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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새로운 이름..베르테르
"사랑한다면 그처럼 하라"
베르테르-이 유망한 청년도 처음에는 이처럼 바보같지는 않았을꺼다. 사랑과 불가능 그리고 자살.. 인간이 행할수 있는 모든 극적인 Act를 한번에 보여준 베르테르는 괴테 그 자신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불같은 사랑이 없다면 젊은이의 사랑은 아니겠지만 자기를 파멸시키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자기 파멸적 사랑에 대해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들면서 느껴보고 싶어지는 충동이 생겼다. 한 남자의 광적인 사랑은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 주변에 바이러스처럼 퍼지며 번져가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매너와 희극 혹은 진부로 점철된 현대 연애 끄적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듯한 이 작 품은 나의 연애관마져도 흔들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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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최근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고전 문학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고르다 예전에 펭귄 클래식 영문판으로 조금 읽다 포기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서 이번에 한번 꼭 다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을 보면서 가장 처음 눈에 띤 것은 책의 형식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베르테르가 쓴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중간에 해설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내용 전개의 대부분이 베르테르의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색달랐다. 소설 속 주인공의 편지 형식이여서 그런지 무언가 베르테르의 마음이 더욱 더 깊게 와 닿는 것 같았다. 베르테르는 심리적인 공백이 있어서였을까? 시골마을에서 로테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고 허탈감을 느낀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만, 그사이 이미 로테는 알베르트와 결혼을 했고, 이에 베르테르는 실의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다. 결국 소설은 이러한 내용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금서로 지정될만큼 영향력이 컸다.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유부녀를 사랑한 젊은 청년들의 자살이 이어져서 결국 이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에는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없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형식과 문체의 차이점 때문에 다소 읽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있다고 치더라도, 책의 서문과 작품해설이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어서 책을 읽고 이해하기에 참 편리하다. 또 괴테문학이 갖는 상징성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현대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해 봤을때 그의 대표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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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봐요.” (85쪽)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무슨 내용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매우 짧고 간단했다. “베르테르라는 한 청년이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이지.” 십대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수성 충만했던 여고생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향력은커녕 참 못나고 어리석은 남자 베르테르, 한 여자에게 평생을 두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난 무책임한 남자 베르테르, 비겁한 겁쟁이 베르테르라는 기억만을 남겼을 뿐. 이것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때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의 고통을, 욕망의 고뇌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비단 사랑뿐이겠는가. 가질 수 없는 그 숱한 대상들을 향한 무한한 갈망과 욕망을,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성인이 된 지금, 베르테르의 슬픔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베르테르의 말처럼 내면에 자리한 ‘어두운 욕망의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 내면에 단단히 자리한 욕망의 세계는 이 책의 저자 괴테 역시 떨쳐낼 수 없었다.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를 연모하게 된 괴테 본인의 고백과 유부녀를 사랑했던 지인의 권총 자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한 일종의 고백록이자 논픽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게 된 괴테는 베르테르의 입을 빌려 탄식한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 불행의 근원이 되다니 말일세. (90쪽)
책의 곳곳에 묻어나는 자연을 향한 동경과 그에 대한 서정적이고 수려한 묘사, 1700년대 말 독일 신분 계급 사이의 갈등과 관료제와 인습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사랑 이야기 안에 유려히 녹여내는 대문호의 필력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괴테의 도저한 시선에 탄복하게 된다. 파우스트(1831년) 또한 파우스트에게 욕망이 없었더라면 무대의 막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니. 중요한 것은 괴테의 시선이 단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열망과 욕망의 탐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괴테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갖지 못했기에 죽음조차 불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으로 각인되는 대상의 실체를 관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자각했다고 해서 대상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베르테르가 자신의 눈에 총을 발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이루지 못한 열망의 대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안나 카레니나도, 위대한 게츠비도, 폭풍의 언덕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그래서 참으로 애틋한 존재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나는 언덕에 서서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네!