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미사는 사실 시인의 책 가운데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는 아마도 최초의 저서일 것이다. 말하자면 처녀시집이다. 나는 "33세의 팡세"를 읽고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미완성을 위한 연가"까지 구해읽은 다음에야 이 책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두 권의 시집에 시인의 완벽에 가까운 자기해부의 산문집"33세의 팡세"까지 읽은 다음에 읽어서인지 솔직히 처음에는 좀 실망감이 있었다. 그만큼 앞에 든 세권의 책과 "태양미사"는 많이 달랐다. 한 사람이 쓴 책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왼손---"과 "미완성---"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왼손---"이 시인이 스스로 말하듯 "절박한 순정 하나로 세상에 항거하"는 거라면 "미완성---"은 개인의 불행과 시대의 절망 사이에서 고민하고 슬퍼하고 시와 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태양미사"는 전혀 다르다. 일단 언어가 다른데, 이후의 다른 시집들이 생활어에 가깝다면 "태양미사"는 훨씬 시어로서의 시어를 사용한다. 이미지들도 많이 달라서 이후의 시집들이 생활속에서 부딪는 이미지들을 원용 혹은 변용한다면 "태양미사"의 이미지들은 거의 신화, 혹은 주술적 이미지들이 지배한다. 솔직히 좀 어렵기도 했다. 한자어가 많고 신화적인 이미지가 많으니 읽기도 이해하기도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책 뒤편에 실린 시인의 자서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살고 있다니, 신비스럽고 반갑고 기뻤다. 나는 한 동안 지울 수 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어딘가 부재하고 있는 해변의 염색공장에서부터 거재한 아메바들이 땅을 향해 침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유독성의 아메바---투명한 껍질 속에 유황빛 잿빛 혹은 보라빛의 염색 주머니를 숨긴 전염성 아메바들이 해변을 지나 모래밭을 건너 서서히 유리의 도시로 들어왔다. 우리의 아이들을 향해, 모자르트와 놀고 있는 순한 아이들의 부드러운 살을 향해, 따스한 어머니의 태내를 향해, 모든 청년들과 남자들의 <꿈의 집>을 향해 아메바들은 돌진했다. 아메바에 닿으면 살은 서서히 감각을 잃었고 마취되었으며, 더러운 색채를 띄었다. 그래고 그 색채는 앚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살을 뚫고 침투해서 핏줄을 타고 서서히 심장을 점령했고, 마침내는 뼈를 녹여 완전히 흡수의 막을 형성했다. 아메바에 닿은 수많은 아이들이 이유도 모르고 울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왜냐하면 그 아메바의 고향은 도부지 불분명했으며, 발병의 속도가 너무나 느렸기 때문에 그것이 과연 무슨 병을 일으키려고 하는지를 아무도 잘 몰랐고, 아메바의 문제 이외에도 그들은 생각해야 될 일이 산더미같이 많았으므로.보이지 않게 혹은 보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아메바에 의해 많이 피살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취성 아메바에 의해 죽었으므로 이제는 거의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의학사전에 <아메바성 염색질환>이란 살인 병명이 있었던가?그들은 신경쇠약, 심한 피로감, 의욕상실과 심한 우울증, 처절한 무신론, 그리고 자학증상과 잔혹한 의기소침으로 죽어갔다. 그것은 병명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숱한 묘비명에 <병명 미상의 갑작스런 죽음>이라고 적히게 되었다. 나야말로 아메바병으로 죽음 직전에 처해있었다. 몸과 영혼이 모두 죽어가는 절망감을 느끼는 중이었고, 날마다 지구멸망의 날을 기다렸다. 나는 슬프게도 시인의 자서를 통해 시인이 아마 내 나이였을 무렵의 절망을 이해했고, 그 많은 시어들의 상형문자들을 이해했다. "태양미사"속에서 아마도 20대의 아름다운 처녀시인은 울고 있었다. 정말 나는 무슨 말을 가지면 좋을까. 일상의 간막이를 뛰어넘기 위하여 부서진 마차를 날개 달기 위하여 내 생의 비본질을 살해하기 위하여 정말 나는 무슨 말을 가지면 좋을까. --"나의 마차엔 고갱의 푸른 말을" 부분-- 시인은 노래한다./ 소년은 나에게 강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강은 깊이 깊이 흘러가//떨어진 사과를 붙이고/싹트고/꽃피게 하였다./그리고 그림엔 노래가 돋아나고/울려퍼져//그것은 벨지움을 넘어//멀리멀리 아시아로까지 가는게 보였다.//소년은 강을 불러//내 그림에 다시 들어가라고 말했다.//화폭 아래엔 강이 흐르고/금세 금세//환한 이마의 꽃들이 웃으며 일어났다.//피어난 몇 송이 꽃대를 꺾어/나는 잃어버린 내 친구에게로 간다./그리고 강이 되어/스며들어//친구가 그리는 그림 그곳을 꽃피우는 물이 되려고 한다./물이 되어 친구의 꽃을 꽃피우고/그리고 우리의 죽은 그림들을 꽃피우는/넓고 따스한 바다가 되려고 한다./--등단작"그림 속의 물" 부분-- 어떻게든지 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들을 폭력적인 무엇이 아닌 비폭력, 순결, 시인의 눈물과 사랑으로 고쳐보겠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시 속에서 그녀는 진심으로 시인이며, 시인이고 싶어했다.