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성향이 강한 책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나 무슨무슨 주의를 주입식(?)으로 강조하는 구조는 더우기 별로이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고 한편으로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조지 오웰의 글을 별 거부감 없이 다시 보게되는 이유는 그 당시의 정치가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거부감이 들었을 주제이겠지만, 뭐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는 - 물론 정치적 변화는 있어왔겠지만 -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우화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도 공감이 가기에 충분하다. 현실에 비추지 않아도 계급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 라면 씁쓸하게 혹은 썩소를 날리며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배를 부당하다고 느끼던 동물들이 반란( "혁명" )을 일으킨다. 정당한 행동으로 한 혁명으로 현재의 사회를 뒤엎고 동물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동물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정의롭게 보여진다. 하지만 그렇게 새롭게 세워진 사회에 다시 지도층이 생기고 그들이 다시 개인의 잇속을 채우는 사회적 자본주의를 터득해가며 정적을 내몰고, 시대의 앞잡이가 등장하고 , 성실하게 지내온 선량한 자가 다 써서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소모품으로 버리는 비도덕적인 정부(?)로 타락해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돼지가 선동자요 위선자로 나오는데 어찌보면 이렇게 약삭빠르고 시대의 바뀜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도 어렵지않게 마주하게 된다. 회사에서도 이렇게 이리저리 좋은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경우가 많고, 뒤로는 욕을 할지언정 앞에선 고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것이 세계대전 후의 암울했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도 어찌 그리 똑같은지.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기득권층은 불편한 진실에 눈살을 찌푸릴테고, 아무말도 못하는 다수의 대중들은 속앓이만 하는 현실말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동물로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탐욕스런 사람과 거들먹거리는 돼지 :게다가 막판에는 돼지는 사람 흉내를 내며 뒷 발로만 걷는 우스꽝스러운 짓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들을 지휘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것이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과 욕심만을 위하여 공유 재산을 관리하고 동물들을 억압하는 공권력을 쓴다 - 개들을 광폭하게 훈련해 동물들을 공포스럽게 만들며 자신들의 의견이 옳고, 복종만 하게 만들려 한다 - 처음 혁명을 일으킬때는 순수한 열정과 모두를 위한 동물농장을 건설하려는 것이 다였지만 거기에 사리사욕이 들어차니 이익배분'에 공평함이란 사라지고, 수확물의 90%는 지도자인 돼지의 몫이 되고 나머지로 대다수의 동물들에겐 형편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동물들은 그런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인간들의 지배 아래있을때보다 잘 먹고 잘 산다고 인식하게 지속적으로 주입당한다.
우리 돼지들은 두뇌 노동자요.이 농장의 관리와 조직 전체가 우리 어깨에 달려 있소. 밤이나 낮이나 우리는 여러분의 안녕과 복지를 챙기고 있소.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것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요. 만일 우리 돼지들이 의무를 게을리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소? 존스(농장주인, 인간)가 돌아올 거요! 그렇소, 존스가 돌아올 겁니다! 틀림없소, 동무들.
인간 치하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영유할 것이라 여기던 대다수의 동물들은 또 다른 탐욕자인 돼지의 지배하에 더 커다란 고통을 맛보게 된다. 어찌보면 인간 세계와 너무나 닮아 있어 섬뜩하기만 한 우화인데, 과장되지도 덧붙이지도 않은 딱 인간사회의 일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의와 진리가 탐욕과 거짓이 난무하는 진흙탕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런 사회가 지구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어쩌면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런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사회주의니 민주주의니 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이라는 포자에서 자라는 탐심'이 어느 사회에서나 광범위하게 퍼질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욕심과 허영이 사라진다면 거긴 현세가 아니라 천국일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지 오웰이 서문에서 동물의 관점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분석했다고 적었는데, 끝에 인간과 돼지가 협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계급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득을 취하기 위한 제스츄어였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이 계급투쟁을 하는것은 넌센스다. 인간은 여차하면 동물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빚대어 씌여져 출판하기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은 별반 없을테니 말이다.
