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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소설이다. 고전 걸작으로 이름이 높아서 독서에 일천한 나도 어릴 적부터 제목은 알고 있었다. 제목만 알았지 읽어볼 생각은커녕 내용을 찾아볼 관심도 갖지 않은 채로 지금까지 시간을 보냈고 구매한지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경험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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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종이책으로 구입하세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무료로 대출하지 말고, 꼭 돈주고 구입하세요. 그래야 돈 아까워서라도 읽게 됩니다. 초반은 좀 지루할 수 있을 겁니다. 참으세요. 그냥 참고 계속 읽으세요. 그럼 제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알게 될 겁니다. 노인의 행동 행동 하나 하나를 관찰하세요. 이제 뭔가 느낄 겁니다. 가슴 속에 뭔가 쓰윽 지나갑니다. 잊지 마세요. 가방 안에 넣어두고, 지하철 안에서나, 회사 점심시간 후 화장실 칸 안에서라도, 두고두고 읽으세요. 뭔가 보일겁니다. 다시 일어나세요.
당신이 우울한 이유. 주변의 냉담한 시선.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가족 친지 친구 남편 부인 딸 아들래미. 잠시 뒤로 미뤄두고.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성공과 실패? 이 두 단어가 가지는 의미.
노인과 바다라는 책은 그걸 보여줍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잃어버린 세대. 지금 우리가 아닐까요? 서로 안아줍시다. 그냥 말없이 귀열고 경청합시다. 그리고 조용히 산책을 나갑시다. 그리고 묵묵히 걷다보면 뭔가 보입니다. 저도 그러렵니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다시 읽습니다. 읽어보면 압니다. 좀 읽고 나서 생각합시다. 이런 리뷰글 보지 말고, 직접 읽으시라고 줄거리는 쓰지도 않을 겁니다. 제목은 참 지루해도 읽고나면 왜 대표적인 고전소설인지 알게 됩니다. 책을 열어요. 읽고 느껴요. 우리 가슴 뜀을 느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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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바다, 삶을 일깨우는 거울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어부(산티아고)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살라오’라고 부른다. 살라오는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럴 만도 하다. 84일이나 고기를 못 잡았으면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처음 사십 일 동안은 소년(마놀린)과 함께 했지만, 고기를 못 잡는 어부에게 기꺼이 아이를 맡길 부모는 없다. 소년은 다른 배로 옮겼고, 어부는 이제 혼자서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예순이 훌쩍 넘은 어부 산티아고는 깡마르고 여윈 몸에, 얼굴에는 갈색 반점들이 가득하고,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다. 소년은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산티아고와 고깃배를 탔다. 지금도 그는 산티아고와 더불어 일하고 싶다. 하지만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다. 가장 운이 없는 사람과 일을 했다가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게 이유이다.
소년은 산티아고를 가장 훌륭한 어부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그런 소년이 정말로 고맙다. 소년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커다란 고기를 잡아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걸 그는 사람들 앞에 증명하고 싶다. 그러려면 반드시 고기를 잡아야 한다. 웬만한 고기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릴 정도로 큰 고기를 잡아야 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고기와 만나는 운도 따라야 하는데, 산티아고는 팔십 일이 넘도록 고기를 잡는 손맛을 못 보고 있다. 그는 이번에는 뭍에서 좀 더 멀리 나가볼 생각이다. 그만큼 고기를 잡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산티아고는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부른다. 스페인 어에서 ‘la’는 여성형 명사에 붙는다. 상어 간을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사들인 부류들이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는 남성형 명사로 부른 것과는 다르다.