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그리하여 꿈이 현실을 살해하기를./나는 감히/꿈꾸도다,/나의 생이 안개의 먹이로 환원되는 것을/나는 바라지 않기에/살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할 것을/오직 나는 바라기에/나는 감히 상상하도다,/영원의 궤도 위에서 나의 불이/태양으로 회귀하는 것을./그리하여 존재의 실패를 태양에 감으며/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나의 생을 태양에 귀의시킬 것을.--"태양미사" 부분-- 시의 힘, 그것은 다른 의미로는 세상을 향한 사랑을 담은 시인의 마음이기에 시인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끝내 시인이기를 포기하지 못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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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위인전이니 소년소녀 한국문학전집이니가 꽂혀 있던 우리집 책장에는 그 사이사이에 어쩌다 흘러들어온 시집이나 기타 잡다한 '어른' 책도 꽂혀 있었는데, 이 시집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혹은 그 직전에 사춘기, 이십대를 보냈던 삼촌 고모들이 흘리거나 버리고 간 책들이었을텐데, 다해야 얼마 되지도 않았던 이 어른 책들 중에는 위험한(적나라한 성묘사가 등장하는 소설 따위)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호기심에 차서 무작정 이것들을 다 읽었다.
하지만, 태양미사?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어른의 시각에서 보자면 '동화적'이랄만한 데가 있겠지만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자면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게다가 군데 군데 박혀있는 한자말들은, 아마 읽기도 힘든 것이 대부분, 이었을 거라고 지금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 시집은 책장 한 구석에 늘 꽂혀 있었고,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서 어쩌다 이 시집을 펴보곤 했는데, 기억하기론 서서히 한자말들을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간혹은 '아, 이 시의 '주제'는 이런 걸거야'라며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던 듯하다.
그리하여, 한 때 내가 애송했던 시를 만나게 된 거였다. 그 시의 제목은 '초인종'. 본문은 다음과 같은 시였다. (다시 읽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하지는 않았던 나도 한 때 '생명' 혹은 '모험' '불꽃' '사랑' 같은 말만으로도 거의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나보다, 생각하게 된다.)
시간의 女神이여
초인종을 울려다오.
생명, 생명, 생명, 하고 울리거나
상실, 상실, 상실, 하고 울리거나
초인종을 울리며 지나가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내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
시간의 女神이여
초인종을 울려다오.
그 옛날 英雄들에게 했던 것처럼
生命의 다른 이름인
불꽃, 모험, 사랑을 보여다오.
나는 살아있고 싶다, 고
초인종을 울리며 지나가라. [인상깊은구절]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고 꿈은 현실을 살해한다. 구름의 벽 뒤에서 이제는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여. 나는 감히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生을 태양에 연결시킬 것을 꿈꾸도다. 나의 生이 재떨이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의 生이 가면의 얼음집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영원한 궤도 위에서 나의 불이 태양으로 회귀하는 것을.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나의 生命과 저 방대한 生命을 연결해 달라, 어떤 방적기계 어떤 안개의 無 속에서 우리의 실은 풀려지는 것인가? 어떤 증발 어떤 채무자인가, 우리들은?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가 그리하여 태양이 어둠을 살해하듯,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하여 꿈이 현실을 살해하기를. 나는 감히 꿈꾸도다, 나의 生이 안개의 먹이로 환원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기에 살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오직 나는 바라기에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영원의 궤도 위에서 나의 불이 태양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리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