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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젊은 배우, 아직까지 젊음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제임스딘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영원히 살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것처럼 살아라'
자신의 운명을 알았기에 이런말을 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 적절한, 그러면서도 여러사람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영원히 살것처럼 살면서, 내일 죽을것처럼 꿈없는 사람이 많죠. 그렇기에 인생은 짧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없다는 소리가 더욱 적절하게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소설인 이 책은 울나라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일'이 떠오르게 합니다. 조인성과 소지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하지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여주인공 노라의 모습. 하지만 하지원만큼 땡잡은 상황은 아닌거 같습니다. 한넘은 유부남입니다. 우리나라 불륜 막장 드라마 같죠? 또 한넘은 노라보다 출세욕이 더 큽니다. 젊은이의 양지 이종원처럼 지 출세를 위해 여자를 버릴거 같은 넘입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늘 그렇듯이 노라는 이런 점이 더 끌립니다. 여자들이여, 왜 항상 나쁜남자한테 끌리는 겁니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까요~ 현실에는 현빈과 조인성이 없습니다.
나쁘고 어리석어 보이는 노라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전 남자입니다만 만약에 여자라면 조인성과 소지섭이라는 멋진 남자둘이 구애를 해온다면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혹 오해를 하실까봐 다시 뻔한 예를 들겠습니다. 박하선과 유이가 동시에 구애를 한다(왜 이 둘이냐면 제 이상형이기에)그러면 선택하기 정말 힘들겁니다. 행복한 망상이군요 ㅎㅎ 그러나 그런 욕망의 끝은 어떤가요?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발리에서도 아시다시피 큰 불행으로 끝을 맺죠. 이 소설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리가 없겠죠?
물질이든 사랑이든 명예욕이든 뭐든간에 큰 욕심은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적절한 제목의 볼만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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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중 이 소설 속에 담긴 세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쯤 놓여있는 걸까. 그들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도 그저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신파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난 이 세사람중 어느 한사람도 나와 동일시 되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보다는 소설을 읽을수록 자꾸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온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노라라는 여자에게 화가 났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긴 시간의 고통을 외면한채 한 몇년 연락두절했다가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노라가 참 미웠다. 너무도 일방적인 사랑.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블레리오와도 머피와도 감정교류가 느껴지지않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건 어쩌면 불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가 할수있는 일종의 사랑법, 사랑을 갈망하지만 늘 방어기제가 앞서는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던거다. 오히려 블레리오나 머피중 누군가 더 세게 더 강하게 꽉 그녀가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사랑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라는 왜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걸까. 어떤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의 나였다면 분명 노라를 부러워 했을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때론 기쁨에 들뜨게도 때론 아프게도 할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20대를 지나는 동안 노라보다는 사빈의 입장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결국 노라의 만족은 끝이 없고, 모든것들이 파국으로 치닿는 가운데 그녀 마저도 스스로를 무너뜨린 꼴이 되지 않는가. 내생각에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 소설의 제목 '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에 모두 나타나 있는것같다. 어쩌면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룸데일, 노라 이 세사람이 욕망했던건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닌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한게 아닐까 싶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오히려 더 허하고 쓸쓸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짧은 인생속에 너무나 큰 파국을 가져다 준다는걸 이 소설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보통 책 한권을 잡으면 일주일 이내에 읽었던 반면, 이책은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것 같다. 줄거리 보다는 파트리크 라페르 라는 작가의 글솜씨,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유독 마음에 와닿아 한줄 한줄 가슴으로 느끼며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던것같다. 줄거리만 건진다면 단 몇줄에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무척 쓸쓸하게 재생산 될수 있었던건 작가의 글솜씨 덕분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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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근데 어쩌면 사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개방적이다. 자유롭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묶여 있는,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유부남인 루이를 만나고 동시에 또 다른 남자 머피를 만나는 여자 로라. 아내는 단순하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루이는 2년 전 헤어진 로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지만 상관없다.
