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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연하남은 옛날에도 문제될 게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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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1847년 작품입니다. 프루스트 공부하기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스완씨의 방문으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슬퍼하는 마르셀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읽어주기 위하여 고른 책입니다. 할머니께서 어린 마르셀의 생일에 주기 위한 선물로 고른 책인데, 처음에는 무세의 시집,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상드의 소설 <앵디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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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1847년 작품입니다. 프루스트 공부하기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스완씨의 방문으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슬퍼하는 마르셀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읽어주기 위하여 고른 책입니다. 할머니께서 어린 마르셀의 생일에 주기 위한 선물로 고른 책인데, 처음에는 무세의 시집,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상드의 소설 <앵디아나>를 골랐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바꾼 소설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http://blog.yes24.com/document/6861568>에 옮긴이가 붙인 각주에는 “ 방앗간 여주인 마들렌과 그녀가 입양한 업둥이 프랑수아 사이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담은 이 이야기가 어머니와의 행복한 결합을 다룬다는 점에서, 어린 마르셀의 팡타즘을 구현한다(76쪽).”고 적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yes24.com/document/7212626>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방앗간 부부가 프랑수와라는 남자아이를 입양해 기르다가 폭력적이며 괴팍한 남편이 죽은 후 젊은 아내가 입양한 아들과 결혼한다”는 근친상간을 다룬 소설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103쪽) 한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의 사랑을 애처로울 만큼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프랑수와에게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잣대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상드는 독자가 프랑수와의 순수한 열정과 그 표현방식을 안심하고 허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끈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3; http://blog.yes24.com/document/6919540>에서는 1831년 당시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떠돌이 생활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나르디에부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딸은 귀하게 키우면서도 아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어린 아들을 남에게 주어버리는 짓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면 18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 프랑수와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업둥이로 자라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 클레쟁제와의 갈등에서 오는 고통을 전원생활을 통하여 다독이는 가운데 상드는 ‘밤모임’에 가곤했는데, <사생아 프랑수와>를 밤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를 옮겨적는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입니다. 상드는 버려진 아이에 대한 당시 사회의 편견에 맞서고 고아에 대한 부유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타하기 위한 의도를 담아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설적 상황, 즉 비정상적 사랑, 비도덕적인 출생, 부모로부터 버려진, 혹은 부모와 헤어진 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혈연관계로 이어지게 된 사람들 간으ㅟ 신비로운 애정 등에 대한 상드의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251쪽)” 옮긴이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를 입양아와 어머니의 관계라고 하고 있지만, <사생아 프랑수와>에서는 입양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밟았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마들렌의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은 프랑수와의 어머니 자벨이 프랑수와를 멀리 버리려 할 때 마들렌이 10에퀴를 내주면서 프랑수와를 사겠다고 선언하지만, 마들렌은 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또한 프랑수와를 친자식 자니와 꼭 같이 대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프랑수와가 근본적으로 착하고 심지가 굳은 아이라는 점을 상드는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46쪽)”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들렌의 남편 블랑셰가 마음을 빼앗긴 세베르가 프랑수와를 유혹하였음에도 넘어가지 않자 블랑셰를 꼬드겨 프랑수와를 집에서 내쫓게 합니다. 결국 블랑셰를 속여 방앗간을 포함한 재산을 빼돌리고, 블랑셰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 프랑수와는 다시 마들렌에게 돌아와 사태를 수습하게 됩니다. 프랑수와의 친어머니는 프랑수와를 위하여 4000프랑을 맡겨두었던 것인데, 그는 이 돈을 이용하여 마들렌을 위험에서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베르와 블랑셰의 누이동생 마리에트가 공모하여 마들렌이 프랑수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입방아를 찧는 소리를 듣게 된 프랑수와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프랑수와가 일하던 에귀랑드 지방의 물방앗간집 딸 자네트는 전후사정을 듣고서는 마들렌에게 청혼을 하라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전체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는 일단 공식적으로 입양이 성립된 관계가 아니라 구두로 언약한 정도의 관계이며 모자간에 볼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주변에서 이들의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19세기 프랑스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적 시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 아니 프루스트의 눈으로 보기에 <사생아 프랑수와>는 지극히 교훈적이고 모범답안 같은 삶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y*****2 2013.07.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생아 프랑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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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그리고 고아. 편견없이 이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부정이든 동정이든 우리의 눈빛은 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대개가 안타까운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지독하게 종교적인 유럽에서는 늘 의심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대했던 것 같다. 사생아 프랑수아는 조르주 상드가 개인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이겨낸 뒤에 쓰여진 소설이라 프랑수아가 보통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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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그리고 고아. 편견없이 이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부정이든 동정이든 우리의 눈빛은 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대개가 안타까운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지독하게 종교적인 유럽에서는 늘 의심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대했던 것 같다. 사생아 프랑수아는 조르주 상드가 개인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이겨낸 뒤에 쓰여진 소설이라 프랑수아가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을 사회적인 차원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주변인들을 아끼고 스스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개인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사생아를 보는 편견가득한 사회에 일침을 가한 것은 분명하다.