(…)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서둘러 가보았지만 내가 원하던 것은 찾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왔네. 우리의 미래는 바로 그런 먼 거리와 같다네!(…)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쳐 유일하고 무한하며 장려한 감정의 온갖 환희로 가슴을 채우려 애태운다네. 그러다가 아! 막상 그리로 달려가면, 저곳이 이곳이 되면, 모든 것은 전과 다를 게 없어지지.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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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태껏 늘 그래 왔듯이 운명이 던져준 한 줌의 불행을 곱씹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말일세. 나는 현재의 순간만을 즐기고 한번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작정이네. 정말이지 자네 말이 맞았네. 친구여. 우리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ㅡ 우리 인간들이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알 걸세. ㅡ 현재의 삶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받는 고통은 더 적어질 걸세. 5%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어쩌다가 여분의 자유라도 생기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법이거든. 아, 인간의 운명이란! 7%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대할 때처럼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할 때는 우리가 그냥 행복한 망상 속에서 춤추게 놔둘 때이다.' 24%
"한계가 있어요. 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사람이 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33%
나만 이렇게 불행한 것은 아니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졌던 희망에 실망하기 일쑤고 자신이 걸었던 기대에도 기만당하기 마련이라네. 52%
아, 인간이란 이처럼 덧없는 존재라네 자신의 존재가 아주 확실한 곳에서조차, 자신의 현재가 유일하고도 참된 인상을 만드는 곳에서조차,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 법이야. 그래,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에서도 사라지는 걸세. 그것도 너무나 빨리! 58%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게 혼란이요 어둠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게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라네. 70%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 이 책은 청년인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할수록 괴로움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해서 힘들어했고, 또 괴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가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런 경험들을 엮어서 이 소설을 창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청년 베르테르의 마음보다 로테의 마음이 어떨지 더 상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사랑 앞에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건 종종 무너지곤 한다. 베르테르는 그 선을 넘지 않고자 엄청 애쓴 인물이다. 로테는 어땠을까.
로테는 정말 베르테르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을까. 베르테르가 매너 있게 행동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아마 로테도 베르테르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테는 모르는 척하기 보다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로테는 약혼자가 있으니 확실하게 베르테르에게 선을 긋고 멀리하거나, 아니면 약혼을 파기하고 베르테르를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로테의 태도가 희망고문처럼 느껴지는 건, 그만큼 괴테라는 작가가 남녀 사이의 그 미묘한 긴장감을 잘 그려내서 깊이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시대적 상황을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한 인간의 본성 혹은 인간의 성향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베르테르의 말들을 통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인간에 대한 편견이 무서운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남녀 사이 아슬아슬한 감정에 푹 빠져서 인물들의 심리에 깊이 공감하고 그 상황에 몰입하며 읽었다. 이 책은 사랑과 인간에 대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얽히고설킨 세 인물들이 각각 얼마나 다른 성향의 인간들인지 확실히 보여주었기에 강렬했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또한 그들이 내리는 선택과 그들의 언행 등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걱정하고 화나고 속상해하며 몰입했던 작품이었다. 이런 고전을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싶게, 인물들 하나하나에 감정이입하며 깊이 빠져들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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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8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번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베르테르의 인식의 변화이다. 그는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며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듯 하다. 특히 삶에 대한 태도는 소설 마지막에 가서 극명히 바뀐다. 7월 1일,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처에 사는 한 목사를 방문한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 곳에서 베르테르는 사람들과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렇게 말한다. "우울증이란 태만과 비슷한겁니다. 아니, 태만의 일종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그런 기질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단 한 번만이라도 스스로를 다잡을 힘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p.60 아무튼 나는 알베르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네. 그의 침착한 매너는 감출 수 없는 내 불안한 성격과 너무나도 현격하게 대조를 이루었네. 그는 감정도 풍부했으며 로테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잘 알고 있었네. 그는 우울증 같은 것은 별로 없어 보였어. 자네도 알다시피 우울증은 내가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악덕일세. p.76
11월 13일 또한 존경했던 친구인 알베르토를 향한 분노도 날이 갈 수록 커진다.