불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일까? 그는 그녀를 갈망하고 욕구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 정당한 방법은 아니다. 정당하고 올바른 관계 또한 아니다. 나는 이들이 어떤 합리화된 이유에서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사랑은 다소 불편하다. 하지만 루이는 그렇지 않다. 오직 로라뿐이다.
그녀는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그가 바로 머피다.
이렇게 두 남자 사이를 갈팡질팔 하던 그녀. 두 남자 사이에서 결국 그녀는 둘 중 누구를 선택하지 못한다. 이건 비극일까? 희극일까?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솔직히 나름의 설득력을 통해서 사랑의 욕망에 벗어나지 못하는 로라의 마음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용납도 안 되는 이 불쾌한 기분은 나만 드는 건지…
프랑스 소설이라 그런가? 낯선 느낌이 든 소설은 묘하게 매력적이긴 했지만 사실 편하게 읽지 못했다. 어쩌면 우선적으로 로라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오는 게 먼저일 수 있겠지만, 소설의 서사성이 모호하고, 개연성도 아리송해서 작가의 소설의 서술법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모호하고 아리송하고 답답하고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니 내 마음이 매우 복잡한 상태구나… 생각이 든다. 나중에 조금 내 마음이 편해질 때 다시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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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욕망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인생은 짧다. 그러므로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했다. 개중에는 인간관계를 더욱 쉽게 이어주는 도구도 있다. 거리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전화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비행기와 자동차 같은 운송수단의 지속적인 성능의 향상은 먼 곳에 사는 지인과의 만남을 훨씬 더 쉽게 한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의 노라 네빌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전화기에 저장된 파리와 런던에 거주하는 두 남자.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롬데일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이용하여 상반된 성향의 루이와 머피 사이를 자유롭게 왕복한다. 외로움에 처했을 때, 그녀와 그들은 욕망의 끈에 간단히 접속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실제적인 만남. 그 후에 이어지는 성관계의 쾌락을 만끽하면서 삶을 연명한다. 루이와 머피. 그리고 노라에게 쾌락이 빠진 삶은 궁핍. 결핍처럼 핍(乏)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즐긴다기보다는 연명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마치 마약과도 같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노라와의 관계가 잠시 끊어졌던 순간은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순간과도 같다.
52. 신이 만들어 낸 문제 인물들처럼 그의 방을 스쳐 지나간, 하나 같이 금발에 감상적이기 짝이 없던 보스턴 여자들, 그 모든 타락한 사랑들, 하찮은 모험들, 삶의 잔푼어치들. 그 모든 것이 노라를 만난 다음부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득하고 가소롭게만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두 남자의 증세보다 노라의 증세가 훨씬 더 심각하다. 두 남자는 노라라는 마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고, 노라는 그녀 자체가 마약 같은 물질로 변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이와의 관계가 시들해질 때쯤 영국으로 건너가 머피와 관계를 한다. 노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물질적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녀는 둘 사이를 왕복하면서 어장관리를 하고 있었다.
어장관리의 역설. 한 남자와 만나면서 정신적·금전적·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방전되면 다른 남자의 에너지를 갈구하는. 즉, 방전과 충전의 시기 중에 충전된 쪽만 택하는 관계. 이것은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의 유혹 그것과도 같다. 오래된 제품을 싫증 내면서 새 제품을 구매하고 또 신제품이 나오면 교체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싫증 내는 시기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지속적인 인간관계는 불가능해지고,관계에서의 싫증 역시 빨라진다. 이처럼 인류가 쌓아놓은 욕망을 위한 활동과 성과는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와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영향의 전형을 보여주는 노라와 루이와 머피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203. 수학적 정의에 따르면 한순간은 다른 순간에 대해 어떤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같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거라고 하지만, 오직 그가 호흡하는 이 순간들만이 의심의 여지 없이 그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주는 유일한 순간이다.
