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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을 먼저 만난 뒤 영화를 이어볼 생각이었으나 그 사이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말았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이 영상과 음악을 따라 재생되었다. 늘 그렇듯 영상이 상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삐걱거리거나 껌벅거리기 일쑤다. Frankly speaking, I am not a movie person. ㅋㅋ
여름 방문객이 드나드는 이탈리아에서의 ‘그해’ 육주 동안의 만남은 미소년이자 동정남 엘리오의 일생을 지필 난롯불이 된다. 누군가는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는 감정을 또 다른 이는 그것에 온전히 기대 남은 일생을 살아간다. 그 온도차에 많은 이가 마지막 엘리오의 눈물에 함께 했을 것 같다.
원작 소설과 달리 엘리오의 동네 이성친구 마르지아가 성숙하고 차분하게 연출돼 두 남자의 주변인물로 더 물려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원작에서는 질투심 많고 예측이 어려운 까칠한 면을 강조해 그냥 어린 여자애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식사 자리에서 발장난을 하다 코피를 쏟았던 것과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내달리는 모습이다. 전자는 순서를 떠나 엘리오가 진짜 동정을 떼는 의미를 함축해(성장 의식으로 귀를 뚫듯) 기억에 남고, 후자는 기름 같은 원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멀리 가는 ‘자유’의 바람을 응축하고 있어 시선을 끌었다.
아마도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강조한 역사 유물이나 조각상, 그리고 흔적들은 저만치 지나온 기억의 ‘파편’을 집어 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상대가 곧 나였던, 완벽히 합일되었던 순간에 그들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다. 너는 가고 없어도 너와 함께 나를 보냈기에 나는 너와 언제고 함께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만남이 단지 이성애 코드에 맞지 않는다 해서 사랑이 아닐 수 없듯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그 자리에 평생 우정으로 남는다. 많은 이들이 두 사람의 사랑에 환호하는 데는 그들의 사랑이 육체적 끌림은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반쪽처럼, 서로의 영혼을 품는 특별하고 진귀한 결합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음악, 책, 역사, 학문, 예술이 줄곧 흘러넘친다.
그리고 엘리오 아버지의 암묵적인 이해와 동의는 성숙한 미래상을 제시해 개봉 당시 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이끌어냈을 게다. 영화 속 엔딩이 하얀 눈으로 덮은 공간을 제시한 점도 경계가 지워진 평등한 새 역사 페이지를 선사하고 축복하는 듯했다.
How you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Just remember, our heart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s worn 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