|
|
동물 농장의 전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늘 부분 부분의 내용만을 알고 있어서 전체적인 줄거리가 궁금했었다. 특히 돼지들이 나서서 말하는 7가지 계명이 어느 부분에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또한 동물 농장이 정치풍자 소설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어떻게 풍자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던 차다. 역시 궁금증은 풀어야 한다는 뿌듯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항한 동물들의 투쟁이 나오는 소설 정도로만, 동물농장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두 가지를 집어 본다. 먼저 '복서'라는 말의 이야기 이다. 복서는 아주 충직한 일꾼이다. 농장을 위해 뼈빠지게 일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국가와 그 사회 시스템을 위해 '제 한 몸' 바쳐 일하는 충실한 역군이다. 그런 그에게 상위층의 가식적이기만한 배려는 악날하다 못해 잔인하다. 복서가 병들고 돼지들과 인간들의 손에 의해 넘어가는 이야기는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않는 사회, 불로소득과 특권의식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병튼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동물을 통한 풍자를 들 수 있다. 인간들 세계로 그렸다면 사실 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동물들에 빗대어 정치를 풍자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다. 마치 조선시대 탈춤을 통해 허위의식에 젖어 있는 양반들을 풍자했던 것처럼 무언가 속이 후련해 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동물들 중 수컷과 암컷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수컷은 영리하고 지도자 위치에 있거나 충직한 일꾼으로 묘사되는 반면 암컷은 몇 마리 나오지도 않으려니와 그나마 나오는 몇 마리의 암컷들도 어리석기 그지없다. 암말인 몰리는 참 '모르는 것'도 많고 리본으로 꾸미려고만 하고 상황 판단을 잘 못하는 어리버리함의 대표주자로 나온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동물들의 서열세우기이다. 나름 정리를 해보면 '돼지>말>암소>양>닭오리 등의 가금류>생쥐' 등의 순이다. 양이나 닭오리 등이 이 책을 본다면 무척 서운해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서열 세우기를 통하여 인간 사회에 있는 불평등 구조를 나타내려 한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왜 하필 저 순서여야만 했는지 궁금해진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돼지 지도자 였던 양대 산맥,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대결 부분이다. 스노볼은 '달걀 생산 위원회', '더 하얀 털 생산 운동'등의 집회에 열을 올린다. 반면 나폴레옹은 개들을 데리고 '어린 동물 교육'에 열을 올린다. 그 둘의 결과는? 나폴레옹의 승으로 끝난다. 스노볼도 나폴레옹도 모두 독재적인 동물로 묘사되지만 집회에 몰두했던 스노볼은 그래도 가식적으로나마 '민주성'을 띠려는 노력을 보인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독재자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형성하여 훗날 막강한 스탈린 같은 독재자로 거듭난다. 나중에 책 뒷부분에서 부록에서 나온 부분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지만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비유한 동물이었다. 부록에는 각각의 동물과 실제로 존재했던 러시아의 인물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꼭 그렇게 연결짓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렇게 한 명 한 명 연결짓기를 하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국가의 속성과 독재자에 열광하는 민중들의 형성 그리고 인간 사회의 단면을 집어보는 데 좋은 기회가 된다. |
|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인권을 갖는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인권은 없다. 인권은 오로지 권력자에게만 주어진다. 공산주의를 이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많은 양상이다. 평등을 원해 시작하였지만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유토피아는 없어졌다. “그녀가 미래의 모습을 꿈꾸었다면, 그것은 동물들이 굶주림과 채찍에서 벗어나 모두 평등한 사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메어저 영감이 연설하던 날 밤 자신이 어미를 잃은 새끼 오리 한 무리를 앞발로 감싸 보호해 주었던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 주는 사회였다.”p110 장원농장에서 동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메이저 영감이라고 불리는 돼지는 동물들에게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비참한 삶이 아닌 자신의 노동을 자신들의 삶을 위해 쓸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혁명을 하기를 권한다. 동물들은 메이저 영감을 통해 자신의 힘을 인식한다. 그리고 자신만을 아는 농장주인 존스를 농장에서 몰아내고 동물들은 ‘동물농장’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동물들은 자신들끼리 살아가기 위해 동물들 중 머리가 좋은 돼지들 중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주축으로 ‘일곱계명’을 만들고 평화로운 농장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우유와 사과 등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기 시작한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동물농장을 장악한다. 그리고 스퀄러를 이용하여 동물들의 생각까지 지배한다. ‘사실을 기억했다. 아니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커다란 짐마차를 커다란 짐마차를 몰고 좁은 길을 가며 말이 회전하려 할 때마다 채찍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런 동물들이 자신의 힘을 인식하게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통제 할 힘이 없을 것이며,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것은 부자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거의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퍼뜩 떠올랐습니다.” 조지 오웰이 우크라이나 판 서문에 쓴 말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 채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착취당한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서 우리는 통제되고 있다. 스스로의 힘을 전부다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아야한다. 어떠한 권력으로도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메이저 영감이 말한 동물농장을 꿈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농장은 유토피아이고 장원농장이 현실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갈 수는 없다. 이 이념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동물농장인 것이다. |
|
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후기작 '동물농장'과 '1984'가 최초로 번역된 것이 어느 나라 말인지 아는가?
