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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이 지치는 폭염 가운데서도 겨울을 기다린다. 그 시원한 추위를 기다리며 이 뜨거운 여름을 인내하며 버틴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소망, 아무리 덥고 괴로워도 이 더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붙잡는다. 사실, 계절의 순환으로 시원한, 아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만, 요즘은 너무 더워 그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다. 구약의 소예언서도 그러하다.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가운데서도 예언자들은 외친다. 소리친다. 결국은 오실 것이며 우리의 소망이 대림하실 것을 말이다. 특별히 예언자들의 태도를 보며 나 자신을 돌이키게 된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세상의 권력과 권세에 굴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다. 학개는 자신의 손을 통해,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선포된다고 확신했다. 예언자들의 확신과 담대함의 유일한 근거는 그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세상의 권위나 확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말씀에 대한 확신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지는 않지만, 설교자들은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고 전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억지 부리고 스스로 금칠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탐구 위에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그 말씀의 의미를 극명하게 드러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손을 통해, 우리의 연구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소예언서3 166쪽- 그렇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세상과 권력에 굴복하고 이익을 탐하여 말씀을 흐리고 '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오늘 내가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길어내야 하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원어 설명을 통해 본문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친절한 히브리어 대학자가 옆에서 조근조근 짚어주시는 느낌이라 읽는 내내 뛸뜻이 기뻤다. 히브리어를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라 할지라도 천천히 따라가며 읽으시면 그 기쁨을 충분히 누리시리라 확신힌다. 보이지 않는 더위의 끝을 향해 가는 지금, 이 책과 함께 선지자들과 동행하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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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공부를 하기 전 신학교에 들어가면 성경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학을 한 사람은 알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신학교에서 성경을 많이 가르치지 않는다. 굳이 좋게 포장해서 말한다면 스스로 성경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도구를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다. 그러니 목사인 나도 성경을 잘 모른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 수두룩하다. 연구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가끔 성경공부 시간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예리한 질문에 식은땀이 나고 질문한 이가 살짝 밉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김근주 교수의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3”은 참 고마운 책이다. 특별히 예언서는 어렵다. 교회에서 1년 반 동안 성경을 일독하고, 과정에 따른 질문에 답을 써야하는 양육훈련을 맡고 있다. 3학기 동안 성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예언서이다. 짧지만 강의를 해야 하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본 서는 내 책상 옆에 두고 오랫동안 넘겨보며 참고해야 할 책이다. 목회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주석은 핵심을 잘 집어주고 요약하는 책이다. 학문적으로 대단한 책들이 많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 쓸만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저자의 학문적 업적에 매료되어 덜컹 책을 샀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참고서를 살 때는 주의하고 또 주의한다. 특별히 한국 정서가 배제된 외국 상황에서 나온 책들은 가끔 정말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 본 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공유하면서도 성경의 1차 의미를 찾는데 성공했다. 바쁜 목회 현장에서 이런 양서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어서 전작 1, 2편을 구비해서 연구해 보고 싶은 열망이 일어난다. 이 작업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조금은 알기에 저자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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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 않은 소예언서 읽기 김양현 (fisherkim30@gmail.com) 기다리던 김근주 교수님의 책이 나왔기에 묻지도 않고 주문했다. 그것은 아마 전작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테다. 김근주 교수님의 [특강 예레미야]를 집어 들고 멈출 수가 없었다. 우선 풍부한 배경지식, 본문에 대한 정확한 주석, 그리고 우리 시대에 접목할 적용이었다. 무엇보다 행간에서 읽혀지는 교수님의 열정이었다. 그 열정은 살아 움직였고 예레미야 못지 않은 묵직함으로 다가왔었다. 그가 쓴 소예언서 시리즈 1,2 편을 집어 들고 역시 손을 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약하고 평소 잘 들어보지 못한, 읽어보지 못한 소 예언서라서 더욱 기쁨은 컸다. 이렇게 풀어낼 수 있구나, 이렇게 열정적으로 강의할 수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정확하게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 있구나. 이번에 받아 든 소예언서 3은 후기 예언자들의 글이라 더욱 반가왔다.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포로기 후 선지자들이다. 바벨론 포로를 경험했고, 귀환을 경험했던 예언자들이다. 그들이 겪었을 격동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선조들의 실패로 인한 절망, 귀환이라는 흥분, 그리고 감내해야 했던 처절한 현실이 다가온다. 부푼 꿈을 안고 귀향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영적 현실, 성전 건축이라는 거대한 부담감, 식어버린 가슴에 다시 지펴야 할 영적 열정, 그리고 메시야 대망, 하나라도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시대를 이들은 살아갔고 자신들의 몫을 다 했다. 김근주 교수님의 이 책은, 우선 각 예언서들의 시대적 배경, 예언자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개요를 풀어내주고 있어 시대 이해를 정확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각 구절에 대한 주해, 원어의 의미를 살려내면서 동시에 각 구절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어 아주 유익하다. 또한 김근주 교수님의 장기이자 특징인 오늘을 위한 구체적 적용이 따르고 있어, 마치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한 예언자들의 활동인 듯 하다.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 시대에 국한 된 사문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에 펄떡이는 살아있는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마치 예언자들이 다시 살아나 부르짖는 것이라 할 만하다. 특히 학개서의 해석처럼, 경건하고 은혜로운 수동태 동사와 같이 되어 버린 오늘 우리시대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살아있고 능동적인 동사가 되기를 원하는 가르침은 묵직하다. 오랜 절망, 손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놓아버린 시대를 향한 부르짖음은 그 때에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편벽한 집을 짓는 반면 성전 공사는 손 놓아 버린 현실은 아파트 공화국의 영적 탈진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당시에 학개를 불러 깨우친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소망을 가져본다. 영적 무관심의 시대,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기 일신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 다시 소 예언서가 울려 퍼지길, 우리가 이 예언서들에 반응하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고 다시 부흥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러한 열망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그리고 설교해야 할 책이다. 이 책의 사람들이 되기를, 이 책을 통해 소예언서의 깊이를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그 시대를 다시 살아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