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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선 시스터 문>는 200페이지도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엔 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에 방황했던 대학생활이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땐 이랬지.' '아~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향해 가는 걸까?' 마냥 설레기만 했던 청춘의 기억들....
이 책에 세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가 나온다. 세개의 단편으로 이어져 있으며 다 읽으면 하나의 장편으로 변신하고 만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으며 청춘에 대해 스스럼없이 고백하고 있다. 고백이라....
책이 좋아 문학을 전공하는 아야네. 그녀는 매일매일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엔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작가가 되는 것을 원하는지 조차 헷갈려 할 정도로 심한 갈등에 빠져든다. 왜 그런 게 있잖은가? 시험 공부를 하려 하면 책상을 정리하고 커피를 마시고 이것 저것 잡다한 걸 모두 끝내고 비로소 공부를 하려고 하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좋아하는 것을 막상 하려고 하는데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낯섦.
대학에 진학하여 4년 동안 재즈밴드에 빠져버린 마모루. 꼭 예전에 나를 보는 듯 했다. 4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재즈밴드에서 연주를 하며 순간 순간에 빠져들었다. 연주는 물론 대학 공부까지 마치며 무난히 졸업했다. 재즈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결국 록음악을 즐겨 듣는 평범한 회사원이 된다. 허무한 마무리지만 두 번째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줬다. 한 때 미칠 정도로 빠져들었던 '무엇'을 취업이라는 장벽을 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고 마는, 어차피 그건 내 길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내가 대학생 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거 꼭 해보고 싶어. 지금은 내가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한때 나는 꿈이 있었는데 말이지..' 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 경험.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학생 땐 영화 동아리에서 주구장창 영화만 봤던 하지메. 그런 그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한다. 마모루와 달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까지. 그 둘의 모습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한쪽은 대학4년 내내 좋아하던 재즈 연주를 버리고 막상 직업은 평범한 회사원, 또 다른 한쪽은 대학생 땐 그저 취미로 영화를 보며 좋아했지만 사회에 나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고민으로 흔들려봤을 것이다. '현실이냐? 이상이냐?' 하는 문제를 말이다. 현실인지, 이상인지 하는 고리타분한 경계는 스스로가 만들어 버린 허상이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핑계삼아 스스로를 합리화 시킨다. 어쩌면 비겁하고 어쩌면 눈 앞만 보는 바보 같은 선택. 인생은 단 한 번뿐인게 한탄스럽기만 하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반드시 후회가 뒤따라 오기 마련아닐까?
막연히 불안하기만 한 현실과 상상만으로 웃음짓게 만드는 이상. 그 사이의 경계는 바다같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야네, 마모루, 하지메는 우리의 초상이다. 어쩌면 그렇게 내 심리를 쉽게 간파 당할 수 있는지 신기하면서도 억울한 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떠오른다. 그 소설에서는 삶과 죽음, 희망과 동시에 청춘의 방황이 뒤섞여 있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과 <상실의 시대> 사이에 보이지 않은 공통점이 숨어 있었다. 내 나이 31살임에도 아직도 책을 읽고 아픔과 동시에 설레임을 얻는다.
인간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흔들리고 아프고 설레임을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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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선, 시스터 문
내 20살의 기억의 대부분은 낡은 학생회관과 어두운 암실이다.
그 때는 아무 느낌도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이, 지금은 많이 그립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쩐지 너무 빨리 깨버린 아쉬운 꿈 같아서 괜스레 다시 잠들어보고 싶은 그런 느낌인 거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그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생이라는 존재는 좀 더 어른일 줄 알았는데, 예전에 고등학생은 좀더 어른일 거라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고 보니 어른이 아니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열일곱 살도 실제로 되고 보니 대단히 시시했던 것처럼, 스무 살은 그보다 한층 더 별볼일 없었다.'
