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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정치 사회적 흐름과 대비되게 프레데릭은 아르누 부인과 로자네트 사이를 오간다. 비단 이게 프레데릭만의 모습일까. 남북 정상 회담 때 대부분의 우리는 그저 일상을 살았다. 이 소설의 부르주아들도 노동자들의 분노는 아랑곳없이 경마장을 가며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있다. 역사적인 혁명의 날 그는 아르누 부인과 밀회를 나눌 생각만으로 하루 종일 거리를 오갔다. 이 일은 뒷날 그가 정치계로 뛰어들려고 할 때 약점으로 폭로되어 계획이 좌초된다. 아르누 부인 때문에 아르누를 험담한 자작과 죽음을 불사하는 결투도 한 이 어이없는 청년을 보며,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그래, 우리들은 청년 때 정말 이랬다. 괴상한 대의명분과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던 충동! 프레데릭이 영원히 함께 할 동지이자 친구로 여긴 데로리에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는 변변찮은 변호사이지만 사회주의적인 사상으로 유명해질 언론인으로서의 야망을 품고 쁘띠 브루주아인 프레데릭에게서 금전적 원조를 부탁하면서도 그를 늘 얕잡아봤다. 그의 사생활을 다 꾀고 있던 터라 그의 여인들도 호시탐탐 엿보다가 프레데릭을 사랑하는 부유한 로크 양을 꾀어내 결혼까지 했다. 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도 그들은 여전히 친구로 남았는데 그게 나는 참 이상하지 않았다. "보니까, 너도 정치에 있어 온건해진 것 같네?"
그는 이야기, 연애담을 꾸며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상세한 정황들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이 무척 불행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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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유일한 역사소설이란 설명이 눈길을 끈다. 거기에 더해 파리를 스케치한 풍자소설이란다.제목만 보면,딱 계몽(?)의 느낌인데 말이다.
우리 세대 사람들의 도덕의 역사를 쓰고 싶다…….
자신이 읽은 유일한 역사소설이라 극찬한 에밀 졸라의 말에 나 역시 동감 한다.때론 작품에 대한 유명인들의 코멘트가 낚시성 인 경우를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소설의 중심은 물론 프레데릭의 '사랑'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역사와 정치가 꼼꼼하게 설명된 탓에,가끔은 프레데릭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즘 되면 제목이 '감정 교육'이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해 진다. 복잡하지 않은 구성처럼 여겨진 탓에 '감정 교육'을 읽는 사이 사이 다른 책을 읽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프레데릭의 사랑과 감정 선에 어떤 교착점이 있을까 싶었던 거다.그렇다고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감정이란 것이 이런 식이다 라는 설명도 없었으니.그런데 정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인생에는 정답도 없고,답을 찾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바로 프레데릭의 흔들리는 감성선을 따라 가다 보면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간략하게 돌아 보았다. 사랑을 꿈꾸었던 이도,권력을 꿈꾸웠던 이도 둘 다 실패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곧장 직선으로 달리려 한 게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지."하고 프레데릭이 말했다. "네 경우는 그럴 수도 있어.하지만 난 그와 반대로 무엇보다 더 강력한 많은 부수적인 일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방향 수정을 많이 해서 그르친 거야. 난 너무 논리적이었고,넌 너무 감정적이었지." /473~474
매 순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울부짖는 프레데릭을 보면서,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감정이란 결국 요즘말로 '정서'와 같은 맥락은 아닐지...프레데릭이 지닌 기본 바탕에 안정적(?)인 정서가 있었다면,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손심에 상처 받는 일도 없었을 테고,때론 자존심이 극단으로 치달아 자만심으로 표출되지도 않았을 텐데...감정이 흐트러짐 속에 남는 것은 결국 탐욕과 권력만 있는 것일까? 소설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쏟아낸 감정 속엔 따뜻함이 별로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위로해 줄 무언가가 필요 했을 뿐...이런 점에서 진정한 감정 교육이 필요하다고 플로베르 선생은 생각한지 모르겠다.자신만을 알고,저마다의 욕심만을 챙기려 하는 것은 결국 감정 교육이 받지 않은 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덧붙임...