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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평이한 수준이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과 논증만큼은 탁월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평이한 수준이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과 논증만큼은 탁월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내용보기
만약에 “신(神, God)”이 실재(實在)하신다면 요즘 인간세상을 굽어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마도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하실 것 같다. 한 때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리던 창조물(創造物)인 “인간(人間)”들이 요즘은 자신의 말씀을 따르기는 커녕 자기들이 만들어 낸 “돈”을 창조주(創造主)인 자신보다 더 숭배하고 있으며,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신도(信徒)”들
"평이한 수준이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과 논증만큼은 탁월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내용보기

만약에 “신(神, God)”이 실재(實在)하신다면 요즘 인간세상을 굽어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마도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하실 것 같다. 한 때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리던 창조물(創造物)인 “인간(人間)”들이 요즘은 자신의 말씀을 따르기는 커녕 자기들이 만들어 낸 “돈”을 창조주(創造主)인 자신보다 더 숭배하고 있으며,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신도(信徒)”들도 어떻게 하는 짓들마다 “신(神)” 욕 먹이는 짓만 골라 하는지 신자(信者)들과 불신자(不信者)들 모두 밉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확 갈아엎어 버릴까(終末) 싶으시다가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그래도 내가 만든 자식들인데 하시며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으실 것 같다. 그런데 영미 언론 선정 100대 지식인(그중 5위)에 오른 세계적인 정치학자 겸 저널리스트라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종교 비평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원제 God Is Not Great: How Religion Poisons Everything / 알마 / 2011년 12월)> 는 꾹꾹 눌러 참은 “신(神)”의 화를 더 북돋울 만한 지극히 “불경(不敬)”스러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신은 죽었다”고 대놓고 외치던 “니체” 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서문(序文)격인 “1.좋게 말해서”부터 강력한 어조를 쏟아낸다. 작가는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 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둘째,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셋째,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넷째, 자신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경로를 통해 아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지금까지 수십 개국의 수많은 장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을 불신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원칙들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오로지 과학과 이성만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에 어긋나거나 이성을 능욕하는 모든 것을 불신하며, 서로의 의견들이 많은 면에서 갈릴 수 도 있지만, 자신들은 모두 자유로운 탐색, 개방적인 정신, 순수한 사상적 연구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신념을 교조적으로 떠받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믿음에 관한 논쟁은 모든 논쟁의 기초이자 기원인데, 철학, 과학, 역사, 인간의 본질에 관한 모든 논쟁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며, 믿음에 관한 논쟁은 또한 선한 삶과 정의로운 세상에 관한 모든 논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앙은 우리가 죽음, 어둠, 미지의 것,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은 설사 종교를 금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교는 자신처럼 행동 - 종교의 각종 의식이나 행사, 그리고 그들이 믿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 그런 행동 -을 할 능력이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종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글을 쓰고 읽는 자신과 우리들을 파멸시킬 계획, 인류가 힘들게 얻은 모든 성과를 파괴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는 것이 바로 그의 주장이다.

 

본문에 들어가면 보다 본격적으로 신에 대한 “모독”을 해대기 시작한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요약하기조차 힘든데 몇몇 개만 소개해본다. 작가는 종교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며 그 예로 인도 캘커타에서 소아마비 박멸운동을 벌였지만, 이슬람교도들이 불길한 서방의 약을 먹으면 성불능과 설사병에 걸릴 거라면서 백신접종이 음모라는 소문을 퍼뜨려 결국 실패했던 사례와 나이지리아 북부에서도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소아마비 백신이 이슬람 신앙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선포하여 금지시켰던 사례를 예로 든다. 또한 바티칸 가족 위원회 의장인 "알폰소 로페즈 데 트루이요" 추기경이 콘돔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자그마한 구멍을 몰래 뚫어 에이즈 바이러스가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어이상실의 경고를 해대는가 하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티모시 드 와이트"는 “제너(Edward Jenner)”가 발명해낸 천연두 백신 사용이 하느님의 뜻에 간섭하는 행위라며 반대했었으며, 최근에도 유대교 전통인 할례 풍습의 위험성을 경고한 저명한 유대인의사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보건 담당 관리들에게 결정을 미루라고 지시한 뉴욕 시장이나 종교적 교리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거나 응급조치가 필요한 자녀들을 방치한 혐의로 기소되지만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들을 비추어 볼 때, 종교는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가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한 가지 분야에서는 유난히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이 있음을 증명했으므로 자신의 생각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잠정적인 결론, 즉 첫째, 종교와 교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사실이 너무나 뻔히 드러나 있어서 무시할 수 없고, 둘째, 윤리와 도덕은 신앙과 그다지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신앙에서 유래할 수 없으며, 셋째, 종교는 자신의 행위와 믿음 덕분에 신에게서 특별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무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 자녀를 학대하는 정신병자나 짐승같은 놈들은 처벌 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 천국의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악에 물들었으므로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론(創造論), 즉 “지적설계론(知的設計論)에 대해서도 비웃는다. 종종 창조론자들이 인간의 눈 같은 놀라운 물건이 "눈먼" 우연으로 생겨났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일파는 정말이지 더할 나위없는 예를 골랐다며 비웃는다. 현재 우리는 눈을 갖고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이유까지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인간 눈의 해부학적 구조는 사실 "지적인 설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지적인 설계자가 최적의 시각을 목표로 했다면, 왜 눈의 위아래, 앞뒤를 거꾸로 만들었겠냐며 반문한다. 우리 눈이 심한 근시가 된 것은 우리가 앞을 보지 못하는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화해왔기 때문이며, 이 박테리아는 우리와 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진 것처럼, 우리 눈은 일부러 설계한 망막의 맹점에 이르기까지 잘못 설계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가장 고등하고 가장 똑똑한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보다 열등한 생물인 물수리의 눈은 우리 눈보다 60배나 강력하고 정교하며, 독창적인 재주가 빚어낸 또 다른 ”기적(奇蹟)”인 기생충들, 그 미생물들로 인해 종종 발생하는 실명(失明)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비극적인 장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즉, 그렇게 놀라운 물건이라는 사람의 “눈”이 구조적인 면에서 너무 모순 투성이며 하등 생물의 눈보다 훨씬 떨어지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보면 전혀 지적 설계의 증거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이다.

