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중도의 동어반복
"중도의 동어반복" 내용보기
모두 읽는데 약 1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원택스님(성철스님의 상좌)의 성철스님 관련 칼럼에서 성철스님 생전에 출간되었던 『백일법문』이란 책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성철스님은 선승이라 문자나 책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시지만, 이책을 출간하시면서 ‘부처께 밥벌이 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친절은 아니라도 탐구
"중도의 동어반복" 내용보기
모두 읽는데 약 1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원택스님(성철스님의 상좌)의 성철스님 관련 칼럼에서 성철스님 생전에 출간되었던 『백일법문』이란 책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성철스님은 선승이라 문자나 책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시지만, 이책을 출간하시면서 ‘부처께 밥벌이 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친절은 아니라도 탐구의 가이드라인 혹은 다른 곳을 기웃거림에 대한 우회적인 일침의 역할은 하는 것 같다. 『백일법문』은 지루할 정도로 동어반복을 한다. “中道” , 꼭 중도라 하지 않더라도 쌍차쌍조,사사무애, 원융무애 등 각 종 마다 다양하게 표현되는 중도를 동어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불교역사를 통시적으로 관할 때 그만큼 이 “中道”가 고갱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동어반복은 책 읽는이를 지루하게 만들지만 『백일법문』은 불교의 사상사적 역사를 열거하여 중도를 표현하므로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 학문적인 관심에서 『백일법문』을 대했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왜 이책을 읽고 있을까? 백번 읽는 것보다 한번 참선하는게 나은 것 아니가?”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맞다! 하권의 선종 부문에서 성철스님은 언어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 돈오 돈수를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일상을 살면서 몇 분도 들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 화두인 것을…, 한번 실험을 해보았다. 전철에 내려 집까지 약 20분을 걸어가야 한다. 그 20분 동안 한 생각을 하고 걸어보았다. 하지만 수십 차례나 생각의 딴 길을 경험해야 했었다. “화두가 성성하십니까?” 어떤 경우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씀은 게으른 나를 합리화 시켜주는 결과를 만든다. 어려운 것이 있을 때 탐구하지 못하고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지식은 지식의 나선에서 이제 출발점에 불과한데 내 키의 몇 배나 높은 곳에 서있는 학인과 똑 깥이 행동하려 하다니…… 다른 생각이 있다. 제대로 된 敎는 禪이다. 만화책을 본적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거꾸로 나라’인 것 같다. 이 나라는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있다. 아이들이 어른이고, 어른은 아이이고, 늙은 할아버지가 간난쟁이를 엎고 “할아버지 울지 마세요”라고 달래는 모습이란 하지만 이 거꾸로 나라는 잘못되었다. 현상만 거꾸로인 것이다. 만약 진정한 거꾸로 라면 관념까지도 거꾸로 이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과 차이가 없다. 아이가 할아버지 라면, 할아버지와 아이를 구분하는 개념정의가 뒤집어져야 하고 또 그 대함도 뒤집어 져야 하는 것이다. 교를 따라가면 그 곳엔 선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으며 이 말을 온전히 읽었다면 교는 즉 선인 것이다. 이것도 문제는 있군! 교는 선이 아니다. 『백일법문』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책을 읽을 때 조차도 중도를 그 맥으로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YES마니아 : 로얄 a******5 2001.12.17. 신고 공감 7 댓글 0