좥 좦 등의 오타가 유난히 많이 발견 된 것이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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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 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사랑을 거절당한 ‘프레데릭’은 대놓고 ‘로자네트’와 대놓고 데이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로자네트’를 마음에 두고 있던 또 다른 지인인 ‘시지 자작’과 말다툼 끝에 ‘아르누 부인’이 언급된 것에 분개하여 결투를 벌이기까지 한다. ‘아르누’의 사업은 쇠퇴 일로를 거듭하고, ‘프레데릭’이 ‘아르누’에게 빌려준 돈 1만 4천 프랑은 저당권 설정을 갱신하지 않은 관계로 채권이 말소되기에 이르고 게다가 ‘프레데릭’이 매입해 두었던 주식 역시 폭락하여 백부로부터 상속 받은 유산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프레데릭’은 지출을 줄이거나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유리한 결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른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프레데릭’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는데 몰락한 귀족인 그의 어머니는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된 옆집 아가씨인 ‘루이즈’의 아버지의 재산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하인의 자식이었던 ‘루이즈’의 아버지인 ‘로크 영감’은 딸의 결혼을 통한 귀족 지위 획득을 위해 ‘프레데릭’과 ‘루이즈’의 결혼을 이미 기정 사실화 했있음을 알게 된다. ‘루이즈’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로크 영감’의 재산은 ‘프레데릭’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에 다시 구실을 만들어 고향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와 다시 ‘아르누 부인’을 만나게 되자 ‘프레데릭’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다른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그녀에게 좀 더 적극적인 구애를 하게 된다.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흔들린 ‘아르누 부인’은 ‘프레데릭’과 밀애를 시작하게 되고, 그녀와 단 둘이 데이트를 허락 받은 ‘프레데릭’은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길 요량으로 데이트 장소로 약속된 거리에 방을 얻기에 이른다. 그러나, 약속된 데이트 당일 ‘아르누 부인’은 갑작스레 아들이 아파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하게 되고, ‘프레데릭’은 약속 장소에서 한없이 그녀를 기다린다. ‘아르누 부인’은 아들이 죽다 살아나는 지경에 이르자 그것이 신의 심판이라 생각한 그녀는 ‘프레데릭’에 대한 사랑을 단념하고, ‘프레데릭’은 차가운 태도에 분노하여 그녀를 위해 마련한 방에서 ‘로자네트’와 관계를 갖는다. 그날은 프랑스의 2월 혁명이 시작된 날로 그날 이후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자본가이던 ‘당브뢰즈 백작’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에 위협을 느껴 ‘프레데릭’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프레데릭’은 ‘당브뢰즈 백작’의 도움을 발판 삼아 정계에 입적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혁명기의 세상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다. ‘로자네트’에게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하자, ‘프레데릭’은 사교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자 ‘당브뢰즈 부인’을 애인으로 두고자 마음 먹고 ‘당브뢰즈 부인’에게 접근하고, 오래지 않아 ‘프레데릭’과 그를 사교계에 데리고 다니던 ‘당브뢰즈 부인’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 둘의 관계가 공식화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브뢰즈 백작’이 사망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당브뢰즈 부인’과 ‘프레데릭’은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당브뢰즈 백작’은 자신의 유산 대부분을 ‘당브뢰즈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가진 자신의 딸에게 상속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당브뢰즈 부인’의 재산 역시 여전히 ‘프레데릭’의 입장에서는 큰 재산이기도 하고, 여전히 사교계에 손이 닿아 있는 ‘당브뢰즈 부인’이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던 ‘프레데릭’은 ‘당브뢰즈 부인’과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아르누’는 완전히 파산 상태가 되어 가족과 함께 파리를 떠나게 된다. ‘아르누 