 

또한 작가는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내세울 주장이 없을 때, 종교적 신념이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교화시킨다는 주장을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처럼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방종과 이기심에 빠져들 거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게 된다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믿게 된거나 마찬가지라는 “체스터튼”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신자가 미덕을 행하는 것이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결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神)”을 부정하게 된 것이 과학이 발달한 근래에 들어 일어난 일일까? 작가는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신의 이름으로 악행 저질러졌다는 것, 신을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일 가능성,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과거부터 항상 있어온 “합리적인 전통”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가차 없는 억압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으며, 겉으로는 경건한 신자처럼 보인 사람들 중에 남몰래 불신앙을 간직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 지도 역시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런 전통을 계승해온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 루크레티우스 - "만물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을 편찬했던 기원전 1세기의 시인. 그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의 원자(原子) 이론이 간신히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졌다 -, 스피노자, 이마누엘 칸트, 프랭클린과 제퍼슨의 친구였던 토머스 페인.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을 예로 든다.

 

작가는 “결론: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전의 계몽주의자들처럼 대단히 용감하고 재능 있는 소수의 영웅적이고 획기적인 성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은 과학의 발달로 연구와 개발의 개념 자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었고, 성생활과 두려움, 성생활과 질별, 성생활과 폭정 사이의 연관성 - 종교는 이를 무기로 인류를 협박해왔고 근래까지는 잘 먹혀 왔었다 - 을 끊어버리려는 시도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 범위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새롭고 인본주의적인 문명이 진보주의자들의 꿈처럼 곧바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믿는 사람은 타고난 유토피아주의자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먼저 선사시대의 흔적을 초월해야 하고, 우리를 굴종과 비굴함과 죄책감이 어우러진 쾌락과 악취를 풍기는 제단과 지하교회로 다시 끌어당기려 하는, 말라비틀어진 손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철학의 위안을 부드럽게 제시해주는 말인 그리스인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음을 깨끗이 하려면 적을 파악하고 싸움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책을 끝맺는다.

 

이 책, 여러모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과 비교되는 책이다. <만들어진 신>을 읽은 지가 3년이 넘어 세세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만들어진 신>이 동물행동학자, 진화생물학자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과학적 분석과 해석 기법을 바탕으로 신과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종교의 허상이나 경전의 모순들을 비판하는 이론이나 학설들은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그치고 저널리스트답게 보다 더 신랄하고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사실(事實) 관계는 간략하게 소개하고 글쓴이의 주장을 보다 부각해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쓰는 신문 사설(社)을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신과 종교에 대한 비판 어조가 보다 명확해지고 분명한 것은 좋은데 관련한 이론들을 간략하게 다루다 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는 분들보다는 이미 다른 책들을 읽어 봤거나 종교 비판에 대한 관련 지식이 있는 분들에게 더 잘 맞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들을 꽤나 읽어봤음에도 책에서 언급하는 여러 인물들이나 이론들이 꽤나 낯설게 느껴져 어렵게까지 느껴지는 것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책인 것 같다. 그간의 종교 비평서들의 “심화학습” 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책, 그래서 읽는 재미와 이해도는 <만들어진 신>이, 강렬하고 신랄한 어조, 자극적인 면에서는 이 책이 좀 더 낫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에 더 후한 점수를 주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신>이나 몇몇 비평서들을 통해서 접해본 익숙한 내용이었기에 신선함을 그다지 느껴볼 수 없었던 터라 아무래도 <만들어진 신>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지극히 불편하겠지만 “무신론자(無神論者)”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하여 믿고 안 믿고는 의미가 없는, 다만 기존 권력이자 질서 - 이제는 종교가 도덕적, 관념적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서 내려온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신과 종교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살인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위치는 여전히 견고한 것 같다 - 인 종교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때문에 신심(信心)이 투철한 주변 종교인들과 다툴 생각도 없고,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선의(善意)"를 작가처럼 의심하고 싶지도 않다. 즉, 생각이 서로 다를 뿐 이 책처럼 종교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단,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들을 파멸시킬 계획을 종교인들이 짜고 있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읽기 전에는 그간 읽어온 종교 비평서 들보다 더한 재미와 통쾌함을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읽고 나니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평이한 수준이라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교 비평서로서 탁월한 수준의 논증과 비판을 담고 있는,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기회가 된다면 <만들어진 신>과 이 책이 어떤 점들이 같고 다른지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는 책읽기를 해보고 싶다.

