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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겠다는 거예요?" "왜? 난 아직 내 삶의 밑바닥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거든요…….(…)" p. 331.
7인의 미치광이 나는 이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제목만 보아도 만만한 책읽기가 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무슨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서 써야 할지 조금 막막하다. 7인의 미치광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몽상가들이었다. 이러한 미치광이가 구상을 실현하게 되면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아마 계속 꿈만 꾸다 좌절해서 자멸에 이르고 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를트가 보여주는 이 미치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이 소설의 속편 <화염방사기>에서 이 인물들을 더 자세히 묘사했다는데, 우선 <7인의 미치광이>에서는 결말을 내지 않은 ing 상태라 저 이분법적인 결과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는 듯하다. 아니면 저 구분조차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Ⅰ. 1㎠ 인간- 에르도사인
Ben SHAHN, Blind Botanist
1963, Lithograph printed in color 67.9×52.3cm
"인생이란 게 당신이 늘 말하던 그런 거라면……. 그래, 돌아올 거야……. 꼭 돌아올 거야." p. 91. '과연 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냐, 난 살로 살짝 가려진 상처일 뿐이야. 심장이 뛸 때마다 고통에 못이겨 온몸을 뒤틀고 비명을 지르는 상처.' p. 94. 머리카락처럼 왜소해진 영혼, 진흙탕 속에서 꿈틀대는 뱀장어같은 삶……. 그의 삶에서 존재 의식이 차지하는 공간은 1㎠도 안 되는 듯했다. (…) 유령 같은 삶을 살면서 오직 고통만이 허용된 1㎠의 존재일 뿐이다. 나머지는 부분은 다 죽었다. 아니, 나머지는 그에게 현실의 쓴맛을 보여 준 그 어두운 태반 속에서 시체처럼 뒤엉켜 있었다.(…) p. 95.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될까? p. 117. 왜 그의 인생은 늘 이 모양이란 말인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런 꼬락서니'이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꼬락서니'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인생에는 그토록 선명하게 찍혀 있는 불행의 낙인이,다른 이들의 삶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p. 263.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 지금도 음산한 곳에서 헤매고 있다. p. 265. 공금을 횡령한 잘못으로 에르도사인은 직장을 잃었고, 아내 엘사도 그의 곁을 떠났으며, 자신의 쓰디 쓴 삶마저도 지워져 가고 있었고,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믿음도 슬픔으로 얼룩져 점점 상실해 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람은 무모해지고 극단적인 감정흐름 때문에 거침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십상이다. 바로 에르도사인이 그랬다. 구질구질한 삶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당당히 '존재'하고 싶었기에 에르도사인은 범죄를 선택했다. 존재의식이 거의 없는 불행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인물, 에르도사인에게 희망은 사치스러운 감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때는.
Ⅱ. 위대한 허구를 만드는 게 급선무-점성술사와 목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
Ben SHAHN, Mask 1959, Serigraph in color,67×51cm 결국 인간의 행복이란 오로지 거대한 거짓말, 즉 형이상학적 가상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한 거요. 그러한 가상을 제거하면 인간들은 또 다시 경제라는 환상에 빠져버리게 되지. p. 194. 희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멋들어진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다면, 그들에게 감언이설로 혼을 쏙 빼 놓는다면, 이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믿는 위험한 몽상가, 점성술가.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저 어중이떠중이들을 위해서 우린 행복이란 요리를 만들어 상에 내놓기만 하면 돼. 그러면 저들은 짐승처럼 몰려들어 게걸스레 먹어치우겠지." p. 198.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뭔가를 믿으려 하고, 또 믿어야 살 수 있다'는 거요. 우리 인간에게 그건 음식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요. p. 203. 70칼로그램의 살덩어리 안에서 바다와 같은 영혼이 요동치고 있는 게 바로 삶이 아닌가? 그 무거운 살덩어리는 하늘 높이 날기를 원해. 우리 안의 모든 게 저 구름 높이 날아가길 바라고 있다고. p. 349.
