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항에서는 세 편의 야간 우편기를 기다리고 있다. 각기 칠레, 파라과이(아순시온),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이 우편기들은 서쪽과 북쪽 그리고 남쪽에서 아르헨티나를 향해 오고 있다. 이 비행기들이 무사히 도착해야 그로부터 우편 행낭을 옮겨 실은 유럽선 우편기가 출발하게 된다. 칠레와 파라과이선 우편기는 정시에 도착했으나 파타고니아 비행기는 연착하고 있다. 만일 파타고니아 우편기가 사고라도 당하면 리비에르가 주도하던 야간 비행은 반대론자들의 항의에 직면하여 중단될 위험이 있었다. 조종사 파비앵이 모든 파타고니아선 비행기는 악천후를 만나 안데스 산맥 부근에서 실종되고 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 기지에서는 아무리 강직한 리비에르일지라도 야간 비행이 당분간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유럽선 우편기의 출발을 명령하고 야간 비행은 다시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
|
펭귄 클래식으로 출간된 야간비행... 오랜만에 읽는 책이지만, 역시 생텍쥐페리의 글은 읽을 수록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근데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작가이고, 펭귄 클래싱은 영어로 나오는 책인데, 이 책의 번역은 어떤 것을 기반으로? 만약 영어판이라면 중역이 되는데 과연 정확한 번역일지 궁금했다... 번역자가 프랑스어와 영어를 다 하는 것처럼 보이니 잘 참조하였으리라고 믿어야 하는건가? |
|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선생의 야간 비행을 읽으며 나는 고전에 대해 극도로, 무참하리만치 독서를 멀리 하였단 생각이 듭니다. 선생의 글 중에는 유일하게 어린 왕자를 그것도 나이 스물이 넘어서야 읽어보았습니다. 집에는 당연하다시피 세계문학전집이 버젓이 놓여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후로도 단 한번도 선생의 다른 이야기들을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겨우 겨우 책읽기를 한국 소설에 국한하여 읽어내곤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장을 펼쳐들며 야간 비행을 읽어나갈 무렵 내 머리 속에는 중학생 때의 그 허름한 학교 도서관이 떠올랐습니다. 넓직한 책상에 팔을 괴고 앉아 분주하게 혹은 책에 코를 박은 듯이 해서는, 서고 사이를 지나다니는 또래들을 구경했던 풍경입니다. 그 나이 쯤에 대체로 많이들 문학을 접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문학에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그 나이에 나는 방관자처럼 혹은 야경꾼처럼 그렇게 곁눈질로만 바라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도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다른 이들의 책읽기를 묵도하였던 풍경입니다. 그러했던 나는 지금까지도 고전을 읽는데 고역을 면치 못하는 중입니다. 쉽게 글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며 글이 풀어내는 풍경들을 머리 속에 재빠르게 그려내지를 못하다 그렇게 글의 미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뭐가 뭔지도 몰라하며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여사의 목소리로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반복해 듣는 중입니다. 그대 음성은 화살보다 빠르게 내 마음에 와 닿는다는 가사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야간 비행의 첫 구절들을 마음에 열리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인간에게 땅은 보금자리입니다. 하늘은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곳이었을 때 바다를 향해 마음을 먼저 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바다를 알아가며 하늘을 향해 마음을 품기 시작하였을까요? 하늘에 가까이 닿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에 보다 가까이 닿고자 높은 탑을 쌓고, 하늘에 보다 가까이 닿고자 날기를 꿈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야간 비행의 구절 구절들은 선禪적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하게 하나로 모여들 듯 글자를 하나 하나 챙겨 읽고 싶게 만들어줍니다. 언젠가도 꿈꾸었듯이 올해는 책읽기의 많은 시간을 고전 문학에 할애할까 합니다. 까까머리 시절의 내 순수함을 품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간 속에 책들을 마주하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
아무리 많은 지식도 직접 체험을 당해 내지 못하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생텍쥐페리가 묘사하는 밤 하늘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 땅은
야간 비행이
남방 우편기는
아주 가끔씩 등장하는 어색한 단어 몇 개를 제외하고는, 번역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진실한 울림을 가진 글은
펭귄penguin 의 디자인 저력을 세삼 확인시켜주는 환상적인 표지와 이 여름, 이렇게도 어여쁜 책을 한 손에 가볍게 들고 읽다보면 |
생텍쥐페리.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조금 양보하여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대표 저서 『어린 왕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유명하죠.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대지』가 그다음으로 유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야기할 텍스트는 그 유명한 『어린 왕자』도 『인간의 대지』도 아닙니다. 생텍쥐페리의 두 번째 소설. 바로 『야간 비행』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생애에 조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시겠지요.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었습니다. 1920년 징병으로 공군에 입대했던 생텍쥐페리는 1922년 면허를 따고 이후 많은 비행을 했죠. 1926년부터는 정기 우편 비행에 종사하기도 하였고, 이후 그의 데뷔작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고 이어 『야간 비행』까지 집필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비행은 1944년이었습니다. 그해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기지를 출발한 생텍쥐페리는 이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도 많은 논란이 오가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생텍쥐페리의 비행 경력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의 비행 경험이 『야간 비행』에 많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보면 항공 일정을 조정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와 야간 비행을 하고 있는 파비앵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파비앵은 야간 비행 중 폭풍우를 만나게 되죠. 지금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간 비행이 특별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지요.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는 일에 이미 익숙하고 또한 그 시각이 낯이건 저녁이건 큰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야간 비행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비행이었습니다. 항로가 완벽하게 개척되지 않았고, 악천후에 대비할 여력도 없었지요. 빠르게 우편을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당시엔 그만큼 비행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리비에르도 파비앵도 다른 모든 이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죠.
