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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 다닐 때 민주주의에 대해서 배웠다. 원래 민주주의란 국민의 직접적인 통치, 즉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하고, 그 원형을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찾았다는 기억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여러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가 국민의 이익을 대표케 한다는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학교에선 가르쳤던 것 같다. 또한 그렇게 선출된 대표자는 자기를 뽑아준 주민의 대표이기에 앞서, 전체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했지 싶다. 그러나 현실은 딱히 그렇지 만도 않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고, 국민은 오직 투표하는 날, 딱 하루만 그들이 말하는 주인이 될 뿐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민주주의야말로 우리들의 밥을 먹여주고, 우리들의 실질적인 생활과 커다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렇기에 진정한 대의(代議)를 수행하지 못하는 이러한 간접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는 그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군사정권으로부터 투쟁하여 얻은 자유, 우리는 그 자유를 정치적 자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 우리들이 요구했던 것들은 사실상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정치권력, 자본의 힘, 관료집단 그리고 제도언론은 철저하게 결합하여 우리의 정치적 자유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완전하게 억압하고 있다. 그러기에 제도권정당들은 권력의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는 굳건한 동맹자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수많은 선거를 통하여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차선(次善) 혹은 차악(次惡)을 가리는 강요된 선택만을 강제 당하고, 그 선택을 거부할라치면 민주시민이 아니라고 비난을 퍼 붓는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입에 물린 족쇄가 조금 풀렸다고 해서, 마치 그것을 다 얻은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는 자기들만의 경쟁을 통하여 대표를 선출한다. 결국 국민들은 그들이 선택한 대표들 중에서 한 사람을 뽑는 수동적 지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래 대의제도는 영국에서 귀족들과 같은 상류층의 클럽역할을 하는 걸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실현된 보통선거, 평등선거에 의해 대의(代議)라는 원리에 부합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당시 의회를 장악한 것은 부르주아들 이었고, 그들은 국민전체의 공공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특수이익을 추구 하였다.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대의제 형성의 역사는 프랑스혁명 이후 부르주아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처음 민주주의를 도입할 때 모델이 되고, 또 부러워하는 미국식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기 신대륙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타운(town)의 업무는 마을 집회에서 직접 결정하는, 거칠지만,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미국사회는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된 국가이자,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국가일 뿐이라고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말한다. 선거제도를 토대로 한 권력 장악에만 몰두하는 정당정치의 탐욕과, 그로 인한 총체적 무능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문제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는 결국 세계 각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고착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회민주주의란 대의제의 한 형식에 속할 뿐이고, 대의제는 간접민주주의 방식이다.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이 특정 선거구민이 아닌 전체국민을 대표하고,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의제의 이론은, 선거구민이 준 명령위임을 부정하고 전체를 위하여 선거구민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위임을 주창하고 있다. 그리고 명령위임을 배제하는 그 순간, 대표자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위치에서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 한다. 결국 이것은 국민을 배제시키면서 그들 계급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또 그렇게 국민들을 세뇌시켜 왔다. 직접민주주의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여러 난점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유일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인 것처럼 이데올로기화 된 것이다. 이렇게 선출된 대표들이 1퍼센트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 모델로 평의회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1871년 파리코뮌에서 그 이념을 형성한 평의회 민주주의는 국민들에 의한 직접적인 자기통치를 추구하며,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평의회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통합적으로 행사했다. 그렇기에 혁명기의 특수한 시기에만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다. 평의회 민주주의에서는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검찰, 공무원 모두 국민의 뜻을 받들어 수행하지 못하면 소환되고 해임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고시라는 시험 또는 통치권자의 의해 임명된 권력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월권이고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는 그 순간만 국민을 주인으로 받드는 척 한다. 그리고 이내 정당에 귀속되고 만다. 그리고 국민과 유리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당의 대표를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뽑고서 권력을 행사한다. 저자는 이러한 대표자에 대한 국민의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소환, 국민발안, 그리고 국민투표제가 적극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동안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선택권이 봉쇄된 정치현실에서, 그 정당이 그 정당이라는 정치혐오가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현재 청원은 반드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통해서만 가능토록 한 규정을 폐지하고 국회내 청원실을 설치하여 국민의 청원을 처리하고, 국회 공무원 출신이 대부분인 상임위 전문위원을 전문가로 구성, 정당에 소속시켜 의회의 전문성 및 정책정당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공무원의 위법, 부당행위를 감시하기 위하여 국회가 임명하지만 직무상 독립기능을 가진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또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관료제와 비정규직 혹은 재벌문제를 꼽고 있다. 정부는 관료들에게 포위당하여 무능하기 그지 없다. 정치가들은 관료들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 자체가 어려움을 우리는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관료집단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공무원제도 개혁에 고위직의 국민 직접선출과 외부개방시스템 도입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이다. 또한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광역 인터넷망과 휴대전화를 그 수단으로 들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국민투표 혹은 온라인 시민대표 제도로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우리들의 선택권이 봉쇄된 현실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정한 대표자들을 내 보내놓고 우리에게 선택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거기간, 딱 그 기간 동안만 우리더러 주인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할 것이다. 그들에게서 선거일 단 하루만 대접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우리도 직접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자발적으로 건설되어 그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조직이 필요하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작은 영웅들이 광야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