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부모와 부부,아이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지금은 핵가족 시대다. 가정에 아이들이 한두 명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예 아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름의 이유로 아이를 더 낳지 못하는 부부들. 국가에서는 아이를 더 낳는 가정에 육아 수당, 연말정산 등 각종 혜택을 주지만 현실은 육아 수당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는 버겁다는 뜻이다.
아이 셋을 낳는다는 조건 등으로 국가에서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주택에 들어온 부부들이 있다. 이름하여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다. 아이가 한 명 있는 한 가족이 이곳 공동주택에 들어오며 어른 열여섯 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 마치 한 가족처럼 살기는 힘들다. 말이야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뿐더러 각종 문제점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 십몇 개월 되는 아이들이 있는 일하는 젊은 부부에게 육아는 큰 문제로 다가온다. 공동체의 대표격인 홍단희가 공동육아을 제안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가 가진 역량을 펼쳐 아이들을 돌보고 유해성분이 없는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바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조효내가 있다. 아직 어린 아이 한 명을 육아하는 것도 버거운데 공동으로 육아하는 장소에 나가기가 버겁다. 삽화 그리는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고, 아이가 자는 시간등을 쪼개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으로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기도 버겁고, 쌀쌀맞게 대꾸하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불편한 속내는 표정으로도 드러난다.
가족처럼 함께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의 뜻이 한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누구는 그 사정을 뒤로 하고서라도 모임에 참석하는데 반해 밤새 일했다며 불참하는 경우를 좋게 봐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가족처럼 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갈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자기를 희생하며 혹은 드러내지 않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기는 버겁다고 본다.
신재강의 차가 고장나 수리를 맡겼을 때 출근하는 동선이 같다는 이유로 서요진에게 카풀을 권하는 일 또한 그렇다. 친하지도 않는 남의 남편과 같은 차에 앉아 간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무슨 말인가 건네 보지만 어색한 순간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혼자서 자유롭게 음악을 듣거나 차창을 열고 운전하며 갔던 출근길이 그리울 정도다.
이렇듯 타인들이 함께 모여 살 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담겨 있는 소설이었다. 공동 육아의 문제점, 어느 부부 싸움으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일들. 카풀하다가 적정선을 넘어오려는 한 남자. 그 후에 발생할 일들의 문제점. 아이를 보며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기대치. 이 모든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모두가 안녕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끊어지고 말. 벌써부터 줄의 끄트머리 올이 풀어진것 같은 마당에서 거대한 식탁은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공동주택의 모든 인원이 앉아도 될 크기의 식탁에 과연 몇 명이나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을까.
각자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한 공간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을 함께 살거나 일하면 결국 마음이 다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보지 않아도 되는 건 안봐도 된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 선의 바깥 언저리에 있는 것. 너무 가깝지고 않고 너무 멀지도 않는 관계에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
|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 누군가 나에게 만 5세 이전의 아이를 키우는 것과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것 중 어느 것이 힘드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만 5세 이전의 아이를 키우는 건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사춘기 남자 아이를 키우는 건 정신적으로 힘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것도 말이라고는 통하지 않는 사춘기 남자 아이. 그들의 머리 구조는 정상적인 회로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다시 만 5세 이하로 돌아간 것 같은 덩치만 커진 남자 아이. 나처럼 큰 아이가 사춘기다운 사춘기를 겪지 않고, 그 사춘기가 작은 아이한테 몰빵으로 간 사람은 더 힘들어 진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빈다. 저 아이가 빨리 독립해 나가기를. 가능하면 얼굴보지 않고 서로의 안부만 묻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고.
저렇게 일방통행을 하는 아이에게도 귀엽고 앙증맞은 시절이 있었다. 육아 독박으로 힘들어 울어도, 아이의 방긋 웃는 웃음 한방에 다시 파이팅 하던 시절의 나. 누군가 육아라는 게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만큼 힘든 거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하나만 낳아 키웠을까? 처녀 시절 소원(?)이었던, 친정과 최대한 멀리에서 사는 걸 바랐던 나는 겁 없이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만약 그 시절 공동육아를 하자고 누군가 제안했다면 나는 그 제안에 동의 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아마 ‘노’라고 외쳤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공동 육아는 글쎄.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내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공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아마 나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 자녀를 낳는 조건으로 입주가 혀용 된 공동 주택이 있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기반 시설이 갖춰지기 전인 경기도 외곽지역이다. ‘꿈 미래 실험공동주택’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공동주택에 네 부부가 이웃이 된다. 요진과 은오 (딸 하나), 단희와 재강(아들 둘), 호내와 상낙(딸 하나), 교원과 여산(아들 하나, 딸 하나). 각자 다른 가정 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동체로 묶이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로 인해 공동 육아를 시작한다. 카풀을 하고, 생활 쓰레기를 같이 분리 배출하고,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 하지만 생각처럼 깔끔하게 이들은 공동생활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상처 받지 않는 공동 육아가 존재한다면 모를까, 공동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정해진 룰과 규칙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들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육아라는 공동 목표로 향해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젠 알 수 있다. 결혼하기 전이라면, 아이를 낳기 전이라면 공동 육아를 하자고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맞춰 사는 게 힘든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육아 하나만을 위해 모여 배려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나처럼 함께 보다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힘들 것 같다. 결국 오래 남을 것 같은 사람들은 떠나고 제일 먼저 떠날 것 같은 사람이 남게 되는 것이 현실일 수도 있겠다.