하지만 평화란 없다. 어쩌면 승리도 없을지 모른다. 모든 우편기가 최종적으로 도착하게 되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의 경험이 이야기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야간 비행을 하는 파비앵의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지요. 야간 비행을 하는 조종사가 느끼는 감정들과, 폭풍우를 만나는 순간의 생각, 그리고 생사를 넘는 순간의 이야기까지요. 야간 비행의 모습은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밤은 어두운 연기처럼 피어올라 벌써 계곡을 메웠다. 계곡과 평야는 이제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마을은 벌써 불을 밝혀 별자리처럼 반짝임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도 손가락을 튕겨 날개 등을 깜박이며 마을에 화답했다.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을 밝히듯 집들이 저마다 광대한 밤을 향해 자신의 별을 밝히자, 대지는 반짝이는 호출 신호가 점점이 박힌 듯 펼쳐졌다.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밤으로 들어서는 것이 마치 배가 정박지로 들어서듯 느리고 아름다워 파비앵은 이를 감탄하며 감상했다.
야간에 지상에서 바라본 비행기의 모습은 별을 배경으로 마치 비행기가 별에 쌓여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파비앵의 시선도 비슷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대지는 이미 구분이 가지 않는 하나의 어두운 덩어리가 되고, 점점이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마치 하늘에 박힌 별들처럼 반짝이죠. 비록 정반대에 있지만 하늘의 파비앵과 지상의 우리는 같은 것을 보는 것일까요? 하늘과 대지에서 반짝이는 별들을요. 한번 궤도에 오른 비행은 평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비행기가 떠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밤이 비행기를 붙잡아 고정시키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마치 어둠에 착륙한 것처럼 밤하늘 속에 단단하게 안착되어 있다고 파비앵은 느낍니다. 그 말대로라면 밤이 적당히 비행기를 붙잡아 두었다가 시간이 되면 놓아주는 것이라고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폭풍우를 만난 파비앵과 무선사는 당혹스럽지만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뇌우로 무선은 좀처럼 연결되지 않고, 그저 무사히 폭풍우를 뚫고 지나갈 수 있기만을 비는 것밖에 할 수 없죠. 극도의 공포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상황이지만, 파비앵은 언제나 그런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히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는 포위당했다고 생각했다. 좋든 나쁘든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는 때때로 동트는 모습을 볼 때 병의 회복기로 들어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해 뜨는 동쪽을 뚫어져라 바라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와 해 사이에 너무도 깊은 밤이 가로놓여 다시는 그 밤의 심연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것 같으니.
지상에 있는 리비에르 역시 크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고, 동시에 계속 무전을 확인할 뿐이지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소식에 불안한 파비앵의 아내가 찾아와도 리비에르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뿐 다른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신이 왔다. ‘내륙 전반에 걸쳐 폭풍우. 연료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삼십 분.’ 이 전보를 마지막으로 파비앵의 소식은 더 들을 수 없습니다. 파비앵 역시 전보가 닿지 않음을 잘 알고 있겠죠.
파비앵은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구름바다 위를 헤매고 있지만 저 아래에 놓인 것은 영원이다. 그는 자기만 홀로 거주하는 별자리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여전히 두 손으로 세상을 붙든 채 자기 가슴에 대고 균형을 잡는다. 그는 핸들 속에 무거운 인간의 부(富)를 가득 채운 채 절망에 빠져 이 별에서 저 별로 보물을 가지고 다닌다. 곧 돌려주어야 할 그 쓸모없는 보물을.
