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2가 70년대 말 지각 개봉되었다. 1편도 마피아의 폭력성 문제로
시비가 일어났지만 영화가 워낙 화제작이라 그런지 1년만에 개봉되었다. 물론 문제장면에서 여러군데가 잘려나갔다. 당시 1년만에 개봉된건 엄청 빠른거였다. 보통은 2-3년 뒤에 개봉을 해서 외국에서(물론 해외 여행은 거의 없고 해외 출장나가는 경우가 대부분)
보고 와 이야기 해준 사람은 거의 영웅대접을 받았
대부2가 70년대 말 지각 개봉되었다. 1편도 마피아의 폭력성 문제로
시비가 일어났지만 영화가 워낙 화제작이라 그런지 1년만에 개봉되었다. 물론 문제장면에서 여러군데가 잘려나갔다. 당시 1년만에 개봉된건 엄청 빠른거였다. 보통은 2-3년 뒤에 개봉을 해서 외국에서(물론 해외 여행은 거의 없고 해외 출장나가는 경우가 대부분)
보고 와 이야기 해준 사람은 거의 영웅대접을 받았다. 더구나 지방에서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엠마뉴엘을 파리 현지에서 보고 온 사람은 거의 神급에 해당되었다. 그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결코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때문에 영화를 거의 이해하진 못했어도 그 문제작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봤다는 자체가 호기심많은 사춘기소년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분들은 이제 80대다. 떠난 분도 있다. 여름비에 젖어 더 슬퍼진다.어쨋든 대부2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대부1보다 작품성이 훨씬 뛰어나 오스카상도 휩쓸었다.
소포모어 신드롬을 완전히 깨 부순 영화이다. 그러나 대부1의 긴장감과
시칠리섬의 서정적 멜로디에 젖어있던 우리나라 관객들을 속편은 당황하게 만든게 분명하다. 그래서 흥행은 거의 폭망 수준이었다. 1편에 비하면.
그 단적인 이유가 교차편집이다. 지금이야 응답하라등 드라마로 익숙하지만
45년전 영화가 과거 현재를 자유스럽게 넘나들며 3시간 가까이 끌고 가는게 관객들은 고역이었던게 분명하다.
이렇게 대부2 이야기로 시작하는건 암막의 게르니카란 소설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 프루스트등의 의식의 흐름 수법을 동원하진 않지만
1937년 스페인 내전으로 게르니카란 작은 마을이 반란군에 폭격을 맞았을때
마침 파리에 있던 피카소는 게르니카란 대작을 그릴 동기부여를 맞는다. 그리고 2001년 어릴때 아버지의 스페인 근무로 게르니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여주인공이 성장해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역시 금세기초 뉴욕무역센터가 폭격으로 무너지는 2001년 9.11을 맞는 과정과 맞물리며 두개의 시간이 한 공간에서 춤을 춘다.
파리에서 1937년 게르니카마을이 폭격으로 충격을 받은 피카소가 게르니카 대작을 그려나가며 1939년 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며 1940년 파리함락으로 일시 망명해 1945년 파리가 해방되자 다시 찾은 피카소의 인생과 9.11테러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형식으로 2003년 9.11테러의 주범 이라크(과연 이라크가 주범이었을까) 침공을 시작하는 콜린파웰의 개전 선포를 알리는 tv화면을 잡으며 막을 내린다. 45년은 끝이었고 2003년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두 연도는 결국 수미상관(首尾相觀)이었다.
1937-1940년과 2001-2003년은 상당히 먼 거리에 있지만 작가의 통찰력으로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다차원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 시초가 대부2였다는건 부인 할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