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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달력이 없어서 시간을 잘 헤아리지 않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전 부터 생일을 챙기지 않는데다가 기념일이나 어떤 날에 대해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연애할 때조차 백일이니 하는 것들을 챙겨본 적이 없으니, 지금은 아이가 학교에 가면 월요일이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 토요일, 교회가는 날이 일요일이라는 개념으로 일주일을 사는 기분이 든다. 남들이 보면 참 재미없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의 자유라는 것을 누리다보면 굳이 달력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시계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일상생활의 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계는 꼭 필요하다. 시계의 역사는 달력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고, 시간의 역사는 모든 것의 속도를 높이는 역사로 보완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력이다 .달력에 관해 로마가 가지고 있던 지식은 서아시아와 그리스에서 수입한 것이고,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은 학문적 보편주의와 유럽-북아메리카의 식민주의를 타고 세상의 끝까지 수출되었다. 이로서 모든 달력은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인 천문학이면서 역사적인 기본 조건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에 세계화의 역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달력이 문자화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부터였는데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의 권력자들은 각기 다른 주기로 돌아오는 장날과 민회가 겹치는 날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달력을 손보기도 했다. 고대 로마의 호르텐시우스법은 바로 민회와 장날을 영원히 분리한 계급의 산물이다. 평민들이 몰리는 장날과 민회가 겹치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로마 지배층의 걱정에서 비롯된 억지 달력을 명문화한 법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기능과 분리의 목적으로 달력이 개혁적인 성격을 띄게 되면서 두가지 달력 체계의 병행으로 문자화가 강제가 되면서 달력이 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고대 달력이 일상적인 물건이 아니었다는 뜻이며 귀족과 권위자들의 전유물로서 법전처럼 성문화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고대 청나라에 황제가 신의 동격으로 떠받들어질때 달력을 황제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과거 시간은 신의 소유였다. 그럼 시간 소유의 경계표시는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달력이라는 평면에 경계를 표시하는 방법이었는데 , 고대에는 축제 기간을 달력에 나타내어 표기하는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생활범위가 아닌 달력은 신의 표기형식이라는 , 즉 권위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달력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 로마 제정기 초기의 달력은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달력 상태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려는 순전히 사적이거나 지역적인 결정과 활동에 힘입어 달력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축제의 목록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내용의 삭제도 빈번해지자 달력의 역사도 생성과 폐지를 반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달력은 사회적 생산물이고 사회의 시간 구성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어 왔다. ![]() 그럼 일주일이 7일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현재 일주일이 7일이 된 것은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이 일주일체계를 도입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바빌로니아식 일주일 리듬은 두가지 경로, 즉 휴일이 된 유대교 안식일 형식과 행성에 따른 그리스 방식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로마로 전해졌다. 헬레니즘시대에 추측되는 행성에 따른 일주일 리듬, 즉 일곱 행성의 신들(토성Saturnus, 목성Jupiter, 화성Mars, 태양Sol, 금성Venus, 수성Mercurius, 달Luna)에게 하루 24시간과 일주일 168시간을 부여하면서, 각 날의 시작과 함께 그날에 해당되는 신도 갖게 되었다. 기독교적 일주일 리듬의 수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행성에 따른 일주일 리듬인데 이 리듬의 확산은 특히 4세기의 기독교적인 명문에 의해 증명된다.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착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일요법을 제정한 것은 안식일에 비견되는 상징적이면서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능이나 그리스도의 수난사와 관련된 깊은 의미의 일요일은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의 제 10요일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 러시아의 주 5일이나 6일단위의 노동 주일의 실험으로서 정치적인 상황과 더불어 상황의 변화에 따른 지식인과 시민들의 폭넓은 동의로 인해 일주일이라는 리듬이 삶에 자리잡게 되는 혁명 달력을 만들어 내게 되면서 현재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개력이 그레고리력과 결별하기 위해 새로운 역법을 만들었지만 실패에 이르고 반대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유럽 (그레고리)달력을 수입한 후 재정적 위기 상황으로 부터 구원투수가 되어준다. 윤달로 인해 한달치 급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그레고리력이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어도 그레고리력을 대신할 만한 역법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레고리력은 앞으로도 세계적인 달력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시간과 권력의 역사>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달력이 가지고 있는 존재자체가 달력만이 아닌 그 달력이 속한 사회의 모든 것, 경제, 법, 종교 , 정치적인 흐름과 함께 해 왔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듯이 시간에는 여러 이면이 깃들여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달력을 말할 때 지나치게 로마력에만 치중하여 설명한 점과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고찰하면서 기독교적인 부분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에서는 모순점이 보인다. 