진보로 구분할 수 있는 미국과는 달리 사실 우리나라에선 자한당-보수, 더민주-진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한당을 보수라 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정당 역사와 지형을 고려할 때 더민주는 보수에 가깝고 진보진영이라 할 수 있는 그룹은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정도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에서 녹생당 후보 몇몇이 약진하며 선전했고 최근 정의당 지지율이 10%를 넘었다는 고무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보면 진보정당들은 전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진보진영의 실패를 진단하고 향후 권력 획득을 위한 전략을 제안한 마크 릴라의 책은 우리 나라 진보진영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들이 있습니다. 미국 진보진영의 실패 원인 마크 릴라는 20세기 미국 정치사를 ‘연대, 기회, 공적 의무’로 상징되는 1970년대까지의 ‘루스벨트 체제’와 ‘자기신뢰, 최소정부’로 상징되는 1980년대부터의 ‘레이건 체제’로 구분합니다. 저자는 루스벨트 체제 이후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민중의 감정을 일으키고 신뢰를 얻는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미국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으로 저자가 지목한 것은 ‘정체성 정치’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초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등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자기존중과 자기정의를 내세우는 사이비정치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고 마크 릴라는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들이 진보적 정치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해 그들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를 말하는데, 주로는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뜻함)
‘유일한’, ‘정부의 모든 층위’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과 민중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 나라 진보주의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뿐 아니라 마크 릴라가 말하는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기(레이건주의)가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이건 체제속에서 미국 보수진영은 대다수 미국인의 삶과 사고 방식에 맞서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미국인들의 관심이 사회의 필요보다는 개인의 필요와 욕망, 자유와 권리 추구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수진영은 간파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점을 저자는 언급합니다. 레이건 당시 공화당은 주 선거, 지방선거, 연방의회 선거,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당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역 수준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전국적 미디어에 집중하면서 4년마다 있는 대통령 선거에 집중했습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미국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을 찾았습니다. 민주당이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결국 미국 민중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점을 보면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기층 민중과의 분리,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의무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우선시, 사회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의 부재를 진보진영이 가졌던 문제점으로 지적합니다. 반면 대중 선동에 탁월한 트럼프는 인종차별, 여성혐오, 폭력 조장, 언론 및 법 경멸 등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지자를 확보했습니다. 그만큼 진보진영이 민심을 잃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승리를 위한 진보진영의 전략 제안 보수진영에 내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마크 릴라는 운동정치보다 제도정치, 목표없는 자기표현보다 민주적 설득, 집단 정체성이나 개인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도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선거에서의 승리가 필수적이라고도 주장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운동 정치의 그 어떤 성취도 제도 정치를 통해 무효화될 수 있다”(113쪽)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극우정당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자한당의 방해로 다양한 운동으로 모이는 변화의 동력이 법제화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운동 정치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미국 진보진영에만 해당되는 주장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엔 여전히 다양한 사회운동을 통해 성장한 운동가들이 진보정당들과 연합하여 제도권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은 다수의 지지를 얻는데 계속해서 실패해 왔습니다. 일정 부분은 선거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으로 지금까지의 패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정당들 사이의 ‘정체성’ 다툼과 그로 인한 분열, 민중들의 마음보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 정치를 낚시에 비유한 대목을 읽으며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에도 저자가 말한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의 모습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 진보정당과 진보주의자들은 초기 운동때의 단결력과 결속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선거때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파간 갈등을 반복해서는 지금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운동정치의 시대가 끝났다는 마크 릴라의 선언은 어쩌면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일지 모릅니다. 