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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읽는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짧은 글 속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어떤 흐름으로 읽히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을 때엔 가능하면 단편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연히 만난 책이 하필 단편이라니.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내는데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이놈의 단편들이 줄거리 파악도 힘드니..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이 찝찝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단편의 수가 적었다면 그나마 편안했을까? 생각보다 얇은 책에서 단편이 8개라니... 쉽게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는 것.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조경란 작가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매력이 끌려 책을 펼쳤지만 수없이 고민했다. 끝까지 읽어 내려갈 것인가 그만 둘 것인가. 아마도 책에 한없이 빠져들지 못하는 지금의 내 심리 상태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래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누군가의 삶일 수 있어서다.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혹은, 아무개의 삶. 그 삶에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매일 건강과 시’는 19년 동안 일해 온 그녀가 낯선 도시에서 사람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이곳에서 떠나려 한다. ‘11월 30일’은 미래를 위해 뭘 할지 모르겠는 훈의 이야기다. ‘언젠가 떠나가는 집에서’는 아버지와 둘이 사는 서른일곱의 나와 가사도우미로 집에 온 경아의 이야기다. ‘오랜 이별을 생각함’은 이별을 생각하는 남자가 편지 형태로 풀어내는 이야기고, ‘김진희를 몰랐다’는 김진희라는 여자에게 정미가 건네는 말이고, ‘492번을 타고’는 작가인 나가 엄마와 로마 거리를 걸으며 느끼는 이야기다. ‘봄의 피안’은 선생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수강생에게 풀어 놓는 이야기고, ‘저수하에서’는 작가 염상섭과 관련된 작가 나의 이야기다.
8개의 단편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다만 막연하게 생각한다. ‘말’이 건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누군가는 말을 아주 잘하고 누군가는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한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우린 가끔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특별할 것 없는 아무개들의 이야기. 그들은 오늘의 내가 될 수 있고 내일의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살자는 것 아닐까? 기왕이면 예쁜 말 좋은 말을 하며? 마음이 담은 것을 모두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살면 좋겠다. 아플 때는 아프다고, 기쁠 때는 기쁘다고, 행복할 때는 행복하다는 말. 그런 말을 하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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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세 개가 놓인 책의 표지를 열고 작가 약력을 들여다본다. 5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라고 간결하게 적힌 띠지를 벗겨 낸다. 책을 읽을 때 그런 것은 신경이 쓰이므로. 전부 읽었구나. 조경란의 책들을 빠짐없이 읽었다니 새삼 감개가 무량하다. 『식빵 굽는 시간』은 두 권 사서 읽었다. 한 권을 사서 읽고 꽂아 두었는데 잃어버려서. 그런 때였다. 책이란 책은 모조리 나의 책장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에 실린 소설 「저수하樗樹下에서」의 주인공 '나'는 책장만 열일곱 개를 가졌다. 그 책장을 이고 이사 다닐 집을 구하고 있다. 책장 열일곱 개를 가진 마흔여섯의 소설가는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재래시장이 있는 이층 집을 마음에 들어 한다. 보증금 8천에 월세 80인데 모자란 보증금 생각은 하지 않고 월세 낼 걱정만 한다. 집을 옮길 때는 턱없이 모자란 집값 생각은 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안을 꾸밀까 현실도피만 하기도 한다. 곧 그 집에 들어가 살 것처럼 굴기도 한다. 소설가의 모든 책을 사서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 행복하던 시절에 조경란을 열심히 읽었다. 대화가 거의 없고 문단이 거의 나누어지지 않은 소설의 문장들을 따라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쓰인 소설을 묶자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묶으면 책이 된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 조경란은 기억에 충실한 소설가이다. 