바다를 ‘엘 마르’로 부르는 사람들은 바다를 경쟁자, 일터, 적대자로 부른다. 바다는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이고, 그 결과가 물고기를 잡는 일이다. 이에 비해 산티아고는 바다를 큰 은혜를 베풀어주기도 하고 고통을 안겨다주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다와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바다에 제 운명을 맡기고 그저 묵묵히 바다가 주는 것을 받을 뿐이다. 돌려 말하면 바다가 주지 않는 것을 그는 억지로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바다를 적대자로 생각하면 어떻게든 바다를 이겨야 한다. 적대자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적대자가 아니라 친구나 애인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바다는 반드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산티아고는 배를 타는 내내 이런 마음으로 바다를 대했다. 그에게 바다는 곧 자신을 일깨우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거대한 물고기와 벌이는 사투
바다에서 해가 떠오른 지 두 시간이나 흘렀을까? 군함새 한 마리가 검고 길쭉한 날개를 활짝 펴고 상공을 맴돌다가, 날개를 뒤로 쭉 젖히고 수면으로 급강하해 내려왔다가는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산티아고는 군함새가 무언가 큰 것을 찾아냈다고 직감한다. 징조가 좋다. 이번에 고기를 잡으면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더 이상 듣지 않으리라. 물 위로 솟아 있는 초록색 막대기가 갑자기 물속으로 푹 잠긴다. 고기가 미끼를 건드렸다는 표시이다. 고기는 신중하다. 섣불리 미끼를 물지 않는다. 다시 낚싯줄에 가벼운 반응이 온다. 순간 산티아고는 뭔가 육중한 것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여분으로 준비한 낚싯줄 중 하나를 아래로 풀어 고기의 움직임에 대비한다. 함부로 낚싯줄을 당겼다간 고기는 줄을 끊고 도망가 버릴 것이다. 어를 때는 어르고 칠 때는 쳐야 한다. 그래야 고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미끼를 문 고기는 한결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배와 고기는 사이좋게(?) 잔잔한 바다 위를 한가로이 헤쳐 간다. 고기는 북서쪽으로 향해 간다. 뭍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다. “나도 저놈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저놈도 나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겠지,”라는 문장에 드러나는 대로, 사람과 고기는 드넓은 바다에서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격이라고나 할까. 함부로 움직이면 고기는 목숨을 빼앗길 수 있고, 어부는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수 있다. 미끼를 문 고기는 그래서 하염없이 뭍에서 먼 쪽으로 헤엄쳐 나가고, 어부는 어부대로 고기가 움직이는 바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에 대비한다. 낚시에 걸린 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산티아고는 생각한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자기 몸을 뜯어먹을 수 없으니, 모든 생물은 다른 생물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언제던가, 산티아고는 문득 청새치 한 쌍 중에서 한 마리를 낚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낚시에는 암놈이 걸려들었는데, 수놈이 계속 암컷 곁에 붙어서 낚싯줄을 넘기도 하고 암컷과 함께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수면을 맴돌기도 했다. 산티아고가 소년의 도움을 받아 암놈을 뱃전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수놈은 따라왔다. 상황이 종결된 걸 눈치 챘는지 수놈은 마지막으로 암놈을 보기 위해 뱃전 옆에서 공중 높이 뛰어올랐다가는 이내 물속 깊이 자취를 감추었다. 산티아고는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수놈이 암놈을 사랑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모든 생물은 그렇게 태어나 사랑을 하고 죽는 것이다.
노인이 바다에서 세 번째로 떠오르는 해를 본 날 아침, 고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시커먼 그림자 같았는데, 배 밑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너무 한참 걸리는 바람에 그 길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91쪽) 산티아고는 지금까지 맞닥뜨리지 못한 거대한 고기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도와주는 소년도 없이 노인은 과연 이리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산전수전 겪은 어부라고 해도 한참 적을 지난 노인이 아닌가. 산티아고는 반드시 고기를 잡을 거라고 거듭 다짐한다. 이리 큰 고기를 잡아 뭍으로 돌아가면 한물갔다고 놀리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노인을 최고의 어부로 생각하는 소년은 또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그는 무엇보다 소년에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어부라는 사실을 이 거대한 물고기를 잡음으로써 입증하고 싶다.
사투 끝에 노인은 자신의 가슴 높이까지 솟아오른 고기의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쪽 옆구리에 작살을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작살의 날이 고기 몸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왔다. 길쭉하고 널찍한 몸뚱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 한 숨 제대로 못 자고 무려 이틀 만에 잡은 고기였다. 바다는 고기의 심장에서 뿜어 나온 피로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제 잡은 고기를 뭍으로 끌고 가는 일만 남았다. 이틀 동안 고기를 따라 먼 바다로 나온 터라, 얼마나 가야 뭍이 나올지 쉽사리 계산이 안 된다. 게다가 고기를 잡은 다음에 할 일도 많다. 일단 고기가 너무 커서 뱃전에 올릴 수 없다. 배에 매어 뭍까지 끌고 가야 하는 판이다. 이 고기를 뭍으로 가서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꿈결 같은 이틀이었다. 배에 매인 커다란 고기를 보면 분명 꿈은 아니다.