Ben SHAHN, Everything Comes from Everything 1959, Mixed media on paper, 78.7 x58.4 cm 점성술사를 중심으로 한 이 비밀집단이 꿈꾸고 실행하려는 계획은 정말 허무맹랑한 일들 뿐이다. 사창가를 무슨 산업체마냥 확대시켜 자금을 확보하고, 혁명훈련 캠프를 설치하고, 인류 역사 속 추악한 행위들-화형제도, 파시즘 등- 을 모조리 끌어내 부활시키려는 구상은 그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난다. 이 세상은 허구와 갖가지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믿는 점성술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뿌리가 그러한데,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설파하며, 일단 그 계획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신들에게 돌아갈 이득이 무엇인지 감언이설로 조직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큰소리로 사람들을 휘어잡으며 이러이러한 것을 해내겠다 라고 말만 할 뿐 정작 몸은 그의 터무니없는 이상을 받쳐주지 못한다. 나는 7인의 미치광이들 중에 점성술사 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스스로를 인생의 낙오자처럼 여기는 구질구질한 에르도사인과는 달리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이 인물은 높은 이상과 강한 개혁정신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흔들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점성술사가 홀로 있을 때 펼쳐 놓은 망상 속에 자리해 이상과 현실 사이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감정의 변화는 그도 한 명의 미치광이로서 불안으로 인해 수시로 흔들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단력 또한 단단하지 않는, 그저 한 명의 몽상가임을 알게 해 주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가슴 벅차는 일'이 될 여러 계획을 그는 그저 입으로만 반복할 뿐이다. 한 마디로 점성술사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달아나 버리지. 그래, 바로 그거야.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모두 빈 감자 자루처럼 무력하게 스러져갈 뿐이야. 저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 348. 인형들은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처럼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p. 354. 마치 마리오네트를 하는 사람처럼 허구의 공간을 빌려 자신만의 꼭두각시 인형들을 적절히 배치시키고는, 품고 있는 스토리를 실현시키려는 사람.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마냥 자신의 의지대로 시, 공간을 종횡무진하지만 인형극이 끝난 후 조명이 꺼지고 나면 인형과 자신은 어두컴컴한 현실의 방으로 돌아온다. 희열도, 무력감도 모두 존재하는 삶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인간에게는 허구가 필요한 것일까
Ⅲ. 완벽한 남자를 찾는 이폴리타
Ben SHAHN East Twelfth Street 1947, Gouache on Board 55.9 x 76.2 cm 시간이 갈수록 상상 속에서 만나는 이런 신기한 인간들은 자꾸만 시시해지고, 차라리 소설 속 인물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이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면면을 잘 살펴보면 현실에서는 다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들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다 채우고 나면 이들은 약점을 그녀에게 보여 준 것이 못내 창피한 듯 하나같이 그녀를 외면해 버렸다. 그러면 그녀는 사막을 헤매듯 점점 더 무의미한 삶 속으로 가라앉았다. pp. 320-321. 동시에 그녀는 여자들도 혐오했다.(…) 여자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고생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잠들게 하는 유령처럼 여자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상을 꿈꾸던 그녀의 영혼은 타인의 따가운 시선과 간섭 때문에 제대로 날지도 못한 채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평생을 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pp. 323-324.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배고픔, 욕망, 그리고 돈, 이 세 가지 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p. 319. 번듯한 삶을 채워줄 요소를 갖춘 남자를 찾는 이폴리타. 하녀로 살며 자신이 언젠가는 그럴싸한 인생을 꾸릴 수 있을까 하며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고, 창녀로서 지내던 중에 자신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것 같았던 한 남자를 만났지만 그동안 꿈꿔온 이상이 부질없다는 걸, 허구 속 삶과 현실의 삶은 같을 수 없다는 걸 그녀는 깨닫는다. 그러나 여전히 이폴리타는 그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자신이 갈구하는 그 삶을 찾으려 한다. 그녀는 현실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동정 섞인 질문은 삼가하고 싶었다. 언제나 그녀는 허구의 존재 덕분에 위안을 얻고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Ⅳ.허구와 희망은 동전의 양면
Ben SHAHN, Scabbies are welcome 1937, tempera on paper laid on panel, 55.9 x 76.2 cm
사람의 마음 속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나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도 내 운명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p. 79. (…)내 몸에 구멍을 내서라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거짓과 위선을 죄다 빼버리고 말거야. p. 121.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우리의 의식과 사유가 이루어지는 곳보다 더 깊은 데에는 훨씬 더 강하고 넓은 또 다른 삶이 있어요. p. 127. "그런데 왜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겠다는 거예요?" "왜? 난 아직 내 삶의 밑바닥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거든요…….(…)" p. 331. 이 소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문한다.