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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혁명, 실패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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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가난과 고통과 심연의 선함에 이끌려 힘들게 한 생을 살아온 이의 삶이 마무리 되었다. 그의 삶은 가엾고 어두웠지만 마지막은 밝았고 행복했다. 가장 사랑하던 이가 그의 마지막을 지켰기 때문이다. 깊은 한숨과 함께 벅찬 감동이 몰아쳤다. 폭풍 속 바닷가 절벽에 서서 휘몰아치고 부서지는 파도와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것 같았다. 깊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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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장을 덮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가난과 고통과 심연의 선함에 이끌려 힘들게 한 생을 살아온 이의 삶이 마무리 되었다. 그의 삶은 가엾고 어두웠지만 마지막은 밝았고 행복했다. 가장 사랑하던 이가 그의 마지막을 지켰기 때문이다. 깊은 한숨과 함께 벅찬 감동이 몰아쳤다. 폭풍 속 바닷가 절벽에 서서 휘몰아치고 부서지는 파도와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것 같았다. 깊은 한숨이 배어나왔다. 시계는 새벽 6시를 가까이 하고 있다. 감동의 열정으로 들뜬 가슴을 달래고자 베란다로 나섰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도심을 내려다본다. 깨어나는 도시의 분주함과 더불어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은 마치 그가 맞이한 죽음의 순간 그가 느낀 절대적인 행복감과 닮았다. 아니 어쩌면 그가 삶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절대적인 선이 내뿜는 광명 같았다. 한동안 레미제라블의 후유증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되었으리라. 새벽녘의 차가움도 벅찬 감동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레미제라블은 허상이다. 거짓말이다. 원전을 읽지 않고 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허구이고 환상이다. 그 실체가 없는. 영화나 뮤지컬 등을 통해 접했던 레미제라블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했다.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오만은 착각의 산물이다. 기구한 삶을 살다간 한사람의 인생을 그린 대 서사시가 막을 내렸다. 그의 죽음을 통해. 하지만 어쩌면 그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그의 삶을 완성했으므로. 사회의 모순과 정의, 개인적 양심 속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쟝발장의 기이한 삶은 죽음을 통해 완성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삶은 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를 더한 것이 진정한 삶이다. 그래서 삶은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죽음은 한사람의 지나온 행적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이며 최후의 심판관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양심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부속물의 절대명령에 순종한 그의 삶은 그래서 값있다. 그의 생은 값없었을지라도.

 

  안다고 생각하는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그릇되게 인식되는 것은 바로 쟈베르의 존재이다. 흔히 쟈베르와 쟝발장을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또한 그렇게 각색된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쟈베르 경감은 악이 아니다. 그 또한 하나의 선일뿐이다. 신념이라는 굴레에 갇힌 선, 그 신념과 원칙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서 올곧이 살아온 하나의 선이다. 혁명의 현장에서 쟝발장에 의해 구출된 쟈베르, 그 사건은 그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감성을 일깨운다. 바로 양심이라는 감성이다. 신념과 양심의 충돌, 범죄인들은 무조건 법의 심판을 받게끔 하는 것이 자신이 이 사회를 위하는 일이고, 그로 인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자신의 삶을 지배해온 평생의 신념을 흔든 것이 바로 그의 마음 속에서 들려온 양심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범죄인이라고 생각한 이로부터 생명을 빚지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잡으러오라고 주소를 알려주는 쟝발장의 행위는 그의 삶을 바치고 있던 주춧돌이었던 그의 신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 균열은 그가 평생을 지켜온 신념에서 벗어나 쟝발장을 구속하지 않고 풀어주게끔 만들었다. 쟈베르 경감은 이런 자신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다. 평생의 신념을 무너뜨린 자신의 행위를. 그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불만, 그리고 마음속 양심의 소리가 뿜어내는 끝없는 절규. 그걸 이기는 방법은 자신의 가슴 안에서 새로이 태동하는 양심의 소리를 잠재우는 일이다. 자신의 삶의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그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다. 양심의 소리를 잠재우는 것은 바로 그 양심을 담고 있는 자신을 죽이는 것. 신념에 반한 행동을 한 자신을 단죄하는 것 또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죽였다. 양심에 대한 반발로 인한 그의 직무유기, 그것을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양심을 허용한 신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스스로의 목숨을 강물에 던짐으로. 쟝발장과 쟈베르 경감은 생각하는 선의 개념이 서로 달랐다. 양심의 소리에 응답하는 삶을 산 쟝발장과 자신의 신념에 의해 행동했던 쟈베르의 삶은 같은 선이지만 길이 달랐다. 쟝발장은 자신을 길을 지켰다. 쟈베르 역시 자신의 길을 지켰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했지만. 쟝발장도 다르지 않다. 그 또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기에.

