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0%
  • 리뷰 총점8 4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홍길동을 영웅에서 내려놓다
"홍길동을 영웅에서 내려놓다" 내용보기
<홍길동전>을 처음 읽은 것은 이야기 속에서 홍길동이 자객 특재와 관상녀를 죽이고 집을 떠났을 무렵인 열한두 살 무렵이다.이미 그 나이에 헌헌장부로 초란의 시기를 샀을 정도로 조숙했고, 문무에 두루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길동은 분명 불세출의 영웅처럼 보였을 것이다. 탐관오리와 중들에게서 부당한 재물을 부당한 수단으로 빼앗아 힘 없고 굶주린 백성들을 돕는 의적이자 활빈
"홍길동을 영웅에서 내려놓다" 내용보기

<홍길동전>을 처음 읽은 것은 이야기 속에서 홍길동이 자객 특재와 관상녀를 죽이고 집을 떠났을 무렵인 열한두 살 무렵이다.

이미 그 나이에 헌헌장부로 초란의 시기를 샀을 정도로 조숙했고, 문무에 두루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길동은 분명 불세출의 영웅처럼 보였을 것이다. 

탐관오리와 중들에게서 부당한 재물을 부당한 수단으로 빼앗아 힘 없고 굶주린 백성들을 돕는 의적이자 활빈당의 당주인 동시에 신분의 구속과 한계를 뛰어넘어 율도국의 왕이 되는 인물을 두고 영웅이라는 이름 외에 무엇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들어 다시 읽은 홍길동전 속 홍길동은 어린아이다운 충동과 치기를 품고, 자신이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소극적인 면모와 함께 주어진 신분을 팔자라고 하는 변화시킬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나약함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장난은 어찌나 심한지, 왕과 아버지 앞에서도 풀인형 노름을 그치지 않았으니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방약무도하고 불충불효하기가 죽음으로 갚아도 모자랐을 게 당연해 보인다.

 이야기 속에서 보이는 왕과 관료들의 무능, 국가의 군사들의 무력함은 작가인 허균의 시선이 깊이 투영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하지만 동시에 양반이었던 허균이 갖고 있던 사고와 인지의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지만 허균이 그런 기록을 얻기 위해 홍길동전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계몽'을 위해서 적었을 것이라는 것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작품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들이 한결같이 초월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백성들 가운데 한글을 깨친 이가 적었겠고, 설사 읽었다 해도 홍길동의 삶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이자 시련이었을 게 분명하다. 뛰어난 재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 홍길동조차 나라를 떠나 타지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해야 했을 정도로 조선 사회는 단단하게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꾀하고자 힘을 모을라치면 도적이나 역적으로 몰아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그나마도 힘을 모으려면 돈과 명망이 있어야 했기에 양반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요구됐겠으나 그들 역시 양반이라 관습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후에 허균의 거사가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 역시 소설 속 불세출의 영웅과 보통 세상의 흔한 한 인간의 차이를 증거하는 것이다. 


어리다고는 하나 재지가 뛰어나고 심지가 깊고 굳었던 홍길동이 분함을 이기지 못해 자객과 관상녀의 목을 베어 던지는 장면은 영웅으로 기억했던 홍길동의 면모를 다시 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객이야 자신을 직접 해하려 했으니 정당방위라 하겠으나, 관상녀는 그저 초란의 말을 따랐을 뿐이지 않던가?

오히려 초란의 경우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사랑하고 아끼는 첩이라 하여 살려두니 그 안타까움과 실망이 더 크다.


관상녀의 죽음이 애석한 이유는 또 있다.

잘 쓰일 때는 편리하게 이용하다가 상황이 불리할 때는 간단히 처분되는 힘 없는 서민의 삶과 다를 것이 무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시키는대로 말을 전했을 뿐이건만, 관상을 본다고, 듣는 이를 현혹시킨다고, 요망하다며 목을 잃어야 한다는 건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관상녀의 삶은 우리 삶과 무척 닮아있다. 

지나친 욕망으로 치닫느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특재보다 인간적이며,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이 입과 능력을 써야 하는 삶이 관상녀의 삶이 아니던가.


관상녀의 죽음에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역시 쓸쓸함을 그칠 수가 없다.


허균이 개혁과 변화를 꿈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가 쓴 홍길동전이 증거하는 것처럼 그 변화와 개혁은 어디까지나 조선 사회의 근본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의 소극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 자신도 자기가 꿈꾸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도 보인다. 그 근거는 병조판서의 벼슬을 받고 물러나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홍길동의 행동이다. 만일 홍길동이 조선 안에서 자신이 꿈꾸던대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부모와 형제와 고향을 두고 외지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근거는 자신이 다스리는 율도국에서조차 조선의 관습을 따라 장자를 세자로 삼았다는 점이다. 