변화하는 베르테르의 태도를 관찰하며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처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소설 초반 베르테르는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에 감동하고, 산책을 하면서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런 사람. 그랬던 그의 세상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하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번쯤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매 이후 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일수 있었던 이유는, 비극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베르테르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 처절하면서도 속시원한 결말을 이 책을 통해서 함께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동병상련의 친구와 이야기 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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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북 펭클 독서모임의 지기 삽하나입니다. 벌써 수주가 흘렀군요. ㅠ- ㅠ 지난 10월 2일에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이제서야 후기 올리는 점 사죄 부탁드립니다. (핑계 결코 아닌 진정한 이유 댈래면 댈수 있지만 구차하므로 패스ㅋㅋㅋㅋㅋㅋ) 다행히 당일 자릴 빛내주신 매니저님께서 사진과 함께 정겨운 후기 올려주셔서 그걸로 위안삼은 듯 합니다 ㅠ- 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기를 약속드리며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후기 작성하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참가자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민맘님 2. mkdocu님 3. 산타클로스님 4. 소공녀님 5. 삽하나(저임ㅋㅋ) +특별 게스트, 꼬꼬마 지민양♡
모임의 선정 도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저는 왜 자꾸만 괴테라고 아니쓰고 '괴퇴'라고 썼다 지우길 반복하는 것일까요 ;;) 우선 예비 모임 때 거론되었던 주제를 토대로 토론의 물꼬를 터 보았습니다.
1. 베르테르, 단지 '현실도피'일 뿐이다?
'자살'이라는 두 단어에 관련된 모든 종교적 의미를 배제하고서, '자살'이라는 행위에 옳다, 그르다는 식의 잘잘못을 가리는, 자칫 살벌해질 수 있는 사견은 잠시 접어두고서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A 삽하나) 흔히 자살은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치부되어 많은 이들에게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베르테르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베르테르는 잔인하지만 강렬하고 오래가는 사랑의 표현 방식을 '자살'로 택했던 것은 아닐까요. 남겨진 그녀가 그를 향해 평생 안고 갈 연민과 상처, 후회, 눈물을 모두 포함해서 말입니다. 어쨌거나 베르테르가 자살을 통해 로테의 가슴에 존재감을 깊이 새겼다는 점, 또한 이는 그의 죽음이 결코 허무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B mkdocu님) 베르테르에게 우선시 된 것은 육신보다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아무련 미련이 없고 잃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울 뿐인 육신따위. 그에게 중요할 리 없죠.
C 산타클로스님) 복수적 측면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 권총으로 알베르트를 사살했을 것 같은데 베르테르는 그렇지 않았죠. 이는 그의 순수하고 순결한 성향을 말해줍니다. 또한 베르테르는 스스로 로테를 손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이상적 존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자살로 이끈 것이 아닐까요.
D 소공녀님) 사랑이란 개념이 행복으로 발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을 가져온다는 모순이 베르테르를 괴롭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요. 이에 따른 이런 저런 과정에서 감정 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E 지민맘님) 그런데 말입니다. 자살을 한다고 해서 로테 같은 여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크게 각인시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 아닐까요. (간접적 경험에 비추어 설명해주셨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나가기에도 바쁩니다. 복수를 하려 했든 그녀에게 영원한 존재로 남기를 바랬든, 냉철하게 본다면 죽은 사람만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VS '아내가 결혼했다'
역시 예비모임에서 거론된 바 있는 내용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접하지 못한 저를 포함한 다른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던져 보았습니다. 지민맘님께서는 두 소설의 여 주인공이 어딘가 비슷하지만 또 다른 특색이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로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는 권총을 직접 건네주며 상대를 제거(?)하지만, 인아(아내가 결혼했다)는 남주인공 셋 모두를 아우르며 알콩달콩 잘 사는 방식을 택합니다. 둘 모두 남성들의 로망이라는 점, 또 그만큼 잔인하고 못되 처먹은(?) 여성의 표본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흥미롭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 삽하나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므로 과감히 생략하겠습니다. (꺄우 근질거려 >ㅅ <)
3. 빌헬름, 누구냐 너!
