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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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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래드클리프 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 자신이 평생 여성만을 사랑했고 남성으로 살길 소망했다. 그래서 그토록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스티븐이라는 한 여성의 정체성 찾기와 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큰 축을 이룬다.   모턴의 고든 가에서 필립 경과 애너 고든 부인은 결혼 후 십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바라며 아이가 태어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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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래드클리프 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 자신이 평생 여성만을 사랑했고 남성으로 살길 소망했다.

그래서 그토록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스티븐이라는 한 여성의 정체성 찾기와 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큰 축을 이룬다.

 

모턴의 고든 가에서 필립 경과 애너 고든 부인은 결혼 후 십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바라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의 이름을 스티븐이라고 지어놓았다

크리스마스 전날 애너는 딸을 낳았다엉덩이는 좁고 어깨는 널찍한 올챙이 모양의 아이,스티븐 고든은 그렇게 태어났다.

 

스티븐은 여느 여자 아이들과는 달랐다늘 남자 옷을 입고 사내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로 하루를 보냈다애너는 남편을 꼭 닮은 스티븐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스티븐은 그럴수록 아버지 필립 경에게 의지했다필립 경은 그녀에게 아버지이자 친구였으며 신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일곱 살의 스티븐은 하녀 콜린스를 사랑하게 되었다바닥을 걸레질하느라 무릎에 물이 찬 콜린스 대신 자신이 아프게 해달라며 열심히 기도를 했다콜린스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으며 그녀의 삶은 콜린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콜린스는 그런 스티븐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점차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으로 스티븐의 사랑을 이해했다. 어느 날 새로 온 풋맨 헨리와 콜린스가 격렬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에 찬 스티븐은 헨리의 얼굴로 깨진 화분 조각을 던지고 도망친다. 필립 경은 스티븐이 무척 상심한 걸 보며 헨리와 콜린스를 해고한다.

 

그 일을 계기로 필립 경과 애너 부인 그리고 스티븐 세 사람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

필립 경은 스티븐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애너부인은 스티븐과 필립 경 사이의 공감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스티븐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애너 부인은 스티븐에게 늘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지만 스티븐에게 여자아이 옷이란 대체로 짜증나는 존재였다. 그녀의 길고 숱 많은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스티븐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여덟 살이 되는 크리스마스 전날 필립 경은 스티븐에게 튼튼한 적갈색 조랑말을 선물했다. 스티븐은 그 말을 콜린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콜린스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스티븐에게 또래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웃에 사는 안트림 가의 바이올렛 안트림과 그녀의 오빠 로저 안트림은 스티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존재였다. 여자 아이의 전형을 보여주는 바이올렛과는 도통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로저의 비열한 장난질은 스티븐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로저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으며 그를 경멸했다. 로저에게 스티븐은 남자처럼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며 힘이 센 이상한 여자애일 뿐이었다. 말을 탈 때 안장을 바로 앉는 것 또한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스티븐은 말을 멋지게 탈 줄 알았으며 아버지와 함께 여우 사냥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필립 경과 애너는 스티븐의 교육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애너는 스티븐이 좀 더 여자로서 받을 수 있는 교육을 원했지만 필립 경은 스티븐이 사내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길 원했다. 그래서 스티븐은 가정교사 뒤포 양에게 불어를 배울 수 있었다.

스티븐은 펜싱에도 소질이 있었다. 그녀는 승마처럼 펜싱도 멋지게 해냈다.

필립 경은 승마를 하는 스티븐을 위해 아일랜드에서 순종 헌터를 구입한다. 스티븐은 그 잿빛 말에 첫 눈에 반해 래프터리라는 시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들은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래프터리는 다섯 살이었고 스티븐은 열두 살이었다.

 

스티븐이 열네 살이 되자 뒤포 양은 프랑스로 떠났고 그 자리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푸들턴 양이 대신하게 되었다. 필립 경은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마사를 감독하던 윌리엄스 영감과 자동차를 모는 버턴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티븐 또한 자동차에 푹 빠져있었지만 래프터리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푸들턴 양은 자기 주장이 확실했으며 스티븐이 문장에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스티븐은 글쓰기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푸들턴 양의 현명함과 자상함에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푸들턴 양은 고든 가의 집안일도 돌봐주었으며 다른 아이들과 다른 스티븐을 많이 사랑했다.