서울 거리를 걷다가 외국의 낯선 곳으로 날아가 걷는다. 짐을 풀고 집의 상태를 확인하자 하는 일이 거리의 지형을 익히는 일이다. 야채가 싼 곳이 어디이고 서점과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 낯선 곳을 가고 걸을 때 필요한 건 물과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의 인물들은 로마의 거리를 충실히 걷는다. 지치지도 않은 채 일상을 살아온 이들이 내일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일은 걷기와 그마저도 힘들어지면 버스를 타는 일이다. 받아올 것이 있다며 어머니의 부탁을 듣고 아들이 하는 첫 번째 일도 버스를 타는 일이다. 외국의 도시에서 유료 화장실을 찾아내는 일을 무리 없이 할 때까지 걷고 버스를 탄다. 구립 도서관까지 걸어가서 일을 하고 책을 반납한다.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고 밤에 몰래 고무나무를 보기 위해 내려오는 아이를 만나 산책을 한다. 허리가 아파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없을 때도 걷는 것으로 병증을 이겨낸다. 평지를 걷고 서서 글을 쓰는 일. 여름휴가 열흘 동안 비어 있다시피한 온천에서도 한낮 동안 미술관에 가기 위해 걷는다. 조경란 소설의 화자들이 움직이는 공간은 낯설지 않다. 집 주변과 시장 근처, 일로써 떠난 외국의 거리. 그 거리마저도 집의 풍경과 닮아 있다.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한 하루를 걱정하는 일도 돌아갈 집이 있다고 해서 덜어지지 않는다. 실 팔찌나 카펫을 사는 일은 쉽다. 외국에서라면 추억이 될 테지라는 감정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사지 않고 그 곁을 지키는 '나'는 조국을 떠나온 그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시장 좌판에 놓인 양말, 가짜라서 더욱 반짝이는 반지, 빨아서 써도 좋을 에코백. 헐거운 지갑을 가진 이라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이다. 서랍에 신지 않을 양말이 쌓인 모습을 보는 하루. 조경란이 그리는 인물은 하루치의 행복을 사서 서랍에 넣어두는 일로 내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이다. 서랍이 닫히지 않아도 양말과 천 가방, 손수건을 사서 넣어 둔다. 고민 없이 이층집을 계약하지는 못해도 찬이네 반찬에 가서 미역국을 교보 문고에 가서 『염상섭 문장 전집』을 살 수 있는 하루면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의자 세 개에 앉아 있다. 비어 있는 의자를 바라본다. 누구든 걷다가 지치면 앉을 수 있는 의자 세 개를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이들을 그린 소설집을 5년 만에 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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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에 대해서만큼은, 객관적일 수가 없다. 팬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의 철학> 이후 <후후후의 숲>이라는 예쁘고도 사랑스러운 책을 낸 적 있지만, 정식 소설집으로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난 물론 <후후후의 숲>도 사서 읽었다)
여전히 문체는 단정하고, 주인공은 씩씩하게 고독하다. 대부분 상실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가족 누군가의 죽음. 아니면 자신이 버려짐으로써 부모 상실), 그 상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은 회한을 가지고 있지만, 오래 주저앉아 있다가도 다시 일어나 다른 곳을 여행하고(이번엔 로마), 음식을 요리해서 나누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에 들여다보며 기꺼이 친구가 된다. 그래서 여전히 그녀의 글이 좋다.
-매일 건강과 시 B가 사고로 죽었다는 도시(아마도 로마)로 떠난 그녀. 낯선 도시, 낯선 집에서 보낸 몇 주 또는 몇 달.
'대개의, 앞날이나 미래에 관해 짐작하게 하는 일들처럼, 시인이 되겠다거나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지만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한 명이라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갖고 싶다는 바람같이 혼자 애를 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최소한의 변경만을 오가던 그녀는 마흔이 되기 전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p12)'
'언젠가는 시와 비슷한 것을 쓰게 될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지 몰랐다. 그것이 길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면 잠시 한 번 크게 돌아가는 것일뿐, 살고 있으면 지금보다는 가까이 가 닿게 될 거라고.(p34)'
-11월 30일 어느날 훈은 어머니로부터 파주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 그녀가 빌려간 무언가를 돌려받아 오라는 말을 듣는다. 훈과 어머니의 삶은 동생 찬의 죽음 이후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는 닭을 치고 사는 '그녀'를 만나 그녀가 차려준 밥까지 먹지만, '빌려간 것을 달라'는 말도 시원하게 하지 못한 채 그녀가 건넨 달걀 두판을 들고, 시위로 꽉막힌 광화문을 걸어 지난다.