시민사회의 운동성과 조직력이 향상된 촛불의 시대엔 진보정당들은 정파의 벽을 넘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책을 통해 마크 릴라가 소개한 진보진영에 대한 문제 진단과 대응책을 우리 나라의 진보 정치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볼 만한 시사점들은 충분합니다. 진보적 철학을 가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진보의 승리라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마크 릴라가 한 것처럼 실패의 원인을 성찰하고 우리나라 진보의 미래 전략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
약 2~3년의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의 집권정당의 성향은 대체로 정반대인 때가 많았다. 87항쟁 이후 우리나라의 정권은 보수(~98년), 진보(98~08), 보수(08~17), 진보(17~) 정권이었던 반면, 미국은 진보(93~01, 빌 클린턴), 보수(01~09, 조지 W.부시), 진보(09~17, 버락 오바마), 보수(17~, 더널드 트럼프)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정치적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진보 정권에게는 언제나 ‘친미적 입장’을 표방하는 정도가 지지를 얻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때문에 미국에서 진보주의자의 패배는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자들에게는 결코 남의 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막 진보 정권이 출범하고,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의 경제협력과 평화공존을 이야기할 때야말로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할 때라 하겠다. 다행히 우리 국민의 정치적 성향은 미국과 반대로 움직이면서, 절대적 보수도 절대적 진보도 용인하지 않는다. 지역에 따른 정치적 편향이 퇴색한 느낌을 주고 있고, 남북, 북미 회담의 성과를 기대하는 국민들은 2018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항상 기회와 함께오는 것이 위기다. 진보가 지금의 기회를 살리려면, 국민의 뜻을 바르게 일고 국내 정치 상황을 바르게 이끌고 나가야만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표현대로, '만선일 때 기쁨을 자제하고 국민의 생각을 읽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에 이 책은 진보정권이 꽃을 피우려하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곱씹어볼만한 화두, 더 나은 진보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반 정치’는 레이건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보수주의자들의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레이건주의를 새로운 사상으로 대체하려면, 공화당이 오랜 세월동안 학자들과 대학생들을 지원하고 주요 기관과 정권을 잡아가는 치밀하고 끈질긴 전략을 알아야 한다. 이에 레이건의 정치사상을 소개하고, 그 배후에 미국은 어떤 나라이고 어떤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정치적 비전을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당시 공화당은, “우리는 용감한 지도자를 뽑기 위해 오디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문서에 서명하는 대통령이 필요할 뿐이다. 펜을 쥐기에 충분할만큼 멀쩡한 손가락을 가진 공화당원을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뽑아라.”(50쪽)는 그로버 노스키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다. 레이건은 이것을 따랐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제2장 ‘사이비 정치’는 보수 정권에 패한 진보주의자들의 정치 참여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새로운 반정치적 국가관에 직면한 진보주의자들은 정체성 정치의 덤불 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 덤불에 어울리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분열을 조정하는 차이의 수사법을 개발했다. 오늘날 진보 정치활동가들은 거의 다 대학교에서 육성된다. 이는 진보주의의 전망이 미국의 고등교육기관들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잖이 의존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65쪽). 1960년대 낭만주의적 구호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것이 있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사상 체계라기보다는 기분에 가깝다. 생각하는 방식을 물들이는 감정에 가깝다. 맑스주의자들은 '자신을 줄이고 탐욕을 늘려라' '정치를 줄이고 가족과 자아를 늘려라'라고 말한다(99쪽).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숭배는 진보적 파워 엘리트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제3장. 정치 두 세대동안 진보주의자들이 자신의 나아갈 바에 관한 정치적 비전(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없이 지내왔다는 교훈을 얻었다. 미국은 무엇이고 진보 정치 활동을 통해 무엇으로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무적이고 낙관적인 비전을 개발하는 것이 진보주의자들 모두의 공동 목표임을 강조한다. "트럼프는 권위적인 고함과 끊임없이 바뀌는 일련의 기괴하고 즉흥적인 "입장들"을 제공했지만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선동 솜씨는 수많은 유권자로 하여금 그의 인종 공격, 여성 혐오, 거의 노골적인 폭력 위협, 언론 경멸, 법 경멸에 박수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공적인 삶은 나날이 추해지고 있다."(105쪽) "그러므로 우리가 트럼프 너머를 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106쪽) 남아있는 유일한 적수는 우리 자신임을 강조한다.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때로는 역사적인 힘들이 시민을 만든다.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의 집회를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민들의 모임이 아니라 군중의 난장판을 목격했다. 