조선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의 관습과 배움에 따라 사고할 수 밖에 없고, 그 경향은 교육과 배움의 깊이가 깊고 넓을 수록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왕국은 그 후로도 번영을 계속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모를 일이다.

이제 홍길동을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놓으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는지.

비록 신묘하고 뛰어난 능력과 재주를 지녔지만, 결국 홍길동은 조선의 아들, 흔한 재상가의 천한 자식일 뿐이다.

c*********p 2015.05.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시 읽는 홍길동전
"다시 읽는 홍길동전" 내용보기
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던가. 무릇 고전이라 하면, 처음 읽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물론 그런 말이 모든 책에 적용되면 좋겠지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나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에는 해당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은 허균의 <홍길동전>은 이미 내용도 빠삭하게 알고 있고, 또 그 분량에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지라 읽기 전부
"다시 읽는 홍길동전" 내용보기

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던가. 무릇 고전이라 하면, 처음 읽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물론 그런 말이 모든 책에 적용되면 좋겠지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나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에는 해당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은 허균의 <홍길동전>은 이미 내용도 빠삭하게 알고 있고, 또 그 분량에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지라 읽기 전부터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서식 샘플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홍길동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조선시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내용도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 대에 홍승상 댁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온갖 역경을 딛고, 입신양명을 꿈을 이룬다는 것이 <홍길동전>의 기본 줄거리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서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홍길동은 비록 양반 집안이긴 하지만, 적서차별에 따라 관계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유머 코너에서도 하도 많이 소재로 삼아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한(恨)도 어린 홍길동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당시 심리치료가 없어서 그랬지 지금이었다면, 바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홍승상의 애첩인 초낭이 이제 막 십 대에 접어든 길동을 없애기 위해 자객까지 동원한다. 길동은 어디서 배웠는진 모르겠지만, 오묘한 도술로 위기를 벗어나면서, 초낭과 함께 이 일을 도모한 자객과 관상녀에게 복수를 한다. 그 어린 나이에 복수설한을 하고 강호에 나서게 되는 길동!

 

자신의 출중한 재능을 국가를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이가 갈 길은 빤하다. 도적의 무리에 합류해서 우두머리가 된 길동은 분신술을 사용해서 전국에서 백성을 갈취하는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의적 활빈당을 조직한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시대 최고의 명군이라 칭송받던 세종 시대에도 그렇게 간악한 무리가 많았던가. 홍길동의 눈부신 활약에 발칵 뒤집힌 조정은 그 당시로써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던 연좌제를 동원해서 길동의 체포를 도모한다. 이미 조정 신료의 작전을 눈치챈 길동은 임금과 대신을 한껏 농락한다. 도저히 실력으로 길동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길동이 원하는 병조판서직은 제수하고 그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꾼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한 길동은 임금에게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자금을 두둑하게 얻어내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먼 곳으로 나가 성도섬을 거쳐 율도국에 자리를 잡아 잘 먹고 잘 살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후복구가 한창이던 17세기 초반에 쓰인 <홍길동전>은 전란으로 사회질서가 극도로 혼란하고,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근간이 흔들리던 시기를 대변하는 사회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당장 먹고살 것이 없던 시기에, 건국 초기 세종 시대는 그야말로 당시를 살던 이들에게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회 부조리 가운데서, 자유로운 신분상승을 가로막고 있던 적서차별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수가 틀리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라고 선동하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기득권층에겐 아마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전통적 유교질서와 윤리야말로 양반들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할 가치였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던 판에, 재능과 실력을 갖춘 하층 세력의 대두가 기득권층으로서는 못마땅했을 것이다. 게다가 허균은 <홍길동전>을 한문이 아닌 상민이나 아녀자들도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저술함으로써 독자의 저변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국문 고전소설 작가의 영예는 허균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책의 실린 방각본 경판을 읽어 보려고 하니, 구두점과 띄어쓰기 구분이 되지 않아 현대 독자에게는 역시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적 요소에 그리스 고전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 살해 모티브까지 들어 있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가문에 화가 미치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자는 데 홍승상과 정부인 그리고 길현까지 가세하는 장면에서는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는 가문이라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비정함이 엿보였다. 전기소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의 재능은 홍길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 필요하다. 비록 도적 무리이긴 하지만, 입신양명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홍길동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도적에게 보이고 단박에 우두머리 자리를 꿰찬다. 분신술을 쓰며 전국 팔도를 누비며, 임금과 조정 신료까지 농락하는 이 영웅에게 누가 도전한단 말인가.