2.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어느 페이지를 읽더라도 제목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비도덕적 장면인 그들의 불륜행위만을 쫓는다면 학습된 도덕관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여 매우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잊지 않으면서 그들이 왜 그런 이상행동을 하는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고,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욕망을 좀 더 쉽게 표출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음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행위의 당위성이 설명될 것이고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 소설의 맛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마침내 노라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요약하자면.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욕망(편리함)의 도구를 발전시켜온 현대인에게 두드러지는, 거기다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성향이 첨가되어 더욱 부풀어 오르는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부작용. 그리고 이 부작용에서 탈피하기 위해 성적인 쾌락으로 욕망을 분출해내려 하지만. 부작용의 치료법 그 자체도 부작용의 연장선임을 암시하는 성도착적이면서 제한적인 욕망의 갈구와 그 임계점을 감상적으로 나열해 놓은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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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제목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느낌을 주는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역시 민음사에서 선보이는 모던 클래식시리즈 중 하나로 선택되는 이유가 있나보다. 제목하나만으로도 많은 느낌을 전달해주는 책이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민음사라는 브랜드를 참 좋아한다. 내가 읽은 많은 고전시리즈를 민음사를 통해서 읽었고 또 그 것을 바탕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시 <인생은 짧고 욕망이 없다>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제목에서부터 나는 많은 공감을 했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은 많으나 이 시간을 100%활용하기 어려우므로 인생은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것에 반비례하게 하고 싶은 것과 욕망은 끊임없이 샘솟는다. 제목만으로도 공감돼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울컥하였다.
이 책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2010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작.
이 상은 남성권력위주의 콩쿠르 상에 대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상으로 심사위원 12명도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을 수여받은 작가는 남성.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심사위원들은 페미나상을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에게 주기 전까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혹시 그에게 주지 않기 위해 하나라도 결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다소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무시하고 페미나상을 남성 작가인 파트리크 라페르에게 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펼쳐서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하면서 직감적으로 정말로 오랜만에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읽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블레리오라는 남성에 대해 짧은 소개와 함께 그의 갈등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숨 막히도록 가쁘게 나를 조여 왔다. 아마 섬세하게 한 사람의 갈등을 시작부터 표현해내는 작가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 노라와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유부남인 루이와 능력 있는 머피 이 세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 이야기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이다.
루이 블레리오는 아내와 또 다른 여자인 노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사랑을 즐기며 온몸을 불태우는 정열을 맛본다. 단면적인 모습만 본다면 블레리오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받아 마땅한 인물로 그려질지도 모른다. 흔히 하는 말로 어쨌거나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두고 해서는 안 될 짓인 ‘불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 인지 책을 읽고 있노라면 블레리오를 손가락질 할 수 없다. 불륜을 하는 이들이 대게 하는 변명으로 ‘뒤늦은 사랑이 지금 찾아왔고 이 사람만을 사랑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블레리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과정이 차라리 행복했더라면 그를 나쁘다고 이야기 했을 텐데 노라를 그에게 떠오르고 지는 태양과 같이 막을 수 없이 왔다가는 존재라 그의 욕망을 채워서 기쁘게도 해주었지만 괴롭게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라의 또 다른 남자인 머피는 이성적이고 신중한 남자이다. 