유럽을 고찰하면서 기독교적인 사상을 배제한다는 것은 유럽의 전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간 측정의 메타포가 달력과 달력사용자의 객관적인 자기이해를 위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접근 방법의 문제가 보여지는 시간과 권력의 역사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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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달력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의 변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부터 일주일이 7일이 되었고, 율리우스가 달력 개혁에 성공한 이유와, 21세기의 시작이 2000년인지 또는 2001년인지 등을 새롭게 알아갈 수 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반서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나치게 부채꼴로 펼쳐놓은 난해한 문장과 단어, 앞뒤 맥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결론으로 인해 읽기가 더디고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럽에서 주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우리와 함께한 것과 우리가 달력과 함께한 것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그레고리력의 승승장구는 데크레드 랑 되와 같은 반격으로도 막을 수 없었으며 유럽의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았고 1872년 일본에도 도입되었다. 일본은 그레고리력 달력을 채택함으로써 유럽의 산업국가와 미국과의 교류를 위해, 기존 달력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도입함으로써 유럽 달력이라는 개혁을 수용했다. 이는 달력이, 나라의 경제와 법과 종교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말해준다. 달력에는 온갖 내용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달력은 태양의 운행과 지구의 자전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며, 문화적 생산물로서 모두가 참여해 만든 사회적 구성물이다. 달력에는 일상을 결정하는 시간의 리듬이 있고 집단이나 개인에 관한 역사적 상징의 날짜인 기념일과 축제가 기록되어 있다. 고대에 만들어진 것 가운데 그 형태에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것은 달력만한 것도 없다. 달력의 역사는 타성과 단조로움, 실패한 개혁의 이야기다. 달력의 역사는 지구의 자전(낮) 과 달의 공전(태음력) 그리고 태양년(회귀년, 태양이 어떤 기준에서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사이에서 주기의 비를 정확하게 그리고 사용이 편리하도록 결정하려는 시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달력 개혁의 중요한 동기는 윤달의 주기를 짧게 하는 것이었다. 로마공화정 역사에서 달력은 일상적인 물건이 아니었지만, 원칙적으로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된 대상이었고, 법전처럼 성문화되어 있었지만 1년 365일로 이루어진 달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법에서 큰 역할을 했고, 로마의 12표법에서 보이는 기간은 이 법전의 합리화와 30일이라는 날짜와 관련된 달력과의 연결성을 가리키며, 텍스트의 편집과 출판을 의미한다. 일요일과 일요일의 휴무를 도입하고 법으로 규정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대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321년 칙법의 텍스트는 두 가지 문헌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5세기의 <테오도시우스 법전>이고, 다른 하나는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다.
법정은 중요한 기관이었고, 일요일은 공휴일이 아닌 법정이 휴정하는 날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최저생계비의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회에서 휴일은 지킬 만한 여유와 조건이 못되었다. 휴일의 공간을 규정하는 법의 제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축제의 대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축제의 사회적 수용에 대한 지표가 되었다. 사회적 설비를 위한 자금 조달과 전문적인 직업이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통해 일상적인 틀이 형성되고 경제적인 이해가 제도화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의 상업화도 그것의 공적인 존재와 지속을 위한 중요한 요소일지 모른다. 그것은 달콤한 초코렛과 꽃과 주얼리 사업 내지는 유명 레스토랑 등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축제의 존재도 또 다른 요소인데, 그 자체가 축제의 조직을 위해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기원전 116년부터 기원후 17년의 달력은 읽을거리로서의 달력이었고, 달력에 그려진 그림이나 시구는 또 하나의 달력 독서에 대한 증거로 나타난다. 달의 성격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농업 활동과 생산물로 표현되었고, 그달의 중요한 축제의 연출이나 도구를 통해 동일성을 얻고자 했다. 1678년 뉘른베르크에는 43개의 서로 다른 달력이 있었고 경쟁도 치열했다. 뉘른베르크의 엔터출판사에서 6종 이상의 달력을 출판했고 17세기 중반에 모두 합해 16종의 달력을 취급했고 판매했다. 많은 출판사들이 달력 제작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출판사의 살림을 꾸려나갔다. 성경과 한두 권 정도의 일반 가정 도서 그리고 대중적인 이야기책 외에 다른 책을 소유하지 못했던 가정에서 매년 구입하는 달력은 많이 읽히는 '책'이었다. 달력은 시간과 작업을 계획하는 도구로서 또한 필기도구와 참고서적 그리고 오락물로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읽히고 낭독되었다. 이처럼 달력은 정보와 행동 양식 그리고 오락의 기능 그 이상이었고, '소시민의 읽을거리'로서 달력의 인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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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역사책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소재가 아니다. 아니 소재는 우리에게 참으로 낯익다. 다름 아니라 <달력>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것이 아니기에 낯익은 소재지만 낯익은 역사책과는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이 우리에게 또 낯익을 수 없는 까닭은 역사 가운데서도 낯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순으로 낯익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정치보다도, 경제나 사회보다도 '문화'라는 것을 앞세워서 풀어놓았다.