 

항상 인간에 내재하고, 진정한 양심으로서 거짓 양심에 저항하고, 불티가 커지지 않도록 방어하고, 태양을 기억하라고 햇살에게 명령하고, 진정한 절대와 허구적 절대가 대치할 경우 영혼에게 진정한 절대를 알아보라 재촉하는, 결코 패할 수 없는 인간성, 그 찬연한 현상, 우리의 내면적 경이로움들 중 아마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것을, 즉 신을.(228)

 

  혁명의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서 긴 하수도를 통과해 그를 살린 쟝발장. 코제트의 마음을 뺏어간 마리우스에게 한없는 질투를 느꼈지만 그가 사랑하는 코제트를 위해 쟝발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의 현장에서 마리우스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비밀이 붙인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행복한 결혼식. 쟝발장은 결혼 선물로 그가 가진 엄청난 재산을 코제트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결혼식 다음날, 행복감에 젖어있는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자신이 도형수였다는 사실을. 범죄자였다는 진실을. 쟝발장은 이미 죽은 이로 되어있고, 그의 원래 신분은 완전히 감쳐졌기에 그는 위장된 신분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행복한 신혼부부와 더불어 자신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었다. 행복한 삶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쟝발장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응답해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마리우스에게. 그로 인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코제트를 보지 못하는 고통 속에 빠진다. 코제트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이 고통이 되어 쟝발장은 죽음에 이른다. 그리움이 병이 되어 마지막 남은 삶의 의지를 부러뜨린 것이다. 그런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그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응답한다. 마치 쟈베르가 자신의 신념에 응답했던 것처럼. 쟝발장의 죽음에 순간, 모든 진실은 밝혀지고, 마리우스를 살려낸 이가 쟝발장이며, 그가 한때 마들렌느라는 이름으로 선행을 베푼 한 도시의 시장이었으며, 억울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재판정에서 진실을 고백한 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후회와 회한의 눈물을 머금고 쟝발장을 찾아왔지만, 이미 그는 그리움이 가슴속에 사무쳐 죽음에 이른다. 쟝발장은 그들의 품에서 죽음을 맞는다.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가장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그동안 레미제라블을 읽어가면서 언제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었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그의 행위는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 소리에 응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했다. 그래서 그는 행복했다. 그 육신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영혼의 소리에 응답한 그의 양심은 행복했다.

 

사랑하거나 사랑했다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라. 인생의 암흑 같은 주름들 사이에서 찾을 진주는 그것밖에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의 완성이다. (306)

 