'그 애가 살아 있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약한 소리로만 이루어진 건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훈은 말해주었을까. 고개를 내저으면서 훈은 노란 불빛을 따라 걸었다. 어른이 되는 시점 같은 건 분명하게 알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그저 하루를, 지금 여기를 통과하고 내일과 그 후의 날들을 통과할 수 있을 뿐이라고. 어떤 슬픔과 어떤 실망을 통과해나갈 수 밖에 없듯. (p61)'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서른 일곱의 아들의 이야기. 아들은 아마도 '베이비박스'에 버려져 입양된 아이인 것 같다. 아버지는 언제나 미래에 일어날 미지의 일을 두려워하여 여기저기 '와이로'를 뿌리며 '보험'을 들어두는 사람이다. 어쩌면 아들을 입양한 것도 자신의 노후를 대비해 들어둔 보험일 지도 모른다. 그런 그는 어느날 홍수가 난 지역의 지붕에 가까스로 대피했다가 헬기로 구조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안전띠를 맨 사람들이 끌어 올려지는 만큼의 하늘도 언뜻 그 생명의 미래처럼 위로 당겨지고 있는 것 같은 저 장면을,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언젠가 내 전부로 경험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며 내 삶을 돌아볼 때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라고 알아차리고 싶었다.(p92)'
-오랜 이별을 생각함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간 남편이 아예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로 하면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다. 왠지 읽으며 뜨끔해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족 돌봄 노동에 가장 적합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매끼 무슨 반찬을 해 자식들을 먹일까, 날씨가 궂은데 빨래는 마를까 걱정하며 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더 이상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때, 나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 아마 우물쭈물 계속 살아가겠지만, 이 글에 대한 공감은 그 속에 있는 어떤 불안한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매 순간 너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 한이가 가버렸을 때 그애는 겨우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소. 그 죽음은, 선한 그 애가 그 세월까지 제가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내 손을 빼내주는 느낌이었소. 비로소 말이오. 당신이 나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오.(p116)'
'미안하고, 여보. 나는 끝까지 열등한 아버지 열등한 남편으로 남게 될 게 분명하오. 여기까지 온 것도 가까스로였소. 모두에게 불충실한 채로 말이오. 지금부터는 나 자신에게만이라도 그러고 싶지 않소.(p122)'
'나한테 우리 가족의 가장 좋은 부분은 당신과 정이, 한이가 모여 있는 아침의 식탁이었소. 내가 빠진 풍경 말이오(p122)'
-김진희를 몰랐다 반찬가게를 하는 나는 빈집에 홀로 있는 열여섯살 김진희를 알게 된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고 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아이. 어릴적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 집을 나온 나는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경찰에 방임이란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그 아이의 부모를 신고하게 된다.
'나는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다. 오늘 밤 네가 죽어도 이 세상에서 그 죽음을 알 사람은 네 부모밖에 없다는 말을. 기본적인 양육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란 말도. 아줌마. 저 나무 꽃도 펴요, 겨울엔 열매도 열리고요. 진희야... 꽃말도 있어요. 플라타너스한테 꽃말도 있구나. 은혜래요. 은혜. 네.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p148)'
'나는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처음 쓴다. 사람은 타인의 삶을 빌려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걸까. 나는 너의 삶을 빌려서. (p154)'
-492번을 타고 '나'는 로마 근교 사피엔차대학에 작가 해외 체류프로그램으로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고독하고도 한가한 생활은 '나'의 어머니가 나타나면서 균열이 가고, 난민촌에 사는 노점상 '자딘'을 만나면서 흔들린다. 나도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 본적이 있다. 육칠년 전 일본 '교토-오사카' 패키지 여행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편하기도 했고, 그만큼 불편하기도 했다. '가족이니 이심전심이겠지' 넘겨짚는 무신경함으로 편했고 여행지에서도 엄마는 나를 '엄마처럼' 챙겨줘서 편했고, 내가 안 좋아하는 엄마의 사소한 점들을 24시간 곁에서 보고 느껴야 해서 불편했다. 이 글을 읽으며 그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엄마와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생각했다.