그는 욕망보다 진실한 그 무엇이 있다 믿으며 노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까지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노라를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루이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머피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관과는 다소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뱉은 ‘욕망보다 진실한 그 무엇’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노라를 향해 욕망을 보이고 있단 소리 아닌가? 더불어 블레리오가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남자이기에 블레리오와 같이 겁 없이 사랑의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못하는 겁쟁이 같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머피는 내게 자신을 행동을 타당하게 만들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노라를 편하게 해주는 사랑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상반된 두 남자의 사이에서 노라는 사랑을 만끽한다. 사실 ‘만끽’이라는 표현을 해도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두 남자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만 미루어보면 노라는 참 이기적이고 나쁜 여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두 남자를 손에 쥐고 왔다 갔다 하며 잡을 수 없는 여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이 그녀의 방식일 뿐이다. 다만 비슷한 그녀의 사랑관과는 맞지 않는 두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리오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랑에 빠져 사랑을 하다가 그 사랑에 지칠 때쯤이면 조금은 안정되고 편안한 안식처 같은 머피의 품으로 떠난다. 악마 같은 그녀 때문에 두 남자는 상처받고 서서히 변해가는 두 남자로 인해 로라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상처를 받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영원불멸한 주제이다. 사랑은 인류가 끝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든 나이가 있든 상관없이 열정을 낳고 집착을 낳고 소유를 낳으며 이해와 기다림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에 등장하는 세 남녀는 결국 모두 상처를 받고 상실과 허탈감에 지쳐간다. 사랑하는 세 사람의 감정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따라 볼레리오가 될 수도 있고 머피가 될 수도 있으며 노라가 될 수도 있다. 확연히 다른 세 사람의 사랑방식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미묘한 분위기의 아슬아슬한 감정마저도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에 견뎌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고 많이 표현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면 아름답고 찬란한 날들보다는 힘들고 기다리고 우울해지는 날도 적지 않게 있다. 이 책은 사랑의 뒷면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우중충하고 울적하지만 진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날,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때는 머피가 되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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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집착하고 욕심을 가지지만 자라면서 그런 마음들을 억누르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사랑은 어떨까? 치열한 20대를 지나며 사랑에 수반되는 집착은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시기가 되면 또다시 똑같이 행동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
'민음사'에서 출판된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표지만 보고도 흥미가 가는 책이었다. 두 손바닥이 주는 묘한 감흥.. 그리고 여백의 미가 물씬 풍기는 표지.. 인생은 짧다. 하지만 제목처럼 우리 인간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어떤 내용일까? 내가 상상하는 내용일까? 궁금증에 서둘러 책을 펼치게 되었다.
아내가 있는 블레리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부모님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일을 가지고 있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인다. 40대.. 유능한 아내가 있고 동성의 애인도 있다. 왠지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닌 듯 하다. 그런데 인생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 노라라는 여인 때문이다.
의지주의자인데다 금욕적이고 동시에 활동적인 전형적인 백 퍼센트 미국인인 머피 블롬데일.. 매일 화폐 유통의 혼란.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 환율 변동의 속도, 자본의 급변동성에 부딪치는 남자이다.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듯 보인다.
이성적인...낭만적인 주인공이 되기 힘든 사람... 그의 인생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노라라는 여인 때문이다.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듯한데..왜 노라에게 흔들리고 집중하는 걸까???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세 사람... 그들의 삶이 송두리채 달라진다.
노라 네빌.. 어머니 쪽이 영국인이고 아버지 쪽은 프랑스인인 여성.. 그녀는 두 남자 사이에서 두 남자의 삶을 바꿔버린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남자 둘. 그들은 노라의 어떤 매력에 휩싸여버린 걸까? 문득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내 삶이 비교가 된다.ㅋ
얼마전 읽었던 '아내가 결혼했다'가 생각났다. 두 남자 사이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사랑한 아내.. 그리고 그녀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랑..
