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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같은 융합을 꿈꾸는 길잡이로 나선 책들의 향연
"비빔밥 같은 융합을 꿈꾸는 길잡이로 나선 책들의 향연" 내용보기
4교시가 끝날 무렵이면 아이들은 오늘의 식단표를 챙기며 별미에 속하는 비빔밥이 나올 때면 갖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환호한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함께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교실 안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웃음을 주는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2학년 때 자연계와 인문계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교육과정의 교과를 심화하는
"비빔밥 같은 융합을 꿈꾸는 길잡이로 나선 책들의 향연" 내용보기

  4교시가 끝날 무렵이면 아이들은 오늘의 식단표를 챙기며 별미에 속하는 비빔밥이 나올 때면 갖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환호한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함께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교실 안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웃음을 주는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2학년 때 자연계와 인문계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교육과정의 교과를 심화하는 수업을 받으며 이과와 문과의 장벽이 드리워진 것처럼 쉽게 넘나들지 못하였던 아이들도 밥을 나누는 시간만큼은 외피 속에 숨어 있는 취향을 발견하고 현상 너머 본질을 찾아가는 대화 속에 친구 간의 정은 두터워질 것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내다보는 21세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갈 청소년들은 경계 너머 잠재적인 가능성을 열어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화여대 에코학부 교수로 통섭원장을 역임하는 저자의 <<통섭의 식탁>>은 자신의 영역에 한정지어 생활하던 벽을 허물게 한다.

 

 

  정년까지 보장받는 과거의 직업 형태에서 벗어나 수차례 직업을 바꾸며 자신의 길을 모색하여 갈 미래의 시대에는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유연한 사고로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질을 함양해야 한다.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책을 읽고 사유하며 표현하는 일을 병행하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미래형 인재로 불리는 통섭형 인재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해 가는 마음으로 잘 모르는 분야의 책과 씨름하며 지적(知的) 영역을 확장해 가는 기획적이고 전략적인 독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책벌레로 자리하는 저자가 그동안 읽어 왔던 도서를 감칠맛 나게 하는 재료로 삼아 일화 속에 녹여 진하게 우려냈다.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라.’

  지식 기반사회로 불리는 21세기는 다변화된 시대적 요청으로 자연과학과 공학의 만남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는 <<미래의 글로벌 리더를 위하여>> 책에서 저자는 통섭형 에너지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늘이 모든 것을 가져가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겼을 뿐이라는 이상묵 교수의 <<0.1그램의 희망>>은 예측 불허한 시련을 극복하여 지구물리학자로 세계적인 석학들과 공동 연구에 동참하는 학자의 길에 외경심을 표하였다.

 ‘알면 사랑한다.’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상충하고 갈등하며 불화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소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인간과 자연 역시 서로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는 자연을 향한 눈을 크게 뜨고 본다면 우리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하고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행동생태학적 진화를 흥미롭게 담았다니 책 내용이 궁금해진다. 자연선택에 의해 발명되고 시의 적절히 응용하여 창조적인 건축으로 유명세를 띠는 가우디의 창조적 기술에 견줄 만한 성당 흰개미의 집을 소개하는 <<동물의 건축학>>은 표제만큼이나 호기심을 유발한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현 시대에 성의 생태와 진화를 공부하는데 입문서가 될 책으로 <<연애>>를 꼽았다. 성 선택론 하나로 명쾌한 설명을 내린다는 밀러의 담론에 빠져들고 싶어지는 것은 인적자원이 큰 자산인 우리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바람이 작용해서일 것이다. 더 나가 자연계를 구성하는 종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일은 인류의 생존과 안녕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문명적 이기를 동원한 개발을 지속함으로써 자연적 평형을 깨는 일을 가속화하기보다는 개발의 속도를 낮추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종들이 공존하는 세상의 가치를 일깨우는 <<살아 있는 것은 행복하라>>를 다시 꺼내 읽으며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이성적인 잣대로만 행하는 과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과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과학 읽어주는 여자>>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한 인체의 생리 현상과 질병, 광대한 우주까지 망라하여 기술하였다니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

  찰스 다윈의 자서전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 도태되기보다는 진화해 갈 것임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위대한 과학자로 자리한 다윈은 주변인들과 서신을 교환하며 소통하는 가운데에 통찰력을 길러 창의성을 갖춘 학자로 위상을 떨치게 되었을 듯하다. 미래를 능동적으로 살아갈 청소년들뿐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지적 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하여 급변하는 정세에 적절히 대응해 가는 힘이다. 다양한 사회의 현황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며 문화적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책은 길라잡이 기능을 한다. 통섭형 인재로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 책들을 참고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삶을 자율적으로 운영해 가는 인격체로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갖가지 재료로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맛을 본다.

 

 



n*****9 2012.10.05. 신고 공감 1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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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리 맛보기, 통섭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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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차려내는 식탁엔 참으로 다양한 풀코스 요리가 등장한다.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이란 셰프 추천 메뉴에서 부터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란 디저트,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란 일품요리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퓨전요리까지...! 코스별로 제공되는 요리들을 모두 다 즐기자니 배가 다 부를 지경이다. 헌데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요리들이다. 아니 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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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차려내는 식탁엔 참으로 다양한 풀코스 요리가 등장한다.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이란 셰프 추천 메뉴에서 부터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란 디저트,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란 일품요리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퓨전요리까지...! 코스별로 제공되는 요리들을 모두 다 즐기자니 배가 다 부를 지경이다. 헌데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요리들이다. 아니 요리들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과연 어떤 맛을 보여줄 지 기대가 된다.

 

통섭의 식탁...