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수시로 자신에게, 타인에게 의심을 품으면서도 그들은‘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이 있다는 믿음에 마음 한 켠을 내어준다. ‘절망에 빠진 사람의 바람, 그러나 거의 언제나 희망은 절망하는 자들의 것이다 ’ 라는 아레나스의 말처럼 그들이 손에 잡고 붙들 것이라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허구’뿐이다. 그러한 허구 즉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의 여부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소중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허구의 존재는 그들이 입은 삶의 쓰린 상처를 묵묵히 핥아주기 때문이다. + 같은 라틴 문화권의 작가들이 보여준 정치적인 색채, 현실과 허구와의 관계 때문인지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해가 지기 전에 Before Night Falls>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 나치 문학>이 자꾸 생각났다. <7인의 미치광이>에는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 어떤 사건에 대해 일정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러한 장치가 있어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닌 일종의 르포타주처럼 느껴져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작가의 펜 끝으로부터 흘러나왔지만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듯 생생히 살아 있는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쉽지만은 않았으나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살짝 엿 본 경험은 신선한 책 읽기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현실과 공상의 경계선에 서서 물 흐르듯이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아를트는 이러한 두 정신세계의 날실과 씨실을 촘촘히 훌륭하게 엮어 놓았다. 꿈꾸는 내용이 아무리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꿈을 꾸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읽은 이들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는 듯 했다. 문학이 우리들의 따라지 인생을, 이 우중충한 사회를 구제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머리 쪽을 떼어낸 후 꼬리 쪽을 떼어내면 다시 머리 쪽을, 그리고 다시 꼬리 쪽을 떼어내야 하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처럼 이렇게 찰싹 달라붙는 우리네 삶의 애환을 허구가 조금이나마 달래주지 않을까요?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이상이, 행동이 그대들이 보기에는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어처구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소만, 각자의 유토피아가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육체는 영혼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는데, 그 이유는 영혼에게는 항상 의지할 그 무엇, 기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아레나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이 땅 위를 딛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가 설정한 허구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그것에‘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한 허구로만 생각되던 것이 우리 인생에 생산적인 어떤 것을 이끌어주는 매개체로 변모할지도 모르는 것이고요.
(Source d'images: www.artnet.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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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욕설 중에 하나가 '미친 놈'이라는 말이다. 미친 놈에는 다양한 사람이 포함된다. 약간 멘탈이 부족하고 말이 어눌한 사람,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 눈빛부터 이미 똘끼가 충만한 사람, 사회적인 매너가 부족한 사람까지 우리는 모두 미친 사람이라는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 중에는 정말로 의학적으로 미친 사람도 있고, 사회에 부적응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람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사회에 적응한다는 말 자체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다룬 소설이 바로 <7인의 미치광이>이다.
<7인의 미치광이>는 그야말로 7명의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7명이 다 주목받지는 못한다. 미친 사람 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차별이라니.. 어쨌든 이 책은 미친 사람 취급받지만 미쳤다고 할 수 없는 에르도사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진행된다. 에르도사인은 회사의 공금을 횡령했다가 발각되고 자신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떠난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발명품들을 통해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점성술사를 만나 함께 역적모의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회사에 밀고한 미친 사람 한명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7인의 미치광이가 담고 있는 스토리는 이것이 전부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운의 천재 발명가라고 자위하며 살아가는 한 남자. 그는 자신의 손에서 수천페소가 왔다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버는 돈은 한달에 수십페소밖에 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 절망에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기 시작하며 그것을 자신을 질투하는 미친부자친구에게 이야기 했다가 밀고를 당한다. 결국 그는 하루만에 600페소를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어렵게 구한 돈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남자. 에르도사인은 역시 눈물로 그녀를 보내준다. 그는 결국 점성술사와 함께 이 사회를 엎어버리자고 결심한다.....