 

옥에 티라고 한다면, 허균은 역사 공부를 소홀히 했던 걸까? 세종 시대 이야기를 쓰면서 선조 시대에 만들어진 훈련도감을 언급하는 걸 보면 요즘 같으면 어림없었을 일도 세월이 수상하던 시기에는 그냥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한 모양이다. 그리고 경판 24장본과 완판 36본에도 할 말이 있다. 완본의 1/3가량이 줄어들 정도라면 그 디테일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날 게 분명한데 과연 누가 그런 편집을 단행했을까? 요즘 같았으면 저자가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어 보기도 했다.

 

읽을 때마다 또 새로운 <홍길동전>은 변화무쌍하다. 역시 고전의 맛은 접할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새로움이 아닐까? 옛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온고지신의 즐거움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고전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h******1 2011.05.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상 사회를 꿈꾼 허균의 자화상이다.
"이상 사회를 꿈꾼 허균의 자화상이다." 내용보기
우리가 '홍길동전' 하면 생각나는 그 유명한 문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나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고 홍길동이 서자 출신으로 가열차게 내질렀던 통탄의 한마디가 사실은 홍길동전의 주제이자 작가 허균의 소명 의식이자 당시 시대상을 가늠케 하는 발호의 표현이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내용을 전체 다 아는 이는
"이상 사회를 꿈꾼 허균의 자화상이다." 내용보기
우리가 '홍길동전' 하면 생각나는 그 유명한 문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나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고 홍길동이 서자 출신으로 가열차게 내질렀던 통탄의 한마디가 사실은 홍길동전의 주제이자 작가 허균의 소명 의식이자 당시 시대상을 가늠케 하는 발호의 표현이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내용을 전체 다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펭귄클래식(이하 펭클)'에서 제대로 번역해 내놓았는데.. 우선은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선 세종때 재상인 홍씨 가문에 아들이 둘이 태어나니 하나는 본부인이 낳은 인형(완판에서 길현)이고, 시비(侍婢, 시중드는 계집종)가 낳은 길동이 있었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재주가 비범했음은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천한 여자 몸에서 태어난 죄로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며 통탄해 하는데.. 이에 아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첩이 자객을 들여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길동은 그들을 죽이고 아비와 어머니에 죄를 말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집을 떠난 길동은 바로 산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탐관오리를 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활빈당의 당수로 두목으로서 이른바 의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인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를 가만두지 않고 잡아들이려 하고 그의 아비와 형까지 불러들여 그를 끌여들이지만 그는 손오공처럼 똑같은 길동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냥 쉽게 잡히지 않는다거.. 

이렇게 그를 잡기가 싶지 않은 상황에서 길동은 병조판서 제수 받기를 원하고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병조판서 교지를 내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군대를 이끄는 한 무리의 수장이 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의적 활동을 그만두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잘못을 인정하고 조선을 떠나 심기일전하더니 이웃나라 율도국을 점령하면서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 늙어 죽을때까지 자자손손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홍길동전.. 누구나 대충 알아도 한번쯤 읽어보면 그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활약속에 양반 나리들과 탐관오리를 벌하는 모습은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홍길동은 그렇게 의적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라 조정에 수긍하고 또 아비와 형에게 효와 우애를 다하는 모습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의적으로만 그친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

이런 내용적 평가뒤에 홍길동전은 사실 여러 이본(異本)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면서 각 판본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적합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이번 '펭클'에서 소개했다. 그런데, 홍길동전을 허균이 안 지었다는 학계의 또 다른 설을 제기하는데.. 예를 들면 허균 저작설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택당집>의 기록이 저자의 사후에 편집된 것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견해와,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될때 <홍길동전>의 저작 사실이 죄목에 포함되었어야 하는데 그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 또 허균의 인품이 간사하고 음흉하여 <홍길동전> 을 지을 위인이 못 된다는 주장까지..

하지만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467)의 문집에서 <홍길동전>이 처음 언급된다는 점을 든다. 이 근거로 초창기 국문학자들은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자로 확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였다. 하지만 택당의 기록과 허균의 문학 활동을 통해 볼때 <홍길동전>은 연산군 때의 역사적 실존인물 홍길동(洪吉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강도행각으로 처형 기록이 있다.)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 전(傳)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결국, 허균이 역모에 연루되어 불행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그의 저작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국가의 정체성을 비판한 <홍길동전>은 금서가 되어 더 이상 세상에 전해질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읽고 있는 지금 작품은 수백년이 지나서 1890년경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변이가 이루어졌는지 허균의 원작이 과연 국문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한문으로 지은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국문으로 번역해서 전한 것인지등에 대한 추론이 난무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홍길동전>의 초기 이본들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간행 지역에 따라 하나는 서울 지역에서 간행된 경판계이고, 다른 하나는 전주 지역에서 간행된 완판계이다. 물론 두 계열의 기본 줄거리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세부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완판 36자본이 좀더 상황 묘사가 디테일 하고 사투리가 많이 사용돼 다소 번다한 편이다. 꿈속의 내용이라든지 전개 과정속에 홍길동이 율도국을 치는 상황 묘사등이 말이다.  