 

'통섭'이란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그다지 친숙한 단어는 아니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사물에 널리 통함, 서로 사귀어 오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인 즉슨, 구분 짓지 않고 두루두루 통한다는 말이 아닐까? 생물학이니 지구과학이니 인문학이니... 학문에도 무슨무슨 학문이란 구분이 있지만 그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든 학문과 두루두루 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학문이든 책이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으며 접하고 읽기란 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독서만 봐도 관심이 가는 분야만 읽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소설과 에세이쪽에 조금 치중해서 독서를 하고 있는 편이니까 말이다. 그외 장르는 아주 가끔 접할 뿐이어서 나중에 책을 고를 때도 자연히 조금이라도 많이 알고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고르게 된다. 그리고 설령 관심이 있다하더라도 잘 알지 못하니까 대충 보게 되고 깊이있는 독서를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통섭의 식탁에서 요리를 차려내는 그는 말한다. 예전엔 직장에 입사를 하면 정년이 될 때까지 근무하는 등 거의 옮길 일이 없었지만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직장을 최소 5~6번은 옮길 테고 그리 되면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함은 물론 일을 해나가야하므로 계속 배움에 정진해야한다고, 배움에 끝은 없다고.

 

그러면서 그는 단순히 읽기를 벗어나 계획하에 체계적으로 읽어나감으로써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지식도 얻고 일을 하는데에도 보탬이 되길 바라며 기획 독서를 권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의 입버릇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는 법이라고 낯설고 어렵기만 한 책이라도 하나, 둘씩 접하다보면 어느새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한 권의 책, 즉 하나의 요리가 있으면 그는 어떻게 맛보면 좋을 지 어떤 부분이 요리의 하이라이트인지를 가르쳐주며 직접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그가 권하는 요리는 대개 맛있어 보였고 정말 마음에 드는 요리도 있었다. 다만, 풍부한 양과 생소한 요리를 소화해내기엔 조금 벅찬 느낌이 들었고 그의 요리는 식욕이 왕성한 나이의 학생들이 맛있게 많이 먹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e 2012.10.06. 신고 공감 7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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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 최재천 교수의 독서 가이드
"[12-53] 최재천 교수의 독서 가이드" 내용보기
통섭(通涉)? 통섭(統攝)! – 기획 독서   먼저 통섭(統攝)에 관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논의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덮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통섭(統攝) 그 자체 보다 다른 책으로 안내해주는 가이드북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통섭(統攝)을 부르짖는 동물행동학자로 알려진 최재천 교수가 읽어보고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책에 대한 안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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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通涉)? 통섭(統攝)! – 기획 독서

 

먼저 통섭(統攝)에 관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논의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덮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통섭(統攝) 그 자체 보다 다른 책으로 안내해주는 가이드북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통섭(統攝)을 부르짖는 동물행동학자로 알려진 최재천 교수가 읽어보고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책에 대한 안내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최초로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하는 저자가 왜 이런 책을 썼을까? 내가 저자가 아닌 한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저자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 )의 <Consilience>을 번역할 때, 제목을 통섭(通涉; 넘나들기)으로 할까 통섭(統攝; 아우르기)으로 할까 고민했다는 일화에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그저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通涉)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아울러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통섭(統攝)을 제목으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자신이 평소에 주장했던 ‘기획 도서’의 사례를 후학(後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독서를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하는 독서도 때론 필요하리라.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가 진정 우리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조금 공허해진다. 눈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취미 독서를 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독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 한 권을 뗐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기왕에 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세 권째 읽을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1)”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선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잡고 억지로 독서를 한다는 것이 비능률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어떤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과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하는 것은 능률의 차이가 크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가 ‘신바람의 민족’이라는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하지만 자발적으로 책 읽기의 달인이라는 이권우가 제안하는 깊이 읽기2)나 겹쳐 읽기3)를 할 수 없다면, 또 내가 아는 분야 혹은 머리를 식히기 위한 독서만 한다면 이런 강제적인 독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으로 통섭(統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통섭(統攝)을 위한 터 닦기 정도는 될 테니까.

 

 

통섭형 지식인의 길.

 

‘기획 독서’가 당신을 통섭(統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은 알 수 있지만, 왜 통섭(統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통섭(統攝)할 수 있으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소통을 실천해야 하면서도 소통의 의지조차 보여 주지 못하는 정치 지도자들도 입만 열면 소통을 부르짖는다.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우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토머스 모어는 말한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이 ‘다를’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스스로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두 다른 사람이 하나의 삶을 공유하는 문제에서 풍요로움은 다름에 달려 있다.” 4)”

 

바로 이런 점에서 저자가 언급한 ‘21세기 통섭형 지식인’과 책 읽기가 교차한다. 지금 우리는 ‘헤드헌팅’이 낯설게 느끼지 않을 만큼 직장 옮기기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길 때마다 대학으로 돌아가 해당 분야의 전공을 새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같은 분야의 직장으로 옮겨갈 수도 있지만, 승진을 하다 보면 자신이 다뤄본 적 없는 분야도 알아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경우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취미 독서’만 해 왔다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여 지식의 영역을 넓히는 ‘기획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공유해왔다면 얘기가 다르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자기주도형 학습’을 통해, 아니 ‘자기주도형 독서’인 ‘기획 독서’를 통해 낯선 땅에서 여행하는 법을 익혔으니까.