상어 떼와 벌이는 또 다른 싸움
뭍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조롭다. 이대로 가면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린 채 노인을 맞이할 것이다. 희망이 곧 현실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한 시간 뒤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맹렬한 속도로 배를 따라온다. 크고 힘센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느라 산티아고는 이미 기진맥진인 상태이다. 상어들이 따라붙으면 고기를 지킬 방법이 없다. 노인은 다시 입을 앙다문다. 어떻게 잡은 고기이고, 얼마 만에 잡은 고기인가. 뭍까지 끌고 가 자신이 어부로서 뛰어난 사람임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소년과 함께 다시 낚시를 할 수 있다. 청새치와 싸운 것 이상으로 노인은 상어들과 사투를 벌인다. 사투를 벌이는 순간마다 고기 몸은 점점 줄어든다. 간신히 상어를 물리치면 얼마 후 다른 상어들이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다. 그럴수록 노인은 죽을 때까지 싸울 거라고 다짐한다. 상어는 상어의 일을 하면 되고, 어부는 어부의 일을 하면 된다. 상어가 이기면 어부는 맨손으로 뭍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부가 이기면 고기는 전리품이 되어 어부의 삶을 빛낼 것이다.
자정 무렵 또 다시 상어는 떼로 몰려 왔고, 산티아고는 그제야 더 이상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밤중에도 그는 느낌과 소리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승산이 없어도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어부로서 바다에 대해 예우를 지키는 길이다. 배에 매인 고기는 이제 머리만 남았다. 그 머리를 향해 마지막 남은 상어 한 마리가 돌진해 온다. 노인은 마지막 힘을 모아 키 손잡이로 상어 대가리를 내리쳤다. 손잡이가 부서지자 그 조각으로 힘껏 상어를 찔렀다. 몸속 깊이 상처를 입은 상어는 물었던 살점을 놓고 저 멀리로 물러갔다. 산티아고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입속에서 구리 같은 들척지근한 맛이 느껴진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안 된다. 소년과 다시 낚시를 해야 한다. 노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배는 바다 위를 가볍게 미끄러져 달린다.
음식 부스러기를 찾는 상어들이 또 다시 달려들어도 노인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할 일은 이미 다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늦은 밤이라 항구에는 아무도 없다. 노인은 돛대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힘에 부친 노인은 그대로 땅에 쓰러진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다시 걷기 시작한다. 다섯 번을 쉬고 나서야 판잣집에 이른다.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잠에 빠져든다. 일은 끝났다. 상어에게 고기를 빼앗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엄청나게 큰 고기를 산티아고 혼자 힘으로 잡아냈다. 한물 간 어부라고 비웃던 사람들을 향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왜 뛰어난 어부인지를 입증했다. 그것이면 된 것이다.