  고 함석헌 선생님은 왜 혁명은 항시 실패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하시기를 자신이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학생들의 데모로 인해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저항하여 목소리를 높였고, 때로는 행동을 통해 정권을 바꾸기도 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컸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이후 현대에 이루기까지 많은 이들이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그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항로를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혁명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꾼 이들이 지금은 이 사회의 중추세력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바뀌지 않았다. 혁명에 나선 이들이 그들의 생각을 현실에 적용시킬 힘과 기회를 가졌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바꾸지 않았다. 기존 정치인들의 행태에 반감을 드러내고, 사회의 부조리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그들은 정작 바꿔야할 세상과 타협하고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며 기득권과의 협잡을 통해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때의 민주화의 열기 속에 관여했던 자신들의 과거의 경력을 전가의 보도인양 무기삼아 정치인의 대열에 합류했던 그들이,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이 기존 정치인들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그리곤 자신들을 변명한다. 그게 세상을 위하는 길이고, 혁명의 길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하지 못하고 세상의 권위와 이득과 타협했다. 한때 그들의 혁명이 성공한 듯 보였을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수많은 혁명의 리더들이 사회에 진출했지만 세상은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실패한다. 그건 자신들이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1832년의 프랑스 6월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혁명은 대중의 지지를 얻었을 때 성공한다. 하지만 6월 혁명은 대중에게 외면당했다. 대중의 지지를 기대한 그들의 바램은 허상이었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그들은 혁명이 실패한 것을 예감하고 옥쇄를 결의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6월 혁명은 혁명에 참석한 이들의 목숨을 역사의 재단에 재물로 바치고 실패의 기록으로 남는다. 가브리엘은 부족한 탄약을 조달하다가, 에뽀닌느는 마리우스에게 향한 총부리 앞에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다가, 혁명의 주도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하며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6월 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쟝발장의 혁명은 성공했다. 한때 범죄자였고, 도형수였던 쟝발장은 미라엘 주교를 만난 이후 그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에 언제나 응답했다. 미라엘 주교를 만난 이후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의 변이와 생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혁명의 시작이다. 새로운 존재로의 변이. 더 나은 진보를 위해 애벌레가 성충이 되기 위해 고치에서 벗어나 탈피를 하듯 기존의 껍데기를 버리고 탈바꿈을 한 것이다. 자신이 이룬 사회적 성취와 지위도 포기하고, 한사람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재판정에서 진실을 고백했고, 선행을 베풀 때마다 고난이 찾아왔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누구하나 아는 이 없는 자신의 과거를 마리우스에게 고백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모든 것인 코제트를 보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지만, 모든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쟝발장은 양심의 소리에 응답한다. 자신의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당한 고난과 그가 포기해야하는 모든 것들은 혁명의 재단에 바쳐야할 재물이다. 그 고난이 크면 클수록, 포기해아 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혁명은 더욱 더 값어치 있는 것이고 고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어떤 혁명이던 혁명은 희생을 전제로 한다. 희생이 없는 혁명은 없다. 때로는 그 희생의 피조물이 누군가의 피와 목숨일수도 있고,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일수도 있다.

 

진보는 오직 그 값을 지불해야만 얻어진다.(334)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개혁하지 못한 혁명과 자신을 개혁한 혁명. 레미제라블은 실패한 6월 혁명과 성공한 자기혁명의 기록이다. 혁명의 제단은 번제물을 요구한다. 6월 혁명은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대가로 가져갔다. 그게 혁명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 혁명은 실패했다. 쟝발장의 혁명은 그에게 많은 고통과 외로움을 안겼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혁명을 시도했다. 그건 쟝발장 뿐 아니다. 쟈베르 경감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자신의 행위를 위한 단죄로 자신을 죽였다. 혁명의 변제물로 자신을 바친 것이다. 쟝발장은 자신의 혁명에 성공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혁명.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빅토르 위고는 실패한 6월 혁명과 성공한 쟝발장의 혁명을 통해 프랑스 사회가 변화를 위해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닌가. 쟝발장이 선행을 베풀면서 감당했던 수많은 대가와 고통은 그가 혁명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반대급부는 아니었을까. 이제야 이해가 된다. 2012년도 상영되었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의 마지막 장면(아래의 동영상), 쟝발장이 죽음을 맞는 그 순간에 오버랩되는 곳이 왜 실패한 혁명의 현장인지. 죽음을 당한 모든 이들이 실패한 혁명의 바리케이트 안에서 한 목소리로 어우러진 합창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지. 그건 쟝발장의 삶이 바로 혁명이었음을 반증하는 감독의 생각은 아니었을까.

 

  나의 변화를 막는 사슬은 무엇일까. 나의 변화를 막는 바리케이트는 무엇일까. 그 사슬을 끊고 나를 변화시킬 혁명의 날. 바리케이트 밖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넘어 세상 속으로 진군할 그날. 그날은 언제일까. 혁명을 향한 진군의 북소리가 울린다. 깃발이 나부낀다. 혁명이다. 그건 모두의 의무이다. 혁명의 대열에 서서 세상을 바꿔야 하는. 우리의 내일, 우리의 미래가 기대된다. 내일은 오리라. Tomorrow comes.