 

열일곱 살인 스티븐 역시 사교계에 데뷔했지만 자신을 변종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더더욱 의지했으며 그즈음 필립 경과 그녀는 책에 탐닉하고 있었다. 부녀는 책에 대해서 논하고 학식을 나누는데 큰 기쁨을 느꼈지만 애너부인은 그 둘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것을 스티븐의 탓으로 돌렸다.

부모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스티븐은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을 느꼈지만 부모의 사랑을 온전하게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가엾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라는 큰 짐을 짊어진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열여덟 살인 스티븐은 로저의 소개로 마틴 할램을 만나게 된다. 키가 크고 바짝 마른, 약간 구부정한 마틴은 나무를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모턴의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승마와 펜싱, 문학을 사랑하는 스티븐에게 호감을 느꼈다. 둘은 자연스레 친해졌고 사냥을 함께 다녔다. 애너와 푸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이 둘의 만남을 반겼다. 그건 스티븐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같아 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로저가 스티븐에게 청혼하면서 깨지고 만다. 스티븐은 뭔지 모를 공포감 때문에 도망쳐버렸고 마틴은 그렇게 스티븐을 떠나버렸다.

 

그 충격은 스티븐에게도 엄청났다. 그녀는 필립 경에게 자신이 그렇게 이상한 존재는 아닐까 묻게 된다. 필립 경은 스티븐은 이상하지 않으며 여자가 꼭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스티븐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아이라는 진실 말이다. 스티븐은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코 자신이 여성이라고 자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아이였고 성장해서는 남들이 자신을 보는 눈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2월의 어느 날 필립 경은 눈 덮인 삼목을 구하려다 나무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스티븐을 찾아 용서의 눈길을 보낸다. 죽어가면서 애너에게 스티븐의 진실을 털어놓으려 하지만 그는 끝내 눈을 감는다.

 

아버지가 죽고 난후 스티븐은 더 이상 여우 사냥을 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 의기소침해져서 움츠러들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못해 참가한 여우 사냥에서 상처입고 숨을 곳을 찾아 헤매는 여우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 여우와 자신을 동일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븐은 스물 한 살이 되었고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엔젤라 크로스비의 애견 토니를 구해주는 일이 생긴다.

엔젤라 크로스비는 미국에서 온 여자로 최근에 이사를 왔다. 남편의 끝없는 의심으로 고통받던 엔젤라에게 스티븐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반가운 상대였다.

그해 여름 스티븐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엔젤라에게 푹 빠져 그녀에게 이용만 당하면서도 스티븐은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결국 엔젤라가 로저와의 불륜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의 남편에게 스티븐의 편지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랑은 끝났지만 말이다.

엔젤라의 남편 랠프는 애너에게 편지들을 보냈고 다시는 자신들 근처에 스티븐의 접근을 막아달라고 청했다. 애너는 격노하여 스티븐을 모턴의 저택에서 쫓아내고 만다.

그렇게 가슴아픈 첫 사랑은 스티븐에게 고통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그녀는 푸들턴 양과 함께 모턴 저택을 떠난다.



l*******e 2010.11.12. 신고 공감 2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고독의 우물, 그 상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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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기도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레즈비언 같은 것은 들어오지 않고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얼마나 고독하게 살아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절감하게 되는 소설이다. 아직도 동성애가 태어날 때 부터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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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기도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레즈비언 같은 것은 들어오지 않고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얼마나 고독하게 살아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절감하게 되는 소설이다.

 아직도 동성애가 태어날 때 부터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레드클리프 홀 당시에는 동성애라는 것이 이미 태어날 때 부터 결정되는 것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이 이미 태어났을 때 부터 자신이 신체적 성별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걸 보면... 