'한국어'이다. 왠지 뿌듯하지 않은가?
더더구나 이 두 작품은 영국에서 출판에 어려움을 겪은 책이다. 그런데 정작 해외 판의 번역은 신속히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문제 때문이었다. 공산주의 확장이 가속화되고 세계에서 가장 심한 이데올로기 충돌이 일어나고 있던 한반도에서의 심리전의 일환으로 미국정부가 판권을 구입하고 번역 비용을 지원하여 한국어판 출판을 한 것이다. 이 후 다른 몇 나라 언어로의 번역도 미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많은 책이 무상으로 지원된 까닭에 이 두 책은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한 책이 되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우리나라 내에서도 수 많은 다른 버전의 번역이 이루어졌다. (2013년 올해 만해도 3권의 신간이 존재한다.) 아울러 유명한 작품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작가인 조지 오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일까? '1984'와 '동물농장'이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볼 때 작가에 대해서도 관재홍보(?)가 가능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조지 오웰은 이런 저런 다각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성향을 굳이 정의하자면 사색적 무정부주의자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보통의 경우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가 아나키스트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불안정, 폭력적인 느낌처럼,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되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사색적이라는 수식어가 말하듯 조지 오웰은 행동파나 진보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 말하는 좌로나 우로의 편향을 보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시골(?)에서 밭에 채소를 키우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전혀 혁명적인 성향이 아님에도 반정부주의 성향을 가진 이유는 아마도 국가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적이지 않았던 청년시절의 제국경찰의 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이 책의 내용은 영국의 장원 중에 하나인 매너농장에서 동물들이 각성을 하여 무능한 농장주를 몰아내고 동물농장을 경영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화로 표현되어 접근성이 아주 좋은 작품인데다가 소설의 모티브가 볼세비키 혁명 전후의 실제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이 계급혁명이 허상 있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서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반공 교육용으로 아주 적절한 책이다.
하지만 실제로 동물농장에서 이야기 하는 바는 그렇게 단순히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로 구분한 것은 아니었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무엇이며 사회주의의 반대는 무엇이냐 또는 자본주의 반대나 자유주의의 반대는 무엇이냐? 이렇게 원색적으로 물어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확하게 구분하여 답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방향이 다르다는 것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역시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모호하기 그지 없고 여전히 관념적인 이야기이다.