두 남자 사이에서 애타게 줄다리기를 하는 노라. 그녀를 미워해야할까? 책을 읽어나가면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안타까움과..그리고 일탈의 시간을 보낸다는 약간의 부러움도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삶을 조금이나마 꿈꾸지 않을까? 자신의 욕망을 무조건 누르기보다는 조금쯤 풀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삶이 지루하다면.. 아니 조금쯤 일탈을 꿈꾸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대리만족의 즐거움이랄까?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쾌감이랄까?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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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욕망의 여러가지 형태를 이야기 하는 통속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근근히 번역일을 하며 능력있는 아내에 기대어 살며 여주인공 노라와 불륜관계에 있으면서 정체모를 남자와 기묘한 관게를 갖고 있는 프랑스인 루이 블레리오, 영국에서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면서 노라에대한 또 다른 집착을 보이는 미국인 머피 블룸데일, 이 두 남자를 손바닥안에서 마구 휘젓는 욕망의 대상인 배우지망생 영국인 노라. 삼각관계의 구도를 띄고 있지만 이 소설은 세 사람의 지리멸렬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한 여자에 대한 두 남자의 욕망과 집착이 불러오는 감정변화의 묘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두 남자의 욕망의 대상인 노라에 관한 이야기는 블레리오와 머피의 시각에 따른 묘사가 다일 뿐이고 도무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새드엔딩이라는 결말이 보여주듯이 이들의 욕망은 조금씩 뒤틀려있다. 특히 두 남자의 노라에 대한 욕망은 사랑의 불가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비단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노라의 자유분방함에 매번 절망하고 실망하면서도 결국 그녀에 대한 욕망을 놓을 수 없는 통제 불능의 감정들과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번역본이라 작가의 필력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솔직히 가독성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표현이 약간은 형이상학적인 면도 있어서인지 살짝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남녀의 사랑에 관한 심리묘사를 그렸고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비슷했던 영화 <500일의 썸머>를 아주 재미있게 봤기때문에 사랑에 관한 심리묘사는 괜찮았던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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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리오를 떠난 노라가 2년 만에 그에게 전화를 해온다. 그와 동시에 런던에 있는 머피는 노라에게 버려진 꼴이 된다. 노라는 머피가 있는 런던을 떠나 다시 블레리오가 있는 파리로 왔다. 그렇지만 노라는 블레리오에게 머물지 않는다. 양쪽을 왔다갔다하는 시계추처럼 노라는 블레리오와 머피 사이를 끊임없이 서성인다.
블레리오에게는 능력있는 아내 사번이 있다. 블레리오는 그를 좋아하는 동성애자 레오나르가 물어다 주는 번역일을 할 뿐이다. 아내의 원활한 사회활동을 위해 내키지 않는 파티에 참석한 어느 날, 우연히 블레리오는 노라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노라에게 빠져들었고 그렇게 아슬아슬한 연애가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다 돌연 노라가 그를 떠난다. 그리고 2년이 지난다. 소설은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2년만의 노라가 블레리오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노라가 블레리오에게 돌아왔다는 것은 노라의 다른 연인 머피가 버림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머피 역시 2년 전 블레리오처럼 노라의 갑작스런 실종에 망연자실해 한다. 2년의 공백을 지워내듯 노라가 블레리오가 열렬하게 다시 사랑할 즈음에, 노라는 다시 런던으로 가 머피를 만난다. "노라, 왜 떠났던 거야?"라는 머피의 물음에, 노라는 "돌아와 자기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나는 그런 여자야.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걸 느껴야만 하지."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노라는 이런 여자다. 이후에도 노라는 블레리오와 머피를 두고 끝없이 갈팡질팡한다.
결국 소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노라는 두 남자를 두고 병이 나 버린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 블레리오-노라-머피의 삼각관계는 어떤 한 사람의 소외로 끝나지 않는다. 셋은 모두 자기의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며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냥 삶을 흘려 보내는, 이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그저그런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이 책은 순전히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라는 제목에 끌려 선택했다. 이보다 우리의 인생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 있을까. 때때로 우리에게 삶은 무한정 주어지는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는 그 선물같은 삶을 욕심없이 담백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데에 다다른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도 결국 살면서 집착하게 되는 수많은 욕망들 중 하나다. 어쩌면 사랑은 삶에서 가장 치명적인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치명적인 이유는 상대를 내 통제안에 완벽히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다. 그래서 사랑은 치명적이면서 너무나 매력적이다. 블레리오와 머피가 자신을 떠난 노라를 거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녀를 갈구하는 것은 노라는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라를 갈망하는 그들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끝없는 욕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라는 이 두 남자에게 그토록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것이다.
