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래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반이나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서(말이 쉽지, 집안이 어떻게 뒤집혔고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열흘낮 열흘밤을 이야기해도 모자란 그 지난했던 시절이여……) 재수 학원에 다닐 때였다. 답도 뻔한 4지 선다형 의 문제들에, 국어책에 실린 시라고는 김춘수의 꽃, 서정주의 동천,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김광균의 추일서정같은 '딱 국정교과서용'인 시들에 진절머리를 치던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에게 답의 경우의 수가 무한히 확장될 여지가 있는 '수학능력시험'의 세계는 실로 경이로웠다. 그때, 재수학원의 국어 시간에 박용래의 시「月暈」을 읽은 순간 나는 가슴이 탁 막혀오고 말았다. 귀뚜라미 울음 소리를 빌어 우는 홀로된 노인의 메마른 울음, 흙벽이 무너져라고 우는 버석이는 노인의 울음, 참으로 지독히 외로운 울음, 사방에 물이 출렁거리는데도 지독히 목마른 울음. 참으로 가슴 아픈 울음. 어쩌면 그때 이미 직감해버렸는지 모른다. 박용래라는 시인의 눈물을. 그러나 노인의 울음과는 다른, 축축하게 젖어드는, 습기 가득한 울음을. 대한민국에서 '싸나이'의 울음이 갖는 어처구니 없는 금기와 신비스러운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면에서 박용래 시인은 정말로 자유로운 남자였을 것이다. 그 눈물의 바다, 그 북받치는 감정의 바다, 마음껏 헤엄치고 허우적거리며 실신하고 깨어날 수 있는 그 바다에서 시인은 눈물의 소금기를 먹으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시집『먼 바다』는 그래서 아름답다. 시가 고스란히, 혹은 조그마한 부분에서 시인의 성정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면, 박용래 시인의 시들은 그의 빼고 덜 것 없는, 감추고 가릴 것 없는,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대로, 모자란 것은 모자란 대로 다 드러내 보여주고 마는 그의 성정에서 비춰지는 얼굴일 것이다. 아랫도리를 드러내놓은 채 온동네를 뛰어 다니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아니, 어린아이의 순진한 악의는 걷어버린, 착함만 남은 성정. 시집『먼 바다』의 모든 시들은 어느 것 하나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 없다. 거짓 없고 꾸밈 없고 그저 솔직하기만 하다.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는 산처럼, 저기 멀리서 넘실대는 바다처럼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도통 모르는 자연 그대로의 시, 어쩌면 그것은 시인 박용래의 성품 그대로일 것이다. 그 성품이 박용래 시인을 시인이 되게 했고, 시인으로서 살다 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것이 박용래 시인을 시인이게 했으되 또 시인으로서의 한계를 짐지웠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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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2.8.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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