만일 이런 흑백논리(黑白論理)로 만으로 동물농장을 본다고 해도 동물농장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만 나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실제 이야기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에 정확히 표현되는데 그것은 돼지(동물농장의 지배계층)과 인간 농장주들(아마도 비 공산주의 국가들의 지배층 일 것이다.)의 얼굴이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물농장 밖의 농장주들을 현실세계와 그대로 대응을 하여 일부 사악한 농장주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물농장이 구소련(舊蘇聯)이라면 인간 농장 주는 영국, 미국 등의 서방세계의 대표적이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오웰은 '그 놈이 그 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소위 군사정권(문민정부 이전을 말함) 시절에 20~30대를 보낸 선배들이나 90년대 초 잠깐의 열정의 시기를 보낸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놀랄만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을 소위 운동권의 표현을 말하자면 '미제국주의' 정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오웰은 자신의 조국인 영국과 미국, 프랑스 같은 서방 자유주의 국가들 역시도 모양만 달랐지 동물농장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런 의도로 씌어진 책을 반공 교육용으로 배포한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보여준 반세기에 걸친 코미디 같은 정책들(미국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제거한 사담 후세인은 사실 미국을 등에 엎고 성장한 세력이다.) 그리고 히틀러를 지원한 유대인들(미국 내 유대계 유력인 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계 국가 창설을 인정하게 하자는 의도에서 당시 신진세력이던 히틀러를 지원한 사실을 말 함.) 거기에 미국보다 더 위험했던 영국의 불장난들(현재의 아프리카, 중동문제는 대부분 제국주의 시절 영국과 프랑스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결정했던 정책들에 기인한다.)을 보면 동물농장과 1984가 반공 교육용 교재로 보급된 것 고도의 전략이라기 보다는 이 작품들을 문자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아닐까 판단한다.
동물농장 내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부정적인 변화들은 결국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와 돼지라는 구별된 계급의 타락(?)에서 기인한다. 부르조아쥐를 몰아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어냈지만 다시 멘세비키와 볼세비키간의 갈등이 생기고 그 내부에서 또 다른 계급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사회주의의 철학적 바탕은 헤겔의 변증법에 기인하고 그 때문에 최초의 계급투쟁의 결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곧이어 다른 계급투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이미 이루어진 대로 또 다른 정반합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위 지도자 계층이 권력화 하면서 계급이 서열화 되었지만 권력자들이 그들의 권력을 사유화 하면서 또 다른 부르조아쥐를 변질된 것이다. 농장의 권력이 소위 엘리트였던 돼지들에게 독점이 되자 돼지와 그들의 무력인 개에 의한 독재가 시작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들은 소위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다른 형태의 권력이 등장한다. 비교적 민주적인 분위기의 자유진영에서는 극단의 독재는 지속되지 않았지만 대신 돈이라는 독재 권력이 생성되었다. 이 권력은 정치적인 독재자 처럼 반대세력이 적고 심지어 이 권력은 사랑(?)받기 까지 한다. 더 큰 문제는 돈이라는 권력의 돼지는 외부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개인 안에 아주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동물농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몸이 아직 동물농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미 ‘동물농장’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거기서 거기’,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상황, 바로 돈 앞에서 변질되는 모습들이 너무 나 쉽게 발견된다.
내 안의 동물농장 |
|
20세기에 나온 가장 중요한 정치 풍자 소설인 『동물농장』. 1945년 8월 17일에 처음 출간되었던 동물농장 초판본 서문을 수록하고, 결정판 텍스트를 완역하여 담았다. 이 작품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입장에서 쓴,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우화이다. 이 책의 핵심은 우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스탈린과 그의 부하들이 러시아혁명을 배반했다는 직접적인 암시에 있다.
|
|
펭귄클래식 세계고전 문학전집 50권을 사고나서 첫번째로 읽은 작품이 바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예전에 문학동네판 <1984>와 최근 <위건 부두로 가는 길>까지 읽고 나서 의무감?에 찾게 된 책.. 사실 어린시절 동화식 우화집으로 읽었던 <동물농장>을 이참에 제대로 읽기 위해서 첫번째로 선택한 작품이다. 역시 조지 오웰답다. 정치 풍자 우화답게 그만의 위트적 재미와 풍자가 가열차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치 풍자 소설 최고의 고전답게 국내에 여러 출판사에서 소개가 됐는데.. 특히 펭귄클래식 시리즈(이하 펭클) 책은 <동물농장>의 내용을 담기전에 앞 뒤로 알찬 구성이 돋보인다. 책 머릿말 서문에 외국 소설가이자 비평가 '맬컴 브래드버리'의 서문을 장황하게 언급하며 <동물농장>과 오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 이어진 '피터 데이비슨'교수의 말을 통해서 <동물농장>의 여러 판본과 원본도 언급하며 출판의 우여곡절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본 내용이 끝나고 책 뒷편에는 조지 오웰이 직접 쓴 서문이 부록1로 자세히 수록되어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또 부록 2에서도 우크라이나어판 직접 쓴 서문으로 자신의 생애와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정작 본 내용은 100여 페이지밖에 안되는 책이지만 앞 뒤에 비평, 판본, 서문등을 넣으며 알차게 구성한 펭클의 동물농장.. 