트럼프가 고위 공직자로 부적합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트럼프를 찍는 행위는 시민권 행사가 아니라 시민권에 대한 배신이었다."(138쪽) 저자는 결국, 보다 나은 진보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수주의자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에서부터 진보정치가 지향할 바를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캠퍼스 안에만 안주해서도 안되고, 애국심이나 나라를 위한 희생 같은 공동체적 정체성 교육도 지금 세대에게는 정치적 참여로 이끌 수 없다. 진보적 시민을 원한다면 학교에서부터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볼때 가장 자멸적인 것을 정체성 중심 교육이다.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 시대의 교육은 오히려 탈정치화를 일으키는 힘이다. '우리'를 약화함으로써 그 교육은 시민을 만들기보다는 없애고 있다."(142쪽) "오직 시민이 있을 때만, 우리는 그들이 진보적 시민으로 되는 것을 바랄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진보적 시민이 있을 때만 우리는 미국을 더 나은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을 바랄 수 있다. 당신이 도널드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당신의 출발점이어야 한다"(146쪽)
|
|
LGBT, 유색인종, 여성, 장애인,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입장을 대변하고 외치는 정치를 정체성 정치라 이른다. 이 정체성 정치는 50년대부터 60, 70년대까지에 이르는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흑인 민권 운동 등을 기점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그들이 실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고 그러한 차별과 선입견을 철폐할 필요성이 다분하였기 때문인데, 대규모로 일어난 정체성 정치의 운동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으며 사회에 만연한 차별 풍조를 없애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러한 것들이 과연 유용한가? 이들이 끼치는 해악은 없는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정치적인 대답을 제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미국 진보의 전통적 가치인 연대를 역설하며 시민의 지위와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 책은 왜 정체성 정치가 잘못 되었는지, 그것들이 이제 와선 어째서 사이비정치에 더 가까운지 해설해낸다. 비전 대신 개인의 정체성 만을 외쳐대는 진보의 현실에 통탄하며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정치가들도 본받을 만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선에서만 말하자면, 시민의 지위를 강조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성 소수자든, (일부가 약자라 말하는)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시민의 지위 안에선 평등하다.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그 외에 수많은 의무를 모두가 함께 질 때, 다시 말해 서로에게 확실한 빚을 지울 때 우리는 동등한 권리 또한 누린다. 즉, 우리는 굳이 페미니스트가 되거나 성소수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을 전개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시민의 지위와 그 의무, 나아가 그러한 것들을 공유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만을 일깨운다면 변질되지 않은 정체성 정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진정 요구하는 가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며 또 오늘날에 와선 그닥 이뤄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몇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와 같음에도 그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그 점에서, 마크 릴라가 지은 이 책은 (개인의 정치적 관점도 어느정도 들어 있기에)걸러 들을 면도 조금 있긴하나 매우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
|
선거 막바지 접전상황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막말, 성추문 등의 악재가 잇달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선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11월 9일 마침내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극소수의 일부 전문가들만이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던터라 우리 국민들이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국 전역은 충격과 혼돈에 휩싸였고 폴 크루그먼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의 패인 분석이 줄을 이었다. 그 중에서도 2016년 11월 <뉴욕타임스>에 힐러리의 패인을 분석한 ‘정체성 정치’의 종말이라는 칼럼을 통해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며 반향을 일으켰던 마크 릴라 교수가 그 칼럼을 토대로 집필한「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원제 : THE ONCE AND FUTURE LIBERAL)」가 출간되었다.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집권한 루스벨트는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독점 대기업의 규제, 공정거래법 도입, 사회보험의 실행 등 사회경제 개혁에 집중하므로써 과거의 지역적 분열을 뛰어넘어 중산층과 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광범위한 계층연합을 만들어 남부의 지역 정당에 불과했던 민주당을 전국적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뒤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과 진보세력이 확장되었지만 1970년대 등장한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점차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되는데 1980년 공화당 레이건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미국의 진보세력은 위기를 맞게 된다. 저자는 20세기 미국의 통치체제를 루스벨트 통치체제와 레이건 통치체제로 구분하고 레이건 집권기와 당시 진보주의자들의 대응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간다.