세 명의 화자. 세 개의 기억.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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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시절. 퍼덕거리는 싱싱한 물고기처럼 넘치는 생명력으로 충만했던 패기가 내게 있었다. 마그마처럼 넘실대는 에너지가 두뇌와 심장 안에 한가득 공존했던, 우리들의 사랑스런 20대를 온다 리쿠의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의 시점으로 돌아본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아야네, 마모루, 하지메란 청춘들.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도쿄의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 문학과에 들어갔다 뒤늦게 소설가의 적성을 깨닫는 아야네. 입학부터 졸업 직전까지 재즈 동아리에서 부단히 베이스 기타를 연마한 마모루. 영화 연구회로 활동하긴 했으나 선배들은 물론이고 자신도 연출을 할 거라 전혀 생각지 못한 하지메가 10년후 촉망받는 감독이 된 이야기. 세 청년이 주인공이다. 이 중 아야네의 [그애와 나]와 하지메의 [젊은이의 양지]편이 흥미롭게 읽혔다. 소설의 대학생들은 모두 일본 호황경제의 초창기에 대학을 다닌 터라 졸업 후의 안정된 취업이 보장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아야네는 4년간 평안하다못해 무위, 무료하게 보낸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다 아르바이트 하던 곳 손님에게서 평범한 한 마디를 듣고 커다란 계시를 얻는다. "문학 전공이라니 글은 쓰고 있겠지?" 하지메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오랜 세월을 건실한 직장인으로 보내다가 공모전에 영상을 꾸준히 출품하면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어 버린다. 인기를 끄는 대부분의 일본소설이 격렬한 사건을 다루거나 비극적 혹은 획기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캐릭터가 나왔던 탓에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의 흐름은 평탄하고 심심한 편이다. 대학졸업 무렵 비로소 자신의 열정을 터트렸든, 시간이 지나 다시 스물의 꿈을 되찾았든, 온다 리쿠는 주인공들의 의식의 변화를 섬세하고도 조직적으로 그려낸다. 점진적이고 촘촘한 그녀만의 화법에 묘한 뭉클함이 있었다. 예전 대학생들의 소소한 일상과 심리를 편안하게 풀어내어, 가볍게 읽고난 후 잔잔히 미소지으며 스스로의 과거를 회상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지금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하여 한번 돌아보게 하는 소품이다. 일본과 차이가 있지만 현재의 고민, 꿈에 대한 열망은 청춘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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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청춘은 학창시절과 겹친다. 그래서 '청춘예찬'이라는 말에 짜증이 나는 이들도 있다. 청춘과 학창시절이 그저 "그 누구도 아닌 시대" 혹은 "연장된 유예기간"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 청춘은 과연 어떠했나. 무엇보다 내 학창시절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조급해하던 때였다. 특히 대학시절은 성실한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고 맘놓고 바보같이 자신이 좋아한 일에 몰두했던 열정의 시기였다. 연애나 로맨스가 그리 순탄치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내 대학시절은 말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밤늦게까지 머문 동아리방, 죽이 잘 맞았던 선배와 조교 누나, 솔직하고 멋진 교수님, 잔디밭의 막걸리 파티, 번잡한 골목주점, 커피숍의 스터디…이런저런 단편적인 추억들이 대학 4년이라는 '장거리 열차'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흐린 풍경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거군요." 영화 <젊은이의 양지>의 대사처럼 학창시절의 인연은 헤어짐과 잊혀짐으로 마감된다.
무미건조한 생활을 한 별볼일없는 대학생도 말못할 남다른 사연의 에피소드를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달콤씁슬한 발라드인지 감미롭고 나른한 재즈인지 아니면 아드레날린을 뿜어대는 로큰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양한 무늬와 채도를 가진 학창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면 학창 시절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워낙 평온해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도 묘하게 아프다. 그 무위함, 어리석음, 평범함이 시간을 넘어 마음속 밑바닥에서 무디게 저려온다. 자의식 과잉인 주제에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간신히 프라이버시를 손에 넣고도 외로움을 탔으며, 뭔가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발을 내딛기는 무서웠다."(21쪽)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세 편의 옴니버스 소설로 문학을 사랑한 니레자키 아야네, 재즈를 사랑한 도자키 마모루, 영화를 사랑한 하코자키 하지메가 주인공이다. 세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창으로 고딩시절에는 이름 덕분에 '자키자키 트리오'라고 불렸다. '헤엄치는 뱀’의 목격과 동시상영관 명화극장에서 함께 본 영화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 자키자키 트리오가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72년 작품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이탈리아 성자 성 프란체스코의 청춘 시절을 담아낸 영화다. 셋은 같은 대학에 다니지만 학부와 소속된 동아리는 각자 다른데 국문과 아야네는 독서 동아리, 마모루는 모던 재즈 연구회, 법학과 하지메는 시네마 연구회다.