 

고아원에 버려진 프랑수아는 자벨에 의해 새 삶을 시작하지만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태, 파양될 뻔한 경험으로 인해 소위 말하는 애어른이 되어버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신중한 처신과 자신을 돌봐주는 이에 대한 충정이 사랑으로 변모하는 것이 '종이한장'차이로 여겨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다가 순간의 계기로 연인이 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점에서 결말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마들렌과 프랑수아가 살아갈 방법은 많지 않다. 그들이 헤어지게 된 계기 또한 모두 '사실'이 아닌 아니 땐 굴뚝에 의한 것이기에 읽으면서 프랑수아의 딱한 처지보다 이유없이 당하기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프랑수아가 몰락해가는 마들렌과 자니를 도와줄때의 통쾌함이 컸던 까닭도 그토록 시련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줘야한다는 당연한 논리도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계산하지 않고, 상대가 날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자신있게 나설 수 있도록 늘 바지런히 자기개발을 해야만 한다는 것. 만약 프랑수아가 다재다능하지도 않았다면 마들렌도 프랑수아도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을테니.

 

실제 있었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는 소설 사생아 프랑수아. 시련이 닥치면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은혜받은

 이를 떠올리며 힘을 내고 또 그런 아이가 있음을 잊지 않은 프랑수아와 마들렌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2.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생아 프랑수아] 결국, 그것은 사랑이었네.
"[사생아 프랑수아] 결국, 그것은 사랑이었네." 내용보기
이번에 읽은 고전작품은 쇼핑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주 상드의 1840년대 작품이다. 사생아 프랑수아의 고단했던 삶과 사랑에 눈뜨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신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읽혀졌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사생아’의 뜻을 찾아보면,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대받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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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고전작품은 쇼핑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주 상드의 1840년대 작품이다. 사생아 프랑수아의 고단했던 삶과 사랑에 눈뜨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신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읽혀졌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사생아’의 뜻을 찾아보면,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대받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의 일부 기독교국가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생아의 탄생을 탐욕과 부정의 열매로 규정해 비인도적인 학대도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생아 프랑수아 역시 고아원에 버려졌으나 그를 키웠던 여인은 젖을 뗄 무렵 사망하고 그는 또 다시 50세의 노처녀 자벨에게 맡겨진다. 자벨이 프랑수아를 키우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에서 사생아들에게 지급하는 약간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또 심부름꾼으로 쓸모도 있고 해서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온정도 없이 그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프랑수아를 맡은 건 아닌 듯 보였다. 중간에 그를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수아는 사생아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 채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천하게 생각하여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언젠가 자벨 역시 자신을 다시 고아원으로 보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라서(진짜 버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으니) 더더욱 누군가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로 극심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모습들이 그의 행동, 말투에 하나하나 베어 나왔고 나는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 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

 

“프랑수아, 벌써부터 그렇게 무조건 참기 시작하면 정말 한이 없을 거야.”

그러자 프랑수아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 <p.46>

 

프랑수아는 자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친절한 우리 엄마! 엄만 왜 내게서 떠나려고 해? 내가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픔에

잠겨 죽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엄마가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중략)

엄마, 날 그냥 있게 해 줘. 이렇게 빌게, 응? 항상 엄말 도울게. 엄말 위해 일할 테야.

내가 맘에 안 들면 날 때려도 좋아. 나 아무 소리도 안 할게.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하더라도 날 보내진 말아 줘.“ <p. 55>

 

아...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때려도 좋고, 죽도록 일만 시켜도 좋으니 제발 다시 양육원에 보내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아프게 상상되었다.

하지만, 이들 모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주인집 마님 마들렌은 프랑수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자신이 그의 어머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해 버린다.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몰래 이들 모자를 도와왔던 그녀는 워낙 박애정신이 투철하고 심성이 착했기에 프랑수아가 두 번 버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를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라 외쳤고 그녀의 이런 선언을 들은 프랑수아는 그때부터 오직 마들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라 각오한다. 마치 영화 브레이킹 던에서 늑대인간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되어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운명에 놓이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프랑수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서서히 개척해 가는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평생 엄마로 모시고 아끼고 보호할 것이라 맹세한 마들렌의 곁을 억지로 떠나야 했지만 그는 한시도 그녀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고통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조르주 상드는 프랑수아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비참한 운명을 살아야 했지만 그는 마들렌 못지않게 인정이 많고 온순하며 가장 인간다운 면을 보여준다. 물욕과 색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은 완벽한 외모와 영리함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매력적이기 까지 하다. 이 프랑수아라는 인물을 소설 전면에 내세운 작가는 그가 사생아임에도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부각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관행들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다만, 프랑수아가 한 여인에게 품은 연민과 애절함은 이해가 가지만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의 감정은 완급조절에서 아쉬움이 있다. 너무 급하게 감정선의 변화가 생겨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소설적 재미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남장여인으로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던 저자 조르주 상드가 어떤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을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조르주 상드>

 

당시 상드가 남장여인으로 행세했던 건 여성의 작품은 출판하지 않는다는 당시의 사회적 차별에 항의하며 남성 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그녀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는 평생 ‘사랑’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삶을 노래했으니 어쩌면 이 책의 주제가 남녀간의 질기고도 뿌리 깊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 조르주 상드-

s*****m 2012.03.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