시간은 흐릅니다. 더 이상 파비앵이 날고 있을 확률은 없을 만큼 시간이 흐릅니다. 애초에 연료는 한정되어 있으니 선고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겠죠. 파비앵의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야간 비행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습니다. 파비앵의 안타까운 비행과 별개로 여전히 배송되어야 할 우편들이 있기 때문이죠. 리비에르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멈출 수 없고, 예정된 비행을 명령하죠. 이야기의 마지막 리비에르의 묘사가 그날의 일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리비에르는 느린 걸음으로, 자신의 엄격한 시선 아래 몸을 움츠린 사무원들 사이를 지나 자기 사무실로 돌아간다. 위대한 리비에르, 승리자 리비에르가 무거운 승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길지 않은 꿈 같은 현실 이야기. 아름다운 묘사. 절제된 감정. 생생한 경험.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은 분명 낯선 작품입니다. 그가 썼던 『어린 왕자』만을 읽어본 독자에게라면 더욱요. 하지만 읽어보면 이야기 곳곳에 생텍쥐페리가 짙게 묻어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비행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야간 비행』을 읽으면 새삼 인간 생텍쥐페리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관심이 생긴다면, 그리고 약간의 시간도 생긴다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점점이 박힌 별빛 속을 유영하는 야간 비행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
|
사람의 선입견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인가 보다. ‘어린 왕자’라는 소설 한 권으로 나는 생 텍쥐페리를 ‘자신의 의지대로 창공으로의 꿈을 펼치다가 행복하게 사라진 어린 왕자’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소설인 ‘야간 비행’과 ‘남방 우편기’는 어린 왕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생 텍쥐페리의 고뇌와 번민을 보여준다. 그는 나와 같은 범인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감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평가할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삶의 흔적만을 남기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창공은 책임감으로 올라야 할 공간이며, 지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올라야 할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초기 소설 ‘야간 비행’과 ‘남방 우편기’는 그에게서 창공이란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야간 비행 ‘야간 비행’이라는 소설은 야간 우편항로를 개척하던 시대의 항공망의 책임자인 ‘리비에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비행기로 이 곳 저 곳을 여행할 수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 속에서 야간 우편항로를 개척하던 시대의 선구자들의 고독하고 힘겨운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신혼여행과 해외출장을 다 합쳐도 비행기로 여행한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내가 비행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발명했다는 정도 이외에 무엇을 알겠냐 마는 이 소설에 따르면 아마도 초기의 우편기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운행되었나 보다. 그런데, 주인공인 ‘리비에르’가 추종자도 없이 거의 비난을 온 몸으로 막아 서면서 야간에 우편기를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리비에르’는 일견 폭력적인 절대군주와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감당하기 힘든 의무감을 어깨에 지고 사는 고독한 인간일 뿐이다. 의무감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불합리한 상사로 남기를 자처한다. 하지만, 위로 받기를 원하는 속성을 가진 그 어떤 인간이 쉽게 ‘리비에르’와 같은 역할을 쉽게 떠맡을 수 있을까? 자신을 위로 받고자 그 가면을 벗어 던지고 조종사인 ‘펠르랭’과 저녁 식사를 한 감독관 ‘로비노’에게 ‘리비에르’는 감독관 본래의 위치로 복귀를 명하며 조종사인 ‘펠르랭’에게 어떤 이유로든 처벌을 내리라고 종용한다.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감독관은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보기로 평생을 바쳐 일해 온 정비사 ‘로블레’를 해고한다. ‘리비에르’는 ‘로블레’에게 잡역부를 제안했으나, ‘로블레’가 이를 받아 들이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결단을 내리게 된다. 잘못이 어디에서 생기든 그걸 발견했을 때 뿌리 뽑지 않고 눈감아 주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에르’의 행동이 우리들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가 그토록 모질게 부하들을 대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인데도?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위인들은 ‘리비에르’ 만큼이나 고지식하고, 불합리하고, 독선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난을 감수한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을 수 있었을까? 합리적인, 창의적인, 소통 중심의 등등의 가치들이 의무나 책임보다 더 상위 개념이 되어버린 이 말랑말랑해진 세상에 ‘리비에르’와 같은 사람들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독선과 불합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사랑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르는데…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이 매우 사실적인 소설이라면, ‘남방 우편기’는 매우 감성적인 소설이다. ‘야간 비행’에서 생 텍쥐페리의 의무감 혹은 책임감을 읽을 수 있다면, ‘남방 우편기’에서는 상처 받은 한 인간으로서의 생 텍쥐페리를 읽을 수 있다. ‘베르니스’라는 조종사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 ‘주느비에브’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게는 지상의 사랑으로 상처 받은 한 조종사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창공을 꿈꾸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주느비에브; ‘그녀는 가장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벽에 회칠을 한 감방에서의 생활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위신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잣집 딸로서의 품위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생각이지만 자신의 정직한 품성이 손상되는 것 같았다.’ 베르니스; ‘그녀가 물욕이 대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 때문에 괴로워하고, 물건 때문에 상처받고, 아이처럼 물건 때문에 울면서 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가 이처럼 가난하더라도 그녀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배고프지 않다는 이 아이 앞에서는 그는 초라하게 무릎을 꿇을 뿐이었다.’ 그녀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그는 초라해질 따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사랑도 부(富)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퇴락할 대로 퇴락한 지금의 사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떠난다. 그녀 곁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서. 상처 받은 가슴을 치유하기 위해.
언어도 우리 인류가 보증해 주는 명분을 차츰차츰 상실해 '애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아주 무거운 말들도 우리 마음속에서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하는 '창공'을 향해서...
(BOOK : 2010-044-00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