 

이 책을 읽은 사람마다 얻는 것이 다를 것이다.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도 그 결과물이 다르듯이.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 책이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선배가 통섭형 지식인의 길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지적 나침반이며 든든한 가이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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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재천, <통섭의 식탁>, (명진출판, 2011), pp. 7~8

2) 한 권의 책을 감명 깊게 읽고, 그 글을 쓴 지은이의 책들을 좇아가는 전작주의(全作主義) 방식의 독서를 하거나 같은 주제를 다루는 다른 책을 읽는 것

3) 한 작품의 창작배경에 얽힌 관련자료를 꼼꼼하게 읽어 봄으로써, 행간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은밀한 숨결을 느껴보는 것

4) 최재천, 앞의 책, p. 81

w******f 2012.09.19. 신고 공감 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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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경이. 그를 알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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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쓴 ‘통섭의 식탁’을 읽고   저자는 통섭의 식탁에서 자연 과학의 이해를 돕는 56권의 저명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자의 서재에서 놓친 책들을 고른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서너 권 째 읽는다. 그 때마다 전문가의 안목에 쉽게 풀어간 글에 호감이 컸다. 책 제목과 펼친 모습도 생태 과학이라는 음식을 집어가는 형상이다. 언젠가 어원을 다룬 책에서 맛과 멋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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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쓴 ‘통섭의 식탁’을 읽고

 

저자는 통섭의 식탁에서 자연 과학의 이해를 돕는 56권의 저명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자의 서재에서 놓친 책들을 고른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서너 권 째 읽는다. 그 때마다 전문가의 안목에 쉽게 풀어간 글에 호감이 컸다. 책 제목과 펼친 모습도 생태 과학이라는 음식을 집어가는 형상이다. 언젠가 어원을 다룬 책에서 맛과 멋의 뿌리는 같다 했던가?

편집이 특이하다. 자연과학의 생태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기술도 있지만 자칫 과학이라는 딱딱해 할 분위기를 지질로 반전 시킨다. 색상의 종이와 새 책을 소개할 때 형광펜을 쓴 것과 같이 편집 구성하였다.

자연 속에서 자라며 ‘파브르 곤충기’ ‘시이튼 동물기’ ‘꿀벌 마야의 모험’에 감동하다가 저자의 책들에서 동식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 방면에 이런 저술가의 책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생물 다양성의 보전을 우리 인류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종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그 균형을 깨는 일은 어느 구성원에게도 긍극적인 이득이 될 수 없다.’

동물의 행동과 사회구조에 관한 책을 읽고 1에서는 동물을 알면 인간이 보인다.로 묶고,

생명의 비밀과 진화, 그리고 유전자에 관한 책들은 2. 생명 진화의 비밀을 찾아서.

3에서는 과학. 좀더 깊숙이 알기에는 생명과학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과학분야를 소개하는 책들의 견해다.

디저트로 가기까지 다루지 못한 자연과학과 물리학을 다루었다. 농업과 인구에 대한 책까지...

저자가 피력했 듯 청소년 들이 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과학에 접근하고 싶은, 식탁처럼 맛보고 싶도록 끌고 있다.

나약한 청소년들에게는 ‘깃털만큼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일어서야 한다’는 가슴 뭉클하게 할 것이다.259쪽에서 ‘배우고 있는 줄 모르고 배우는 것처럼 훌륭한 배움은 없다.’하였듯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된다.

통섭의 좁은 의미로 ‘소통이란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다.’란 말이 새롭게 생각난다. 생명! 아는 만큼 당연히 사랑하게 된다.

 

b****3 2012.02.1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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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영양가득 책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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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과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차려준 풍성한 책의 식탁에 초대받았습니다^^ 먼저 만났던 [과학자의 서재]에서 과학자, 통섭학자, 사회생물학자,...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최재천 교수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한 성장의 자취를 만났습니다. [과학자의 서재]에 이어 미처 올리지 못한 책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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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과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차려준 풍성한 책의 식탁에 초대받았습니다^^ 먼저 만났던 [과학자의 서재]에서 과학자, 통섭학자, 사회생물학자,...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최재천 교수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한 성장의 자취를 만났습니다. [과학자의 서재]에 이어 미처 올리지 못한 책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를 아우른 책들을 보여줍니다. 전에 강연에서 이제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는 점점 복잡해지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에 다른 학문과의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의 중요성을 거듭 언급했습니다.

 

통섭의 식당이 내놓은 메뉴들^^
셰프 추천메뉴부터
가볍게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애피타이저'
우리가 몰랐던 동물의 세계, 드넓은 자연과학을 좀더 깊게 만날 수 있는'메인요리'
과학자들의 삶의 향기를 담은 '디저트'
과학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훌륭한 '일품요리'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넘나든 '퓨전요리'

 

책제목만 볼 때는 생물이나 과학과 무관한 내가 읽을 책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들지만 최교수의 소개를 읽노라면 저절로 읽고 싶어지는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르는 분야를 낑낑대고 읽으며 얻어지는 뿌듯함을 느껴보라고....책탐을 부추키는 교수님의 글에 이 책을 읽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언급한 책 제인 구달 외 여러과학자들이 지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과 피오나 미들턴의 [물개]빌려왔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섬에서 바이올린 선율에 이끌려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물개들과의 동화같은 교감과 자연 속의 동물들에게서 겸손함을 배우고 그들과의 마술같은 교감을 읽노라면 이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에 절로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들으려고만 하면
동물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연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자연을 표절하고 동물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욕심내는 최재천 교수의 마음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책들입니다. 과학 뿐 아니라 인문학과 넘나드는 풍성함 덕분에 맛만 봤는데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책식탁이었습니다.