바다, 생명의 터전
이튿날 아침, 소년이 판잣집 문 안을 들여다본다. 항구에 정박한 배를 확인하고 올라온 참이다. 많은 어부들이 조각배 주위에 모여 뱃전에 매달린 것을 구경했다. 코끝에서 꼬리까지 무려 5.5미터나 되는 고기다. 사람들은 산티아고가 이 고기를 잡았다는 것을, 그리고 뭍으로 오는 도중 상어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들 또한 어부들이 아닌가. 이렇게 물증으로 보여주는 바에야 산티아고가 뛰어난 어부라는 것을 그 누가 부정하겠는가.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이리도 큰 고기를, 그것도 혼자서 잡은 그를 바다를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은 잠에서 깬 산티아고에게 얼른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자기에게 고기를 잡는 모든 방법을 알려달라고 이야기한다. 노인도 원하던 바다. 소년과 함께 바다로 나가 커다란 고기를 낚는 꿈이 현실이 되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산티아고는 왜 이토록 고기잡이에 매달린 것일까? 제목 ‘노인과 바다’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노인이라고 부른다. 늙어서 더 이상 어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얘기리라. 하지만 산티아고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남들 못지않게 고깃배를 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소년만이 산티아고의 그 마음을 믿어준다. 노인은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불어 사는 삶터인 바다를 향해 길을 떠난다. 그에게 바다는 친구이고 애인이고 가족이다. 생명과 생명이 뜨겁게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다가 삶터인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 사는 고기를 잡는다. 고기를 통해 생명을 잇는다고나 할까? 이것은 고기가 없으면 산티아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노인에게 바다는 삶을 주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죽음에 이르는 공간이다. 산티아고는 천생 어부로서 삶을 바다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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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껏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요? 이 책을 접하면서 저의 한심한 인생을 자아 비판해 봅니다. 다른 분들이 이 좋은 책을 여러 번을 읽으실때 저는 한 번도 책으로 읽어 본적이 없다니 말이 되는지 정말 한심해서 눈물이 납니다. 어릴 적에 영화로 본 기억은 어렴풋이 나기는 나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인간이 살면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이 책 한 권이 다 가르쳐 주네요. 이 책을 좀 일찍 접했다면 저의 인생이 한결 수월해 졌을텐데 하며 푸념해 봅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열심히 마음속 깊히 읽어 보겠습니다. 자기 계발이 따로 있는게 아니네요. 이젠 고전에도 관심 가져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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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함께 늙어간다. 깊어지고 진해지고 느껴지고 전해지는게 점점 달라지고 보이지 않고 스쳐지났던 것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책과 함께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과 바다를 처음 접한 중학교때 이후로 군대에서 한번 그리고 40을 앞두고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읽을때 마다 다르게 내게 왔다. 노인이 바다에서 벌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면 이제는 그 사투이후의 향이 더 진해게 느껴진다. 삶이란 이런게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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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는 어릴 때 읽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어보고자 구입했습니다. 현재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이 훼손되고 그 댓가가 인간들에게도 돌아와 앞으로 지구촌의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헤밍웨이 작가의 문체가 정말 완벽한 문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한글로도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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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야기가 생각보다 짧아서 놀랐다^^ 훌륭한 작품임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몇번이든 다시 읽을 것 같고 읽을때마다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이번의 키워드는 '패배'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작가의 엄청난 묘사 덕분에 마치 노인과 한 배를 탄 듯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를 보고 물고기와 별과 새들과 바다를 향한 그의 마음가짐을 느끼고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 또 상어들에게 그것을 잃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겪은 듯 한데 뼈만 남은 물고기를 배 옆에 매달고 초주검이 되어 마을에 도착한 그를 감히 누가 패배자라 할 수 있을까 성공과 실패라는 것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결과로만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본인만이 알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이루었는지 패배했는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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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저는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노인은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눅 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고전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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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며칠 전 니체의 책을 읽을 때 옮긴이의 서문에서 니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생관을 설명하며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를 예를 들었기에 얼마 전에 사둔 민음사 노인과 바다를 꺼내 들었다. . 투박하지만 청초하고 꼿꼿한 노인 '산티아고'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대자연의 산물 청새치와의 목숨 건 사투. . 사투 끝에 산티아고는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결국 피냄새를 맡고 달라붙은 상어떼. . 살코기를 상어떼에게 다 뜯기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여 마을에 도착했지만 그의 배에 매달린 청새치의 뼈만으로도 그의 굳건한 의지와 숭고한 투쟁을 알리는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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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그에게 소년 마놀린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청새치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 책을 읽으면 생각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읽는 나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고 하던데,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헤밍웨이는 생전에 말하길. “8분의 7이 물속에 잠기고 나머지 8분이 1만이 수면에 떠오르는 빙산처럼, 훌륭한 소설가라면 감정을 헤프게 드러내지 않고, 그 일부만을 드러내어 나머지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문학의 매력은 정답이 없다는 점.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책이 주는 감동을 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붙들고 사색하는 것이 때론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진득하게 이 책을 읽고 사색한다면 분명 더 많은 메시지를 발견하고, 더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책은 독서모임이 있다면 서로 느낀 점을 더 풍성하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문장] “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폐인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것처럼 불렀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사들인 부류들은 바다를 ‘엘 마르’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인 것처럼 불렀다. 그러나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P.31)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P.104)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P.106) "소년은 문밖으로 나와 발길에 닳고 닳은 산호초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또 엉엉 울었다." (P.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