결국 이 소설은 그 결심에서 끝난다. 당연히 그 뒤의 이야기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여기서 소설이 끝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장점이 그렇게 많은 소설은 아니다. 물론 좋은 소설이다. 좋은 소설과 장점이 많은 소설은 다르다고 한다면 이 <7인의 미치광이>는 분명 좋은 소설임에는 분명하나 장점이 많은 소설, 독자에게 재미를 주거나 환희를 주거나, 많은 생각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소설은 아니다. 소설은 투박하고 불친절하며 읽기 힘드는 정신세계를 나열하여 독자를 조금 지치게 한다. 그런 이 소설의 몇 되지 않는 장점 중 가장 빛나는 장점은 바로 역적모의에서 소설이 끝난다는 점이다. 왜 여기에서 끝을 내야 했을까? 그것은 이 사람들의 역적 모의가 그야말로 모의에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끝은 안보여줘도 우리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그들의 끝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 소설의 결말은 더욱 좋은 마무리를 나타낸다.
미친 사람들의 역적 모의는 모의에서 항상 끝나게 마련이다. 왜 그들의 역적모의는 모의에서만 끝나고 말까? 그들이 진정 미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왜 미쳤을까? 사회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소외되었고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위해서 미치기 시작했다.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했고 자그마한 것에도 큰 의미,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침소봉대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은 무언가 특별한 존재들이라고 자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미치기' 시작하자 더욱 사회는 그들을 내몰았다. 악순환의 반복. 조금 모잘랐던, 혹은 조금 달랐던 그들을 미친 사람으로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다. 그들을 미치게 만든 것은 결국 사회이자, 한마디로 '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 '돈'을 갈구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그들에게 가장 확실한 화두는 '돈'이다. 그것이야 말로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의 가장 상징적인 한가지 글자이다. 결국 그들은 역적 모의만을 갈구한다. 모의 만으로 그들은 이미 자신의 병을 치유하고 있다. 우리가 로또를 사면서 이미 로또에 당첨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모의만을 통해서 이미 그들이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얻는다. 물론 그들이 실제 행동에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시도해보았자 그들의 행동은 곧 무위로 돌아갈 것이며 사회에게 그들은 체제전복의 중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저 미친 사람들의 조금 조직화된 미친 짓으로 치부 될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미쳐가고 그들의 진지한 미친 행동은 사회에 의해 천착되어 그냥 미친짓, 증세가 더욱 심해진 미친 짓으로 환원된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로 더없이 진지하다.
7인의 미치광이는 정말로 미쳤는가? 미쳤다면 미쳤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그리고 그들을 미치게 만든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누가 미치게 만들었는지, 혹은 미친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 600페소와 2만 페소. 로베르트아를트는 그 두 단어를 반복한다. 그들은 돈'에' 미친 것일까? 돈'때문에' 미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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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은 갖가지 상념들로 들끓고""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통에""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꿈속에서 사는 듯한""몽유병자처럼""악몽과도 같은 세계를""공상에 빠져 있을 때면""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이 몰려들었다""악몽처럼 끔직한 장면이""이미 또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그의 상상은 미끄러져 들어갔다""이런 상상도 했다""바보같은 몽상은""몽유병자처럼 미끄러지듯""상상 속에서나마""희한한 꿈을""자기가 본 유령에 관해""이 특별한 오후의 망상은""상상으로만 꿈꾸던 것이 드디어 눈앞의 현실로""장면을 떠올렸다""잠깐 엉뚱한 생각을""의식이 더 희미해지면서""눈을 감자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환상에서 깨어났다""순간 어두운 나락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것처럼""위험한 꿈을 꾸는 사람처럼""다, 꿈이었어.""영원히 잠들고 싶었다""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정체를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린 것 같았다""다 꿈처럼 느껴졌다""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지금 들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문득 떠올랐다""냉정한 생각이 굳어졌다""다시 상념에 잠겼다" "모든게 꿈결처럼 아득하게 보였다""강박관념, 아니면 망상이 뭔지""머릿속에 섬뜩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딴 생각이 드는거지?""