 



a*****7 2012.01.30.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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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신은 위대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듯 보인다.  이 제목은 역설속의 역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단한 신이 왜 존재할 수 없으면 왜 우리 곁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는지를 저자는 역사와 과학과 현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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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신은 위대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듯 보인다.

 이 제목은 역설속의 역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단한 신이 왜 존재할 수 없으면 왜 우리 곁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는지를

저자는 역사와 과학과 현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세상의 종교들을 향해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1.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같이 걸어왔다.

그것은 인류가 자신의 존재가 약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 신을 만들었으며, 신에 무한한 권력을 안겨 주었고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구실을 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피팍하고 죽였다.

 

누구나 다 아는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을 차치하고라도

현대에 와서 구 유고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라는 전쟁이

실은 그 이면에 종교전쟁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현재까지도 할례와 여성의 음부를 훼손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따르는 종교인들을 차치하고라도

자신들만의 종교가 우위이며 다른 종교는 이단이라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세계 곳곳의 종교인들의 독선과 아집을 차치하고라도

수많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종교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인류가 로켓을 발사하고 달의 착륙하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진화론이 발달한 현재까지에도

종교의 위상이 이토록 대범하게 살아남는 그 이유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이용한 종교인들이 있는 것이다.

 

2.

p 172 "신약에 등장하는 갖가지 모순과 무식함은 저명한 학자들이

쓴 수 많은 책의 소재였디만, 기독교 당국자들은 '은유'라거나 '믿음의 그리스도'라는

애매한 말을 늘어놓을 뿐 이런 문제를 설명한 적이 없다.

 

신은 없다라는 책에서도 위와 같은 말을 늘어놓은 적이 없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이 은유와 믿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이상 당신들과 토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실재를 무시하고 은유를 믿으라는 것이다.

즉, 과장법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산처럼 크다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만일 길거리에서 이 말을 믿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모두들 잠시 주춤 거리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는 그런대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사탕을 주면 울음을 그치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다.

즉,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p 411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 말이다.

 

저자는 인류가 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 전체가 이제는 더 이상 종교에 이용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류의 유아기때 만들어진 유치한 인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면 더 이상 유아기 때 옷을 입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옷을 찾고 입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 아니라 황당하게 만든다.

 

인간은 이제 이성과 지식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m******m 2012.01.2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종교는 자신을 신뢰할 만한 증거를 지금껏 세상에 보여주지 못했다
"모든 종교는 자신을 신뢰할 만한 증거를 지금껏 세상에 보여주지 못했다" 내용보기
'신은 위대하지 않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솔직히 개신교 성직자인 나로서는 반감을 가져야 마땅한 제목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 보고자 했던 이유는 '이 책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기에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이 책을 침이 마르게 극찬한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모든 종교는 자신을 신뢰할 만한 증거를 지금껏 세상에 보여주지 못했다" 내용보기

'신은 위대하지 않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솔직히 개신교 성직자인 나로서는 반감을 가져야 마땅한 제목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 보고자 했던 이유는 '이 책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기에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이 책을 침이 마르게 극찬한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저자의 매력에 푹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유대교, 이슬람, 몰몬교 등의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그 깊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러한 종교들의 기원과 각각의 종교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성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각각의 종교들과 관련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에 대한 설명들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지금까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이슬람과 몰몬교의 기원에 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설명들 가운데 유대교의 할례 방식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유대인들이 저자가 말하는 방식으로 할례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역겨운 방식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시도록.)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다양한 지식을 접하고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에 대해 별 다른 반감이 들지 않았다. 다양한 종교들이 저질러 온 다양한 죄악들과, 각 종교들의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들을 공정한 시각과 잣대를 가지고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책제목이 '신은 위대하지 않다'임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내용들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신'보다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 같아 보였다.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악한 일들이 저자가 이 책에서 주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저자의 지적들은 상당히 타당해 보였다. 물론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들 중에는 저자가 오해하고 있고, 또 충분히 반박해 줄 수도 있는 내용들도 있었지만, 기독교가 저질러 온 잘못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였다.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니까.