우리 펭귄클래식 강북 독서모임 멤버들은 베르테르와 동성애적 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수많은 량의 편질 주고 받은 '빌헬름'이라는 작자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빌헬름. 빌헬름. 입 안에 이름을 담아 보자니 왠지 또 다른 느낌으로 읽히는군요. 리을이 입천장에 닿는 느낌이 껄끄럽달까. 아무튼.)
언제나 베르테르에게 상당한 이성적 잣대를 제시하는 빌헬름은 정작 그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은 채 오로지 편지로만 그를 위합니다. 베르테르가 그렇게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다가와 술 한 잔 기울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민맘님께서는 개인적 경험을 빌려본다면 빌헬름은 베르테르가 지긋지긋했던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귀찮고 싫어서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그럴듯한 조언을 주고, 또주고, 자꾸만 주는데도 여전히 답을 못찾고 방황하면서 투덜대기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저 삽하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아, 나 그거 뭔지 알겠다." 라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4. 베르테르 효과, 하지만 괴테는 정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으로 급 부상하게 된 괴테. 또 이는 당시 '베르테르 효과'를 낳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낳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되고 있지만요.) 그런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문에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으로 위안을 삼았으면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자살을 택한 많은 이들이 괴테가 의도한 바대로 진정 이 책을 위안으로 삼았는지, 아니면 베르테르의 심경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괴로움에 못 이긴 나머지 그리 되었는지는 알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말씀드리면 괴테 자신은 정작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괴테 자신의 짝사랑 이야기와 친구 예루살렘의 자살 사건 등 직간접 경험들이 녹아 있습니다. 괴테 본인은 자신의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개인적으로 담고 있던 정신적 괴로움과 압박에서 벗어나 모든 것은 청산, 승화시키고 더 나아가 83세까지 장수하며 자유 연애를 즐기다 잘 죽었다고 합니다. 무려 74세엔 19세 소녀에게 푹 빠져버리기도 했다고. 허허.
5. 기타 _mkdocu님; 빌헬름, 나쁜친구입니다. 이야길 들어줄 좋은 친구 하나만 있어도 자살을 막을 수 있다던데. _삽하나; 괴테를 스타덤에 오르게한 책인 듯 하지만 스토리 구성이 허접, 난잡한 건 사실이죠. _산타클로스님; 자살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죽음'이라지요. _지민맘님; 스콧니어링도 자기 의지로 굶어서 죽었다지요. 흐음. _지민맘님, mkdocu님, 산타클로스님; 단테의 신곡과 함께 읽어보고 비교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_삽하나, mkdocu, 지민맘, 소공녀; 산타클로스님 말씀을 너무 잘하세요 >ㅅ < (요런순수동안미소년같으니!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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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삶을 관통하는 자리에 문학이 놓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 나는 당신에 대해 편향적이다 조관우의 노래 <늪>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 처음 그댈 보았지 / 이미 모든 것이 멈춘 듯 했고 / 가슴엔 사랑이 / 꿈이라도 좋겠어 / 느낄 수만 있다면 /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 돌아서야하는 것도 알아….” 베르테르가 로테를 처음 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 사랑이 시작되었지만, 그가 하는 사랑은 그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베르테르가 살았던 당시 독일은 사람의 이성을 감성보다 중시하는 사회였다. 때문에 ‘결혼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감성)은 ‘결혼이라는 제도’(이성)에서 봤을 때 죄악에 가까운 행위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로테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베르테르는 이성을 무한히 찬양하는 풍조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을 옹호하며 그 발현을 당연시 한다. 베르테르는 “가슴만이 유일한 자랑이요, 가슴만이 모든 것의, 즉 모든 힘과 모든 행복과 모든 불행의 근원일세.”(128-이하 페이지는 펭귄클래식 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라고 말하며 감성을 찬양한다. 그리고 감성의 범주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사랑이라고 꼽는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우리 인간들을 값지게 해주는 것은 없을 걸세.”(89)
그러나 베르테르는 이성을 앞세우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할 뿐이다. 어쩌면 그가 행동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있었기에 이성과 감성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운동가와 훌륭한 사상가는 동시에 될 수 없으니까.