 

p.233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어떤 형태로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 많은 글을 그리 큰 고통없이 쓸 수 있는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다른 글쟁이들에 비해 나는 소재의 빈곤을 거의 겪지 않는다. 저 광활한 자연에서 퍼오는 내 글의 소재가 마를 리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엄청나게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져 있다. 그저 이것저것 주워다가 들려주면 된다.'

c******y 2012.02.08.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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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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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책벌(冊閥)'이라 칭한다. '벌'이라는 말은 원래 대문의 왼쪽 기둥을 일컫는 말이란다. 족벌, 학벌, 재벌 등의 단어로 쓰이며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 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으니 자신은 '책벌'이라 당당히 고백할 수 있다고,,,       '통섭'이라는 말을 200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본인이라고 하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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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책벌(冊閥)'이라 칭한다. '벌'이라는 말은 원래 대문의 왼쪽 기둥을 일컫는 말이란다. 족벌, 학벌, 재벌 등의 단어로 쓰이며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 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으니 자신은 '책벌'이라 당당히 고백할 수 있다고,,,


       '통섭'이라는 말을 200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본인이라고 하니, 지난 7년간 식탁을 차려도 거나한 상으로 차릴만큼 그 개념을 연구한 장본인이자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책 표지 그림에는 빈 자리와 빈 접시, 맥주와 커피가 전부이다.)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자신이 던진 '통섭'이 화두라고 한다. 이 말을 하기에 앞서 그는 영국에서는 통섭의 개념이 일반 국민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국내에서는 쉽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자 최재천'이 말하는 통섭의 개념이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먹을 음식을 하나의 접시 위에 받는다. 그래서 그 접시 위에놓인 음식만 다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별 고민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대개 밥 한술 뜬 다음 한입에 반찬 두어 가지를 한데 넣고 먹는다. 첫 술에 두부, 콩자반, 그리고 김치를 한입에 넣고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고 해서 밥을 마칠 때까지 똑같은 조합, 즉 매번 두부, 콩자반, 김치의 조합을 반복하며 식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한국인의 두뇌는 밥 먹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반찬의 조합을 창조해내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재미있다. 입맛에 맞게 섞어내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이 '통섭'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 셈이라는 것인데,,,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튼,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통섭의 식탁>은 저자가 읽은 다양한 분야(사실, 진화론과 관련된 책이 다수)의 책을 서평의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생태계를 바라보는 과학자의 입장과 인문학적 감성으로 책을 소개하는 책이랄까?! 바로 여기에 책 제목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 본인은 과학자 이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지향한다는 것.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통섭'의 견해를 나누고 싶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것과 똑같은 '통섭'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유사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통섭'이라기 보다는 '통합적 사고'라 칭하고 싶다.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진 교육에서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결여될 수밖에 없다. 사실, 어느 한쪽이 더 발달한채 성장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 쪽을 아주 무시할 수 없다. 근대와 같은 이과와 문과를 구분한 교육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레오나르도다빈치, 뉴턴과 같은 인물은 철학자이자 화가였고, 시인이자 과학자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이들이 '통합적 사고'를 중심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사고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이자 앞으로 우리가 염두해야 할 교육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세상이 전문화되어가고 세분화되어가지만, 인간이 기계와 같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냄새'가 나야하지 않을까?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 답게 저자는 '인간됨'의 역사를 침팬치에서부터 끌어온다. 진화론을 '믿지'않지만, 책에서 소개된 동물과 인간의 교감과 관련된 예들은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먹으려고 들고 다니던 파파야를 땅에 내려놓은 채 석양의 장관을 지켜보던 침팬지가 결국 파파야도 잊은 채 숲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더라는 얘기. 이 책에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말 궁금하다. 침팬지는 무엇을 '느낀'것일까? 동물은 참 신기하다. 분명 그들안에서 소통하는 몸짓과 나름의 언어가 있고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인정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논의가 길어지고 주제와도 맞지 않으므로 기회가 닿으면 다루기로 하자) 

          

       아무쪼록 책 안에는 제목과 같이 다양한 사상이 '혼합'되어 있다. 저자는 생명에 대한 신비를 표현하기도 하고 진화론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결국 이기적인 동기로 생명은 진화해왔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개미와 벌의 군집에서 개인이 아닌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모습에 감탄을 비추기도 하고 생명은 단지 단세포에서 시작한,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자신을 탄생시킨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의 불한당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리뷰를 쓰다보니 책을 너무 심각하게 읽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상과 관계없이 흥미로운 주제로 재미를 주기 위해 책을 저술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는 주제가 읽는이에게 던져진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면서 공존해야 하는 것인가? 

       




s********8 2013.06.05.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통섭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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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의 식탁" 이라는 제목을 대했을때는 관계의 소통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책내용을 펼치면서 내가 접하지 못했던 과학서의 제목들이 가득해서 어려우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컸다. 그러나 책의 구성과 그림들을 보고 최재천 교수님이라서 그런가 책을 읽는 독자의 심리를 잘알고 그리고 책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잘알고 계신분의 글이였다. 쉽고 재미있다. 과학, 생물학 ,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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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의 식탁" 이라는 제목을 대했을때는 관계의 소통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책내용을 펼치면서 내가 접하지 못했던 과학서의 제목들이 가득해서 어려우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컸다.

그러나 책의 구성과 그림들을 보고 최재천 교수님이라서 그런가 책을 읽는 독자의 심리를 잘알고 그리고 책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잘알고 계신분의 글이였다. 쉽고 재미있다. 과학, 생물학 , 유전자 뭐 이런 단어들이 나오면 겁부터 집어먹고 읽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이 우리생활과 그리 멀지 않음을 식탁에 나오는 음식처럼 분류해서 책을 소개 하고 있다.

특히 서양음식을 책을 분류로 했냐는 의구심에 "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내가 읽은 책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비벼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자상 한가득 온갖 반찬들을 여기 저기 널어놓는 것도 예의가 아닌듯 싶었다" 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있다.

