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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도의 글쓰기에 해당하는 영도의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영화 그 자체가 태생적인 혼혈아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아비는 낭만주의, 어미는 고전주의다. 그렇다. 영화예술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지닌 우화에 다름 아니다.
《영화우화》(인간사랑, 2012)는 자크 랑시에르의 영화미학을 다루고 있다.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장 엡스탱의 마음기계, 장 뤽 고다르의 이미지-아이콘 이론과 질 들뢰즈의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에 대한 해석에 이어, 프랑스 당대의 영화미학을 단편적으로 소개하고 있기에 첫눈에 랑시에르 영화담론의 지형도를 그려보기가 꽤 어렵다. 비록 책제목이 '영화는 우화다'라는 짙은 뉘앙스를 주지만서도 이 책의 전체적인 조감도가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당대 프랑스 영화담론의 맥락에 대한 이해의 부재와 더불어 탈메츠(Post-Metz)시대의 영화이론에 대한 배경지식이 친절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화, 이야기, 플롯, 에피소드, 뮈토스가 서로 바꿔쓸 수 있는 느슨한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프랑스에서 발달한 서사학에서 사실 이들 개념들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엄밀한 개념적 정의를 포기하고 은유적 비유법을 잘 사용하는 편이다.
"장 엡스탱은 삶과 허구, 예술과 과학, 감각과 지성의 이원성을 근원적인 단위로 복원하는 하나의 예술을 찬미한다. 그러나 영화의 이러한 순수한 본질은 오로지 이미 촬영된 멜로 드라마에서 하나의 '순수'영화작품을 추출함으로써 구축된다. 그러나 다른 우화에 입각하여 하나의 우화를 만드는 이러한 방식은 한 시대의 사조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이 방식은 경험으로서, 예술로서, 예술의 관념으로서 영화를 구성하는 소여이다."(19-20쪽)
"형상추출 작업은 새로운 작품 속에서는 주제나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기대를 반박하고, 또는 옛 작품들 속에서는 그 구성요소들을 다시 관찰하고, 다시 해독하며, 다시 배치한다. 바로 이 작업이 허구나 표상적인 그림의 조합을 해체한다. 이 작업은 형상화의 주제 하에서 미술의 제스처와 재료의 모험을 나타나게 한다. 이 작업은 연극 또는 소설 인물들 간의 갈등을 통해 현현하는 에피파니, 이유 없는 존재의 광채를 빛나게 한다. 형상추출 작업은 표현하는 신체들의 몸짓을 도려내거나 또는 고조시키고, 서사적 연쇄들의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또는 빠르게 하며, 의미를 정지하거나 또는 포화상태로 만든다."(24-5쪽)
장 엡스탱에게 영화는 참이고 우화는 거짓이다. 그러나 자크 랑시에르는 영화는 우화이며 이야기의 부활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고전주의 시학과 낭만주의 시학이 '엇갈린 우화'라고 강조한다. '모순된 우화'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랑시에르는 '엇갈린 우화'의 개념을 빌어 영화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뒤섞인 혼종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재현적 예술체제이며 이런 고전주의 시학은 우화/뮈토스의 구축에 관심을 갖는다. 우화(fable)란 생명체험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예술형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말하는 뮈토스(muthos) 개념과 직결된다. 뮈토스는 한마디로 줄거리의 합리적 인과성이다. 즉 어떤 위대함, 하나의 고유한 크기, 하나의 템포를 지니고 있는 행동하는 인간들의 표상이자 사건들의 인과적 결합이다.
랑시에르에게 있어서 영화는 이야기들의 낭만주의적 왜곡에서 유래하는 후발예술이며, 이 왜곡을 고전주의적 모방으로 이끄는 예술이다. 내가 왜 영화의 아비를 낭만주의로, 어미를 고전주의로 했는지 이젠 이해가 될 것이다. 영화는 낭만주의 시학에 의해 미리 예고됐으며, 어긋난 시간성과 이질적인 이미지들 체제의 교착으로서 감각적 현전, 사물들의 말없는 글쓰기를 천명하는 이 시학의 기표적인 형식의 변신에 가까운 예술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화는 기존의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에서 형상추출 작업을 통해 전통적인 이야기 기법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영화는 예술의 모더니티가 그 타당성을 의심했던 미메시스적 질서를 다시 복원한다. 게다가 영화는 전통적 우화들과 전형적인 인물들, 표현 규칙들과 파토스를 위한 전통적인 수단들, 그리고 장르들의 엄격한 구분까지도 재건한다. 프랑스 영화담론의 계보와 랑시에르 문예론에 대해 역자 유재홍이 좀더 친절한 주석과 논문식 해제를 달아주었다면 독자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개정판에서는 프랑스 영화담론의 흐름을 소개하고, 자크 랑시에르의 연보와 더불어 형상추출이나 극작술과 같은 용어설명이 부록으로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