이처럼 이 책은 낯익은 달력을 통해서 인류의 유구한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글쓴이가 스스로 이 책은 <문화사>가 아니란다. 역사책임을 부정한 셈이다. 분명 <달력>을 소재로 <문화로 쓸어 쓴 역사>를 적어놓았으면서도 결코 <달력이 역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짐작컨대 일반적으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님을 역설한 것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읽어보니 분명 평소에 보아오던 역사책과는 사뭇 다른 점이 눈에 띠었다.
일반적으로 역사에서 다룬 <달력>은 태양력과 태음력의 차이를 설명하거나 달력 이름에 대한 유래를 간략히 소개하고는 끝을 맺기 마련이다. 그 분량도 결코 많이 할애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달력>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아니 <달력>이란 '프리즘'을 통해서 본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역사를 풀어내었다. 이만큼이나 <달력>을 소재로 할 이야기가 많았던가 싶을 정도다.
허나 아쉽게도 <달력>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긴 했지만 그닥 친절하지는 않은 편이다. 정치적 권력관계를 통해서 권력가들이 벌이는 암투가 나오지도 않아 흥미진진한 역사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상관관계를 살피며 권력의 향방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치밀한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역학관계를 살피며 <달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이 참으로 많이 바뀔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당위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달력, 달력, 그리고 또 달력>이야기만 주절거리고 있다. 솔직히 이런 내용 뿐이었다면 참으로 지루하고 따분한 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을 살짝 뒤쳐보면 또 달라진다. <달력>이란 것이 만들어지게 된 까닭을 되짚어가며 곱씹어보면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사실 <달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하거나, 달이 지구를 한 바퀴 공전하는 '시간'을 관찰한 결과이다. 왜 관찰했냐면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봄에 씨를 뿌려 여름내 자라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며 겨울내 버티는 과정을 수 차례 경험하면서 '날짜'를 계산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제 씨를 뿌려야 좋을 지, 언제 거두어야 좋을 지 정확하게 계산하여야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못 버티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계산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계산을 해보니 지구가 태양 한 바퀴를 도는데 정확하게 365일로 딱 떨어지지 않았다. 대략 365.24일이 걸리니 4년마다 하루를 더 보태야만 얼추 맞는다. 딱 맞지 않은 까닭은 0.25일이 아니라 0.24일보다 조금 큰 0.24……일이기 때문에 4년마다 하루를 보탠다고 해도 몇백 년, 몇천 년 마다 또 하루를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에 띨 정도로 크진 않지만 말이다. 이렇게 해서 <윤일>을 4년마다(꼭 그렇지도 않지만) 더해주어야 한다.
암튼 365일을 30일로 나누면 12달과 5일이 남는다. 윤년일 경우에는 6일이 남으니 약 6년마다 <윤달>을 넣어주어야 할 판이다. 왜 365일을 '30일'로 나누었냐면은 달이 보름달에서 다시 보름달로 되는 날이 꼭 29.5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30일도 아니고 29일도 아닌 29.5일인 까닭에 또 다시 큰달과 작은달로 나누어 30일과 29일로 따져야 한다. 암튼 한 달을 주기로 달의 위상변화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날짜'를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윤달>이 탄생하였다. 일 년이 꼭 12달이 아니라 13달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자, 윤일이고 윤달이고 어렵게 느낄 필요가 없다.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빼고 관찰하면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면 곧 겨울이 찾아오며, 다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사실만 이해할 수 있으면 그뿐이었다. 또 보름달이 되었다가 달이 기울어 반달이 되고, 그믐이 되었다가 다시 초승달과 반달을 거쳐 또 다시 보름달이 되는 과정을 살피며 '날짜'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이해하면 그 뿐이다.
