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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콩 선생님이 들려주신 세 권의 우리나라 역사 시리즈 중에서 근대사회를 담은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많이 들었다. 이미 지나버린 역사를 바꿀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만약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많이 상상했던 건 우리나라가 중립 국가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 우리에게 우리나라가 중립 국가로 설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헛된 상상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은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용산 지역은 근대부터 현대까지 외국 군인들이 주로 주둔하던,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비운의 땅이다.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온 청나라 군대는 군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이곳에 자리 잡고서 조선의 내정을 간섭했다. 한편 청.일 전쟁(1884)부터는 이곳을 일본 군대가 차지했으며, 이들은 1945년 우리 민족이 해방될 때까지 이곳에 주둔하면서 우리 민족을 탄압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이 땅을 미군이 차지했다. 얄타회담으로 38선 이남의 땅을 책임진 미국은 미 육군 제24군단을 한반도 남부 지역에 두었는데, 이때 그 본부가 일본군이 자리 잡고 있던 용산에 설치되었다. 이후 용산은 2000년대까지 미군 주둔지였다. 2004년에 와서야 미국과 우리나라 정부가 주한미군 사령부를 비롯한 용산의 미군 시설들을 경기도 오산, 평택으로 옮기기로 합의하면서 비로소 용산 지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우리 국토 안, 그것도 우리 민족의 심장부 서울의 알짜배기 땅 용산에 이런 비극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민족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자고로 어느 민족, 어느 국가던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외세의 영향을 받게 된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밑줄 쫙!!!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94 중에서 -
한편 이 무렵에 갑신정변, 거문도 사건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조선을 차라리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독일 부영사 부들러는 “조선 땅이 청.일 양국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이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으며, 미국에 보빙사로 파견되어 유럽까지 견학하고 돌아온 유길준도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조선이 중립국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130 중에서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조선 정부의 미숙한 상황 판단으로 발발한 청.일 전쟁은 조선의 힘없는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165 중에서 -
중국과 일본 등 한반도 주변 열강이 패권 확장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이 풍도 해전을 교과서에 수록해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역사 현장인 풍도를 꽃 사진을 찍고 낚시나 즐기는 섬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168 중에서 -
러시아는 군사, 재정 고문을 자기 나라 사람으로 앉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려 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 등지의 우람한 나무를 베어 갈 수 있는 삼림 채벌권을 챙겼다. 미국은 경인선 철도 부설권과 서울에 전기를 가설하고 전차를 다닐 수 있게 하는 사업권, 조선 전체 금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노다지’ 광산이었던 평안북도 운산 금광 채굴권을 가져갔다. 미국이 다양한 이권을 챙기자 영국, 독일, 일본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난처해진 조선 정부는 이들 나라에도 이익이 많이 남는 광산 채굴권을 내주어야 했다. 한편 일본은 조선 정부가 다른 나라에 주었던 철도 부설권을 매입하여 조선 철도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철도를 모두 개통했다. 즉, 경인선은 미국이, 경의선은 프랑스가 사업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들 철도 부설권을 일본이 거금을 주고 사들여 조선 땅 주요 철도는 일본이 모두 완성시켰다. 이처럼 일본이 철도 사업에 열을 올린 이유는 딱 하나, 조선 진출과 대륙 침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193 중에서 -
정부는 독립협회의 이러한 활동을 고깝게 여겨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직에서 해임하고 미국으로 돌려 보내려 했다. 그러자 독립협회 회원들은 1898년 3월에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어 정부의 결정을 철회시키려 했다. 만민공동회가 뭐냐고? 양반에서 백정까지 나랏일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협회의 주장을 펼치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일종의 ‘촛불 집회’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중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이 집회는 러시아의 이권 친탈, 즉 부산 앞바다에 있는 섬인 절영도를 조차해 가려는 것과 한.러 은행이 특혜를 받는 것 등을 저지했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202 중에서 -
1904년으로 접어들면서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양국 간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 챈 대한제국은 서둘러 국외중립을 선언했다. 그때가 1904년 1월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2월에 인천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급습하고 동시에 러시아 함대 기지가 있던 랴오둥 반도의 뤼순항을 공격했다. 러.일 전쟁의 시작이었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215 중에서 -
만약 우리나라가 중립 국가로 있었다면, 유일한 분단국가가 아닌 단일국가로 지금보다 더 빠른 발전을 이룩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힘 있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우리나라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제들도 우리 땅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에게 역사의 숨결을 내뿜으며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텐데. 그랬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럽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고속기차를 만들어 중국과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도 연결되는 길이 생겼을 것이고, 우리는 더 일찍 많은 나라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우리 문화를 보다 멋지게 발전시켰을 텐데 싶었다. 그리고 그랬다면 우리나라에도 아직까지 왕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사는 지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을사늑약 체결 당시 우리에게 했던 일들을 보면,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이 현재 우리의 친구 국가라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친한 친구일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나라와 나라 간 외교는 자기 나라에 이익이 있어야 성립된다.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더 이익이 되는 곳이 있으면 등을 돌리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머릿 속에 꼭 명심해 놓을 일이다. - <장콩 선생의 우리 역사 이야기3> p230 중에서 -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중요한 시험에서 역사가 꼭 들어가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역사는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귀중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들 때면 주변 친구나 선배, 선생님한테 조언을 구하듯, 나라살림을 꾸리는 이들이라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역사를 만들어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현재를 잘 만들어가고 우리나라의 먼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시안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과거인 역사를 알아야만 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공무원들에게는 기본적인 자격 요건을 확인하고 거치는 시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째서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러한 검증시험이 없는 것인지 참 궁금해졌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나라살림을 꾸리는데 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데도 말이다. 공무원은 나라살림을 잘 돌아가게 해주는 역할이지만, 국회의원들은 나라살림을 만드는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학교 다닐 때 역사를 배웠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뒤 다시 보는 역사에서 나는 학창시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고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정말 좋은 책은 어릴 때보고, 커서보고, 나이들어서 보고 해도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주기 마련이다. 역사 역시 그런 좋은 책과 같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한 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보고 배우고 찾아야 할 귀중한 책이자 선배와도 같지 않을까. 그런데 정치를 하며 한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이들인 국회의원들이라면 역사를 그 누구보다 더 가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되려면 그 나라에 대한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회의원들 역시 공무원처럼 시험을 치러야만 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시험은 꼭 치르게 하거나, 아예 국가시험 자격증은 필수로 해서 국가 자격증 1급을 소지해야만 국회의원석에 앉을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학창시절 역사를 공부했고 어느 정도의 학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를 하기 전에 역사를 다시 깊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정치를 한다면 분명 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리라 생각된다. 누구보다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이들은 정치인들이니까 말이다. 나라 없이 정당이 있을 수 없고, 나라 없이는 정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 나라가 잘 꾸려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이 나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큰 어려움을 겪고 독립을 한지 이제 70년. 나중에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 우리를 역사에 어떻게 기록할지 참 궁금해진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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