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사에서 1950년에 발생했던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했던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당시에 살았던 이들 또한 어느 한쪽을 택해야만 했던 상황이 빚어졌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신념 혹은 이념에 따른 선택으로 인해,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했던 이들과는 갈등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고스란히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결과라고 하겠다. 더욱이 이러한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되었을 때, 특정 이념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경과에 따라 남과 북이 차례로 점령헸던 서울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들의 삶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의 이 책을 통해서, 극단적인 이념의 대결에서 비껴나 있던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8.15 해방으로 인해 일제 강점의 억압에서 풀려났지만, 외세에 의해 주어진 독립의 결과는 이념에 따른 분단으로 귀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온몸으로 분단을 막고자 했던 김구와 같은 인물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끝내 남과 북은 다른 이념에 의한 정치 체제가 성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았던 상황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결국 한반도는 1950년 시작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게 된다.
역사학자로 활동하던 저자의 일기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여겨진다. 일기의 앞부분에 해방 직후인 1945년과 1946년의 기록이 일부 수록되어 있지만, 주된 내용은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과 1951년 3월과 4월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전쟁이 벌어지자 방송으로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을 다독이며, 자신들이 한강을 건너자 다리를 폭파했던 이승만 정권의 위선적인 행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결국 당시 서울에 있던 수많은 이들은 피난을 가지 못한 채, 점령군으로 자리를 잡은 북쪽의 치하에서 살아야만 했다. 전쟁을 전후한 시기 저자의 상황이 일기 형식으로 상세히 제시되어 있는데, 사학자로서 자신의 일기가 당시의 상황을 재구할 수 있는 역사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적어 내려갔던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서울을 점령했던 북쪽의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물론, 그들에 영합해 갑작스럽게 완장을 찼던 이들의 모습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이 수복된 이후 남쪽으로 피난을 갔던 이들이 돌아오면서, 당시 서울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을 부역자라고 비난하던 행태에 대해서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서울에 국한되었던 것이 아닌, 잠시라도 북쪽에 점령되었던 지역에서 널리 일어났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1951년 1월과 2월의 일기가 남아있지 않은데, 아마도 전쟁의 와중에서 아버님이 세상을 뜨고, 그 충격으로 인해 일기조차 쓸 수 없엇던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저자마저도 1951년 10월에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이 초래되었다고 한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뒤늦은 ‘추모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희생자로서 저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