 

행복하다는 것은 무정한 것이다! 모두들 그 상태에 어쩌면 그리도 만족하는지! 그것이면 족하다고들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삶의 거짓목표를 수중에 놓으면, 의무라는 삶의 진정한 목표를 어찌도 그리 쉽사리 잊는단 말인가!(373)

 

 

h*****o 2015.03.31. 신고 공감 11 댓글 20
리뷰 총점 eBook
레 미제라블(e-book)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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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왜 e-북으로 보는게 이점이 있는지 말하겠다.  책 전체에서 그림은 표지 달랑 1장 뿐이다. 기회가 되면 출판서적 과도 비교해 보고 싶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서재에 책이 너무나 많아 고민중인 시점에서 또다시 욕심을 내서 출판서적 전집을 사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진즉에 이런 문제로 2년전에 전자책을 사지 않았었나. 페이지원 이라고 6인치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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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왜 e-북으로 보는게 이점이 있는지 말하겠다.

 책 전체에서 그림은 표지 달랑 1장 뿐이다. 기회가 되면 출판서적 과도 비교해 보고 싶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서재에 책이 너무나 많아 고민중인 시점에서 또다시 욕심을 내서 출판서적 전집을 사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진즉에 이런 문제로 2년전에 전자책을 사지 않았었나. 페이지원 이라고 6인치의 독서전용 단말기이다. 요즘 신형 drm을 지원해주지 않는다하여 조금 실망스러운 점은 있으나, 이번에 제대로 구매해서 볼 레 미제라블은 전혀 제약이 없었다. 교보문고가 호환이 좋다고 하여, 교보문고에서 구매했으며, 프로그램설치와 몇 번의 클릭으로 전자책 단말기에 넣어서 볼 수 있었다. 원가는 비싸지만 특별할인 50%를 받으니 3,000원~3,500원 선으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책을 사서 2번 이상 읽는 경우는 정말 드물기 때문에 2독 정도만 해도 본전은 뽑는 것이다.(그러나 할인 없이 6000원~7,000원 선이면 좀 아까울 것 같다. 소장 효과가 빠지기 때문이다..)

 전자책을 이용하여 2주가 걸려 다섯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물론 한번 더 완독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원채 장광설이 길어서 줄거리를 따라가는 묘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교-쟝 발장-팡틴느-꼬제트-마리우스로 이어지는 줄거리 라인을 따라 장광설은 빼고 읽었다. 확실히 줄거리를 따라 읽으니 가속도가 붙고 읽는 맛이 있다. 축약본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었다.

 페이지원에서 글꼴은 기본글꼴이 아닌 단말기에서 설정한 글꼴로 보였다. 목차가 지원되어 목차에서 챕터를 건너뛸수도 있고, 책갈피를 넣어 읽던 부분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주석처리를 읽어야 할 때 찾는 시간이 너무 걸려 흐름을 끊기게 하는 게 최대 약점이었다.

 줄거리는 모두 아는 바일 것이고, 정식번역본이 있음을 몇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 최근의 영화화로 말미암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쟝 발장의 죽음이 예감되는 순간부터 왠지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한 인간의 숭고한 투쟁, 남과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 자신의 양심을 놓고 벌이는 지난한 투쟁을 마친 마치 성자와 같은 한 사람의 죽음을 읽으면서 나역시 그렇게 살고 싶은 뜨거운 열망과 원죄를 놓고 어쩔 수 없어하는 현실의 나 사이에서 번민도 느껴야 했다.

 사실 쟝 발장은 가공의 인물이다. 그가 처한 환경 뿐만 아니라, 가공할 체력과 불굴의 의지, 성자의 모습에 가까운 과묵함. 딸을 향한 지고지순한 헌신..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려놓는 순간 쟝 발장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어 내 마음에 그 손자국을 찍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나의 독서 감상평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겨지는 것 같은 환경, 벗어날 수 없는 가난, 그 속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악을 쓰고 다투는 실제의 내모습, 사실 나도 미져러블스의 하나이고 나 역시 환경과 나의 양심이라는 심판관이 제시하는 양갈래 길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지만 현실 주의자 답게 치사한 방법을 동원하고, 타협하고, 악을 쓰고, 방법을 찾는다.

 고전이 고전이라는 것이, 인문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지는 못할지언정 우리를 조금은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어느 강의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레 미제라블을 읽을 것이다. 이번에는 줄거리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구절구절을 음미하며 읽을 예정이다. 작가의 필력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것 같다. 대작가의 글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전자 파일로 되어 있는 서고이지만, 그 속에 레미제라블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자랑스럽다.

e*****a 2013.0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