이렇게 여러 모로 봤듯이 홍길동전은 당시 조선 중기 사회의 아니 조선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사회적 병폐였던 적서 차별에서 재기된 신분 차별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가열차게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허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비록 양반집 자제였지만 스승 이달 선생 또한 서자 출신으로 뛰어난 학식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빛을 못봤듯이 그가 스승을 위해 지은 <손곡산인전>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또 자신 스스로 민중의 삶과 유교적 터울에 얽매힌 규제에 대한 타파등 그는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적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물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만인 평등의 미래 사회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선소설사(朝鮮小說史)>의 저자 김태준은 <홍길동전>이 허균의 사상과 삶이 강하게 투영되며 허균의 자서전이자 주인공 길동은 허균의 자화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국, <홍길동전>을 통해서 허균이 설파한 이상사회에 대한 갈구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제시된 사회 비판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하여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이것은 문학사적으로 사회의 메세지적 최초의 한글 소설임과 동시에 한국 소설사상 중요한 가치와 함께 기념비적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적 홍길동이라는 기본 개념에서 탈피해 그 이면에 숨겨진 가치를 진중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ㅎ
r*****2 2010.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길동까기
"길동까기" 내용보기
고전을 가장 유익하게 읽는 방법은 자신만의 시대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고전들은 옮긴이의 시대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고전이 쓰일 당시에 강조   되었던 부분을 가볍게 언급하기도 하며, 현재의 사람들이 어려워할 묘사나 문화는   다시 표현하고, 반대로 현재 공감할 만하고 부각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확대해서   다룬다. 이런 면에서 내가 읽은 "홍길동전,
"길동까기" 내용보기

  고전을 가장 유익하게 읽는 방법은 자신만의 시대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고전들은 옮긴이의 시대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고전이 쓰일 당시에 강조

 

되었던 부분을 가볍게 언급하기도 하며, 현재의 사람들이 어려워할 묘사나 문화는

 

다시 표현하고, 반대로 현재 공감할 만하고 부각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확대해서

 

다룬다. 이런 면에서 내가 읽은 "홍길동전, 정하영 옮김"의 느낌은 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옮기려 했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책을 옮기고 옮긴이가 한마디를 했다면,

 

"무엇을 중요시 읽고 생각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원문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의도를 알았기에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쉽게 읽지 않았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으며 생각할 부분이 있으면 쉬어갔다. 가장 집중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에 본능은

 

그 때도, 역시 지금도 존재했다. 길동은 능력 있는 강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약자를 정복한다. 부패한 관리들은 쉽게 농락하지만 왕의 권위에는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는다. 특히 소설의 후반부 율도국을 정복하려는 길동의

 

근거는 단순한 강자 자신의 욕망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본성은 분명 변하지

 

않는 우리의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통념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을 강자로,

 

돈 없고 못 배운 사람을 약자로 취급한다. 작게 보아도 어느 단체 가던 강자와

 

약자는 나뉘어 있다. 어린이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초등학교에서도 따돌림 당하는

 

약자들이 있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강자들에 의해 약자들의 목소리가 무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강자를 강자로 약자를 약자로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본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수많은 경쟁이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과 강자로서 누리는 순간의 쾌락과 우월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본성에 대한 고찰은 인간을 보다 성숙하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른 잣대를 들이대기 힘든 만큼 상황 판단을 잘 해야 하며,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개인의 성숙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적이고,

 

모두가 공감할 만한 기준이 나오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또

 

행동한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더 가치 있게 변할 것이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길동이 자신의 천한 신분을 부모에게 한탄할 때

 

부모의 반응 이었다. 길동은 자신이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지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함을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의 위로의 

 

대답은 "재상의 천한 자식이 너뿐만이 아니거늘 마음에 두지 마라"이다. 길동은

 

자신이 관직도 얻지 못함을 어머니에게 찾아가 말하지만 어머니는 "재상의 천생이

 

 너뿐만이 아니거늘"이라 하시며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한다. 이 부모의 대답은

 

정말 위험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함을 나무라며

 

그것에 대한 근거는 단지 다수의행동과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과 생각에 소수의 말이 무시되는 상황이다.