책의 구성은 세프 추천메뉴,에피타이저,메인요리,디저트, 일품요리 ,퓨전요리 순으로 나열해 각장의 독특함을 살리고 있다. 사실 작가의 말처럼 순차적으로 읽어도 되지만 비빔밥 처럼 막 비벼 읽어도 손색이 없다.  그어느 장을 읽어도 입맛을 버리는 잘못된 선택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인문학, 소설등 책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으나, 이처럼 과학에 대한 책으로 묶은 책이야기는 생소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우리가 꼭 자연과학을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두드러졌다. 왜냐면 어차피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을테고 그런것은 과학을 연구하는 분야의 사람들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을 읽는 동안 과학과 생물학이 우리의 생활가 멀지 않음을 알게되었다.

 

 가령 우리가 알고 있는 " 의좋은 형제 이야기"  벼베기를 끝낸 형제가 서로의 살림 살이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볏단을 옮겨주었다는 이야기 이다.

이야기는 45년동안 교과서에 실렸다가 2002년에 없어졌다가 다시 2005년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다시실린 이유는 민담인줄 알았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이유는 점점 하나만 낳고 둘,셋이 점점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의 가족애의 현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 살아 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라는 책에서 동물가족간의 잔혹사, 형제 간의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 인간 가족의 잔혹사또한 만만치 않음을 이야기한다. 나쁜 잔혹사를 가지고 아이를 적게 낳는 것에 대한 합리화가 아니라 동물들의 지독한 잔혹사는 다음 세대에 더 많은 유전자의 복사본을 남기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잔혹사는 핵가족화가 시작되면서 ,물질에 집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요즘 한가정에 하나밖에 낳지 않음으로써 형제간의 경쟁하나 겪지 않고 부모가 모든것을 다해주는 삶을 살다가 어느날 사회속에 경쟁으로 내몰려져 그치열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의 등에 붙어사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핵가족화가 치열한 유전자를 만들려는 본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기적 생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던져주는 대목이었다. "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이 곧 다음세대에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형제없이 다들 하나뿐이니까......

 

이처럼 우리가 어렵다고 느꼈던 과학, 유전학 ,동물학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면서 그 어느 분야에서 닫히는 사고가 아닌 열린 사고로 모든 책을 알려고 하고 접하는 것이 미래사회에서 중요한 통섭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통섭의 시작은 자라나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어느 한분야의 책을 권하기 보다는 여러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그아이의 생각에 통섭의 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어릴적 내가 이책을 대했더라면 소설가 . 아님 과학자, 의사 등등 미래의 다양성을 접하게 될테니까?

 

그럼 난 어릴적 무슨책 , 어떤책을 읽었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우리가 왜 자연과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



m******6 2012.01.23. 신고 공감 4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us)가 되자는 최재천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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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가 쓴 책의 제목과 내용 사이에 일종의 간극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전작 <과학자의 서재>에는 그가 읽은 책이 주로 소개되어 있을 것 같은데, 책 소개보다는 책에 얽힌 사연, 학창시절의 방황과 이를 극복하게 된 책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통섭의 식탁>도 제목이 암시하듯 음식이나 건강,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과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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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가 쓴 책의 제목과 내용 사이에 일종의 간극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전작 <과학자의 서재>에는 그가 읽은 책이 주로 소개되어 있을 것 같은데, 책 소개보다는 책에 얽힌 사연, 학창시절의 방황과 이를 극복하게 된 책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통섭의 식탁>도 제목이 암시하듯 음식이나 건강,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과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책이다.  통섭, 진화론자, 의생학자를 추구하는 최재천의 통섭형 책 읽기의 단면을 볼 수 있고, 주제와 부합하는 다양한 책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 통섭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와 지식을 아우르는 기획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은 재미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로서,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그런 행위로서 읽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책에서 멋진 지식의 만찬을 준비하여 우리에게 자연과학, 인문, 사회 분야를 아우르는 56권의 다양한 책 요리를 소개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코스 요리에 빗대어 이야기하면서 책 제목도 <통섭의 식탁>으로 정한 것 같다. 애피타이저에서부터 디저트, 퓨전 요리까지, 가벼운 책에서 다소 전문적이고 무거운 내용까지 종류별로 나누어 소화할 수 있도록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미리 겁먹지 않고도 자연과학 분야에 안심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역시 메인요리는 저자의 전문분야인 동물, 생명, 진화와 같은 과학 이야기이다. 비록 과학이 전공분야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의 공통된 주제는 역시 현명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서 벗어나 공생하는 인간인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생명존중의 정신이 있고, <월든>의 소로에서 배울 수 있는 자연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56권의 메인 책과 함께 연관된 책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자연과학 분야에 더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여기 소개된 책들 중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은 읽어본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책들은 이미 읽었거나 상당히 친숙한 것들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애피타이저에서 시작해서 과학 책의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메인코스의 요리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한다면 과학 분야도 나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우선 마음에 드는 달작한 책 몇권을 카트에 집어넣었다. 