여하튼 이 책의 핵심은 '종교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또한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세상에 수많은 해를 끼쳐왔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며, 신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을 섬기는 인간들의 불완전함은 신의 부재에 대한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 종교가 무지의 시대에 과학적 발견을 억압했었다는 사실 역시 종교가 거짓이라는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 그저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저질렀을 뿐이고,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무지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위대하지 않은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의 잘못은 인간의 잘못일 뿐,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신을 섬기며 선을 행하는 자도 있고, 신을 섬기며 악을 행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신을 섬기는 자들의 행위를 근거로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물론 신을 섬긴다는 자들의 행위를 통해 어떤 종교가 세상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종교인가를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내가 다다른 결론은 '신은 없다'가 아니라 '신을 섬기는 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1장에서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구도자'라고 부른다면서, '그 사실에 짜증이 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저자의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 때문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기독교를 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그에게 진정한 '기독교인다움'을 보여주었다면, 그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개신교 무신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도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가 세상에 보여주었던 모습은 아주 글러먹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비난은 참으로 타당하다. 그리고 그가 그런 비난을 퍼붓는 데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나귀의 말이라도 바른 말이라면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종교다. 따라서 바른 소리라면 누구의 말이더라도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비난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마땅하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는 지금까지 다른 종교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왔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라면, 기독교는 결코 진리를 좇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반성을 불러 일으켜 준 책이기에 이 책의 출간이 한편으론 감사하다. 기독교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쁜 책이라고 단순하게 평할 수 없는 이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k***r 2012.02.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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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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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허구성을 고발한 책은 부지기수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대담집을 포함시키면 그 수가 더욱 증폭한다. 그러나 고전의 경지에 오른 책,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전투적인 회의주의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무신론자든 불가지론자든 유신론자든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야 할 고전이다. 책제목 '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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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허구성을 고발한 책은 부지기수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대담집을 포함시키면 그 수가 더욱 증폭한다. 그러나 고전의 경지에 오른 책,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전투적인 회의주의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무신론자든 불가지론자든 유신론자든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야 할 고전이다. 책제목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이런 뜻까지 내포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지 않다, 예수는 위대하지 않다, 알라는 위대하지 않다, 모하메드는 위대하지 않다, 조지프 스미스는 위대하지 않다, 등등.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이 네 가지 있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 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16쪽)

 

한때 나는 구약을 유대인의 역사서로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예수를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로 간주한 적이 있다. 아직도 과거의 나처럼 그런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저자는 말한다, 유신론자의 성경은 소설과 같은 허구라고. 애굽탈출기, 동정녀 출산, 부활, 그리고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야반도주 등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영화 <도가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애'라는 사탕발린 말이나 광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인지 치를 떨었을 것이다.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 답변은 부정적이다. 윤리와 도덕은 종교나 신앙심과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신심에서 유래할 수도 없다. 내 생각도 그렇다. 잠시 서구역사를 둘러보자. 스페인, 미국, 인도처럼 노예를 매매한 대표적인 나라들은 각각 천주교, 개신교, 힌두교라는 세계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들이다. 도망친 노예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일찍이《자서전》에서 가장 독실한 기독교인이 가장 야만적인 노예주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세속적인 생각이나 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부당한 체제 전체를 비판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높지만, 어떤 사람이 종교적인 신앙 때문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반대하게 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꽤 낮은 편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종교적 신앙 때문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주의를 떠받치게 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지극히 높다. 그러니 간단한 정의[노예제 폐지]가 승리를 거두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266쪽)

 

z***a 2012.01.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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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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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가장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종교뿐 아니라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도 서슴치 않게 언급하는 것을 보게된다. 가장 은밀해야 할 종교가 이토록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이유. 그 이유를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종교는 권력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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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가장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종교뿐 아니라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도 서슴치 않게 언급하는 것을 보게된다. 가장 은밀해야 할 종교가 이토록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이유. 그 이유를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종교는 권력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기득권층에 의해 권력화하며 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십자군 운동과 같은 종교전쟁을 비롯해 계파간의 갈등과 대립은 특정 종교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철저하게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본다.

