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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지평 신원 미상 여자 팔월의 일요일들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 도라 브루더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청춘 시절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혈통 한밤의 사고 슬픈 빌라 작은 보석 아득한 기억의 저편 신혼여행
# 읽고 나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딱 한권을 더 읽어봤을 뿐인데, 이 작가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딱 정의내리고 싶게 만들어지는 두 번째 작품이었다. 지난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과거를 더듬으며 찾아내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새 사람'이 된 후 과거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과거를 더듬어 가는 이야기다.
나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꼼짝 않고 누워서 지난 이십 년 동안 몸을 파묻어 감춰왔던 영국 작가라는 두꺼운 갑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범죄소설 작가로 성공한 '엠브로즈 가이즈'는 일본 출판계약을 위해 파리를 방문한다. 파리는 그가 오래전 떠는 모국이다. 계약을 마치고, 파리의 곳곳을 보며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나 기억의 실타래를 푼다.
면도를 하지 않은 지가 한참 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비렁뱅이 꼴이 된다해도 상관없었다. 클로스터스는 날씨가 좋단다. 그러나 나는 시커먼 물속에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기 위해 이제 우물 깊숙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영국으로 떠나는 것을 도와준 친구의 자살 소식. 그리고 경찰 조사 기록. 과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 못지않게 독자들도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그 일 자체보다는, 떠나온 과거를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는 과정과 과거의 사람들이 더 흥미로운 소설이다.
"인생이란 앞뒤로 이어진 여러 주기들의 연속이랄까요...그래서 이따금 '출발점'으로 되돌아와보기도 하지요. 파리에 돌아오면서부터 이제 엠브로즈 가이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딱 두 소설을 읽어본게 다지만, 작가는 아무래도 인간의 정체성은 과거, 역사에 뿌리박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 하다. '새로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지만, 다시 어두운 과거를 헤치고만 싶어하는 주인공을 그리다니. 그가 만난 과거의 지인도 유령, 죽은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매일 과거를 쫒으며 살아가고 있다. 왜 그들은 과거에 얽매여 밖으로 나오지 못할까. 딱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만한 과거 (만약 그런게 있다면..) 도 아닌데 자꾸만 되돌아 가는 그들이 안타깝기도, 의아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마 나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시간이 늦었길래 나머지 부분은 내일 읽어야 겠다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부분에 뚝. 끝나버렸다. 그 마지막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파트릭 모디아노 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뒷 부분의 해설을 마저 읽었다. 그보다 나은 결말은 없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결말. (고작) 서른 아홉에 모든 인생을 다 알아버렸다는 듯한 그의 모습은 확실히 어색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 나는 자위하기 위하여 혼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
그래.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고, 떠날 땐 떠나야지.
* 밑줄 쳤던 내용 사람은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다.
"내가 아주 저급한 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아마?" "그건 문학이 아니지요, 가이즈 씨. 전혀 다른 거지요." "동감입니다."
"당신의 인생 초년기를 지켜봐온 그 모든 사람들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어요. 당신은 아주 젊을 때 그 살마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그때 이미 인생의 황혼기였으니까요...."
그때 그들은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혹은 아주 침몰해버린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무렵 그 사람들은 이미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었지만 - 로크루아가 내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 가장 자주 듣는 노래는 봄노래였다. <파리의 4월> <어느 다른 봄> <포르투갈의 4월> ...
나만한 나이..그렇다. 이제 나는 그 당시 그녀의나이만큼 나이를 먹었다. 서른아홉 살. 나도 이제 아침 여섯시경이 되면 그녀를 엄습하던 그 불안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들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은 내게 덧없는 영상들만 남긴 채 빨리 지나가버렸기에 그 연도와 날짜에 내가 이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저만한 나이 때는 로마에 있건 파리에 있건 매한가지지...어디에 있든 전혀 중요하지 않아...나이 스무 살에 로마에 살건 파리에 살건..."
그런데 나 말이오? 나는 뭘 좋아했느냐 하면? 책을 좋아했지요. 그렇다면 왜 문학 방면으로 진출할 생각을 안 해봤느냐고? 왜냐고?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정해 가지고 있어야 해요. 안 그랬다가는...나는 그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그때 나는 충고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충고해주는 사람들의 말이 도무지 헛수고로만 여겨지는 그런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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