부인’은 이제 파리를 떠나 더 이상 ‘프레데릭’과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프레데릭’과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둔 사실혼 관계의 ‘로자네트’가 남아 있다. ‘당브뢰즈 부인’은 이미 ‘로자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프레데릭’과의 불륜을 덮어주던 ‘로자네트’의 존재를 묵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레데릭’과 결혼을 앞두고 ‘당브뢰즈 부인’은 ‘로자네트’를 떼어낼 필요가 있었으며, ‘아르누 부인’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자 그녀에게 돈을 빌린 ‘프레데릭’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당브뢰즈 부인’은 출세에 눈 먼 ‘프레데릭’의 친구 ‘데로리에’를 떠올리고, ‘프레데릭’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던 그의 친구 ‘데로리에’는 ‘당브뢰즈 부인’에게 ‘아르누 부인’이 배서한 ‘아르누’의 어음을 경매로 팔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명의로 그 어음을 사들여 소송을 걸어 채권을 회수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그 어음의 처리를 통해 ‘아르누’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경매에 부친다. ‘아르누 부인’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경매에 부쳐지는 것을 알게 된 ‘프레데릭’은 채권 문제로 ‘아르누’와 몇 차례 소송을 진행했던 ‘로자네트’의 짓으로 확신하고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하여 ‘당브뢰즈 부인’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가 싶었는데, ‘아르누 부인’과 ‘프레데릭’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경매를 통해 굳이 매입하려고 하던 ‘당브뢰즈 부인’에게 실망한 ‘프레데릭’은 파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해 준 고향의 아가씨 ‘루이즈’를 찾아 고향으로 떠나지만 그가 본 것은 교회 광장에 선 신혼부부, ‘루이즈’와 ‘데로리에’였다. 이후 ‘프레데릭’은 여행을 했고, 다시 사교계로 돌아와 또 다른 사랑들도 겪었으나 그에게 남은 것은 무기력함뿐이다. 그렇게 혼자서 늙어가던 그의 나이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인 1867년3월 말 ‘아르누 부인’이 홀로 그의 집에 찾아 온다. ‘아르누 부인’은 그녀의 사랑을 고백하고, 한 타래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에게 간직해 달라고 전하며 다시 떠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찌질한 청년의 순수한 사랑이 욕정에 휩싸였다가 또 다시 욕망으로 변질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랑만 덩그러니 남는다는 이런 스토리의 소설은 아마도 시대를 불문하고 쓰여지고 읽혀지는 소설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소재가 눈을 끌지도 않고, 특별한 감상이 남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술술 읽혀지는 것이 이런 소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데 장장 3주 정도가 걸린 것 같다. 프랑스 소설인 관계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생소하고, 등장하는 배경들의 지명이 생소한데다가 프랑스의 2월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시대적인 배경으로 등장하다 보니 당시의 생활상과 당시의 중요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다 보니 역사에는 젬병인 내 입장에서는 실제로 소설을 읽는 시간보다 역주를 찾아 읽기 위해 책장을 뒤적이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앞장의 내용들을 다시 확인하는데 들인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 서평을 다시 읽다 보니 다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이 책을 읽는데 왜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구절이다. “플로베르는 문체는 물론 자신이 관찰한 사회의 모든 디테일까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정확성으로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 집필하는 작가였다. 그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넘어선 신화적인 문장가였다.” ‘일반인들의 이해를 넘어선 신화적인 문장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잡지 않았으리라. 올 초에 고전이라고 읽었던 ‘돈키호테’를 잡고 그 고생을 했는데, 이 책 ‘감정 교육’을 잡고 그 고생을 똑같이 했다. 이래가지고야 앞으로 고전을 다시 읽어 보겠다는 마음이 생길까 싶다. (BOOK : 2015-058-01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