 아무튼, 아버지가 워낙 아들을 원했기 때문에 미리 지어놓았던 그 이름을 여자인 걸 알면서도 그대로 붙여준 '스티븐'이란 이름은 사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여자면서도 남자의 이름을 가진 스티븐은 그 이름 그대로 자신을 여자라기 보다는 남자로 여기고 육체적으로도 보통의 여자들 보다는 훨씬 더 남자쪽에 가깝게 자라난다.

 부모라서 그런지 아버지는 이러한 스티븐의 성적 정체성을 일찍 알아차리고 그녀가 최대한 그것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하지만 같은 예감을 한 어머니는 그녀를 아버지 처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통은 어머니가 자식을 감싸주고 물리치는 것은 아버지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반대인데, 그것은 레드클리프 홀이 가진 여성에 대한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 스티븐의 정신적 스승인 푸들과 동성애자 여성들은 제외하고 - 그리 좋은 쪽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븐의 엄마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스티븐을 그저 밀쳐내려고만 하듯이,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자마자 적극적으로 밀쳐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들이다. 그것은 스티븐이 애정을 바치는 여성들 역시 그러하다. 마지막 연인인 메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필요할때만 가까이하고 다른 애정의 대상이 나타나거나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 것 같으면 매정하게 스티븐을 버린다.
 반면에 남성들은 그녀의 아버지 필립경의 묘사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러한 그녀를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쨌든 적어도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밀쳐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의 바램이 투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스티븐은 그야말로 레드클리프 홀의 분신이니까. 스티븐이 자신을 철저하게 남자로 여겼듯이 레드클리프 홀도 자신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신체적 성징은 남자라고 여기는 자신에게 언제나 좌절을 주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어쩌면 더더욱 남성성을 이상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소설 '고독의 우물'은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 태생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렇게 생래적으로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스티븐의 길고도 쓰라린 고독의 여정을 그린다. 그래서 표지의 저멀리 이어지는 길을 앞에 둔 여인의 그림은 그야말로 이 소설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약간 우울해 보이는 표지 그림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그리 밝지못하다. 아니 오히려 걸으면 걸을수록 더 힘들고 더 비통한 여정이다. 

 그녀는 단지 여자가 되어 여자를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녀 자신 가장 사랑하고 언제나 머물기를 꿈꾸는 고향 '모튼'을 떠나게 되고... 영국마저 떠나 머나 먼 파리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게된다. 그러다 전쟁이 터지고 그녀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진정 사랑해주는 연인 메리를 만나고 작가로서 성공도 하지만 결국 아무리 그녀가 성공한 작가라 하더라도 동성애자임이 밝혀지자 사회는 그녀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차디차게 닫아버리고 그녀의 연인 메리 역시도 마찬가지로 배척된다. 자신도 그렇지만 보통 여자라면 사랑만으로 행복했을 텐데 그러나 메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단지 그 대상이 스티븐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토록 쓰디 쓴 고통을 맛보고 있으니... 그런 메리의 불행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스티븐은 메리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보통의 삶이 가져다줄 수 있는 행복을 주기 위하여 스스로 메리를 포기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두 권에 이르는 그녀의 여정은 계속 상처받고 배척되고 포기하는 여정이다.
그야말로 고독의 우물을 파내려가는 여정... 우물을 파면 팔 수록 더 깊은 어둠에 잠기듯이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이제 스티븐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후의 보루라 할만한 메리를 그렇게 떠나보낸 다음, 바로 그녀는 절규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주위에 무언가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들은 어떤 유령 같은 존재들이었고 그리고 그 유령들은 스티븐이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스티븐과 같은 사회에서 배척당한 동성애자들... 그들은 입을 모아 스티븐을 부르고 이렇게 호소한다. 

 "스티븐! 스티븐!... 당신의 주님께 말해다오. 왜 주님께서 우리를 저버렸냐고 물어봐다오...' 

 그들은 스티븐과 같은 이유로 사회에서 배쳑되어 존재가 지워져 유령이 되어버린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스티븐도 그렇게 유령이 될 것이다. 결국 스티븐은 그들과 공동 운명임을 예감한다. 그래서 그들의 호소와 자신의 원망까지 겹쳐 신에게 부르짖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태어난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니까... 그렇게 결정한 신의 탓이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그렇게 멋대로 결정을 해 놓고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크나큰 고통을 받게 하다니 스티븐과 그 유령들은 도대체 왜 자신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었냐고 고통만들 주시려고 만들었냐고 항변한다. 