'...참사, 침몰, 배, 매의 아래쪽. 이런 말들을 담담하게 넘기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p183)'
'내 숙소에서 엄마가 아침마다 외우던 윌리엄 블레이크 시집 중에 "서시(序詩)"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며 엄마가 외우는 그 시를 들었다. 서시. 나 자신에게 이 글이 앞으로 내가 쓸 책의 서시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인가.(p189)'
'나는 여전히 내가 만난 이가 로마에서 로맨틱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언젠가 한 번 자신이 죽을 뻔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러면 그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에, 우리가 마주 앉아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사실에 기꺼이 감탄할 수 있게 되니까.(p190)'
-봄의 피안 닭요리 '명인'인 선생님이 사고를 당하자 선생님 대신에 요리교실 강단에 서게 된 나, '문기'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가족을 잃은 선생님이 가족처럼 여겨준 보육원 출신의 문기가 들려주는 외로운 사람들의 쓸쓸한 이야기.
'우리가 불행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력감 같습니다. 그 무력감 뒤에 도사리고 있는, 나는 이해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도. 자신에게 솔직한 채로 그런 감정에 빠져 지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게 나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해봤자 돌아오는 건 무력한 나 자신뿐 아닌가요? 내 삶이 평범하기는 커녕 그것에서도 한참이나 뒤떨어져버렸다는 깨달음 말입니다.(p213)
'제 삶을 뚫어지게 응시해봤자 돌아오는 건 역시 후회와 숨을 데가 없다는 사실 뿐이더군요. 그 숨을 곳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p221)'
-저수하(樗樹下)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횡보 염상섭의 산문에서 빌려온 것이라 한다. 소설가인 나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경복궁 근처의 한옥촌에 있는 방들을 둘러보는 중이다. 그러다 염상섭에 관한 학회에 참석하러 가다가 '노란색 운전복 상의'가 잘 어울리는, 이마 한가운데에 깊은 주름이 있는 전직 대통령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게 된다. 책이 가득 꽂힌 석자짜리 책장 열일곱개를 옮길 걱정에 '나'는 그만 독립할 생각을 거둔다. 올 초 이사할 때 가장 큰 미션이 '책 줄이기'였다. 내게도 책이 빽빽이 꽂힌 책장이 열 한개나 있었던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4개를 줄였고, 앞으로 일년 안에 세 개쯤 더 줄일 생각이다. 잠자는 머리맡에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세 할머니(귀신임이 틀림없다)' 이야기나 택시기사가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이라거나, 뜬금없이 나타나는 주인공의 아이 등, 환상적인 요소가 많은 글이다. 호러나 SF, 미스터리도 좋아하는 내 취향상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은 글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전반적으로, 마음에 안 드시죠? 오늘처럼 누군가를 기리는 일은 참 좋지요. .... 그래, 그 자리에 가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리는 못했는데요, 집단과 개인의 운명에 관해 짧게 말하려고 해요. 그게 횡보가 추구했던 문학의 핵심 아닌가요? 네, 여전히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소설에서 중요한 일인 거 같아서요. 어디 그게 소설에서만 중요한 일이겠습니까.(p232)'
'택시에서 내가 내리기 전,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라고 내가 물었을 때 그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지요, 하였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평범하고 시시한 대답이었기 때문에 더는 묻지 않았다. (p249)'
'저걸 두고 어떻게 나가. 한숨처럼 저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책장에 등을 기대고 낮아 있는 아이가 나?라고 묻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눈 앞이 흐릿해지려고 한다. 저 애는 내가 쓴 책인가, 쓸 책인가.(p251)"
'그럴 때면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주인공처럼 나 또한 전신에 냉수가 끼얹어지는 느낌이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볼까, 하는 작정이 들면 어디에 있다가도 나는 내 책상 앞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p252)'
작가는 지금 현재의 삶을, 때론 지질하고 남루하고, 슬픔과 괴로움만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삶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묻고 싶어지는 날들을 그래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말하고 있다. 내가 지금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일.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읽는 일.....
화이팅! 을 외치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씩 힘을 내 보고 싶은 엄청 더운 여름 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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