그런데 해와 달, 즉 한 해와 한 달은 구분하게 되었는데, <주일>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아니 굳이 나눌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닐까? 또 나눈다면 몇 일을 기준으로 셈하여 나눈단 말인가? 30을 나누어 딱 떨어지는 수는 1을 제외하고 2, 3, 5, 6, 10, 15다. 그런데 참 엉뚱하게도 <주일>을 나눈 수는 7이다. 왜? 유대인들의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별 거 아닌 '날짜계산'에 종교가 밀접한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종교가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으니 종교에서 정한 '기념일'을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자가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특정한 날에 권력자가 자신들의 권위를 드높이려하니 자연 '기념일'에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축제가 벌어지는 통에 경제가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경제도 나름대로 '특정한 날짜'에 편승하거나 관심을 기울어서 한 몫 단단히 잡으려하는 통에 점점 <달력>은 정치, 경제, 사회와 더불어 문화사에까지 밀접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편 <달력>이란 것이 어느 특정한 나라에서만 만들어지라는 법이 없다. 해가 떠오르고 달이 변화하는 것은 온누리 사람들이 모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수많은 달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그레고리력'만을 쓰게 되었을까? 다른 달력은 왜 쓰이지 않게 되었단 말인가? 그 속에서 우리는 '힘'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힘 있는 달력이 지닌 '권력'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달력을 통해서 참 많은 것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이 책의 상당부분이 로마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감춰진 역사'를 들춰낸 덕분에 따분한 것도 사실이다. 허나 그 따분한 내용을 이렇게 달리 바라보면 또 다른 맛이 난다. 그것도 제법 깊은 맛 말이다. 또 바로 이 맛 덕분에 정치도 아닌, 경제와 사회도 아닌, <문화사>라는 역사를 읽는 참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별 것도 아닌 <달력>이란 소재로 참 징하게 울궈먹을 수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지 않은가? 아무나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아무 나라나 이런 역사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만이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말로만 반만 년의 역사를 지닌 자랑스런 나라라고 떠벌리지 말고, 우리 나라의 진하디 진한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온누리에 떠벌리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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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루는 달력은 중립적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보편성'은 오히려 중립성과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난쏘공 도서인 이 책에서 저자는 달력의 미시사를 통해 로마가 정치적, 종교적으로 달력 속에 그들의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왔는지 보여준다. 달력을 통해 커져가는 나라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사람들의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은연 중에 통제하고자 했다. 큼직한 개력의 명칭이 '율리우스력(통치자)', '그레고리력(교황)'이었다는 점은 권력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달력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음을 말해준다.
왜 그들은 보편적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달력을 만들고 싶어했을까?? 가톨릭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결국 '인간'이었던 성인들에 대한 축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의문이었는데, 저자는 그러한 성인 축일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적인 문화 속에서 특정한 신의 날을 정하고 제의를 치렀던 것처럼 가톨릭에서는 성인 축일을 정해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도록 유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축제는 돈을 많이 들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기에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러 가기보다는 축제를 구경하러 가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모으기 위해 성인 축일은 계속 늘어났다.