 언제나 신에 대한 호소는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다. 이것은 결국 낭떠러지로 내몰린 자의 절규와도 같다. 절대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에서 나온 절규...
 따라서 그녀는,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신에게 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면 매달릴 것은 오직 신 밖에 없으니까...
 그녀 자신 언젠가 신을 원망하는데 왜 신을 믿느냐고 물었던 마틴에게도 말했듯이... 

 
신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신이라도 있으니까 이 작은 용기라도 내어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 그녀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녀와 같은 존재들을 위하여 간청의 기도를 올린다.

"우리를 인정하소서. 오, 주여. 세상 모두 앞에서 우리를 인정해 주소서. 우리에게 존재할 권리를 부여해 주소서..." 

  그 기도는 오래도록 여운이 되어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솔직히 그 기도는 신에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에게 호소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인정해 주도록 간청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사회가 인정하는 성적 정체성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토록 절절하게 고독과 고통을 겪는 영혼의 여정을 보고도 과연 이전과 똑같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레드클리프 홀의 문장은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아리게 당하는 자의 고통을 새겨놓는다. 때때로 나타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통찰은 레드클리프 홀이 얼마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지고 있는지 알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내면 마저 아주 깊숙이 투영시키고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그녀가 받는 아픔에 대해 어느새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괴물로 규정되어 사회로 부터 배척받은 한 영혼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투명하고도 진정한 호소에... 

 나는 레드클리프 홀이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참 옳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레드클리프 홀 같은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나만의 시각이 아니라 바로 사회가 은연중에 주입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본래적으로 괴물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에게 괴물이란 외피를 둘러쓰게 만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아닌 사회의 눈으로 동성애자들을 본다. 사회가 가공하고 왜곡한 그 눈으로 말이다. 

 우리는 사회가 제공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단 한번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채 사회의 규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 뿐이다. 따라서 이 소설 처럼 진실한 영혼의 내면이 절절이 담긴 고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그 영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서 배쳑당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직접 들여다보고 사회가 부여한 시각이 아닌 나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아마도 그렇게 자신만의 눈으로 본다면 그들의 모습은 더이상 괴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역시 그랬다. 내가 여기서 보게 된 것은 오로지 그저 보통의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만이 전부인 이웃일 뿐이었다.



l****1 2015.02.26.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내용보기
난 신이 이마에 표시를 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카인처럼 오점과 표시를 가진 존재다. 네가 내게 온다면, 세상은 널 혐오할 거다. 넌 박해받을 것이고, 널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음을 넘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고독의 우물2≫ p.165   자신을 카인의 후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혹은 날 때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내용보기

난 신이 이마에 표시를 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카인처럼 오점과 표시를 가진 존재다. 네가 내게 온다면, 세상은 널 혐오할 거다. 넌 박해받을 것이고, 널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음을 넘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고독의 우물2≫ p.165

 

자신을 카인의 후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혹은 날 때부터 자기 이마에 새겨진 카인의 낙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래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그런 낙인의 고통을 한껏 짊어진 인물, 스티븐 고든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아내와 호감 가는 사내인 남편, 이상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무척이나 고대했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리던 '스티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갖는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스티븐은 어깨가 넓고 엉덩이는 좁으며 강인한 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는데 다리를 벌려 말에 타고 펜싱을 배우며 자신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항상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 타인이 선이라고 규정하는 생활양식과 전혀 다른 것을 원하는 자신의 존재에 비애를 느끼면서도 그녀는 '온전한 스스로'의 모습을 포기할 수 없었고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완전한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살아갈 수 없었던 스티븐은 자기 정체성에 죄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카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시선은 낙인이 되어 전쟁으로 생긴 뺨의 상처만큼이나 그녀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마음껏 사랑할 자격조차 박탈당한 인물의 이야기인 것이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책의 핵심 소재이자 이 책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는(것 같은) 단어 ‘여성 동성애'