온갖 생각들이 들끓으며 혼란에 빠졌다""깊은 생각에 잠긴 채""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상념이 이어졌다""기억의 편린들이""과거의 기억이""생각나는 걸까?""기억이 떠올랐다""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온갖 상념에 잠기곤 했다""이런 꿈을 꾸기도 했다""떠올랐던 장면을 돌이켜 보았다""선연하게 떠올랐다""끔찍한 상념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상상의 날개를 펼치며""정신만큼은 자유롭게 돌아다닐수 있도록 허락했다""눈부신 암흑의 세계가 펼쳐졌다""상상속에 등장한 여인의 모습은""검은 집의 심연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지내다""생생하게 눈 앞에 떠오르기도 하고요""가끔 꿈속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내 기억으로는""기억의 편린들이""기억속에 그토록 생생히""딴 생각이 나는 거에요""생각해 보기도 했어요""이런 망상이 사라지고 나면""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했죠""이런 환영들은""과거의 편린들이""치욕적인 기억들이""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악몽에 시달린 사람처럼""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모습이 떠올랐다""모습만이 아른거렸다""기억속에서"'기억나?""눈을 감았다""달콤한 공상이""금 또한 환상이지죠""아주 아름다운 환상""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먼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기억속에서 아른거리고""소설속의 인물같은""상상하기 시작했다""상상하니""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아른거렸다""미쳤을 거라는 생각이""눈을 감았다""과거의 추억이 떠올라""기억이 온몸의 세포속으로 스며들자""자신의 내면세계 속으로""모습을 상상했다""상상속의 여인을 향해""자신의 삶을 떠올리며""상상속의 여인에게""수없이 떠올려 봤죠""생각에 잠겨 있는""장면을 상상했다""술집을 떠올렸다""아무리 생각해도""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생각했다.""머릿속에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사실이 떠올랐다""생각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그의 머릿속에는 늘""헛된 환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그런 생각을 해봤자""모습이 떠올랐다""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애처럽고 서글픈 생각이""온갖 상념들이""뇌리를 스쳤다""상상할 수 있겠어요?""상상도 할 수 없는 일""상상하곤 했다""꿈이라도 꾸길""생각나서요""화려한 꿈을 펼치다가도""생각을 하곤 했다""눈앞을 스쳐 지나갔다""생각에 이르렀다""꿈속에서 살았다""꿈을 꾸었다""공상의 세계에서""상상속에서 만나는"'상상의 세계 속으로""세계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먼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려보았다""상상만 해도""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상상했다""착각에 빠져들었다""생각만 해도""상상에 젖어 들 때면""모습을 상상했다""삶이 악몽처럼""이런저런 생각들이 어지럽게 떠올라""세계에 대한 꿈이""세계를 꿈꾸곤 하죠""상상도 못했네요""상상할 수 있어요?""구상에 몰두하느라""희미한 영상들이""여러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했다""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참신한 생각이 떠오르길""이런저런 생각을 해도""머릿속에서 떠돌던"'또다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깊은 생각에 잠겨""모습이 떠오르자""지난날을 돌이켜 볼수 밖에""희미하게 보였다"'다른 장면을 떠올렸다""기억을 더듬으며""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질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호텔로 가는 상상을 했다""깊은 생각에 잠겼다""도도한 모습을 상상하자""상상했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옛날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바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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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억지로 읽다가 나중에는 속도가 붙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텁텁한 맛은 개운하지 않다. 그럼에도 할 말은 꽤 생겼다. 허나 짧게 하도록 하자. 로베르토 아를트는 아르헨티나생. 1900년 초의 아르헨티나. 미친듯이 질주하던 아르헨티나. 내 영원한 연인이 태어난 나라. 그 사실만으로도 만점을 주고 싶으나 객관성을 유지해야지. 미친듯이 질주한다는 건 그야말로 속도를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이 되고 제정신을 잃기 딱인 배경이 주변을 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소설의 내용은 단순한 것 같은데 탱고 리듬 같다. 빠져들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빠져들고마는 반도네온의 끈적끈적한 서사성이 일곱 명의 등장인물을 탄탄하게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 어디 서사성이 있니? 너 미친 거 아니니? 라고 같은 책을 읽은 이들이 질문을 할지도 모를 일. 그냥 혁명을 둘러싼 곳에는 항상 서사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개인적인 믿음을 심플하게 표현한 것이니 그리 봐주시길. 마지막 페이지 죽인다. 에스프레소 다섯 잔 연거푸 들이킨 강렬한 각성 효과!