아야네는《음예예찬》으로 유명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에 관한 졸업논문을 썼다. 아야네는 나랑 겹쳐지는 면이 많은 것 같다. 내 졸업논문은 빠진(巴金)의 애정삼부곡에 관한 것이었다. <그애와 나>의 주인공 아야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나름 의미심장했던 사건들과 학창시절 동창생들과 얽힌 추억담이다. 《그애와 나》는 아야네가 중학교 때 읽은 이시자카 요지로(石坂洋次郞)의 "대놓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청춘소설 제목이다. <파란 꽃>의 주인공 마모루는 한때 아야네의 남친이었다. 베이스를 치는 마모루는 음악 동아리에서 피아노를 맡은 기지마 오즈마와 드러머 후지카와 마사야와 더불어 '오즈마 밴드'를 구성한다. 하코는 대학 때는 '시네마 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나중에 금융일을 하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학창 시절에 본 영화 중에서 영향을 받은 것, 좋아하는 배우를 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코는 <젊은이의 양지>와 내털리 우드를 꼽는다.
온다 리쿠의 근황을 소개하는 해제나 역자의 평이 없어 다소 유감이지만 이 책은 이미 닫혀버린 학창시절의 추억을 다시 견인해내는 강력한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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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어떤 이야기 입니까?” 감독은 잠깐 생각하는 눈치를 보였다. “이번에도 인간군상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만.” “만?” 기고가가 되묻자, 그는 또다시 잠깐 생각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고 빙긋 웃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어져 있는데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일까요.” 주인공 하코자키 하지메의 말처럼 온다 리쿠의 2009년 作,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인간군상 드라마’이고, ‘이어져 있는데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니레자키 아야네,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 이름에 모두 ‘자키’가 들어가는 이 셋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팀이 되어 특별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친해진 삼총사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 따로 또 같이, 셋의 흘러가는 청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세 사람.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소풍도 가며 친하게 지냈다. 1학년 6월경 거리로 나가 취재 비슷한 인터뷰 조사를 해야 하는 특별활동을 통해 만난 이 셋은, 이름에 모두 ‘자키’가 들어가서였는지 금세 친해진다. 그리고 그 셋은 나란히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셋은 서로의 추억을 가지고 각자 다른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우정 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하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간다. 첫 번째 이야기인 「그애와 나」는 홍일점 니레자키 아야네의 이야기. 평온해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을 만큼의 굴곡 없는 대학시절을 보낸 아야네. 그녀는 그 때 의 자신을 ‘자의식 과잉인 주제에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간신히 프라이버시를 손에 넣고도 외로움을 탔으며, 뭔가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발을 내딛기는 무서웠다’던 때라고 말한다. 아르바이트와 책을 읽는 데 모든 시간을 쏟던 그녀는, 한 손님 덕에 글 쓰는 것이 자신의 바람인 것을 깨닫게 되고, 그 후에 진짜 소설가가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인 「파란 꽃」은 도자키 마모루의 이야기이다. 그는 중학교3학년 때부터 치기 시작한 베이스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음악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학 생활 내내 재즈밴드에 열정을 쏟아 붓는 도자키 마모루. 아야네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었지만, 밴드 활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에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어져버린다. 축제 때 연주할 음악을 연습하면서, 또 자신만의 솔로 애드리브를 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밴드를 위해, 공부처럼 수행처럼 마모루는 자신만의 시간을 베이스 연습으로 채운다. 그러나 졸업 후 제철회사에 취직한 그는 베이스와도 멀어지고 록밴드 음악을 듣는 평범한 사회인이 된다. 세 번째 이야기인 「젊은이의 양지」는 하코자키 하지메의 이야기이다. 대학 졸업 후 대형 증권회사에 취직했다가 그 뒤 부동산계 금융기관으로 전직까지 한다. 그러던 사이 어느 문화잡지에서 주최하는 이름 있는 영화 콩쿠르에 응모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감독이 되었다. 아야네가 아르바이트와 책에, 마모루가 베이스기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하지메는 대학 시절 내내 영화를 줄기차게 보고 남이 영화 찍는 것만 도왔다. 아야네나 마모루와 달리 하지메의 이야기에선 그의 대학 생활이야기보다는 감독이 된 미래나 셋이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과거를 다룬다. 그리고 그의 회상에서 비로소 자키자키 트리오의 교집합 부분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뱀이 떨어졌다. 사실이다. 그날은 비가 오지도 않고, 회오리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휙 소리가 나더니 눈앞의 개천에 뱀이 풍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셋 다 깜짝 놀라 개천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뱀 몇 마리가 서로 얽혀서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늘에서 내려온 뱀. 