“좋게 말해서”라는 서문에서부터 강력한 어조로 종교를 비반하는데 지적설계론에서 유일신을 믿는 3대 종교 모두를 강하게 반박한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종교에서 좋은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 글의 논지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무신론자의 주장에 귀기울여야하는가? 그 이유는 저자가 모든 종교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종교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가의 문제는 모든 종교가 가진 딜레마다. 많은 종교에서 신앙에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는것을 터부시해왔다. 종교란 의심하지 말고 믿는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순수한 신앙이라고 받아들여져왔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갈등들이 이성의 잣대와 신앙의 잣대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특히 신앙의 잣대에 인간의 의지와 욕구가 더해지면서 비로서 종교는 신앙이 아닌 권력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저자가 주장하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주장은 신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로 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내용들은 거의 차아보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종교를 가진 이들도 큰 거부감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주장하는 신의 이름을 빙자해 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악행과 실수들은 반박하기 어려운 역사적인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는 점점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배타성과 폭력성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 이슬람의 근본주의 앞에서 우리는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그 시작은 신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동조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동조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종교가 저지른 실수들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잘못이 용서되는 것이 아님에도 신의 이름,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의 잘못을 덮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잘못은 잘못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말처럼 철저한 무신론자가 이야기하는 종교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신을, 그리고 종교를 믿는 바른길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d****a 2012.02.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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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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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이 책 제목이 낯설지 않다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그런 느낌이 틀린 게 절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의 개정판이니까. 이 책의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평생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해왔으며, 앞으로도 이 책을 계속 집필할 생각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가 발견하게 될 종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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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이 책 제목이 낯설지 않다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그런 느낌이 틀린 게 절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의 개정판이니까.

이 책의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평생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해왔으며, 앞으로도 이 책을

계속 집필할 생각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가 발견하게 될 종교가 가진 모순들은 꾸준히

개정판을 통해서 업데이트가 될 모양이다. 이전에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대충 훑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책에 덧붙여진 내용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그가 낼

개정판이 궁금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정판에 실릴만큼의 사건이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전에 읽어본 책이라도 그 당시에 인상깊게 읽었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개정판에 추가된 부분도 발견하고, 그리고 몇 해를 넘겨

다시 읽은 이 책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읽는 책과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여전히 그대로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가 그다지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종교의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이

400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특별히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 종교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종교의 잔인한 면은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존재했던 종교이기에 참 오랫동안 온갖 일들이 있었을테고, 물론 거기에는

종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존재했다.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종교의 모순에 대해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종교에 대해 없던 관심이 소록소록 생겨난다. 그러면 왜 그 모든 모순들이

아직까지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그 많은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무척 의아해졌다고 해야하나.

종교의 어두운 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무거워진다.

신이, 과연 그들의 신이 그들이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잔혹함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었고 그 부분을 읽는 동안만큼은

종교는 참으로 못 생겨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나와있을 우리가 해야할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기대하게 된다. 기대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분량이라 아쉬워

진다. 하지만 작가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앞으로

이 책을 계속 써나갈 것이니까.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듯

하다



p****i 2012.02.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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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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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탓인지, 서로 다른 의견을 펼칠때면 극단적으로 흐른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 논리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서로 자기 목소리만 내게 되는, 안웃기다 게임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수 아니면 진보, 좌빨 아니면 친일, 친북 아니면 친미친일 식이다. 내 생각엔 기득권 세력의 여론조작의 영향이 크다. 정부를 반대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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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탓인지, 서로 다른 의견을 펼칠때면 극단적으로 흐른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 논리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서로 자기 목소리만 내게 되는, 안웃기다 게임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수 아니면 진보, 좌빨 아니면 친일, 친북 아니면 친미친일 식이다. 내 생각엔 기득권 세력의 여론조작의 영향이 크다. 정부를 반대하거나 촛불 시위를 하면 좌빨 좀비로 몰아댄다. 북한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사람이 북한을 돕고자 하는 의견을 세우면? 북한으로 가라 빨갱아~ 같은 식으로 몰아댄다.

 

 

  종교도 별 다를것 없다. 지구 탄생 이후에 수 많은 종교와 신들이 창조되었지만 지금껏 영향력을 미치고 오래 살아 남는 것은 불교 외에는 전부 일신교다. (불교는 종교긴 하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며 석가모니 자신도 자신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했다. 후대 사람들이 부처를 존경해 불상을 만들고 종교화 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사실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하곤 한다.)

 

  왜 유독 일신교가 이렇듯 크게 되어 있을까? 그것은 신이 유일하다라는 관점에 있다고 본다.

그리스 신화의 골아픈 수많은 신들을 외울 필요 없이 하나만 믿으면 되니 접근 하기 쉽고 인간의 성격에 잘 맞다.

나 이외의 신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 속성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와 내 소속의 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의견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고 심하면 억압하게 되는 거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전도를 할때는 가히 협박 수준이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것이다.

즉, 신랄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 말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느니라~ 는 조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인간의 공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이며 그런 개인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배타적인 성향의 단체를 만나 짝짜꿍 하는 것이다. 교회는 신도를 많이 모아 돈벌이가 되니 좋고, 신도는 돈으로 죽어도 사후 세계가 있다는 위안을 구매한다.