베르테르와 정확히 접점에 있는 인물이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다. 알베르트는 시민사회의 수호자로서 이성의 껍질을 뚫고 나오는 감성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 작품이 서간체 형식이여서 알베르트라는 인물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자살’에 대한 베르테르와의 논쟁에서 그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다. 알베르트는 감성의 발현에 대해 “격정에 휩쓸려 판단력을 잃은 사람은 술에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83)다고 말하며 베르테르가 격정이 넘쳐 선택한 자살에 대해 옹호하자, “그건 터무니없는 궤변이오! 궤변!”(85)이라고 응수한다.
소설의 결말이 베르테르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대결은 이성의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베르테르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깊이 공감한다면 그것마느로 감성의 승리 일 수 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베르테르에 설득 당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했다면 적어도 베르테르 같아야 할 것이다. 2년여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다 이루어질 수 없을 깨닫고, 자살한 남자의 삶에 나는 연민의 시선을 던진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알베르트가 말한 것처럼 “나약함의 표현”(84)이 아니라 숭고한 사랑의 결정인 셈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나는 베르테르에 대한 하나의 가설을 내린다. 그것은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주인을 사랑한 하인에 대한 것이다. 나는 주인을 사랑한 하인-결국에 그에 집에서 쫓겨나고 살인을 저지른-이 베르테르 이야기의 또다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하인과 베르테르가 처한 상황이 아주 닮아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하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끓는 욕망과 뜨겁고도 절실한 그리움을 그처럼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네.”(38) 그 하인이 다른 하인을 죽였을 때도 그의 목숨을 구하려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말을 속으로 몇 번씩 되뇐들 무슨 소용인가. ‘그 사람은 점잖고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그것은 내 내장을 둘로 찢어버린다. 나는 공정할 수가 없어.”(169 -강조는 인용자)
나는 이 하인이 총을 쏜 것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또다른 결말이라 가정해 본다. 베르테르도 아마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를 총으로 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베르테르는 유약하다. 사회나 어떤 대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이 베르테르 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인을 보면서 부러워하며 동시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또한 ‘나는 공정할 수가 없어.’라고 하는 발화는 하인에게 말하는 것인 동시에 로테를 향한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편향적이다.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고, 더 자주 보고 싶은 것 말이다. 사랑은 그 불평등을 기꺼이 감내하지 않던가. 2. ‘사랑’이라는 증상 사랑이라는 감정은 세계가 시작할 때부터 있어왔다. 그 감정은 고귀하고 고결하며 때로는 어떤 행동의 동기보다 앞서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여있다. (그것이 비록 베르테르처럼 비극적으로 끝나기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나와 당신은 둘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 공간은 어떤 방 보다 좁으면서 세계보다 넓다. 베르테르처럼 나만이 당신을 사랑할지라도 그 공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승우의 소설 <욕조가 놓인 방>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순간 세상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그 땅에, 이 세상에, 당신과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 사는 공간이 된다. 