서로 뒤엉키고 휘감긴 채로 물속에 떨어져서는 얼마 동안 그대로 헤엄치더니, 이윽고 뿔뿔이 흩어져 각각 다른 곳을 향해 헤엄쳐갔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뚜렷한 줄거리도 전개도 갈등도 없는 소설이었다. 온다리쿠의 다른 소설처럼 미스터리하지도 않다. 어쩌면 독자의 나이 대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것은 20대 초반의 설렘과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테두리에는 일정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이라도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이라는 인생의 법칙(회자정리會者定離)이 여실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메가 마지막에 기고가의 얼굴을 보며 한 말(“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거군요.”)에서 ‘이어져 있는데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는 완성 된다. 열정을 다 바친 대학시절을 보낸 30대라면 분명 혈기왕성한 대가로 돈은 없고 제약과 시간, 불확실함만 가득했던 그 때보다 현재의 안정되고 자유스러운 삶에 더 만족함을 느낄 것이다. 이 소설은 혼돈의 그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련한 감정의 타임머신을 타게 해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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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계기로 인해서 바뀐다. 물론 그 계기는 사전에 치밀히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장차 그거군, 작가가 되겠군. 글 쓰고 있겠지?" 아르바이트 하던 작은 주점에 찾아온 손님이 물어본다. "아뇨, 아직요." 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이라는 말은, 지금은 아직 쓰지 않지만 언젠가는 쓰겠다는 의미 아닌가. -그애와 나, 35p-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고 맘 속에 있던 잠재된 욕망을 일깨웠다. 아주 작은 계기였으나 그 계기는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나도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로, 바깥의 빛 속으로 나가는구나,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싶었다. - 그애와 나, 61p- 그저 하루하루 보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소설가가 되고자 한 여학생은 이제 세상밖으로 나간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는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었던, 그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삶 이었다. 갑갑한 중고생시절을 벗어나 미스터리 소설을 밤새 읽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던 대학생 시절, 그리 큰 기억도 없는 그 시절을 벗어나면서 문득 스쳐지나가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예전의 추억을 중간중간 떠올린다.
마모루와 아야네, 하코자키라는 이름. 우리 이름이 아니라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사실 일본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소설 속의 세 개의 작은 소설이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아 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다 이름 탓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은 정말 사소한 계기였다. 어느 술집 아르바이트 생이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자신의 잠재된 욕망을 깨우기로 마음 먹었던 것처럼...
정말 사소한 계기였다. 계기라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 파란 꽃, 83p- 사소한 계기로 약속이 하나 둘 깨지고, 서로 어긋나고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로, 과거의 추억은 그저 기억 아래로 잠재워두고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간다. 밴드를 했던 마모루는 그렇게 밴드에 열중하던 과거의 기억을 접어두고 어느 제철회사 회사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작은 소설 속에서는 마모루가 다시 베이스를 잡게 될 여운을 남겨둔다.
심상풍경. 내털리 우드. 참다운 소녀들. 절도 있는 영화. 조리가 서는. 대사도 없이 영상만으로 이야기한다. 뱀이 떨어지는 오후. 버드나무. 바인더를 퉁기는 소리. 성 프란체스코. 샌프란시스코의 어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은 좌석. 부드러운 어둠. - 젊은이의 양지, 172-
미래에 어느 기고가와 인터뷰하게 되는 유명한 영화가는 과거 자신과 함께 한 다른 친구들의 기억을 이렇게 정리한다. 같이 영화를 본 세 명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다. 셋의 기억 속 모두에 있는 것은 헤엄치는 뱀, 셋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 아야네는 그 중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을 더 자세하게 기억했고 하코자키는 기억 속의 여학생을 내털리 우드라는 배우에 빗대어 기억한다. 영화 동아리에 있으면서도 영화 감독보다는 영화보는 데 열중했던 하코자키는, 생각지도 않게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접했던 약간은 몽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작은 일상에서도 소설을 긴 국수가락처럼 끌어내는 그 솜씨. 작은 것에서 글을 서술하는 그 가락에 약간은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의 소설. 참 요령있게 가락을 잘 뽑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다 리쿠라는 소설가는 처음 접해본다. 멍하니 흐르는 개울을 보는 느낌이랄까. 잔잔하면서도 아래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그런 느낌. 기억 하나가 물고기처럼 흘러간다. 그 물고기는 만날 듯 하면서도 살짝살짝 스쳐간다. 그리고 그것을 담은 개울의 조용한 흐름. 