 

 

 

 

 

 

 

  우리나라 교회의 큰 목사님이라는 조용기씨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 줘라, 누가 헌금을 많이 내는지, 누가 믿음의 증거를 많이 보여주는지 보여주라' 며 노골적으로 더 많이 돈낼것을 독촉한다. 하지만 예수는 어느 가난한 여인이 동전 한닢을 내는 것을 보고 '이 여인이 낸 돈이 나머지 전부를 합친것보다 큰 것이다' 며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누가 누가 더 내나 알아봅시다♪따위의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신자들은 각종 교회의 비리와 잘못된 점을 보면서도 모른척 한다. 그나마 대답이라도 하는 신자들은 그런 문제점들을 인정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며 일축한다. 그러나 대형 교회의 큰 목사들이 일부라면 다수가 일부며 소수가 다수가 되는 말도 안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예수를 믿지 않는 나라는 가난하다'

'예수를 믿지 않아서 쓰나미가 일어났다'

이런 발언은 모두 큰 교회의 수장들이 한 발언이다. 기득권층을 지지하는 정치적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목사들이다.

하지만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고 말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미션 임파써블]이란 얘기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목사들이 과연 이 사실을 모르는 걸까 모른체 하는 걸까?

 

난 이런 목사들이야 말로 진정 믿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잠깐밖에 안다녔던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을 목사들이 모를가능성은 절대 없다. 몰랐다고 해도 웃기는 일 아닌가??

알면서 이따위 소리를 해대는 것은 장사를 위해서다.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날조하는 거다.

그건 목사들이 진정 믿음이 없다는 소리다. 예수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것들이 무슨 믿음이 있는 건가??

 

  들판에서 설교 하던 예수처럼 소박한 공동체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파하기는 커녕 돈 거둬서 그 자본을 확장시키고 퍼트리며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속성을 아는 종교인들도 많다. 그러나 종교인 내부에서의 비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들을 가만히 보면서 나만 믿고 진실하다면 되는 것인가. 종교로 인해 사람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속아넘어가는 피해자가 늘고 있는데...더 어이없는 것은 이런 사기꾼들의 말을 좋다고 경청하는 신자들이다.

 

한때 아주 작은 교회에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도시 빈민들이 어렵게 사는 마을 속에 자리한 교회.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고, 아픈 노인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며,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교회는 막말로 장사도 안되고 번영도 어렵다. 이런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다. 이젠 이 교회도 나가지 않는 것은 한국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자체에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던 사람도 회계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예수의 말은 위험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도 목사가 될 수 있었던가? 하지만 그는 용서는 받았을지 몰라도 죄는 전혀 뉘우치진 않고 있다.

그런 모순을 영화 '밀양'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세계인의 공감과 호응을 얻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피아노 강사 신애는 아들 준이 유괴당한후 살해당하자 깊은 시름에 빠지고,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에 기댄다. 용서라는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만나러 가는데, 범인은 이미 자신이 신에게 용서 받았다고 말한다. 신애는 자신이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가 있냐며 분노하게 된다.

 

  이 사례는 본문 176~부터 나오는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나니아연대기의 저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기독교 옹호자인 그는 예수가 정말 신이 아니라면, 피해를 입은 사람과 의논을 할 시간적 여유도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갚아준다는 말은 허왕된 말이며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자만심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그래서 예수가 틀림없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저자는 반대로 보는 것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기는 약간 어렵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어서 좋았지만 다른 일신교들, 이슬람교 흰두교 유대교등의 이야기와 그 사건들의 이야기가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다. 어투도 정리가 되어있다기 보다 주제별로 이야기를 하는 듯히 펼쳐지기 때문에 이것이 장점으로 다가와 편안하게 읽힐 수도 있지겠만 나에겐 산만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종교 자체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인간의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 두려움이 죽음 뒤가 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종교가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또 종교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지구가 도는 지도 몰랐던 때의, 미지의 세계인 하늘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함의 표출이었다.

 

 지구가 돈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탄압을 받은 것도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다. '하나님의 나라는 요지부동' 이라는 말이 지구가 돌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도 웃기는 이야기다. 그때의 종교 지도자들은 약발이 약했고 신과 교통하지 못해서 그랬고, 지금은 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종교인들은 스리슬쩍 말을 바꾸고 끼워맞추기에 급급하다.

 

 

  역사에서 가장많은 살육과 응징을 가해온 것도 일신교이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서 이런 살육의 기록들을 알려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분란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데, 거의 종교의 문제이다.

종교가 개인에게 위안을 준다고 하지만 그런 종교에 의해 희생되는 것 또한 개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종교의 문제점, 한국 교회의 부정과 부패 온갖 비리.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외면하려면 종교인을 집어치워 버리는게 낫지 않나?