그들이 어디 있든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연인은 연인 말고는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세계는 두 사람만 존재하는, 아주 좁은, 이제 막 태어난 세상이다. (…중략…) 자기를 제외하면 그, 그녀만이 유일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욕조가 놓인 방> 이 소설의 문장은 베르테르가 “해와 달과 별들은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나는 때가 낮인지 밤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사라진 것만 같다네.”(52)라고 말한 것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200여 년 전에도 사랑에 빠지는 감정은 ‘나의 눈에 당신만이 보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랑이 시작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이 느낌은 사랑하는 당신에 대한 끌림이기도 하고 감정을 짓누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이기도 하다. 당신을 잊으려 해도 계속 생각이 나고,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연락하는 그런 것 말이다. 이 ‘어쩔 수 없음’을 시 한편을 통해 본다. 왼쪽으로 가면 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바다입니다 마을을 가려면 삼 일이 걸리고 바다로 가려면 이틀이 걸립니다 삼 일은 내 자신이고 이틀은 당신입니다
혼자 밥을 먹다 행(行)을 줄이기로 합니다 찬바람에 토하듯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스친 것으로 무슨 인연을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날아오른다고 하여 이 과도한 행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있을 것인지
물가에 내놓은 나는 날마다 물가에 가 닿지 못하고 풍만한 먼지 타래만 가구 옆에 쌓아갑니다
춤을 추겠다고 감히 인생을 밟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날마다 치명적 오류 속에 있습니까
참으로 나는 왼쪽으로 멀리 가다가도 막을 수 없어서 바다로 갑니다 이병률, <왼쪽으로 가면 화평합니다> 전문 (강조는 인용자) 삼 일이 걸리는 마을로 가면 ‘나’는 편하게 쉴 수 있는데, 실상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늘 당신에게로 향한다. 그것은 일종의 ‘어쩔 수 없음’이다. 시인은 그것을 ‘치명적 오류’라고 까지 표현한다. 시인이 이렇게 발화한 까닭은 베르테르와 같은 상황에서 오는 ‘어쩔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베르테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나는 이러는 내 마음을 비웃으면서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네.”(130)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나는 세계에 둘만이 남는 느낌과 이 ‘어쩔 수 없음’이 사랑이라는 증상이라 생각한다. 이 증상은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 까지 우리 곁에 머무른다. 3. 사랑이 삶을 관통하는 자리 이렇게 사랑은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병치되어 있는 두 개의 개념이 하나가 되는 경우가 생긴다. 즉, 사랑이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삶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경우다. (끝나고 나서 되돌아 봤을 때) 사랑이 삶을 관통한 자리는 고통스럽다. 때로 내 삶을 관통한 화살을 보면서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이 고통과 슬픔이 문학을(글쓰기를) 가능케 하는 힘이라 믿는다.
이제 나는 베르테르와 닮은꼴의 사랑을 소개하려 한다. 베르테르 보다 오래 살았고, 결국 사랑을 이뤄냈지만, 과정에 있어서는 베르테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케말’은 먼 친척인 ‘퓌순’을 사랑하게 된다. 케말은 약혼녀가 있었지만 사랑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44일 동안 퓌순을 사랑한다. 그런데 44일이 지나서 퓌순은 케말의 약혼 사실을 알고 그에게서 모습을 감춘다. 이때부터 30년 동안 케말을 퓌순을 찾아다니는데, 그녀를 찾아다니며 그녀가 썼던 성냥, 향수, 냅킨 등을 모은 장소가 ‘순수 박물관'이다.
다소 도착적일 수 있는 이 소설 역시 읽어내려가면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케말의 감정에 나는 설득 당해버린다. 케말에게 있어서 그녀의 물건을 모으는 것은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작지만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2-168)이다. 즉, 그녀의 물건을 그녀의 대용으로써 간직하는 것이다. 케말은 베르테르가 마주한 사회상과 유사하다. 퓌순을 사랑(감성)하지만 ‘약혼과 사회적 관습’(이성)에 묶여 그녀를 마음으로만 사랑했다는 점 말이다.