그리 큰 재미는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여운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계기들이 개울 속 물고기가 뛰어올라 만든 동심원처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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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에게 온다 리쿠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두어야겠다. 나는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편으로, 매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쓰는 편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남에겐 관대히, 자신에겐 엄격히' 이긴 하지만, 나도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라 그딴게 잘 될 리 없다. 한 작가에 대한 지극한 편애는 당연히 비판적인 시각 따위 개나 줘버리게 만든다. 온다 리쿠의 작품세계는 딱 두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 [회상] 과 [대화] 이다.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회상] 과 [대화] 는 플롯의 전체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되고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전체를 뭉뚱그려 보았을 뿐으로, 과일생크림 케익이 스폰지빵과, 생크림과 과일로만 이루어져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고급 원유와 빈티지가 오래된 향기로운 좋은 브랜디로 만든 생크림에, 유기농 밀을 이용해 만든 신선한 빵, 제철에 나는 신선한 과일들 역시 각각 다른 맛일터다. 그와 같이 온다 리쿠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회상들과 대사들 역시 촘촘하게 잘 짜여진 각각의 플롯들을 가지고 있다. 그저 몇 사람이 앉아 평범하게 과거를 추억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과거와 대화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스토리 텔링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어떤 작가가, 등장인물들이 그냥 방안에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는 소설을 이렇게 흡인력 있게 써낼 수 있겠는가?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단편에 가까운 세 편의 이야기가 모여 중편에 가까운 한편의 장편을 만들어낸다. 세 친구, 니레자키 아야네와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는 고교 동창생으로 도쿄에 있는 대학 동기생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때는 곧잘 어울렸지만, 다른 과를 택했기에 대학에 와서 부터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특히 아야네와 마모루는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묘한 관계이기도 했는데, 친구도 아닌 짝사랑도 아닌 묘한 감정은 하지메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 세명의 친구들이 각기 과거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먼저 아야네의 이야기가 [그애와 나] 라는 챕터로, 마모루의 이야기가 [파란 꽃] 이라는 챕터로, 하지메의 이야기가 [젊은이의 양지] 라는 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아야네의 이야기의 소재는 일본문학으로 챕터 제목[그애와 나]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책 이름이고, 마모루의 이야기의 소재는 대학시절 몸담았던 재즈밴드의 이야기로, 챕터 제목[파란 꽃] 은 책 안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재즈 연주곡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지메의 이야기는 온다 리쿠가 종종 활용하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영화이고, 챕터 제목 [젊은이의 양지]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그리고 책 제목이기도 한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실제 성 프란체스코의 인생을 다룬 영화 제목이다. 일본문학과 재즈에는 식견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으나, 세번째 챕터의 제목이나 책 제목, 그리고 온다 리쿠 작가의 성향으로 봤을때 챕터 제목들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들일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그 작품들에 받은 영향은 어쩌면 온다 리쿠 작가가 받은 영향을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온다 리쿠는 [목요조곡] 이라는 작품속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의 삶을 비교적 상세히 풀어낸 적이 있는데, 당시 어떤 인터뷰에서 일정부분 본인의 이야기가 어느 캐릭터엔가 묻어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또한 본격적인 자전적 소설은 아니겠지만, 작가의 성향상 어느정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묻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그 독특함 때문에 작품을 한두단어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정의한 '청춘소설' 이 주는 단어의 어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향수' 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도 굳이 '노스텔지어' 라는 애매한 외국 단어를 가져다가 닉네임처럼 붙였을터다. 그녀의 이야기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녀의 작품 안에는 장르 자체가 주는 묘한 긴박감과 음습한 분위기가 듬뿍 묻어있다. 묘하게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각도 거의 매 작품마다 등장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과 한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청춘이나 향수같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노스텔지어' 라는 단어의 어감이나 이미지가 온다 리쿠의 작품들과도 잘 어울릴 듯 하다. 안개에 쌓여있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뿌옇고 몽환적인 추억들.