나는 이 설명을 전면적으로 까진 아니어도 일단 부정하고 싶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라는 것은 ≪고독의 우물≫이 출간된 1920년대에나 적합한 말이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함 = 이성애자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거나 여자를 좋아함,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거나 남자를 좋아함 = 동성애자

 

와 같이 지극히 단순하고 부정확한 구분은 성소수자의 개념이 세분화된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의 단어가 편리하게도 이 시대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편리함을 한껏 이용해 명확하게 짚어보자면 스티븐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인 셈이다. 그녀 혹은 그는 언제나 남성이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육체가 가지지 못한 남성성을 흠모하였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연인에게는 여성 대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남성으로 상정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전통적인 남녀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금서가 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작품 때문에 재판에 회부된 래드클리프는 이 책이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 윤리를 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성적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정체성의 문제를 화두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서 처분

 

'이게 당시 금서였다며?' 라고 흥미진진하게 책을 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혀 야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정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지나치게 계몽적인 단락들이 나오긴 해도) ​영화를 보는 듯 세심한 배경 표현, 75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몰입도, 금세 인물에게 감정이입 되는 밀도 있는 심리묘사가 들어차 있을 뿐이다. 단지 영문학에서 최초로 여성 동성애(혹은 그와 비슷한 것)를 전면적으로 다루었고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인데다가 '성도착증'이 '전염‘될 만큼 잘 썼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된 것 같다.

 

작가와 작중인물의 관계

 

≪고독의 우물≫을 읽다보면 자꾸 책날개를 들춰보고 싶을 만큼 작가인 래드클리프 홀이 연상된다. 작가, 짧은 머리에 넥타이, 부유한 집안 출신, 거금의 상속, 애연가, 동성의 연인. 이렇게 주인공 스티븐과 작가인 홀의 공통점이 너무 많아서 스티븐을 통해 작가를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슬쩍슬쩍 작가와 비교하며 즐거운 오류를 범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작가 자신을 모델로 쓴 자전적 소설이라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향한 스티븐의 절규, 거부되는 사랑, 부서지는 우정.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책을 읽고 있는 것뿐인데도 무척이나 괴로웠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아이처럼 해피엔딩을 꿈꾸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주인공이 진정으로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마지막엔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몇 번이나 마지막 장을 들춰보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읽어냈고 결국 예감은 적중했다. 그렇게 홀은 내 얼굴에 황량한 바람을 뿌려놓고 책을 끝맺었다.

책을 덮고 나서 스페인의 곡조를 상상하며 가사를 따라 불러본다.

 

​아아아 야! 그대를 보기 전에 내 마음은 평화로웠다네

그러나 이제 난 고통스럽다오. 내가 그대를 보았으므로

 

 

작성자: 모글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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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2015.09.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깊이를 잴 수 없는 그녀의 고독 속을 거닐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그녀의 고독 속을 거닐다." 내용보기
무엇이 남았는가? 고독 혹은 그보다 훨씬 최악의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영혼을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원히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삶이자,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생략이라는 거짓을 말해야 하는 삶이며 사리 분별에 따라 언제나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세상의 불의와 공모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pp.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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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았는가?

고독 혹은 그보다 훨씬 최악의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영혼을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원히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삶이자,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생략이라는 거짓을 말해야 하는 삶이며

사리 분별에 따라 언제나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세상의 불의와

공모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pp. 68-69

 

 

스티븐이 매몰차게 메리를 내쳤을 때

 등불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제이미의 손길이 너무 침착해 보였다는 스티븐의 느낌이 떠올랐다.

모든 감정에서 초연한 듯 너무나 냉정한 스티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제이미와 바바라의 죽음 사건이 스티븐과 메리의 결말을 암시했던것 같다.

 메리를 떠나 보내더라도, 스티븐만은  자신의 존재방식에 홀로 맞서기를, 나는 내심 고대했었다.

제이미와 똑같은 결심을 한 스티븐도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니,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다.

 

 

 

"날 찾아오고 싶을 때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내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난 언제나 여기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점만은 기억해 둬요.