이미 민음사등 다른 판으로 읽으신 분들이 많겠지만 간단히 줄거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장원농장의 동물들은 가장 존경받는 어르신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멋진 연설과 '영국의 동물' 노래 통해서 혁명을 예고한다. 이런 예고에 심취된 동물들은 자신들을 괴롭혀온 농장 주인 존스를 몰아내고 자기들만의 '동물농장'을 만든다. 모든 동물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 최대의 목표.. 일곱계명을 만들어 잘 협력하며 사는 슬로건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로 시작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혁명을 이룬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몫대로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전면에 나선 두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 그들은 협심해서 인간들이 공격한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한껏 고취된다. 하지만 두 수장의 대립이 심화되며 나폴레옹측은 스노볼을 반동으로 몰아 급기야 몰아내고 선동을 일삼는다. 결국 나폴레옹이 동물농장의 지배자로 떠오르며 그의 독단과 독재가 서서히 시작된다. 최대 건설 목표인 풍차 건설을 위한 노동력 착취부터 매회 집회 금지및 각종 규제등 농장의 분위기는 점점 살벌하게 변해간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 앞장서는 이는 나폴레옹의 오른팔 스퀼러가 앞장서 각종 선동 정치를 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어제의 동지가 적이되고 주창해온 일곱 계명이 하나씩 사라지고 바뀌는등 중심에 바로 그가 있었다. 그러던 중 외부 인간세력과 또 싸우게된 풍차 전투에서 동물농장은 위기를 맞이하지만 나름의 승리를 거뒀고 대신 풍차는 무너지고 말았으니 그들의 꿈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급기야 동물농장에서 가장 열심이며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며 최일선에 열심히 일해온 '복서'가 도살장으로 팔려가 죽게된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뒤 동물농장은 예전보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미 나폴레옹은 인간들과 거래를 통해서 자신들이 꿈꿔온 이상을 저버리고 동물들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간다. 급기야 나폴레옹 일파는 인간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 모습이 어느 것이 돼지이고 어느 것이 인간의 모습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는 소회로 <동물농장>은 끝을 맺는다. 이렇게 본 작품은 동물들을 의인화 시키며 우화 형식을 빌린 정치 풍자 소설이다. 즉, 각각의 동물들은 당시 오웰이 작품을 구상하고 출간되기까지 시대적 배경이 된 소련의 전체주의하에서 스탈린과 그의 부하들은 민중들이 일으킨 러시아 혁명을 배반했다는 직접적인 암시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런한 이유로 원고는 출간이 늦어져 4번의 퇴짜를 맞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런 출판거절은 좌익, 중도, 우익 모두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서문에서도 조지 오웰은 언급한다. 그런 소련의 전체주으로 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지만 영국의 이야기를 한 것이고 주로 스탈린주의의 진정한 본질에 관해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1941년 이후 영국의 소위 지식인들이 대부분 러시아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반복하면서 보여준 비굴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친러시아주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모든 억압 조직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비방하는데 집중했음을 또 말한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도 이 작품은 잘못 흘러간 혁명의 역사를 다루는 작품으로 또한 혁명의 원칙을 왜곡할 때마다 동원했던 온갖 변명들의 역사를 낱낱히 살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물로 의인화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공포와 선전이 난무하고 혁명적인 자기 배반 과정의 무서운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이러한 것에 반대하며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사상과 언론의 자유라는 점에 그는 존 밀턴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 "옛 자유라는 알려진 법칙으로..."를 인용한다. 이렇게 <동물농장>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입장에서 견지하고 쓴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정치 풍자 우화 소설이다. 물론 이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과거의 어떤 혁명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 아니 작금의 현실 사회나 정치에서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의 메세지적 드라마인 셈이다. 그래서 기억나는 여러곳의 위트적 문구들이 많이 와 닿지만.. 그중에서 양들이 주야장천 외쳐댄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로 시작된 슬로건이 나중에는 "네 발은 좋고 두발은 더 좋다"는 바뀌는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ㅎ |
|