 

미래학자들은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평생 직업을 적어도 대여섯 차례 바꾸며 살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문 분야의 전공자라고 자연과학과 담을 쌓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통섭의 공부, 통섭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과학을 전공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문분야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연과학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먼저 읽어보고 싶은 책들>

이상묵, 강인식 <0.1그램의 희망>

나탈리 앤지어,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최재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찰스 다윈,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이은희, <과학 읽어주는 여자>


c******4 2013.11.01.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아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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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꼬리를 물고        벌써 십 년도 더 되었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로 있을 때 나는 한창 생태박물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우리나라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소개해주며 자문을 받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 당시 나는 이과분야의 교수들을 만나는 것을 거의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과학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해당분야(물리,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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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꼬리를 물고

 

 

   벌써 십 년도 더 되었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로 있을 때 나는 한창 생태박물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우리나라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소개해주며 자문을 받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 당시 나는 이과분야의 교수들을 만나는 것을 거의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과학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해당분야(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등) 교수들을 한번은 꼭 만나게 되는데 -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나 - 그들은 거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적인 감각도 떨어지고 아이디어 면에서도 원리와 법칙만 설명하며 천재라 불리우는 어느 교수는 말투까지 어눌한 경우도 있었다. 많이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 표현하고 생각을 입체화하는 것은 각기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과학분야 교수들에겐 가장 중요한 핵심 컨텐츠만 과외 받듯이 찍어달라는 수준에서 자문을 마무리하곤 했다. 당연히 최재천 교수도 그럴 분(?)으로 생각하고 나는 틀에 박힌 질문들을 가지고 연구실을 방문했다.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방안은 거대한 헌책방처럼 곳곳이 책더미에 쌓여 있었고 교수님은 방 한가운데 무슨 열반에 이른 수행자처럼 정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계셨다.(책상도 어깨높이 까지 쌓아 놓은 책으로 여분의 공간이 전혀 없었다) 머리와 수염과 의복의 상태는 며칠 밤을 새우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췌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흔쾌히 웃는 얼굴로 먼저 악수를 청하셨다. 더 말이 필요 없는 연구자의 진중한 아우라에 나는 흠칫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대화하면서 그가 전혀 과학자라는 (내 편견의)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유창한 인문학적, 문학적 언어구사 능력이었다. 그때 나는 미래 지속가능한 에콜로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왜 인간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되는지를 강의 받듯 전해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생태박물관 전체의 주제나 공간 연출까지도 아이디어를 얻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든지 시간이 허락한다면 세세한 항목마다의 전시연출에도 모두 설명 드리고 자문을 받고 싶었다. 같이 동행한 영업부장이 나오면서 혀를 내두르며 저분은 과학계의 이어령(이어령은 업계에서 이빨로 통함)이라고 농담했던 것도 기억난다. 단순히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래 묵혀온 생각을 풀어 놓는 듯한 느낌. 그때 나는 저자가 가진 학문에 대한 열정과 동물과 환경을 향한 사명감,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미팅 순간의 집중력 등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조금 더 공부해서 가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고 돌아가는 내내 ‘최재천’이라는 이름 석자를 되뇌었다.(그땐 지금만큼 유명하시지 않을 때 였다. 유명하긴 해도 스타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2006년도에 국립대구과학관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전체 컨셉을 통섭으로 하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뒤지다가 바로 <통섭, 에드워드 윌슨 저, 사이언스 북스, 2005>의 역자가 최재천인 것을 확인했다. 그분은 과거 전시하는 회사에서 자문 받으러 온 일개 기획자를 기억할리 없겠지만 나는 당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때라 마치 ‘통섭’이라는 책이 나를 위한 구세주로 느껴지던 시기였다. 저자가 주장하는 ‘삶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인연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그 책을 밤새워 읽고 과학관 컨셉을 도출한 후 (당시 막 뜨기 시작하던)통섭에 관한 브리핑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그러니까 나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을 얼마간 널리 알린 사람에 속한다 ㅋ) 그 책과 하워드 가드너의 <체인징 마인드, 이현우 역, 재인, 2005> 미셀 루드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박종성 역, 에코의 서재, 2007> 훗날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 생각의 나무, 2008>등은 우리가 과학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항상 참고서처럼 지니고 다니던 책이었다. 그 후 내가 조직생활을 때려 치고 사업에 손대었을 때 저자는 서울대에서 이대로 스카우트 되셨고 내가 보는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내가 조선일보를 끊지 않는 이유 중에 최재천 교수의 칼럼도 속한다 ㅠ) 지금은 내가 처음 뵈었을 때보다 엄청나게 유명한 사회인사가 되셨고 그동안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일반인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저자의 책을 서점에서 만날 때마다 웃기지만 나는 마치 나 혼자만 알았던 어떤 과학자의 비밀을 다 같이 공유하게 되는 것 같은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 내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음을 매번 환기하곤 한다. 그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과학이니 인문학이니 하는 경계가 필요치 않은 통섭학자임을 인식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 내가 말로만 통섭학자의 아우라를 느꼈다면 이번에 <통섭의 식탁>은 글로 된 증명서 같았다. 이 책을 덮은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배가 부르다. 모두 영양가 높은 지식만찬의 덕택이다.

 

 

엄지를 치켜 세우며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신간 중에 어엿한 인기 장르가 된 것이 바로 ‘책 이야기’이다. 예전엔 문학 비평가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시나, 소설, 고전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모음집을 출간했는데 요즘은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읽어온 책들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리뷰어로서 이런 책은 늘 관심의 대상이며 그들은 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어떻게 해석하고 소개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책을 이야기하는 책속에서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듯 강렬한 호감을 느끼며 책을 찾아 읽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허세부리기도 그만이다. 단점이라면 같은 이유로 책 이야기만 읽고 정작 해당 책은 패스하게 될 경우도 있다는 것.(고전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재천 교수의 책 이야기는 설사 이 책에 나온 그 어떤 책도 들쳐보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막강한(치명적인) 장점이 있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은 문턱이 높아 나같은 문과출신은 미리 포기하게 되는데 그나마 이런 책때문에 눈과 귀가 트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또 하나 읽다보면 어느새 과학과 인문의 구분이 스르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은 들어가는 입구는 분명 과학이었지만 나오는 출구는 인문으로 변해있다. 과학분야의 책을 소개하는 책 자체도 많지 않지만 저자처럼 인문학적 통찰이 문학적으로 제시된 글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저자가 주장하듯 배우는지 모르면서 깨우치는 방식이 가장 훌륭한 공부라고 저자는 스스로 우리에게 그 효과를 입증하는 과학자로 남을 듯하다.

