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게 된 체제이다. 물질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원동력으로 하여 물질을 추구하고 풍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다른 관점이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욕망에 비해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개인의 욕망을 제한하여 개인 간의 분쟁을 막고 주로 내적이고 관계적인 조화를 인생의 목적으로 하여 사회를 운영하고자 했다. 그래서 종교는 동서양 막론하고 물질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한다. 서양에서는 중세에 기독교의 위세가 지배하여 내세에서의 영원한 행복에 중점을 두고 현세에서는 금욕주의가 강조되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포함한 현세에서의 욕구의 실현은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점차 시대는 르네상스로 인한 사상의 해방,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능력의 확대 등으로 사회의 물질적 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고 점차 물질적 생산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중세 기독교의 전통적 입장에서는 물질의 추구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입장과는 차별화된 시각을 가지는 프로테스탄트의 분파들이 생겼다. 이 중에 칼뱅주의를 잇는 청교도주의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공여부는 내세 구원의 예정 징표라는 교리를 확립하여 부의 추구를 긍정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미국의 초기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하지만 청교도는 부의 축적은 허용하였으나 부의 소비를 통한 즐거움은 허용하지 않고 청렴한 생활을 강조하여 자본의 축적이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진전에 따라 경제체제에 소비 또한 중요한 것이 되었고 이제 자본주의는 청교도의 입장과 차별화된 단계로 나아갔다. 이 책을 보면서 물질에 대해 부정적인 종교의 전통 속에서 물질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양자가 사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일 영향력이 큰 것은 기독교와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일 것이다. 이슬람교 같은 경우는 서구의 언론을 통해 접하다 보니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신앙하는 융통성없는 꽉막힌 종교 정도로 오해받고 있으며, 힌두교의 경우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는 다신교로서 인도의 신분제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종교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읽어보았던 다른 서양의 고전을 비롯한 인문학 작품들은 거의 모두 "신"의 개념을 빼놓고서는 작품을 논할 수 없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서양사회를 이루고 있는 지식과 정신의 근간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은 얼마나 큰 것인지는 구한말에 해당 종교를 접해 지금까지에 이른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다. 원죄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반성, 구원에 대한 열망, 철학의 논거를 신성에서 감히 찾는 태도.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느 철학자나 저명 인사가 자신의 논거를 들기 위해 신에게서 그 근원을 찾는 발언을 공공연히 매체를 통해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막스 베버는 유럽인 답게 유럽의 근대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에 그리스도교 중 루터와 칼뱅으로부터 비롯된 신교로 대표되는 청교도 - 감리교 등 - 의 교리를 근거로 구원을 받은 징표로서 확인될 수 있는 부를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왔고, 결국 구원받기 위한 징표를 확인하기 위해 부를 축적 - 쓸데없이 소비하는 것은 안 된다. 아껴쓰고 자본으로 투입해야 한다 - 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근대 자본주의가 발흥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종교적 금욕주의의 숭고함도 돈의 논리에 매몰되었다고 한마디는 한다. 자본, 돈, 투자, 이윤창출로 대표될 수 있는 자본주의에 종교적 신념이 더해져서 발전했다는 주장은 당연히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무신론자인 나로써는 종교적 영향력이 사회발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바로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간에 접한 서양의 인문학 서적들에서 신이라는 존재 -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 를 통해 논증한 것을 생각해 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신정일치" 사회였던 유럽의 역사를 보면 말이다. |
|
종교개혁 활동을 하기 위해 세상사에 점덤 더 깊이 관여하게 되는 과정에서, 루터는 직업을 가지고 노동하는 것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개개인이 종사하고 있는 구체적인 직업은 하느님이 섭리를 통해서 개개인에게 어떠 구체적인 지위를 정해 주고서 거기에서 생겨나는 의무들을 수행하도록 한 특별한 명령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열광주의자들과 농민 폭동에 대항해서 싸우고 나서는, 하느님이 개개인을 사회적으로 특정한 지위와 직업으로 보내어 거기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며 살아가게 한 것보다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객관적인 역사적 질서가 더 하느님의 직접적인 표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 막스 베버의 이 걸작은 오늘날에도 사회과하 분야에서 가장 대담한 시도 중의 하나로써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글이다.베버의 논증을 둘러싼 논쟁은 방표 당시부터 격력하게 전개되었을 뿐만 아니라,그 논쟁의 격렬함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약해지지 않고 있다. |
| 막스 베버와 칼 마르크스에 대해 '오해받는 경제학자'라 평했던 선생님이 계셨는데(누구보다 자본주의를 깊게 이해했던 마르크스와 자본의 천박함보다 청빈함을 칭송한 베버라며...)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대여한 책입니다. 일독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일단 시대상을 알아야 하고 그 당시의 이론이 어떠찌도 파악해야 하며 이 책이 후대에 미친 영향도 알아야 한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어떤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
| 박문재님이 번역하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완역본 리뷰입니다. 글자 크기가 조금만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래도 책이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역도 좋았던거 같아요. 그래도 글이 번역때문에 안읽히다는 느낌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
| 개신교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칼뱅파로 대표되는 금욕주의 사상과 자본주의와의 관련성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부분에 있어 막스 베버의 논리전개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사회의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지는훌륭한 교육환경의 영향인 것인지, 혹은 막스 베버 개인의 천재성에 기인하는 것인지, 책의 높은 수준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논리전개의 치밀함과 정교함, 각 주(인용, 래퍼런스)의 방대한 양...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
|
막스 베버의 이 책은 사회과학이든, 인문학이든 글을 읽다보면 너무 자주 인용되는 책이다. 이 책을 소략한 글이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사회학 개설서 등에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그러한가? 싶어서 구매했다. 그 시대의 사회상도 잘 모르고, 칼뱅주의 등에 대한 종교적 지식도 없기에 여러모로 읽기 난감한 책이였지만 번역자의 친절함에 그나마 따라가기 좋았다. |
|
저같은 경우에는 막스 베버의 이론에 대한 비판을 먼저 접하고 나서 그 궁금증으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봤습니다. 흔히 막스 베버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실제로 그가 주장한 것처럼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형성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본가의 절약정신과 금욕주의가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를 저해하는 요인이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마치 중산층만이 갖고 있는 가치관으로 묘사하지만,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유럽 전역에 중, 하층민에게 퍼져있는 윤리 였다는게 최근의 연구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위그노들입니다. 이러한 비판론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스 베버의 논리가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문제는 부차적으로 간주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막스 베버가 주장한 이 논리가 선후관계를 떠나서 당시 급격하게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던 유럽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가 된 것처럼, 당시 발전하고 있던 자본주의에 대해서 일종의 대의명분을 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
대여 이벤트 상품을 나와서 구매해보았다. 사실 이 책을 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어서 좋았다. 포로테스탄트는 기독교의 한 종파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개신교를 뜻한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기독교 교리가 자본주의 가치관과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연결시켜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찾아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굉장히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