그렇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죽어서도 잘살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의 발로일 뿐이다.

 

 

 

t*********d 2012.02.0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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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들. 책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이 책을 피했었다. 사실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을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을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부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습관적인 신앙인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차마 부정할수도 긍정할수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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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들.
책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이 책을 피했었다. 사실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을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을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부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습관적인 신앙인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차마 부정할수도 긍정할수도 없는 애매한 태도로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외면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불편하기만 했던 것이다.

한때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전지전능함이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와 미래에 대해 예정되지 않은 삶을 감춰둘 수 있으며 또한 그것 역시 전지전능함으로 모든 걸 다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그 전지전능함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부분을 비웃고 있다. 어느곳에나 계시고 어느 것이나 다 볼수 있고 무엇이든 다 아는 위대한 신이 인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를까봐 편지를 써서 우물에 넣어 알리고 부끄러운 인간의 몸을 감추기 위해 캔버스 천으로 가려야 하고 신의 손길이 닿은 십계명판은 모세가 한번 내동댕이쳤을뿐인데 산산조각이 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저자는 전지전능한 신을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가 비웃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낸 인간들일 것이다. 전지전능하다고 말하지만 온갖 헛점이 보이고 무능함을 드러내는 신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서를 검열해서 금지시키고, 반대세력의 입을 막고, 국외자들에게 벌을 내리고,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오로지 자기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의 근본이다. 알라께서 모든 것을 미리 예정해놓으셨다는 이슬람의 숙명론은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완전히 부정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자신들의 신앙안에 이미 다 들어있다는 오만하고 밉살스러운 믿음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런 전체주의와 조금 닮았다˝(340)라는 말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안에 담겨있는 독과 같은 전체주의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역사안에서 종교가 저지른 해악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아니 종교는 지금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바티칸이 너무 강하고, 미안해하는 기색이 너무 없어서 우리 힘으로는 주교들을 공격할 수 없다. 교회는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을 혹시 들어본 적이 없는가?˝(282)라는 말은 가톨릭교리에서 말하고 있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꼬집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가톨릭뿐만이 아니다. 성전, 그러니까 거룩함이라는 걸 내세우며 테러를 불사하고 있는 이슬람도 그렇고 신외에 구원은 없다며 신앙을 강요하는 개신교 역시 똑같다. 그들 모두 자신의 신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불사하는데 그들이 믿는 전지전으하고 위대한 신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물론 저저의 글에 대해 반박하지 못항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논쟁을 할만큼 학문과 이론적으로 무장을 한 신앙인이 아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들을 하나하나 저자가 끄집어 내어 다시한번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신앙과 믿음에 대해 생각하게 할 뿐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실패한 신의 모습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존재증명을 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신은 어떠한가.

이 책을 통해 나의 신앙고백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저자가 꼬집어 말하고 있는 위대한 신의 모순점들, 인간들의 헛된 욕망과 이기적인 욕심들이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잘못행해지고 있는 것은 이제 제발 멈춰달라고 함께 외치고 싶어진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위대한 신의 모습은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권력과 욕망일뿐일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라고.



r***2 2012.02.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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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트 롬니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주류인 WASP출신이 아닌 롬니는 정통미국사회에선 이단취급을 받고 있는 모르몬교 출신이다. 모르몬교는 생긴지가 얼마 안돼서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최근 사례이다. 사실 모르몬교 분들은 왕따지만, 대부분 독실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원은 개그콘서트를 능가한다. 발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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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트 롬니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주류인 WASP출신이 아닌 롬니는 정통미국사회에선 이단취급을 받고 있는 모르몬교 출신이다. 모르몬교는 생긴지가 얼마 안돼서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최근 사례이다. 사실 모르몬교 분들은 왕따지만, 대부분 독실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원은 개그콘서트를 능가한다. 발생이 오래되고 기록이 불분명하고 무협지시절에 생성되었던 다른 종교들의 기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 모르몬교에 대한 이 책의 재미있는 설명을 보자. 1826 금광원정대를 조직해서 사기친 21세 청년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주인공 조지프 스미스는 4년후 모르몬경 발견자가 되는데, 그 곳은 열광하는 신자가 사는 곳으로 소진된 지역 burned-out district(더 이상 개종할 사람이 없는 곳)이라 불릴 정도였다. 스미스는 천사가 자신을 찾아와 금판에 적힌 책이 있음을 알려줘 자신만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두 개의 마법석 때문에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며 1827년 번역작업에 착수한다. 그 책들은 BC 600년경 예루살렘에서 아메리카로 도망친 레피의 후손 예언자들이 남긴 기록이었으나, 스미스는 다른 사람이 금판을 보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며 아무에게도 금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언변이 좋았지만 문맹이었다. 이웃인 마틴 해리스로 불러 쓰게 했는데. 담요로 자신의 부엌을 둘로 나눈 뒤 반대편에서 하게했다. 해리스에게는 금판을 보려하거나 예언자를 보려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해리스의 부인은 이런 말을 믿지 않고 116쪽까지 훔쳐내 문맹인 스미스에게 다시 복원해보라고 도전하였다. 이 위기에서 스미스는 원본이 지금쯤 악마 손에 들어가 악마의 시로 해석되고 있을지 모르니 원본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미리 내다보시는 하나님이 원본보다 조금 작은 판을 마련해주었다고 하며, 결국 다른 사람을 서기로 앉혀. 번역작업을 마친 후 금판은 모두 하늘로 옮겨졌다. 이 책은 당시 인디언 뿌리가 중동이라 주장한 이선 스미스의 ‘히브리 민족 바라보기’와 신약성경을 노골적으로 표절한 것으로 마크 트웨인은 활자클로로포름이라 말했다.