달력의 미시사를 접하며 흥미로웠던 점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달력이 민중에게 일종의 책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인쇄술이 생겨났으나 아직 발달하지는 않았을 때,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쇄된 읽을 거리로 달력을 선택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달력에는 굉장히 많은 정보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과 관련된 역사적, 신화적 기록이 이야기로 적혔다. 과학적 지식이나 천문학, 점성술과 결합하여 어떤 일을 하기에 적합한 날인지의 여부를 보여주는 길일, 흉일도 기록되었다. 정치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날이나 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달력은 다분히 교훈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달력이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 개인성과 사회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달력 속 여백에 개인이 기억해야 할 일정을 적어 넣을 수 있다. 한편 기본적으로 세계가 공유한 공휴일이나 기념일이 인쇄된 달력은 지역과 지역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표준이 된다.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달력 역시 끊임없는 경계 고침을 하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달력은 절대 손댈 수 없는 진리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져온 달력에는 권력의 특정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첫째, 원래 독일어의 특성인지 아니면 번역을 거치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꼭 필요하지 않아보이는 조사가 너무 많았다. 둘째, 저자가 문헌학, 종교학 교수여서 그런지 생소한 라틴어도 너무 많이 나왔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 문장 한 문장을 자세히 읽지 못하고 큰 맥락만 파악하며 약간 정신을 놓고 읽었다. 관련 분야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에게는 참 유용한 연구물이 될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책에 오타가 너무 많아서, 이 책을 읽을 때 포스트잇을 들고 읽었는데 한 군데 찾았다(52쪽 학인-> 확인). 전에 알마에서 나온 "철학자들의 식물도감"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도 완성도가 높아보여서 역시 문학동네 임프린트인가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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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론 [시간과 권력의 역사] 외르크 뤼프케, 알마, 2011 다른 인문학책들과 달리 이 책은 서문이 없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힌트도 주지 않고, 처음부터 직접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달력이 ‘달력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줄까?” 그리고 책의 제일 마지막 감사의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한다. 매사에 시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많은 일이 달력에 적혀 있지 않고 게다가 좋지 않은 때에 찾아온다. 남은 일은 우리가 가진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것뿐이다. (292쪽) 시간이 많아도 이 책의 내용을 한 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고전문헌학을 연구한 지은이는 책 대부분을 로마 시대에 배려하고, 곳곳에 등장하는 달력 기원에 관련된 생소한 단어들은 독자를 긴장시킨다. 그 단어들이 어느 나라 말인지 보통사람들은 알아채기도 어렵다. 그래서 달력이나 시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서양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특히 로마제국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있을 것 같다. 카이사르와 키케로가 가졌던 달력에 대한 상반된 인식이나, 로마제국과 속주들과의 문화 정치적 관계를 달력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접근하는 부분은 재미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달력이 왜 생겨났는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근거이다.
최초의 달력은 이자를 제대로 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책(기록)이 장부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권력이나 종교 그리고 과학의 발달에 따라서 외적 형태의 변화는 있었지만, 달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가 정의하는 달력은 ‘일상을 결정하는 시간의 리듬이 들어있는 집단이나 개인에 관한 역사적 침전물이자 상징으로서의 날짜인 기념일과 출제들이 기록’이다. ` 집안에 있는 달력을 모두 다시 확인했다. 교회 절 은행 심지에 막걸리 만드는 회사에서 준 달력까지, 어느 것이든 일주일의 시작은 붉은 글씨로 쓰인 일요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 다이어리의 시작은 월요일부터다. 내가 편의상 바꾸어놓은 것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미루어 둔 일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일요일은 일주일의 마지막이다. 내가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2012.02.07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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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측정될까? 태양의 움직임이 시간인가? 지구의 움직임이 시간인가? 달의 움직임이 시간인가? 시간은 어떻게 보면 무형의 형체이기도 하고 무형체의 실재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달력이 시간을 측정해 주는 도구인가 이 책<시간과 권력의 역사>에서는 시간은 달력과 상관없이 존재하지만 달력은 시간을 표시해주는 도구라고 한다. 달력은 시간이 아니면서 기간을, 역사가 아니면서 역사를, 문화가 아니면서 문화를 담지해주는 도구이다. 이 책은 달력이 표시하는 시간과 역사와 문화의 역사가 아니라 단순히 달력의 역사, 달력의 문화사를 말해주고 있다.
항상 새해가 되면 아버지께서 회사에게 달력을 받아오셨고 어디서 왔는지 달력이 넘쳐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히려 여러개의 달력을 그냥 버렸던 적도 있다. 그럼다면 도대체 달력이란 무엇이며 한달이나 일년은 어떻게 측정되는가? 이것은 시간에 관한, 그리고 달력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답변을 해주고 있다.