혁명이라구? 미친 소리. 지금 이 시대에 무슨 혁명을 하겠다는 건가. 자본이 모든 걸 좌우하는데. 우리 에르도사인이 그걸 눈치채고 재빠르게 도망가버린 거 아닌가. 뻘소리 마구 해대는 점성술사도 어지간히 미치긴 했지. 저게 다 말이 되는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랍시고 계속 해대니 당할만큼 당했다 아이가 나 이만 퇴장하련다, 이 미친놈아. 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그래도 예의 좀 차려야지 하며 에르도사인은 당신 꼭 레닌 운운 한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는데, 점성술사가 좀 더 미쳤더라면 일이 잘 풀렸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런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딱 한 번만. 이 말을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할까? 딱 한 번만. 누군가에게 이런 부탁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이나 하게 될까? 모를 일이다. 이 말 "딱 한 번만."을 들으면 저절로 체 게바라가 떠오르고 혁명의 붉은 아이콘으로 추락하고만 그의 베레모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 내 별은 하나. 말하나마나 당신 별도 하나.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딱 하나씩의 별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다 한 번뿐인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꿈도 하나. 난 꿈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알아? 은하수에 떠있는 저 무수한 별들만큼 갖고 있다고? 하신다면 네, 그렇죠, 저도 얼마나 수많은 욕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짓뭉개고 있는데요, 당연히 잘 알죠. 그래도 딱 하나, 죽을 때까지 이것만은 이루고 싶다는 꿈, 그건 최종적인 꿈 하나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로베르토 아를트의 인물들은 그 하나뿐인 꿈들 다 어떻게 한 걸까. 허망해지려고 한다. 붙들어야지. 꼭. 놓치기 싫단 말야.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역시 아 저 미친놈이 드디어 일을 냈구먼. 그에게 표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빨갱이 같은 년이라고 내게 수없이 욕을 하던 정반대 색깔을 지닌 아빠와 두손을 맞잡고 미친듯이 웃으면서 테레비 앞에서 환호성을 내질렀던 게 바로 엊그제 같다. 내게도 아빠에게도 그는 우리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대통령이 되고난 후에도 그는 그 미친놈 같다는 소리를 귀에서 진물이 나올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하는 욕을 듣고 또 들어도 마냥 침묵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병상에 누운 아빠 역시 계속 욕을 해댔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날, 그가 절벽에서 낙하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 후 진통이 시작됐다. 새벽 내내 돌아가신 아빠와 절벽에서 낙하한 그와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과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애 낳다 미치는 거 아냐.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건 없었다. 광기에 대한 공포가 스물스물 척추를 타고 자궁 안에서 발버둥치는 내 아이에게까지 전달될까봐 두려워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런. 말이 헛나왔다. 샛길로 빠지는 것도 모르고 마구 달렸네. 쨌건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가슴 속의 별 하나 잊지 말고 미친듯 태워달라는 부탁을 나나 당신에게 하고 싶어서 주절주절. 난 이 사람들 다 이해할 수 있어. 에르도사인도 이해할 수 있어. 이해의 폭은 광기의 영역 그 너머에까지 도달하는 걸 거야. 물론 이건 주관적인 주절거림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얼마 전 본 영화에서 미친 슈만이 클라라의 품에 안겨 중얼거리는데 왜 그렇게 울음이 터져나오던지. 미친 슈만이 지도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멈칫거리며 그어대는데 그 모습에서 나는 체 게바라를 보았다. 이런 미친 소리를 언제까지 계속 할 거냐하면 곧 끝나니까 좀. 뜨거운 커피가 다 식었다. 젠장. 요 며칠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나는 문득 체 게바라가 그리워졌다. 광기의 여러 형태가 존재하지만 체 게베라는 분명 그 시대의 미친놈이었다. 만일 내 딸이 의사 길 포기하고 남의 나라 가서 혁명 운운한다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못 가게 했을지도 모른다(엄마가 되고보니 그런 심정도 조금 생기더라). 그리고 그는 꿈 하나를 이루고 베레모에 별 하나를 달았다. 쿠바에서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는 미쳤으니까 볼리비아까지 갔다. 그곳에서 별 하나를 더 달지 못하고 생명을 담보로 그 스스로 별이 되어 하늘나라에 가서 박혔다. 사람들의 심장에 박혔다. 이 시대, 그처럼 호탕한 웃음을 짓는 미치광이 하나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바라고 또 소망해본다.
+ 읽으면서 좀 신났고 좀 공감 많이 갔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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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펭귄반 독서모임 지기 삽하나입니다. 퇴근이 늦어 부랴부랴 집에 와서는 곧장 욕실로 직행하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건지 찜질을 한 건진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여파로 몸이 축 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콤푸타 앞에 앉아 후기를 기다리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저를 어여삐 봐주시기를 바라며 후기 시작합니다. (숨 안쉬고 읽은 사람 있으면 어디 손들어 봐요...
