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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만 하면 삶이 펼 줄 알고 지냈던 적이 있다. 수중에는 돈이 없었고, 주변의 경쟁자들은 한없이 쟁쟁해 보이기만 했다. 무어가 되었건 시도하는 족족 실패했기에 나날이 나는 작아졌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직장을 구하게 된 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강산이 한 번은 변화했을 긴 시간 동안 난 얼마나 달라졌을까. 150원 밖에 안 하는 학내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구입할 돈이 없어 쩔쩔 매던 예전과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지 싶다. 매달 일정 시점이 되면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액수가 크고 작음을 떠나 이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몇몇 내 지인들을 고려한다면 나의 태도는 어리광에 불과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취업이 마음 속 불안까지 잠재워주진 못했다. 여전히 나는 무능력한 나를 탓하고 욕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 중이다. 왜 이토록 실수는 잦은지 모르겠고, 새로운 일 앞에서는 벌벌 떤다. 완벽해야만 한다는 사고에 사로잡힌 나머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이런 나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할까.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문자 그대로 이를 해석하자면 교육을 받는 학생도 아니요, 고용된 직장인 혹은 고용을 준비 중인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님을 뜻한다. 즉,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 즈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니트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한 대기업에 몸을 담았다가 외려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조직을 뛰쳐나온 이들도 존재하는 걸 보면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도처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비자발적 니트에 속한다. 버젓이 대학을 졸업했으며, 적잖은 비용을 투자해 어학연수,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조건을 고루 갖춘 이들조차도 취업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눈높이를 낮출 것을 사회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요구한다. 하루에 14시간 혹은 그 이상, 주 6-7일을 내리 일하고도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2년 안에 계약기간 만료로 다른 직업을 알아보아야 하는 자리라면 나 같아도 응하기가 꺼려진다. 기성세대는 자신이라면 결코 몸담지 않을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에 기꺼이 취업할 것을 권한다. 젊으니까 감당해야 한다는 말로 노력을 뛰어넘은 ‘노오력’을 강요하는 셈이다. 젊은이들의 눈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니 뭔들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오늘날 청년 모두가 지닌 보편적 특성으로 치부하는 걸 거부한다. 니트를 개개인의 성향 아닌 상태로 바라봐 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무기력을 니트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무기력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경험치가 부족한 청년들에게 적합한 자리는 나날이 사람 아닌 인공지능의 몫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가 제공하는 환경이 청년들로 하여금 더는 일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주객전도에 가까운 시선을 가지고 청년들을 흉본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껏 우리는 일하지 않는 것을 문제 있는 태도로 여겨왔다.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면 당연히 직장에 발을 들여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삶 전반을 대함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일정 연령대에 도달하면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정답 아닌 정답을 이행하고자 우리는 이제껏 자신을 소진해왔다. 그 과정에도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일해야만 하는가. 일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가? 불안정하고도 열악한 형태일지라도 노동하고 있으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우월한가? 노동함으로써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말은 이론에서나 성립한다. 현대인 대부분은 대학 시절 전공과 하등의 상관없는 분야에 취업하며, 일을 하면서도 고뇌한다. 일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워하고, 직장 내에서 형성된 관계를 심장에 박힌 가시마냥 제거하지 못해 운다. 일 못하는 사람, 잉여, 그리고 니트. 이들은 모두 패배자인양 머리털을 쥐어뜯기 바쁘다. 하지만 그들의 삶 또한 소중하다. 비록 노동할 기회자체를 부여 받지 못했을지라도,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로부터 비롯되는 불안을 떨쳐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사람 수보다 부족하게 준비된 의자 쟁탈전이 결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