아마도 달력의 역사는 지구의 자전(낮)과 달의 공전(태음력) 그리고 태양년(회귀년, 태양이 어떤 기준에서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사이에서 주기의 비()를 정확하게 그리고 사용이 편리하도록 결정하려는 시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루의 길이를 측정 기준으로 할 경우, 2000년의 시작을 기준으로 한 달의 측정값은 29.5305888531일이 되고, 1년의 측정값은 365.2421896698일이 된다. 또 초승달이 다시 초승달로 돌아가는 열두 번에 걸친 달의 변화를 기준으로 음력 날짜를 따져보면, 1년은 354.36705일이 된다. 이때 양력과의 편차는 10.87513일이다. 실행상의 이유로 새해를 1월 1일 5시48.753024분에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날짜를 더하거나 빼서 월과 연의 조합을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년 365일의 발견은 초기의 고급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중해 지역에서만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다. 365일이라는 날수가 1년의 자연적인 흐름과 다르다는 것을 생활에서는 거의 알아챌 수 없었지만, 문화적 기억을 통해 1,461일후에 태양역이 옛주기로 회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14~15)
이러한 단순한 시간의 구분을 표시해주는 달력은 역사가 지나면서 지배층의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 전례를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곳곳에서 보여준다. 특히 율리우스력이 시작된 고대 로마에서 뿐 아니라 근대에 와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지배자들은 달력을 이용해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 예로 1873년 일본의 천황은 달력이 인쇄되고 있는 도중에도 그레고리력을 개혁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1873년은 윤달이 끼어있어서 관료들에게 지급되어야할 한달치의 급료를 줄이려고 그러한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정도 수준으로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 보기에는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렇게 달력은 순수한 시간의 표시가 아닌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달력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던 시기로 부터 거의 2500년동안 함께 발전해 왔으며 이것은 시간을 기호화 시키므로 반복되는 축제와 재현을 가능하게 했다. 그로인해 인간은 세상과 인간을 지배할 수 있었다. 고대로 부터 사용되어왔던 율리우스력은 기독교적 배경으로 인해 그레고리렉으로 개혁되었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개혁되어야할 점은 남아있다. 이러한 개혁은 세계사적이고 중립적인 일반적인 달력의 개혁으로 나아가야 하며 어떤 특정한 종교나 정치적 시선이 담긴 정치적 함의를 지닌 달력을 배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달력은 개인과 사회의 시간을 배분하고 구획지어주는 광범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철학적인 관점에서 많이 논의되지만 이 책은 문화역사적인 관점에서 진술하고 있다. 시간의 실체가 있을까? 실체가 있다면 과거로의 여행으로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시간의 실체는 어느누구도 말할 수 없는 신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시간의 실체가 달력이라는 표시가능한 도구로서 인간이 그것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든 손에 넣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모든 것을 수치로 측정하여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시간의 측정이 수치화 된것이 달력이고 인류는 달력을 통해서 인류역사를 만들어 갈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 외르크 뤼프케는 달력은 시간의 표현수단인 피지배자이면서 그것으로 지배의 수단이 되었고 시간의 도구이면서도 문화적 생산물로 모두가 참여해서 만든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시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게되었도 논문형태의 비교적 딱딱한 문체이지만 달력의 문화사를 통해서 인류가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켰으면 어떻게 이용했는지 볼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였다. 인간이 시간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자신이 잡을 수 없는 영겁의 시간으로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게 될 것이지만 달력을 통해서 스스로 시간을 구획지어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달력'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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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루에 몇번은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기념일은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한다. 직장인인 경우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책상 달력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중요 일정을 적어놓기도 할것이다. 그런 달력을 보면서 자신의 스케쥴을 관리하는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이책의 제목은 심상치가 않다. 전혀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 책의 제목이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달력을 처음 출판한 사람은 그나이우스 플라비우스! 이것은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지중해를 통틀어 새로운 사건이었다고 전한다. 처음으로 달력이 문자화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의 직접적인 모델은 율리우스력이라고 한다. 지금의 달력이 만들어지기까지 참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태음력, 태양력을 시작으로 그리고 10요일에서 지금의 일주일의 단위로 한주가 책정되기까지... 권력자들은 시간, 즉 달력을 볼모로 삼아 우리들을 어떻게 지배를 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반발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것인가!!(콘스탄티누스는 321년에 일요일법을 공포했었다. ) 처음에는 호기심을 시작으로 책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이 꽤 많았다. 색다른 분야를 접하면서 참으로 많은 법들속에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코 쉬운책은 아니지만 한번쯤은 접하면서 시간에 대해 알아보는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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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달력'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서 2000년을 기점으로 달력에 관한 글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 글들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내용들을 이 책에 쓰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읽기 시작한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말 난해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앞부분에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공화력, 로마력 등 개인적으로 이름이나 겨우 들었거나 처음 들어봤던 달력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강 선후관계와 각각의 특징을 시대순서로 정리를 해주었으면 뒷부분의 이해가 더 빠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또 고대 및 중세 동서양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렇지만 인상적이고 흥미로왔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달력과 권력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달력의 내용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제도나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의문시 될 수 있다(p.10)는 점이다. 더 나아가 시간을 공간에 비유하면서 독재자의 동상과 초상화로 뒤덮이듯이, 시간도 달력의 모습으로 뒤덮이면서(p.24) 권력의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을 아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바로 이 권력과 제도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만든 대목이다. 7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념하기 위해서 July로, 8월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서 August가 되었다(p.13)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 달력은 축제의 기록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적인 축제와 비종교적인 축제를 포함하여 신께 예배하는 날은 노동을 해서는 안되고 기쁜 축제의 날로 지내야했다. 이를 기록하고 지키도록 한 것이 달력의 역할이었다(5장, 6장). 이 달력에 기록되는 축제는 거대한 의례적인 행사만 기재되는 기회를 얻었다(p.203). 9장의 내용에 따르면 달력이 기록될 수 있는 축제는 그 시대의 정치적인 영향이 많이 작용되었다. 축제를 달력에 표현하고 기간을 연장함으로서 축제의 의미를 높이는 등의 모든 영향은 지배자의 권력과 정치적 영향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달력에 기록된 시간은 공간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는 다른 학자의 문헌을 인용하며 "달력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다"라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p.227).