문득 책을 읽으면서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라는 문장을 '끝없는 욕망때문에 인생은 짧다'라고 바꿔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언제 마감될 지 모르는 생(生)을 두고 짧다, 길다를 논하는 건 아니지 싶었다. 생의 길이를 판단하는 건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 영역이므로. 그러나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순전히 끝없는 욕망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간은 텅 비어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인생은 상상할 수 조차 없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인생은 사는 사람은 속이 텅 비어있는 유령이 되어 버리겠지. 그래서 욕망이 우리 삶을 짧게 느끼도록 만든다하더라도, 욕망자체를 뿌리 뽑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욕망에 잠식되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욕망을 너무 멀리하는 것도 좋지 않다.
ps. 밀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는 우연적 요소가 덜 하고, 심리묘사는 더욱 돋보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깊이가 얕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면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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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이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간략하게 ‘욕망’ 혹은 ‘인생의 욕망’과도 같이 고리타분한 제목이었다면, 그 내용이 재밌더라도 다소 심드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뭔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스산하게 감아오는 칙칙한 분위기가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이 제목만큼 공감할 수 있는 문구는 없으리라. 끝이 없는 욕망을 채우기에는, 이 인생이 너무도 짧기 때문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 노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두 남자. 유부남인 루이와 능력 있는 머피다. 두 남자의 뜨거운 사랑을 동시에 받아내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밉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분명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하지만, 어쩐지 그 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내가 그녀의 사고방식을 공감하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모습을 보며 동정심을 느꼈다.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흔하디흔한 삼각관계가 제법 지겨울 법도 한데, 이 속에 녹아든 세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마냥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고, 그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했다. 바로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원체 영화든 책이든, 프랑스 작품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감성적인 마음을 콕 하고 터뜨려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 마다 도무지 건성으로 읽고 넘길 수가 없을 만큼, 매력이 철철 넘쳐 이 책을 다 읽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여전히 다시금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파리와 런던의 잿빛 하늘이 깔린 늦은 오후의 공기가 감도는, 꽤나 우울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은 참으로 설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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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는 벌써 제목자체에서 부터 대충의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는 느낌을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프랑스내에서 상당히 오랜전통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페미나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출되는 또 다른 이면의 '욕망' 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특히 유부남과의 불륜, 동성애을 다루고 있어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작품이기도 하구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양측을 오가는 한 여인(노라, 이 여성은 상당히 미스테리한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팜므 파탈 같은 분위기를 흠씬 풍기기도 합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도둑신부>에 등장하는 지니아를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아내의 사회적 권위에 편승하여 양다리(양성애적인 부분도 보여주고 있는 남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번역가 루이 블레리오 그리고 해협의 반대편에서 유능한 월가 금융투자가인 머피(왠지 '머피의 법칙' 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이기도 하죠) 이렇게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기상천외한(극히 일부일처제를 당연시 여기는 문화적 조직에서는 상당히 기상천외하다고 해야하겠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요) 사랑행각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뭐 얼핏 대충의 줄거리만을 보게 되면 그렇고 그런 뻔한 가십거리를 다루는 삼류 연애소설같은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독자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내러티브와 