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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하늘에서는 여전히 안개가 부슬부슬 처량하게 떠다녔고, 대기에서도 축축한 기운과 연기 냄새가 묻어났다.
<무도회가 끝난 뒤>
<위조 쿠폰> http://cafe.naver.com/penguinclassics/2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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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23)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
톨스토이의 인생 단편이라고 하는 작품 네 편이 실려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따뜻한 인간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두 편은 <벌목>과 <폴리쿠시카>, 톨스토이 최고 걸작의 반열에 올라간 작품이라고 하는 <무도회가 끝난 뒤> 그리고 가장 긴 중편에 속하는 <위조 쿠폰>
네 작품 다 좋았다. 그 중에서 특별히 내게 큰 감동을 준 작품은 <폴리쿠시카>다. 책은 뒷표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고
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 버릴 수도 있지요.
맞는 말이다. 삶은 우리가 주체가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시시각각 튀어나온다.
나는 오늘 아침 아내와 논의 끝에 급작스럽게 결정을 하고 신경외과에 가서 뇌혈류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어제 저녁, 아니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날 때까지 나는 내가 아침에 병원에 가서 그런 검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예측하지 못했다. 인생은 그렇게 갑자기 무언가가 끼어든다. 그 끼어드는 변수가 내 삶을 망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런 변수는 현재라는 시간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미래에 가서 과거라는 프리즘으로 보면, 어떤 운명이나 소명이 되기도 한다. 정작 주인공만 모르고 있는 인생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매우 경건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신에 대한 찬미와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서 있다.
그런 그가 써내려간 인생의 우연한 사건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자신을 이끌어가는지 그는 담담하게 펼친다. 전쟁을 소재로 했다는 <벌목>은 그런 심리적 묘사가 아주 탁월하다. 나도 군에서 산에 올라가 잔디를 떼오는 노동을 해본 적이 있기에 벌목을 하러 산에 올라간 군인들의 이야기는 금방 적응이 되었다. 그때 산에 올라가 잠시 일을 하고,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고참들은 산 아래 민간인 집에 졸병을 보내 막거리를 사오게 하고 그런 일들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우리들은 휴전 상황에서의 군인이었지만, 전쟁의 위협은 없었고,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그런 호사를 누리다 오후 늦게 조금 일한 결과물을 들고 열심히 일한 것처럼 들고 내려왔다. 하루를 그렇게 떼웠다. 그래도 국방부 시간은 돌아갔으니까.
그런데 <벌목>을 하러 간 러시아 군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있었다. 그들은 전쟁 중에도 불을 떼기 위해 벌목을 해야 했고 정찰 나온 적군과 총알과 포신을 주고 받는 전투를 해야 했다. 그러다 한 병사가 죽었고, 그 병사의 죽음은 나로 표현되는 군인의 삶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기승전결이 없어 보이는 이 단편에서 동료 병사가 죽었지만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메꾸어지고, 여전히 순찰을 돌고, 보초를 서는 전쟁의 일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일깨워준다.
<폴리쿠시카>가 가장 강렬했던 이유는 그는 과거에 악했지만 이제는 선한 사람이 되었고, 그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맡은 일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밤중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깼고, 손으로 더듬어 봉투를 찾았다. 그때마다 봉투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내가, 사람들한테 멸시당하고 학대받던 이 폴리케이가 이렇게 큰돈을 지니고 가서 정확히 전달한다 이거야. 설사 영지 관리인이라도 나만큼 확실하게 전달하지는 못할 걸’이라고 생각하며 짜릿한 기쁨에 몸을 떨었다. (125쪽)
그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부주의함 때문에 자신의 모든 신뢰를 잃어버렸고, 그는 스스로 자신을 잃어버렸다. 사건의 주인공에게 닥쳤던 일은 우리들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생이 처참하게 파멸하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날 종일 포크롭스코예 마을에서 폴리케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야 폴리케이가 모자도 쓰지 않은 채 길을 따라 달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혹시 봉투 하나 보지 못했소?”라고 묻는 것을 이웃 농부들이 보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뿐이다. (239쪽)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운명을 허락한 신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나보다 설레었던 그의 아내는 한순간에 과부가 되어 버렸고 그녀의 삶도, 아이들의 삶도 한순간에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무도회가 끝난 뒤>는 톨스토이가 순식간에 써내려 간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멋진 작품이다. 그런데 내게는 <폴리쿠시카>의 여운이 너무 강했다.
<위조 쿠폰>은 선과 악의 흐름을 아주 강하게 소설 속에 녹여 놓은 작품이다. 톨스토이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선이 어떻게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알게 해 준다.
“죄수를 데려가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면 아무 문제 없네. 신앙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거든. 못 믿겠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좋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죄수가 됐죠?” 책임자가 빙그레 웃었다. “여섯 명이나 살해했지만 거룩한 사람이야. 내가 보증함세.” (342쪽)
(선한리뷰) 우리가 아는 세상에서는 여전히 악이 선을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는 여전히 선이 악을 선으로 바꾸고 있다.
나도 그 선에 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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