7장과 8장은 달력을 역사의 기록물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으며 달력의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10장에서는 일주일이 7일이 된 사연, 그리고 각 요일의 이름 제정, 기독교의 집회일이 토요일(유대교의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옮겨간 이야기 등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몇년 몇월 몇일 이라고 하는 '현재 시간의 기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했지만 왜 이런 시간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달력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한 이런 달력의 형태가 나오기까지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들이 작용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에는 어떤 달력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번역서인 관계로 이 궁금증은 책을 읽는 동안 해결할 수는 없었다.
최근 읽었던 책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문장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페이지에도 모르는 인물,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툭툭 터져나오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더뎠다. 물론 대부분 용어에 대해 번역자주가 달려있어 그나마 읽는데 조금은 도움은 되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랄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쌓았다는 점에 만족한다.
책 마지막 장에 감사의 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매사에 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많은 일이 달력에 적혀있지 않고 게다가 좋지 않은 때에 찾아온다. 남은 일은 우리가 가진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것 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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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쉽게 간과하는 것 들 중의 하나가 달력이다. 그런데 달력이 교묘하게 우리의 일상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아마도 원래부터 그랬을 거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결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달력은 힘과 권력을 지닌 정치적 퇴적물과 같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권력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달력의 무한한 권력에 찬미를 보낼 것이다. 달력의 권력, 달력은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우린 우리가 아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모른다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흔히 안정은 퇴보적이라 하지만 최소한 달력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누구도 달력의 권한을 의심하지도 뺏으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인도에 홀로 남은 로빈슨 크루소가 잊지 않고 기록한 것이 시간이다. 오랜 기간 감옥에 갇힌 이들도 빠지지 않고 시간을 기록한다. 그런데 왜 인간은 시간이란 무형의 개념을 잡아두려 했을까? 마치 집단기억의 착각 속에 빠진 듯한 시간관념은 정형화된 인간이란 개념을 심어주기에 무척 요긴하게 사용되어 왔다. 권력자들의 열망은 대중을 쉽게 다루는 것이다. 시간을 잡은 달력만큼 이들의 욕구에 충실한 매개체가 있었을까? 총이나 칼 혹은 장문의 서사시보다 훨씬 강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달력이다. ‘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이러한 달력이 역사속의 정치, 문화, 사회를 통해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있는지를 디테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주일은 언제부터 7일이 되었을까? 일주일은 일곱 행성의 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유대인은 토성(Saturnus)의 날을 기념하는 형식으로 안식일을 치렀는데 안식일 다음 날엔 공동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가 그 날을 일요일로 정하고 법으로 제정함으로써 공식적인 7일이 되었다. 또한 고대 로마는 민회와 장날이 겹쳐지지 않도록 날짜를 정해 문제를 해결했고 로마의 집정관이나 지배자들은 특별한 날을 정해 본인의 이름을 부여했다. 달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통치자들의 열망은 근대사회라고 변하지 않았다. 달력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통치적 수단을 굳혀나간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법정 공휴일을 통제하려들며 특별한 날을 이용한 기업들의 전략은 날로 치열해져간다. 통치자들의 이념과 생각은 곧 정복에 대한 대가로 이어져 갔다. 한 번의 규정이 법률로 정해지면 사고와 생각은 굳혀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종교적 열망과 통치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의 물꼬를 전환시킨 것이다.