자리를 빛내주신 참가자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레몬숲님 2. asodie님 3. 지양님 4. 데미안님 5. 미메시스님 6. 둘리고고님 7. 엘루어님 8. hyem님 9. 삽하나(나임ㅋㅋ)
모임 선정 도서는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본격 모임을 진행하기에 앞서 각자 알아서들 intro 가볍게 진행해주시는 아름다운 모습! 아, 저 정말 감동먹었지 뭡니까. 더욱이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요리조리 비춰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신 분들이 대부분으로 구성된 펭귄팀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그대들도 주인공들 못지 않게 대단히 미쳤다는 말. 아잉. 농이어요.)
1. 지금 누가 누굴더러 미쳤대?
현실에 대한 자학 냄새가 짙어 읽는 내내 괴로웠다는 누군가의 말에서부터 '정말 제대로 미친 것들이 아니냐'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내 저자 아를트의 서사방식과 그가 어디로부턴가 소환해온 캐릭터 하나하나가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상당하다고 말을 꺼내주신 asodie님에 대한 동조가 쪼르르 줄을 이으면서 '미친놈'과 '안 미친놈'의 경계 따위는 무너졌습니다. 결국 7인의 모습은 우리와 상당히 닮아있다는 의견의 우세가 확실했다죠.
레몬숲_ 현대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기둥서방과 창녀 아니겠어요. 악어와 악어새 같은, 서로 기생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잖아요. 제대로 날카롭게 비유하고 있는 거죠.
지양_ 사실 일수업자가 삥땅친다는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지 않나요. 미쳤다고 하기엔 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용어가 떠오르네요.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사상을 가리킨 이 말이 왠지 이들의 세상에도 적용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이 지독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7인, 그들이 딛고 사는 현실 만큼이나.)
2. 방황하는 그대 마음 속 (이 죽일 놈의) 수학 공식.
그렇습니다. 7인은 미치지 않았답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좁혀지는 가운데, 우리 펭귄팀 멤버들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자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데미안_ 7인, 이들은 자기정당화를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어요. 자기정당화의 반복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삽하나_ 후후. 하이파이브합시다. 데미안님과 통했어요. 텍스트를 다시 한 번 들춰봅시다.
"사람의 마음 속엔 우리도 모르는 어떤 수학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이나 숫자의 조합을 지배하는 원리처럼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원리와 법칙 같은 것 말이에요." _ p.111: 13~
그리고선 저는 얼마 전 우연히 영어회화 스터디에서 접한 자기정당화의 공식을 들고 나와 화이트 보드에 삼각형을 그려가며 허접한 '1분 강의'를 했습니다. 스터디 할 땐 이거 뭐 어디 쓸모 있겠냐며 투덜댔는데 여기서 유용하게 써먹다니. 역시 사람은 뭐 하나라도 더 알아야…. 여하튼 이 공식에 따르면 '자기 정당화'는 다음의 A와 B가 불일치할 때, 즉 A와 B의 결과가 마이너스를 낳을 때 발생합니다.
A(attitue/behavior/belief) ⓧ B(knowledge) = C(cognitive disonance)
좋은 예: 평소 데미안님을 별다른 이유없이 마음 속으로 지독히 싫어하던(-B) 삽하나. 그렇지만 매번 모임 때마다 마주치는 그를 냉랭하게 대하는 것은 모임 지기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억지로 친밀감을 표시하거나 적당한 예의를 차리고 있다.(+A) 마음과 행동이 불일치 하므로 -C, 즉 '인식의 불일치(cognitive disonance)'를 낳은 것.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A ⓧ -B = -C
결과가 마이너스(-C), 즉 인식의 불일치로 인해 맘이 내내 편치 못하다. 바야흐로 '자기 정당화'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로 만들기 위해서는 A를 마이너스로 고치거나 B를 플러스로 만들거나 둘 중의 하나. 그래서 삽하나는 데미안님의 장점을 보기로 했다.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어조는 마리아의 그것과 맞닿아 있으며 까맣고 짙은 눈동자는 진정 진실을 울리네. 게다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저 해박한 지식의 바다여. 아아. 내가 데미안님을 그동안 오해했던 거였어. 그리하여 삽하나는 진심으로 데미안님을 동경(+B)하게 되었고
+A ⓧ + B = +C
가 되었답니다. 데미안님. 사랑해요♡ 잇힝. (그리고 설명 끄읕.)