 

 

   우선 이 책의 구성은 식탁이라는 컨셉 하에 이루어지는 각종 요리의 향연으로 볼 수 있다. 총 56권의 책이 한 권마다 어엿한 하나의 꼭지를 이루며 메뉴판에 소개되어 있다.(359p나 되니 만만한 분량은 아니다. 비율을 보면 56권 중 세프 추천 3, 애피타이져 7, 메인요리 31, 디저트 5, 일품요리 6, 퓨전요리 4) 동물과 생명, 진화, 우주, 과학자에 관련된 자연과학 책이 삼분의 이 정도 차지한다. 나머지는 인문사회분야 혹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들인데 주제도 가족, 여성, 경제, 역사, 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범위를 말 그대로 경계 지을 수가 없다. 저자는 맨 처음 셰프가 추천하는 책으로 제인구달의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과 조너던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 그리고 리처드 랭엄의 <요리의 본능>을 콕 집어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삶, 요리의 진화적 중요성을 언급하며 마지막에 음식을 준비하는 요리사를 찬양하고 있다. 우리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준 그래서 가장 인간답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구절이 마치 자신이 이 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인식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준비해온 요리사였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는 저자가 왜 비빔밥을 예로 들며 책 이야기를 식탁으로 꾸렸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요리가 인간을 동물이 아닌 인간적인 존재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든 것이기에 요리사는 가장 인간다운 사람인 것이다. 단순히 책을 나열하고 요리의 순서에 따라 형식적인 의미로 책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 인간에게 영양을 섭취하게 하듯 (그러한 인간적인 마음으로)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내가 존경하는 부분은 이런 식의 지식이 체화된 혜안이다. 이것은 편집자가 책의 리스트를 받아 테마대로 끼워맞추기 식으로 단순 분류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확실히 감명 받은 (전공분야) 책에서 얻은 주제의식이 반영된 통섭의 결과이다. 그는 음식이 맛있다면 요리사를 향하여 엄지를 치켜세우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책을 덮고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엄지로 수백 번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

 

 

개미만큼만 알아도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르침은 역시 ‘알면 사랑한다’ 였다. 저자는 끊임없이 서로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설득한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면 사랑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책의 전반에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게 쓰며들어 있는데 저자는 그들을 하나라도 더 알면 지금보다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다 같이 잘살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우리 못지 않게 ‘이곳에서 삶을 누릴 자격과 권리를 지닌’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의 시작이라 주장한다. 그는 침팬지, 고릴라, 야생 원숭이, 개, 개미 등을 평생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저서를 소개하며 그들이 외치는 주장을 전해주고 있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통나무집을 짓고 숲속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고, 삶의 절반을 나무위에서 보낸 여성생물학자도 있었다. 꿀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꿀벌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춤을 해독하여 꿀이 있는 곳까지 날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지켜 달라 말한 적 없는 아프리카의 동물을 지키다가 밀렵꾼의 손에 살해된 비극의 과학자도 있었다. 저자인 그 역시 물개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으며 갈매기의 깃털에서 채집한 진드기의 아름다움에 전율이 돋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지금도 열대생물학자로서 타잔 네 동네를 드나들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사는 동안 평생 열대 한번 못 가 본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개하는 책을 하나 읽지 않고도 전해 받은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하고 경건하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생명체중 가장 스마트하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겸허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의 인간은 아직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 지나친 인본주의 혹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같은 생명체로서의 상대적 존중과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는 인간은 산업경제에서 ‘성장’과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을 당당하게 파괴하는 주범이었기 때문에. 주의와 편의를 앞세워 야생동물을 박멸했고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이념으로 서식처를 파괴해 왔기 때문에. 그는 다른 저자들의 목소리를 빌어 개인 소비 수준으로 측정하면 세계의 부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미래세대에도 사용해야하는 생물권의 건강상태로 측정해보면 부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구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며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모독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멸망하리라 예언한다.

 

 

   그는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담론 외에도 의생학이 어떻게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단한 아이디어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개미의 위대함은 이런 식으로 연구가 된다. 두발로 걷는 우리보다 험한 지형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넘나드는 다지류의 특성을 이용해 재난구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된다면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대형참사 현장에서 더 많은 인명을 구조하지 않을까? 그는 공룡같이 무시무시한 동물의 필요성도 알게 쉽게 정리한다. 알파포식자들이 사라지면 남은 동물 중에서 가장 야비하고 경쟁력이 강한 소수가 생태계를 지배하여 지구를 황폐하게 한다는 경고는 이런 식이다. 그들은 시장을 독점하려는 몇몇 대기업들의 횡포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정부의 기능을 대신한다고. 기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그 무엇도 아닌 우리 인간이 가장 잔인한 짐승인 걸 알고는 있느냐고.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행동과 감정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데 왜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듯이 구느냐고.