세계가 생각만큼 그렇게 칠흙 같은 어둠은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p. 349.

 

 

 

스티븐은 발레리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발레리나 마틴의 예상처럼 스티븐은 '그들'의 존재방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스티븐은

사회가 나서서 파 놓지는 못했던,

자신이 직접 판 그 고독의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채

스스로 침잠해 버렸다.

 

 

 

세상은 강력한 자기만족과 더불어, 독선적인 행동 지침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자들은 으스대고 뻐기면서

제멋대로 규칙을 깨고 그녀와 같은 자들을 짓밟고자 했다.

(…)그들은 때때로 지독한 짓을 저질렀다.

탐욕스러운 짐승들처럼.

아무리 추악한 죄를 저질러도 그들은 정상이었다!

p.87

 

  신이 이마에 표시를 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카인처럼 오점과 표시를 가진 존재다.

네가 내게 온다면, 세상은 널 혐오할 거다.

넌 박해 받을 것이고, 널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음을 넘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p.165.

 

 

그녀의 우물 안에는 기쁨의 순간들이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우정과 깊은 교감이 반짝이고 있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일렁이고,

시린 첫사랑의 순간들,

광기와 같이 사랑을 쏟아 부었던 시절이 녹아 있으며,

고난을 함께 이기며 키워나간 애절한 연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그리움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동시에 그 물은, 처음으로 느낀 사랑과 맹목적인 사랑이 남긴 좌절과 고통을 지나

 혈육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흐르면서 깊고도 검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겪는 소외와 고립 속에서

함께 무기력하게 흐르다가 그녀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그 흐름을 멈추었다.

깊은 땅 속에 있는 물의 표면에 닿는 빛은 미미했다.

그 빛이 아무리 밝더라도 어둠 속에 가라앉은 물은 훨씬 깊었나 보다.

 

울프의올랜도와 포스터의모리스에 비해 너무나 불행하고 안타까운 끝맺음이다.

e********h 2010.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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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꿈꾼 한 여인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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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테이레시아스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특이하게도 남자였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여성으로 변해 한동안 여성으로 살다가(심지어 아이까지 낳고!) 다시 그 계기로 남성으로 변한 사람이었다. 제우스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경험한 그에서 어느 때가 더 행복했냐고 묻자 그는 여성일 때가 아홉 배는 더 행복했다고 말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고독의 우물>은 여자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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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테이레시아스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특이하게도 남자였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여성으로 변해 한동안 여성으로 살다가(심지어 아이까지 낳고!) 다시 그 계기로 남성으로 변한 사람이었다. 제우스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경험한 그에서 어느 때가 더 행복했냐고 묻자 그는 여성일 때가 아홉 배는 더 행복했다고 말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고독의 우물>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여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테이레시아스의 말과는 달리 그녀는 '여성으로써의 삶'에서는 도무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을 남성으로 위장한 채 남자로 살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평생동안 '남장을 한 여자'라는 꼬리표를 단 채 뭇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 속에서 지독한 고독을 맛보면 살게 된다.


모턴 힐의 고던 가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스티븐. 분명 여아였지만 남자아이이기를 고대하던 부모의 바람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평생을 남자와 같은 삶을 살 거라는 운명도 함께 아로새겨졌다. 아이는 그렇게 '남자로 되어라' 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한껏 받으면서 남다르게 자랐다. 아이의 아버지인 필립 경은 자신의 아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일찍이 눈치 챘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덮어두었고 그것으로 인해 아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반면에 스티븐의 어머니인 애너는 자신의 아이가 지닌 특별한 모습에 많이 당황했으며 모정을 베푸는 데 주저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와 딸'의 애뜻한 관계는 전혀 형성되지 못했다.