경제난이란 가장 흔한 싸움의 원인이지. 아무렴. 그러나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 가운데 그렇게 전후 관계가 명료한 사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111) 공동주택이라고 해서 경제력도 모두 같을 거라 생각하면 오해다. 경제력은 천차만별. 누군가는 그로 인해 상처 받게 되고 시기 질투도 할 수 있다는 것. 육아는 아니 엄마라는 이름은 여전히 무겁고 힘들구나.
|
|
이런 공동주택이라면 아마도 나는 효내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애가 있던 없던, 아무리 집이, 머물 곳이 간절하다 해도 나는 이러한 공동생활을 할 수가 없다. 특히나 집에 남겨져 아이들과 또 다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과 함께하는 나의 사생활이라곤 거의 없는 삶. 꼭 필요하다 해도 눈치를 봐야 하는 삶. 싫은 건 싫다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꼭 나만 이기적인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공동체적인 삶. 내가 느낀 이 공동주택은 딱 이랬다. 이곳에 있었던 인물들이 어쩌다 이런 사람들인 걸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나란 인간 자체가 나 이외의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나도 내 스스로가 버거워서 숨을 헐떡거리는데, 어휴.. 공동실험주택이라니.. 상상만 해도 숨이 탁 막혀온다. 유난히도 공을 들인 듯한 공동주택의 공동식탁.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 나왔던 넓다랗고 길고 두꺼운, 여러 사람이 함께 들어도 들어질까 말까한.. 공동주택처럼 처음부터 뿌리박혀 세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물지 않고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런 느낌을 가진..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아마 나는 사용하고 싶어도 괜히 누군가 친근한 척 말을 걸 것 같아 괜히 부담이 되어 가까이 가지 못할 것 같다. 쉽게 선을 넘어가도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강한 그런 테이블이다. 나는 좀 그렇다. 워낙 여럿이 무얼 하는 걸 불편해하는 인생인지라.. 누군가가 내 선 안으로 슬며시 쓰윽― 들어오는 것을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닥 유쾌해하지 않는 인간인지라.. 그런 테이블은 되도록 멀리 않는 편이다. 해서 읽는 내내 나의 시선은 효내와 요진에게로 집중되었다.
늘 낯설면서도 매번 좋은 느낌을 받았던, 믿고 읽는 구병모 작가님이였지만.. 이번 <네 이웃의 식탁>은 나의 나쁜(또는 불편해하는) 점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좋다~'라는 느낌은 커녕 그냥 숨어버리고 싶었다. 할수만 있다면 책도 같이 꽁꽁 다 숨겨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직 안 읽은 책들이 있는 책장에 작가님의 신작이 한 권 더 있지만 선뜻 손이 안 내밀어진다. 아무래도.. 이 작품 덕에.. 시간이 좀 흘러야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든다.
p.57 입을 열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요진은 비로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출근길이 견딜 만해졌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나누고 견딜 수 있는 최선의 대화 소재는 아이였다. 비슷한 입장과 상황에 놓인, 그러나 경제 수준과 사회에 대한 관심도 및 문화 향유 범위는 판이할 것이 틀림없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곤 아이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아이의 탄생으로 삶의 규모가 방만해지는 데 반해 재정은 축소되는 아이러니를 겪고 나서야 그 전까지 자신의 삶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지를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는 사람들. 거기서 비롯하는 감정적 초라함을 상쇄하고자 끊임없는 전시와 비교에 집착하게 되는 사람들 간의, 유일하게 순진하고 투명한 연결 고리이자 중심 화제.
p.61 아이들이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는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무심코 튀어나오기도 했고 그건 때로 본능이나 반사작용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법칙, 이를테면 심장박동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상황에 아빠를 찾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넘어져 무릎을 깨고 우는 아이도, 바퀴벌레를 보고 기겁하는 아이도, 세상 그 어떤 아이도 절박한 상황에서 엄마야!를 외치지 아빠나 오빠나 언니를 찾는 법 없었다.
p.74 "자랑과는 별개죠. 이건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와꾸가 이미 짜여서 어쩔 수 없는 생활인데. 인간 생활이 어디 꼭 논리대로 흘러가고 유지되던가요. 유연한 확장 사고가 가능한 쪽이 한발 양보하듯이 솔선수범해서 너는 이거 해, 나는 저거 할게, 명시해 줘야 생활이 효율적으로 굴러가지요. 나도 이만큼 생각하니 너도 딱 이만큼 고민해야 한다, 계량화를 가를 문제가 아니죠."