 

 

   그는 생명과 진화를 말할 때엔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의미 즉, DNA의 영속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면 내 생명은 물론 생명이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골고루 소중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느냐 반문한다. 많은 세계적 과학자들은 현대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 및 환경 문제로 생물다양성의 고갈을 꼽았다고 한다. 숲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동물이 멸종하고 생태계의 질서가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불행이 천천히 진행된다고 혹은 나 사는 동안엔 별일 없을 것이라고 눈을 감는다. 그는 바로 우리 다음 세대의 운명을 걱정한다. 자연 환경이 지속되지 못함은 물론 사람의 가족환경도 붕괴될수 있다는 섬칫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시작된 일이다‘라며 출산율 저하의 문제를 반 이상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같아 그 부분은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그 부분에서는 나도 할 말이 많지만 저자가 몰라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다행히도 인간은 생명과 생명 다양성을 사랑하게끔 태어났다는 것이다. 퍼뜩 집에서 열심히 장수하늘소를 키우던 아이 생각이 났다. 과학관에서 가져온 장수하늘소였다. 마트에서 집도 사고 먹이도 사고 육 개월을 키웠는데 어쩔 수 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돌보다 보니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장수하늘소 때문에 삼일을 울었다. 어른들의 영혼보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는 장수하늘소도 자신과 같이 숨을 쉬고 일상을 교감하는 어엿한 생명체였던 것이다. 저자는 생물학자들이 매일같이 바라보고 관찰하던 동물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업무상 스트레스 이상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라 말했다. 조금만 넓게 생각해보면 이는 꼭 자신이 기르던 동물에만 해당되는 감성은 아니다. 문제는 이성인 것이다. 과학과 기술도 그 폐해를 비난만 하지 말고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시 과학과 기술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자고 설득한다.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양보, 관점의 전환. 미래사회를 공상하는 인간이 아니고 현재사회에 공생하는 자연. 이 말을 하고 싶어 그는 수많은 반찬을 대접했던가 보다. 특정 영양소가 필요하다고 주입하거나 강요 혹은 위협한다면 더 멀어질 수 있으니 이렇게 음식에 골고루 버무려 천천히 섭취하게 만들었나 보다. 

 

 

   저자는 자신처럼 통섭형 인물이 많아져 문학과 과학의 만남이 하나의 ‘문화적 담론’으로 거듭나길 학수고대한다고 하였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가 파도에 씻기듯 모래처럼’ 스러지는 풍경을 자세히 목격한 독자로서 다시금 알아야 사랑한다는 말씀을 되새겨 본다. 알고 사랑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과연 모르고 사는 것보다 편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이라지만 분명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기도 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알아야 하는 건 살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목숨 같은 일이 아닐까. 아는 건 사는 것이다. 아니, 알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몰라도 살수는 있지만 그건 사실 죽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같이 살아가는 존재가 지켜야 할 가장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이 지구를 양분하고 있는 두 지배자는 인간과 개미라 했다. 개미가 인간을 존중한다면 기꺼이 인간도 개미를 존중해야 한다. 딱 개미만큼만 알아도 우린 우리 아닌 것들과 영원히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존재인지 모른다. 몇 년 째 까치를 연구한다는 그만큼은 못되어도 우리가 몇 년 동안 개미만큼은 알려고 눈을 떠야하는 이유이다. 개미를 안다는 건 인간외 나머지를 다 안다는 것이니까. 그건 참 기특하고도 아름다운 그래서 진정으로 스마트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일 테니까.

 

 

 

j***o 2012.03.0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통섭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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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저녁 한가로이 채널을 돌리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곤 채널을 고정 했다. 교육방송에서 이시대의 통섭학자 "최재천교수"의 강의가 한창이었다. 보기만 해도 늘 알고지냈던 사람처럼 편안한 모습이 좋은 느낌을 준다. 최재천교수를  처음 알게된것은 [과학자의서재]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한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나온 삶의 과정마다 함께 했던 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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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저녁 한가로이 채널을 돌리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곤 채널을 고정 했다.

교육방송에서 이시대의 통섭학자 "최재천교수"의 강의가 한창이었다. 보기만 해도 늘 알고지냈던 사람처럼 편안한 모습이 좋은 느낌을 준다.

최재천교수를  처음 알게된것은 [과학자의서재]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한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나온 삶의 과정마다 함께 했던 책과 그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단 한권의 책으로 누군가가 좋아지다니. 이런건 사춘기에나 경험하는일이 아닌가 ?

[과학자의 서재] 책한권으로 서른이 훌쩍 넘은 나에게도 그런일이 벌어졌다.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그 못다한 이야기를 [통섭의 식탁]으로 초대했다.

친절하고 배려깊은 그의 인상대로 에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까지 코스별로 준비를 해두었으니 편안하게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최재천교수는  말한다. 현재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너졌듯이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일고여덟번의 직업을 바꾸어가며 살게 될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우리는 새직장에 들어갈때마다 해당 분야를 공부하러 대학으로 돌아가야 할까?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 바로 독서라고 한다.

그냥 자신의 취향대로, 손가는대로 읽어내는 독서가 아닌 "기획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독서'라는 말을 곱씹으며 나의 독서패턴을 분석해보니 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공감하겠노라고 초등학생 딸아이가 읽는 문고며 동화책을 보며 낄낄거리거나 육아서를 읽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은 멀찌감치 밀어 두고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관심이 덜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분야의 책을 몇권 더 읽어본다면

처음 읽었을때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될것이라고 한다.

어느새 나는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되고 지식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 놀랍고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단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아침에 신문을 읽고난후 누군가를 만났을때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얼마나 유창했던가 ..기억을 떠올려보니 기획독서란 참 재미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소개한 책들과 이야기를 읽다보니 최재천 교수에게 따라붙은 '통섭학자'라는 말이 참으로 적당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이가 들기전에 [통섭의 식탁]을 만나  나의 독서패턴을 점검해 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것 같다.

나도 그의 지식만찬에 통참해 보리라 조용히 다짐해 본다.

l***7 2012.02.1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