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던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시받는 한 시인의 내면 풍경을 그려낸 것이었다. 또한 시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고형렬에게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죽어서 온 갈매기"이기는 하지만 또한 "갈매기는 아버지들한테 싸우다가 죽어서 잡혀온 거"이거나 "아버지들이 노끈 끝에다 갈매기를 묶어서 물에 던져 가지고" 온 것일 수도 있다. 천상에서 버림받은 왕자가 아니라, 뱃놈들인 아버지의 삶으로 내던져진,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고형렬의 갈매기이다. 이상과 동경이 공존하던 소년시절에,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던 내면의 고통스런 풍경을 읽어 낼 수 있는 시가 바로 <추억의 갈매기>이다. 이렇듯 고형렬에게 과거와 현재는 마구 교차하는데, "오늘은 20년 전 오늘/ 청계 6가는 멀디먼 시내였다."처럼 돌아갈 수 없는 곳이거나, "술과 쌀밥과 산채를 놓고 밖에는 전생 된 이승에 비만 내리고"처럼 순식간에 현실이 전생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놓여 있는 공간을 끝없이 현실과 과거와 미래의 공간이 교차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려, 순식간에 이승마저도 전생으로 느끼는 시인의 감수성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 도도한 인식앞에서는 움찔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형렬의 시가 사람을 움찔거리게 만들지만은 않는다. "짚또아리 드신 장사 같은 어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이 자고 계신다./ 더 위로 위로 오늘은 가시나 보다."처럼 어머니에게 눈길을 돌릴 때 시인의 눈빛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흘러넘친다. 잘나서 감옥에 간 아들을 둔 어머니가 옥수수를 팔 때, "옥시기 좀 사시오 저, 옥시기 사시오/ 막 쪄온 찰옥시깁니더."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독자의 가슴 한 켠을 찌른다. 그 감정은 "단청 짙은 신흥사 일주문 밑에서."라는 여운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구절로 끝나며 갈무리되어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또한 고형렬의 시선이 아이를 향할 때, "아인 실눈을 뜨고 엥 돌아 누웠다. 할머니는 허리를 덮어주고, 우신다."처럼 아이와 할머니라는 관계를 대비를 통해 보여주고, 그 대비가 범속한 일상처럼 서로의 불신이 아닌, 믿음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걸 독자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사내아이 하얀 아랫배 꽃봉오리 속에는/ 잘 자리잡은 길고 가는 작은창자/ 그러나 어른들 배는 믿다오"에 이르면 아이들을 선명하게 어른과 대비시켜 동경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때 동경은 할머니와의 대비에서 이룬 것을 건너 뛰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싱싱한 몸에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원초적이며 근원적이고 생명적인 심상을 획득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 소년이 되면, "그만 남의 꼬임에 빠져 칼을 쓰는/ 동해안 작은 항구의 깡패가 됐습니다"처럼 어른들의 세계에 물들어가고 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를 말라고"이야기 하는 것도 역시 그 소년이다. 고형렬의 이러한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의 바탕은 "나 그 사람 보고 싶어 구레나룻힘 떨어졌다"처럼 아이같은 엄살을 부리는 행위나, "오늘도 거기 가서 오만상 찡그리고 왔다."처럼 자신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고향, 혹은 모성과 같은 것에 대한 동경에 있다. 고형렬의 시는 그래서 갈매기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아이와 할머니, 소년을 거쳐 이제는 "핑계대고 찾아가는 광주 이발관"에서 오만상 찡그리며 삶의 고통을 풀어헤치는 현재로 거슬러 온다. 고형렬의 시가 지닌 힘은 이렇듯 시인의 시선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과 공간의 경계마저 훌쩍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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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겨울엔 누구라도 눈을 기다린다. 춥고 배고픈 사람이야 겨울이 힘들고 싫겠으나, 포근한 함박눈은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겨울만의 즐거움이다. 사진리의 대설은 과연 어느만큼의 눈일까?
사람마다 시를 읽는 느낌과 방법은 다르겠지만,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을 나보고 나누라면 이성적인 것들과 감성적인 것들로 나눌 수도 있겠다. 생각을 많이 해야 있을 수 있는 시들과 감성으로 그냥 느끼면서 읽는 시들. 내 책장에는 전자가 훨씬 많다. 이 시집은 내게 후자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 쉽게 사지지는 않는 시집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충동적으로 이 시집을 샀다. 그리고 그 느낌은...아름다왔다는 것. 그것이 어떤 아름다움인지 머리속으로 생각하기 전에 그냥 아름다왔다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오리들은 하늘이 찬란한 새봄도 맞지 않고 시베리아로 떠나서 밤섬은 텅 빈 모래밭뿐 산에 진달래 길가에 개나리 담에 목련 피면 아름답다고 아무리 애를 써서 마음 주어도 물장구치고 떠들고 싸우고 울던 이웃들은 훠얼훠얼 어느 멀고도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하여 오늘 나 여기서 노래 하나 부르니 모래밭에 우수 지나 밤섬은 후회만 가득해 심심 산비알을 감자 혼자 외롭게 익어갔듯이 사랑은 강 안에서 바라보며 탐하진 않았으나 저 건너 강심 한가운데 바람만이 스치우고 모두 떠난 백사장에 흰 봄빛만 놀고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