p.82 태어난 시율이를 품에 안고 요진은 먼저 출산한 친구들이 습관처럼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봐야 진짜 어른이 돼. 그 전에는 결혼하고 둘이 잘 살아 봤자 소꿉장난이고. 처음 요진은 그 말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향한 격려인 줄 알았다. 출산과 함께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고 개성이나 욕망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두는 데 익숙해졌지만 적어도 세상에 값진 생명을 내놓는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이를 악무는 위안의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그 말들은 자기변호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 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흔히 정상 내지는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경로를 거쳐 통과한 이는, 타인과의 어지간한 신체적 접촉 정도로는 눈을 부라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p.168 "시율아." 엄마 목소리를 듣자 시율이가 고개를 듣곤 자리를 난딱 박차서 품에 매달려 왔다. "엄마, 빨리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그 짧고 간절한 말에서 요진은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반드시 어떤 일이 있지 않았더라도 아직 어린 시율이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어떤 일이든 될 수 있었고, 그것들이 이 작은 몸에 과부하를 걸었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가자. 가서 얼른 자자. 엄마가 미안해." 무엇이 어떻게 왜 미안한지도 스스로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서 요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공연히 울컥했다.
|
|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들이고,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과 느꼈을만한 감정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법한 사실적이고 치밀한 묘사들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드라마 한 편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장면이 떠오르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인간관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걱정을 빙자한 험담, 아닌 척하는 질투, 아슬아슬 선넘기 등.. 인간관계 안에서 생기는 딱히 말로 표현하기 불편한 감정들, 그걸 말로 표현하는 순간 예민한 여자, 또는 유별나고 피곤한 스타일이 될까 봐 적당히 넘어간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들을 참고 견디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른의 덕목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게 유지되는 인간관계는 사람을 얼마나 피로하게 만드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가족 간에도 서로 참아내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은데 가족 같은 이웃이라는 것이 어쩌면 허울뿐일지도 모른다는 삐딱한 시선을 갖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예의, 도리, 의무, 책임, 배려..'와 같은 미담 뒤에는 반드시 희생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작품은 허울뿐인 인간관계의 무상함이나 공동체 생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까발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네 이웃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관계의 적절한 거리나 선의 기준을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네 이웃 중에 누구의 모습에 가까웠는지도 돌아보게 했다. 이 책을 동네 북클럽에서 함께 읽었는데 실제로 나와 닮은 이웃,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웃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관계 안에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소설은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갈등을 더 잘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인데, 그 목적에 매우 적합하고 충실한 작품이었다! 그냥 다른 걸 다 떠나서.... 너무 재밌다!
|
|
강력한 소설이다. 가감없이 다 까발리는, 서늘한 서사.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생애주기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가 부여한 신기루적 허상과 낭만에 쉽게 도취된다.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화끈한 신혼생활, 귀여운 우리강아지 내 새끼, 아장아장 나의 핏줄. 구병모는 이러한 고까운 낭만들을 자신의 경험을 망치삼아 깨 부수고있다. 빨간책방에서 작가가 출연했을 때 말했던 작가 본인의 생활과 이 소설의 주인공의 생활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래서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
|
위저드 베이커리를 보고 좋아하게 된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이라. 고민없이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초반에는 조금은 지루한 듯한.. 일상적인 이야기들.. 불편하게 다가오는.. 반강제적인 분위기 속의 공동생활, 공동육아.. 18개월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터라 중간중간 어떤 문구들에서는 심하게 공감이 되기도 하고 딱히 원치 않았지만 분위기 속에서 결정하게 된 공동 육아생활.. 걍 생각만 해도 불편하네요. 그 불편함의 끝..
불편한 현실을 들춰낸 거만 같아서 약간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인지라. 앉은자리에서 후루룩 읽어버렸네요 (아기가 자는 틈에..) 끝이 좀 허무한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
|
외벌이 부부여만 하고 향후 10년내 아이가 셋이여야 한다는 조건을 가진 수도권의 임대주택과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평수당 임대가격도 싸서 엄청난 경쟁을 불렀다는 공동주택은 외형처럼 근사하기만 한 곳은 아니였습니다 공동체 육아를 시작하면서 결정적으로 파열되긴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금이 간 상태인 사람들의 이야기였네요 놀라울 정도로 술술 읽히는데 현실의 한 부분을 들여다본거같아 오싹합니다 |
|
공동 육아 어린이집 부모이기에 공동체 삶애 대한 동경이나 환상이 있었다. 그럴 듯하게 공존하며 살아가지만 역시나 세상은 누구에게든 의존하거나 의지해서 살아가서는 안 됨. 스스로 자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가미나 위저드 피그말리온과 같은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소재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무ㅏ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긴 했지만 뻔한 전개나 진부한 스토리가 아닌 담백함이 좋았다. 공동체 삶의 대한 동경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옅어짐을 느끼며... |
| 『네이웃의 식탁』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불안과 균열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육아, 이웃 간의 관계, 작은 호의가 점점 부담과 의심으로 바뀌는 과정이 실제로 있을 법해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중심이라 더 몰입됐고, “나라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다. |
|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 < 네 이웃의 식탁 > 입니다. 이 책은 실험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쓴 작품입니다. 타인과 함께할 때의 불편한 감각을 간접체험하면서 힘겹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생각할 부분이 있고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