 

#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 유대교 모르몬교 통일교 심지어는 테레사 수녀까지 비판한다. 비판은 논리와 증거로 하고 있지만, ‘어리석은’같은 노골적 형용사를 많이 붙이는 것은 오히려 저자의 주장을 거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여간 결론은 하이네와 기번의 말로 집약된다. 암흑시대에 종교는 최고의 안내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눈먼 사람이 최고의 안내자인 것처럼. 하지만 낮이 왔을 때 눈먼 노인을 안내인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하인리히 하이네, 시상과 착상) 종교에 대해 백성들은 모두 똑같이 진실이라고 생각했고 철학자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했으며 행정장관들은 모두 유용하다고 생각했다(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흥망사)

t******s 2012.02.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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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 하나.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할 때 피해야 하는 세 가지 화제는? 정치, 종교, 그리고 아이 수능 점수. 말 그대로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만 나름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이 우스개를 삶의 지혜로 받아들여 수능 점수만큼이나 사적이고, 정치만큼이나 치열한 종교 논쟁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문에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기 위해 신은 위대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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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 하나.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할 때 피해야 하는 세 가지 화제는? 정치, 종교, 그리고 아이 수능 점수. 말 그대로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만 나름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이 우스개를 삶의 지혜로 받아들여 수능 점수만큼이나 사적이고, 정치만큼이나 치열한 종교 논쟁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문에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기 위해 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지 말았으면 한다.

 

자라면서 종교에 대한 나의 주된 사상은 신은 없거나, 있다 해도 세상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다 해도 능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존재하고, 관심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출발하고 살아가는 것이 불합리 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겠지만,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이 불합리함을 말하기 위해 그의 인생 상당 부분을 할애한 것 같다. 저자 스스로 말한 대로 개신교 무신론’(p.27)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슬람과 아프리카 토속 신앙 같은 여타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종교에 대한 이해 혹은 대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다. 비록 책의 내용에 모조리 찬성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미시적, 거시적 안목으로 신앙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노골적인 저자의 주장에 온건한 종교인(특히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천주교 신자들) 조차 일부의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동어 반복적이고, 차별적이고, 낡은 것이며,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계속적인 증거에 말바꾸기로 스스로의 믿음을 다시 잡는 신자의 예를 들며 우리가 알법한 유명인들이 자주 등장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아래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균형이 잡혀 있어서 비교적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안정성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 태양계에 관해 처음으로 확실한 사실들이 밝혀졌을 때, 아이작 뉴턴 경은 심하게 동요한 나머지, 행성들의 궤도가 다시 안정을 되찾게 하기 위해 하느님이 가끔 개입하실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라이프니츠는 이 말을 듣고 뉴턴을 놀리며, 하느님이 처음부터 궤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p.123)

 

비종교인들에게도 살아있는 성인이라고 추앙 받았던 마더 테레사도 저자의 날카로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저자는 맬콤 머거리지라는 영국인 설교자가 그의 다큐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을 통해 마더 테레사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소개했다‘(p.215)고 말하며 다큐멘터리와 함께 출간된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요양소 내부는 어둑어둑했다...켄은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나중에 필름 편집 과정에서 보니 내부에서 찍은 장면이 특별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빛 속에 푹 잠겨 있었다... 나는 켄이 진짜 기적을 필름에 담았다는 개인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 (p.216)

 

이어 나온 켄 맥밀런의 증언에서 켄은 새로 나온 코닥이 새로 개발한 필름에 감탄하며 코닥을 위해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했다.

 

위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두 사람의 실수이지 종교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신성모독으로 불쾌하게 여길 이들을 고려하여 아주아주 약한 이야기만 소개하였으니. 히친스는 역사적, 문화적, 인문학적 해박한 지식으로 종교의 경전과 성인과 신앙의 힘에 계속적으로 물음표 아닌 느낌표를 찍는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t******s 2012.02.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