루스벨트 체제가 끝나고 야심찬 통합우파가 부상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은 과거 시도들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통찰을 통해 미국인이 공유할 미래에 관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할 과제를 안게 되었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체성 정치에 몰두하면서 개인주의를 강화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필요와 욕망보다 개인들의 필요와 욕망에 절대적 우선권을 부여하는 대중의 지지하에 집권한 레이건 체제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물론 원래의 좌파 정체성 정치는 대규모 민중계층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정비와 역사적 과오 바로잡기가 중심이었지만 1980년대 즈음에 자기존중과 점점 더 협소하고 배타적이 되어가는 자기 정의 중심의 사이비 정치에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진보적 정체성 의식의 전진은 진보적 정치의식의 쇠퇴를 부추겼다.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진보주의에 무관심할뿐 아니라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진보주의가 대부분 교육수준이 높으며 대중과 유리된 도시엘리트들이 공언하는 신조로서 진보주의자들의 노력은 과민증적인 운동들을 돌보고 육성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비판에 더해 더욱 뼈아픈 점은 그 정치적 입장이 특정집단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집단들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유의미한 유일한 방법은 1980년대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앞세웠던 운동정치가 아니라 선거승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부의 모든 층위에서 권력을 발휘하여 여러 제도적 성취의 존속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메시지로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이 추구한다고 공언하는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선거승리에 역점을 두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시민으로서 어떤 존재이며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진보정치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모든 미국인이 공유하는 시민의 지위라는 토대에서 우리의 공통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시민적 진보주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이므로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탈정치화를 부추기는 현재의 진보주의적 교육을 민주주의적 연대감을 심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비록 트럼프라는 예외적 인물의 등장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토대속에 독자적 정치체제를 구축해온 미국의 상황을 한국전쟁과 분단, 군사쿠데타 등의 역사적 경험과 외부로부터 이식된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전진과 퇴보를 반복해온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6.13지방선거의 결과로 보수의 본류를 자처하기는 했지만 극우적 행태를 보였던 세력이 일정부분 퇴조하고 진보정치의 싹이 조금씩 움트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진보주의자들이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시민을 대하고 어떤 방향의 정치를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해결의 실마리로서 참고해봄직 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지난 미국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때까지만 해도 좋게 말하면 거침없는 언행을, 나쁘게 말하면 막말을 서슴치않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군대에 있었고, 대선 결과가 나올 당시에는 훈련으로 인해 1달동안 바깥에서 있어서 자세한 과정을 보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어떻게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을 수 있었는지, 엄밀히 말하면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왜 졌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평소 관련해서 궁금하던 차였다. 이 책은 미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략적인 흐름을 설명하고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왜 '막말왕', 소위 말해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 근본도 없는 정치인인 트럼프에게 졌는지 설명한다. 상술했듯이 이 책은 미국 진보주의의 대략적인 흐름을 설명하면서 현재 상태도 언급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진보주의는 정체성 정치에 얽메여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상태다. 자신만이 옳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조금의 반론이라도 제시하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트럼프에게 졌으며 -물론 트럼프가 이긴 요인은 이 뿐만은 아니지만- 트럼프 이후의 시대도 상술한 정체성 정치에 얽메여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것을 염려하고 미국 진보주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체성 정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어느정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에서 A라는 흐름이 유행하면 그것의 영향으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A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음악도 그렇고, 그 외 여러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미국의 진보주의적인 모습 또한 우리나라에 유입돼 여러 많은 사회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에 따라 많은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미국의 진보주의와 같은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진보주의가 왜 실패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이 깊지 않아 이 책의 내용이 잘못됐는지 어쩐지는 잘 못하지만, 적어도 개론으로 읽기에는 적절한 책인 것 같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이런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