<순수 박물관>에서 케말의 모습은 베르테르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상자를 열자 금방 분홍색 리본이 눈에 띄었네. 그건 내가 로테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윗옷에 달고 있던 것인데 (…중략…) 나는 그 리본에다 천 번도 더 키스를 했네.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난 며칠 동안 내 가슴을 가득 채웠던 행복의 기억을 들이마셨네.”(95) 이렇게 편지를 쓰는 베르테르의 모습은 케말이 느끼는 감정과 분명 닮아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물건을 소유한 것. 사랑하는 연인이 줬던 편지를 모으는 심정이었으리라.
또한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기 전 샤를로테라는 여인을 만난다. 이 여인은 소설 속 로테처럼 약혼한 사람이 있었으나, 괴테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오르한 파묵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순수 박물관>은 많은 부분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2-406) 파묵은 자전적 이야기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사랑했던 기억과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오르한 파묵은 실제 소설에 나오는 집을 개조해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을 개관했다. 책 중간에 박물관 티켓 그림(2-386)이 나오는데, 이 티켓을 가져가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문학의 시작이, 사랑이 실패한 자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 감정이 삶을 정확이 관통한 자리에 문학이 놓인다. 문학이라는 단어가 거창하다면 글쓰기로 고쳐도 좋다. 그래서 수많은 문학작품이, 가요의 가사가, 아름다운 시구(詩句)들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아름다운 시구를 생각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고 한 줄의 글이라도 남긴다면 그때를 문학의 원년(元年)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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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걸세. 눈 깜박할 사이지! 나는 벌써 그녀에게 가 있는 걸세. 나의 할머니는 내게 자석으로 된 산에 대한 동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네. 배들이 그 산 쪽으로 너무 가까이 가면 갑자기 모든 쇳조각들이 다 뽑혀 나가는 거야. 못들은 산으로 날아가고, 배에 타고 있던 불쌍한 사람들은 무너져 내리는 널빤지들에 깔려 죽는다는 걸세. (75)
6월 16일 그래, 나는 나그네일세, 이 세상을 떠도는 순례자라고! 자네들이 이보다 나을 게 뭔가? (130)
로테와 베르테르, 알베르트가 함께 엮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러브 스토리-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해피 엔딩의 결말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우선 사람이 죽었잖아, 사람이. 하지만 이게 현실의 한 사건이라면 베르테르가 죽고난 후, 로테와 알베르트 입장에서는 둘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죽을 때까지 각자 마음속은 어떨는지 몰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걸로 보이겠지. 다 읽고나니 자살한 그가 떠올랐다. 언니가 자살하고 난 후 결과적으로 그 남자는 새로운 연인과 쿵짝쿵짝 잘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풍문. 그 속내는 알 수 없는 거라니까! 라고 베르테르에게 한소리 듣겠군.
저녁을 다 먹고 양치질하고 세수하는데 거울 속의 저편으로 새하얀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아 나도 이제 끝이구나, 그런 아쉬움 같은 게 비릿하게 느껴졌다. 그 힘으로 잽싸게 베르테르를 완독했다. 이런 사랑은 대체....... 가능하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게 사는 길이다. 내가 이런 사랑 하다가는 아마도 순식간에 백발이 되든가 대머리가 되고 말거야 틀림없이.
베르테르와 닮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선배야 잘 지내고 있겠지만 그 선배로 인해서 상처를 입은 그 언니는 그다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을듯. 격정적이고 하나에 사로잡히면 올곧게 그 길만을 고집하는 성격이 주변인들을 얼마나 처절하게 만드는지는 나도 겪어봐서 안다. 다만 그 격정은 나이라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 작품해설을 보니 괴테도 이십대 초반이었던데, 괴테는 나이 영향을 받은듯하고. 나 역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결코 고개를 들고 못다니리라.