그 진행 그리고 그 흔하디 흔한 반전도 없고 결국 그렇게 되리라는 결말과도 너무나 일맥상통하게 맞아 떨어지는 결말부등(한 여자들 두고 벌어지는 애정 쟁탈전 아닌 쟁탈전,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여자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같은면 조강지처로 돌아온다는 설정을 하겠지만 프랑스라서 그런지 결말은 다소 흐지부지 한것 같은 느낌들 대체적인 줄거리는 정말 뻔한 스토리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뭐 이런 작품이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을까라는 의구심에서부터 페미나 상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등 여러모로 모호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전적인 느낌으로 인해 이번 작품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 물론 재미도 그다지 없습니다.(왜 뻔한 스토리이기 때문이죠.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미리 예견가능한 설정들이 친철하게 나레이션되어 있기에 더욱더 지지부진하게 결말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왠지 자신의 치부를 슬쩍 엿보는 것 같은 불쾌함이 동반하면서 약간의 짜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런 작품이 왜 모던 클래식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선택되었을까? 그리고 페미나 상을 수상한 근저는 무엇일까?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지죠.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서(물론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한다는 것은 서두에서 말씀들렸고요) 뭔가 잡힐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심사위원장이 마지막 캐스팅보트를 던지이유가 "욕망을 다루는 작가의 훌륭한 솜씨" 라고 했는데 바로 이부분이 이번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가 여타의 삼류 연애소설과 다른 점 역시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파트리크 라페르는 사랑과 욕망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정말 맛갈나게 서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뭐 이런 사유로 수상을 하긴 했겠지만 작품을 더디더라도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다름 아닌 작가의 남다른 서사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작품입니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일품입니다. 특히 불륜행각을 자행하는 루이의 심리묘사와 행동묘사가 압권으로 다가오네요. 정상적인 툴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그 바운드리안에서 안주해야만 하는 이중성을 오가는 심리묘사, 또 다른 남성인 머피의 심리상태(이 두사람의 심리행태는 상당히 상반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이러한 서사는 자신이 처해져있는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에 둘다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당한 자극제 역활을 하는 노라라는 자유분방한 사고의 여자가 삼박자를 이루면서 등자인물들의 심리를 돋보이게 하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역활을 합니다. 물론 이정도로 왠만한 작품과의 차별성이 두들러지지 않죠. 작가는 여기에 내러티브를 전체를 하나의 스틸 사진같은 분위기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하모니를 맞추어서 하나의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풍경사진을 보는듯한 서사가 유니크한 느낌을 던져주는 작품이죠. 또 전지적 작가시점이지만 왠지 각각의 1인칭 시점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는 기법등 요소요소에 볼거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루이가 노라를 만나기위해 아내 사빈에게 늘어놓는 다양한 연출과 거짓말처럼 말이죠. 이런 관점에서 이번 작품을 들여다 보게 되면 상당히 매력있는 작품으로 다가오면서 뻔한 스토리가 왠지 자신을 포함한 우리 주변으로 그 시선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파트리크 라페르는 사랑의 이름으로 덧칠한 욕망을 정말 절묘하게 서사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 욕망이라는 용암을 분출시키는 대변인 역활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뭐 한번쯤은 상상해볼만한 그런 시츄에이션이고 이런 시츄에이션을 솔직 담백하게 지면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왠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블루>, <레드>, <화이트> 떨올리게 하는 느낌이 들면서 한편의 풍경 사진을 보는듯한 차분하고 세밀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내제되어 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솔직 담백하게 들어내고 있는 서사들이 일품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분명 어느 순간 그들 생에 한 번쯤 잊을 수 없는 어떤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그들만의 사건을 필요로 한다" 라는 작중 루이의 심리묘사에서 비쳐지듯이 파트리크 라페르의 서사들은 욕망의 정곡을 꼭집어 내어 속이 후련하면서도 독자들의 민망케 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매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자칫 뻔한 스토리의 삼류 연애소설로 흘러갈 수 있을 내러티브를 파트리크 라페르 특유의 맛깔스러운 서사가 더해지면서 작품 전체가 스틸 사진의 한 컷 한 컷 처럼(루이나 머피의 스토리가 한 컷의 스틸 사진처럼 담겨져 있고 이들 설정들이 동영상처럼 연결된듯 하면서도 별개의 풍경을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 기법) 독자들 기억에속에 남게 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욕망에 대한 특유의 서사가 기억에 오래남을 작품인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