스티븐이 남성의 모습으로, 남성을 추구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필립 경은 끝까지 지켜줘야 할 자신의 소중한 딸을 남기고 세상을 뜨고 만다. 필립 경의 죽음은 스티븐과 애너의 관계를 더욱 소원하게 만들었고,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강이 생겨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에게 폭풍과 같은 사랑이 찾아오게 된다. 안젤라 크로스비라는 여인은 단박에 스티븐을 사로잡았고 그를 애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부녀였으며 품행이 단정치 못했다. 그녀를 향한 스티븐의 사랑이 절정에 이를 무렵 그녀는 스티븐을 떼어놓기 위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치고 이 모든 전황을 마침내 애너가 알게 된다. 자신의 딸이 벌인 이 기묘한 애정행각이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 전에 애너는 스티븐에게 집을 떠나줄 것을 당부하고 스티븐은 이를 받아들인다.


집을 떠난 스티븐은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고 작품쓰기에 몰두한다. 패배감을 안겨준 사랑, 자신을 거부하는 어머니,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자 창작에 열을 올린다. 다행히도 그렇게 만들어진 첫 소설이 좋은 반응을 얻고 명성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도 얻게 된다. 그리고 한 친구의 제안에 따라 파리라는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스티븐이 파리에 어느 정도 적응할 때쯤에 때 갑자기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남자들이 전쟁터로 향했다. 스티븐 역시 자신 안에 있는 남성성의 지시로 부대에 지원을 하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응급차 운전수로 활약한다. 그리고 모든 운명적인 만남이 그렇듯 생사를 넘나드는 이 지옥 같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총소리와 병자들의 울부짖음을 잊게 만드는 소중한 인연이 찾아온다.


메리라는 이름의 그 여자아이는 부대에서 만난 스티븐을 전적으로 따르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맡은 임무를 다한다. 전쟁이 끝나고 갈 곳 없던 메리는 스티븐에게 각별한 정을 느껴 그녀를 따라오게 된다. 곧 메리는 스티븐에게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스티븐은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이 어린 아가씨 때문에 큰 번민에 빠졌으며 초조함에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스티븐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어린 연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둘은 사랑에 충만한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하나씩 천천히 찾아왔다. 스티븐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절히 해결해 나갔지만 자신의 기형적인 사랑으로 만든 성 안에 메리를 가둬두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했고, 특별한 사교모임에서 사귄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둘의 관계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메리를 향한 사랑이 커질수록 같이 커지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 힘겨워하다 끝내 스티븐은 발레리의 표현대로 '순교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성성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 스티븐은 자신의 의지를 꺾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모든 사랑을 포기한 채 지독한 고독의 심연을 맛봐야 하는 그녀에게 삶은 고통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당대의 편견과 홀로 맞서야 했던 그녀의 인생은 항상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봐야했던, 가장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야 했던, 육식동물에 쫓기는 초식동물의 삶 그 자체였다. 게다가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자신을 더 큰 고통으로 나락 속으로 몬 어머니와의 반목은 그녀의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의 깊이를 잘 말해준다. 스티븐의 절규와 같은 기도로 마무리되는 <고독의 우물>은 평범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빼면 과연 인간에게 무엇이 남나?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가지, 모든 고독의 우물에는 사랑이란 감정이 밑바닥에 침전해 있다는 사실, 우리는 이 사랑을 수면 위로 떠올리기 위해 부단히 아낌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l****i 2008.10.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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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깊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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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윤곽은 펭귄 시리즈를 따라간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큰 키와 흐린 하늘과 어깨를 드러낸 그녀의 뒷모습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스티븐일까? 아니면 그녀가 사랑한 여자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일까? 2권까지 읽게 되면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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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윤곽은 펭귄 시리즈를 따라간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큰 키와 흐린 하늘과 어깨를 드러낸 그녀의 뒷모습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스티븐일까? 아니면 그녀가 사랑한 여자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일까? 2권까지 읽게 되면 알게 될까?


한 여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남달랐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를 사랑하는 것이야 아이들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 애니와의 거리감은 그 명확한 실체를 알지 못하는 두 사람에겐 이질감을 남겨두고, 평생 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것은 그녀의 성 정체성을 빨리 깨달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 깊고 넓어진다.