한계와 격정 사이에서 베르테르는 계속 한계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로테에게 끌려다니니 뭐 이건 예정된 결과였다고 할 수밖에. 유부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짓은 절대적으로 위험하답니다- 이런 걸 알려주는 걸까? 교복을 입고 읽었을 때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분명 했으리라.
괴테는 역시 생긴대로 노는 인물 중의 인물이었다. 현실에서 그는 로테와 헤어지자마자 열여섯 살 먹은 막시밀리아네를 만나 뜨거운 관계를 곧바로 시작했으니.
괴테는 [시와 진실]에 이렇게 기록했다. "옛 열정이 마음속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열정이 시작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221)
이래서 일생의 단 한 번뿐인 사랑에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걸지도 모를 일. 괴테도 그래서 [베르테르]를 쓴 게 아닐까. 하다가 아니지. 생긴대로 노는 인물이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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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울고 사랑에 속고 그럼에도 사랑을 찾아 헤매는 아마도 많이 들어본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사에 중요하면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묘한 단어일 것이다. 사랑이란 말에서 파생되어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무수히도 많다. 하지만 언어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란 그리 적절한 형태의 낱말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은 사랑일 것이다 라는 체감적인 느낌은 분명 누구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틀에 사람이 한번 깊게 갇히게 되면 논리에 의한 이성적인 힘이 우리의 내부에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결국 사랑은 때로 도덕이나 법을 넘어선 행동을 유발하게 만들고 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자기 자신에게로 부터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사랑하니까 어떤 외부적 힘든 고통도 견딜 수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있어 다른 어떤 관념들은 조금씩 그 변화의 차이가 있어 보이는 듯싶은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사랑이란 것의 그 본질적인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가 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 보았다. 이미 오래전에 한차례 읽어 보긴 했지만 새로이 다시 읽어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드는 듯하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유망한 젊은 청년인 베르테르는 우연한 기회에 마을 무도회에서 샤를로테라는 여인을 알게 되면서 홀로 사랑에 깊이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이미 있었고 베르테르는 이를 알고 깊은 슬픔과 함께 실의에 빠지고 만다. 로테를 향한 사랑에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베르테르는 그녀를 잊기 위해 때로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기보기도 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노력을 시도해보지만 그럴수록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약혼자로부터 충고를 듣고 베르테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다는 로테의 말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견디지 못한 베르테르는 결국 로테가 건네준 권총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서 자신의 젊은 인생을 끝내 마감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만 놓고 생각해 본다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 시대적 조류의 흐름 즉 이성의 힘이 우선시 되던 상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인물 중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는 이성과 감정을 대변하는 또한 귀족과 일반 시민이라는 신분을 지닌 작가의 창조된 캐릭터이다. 아마도 그 시기의 분위기로 볼 때 작가는 베르테르의 운명을 달리 그려 낼 어떤 방법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시민사회와 봉건의 잔재가 함께 공존 했던 시대적 배경에 맞추어 적절한 갈등 관계를 유지하면서 깨트려야 할 구태의연한 사회의 관습과 규범 그리고 윤리에 맞선 자유롭고자 하는 한 인간의 고독한 투쟁이 그려진 이 작품이 그 당시에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를 떠나 전체적으로 사랑에 관한 화려한 문체나 사랑을 향한 한남자의 깊은 고뇌와 불안한 여러 심리적 상태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어도 사랑이라는 묘한 매력을 우리가 이 책에서 함께 공감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솔깃해짐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베르테르가 왜 이 책의 알베르트나 빌헬름처럼 합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해 한마디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자신의 감정을 가식적이나 위선으로 돌리지 않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베르테르의 자세는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오랜만에 읽어 본 고전문학이지만 역시 고전은 언제 읽어도 그 가치는 여전한 듯하다. 따라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고전 문학 속으로의 여행에 발을 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더군다나 이 늦은 가을의 계절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