저희 펭귄팀 멤버들은 각자의 상황을 끼워맞춰 보며 저마다의 신세를 한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답니다. 여러분들의 공식은 어떠신가요. 술술 풀리십니까? 참고로 저는 수학이라면 질색입니다.
3. 별 일 없이 산다.
수학공식 때문인지 뭔지 몰라도 전원 모두 슬슬 골머리를 앓기 시작합니다. 1900년대 아르헨티나와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흡사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우울하다며 서로 앓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지긋지긋한 어두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난 '평범한 삶'이 아니냐는 말이 삽하나 입으로부터 툭. 하고 나왔습니다. 근데 이거 정말 어렵잖습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 공감 하시나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 일 없이 산다.'에 많은 젊은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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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미치광이 책을 처음에 읽기 시작했은 때는 동질감에 즐겁게 책장이 넘어갈 줄 알았다.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라는 에르도사인의 혼자말은 나 역시 혼자 있을때면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치 주인공에게 어떤 해답을 구하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찾을수 없고 책에 빠져드는게 벅차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상상은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에 대해서는 이 대사때문에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안쓰러운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기력하고 괴팍한 성격에는 가장 맘에 안드는 인물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에르도사인은 바르수트를 정말 죽일지 궁금해졌다.점성술사는 어떻게 산파를 본 남자와 만나게 되었을까? 바르수트는 남을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인가? 엘사는 왜 에르도사인과 결혼을 했을까? 우울한 기둥서방은 왜 점성술사의 일에 참여하는가? 에르게타는 진정 신자인가? 이폴리타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는 것인가? 소령은 정말 군부대원들을 움직일수 있단 것인가? 탐험가는 결국 허풍쟁이란 말인가? 기둥서방의 친구라는 변호사는 왜 그들의 모임에 왔던 것일까? 에스필라 가족은 다시금 풍족한 생활을 이루어낼수 있을까? 루시아나는 에르도사인의 "너 따위한텐 관심 없다." 는 말을 듣고 어떤 상처를 갖게 될까? 이런 저런 궁금증들이 속편에서는 풀어줄까? 궁금증들을 나열하다 보니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고 있으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진정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모르면서, 이런저런 논리로 단정짓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데 혼자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돈은 사람을 신으로 만들어준다. 따라서 헨리포드도 신이다. 그가 만약 신이라면 달도 파괴할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대사가 아닐까? 속편에서 자세히 소개된다고 하니 [화염방사기]속편이 더욱더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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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놈이 제 눈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가는데도,
ㅡ본문 p.132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설>에 비유하자면, 주인공 에르도사인의 감정은 범죄에 매료되고 돈에 매료된다. 모든 것은 허무와 거짓말로 귀결되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은 환상이다. 에르도사인은 마치 존경과 멸시를 함께 받는 종교인과도 같다 ㅡ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ㅡ <내 바깥에, 내 육체의 경계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p.120)).> 범죄와 비극을 바라는 그는 점성술사의 <목 매단 인형>으로 대치되며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을 스스로에게 가중시킨다 ㅡ 에르도사인이 발명가로 설명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즉, 허구에서 현실을 보고, 현실에서 허구를 본다. 악다구니로 살아가며 돈에 목숨을 걸고, <돈을 짝사랑>하는 거다(짝사랑이라는 게 중요하다). 오직 1㎠ 안에서, 딱 그 1㎠의 존재로서만. 에르도사인(우리)에겐 (유토피아와 같은)허구가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와 같은)현실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그는 (머리를 싸매고) 범죄(비극)를 꿈꾸는가. 자신의 모순된 허구를 모순된 현실에 덧붙여 꿰매려는 그(들)의 정신세계는 얼핏 불합리하게 보인다 ㅡ 위에서 말한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모순으로써 모순을 극복한다, 즉 거짓말로써 거짓말을 극복한다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시종일관 우울함을 가장한 『7인의 미치광이』는 그래서 더욱 우울하면서도 우습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를 만든게 아니라, <허구를 창조함으로써 현실을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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