 

  나는 이런 가치관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때 No를 할수 있는 사람"이라는 광고 가피가 기억이 난다.

 

이런 가치관은 특히 옳고 그름을 불투명한 상황에서 더욱 빛(?)이 난다. 다수의

 

의견과 관념이 횡포를 부리고, 별 생각 없이 있던 사람들까지 습관처럼 그들의

 

편이 된다. 그리고 이 다수는 어디서나 당당하다.

 

  이러한 부분은 특히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다. 요즘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인기그룹 2PM의 재범의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가수가

 

되기 전 했던 우리나라에 대한 욕이 알려지고, 이것이 텔레비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의 두 가지 얼굴이라며 인터넷을 통해 일이 커졌다. 인터넷을 통해 뭉친

 

다수는 한 가지 의견으로 그를 몰아 세웠다. 그 가수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문화는 굉장히 위험하다. 더욱 황당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이런 문화를

 

통해서 결론이 난다는 것이다. 그 재범이란 가수는 결국 한국을 떠났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조금도 의미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그가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다수의 의견이 틀리고 소수가 옳을 때도 있다. 소수가

 

다수를 이끌기도 한다. 경제학에서 자주 나오는 20:80 파레토법칙도 있지 않은가?

 

다수의 의견으로 뽑아놓은 대통령에게 대다수는 왜 하루가 멀다고 욕을 하는 것인가?


자신의 생각없는 글이 위력을 발휘 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에서야 찾아본 내 자신이

 

부끄럽다. 미국의 제인 오스틴과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 전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구지 그 이유를 찾자면 우리나라의 고전을 소개하거나 광고하는것을

 

접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오만과 편견만 보더라도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으며 어려가지 패러디도  것도 심심찮게 보인다. 수많은 재해석 번역본은

 

당연하다.

 

 그만큼 그들의 문학에 자부심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런 것들은

 

보면 우리가 우리 것을 보는 문화적 시각이 그들과는 비교가 된다. 우리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좋은 작품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특히 우리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고전작품의 경우는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c****l 2009.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홍길동전] 허균/정하영 웅진씽크빅(펭귄클래식)
"[홍길동전] 허균/정하영 웅진씽크빅(펭귄클래식)" 내용보기
3.5   100페이지, 24줄, 25자.   (다음에 리뷰하는 것과 나란히 놓고 보았습니다. 세째가 수행평가인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요.)   홍길동전에는 경판본과 완판본이 있다고 하면서 둘을 다 배치했습니다. 나란히 할 수가 없는 것은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판본이 앞서 나왔다고 하면서 앞에 배치되고 완판본은 뒤입니다. 각각 37페이지와 62페이지입니다. 작품해설이 뒤따르고
"[홍길동전] 허균/정하영 웅진씽크빅(펭귄클래식)" 내용보기

3.5

 

100페이지, 24줄, 25자.

 

(다음에 리뷰하는 것과 나란히 놓고 보았습니다. 세째가 수행평가인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요.)

 

홍길동전에는 경판본과 완판본이 있다고 하면서 둘을 다 배치했습니다. 나란히 할 수가 없는 것은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판본이 앞서 나왔다고 하면서 앞에 배치되고 완판본은 뒤입니다. 각각 37페이지와 62페이지입니다. 작품해설이 뒤따르고 경판본의 목판사진이 부록처럼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가 152페이지인데 아마도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기 위하여 추가된 게 아닐까 합니다.

 

두 판본 모두 세종 때의 판서 또는 정승이라면서 숙종 때의 도적 장길산이 '그 옛날'이라면서 언급됩니다. 모순이지요. 경판본에서는 그냥 홍판서이고, 완판본은 홍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큰아들 이름도 인형과 길현, 자객의 이름은 특재와 특자, 곡산모(어미)를 각각 초란과 초낭, 길동의 부인이 백룡의 딸 백소저와 조철의 딸 조소저 이 둘과, 백용의 딸 백소저, 정과 통의 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거한 곳이 각각 불확실과 남경 밑의 율도국이고, 완판반에서는 성도, 제도, 율도국입니다. 완판본에는 판소리 같은 대목이 잦고, 중국의 지방이나 관직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 국어교과서에서 본 것은 (둘뿐이라면) 경판본입니다.

 

결국 허균이 지은 것이 맞는데 이 작품이 허균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는 게 배경설명입니다. 지은 시기와 본격적으로 출현한 시기에 2백년 정도의 간격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120817-120817/120817

k****8 2012.11.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