고전 명작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눈에 들어온 책이 <동물농장>이다. 제목에 '동물'이 들어가서 왠지 친근하고 재미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글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책은 내 생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2차대전 후의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된 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비판, 풍자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너무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여기서 바로 동물들의 등장이 빛을 발하게 된다. 바로 그 동물들이 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인간을 빗대 주제를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글을 읽는 동안 놀란 점 중의 하나는 동양에서는 흔히 '돼지'라는 동물은 부정적 동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의외로 똑똑한 동물로 나온다는 것이다. <샬롯의 거미줄>이나 <꼬마돼지 베이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책이 일찍이 출판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회주의 지도자를 돼지로 비유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돼지를 똑똑하기는 하지만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동물로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게으른 존스씨가 운영하는 <장원농장>의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모두 쫓아내고, 농장의 주인이 된다. 그 동믈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일하고 쉬며,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동물은 돼지와 벤저민 영감이다. 돼지들 중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이 동물무리를 이끌고, 지도한다. 동물들의 좀 더 편안한 생활을 위한 '풍차건설계획'에서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크게 대립하게 되고, 결국 반대입장인 나폴레옹에 의해 스노볼은 농장에서 쫓겨난다. 이 때부터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의 지휘체계 아래 들어가게 된다. 처음, 동물들을 위한 7계명과 <영국의 동물>노래가 모두의 머릿속에서 차차 잊혀지고, 동물들은 존스씨때보다 더 힘든 노동과 적은 량의 식사를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자율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위안하며 살아간다. 돼지들은 인간과 거래를 하게 되고, 급기야 두발로 걷고, 술을 마시며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책을 읽고 난 후,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했다.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들이 나와있었고, 그들 중 분노를 일게 만드는 자와 안타까움을 더하는 자등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 '혁명'에 성공하고 난 후, 나조차 동물에게 반감이 들 정도로, 인간없는 농장생활을 너무나 잘 하는 모습에서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함께 신이 났다. 하지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자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광복후 다시 찾은 땅과 나라에 들뜬 국민들 앞에 다시 나타난 소련 군인들과 김일성이랄까... 하나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생각하니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나는 반복...
무지한 국민들은 지도자를 맹복적으로 믿고, 지도자들은 그런 국민들을 우롱하고 이용한다. 가끔 의심하는 자들도 있지만 미리 대비해서 의심을 가라앉혀 줄 언론역할을 하는 자도 반드시 있다. 그 무리를 이탈하는 자도 있고 방관하는 자도 있지만 대다수의 무지한 국민들은 지도자에게 복종한다. 돼지와 개를 제외한 모든 동물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어쩌만 그 모습이 내 조상의 모습이었고, 나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벤저민 영감이 침묵한 이유도 그는 아마 오랜 세윌동안 살아오면서 무지한 백성은 어느 나라, 어느 지도자에게서도 대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무지하고 순진한 국민을 위한 나라 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에서도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회의감이 들게 했다. 나폴레옹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음에도 숨겼는지, 아니면 스노볼과의 대립 속에서 권력욕이 솟아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욕심 하나 때문에 모두가 너무 절망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이것을 극복하려는 동물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책의 결말은 돼지와 인간의 얼굴이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동물들이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끝이 났더. 과연 다시 '혁명'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또다시 지도자는 누가 될 것인지, 과연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현실로 실현되었을지, 그들의 마음 속에만 있었을지도 궁금해진다. 어쩌면 결론을 작가가 쓰지 않았다는 것에서 ,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좌절할지 모르겠지만 그들만의 평등하고 즐거운 농장을 위해서 다시 스스로 도전하는 동물들의 모습말이다. 그것이 바로 쓰러져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잡초같은 민초의 모습이니 말이다. |
|
'펭귄클래식시리즈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어? 펭귄클래식시리즈? 처음 이름을 듣고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들인지 감을 잡을수 없는 웃긴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계적인 출판자 펭귄그룹과 웅진씽크빅 단행본그룹이 합작한 브랜드라고 한다. 정확성과 전문성을 갖춘 판본을 토대로, 학자들의 서문과 작품 해설및 각주를 충실히 싣고있어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새로운 고전 문학 시리즈라고 한다.