오래된 사진을 보면 시간이란 개념이 떠오른다. 사실적 실체에 의해 잊혔던 과거가 솟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관심을 갖는 건 사진 속의 모습이 아니라 날짜와 시간이다. 날짜와 시간이 존재함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만약 시간을 규정해놓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저자는 달력이 통치자의 열망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결국 인간은 달력에 의해 연속적인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간의 영속성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달력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날도 내가 기억하려해서 다가오는 것은 아니고 싫다해서 그냥 지나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린 달력의 존재에 삶의 무게를 실어놓았다. 달력은 숨은 정치인이자 권력이다. 또한 인간의 역사다. 현대인들은 실시간이란 개념에 익숙하다. 이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달력내의 시간, 하지만 달력이 추구하는 권력의 내면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달력의 숨은 권력을 놀라우리만치 세밀하게 묘사한 시간과 권력의 역사, 시간과 권력에 대한 놀라운 진실과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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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권력. 책 제목이 핵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소유한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권력을 장악하려면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해석도 된다. 예능프로 <런닝맨>에서 하하가 선보인 '시간을 거스리는 자'의 능력을 시청자 누구나 실감했다면, 이제 시간과 권력의 문제가 그리 생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지배하려는 노력이 달력과 시계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룩되었다면 이러한 시간지배의 기술은 권력의 체제에 복무하고 순응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수단인 셈이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과 권력의 문제는 오늘날 펜타곤이 왜 MIT의 과학연구를 지원하는가라는 맥락과 연계되어 있다. 고전문헌학자이자 비교종교학자인 외르크 뤼프케는 대략 2,500년 정도 되는 '달력의 문화사' 를 가지고 매우 디테일하게 시간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너무 파고들면 어려워지는 법인데 저자의 담론도 그런 단점을 보인다. 그래도 단지 달력이라는 대상만으로 책 한 권을 집필할 수 있는 저자의 인문학적 내공이 돋보인다. 다만 청나라와 일본의 사례는 나오지만 한국의 사례가 완전히 누락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달력은 한편으로는 태양의 운행과 지구의 자전이라는 자연스러운 주기를 고려해 우리가 주어진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실용적인 도구이면서, 한편으로는 모두가 참여해 만든 문화적·사회적 구성물이기도 하다. 국역본의 책제목에는 '역사'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이는 다소 저자의 의도를 곡해한 셈이다. 원제의 부제는 '달력의 문화사'로 문화사적 측면을 강조할뿐 '달력의 역사' 혹은 기술로서의 달력의 역사는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달력의 역사는 타성과 단조로움, 실패한 개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달력의 형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큰 변동이 없는 인류의 발명품에 해당한다. 또한 저자는 '달력의 문화사'가 때때로 "달력 역사에서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만 이런 부분 자체도 자신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라고 한다. 저자가 의미하는 '달력의 문화사'는 바로 "매체의 역사고 문학의 역사"를 가리킨다.
"이[달력의 문화사] 관점에는 실제행위와 시간 계산법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아가 달력이 제공하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행위에 대한 방향성, 약속의 분명한 이행에 대한 강요에서 생기는 갈등 그리고 축제와 달력을 결정하는 배경에 숨겨진 권력구조를 찾는다는 사실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달력은 추상적인 것도, 단순히 학문적인 것도 아니다. …(중략)…달력은 하나의 매체고, 조용한 방에서 공적인 사건을 읽도록 하는 안내자이기도 하다. 또한 군중의 움직임과 머릿속의 이미지를 조종한다.결국 달력의 문화사는 매체의 역사고 문학의 역사다. "(25-6쪽)
저자는 달력이 단순히 시간을 객관적으로 측정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실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고 사회문화를 통제하는 권력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고대와 중세의 정신적인 지도자와 세속적인 권력자 그리고 근대의 지배자와 현대의 독재자들이 달력을 통제의 도구로 사용해온 다양한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달력의 정치화를 논하면서 이를 '유명론적인 달력정치'와 '실재론적인 달력정치'로 구분한다. 유명론적인 달력정치는 지배자가 달력의 이름만을 대상으로 정치적 개입을 한 경우를 말한다. 가령 칼리굴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서 9월을 게르마니쿠스로 바꾸었다. 반면에 실재론적인 달력정치는 이름의 변화에 앞서서 실질적인 변화가 달력에 일어난 것이다. 가령 매년 반복적으로 거행되는 축제일의 성립과 소멸이 대표적이다. 자, 이처럼 달력의 역사가 곧 권력의 역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