귀족인 그녀의 부모는 아들을 원했다.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딸도 보통의 딸이 아니다. 딸의 몸속에 아들을 담고 있다. 잘못 들어온 그 영혼은 방황을 한다. 지금도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결코 좋지 않은데 19세기 말이면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아버지가 그 사실을 숨긴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여자로 키우겠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도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의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면 딸의 몸속에 깃든 아들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는 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느낀 불안감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성장하는데 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방황은 아프고 외롭고 깊다. 자신이 일반적인 여성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세상에 자신과도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 그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이때 안젤라의 배신으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처럼 보인다. 다음 권에서 분명 그녀와 비슷한 성 정체성을 가진 푸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순순하게 문을 열어주고 관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 그녀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다름에 대해 묻었을 때 그 해답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녀는 안젤라와의 필연적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아마도 좀더 자신을 가지거나 현명하게 대처했을 테지만 그 마을을 떠나지 않는 한 변화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하느님이 표시한 카인으로 자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동성애자처럼 은밀하고 자제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좀더 잘 숨기고 살지 않았을까? 이런 무의미한 가정들은 하는 이유는 그녀의 삶에서 느껴지는 고독의 깊이 때문이다. 딸의 성 정체성을 알았을 때 드러나는 부모의 각각 다른 반응 때문이다.

f***2 2008.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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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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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과거의 고독은 새롭게 맞이한 영혼의 고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외로움이 몰려와 그녀를 온통 휩쓸었다. 그녀는 이해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엄청난 욕구, 원치 않는 존재의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고 싶은 엄청난 욕망에 휩싸였다. 주변의 모든 것은 잿빛이고 무너져 내린 폐허였다. 오늘 새벽, 드디어 고독의 우물2권까지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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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과거의 고독은 새롭게 맞이한 영혼의 고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외로움이 몰려와 그녀를 온통 휩쓸었다. 그녀는 이해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엄청난 욕구, 원치 않는 존재의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고 싶은 엄청난 욕망에 휩싸였다. 주변의 모든 것은 잿빛이고 무너져 내린 폐허였다.

오늘 새벽, 드디어 고독의 우물2권까지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전부 독서노트에 옮겨적었습니다. 
다 적고 나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드네요. 굉장히 오랫동안 적기도 했고...
 새삼 앞에 보니 고독의 우물은 밑줄 그은게 정말 많아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펭귄클래식으로 처음 읽은 책이기도 하고 굉장히 오래 읽기도 해서 왠지 모르게 다 읽고 나니 아쉬웠던 기억도 납니다.

 

 늘 고독했던 스티븐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그 속에서 심도있게 인간(자신)에 대해 고찰해나가며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인상깊었습니다. 
 읽으면서 느낀 건, 고독이라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 책은 동성애라는 이름하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엄청난 고독을 메인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고독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사물 하나하나에서까지 고독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사회의 굴레에 얽매여서 무척이나 압박받고 있구나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고독이라는 것은 역시 스스로가 고독하다고 '의식'할때야 비로소 알게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무엇이든지 의식하는 순간 진행되고 나아가고 그러는게 아닐까요.

 

  또 스티븐의 고독은 늘 외로움이나 슬픔과 닮아있어서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고독의 이미지를 또 한번 제차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늘 고독은 스스로가 홀로임을 즐기는 감정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게 슬픈 감정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스티븐을 보면 고독함을 즐기다가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며 외로움에 사무쳐 슬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키며 더욱 더 그 고독과 닮은 슬픔에 빠져들어가더군요. 
 상대방을 통해, 글을 쓰며 위안을 삼으려고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의 감정. 
 이상하게 본 책의 결말이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건 어째서 일까요.

 

  읽을 때 힘들었던 건 배경묘사를 해도 머릿속에 좀처럼 잘 그려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무 이름 말해도 뭔지 모르기에 네이버 백과사전에 한번씩 검색해봤던 기억도 나네요. 
 당대 가치관이나 생활습관 등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쪽은 잘 몰라서 그저 신선하고 가끔은 이해도 안 되고 그랬지만 읽는 내내 푹 빠져서 재밌게 읽었답니다. 앞으로 펭귄 책들 읽어나가면 영국에 대한 인식을 더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살포시 가지며. 

YES마니아 : 플래티넘 j*****9 2010.1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