여러가지의 펜귄클래식시리즈에서 가장 첫번째인 '동물농장'을 집어 들었다. 조지오웰의 정치적인 풍자가 담긴 우화인 소설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읽지 않고 넘겨두었는데 이기회에 책을 펼쳐 들었다. 우선 이 책의 서문에는 '판본에 대하여' 부터 시작된다. 동물농장 판본에 대한 설명과 출판당시 사회 배경과 조지오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어 이 서문을 통해서 바로 뒤에 나오는 '동물농장'을 읽으면서의 이해도가 한층 올라감을 알수 있다.
장원농장의 동물들은 자신들을 착취하던 인간을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이루고자 혁명을 선언한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 인간들을 몰아내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며 '동물농장'을 만든다. 자신들의 혁명을 성공했고 '자유'를 찾아 환호성을 지르고 혁명의 노래인 '영국의동물'이 동물농장에 울려퍼졌지만 혁명은 완성되지 않고 그 안에서 또다른 착취가 생겨나게 된다.
작은 동물농장안에서도 하나의 작은 국가가 형성되어 있다. 동물농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고 흔드는 돼지들과 그 아래서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하는 여러 동물들이 또하나의 국가를 생성하고 그 국가의 틀에서 맞추어 살아 간다. 동물들은 자유를 원해서 혁명을 일으켰지만 혁명을 하고 나서도 진정한 자유는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를 좀더 살기좋게 변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노력 하나 하나가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도 옛날과 지금과 다르듯 언젠가는 누구나 살기좋은 국가가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책을 덮는다. |
|
동물 농장이란 명작을 나는 왜 읽지 않았을까...오래전에 나온 책인데...지금 생각해보니 이책 서문에 나오는 정치적 풍자니 뭐니 해서 딱딱한 면을 실어 놓은 탓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우화를 빌어 그 시대의 혁명이 있었던 시기를 보여주는 동물 농장에서 나는 슬픈 그림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부 지배층의 독단이 불러 일으킨 많은 학살, 무지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그 희생의 숫자를 더했을까하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메이저 영감의 이상한 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시작으로 주인인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의 세상을 꿈꾼다. 평화를 꿈꾸는 동물들의 농장 이름도 장원농장에서 동물농장으로 바뀌고 일곱가지의 계명을 지으면서 모두들 글자 공부를 하게된다.
일곱 계명 1. 두발로 걷는 자는 누구든 적이다. 2. 네발로 걷거나 날개가 다린 자는 누구든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으면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이 일곱 계명은 모든 동물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이제 평화가 찾아온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몰려드는 바람...암소들의 우유가 없어지고 사과가 없어지면서 의심을 하게 되지만 나폴레옹은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동물들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농장에서 스노볼을 쫒아내고 차츰 그 자리를 굳힌다. 나폴레옹과 스퀼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개들...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그들의 권력앞에 무너지는 동물들...그때마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보이며 잠재우는 스퀼러의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무지한 동물들이 있었다. 일곱계명은 돼지들을 위한, 그것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나폴레옹 앞에는 예외가 되어버리는 계명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동물들이 인간의 흉내를 내고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
여기에 나온 동물들이 상징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있고 특히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 촛점이 맞춰진다. 나폴레옹은 역사상의 인물 스탈린 역을 맡고 있는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많이 학살했다고 알고 있다. 부록에 나온 조지 오웰의 서문에 보면 쓰고자하는 이야기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을때 인간이 말에게 휘두르는 채찍을 보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투쟁이 진정한 투쟁이라는 것에 생각이 다다르고 이 책은 나오게 된다...
펭귄클래식을 통해서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책 한 권을 재밌게 읽을 수 잇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처음엔 그 정치적이란 용어에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읽고 난 다음에는 우화로 풀어쓴 이야기여서 더 좋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
|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읽어보면 참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우화적인 이야기로 한시대의 진보사상의 중심이었던 소비에트 공화국의 실상을 비판한 책이다. 대단한 지성으로 쉽게 쓴 책이다.
고전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반드시 읽독을 추천할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