이 작품 [브라더 선 시스터 문] 또한 그러한 온다리쿠의 특색이 여지없이 묻어난다. 세명의 친구,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또한 대단히 관조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대학시절을 추억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세 친구가 공통적으로 겪은 사건과 영화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것이 세 친구의 과거를 꿰는 실 같은 역할을 한다.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이 모여 과거를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흑과 다의 환상] 과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얇고, 훨씬 관조적이다. 이야기의 방식은 차라리 비교적 초기작인 [유지니아] 와 닮아있으나, 작품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더 건조하고 담담하다. 확실히 작가의 작품색이 달라진 느낌으로, 그녀의 데뷔작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묘한 느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걸까? 미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는 고정되어있고,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다. 다가올 고통은 두렵지만, 지나간 고통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고, 과거는 이미 겪어낸 일이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모두 이제 막 시작하는 초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야네는 막 작가로 등단한 것 같고, 마모루 역시 막 사회로 뛰어드려는 초년생인 듯 하고, 하지메는 10여년간 금융권에서 일한 샐러리맨이었지만 이제 막 상업 영화 감독으로 입봉한 터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향해 뛰어가야 할 선에 서있는 것 같지만, 담담하게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 작품은 거창하게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희망이나 의욕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현재와 과거, 삶의 불가역성과 기억의 가역성을 이야기 할 뿐이다. 나도, 전혀, 아무것도 없었던, 좁고 좁았던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실, 아직도 그 좁고 좁은 세상속에 갇혀있다. 어쩌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좁은 관 속, 아니면 좁은 유골함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될테고, 머지 않은 훗날에 오늘을 추억할테니까. 지금 이 순간이 기쁘고 행복한 만큼,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훗날에, 기뻐하고 행복해할 수 있을테니까. p.s 최근에 작가의 신작 장편과 작품집이 연달아 출간된 것으로 알고있다. 어서 만나보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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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온다 리쿠의 얘기가 맞나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녀의 책은 내용만큼이나 제목도 서정적이고 노스탤지어한 감성을 자아냈었기 때문이다. 제목을 잘 짓는 작가로 꼽힐 정도인데 이번 제목은 서정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라니, 노골적인(좋게 말하면 솔직한) 영어의 특성이 드러난 투박한 제목이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영화 제목이다. 고등하교 동창인 니레자키 아야네와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가 같이 봤던 영화다. 대학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흩어진 그들이 가장 가까워졌던 접점인 것이다. 사실 세 사람의 마음 속에 더 깊이 각인 된 추억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버린 마을에 셋만이 빈 거리를 헤매며 인터뷰를 하러 애쓰던 기억이다. 그리고 갑자기 강으로 뚝 떨어진 세마리의 뱀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엄쳐가던 기묘한 장면.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물 위를 헤엄치는 세마리의 뱀'이었다면 나는 표지를 집어들기 전부터 '아, 온다 리쿠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니레자키 아야네와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가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버블 경제 시대, 졸업자가 회사보다 더 우위에 있었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알바만 해도 매일 매일 가치가 올라갔던 시절.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 일본의 황금기를 지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였기 때문인지, 이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큰 풍랑은 없다. 평온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삶의 부족한 한조각에 대해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절박한 것도 없는 감성적인 소설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평범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건 온다 리쿠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내고 싶었다'는 소망을 말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하며 과거를 되짚어 주변부부터 훝어가는 니레자키 아야네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글을 쓰고 싶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은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보이는걸까. 남들이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다 놓고 달릴 때, 혼자 손에 쥔 풍선을 놓지 못하는 기분이다. 풍선은 못 놓지만, 풍선을 들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은 기분. 꿈이 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기에 쑥쓰러운 20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싼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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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선 시스터 문>을 읽다보니 어느 덧 대학교 어딘가에 온듯한 착각에 빠진다. 난 대학생 때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했었나? 학업이었나 연애였나 아님, 알바였던가.... 그때도 아마 난 뭔가를 열심히 쫓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도, 꿈도 아닌 미래를 위해서..
대학교 때 줄기차게 놀아온 친구들하고는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겼다. 아니 자연스레 끊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도 다 추억이리라. 고등학교 때 우연히 만난 세 명의 청춘들. 그들은 으레 다 그렇듯 대학교를 입학하고 각자의 삶을 산다. 문학을 공부하는, 재즈를 공부하는, 영화를 공부하는. 그들의 이상과 현실, 그리고 사랑이야기. 이 모든 감정들이 바로 청춘이라는 아픔때문이 아닐까?
자신만의 소소한 감정들,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글맛이 정말 따뜻하다. 온다 리쿠의 재주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어느 덧 감성에 빠져들어버렸다...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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